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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의 화교화인 연구 : 1978년 개혁개방을 분기점으로
1978년 개혁개방 정책이 시행되기 전, 중국에서 화교화인에 대한 연구는 주로 역사 사건을 중심으로 이주 현황에 대해 기록한다. 즉 이주 초기에 남해원정단을 파견한 경험에 따라 화교들이 이주한 정보를 객관적으로 기록한 문장이 특히 많다. 1911년 신해혁명시기, 남양화교는 중국민주혁명의 과정에 크게 기여를 했다. 당시 정부와 사회는 화교 사무와 화교 연구에 강한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해외로 이주한 혁명당원들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많은 학술서적을 지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문화대혁명”시기에 화교화인 연구는 많은 좌절을 당했는데 당시에 현황 연구는 민감한 주제라 학자들이 화교 연구영역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에서 화교화인에 대한 연구는 새롭게 변모된다. 장시간의 회복기를 거쳐 최근 30년 동안 국제교류가 늘어나면서 이민에 대한 연구가 다시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과거 현지조사의 연구를 많이 이용하였고 더 넓은 연구 영역도 개척했다. 신이민에 대한 연구는 화교화인과 신이민의 미래 발전에 초점을 두고 제기되었다. 화교화인 연구를 정책정치적인 성격에서 벗어나 좀 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학문으로 만들려는 시도이며 이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과거 연구를 이용했다. 오늘날 화교화인 연구는 중국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 발전과정에서 화교화인의 자원을 충분히 이용했다. 다른 학과의 연구영역보다 화교화인 연구가 학술적 가치가 있고 현실성도 있다. 그래서 화교화인에 관한 연구가 더 잘 진행되려면 미래 발전 가능한 연구영역을 확장해야하고 기존 연구의 한계를 넘어야한다. 그리고 전통적인 화교화인 연구에서 접근하여 학문적 성격을 유지하면서 비판적이고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따라서 본 논문은 중국에서 화교화인에 대해 연구한 동향을 분석하고 비판적으로 고찰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중국 학계의 기존 연구경향 특히 개혁개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중국의 화교화인 연구의 전체적인 동향을 파악하고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Abstract Studies on the Overseas Chinese in China: Focusing on the Reform Period Zhang Yi Dan Dept. of Political Science and Int’l Studies Graduate School of Inha University Before the policy of Opening and Reform in 1978, the Chinese and overseas Chinese were centered on research in the historical events, engaged in recording activities of immigrants. That is to say, according to the experiences in early history of sending expeditions to the South China Sea to accord the information of immigration objectively. During the period of Xinhai Revolution (1911 Revolution) in the 1911, the overseas Chinese in the Southeast states made a great contribution to the process of the Chinese democratic revolution. The government and society during that time paid a great attention to affairs and research of the overseas Chinese. In addition, many overseas revolutionists compiled some works through their own experiences. After the foundation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in 1949, the Chinese and overseas Chinese were suffered from serious oppression in the Great Cultural Revolution. The research on the Chinese and overseas Chinese, especially the research on the situations during that time became a sensitive theme. Therefore the scholars in that time could not do any research in the field of overseas Chinese. After the policy of Reform and Opening, there were some changes in the research on the Chinese and overseas Chinese. That is to say, after the temporary revitalization, the research on the immigration has brisked up again with increasing international communication within the 30 years. By making full use of the research fruits in the past, a more broadening research field has been developed. Furthermore, the research on the new immigration has also put stress on future development direction of the Chinese and overseas Chinese or the new immigration. This research has been separate from the policy of the Chinese and overseas Chinese as well as the political characteristics, trying to establish a more objective, scientific knowledge system. In order to rationalize this research, a great deal of the past research has been quoted. The research on the Chinese and overseas Chinese has a special meaning in the current society. The Chinese reform and opening has made a full use of resources from the Chinese and overseas Chinese. Compared to the research on other fields, the research on the Chinese and overseas Chinese has an important scholar worth and also a realistic meaning. Therefore in order to continue the research smoothly, broadening the development in the future has become a necessity. By looking at the insufficiency of the past research and based on the traditional Chinese and overseas Chinese research, we have to keep the scholar characteristics as well as critical and perspective consciousness. Therefore this paper has analysed the trend of research on Chinese and overseas Chinese. The critical inspection is the goal of this paper. This paper is based on the fundamental research in the academics, especially from the policy of reform and opening to the current society, grasping the whole trend of the research on the Chinese and overseas Chinese, finding the problems and giving resolutions of problems. Keyword: Chinese and Overseas Chinese, Chinese Immigration, Trend of Research, New Immigration, Data Collection, Codification
화교 청소년과 한국 청소년의 학업적 성취동기에 관한 비교 연구
김도윤 인하대학교 일반대학원 2009 국내석사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compare Chinese-Korean adolescents' with Korean adolescents's academic achievement motivation, parental expectation, teacher expectation, self-efficacy. The subjects if this research are 492 students in the middle school 2th and high school 2th grade who are from Chinese-Korean school and Korean school in Seoul and Incheon. The data from questionnaires were analyzed by using SPSS 12.0 program such as frequency, percentage, Cronbach's α, Two-Way ANOVA. The major result of this research ar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according to related variable of adolescents besides mastery goal of academic achievement motivation, such as the culture, there is significant difference between Chinese-Korean and Korean adolescents in academic achievement motivation. That is, Chinese-Korean adolescents are more high than ones in Korean adolescents. Besides, at performance goal subfactor of academic achievement motivation among culture and grade have interaction effect. According to related variable of grade and culture, there is significant difference between Chinese-Korean and Korean adolescents in task-values subfactor of academic achievement motivation. That is, Chinese-Korean adolescents are more positive on school-learning than ones in Korean adolescents, and juniors in middle school are more positive on school-learning than ones in high school. Second, According to related variable of grade, there is significant difference between Chinese-Korean and Korean adolescents in parent expectation. That is, juniors in middle school are more positive than ones in high school. Third, According to related variable of grade and culture, there is significant difference between Chinese-Korean and Korean adolescents in teacher expectation. That is, Chinese-Korean adolescents are more positive than ones in Korean adolescents, and juniors in middle school are more positive than ones in high school. Forth, according to related variable of adolescents besides self-regulatory efficacy subfactor of self-efficacy, such as the culture, there is significant difference between Chinese-Korean and Korean adolescents in self-efficacy. That is, Chinese-Korean adolescents are more high than ones in Korean adolescents. Besides, at task difficulty preference subfactor of self-efficacy among culture and grade have interaction effect. In conclusion, academic achievement motivation, parent expectation, teacher expectation, self-efficacy are difference between Chinese-Korean and Korean adolescents. Also, academic achievement motivation, parent expectation, teacher expectation, self-efficacy are difference as adolescents's grade. 본 연구는 화교 청소년과 한국 청소년의 학년에 따른 학업적 성취동기, 부모기대 및 교사기대, 자기효능감의 차이를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오랜 정착의 역사에 비해 연구가 미흡했던 한국의 화교 청소년에 대한 실증적 자료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서울 및 인천에 거주하는 화교 중·고등학교 및 한국 중·고등학교 학생 49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학업적 성취동기를 측정하기 위해 문은식(2002)이 개발한 척도를 사용하였다. 부모기대는 백영배(1985)가 제작한 기대 척도 중 부모기대를 사용하여 측정하였고, 교사기대는 백영배(1985)가 제작한 기대 척도 중 교사기대를 사용하여 측정하였다. 자기효능감은 차정은(1997)이 개발하고 김아영(1997)이 수정한 일반적 자기효능감 척도를 사용하여 측정하였다. 자료 분석을 위해 SPSS 12.0 프로그램을 사용하였으며, 빈도와 백분율, 평균과 표준편차, 신뢰도 계수를 산출하고 이원변량분석을 실시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학업적 성취동기 하위요인 중 숙달목표는 문화에 따라 유의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화교 청소년은 한국 청소년보다 학교 학습을 자신의 발달이나 자아실현의 기회로 보는 경향이 더 컸다. 학업적 성취동기 하위요인 중 수행목표는 문화와 학년간의 유의한 상호작용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추후분석 결과, 한국 고등학생이 화교 고등학생보다 학교 학습을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수단으로서 보는 경향이 더 컸다. 학업적 성취동기 하위요인 중 성취가치는 문화와 학년에 따라 유의한 차이가 나타났다. 즉 화교 청소년이 한국 청소년보다 학교 학습을 더 가치있게 여겼으며, 중학생이 고등학생보다 학교 학습을 더 가치있게 여겼다. 반면 학업적 성취동기 하위요인 중 학업효능감은 문화와 학년에 따라 유의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둘째, 청소년이 지각한 부모기대는 학년에 따라 유의한 차이가 나타났다. 즉, 중학생이 고등학생보다 부모의 기대를 더 긍정적으로 높게 지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청소년이 지각한 부모기대는 문화에 따라 유의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셋째, 청소년이 지각한 교사기대는 문화와 학년에 따라 유의한 차이가 나타났다. 즉 화교 청소년이 한국 청소년보다 교사의 기대를 더 긍정적으로 높게 지각하였으며, 중학생이 고등학생보다 교사의 기대를 더 긍정적으로 높게 지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넷째, 자기효능감 하위요인 중 자기조절효능감은 문화에 따라 유의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화교 청소년이 한국 청소년보다 어떤 과업을 수행함에 있어서 자신의 능력을 잘 사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효능기대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기효능감 하위요인 중 과제난이도선호에서는 문화와 학년간의 유의한 상호작용 효과가 나타났다. 추후분석 결과, 화교 고등학생이 한국 고등학생보다 좀 더 도전적이고 어려운 목표의 과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자기효능감 하위요인 중 자신감은 문화와 학년에 따라 유의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본 연구는 우리나라에 살지만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는 화교 청소년과 한국 청소년의 학업적 성취동기, 부모기대 및 교사기대, 자기효능감을 비교하여 공통점과 차이점을 규명한 것에 연구의 의의가 있다. 오랜 정착의 역사에 비해 연구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화교 청소년에 대한 실증적 자료를 제공하여 다문화 사회에서 이들을 이해하고 더불어 살기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했다는 것에 연구의 의의가 있다.
박홍우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2017 국내석사
1920년대 平壤의 산업화로 주변 농촌의 離農民과 산동반도 출신의 華僑가 평양 郊外지역에 모여들어 주로 경제적인 문제로 마찰을 빚었다. 이에 1931년 평양에서 최대의 화교 배척 사건이 일어났다. 화교 배척 사건 이후 평양 화교 사회는 화교 배척 사건과 中日關係 악화의 영향으로 변화했다. 본 硏究에서는 1931년 화교 배척 사건과 평양 화교 사회가 상호 영향을 미쳤음을 살펴보았다. 1920년대 平壤은 조선 최대의 공업단지가 만들어지면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다. 平壤을 찾은 이들은 주변 농촌지역에서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平壤 郊外로 몰려든 離農民들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날품팔이, 행상 등 비정기적인 직종에 종사하거나 걸인, 부랑자가 되어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平壤의 산업화로 산동반도에서 건너온 華僑도 많이 이주했다. 平壤에는 특히 가족단위의 집약적 농업을 실시하는 華農의 비율이 40~50%를 차지할 정도로 높았다. 그래서 정주율이 높고 화교 소학교가 타 지역보다 많이 설치되었다. 게다가 平壤의 華僑 급증 시기는 중국의 국민혁명 시기와 맞물려 평양 화교 사회는 華農 왕옥을 중심으로 한 일부 친일세력의 저항을 물리치고 親 國民黨的 성향을 드러냈다. 郊外 지역에 몰려든 조선인 離農民과 華僑는 경제적인 이유로 마찰을 빚었다. 임시직 노동자, 공장 노동자, 상인 및 어민들은 일자리 경쟁 때문에, 華農과 中國料亭을 운영하는 상인은 빈부격차 문제로 충돌했다. 이러한 충돌의 지속으로 1931년 화교 배척 사건은 함경북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발생했지만 平壤에서 가장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平壤 市內의 경우에는 7월 5일 밤의 대파괴에 1만명 이상의 대규모 가해자 그룹이 조직적으로 공격에 가담했지만 武裝警官의 투입이 늦어졌기 때문에 큰 피해를 입혔다. 平壤 郊外에는 華農 등 거주자 비율이 매우 높았을 뿐만 아니라 武裝警官 투입 이후 시내 주력 그룹이 진출하면서 더욱 큰 피해를 받았다. 사건의 조선인 加害者들은 주로 郊外 거주자들로 華僑와 직업상 경쟁관계에 있었던 노동자 이발업 목수 등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직업이 없는 자 중에는 乞人과 浮浪者가 많았는데 특히 浮浪者들이 사건을 주도하였다. 被害者 중에는 사망 실종 및 부상자가 郊外地域에서 많이 발생했다. 이는 華農 및 日工 노동자, 小商工人 등이 지역적으로 散在해 있어서 치안이 불안한데다 華農 인구 비율이 높은 평양 화교 사회의 특징 때문이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臨時 避難所에 수용되었는데 최대 인원이 6,920명에 이르는 등 좁은 지역에 밀집해 있어서 위생이 좋지 않아 각종 전염병이 창궐하기도 했다. 1931년 화교 배척 사건 이후 平壤에는 華僑 노동자와 華農의 출국으로 건축 공사가 지장을 받고 야채 부족 문제가 발생했다. 만주사변 이후에는 平壤 최대의 巨商 맹헌시가 파산하고 중국으로 도주하는 등 상인들까지 본국으로 귀국해 인구가 급감했다. 그러나 1932년부터 평안남도 화교 인구는 다시 상승했다. 이에 총독부가 입국제시금 제도로 화교 입국을 막는 정책을 고안할 정도였다. 그러나 中日戰爭으로 중일관계가 단절되자 平壤 華僑의 중국으로의 일시적 귀환자가 90%에 이를 정도로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갔던 화교들은 다시 평양을 찾아왔다. 40년대에는 오히려 中日戰爭 이전보다 인구도 증가하고 정주율도 높게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朝鮮에서 華僑에 대한 감정은 정치적 상황과 연관되며 그리 좋지 않게 전개되었다. 滿洲事變 이후 平壤 華僑에 대한 재습격의 전단지가 영화관에 배포되고 朝鮮 청년 단체가 귀국을 강요하는 협박문을 보냈던 것이다. 상해사건과 히비야양행사건 같은 단순한 中日間 긴장 상태나 시안사건 등 중국 내 권력투쟁에 대해서도 平壤 華僑는 매우 두려워하였다. 평양 화교 사회는 인구가 증가하면서도 中日關係의 惡化와 조선인과의 갈등으로 불안했다. 이에 平壤 華僑는 생존을 위해 중국과 점차 거리를 두게 되었다. 특히 中日戰爭으로 압박감이 커져서 많은 華僑들이 중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남아있는 華僑들도 많았다. 그들은 일본인들에게 敵國民으로 분류되어 親日行爲에 동원되고 저항할 경우 각종 탄압을 받았다. 이에 평양 화교 사회도 親日的인 북경임시정부 지지를 선언하고 親日的인 화교 소학교 敎師를 받아들였다. 이와 같은 中日關係 악화와 日帝의 탄압이 커가는 중에 華僑는 平壤에 정착하면서 國民黨 성향을 숨기고 점차 ‘灰色化’된 것이다. 위 사실들을 토대로 1931년 화교 배척 사건과 평양 화교 사회의 相互 關聯性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平壤의 산업화로 인해 주변 농촌과 중국 산동반도에서 平壤 郊外로 찾아온 조선 離農民과 華僑는 경제적인 이유로 각종 산업분야에서 摩擦音을 내고 있었다. 이에 1931년 화교 배척 사건이 平壤에서 가장 크게 일어난 것이다. 1931년 화교 배척 사건과 연이은 中日關係 악화 등으로 평양 화교 사회는 기존의 國民黨 성향을 숨기고 ‘灰色化’ 되었던 것이다.
이선화 韓國外國語大學校 國際地域大學院 2014 국내석사
중국화교정책에 관한 연구 오늘날 세계는 점차 다민족•다문화가 됨에 따라 국경을 초월한 대규모 인구이동을 야기하였다. 해외의 유대인, 인도인과 함께 최대 디아스포라로 간주하고 있는 화교는 혈연(血緣), 지연(地緣) 및 업연(業緣)을 통해 더욱 결속되어 화교 네트워크를 형성하였다. 이렇게 형성된 화교 네트워크는 중국과 거주국 사이에서 교량적인 역할을 하며, 주로 동남아 지역에서 중화경제권을 형성하여 그 규모가 커짐에 따라 다방면에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본 논문은 개혁개방 전후 화교 정책의 시대적 배경과 주요 화교 정책을 분석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화교 정책의 변화 과정에 따라 정치, 경제, 사회 각 방면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가 주요 분석 내용이다. 본 논문은 모두 5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장 서론에서는 연구 배경과 연구목적에 관해 서술하였고, 연구 방법과 기존 연구에 대해 검토하였다. 제2장에서는 화교와 관련된 개념을 분명히 하였고, 화교 관련 전담기구와 화교 분포 현황 그리고 화교정책의 역사적 변천과정에 대해 알아보면서 연구를 시작하였다. 화교 정책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면 신 중국 성립 후, 화교의 중요성이 대두되다가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화교 배척 시기’라고 불릴 정도로 화교 정책이 비판받고 전면적으로 부정되었다. 하지만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중국정부가 화교에 대한 인식이 다시금 바뀌면서 화교의 경제 실력이 대두되었고 중국이 4가지 현대화 건설을 추진하면서 더욱 적극적인 화교 정책을 펼쳐나갔다. 중국의 주요 대표 인사들은 단일국적제 및 16자 방침을 선포하면서, 동시에 화교에만 국한되지 않고 해외 화인, 홍콩, 마카오, 대만 동포까지 아울러 중국계임을 선언하였다. 이는 중국정부가 화교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만든 제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상적으로 단결시키며 국적에 상관없이 모국에 투자하고 공헌할 수 있도록 한 전략에 대해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화교 정책은 “국적법”과 “귀교 교권 권익 보호법”을 기반으로 하여 화교자본 유치와 화교의 권익 보호에 중점을 두었다. 국가 건설에 필요한 화교 자본을 이끌어 내고자 각종 우대 정책을 펼쳤으며, 세계화상대회를 통하여 더욱 결속된 화교 네트워크가 모국에 더 많은 투자할 수 있도록 장려하였다. 정치적으로는 단일국적제를 채택함으로써 이중국적 문제를 해결하였고, 거주 국가에서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면서 동남아 국가와의 마찰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인을 감소시켰다. 또한 중국 인민 대표 대회에서 화인을 제외한 중국 국적을 소지하고 있는 화교에게 참정권을 부여함으로써 중국과 거주국 사이의 외교 문제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화교를 통해 국내 교육사업에 대대적인 투자 유치를 함으로써 중국 교육발전을 위해 기여하였다. 반면, 화교 정책의 한계점으로는 화교 정책이 시대적 변화에 상응하지 못하여 다소 시행되지 못하였던 점을 들 수 있다. 정치, 경제 사회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중국정부가 화교들을 억압했던 역사로 인해 생겨난 중국정부에 대한 불신은 화교의 공헌이 과연 애국심인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였다. 특히 문화대혁명 시기 화교 관련 업무가 전면적으로 중단되었으며, 화교에 대한 정치적탄압으로 인한 경제적인 손실등을 꼽을 수 있다. 향후 화교 정책은 세계적으로 뻗어있는 화교들을 염두에 두어 화교들을 포옹할 수 있는 보호와 우대 정책을 펼쳐야 하며 화교 정책 제정에 있어서 국제법과 충돌을 하지 않도록 국제 상황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기본적으로 중국은 화교들에게 투자할 공간과 막대한 노동력을 제공하였고, 화교들은 자본을 투자하며 이익을 얻음으로써 서로 상생 관계에 이르렀다. 결과적으로 화교 정책은 해외의 많은 화교가 중국에 투자하고 공헌할 수 있도록 장려하였고, 그에 따라 많은 해외 화교들의 투자를 이끌어 냈으며 정치, 경제, 사회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전체적으로 중국정부의 일련의 화교 정책은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중국 국무원 화교 위원회가 발표한 “十二五” 12차 5개년 계획에서 화교 정책을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 미루어 볼 때, 중국정부가 지속적으로 화교를 중요시하고 있으며, 시대적인 변화에 따라 수정되는 화교 정책은 해외 화교와 중국으로 하여금 교류를 더욱 원활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화교 정책을 긍정적으로 전망한다. 더불어 우리나라에도 많은 재외 동포가 있으므로 이러한 화교 정책을 모티브로 하여 정책을 펼쳐나간다면 해외의 많은 인재들의 더 많은 공헌과 투자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사료된다. A Study on china’s policy on the Overseas Chinese These days, mass immigration is caused beyond national borders as the world becomes multi-cultural and multi-racial. Overseas Chinese who are considered as maximum diaspora along with overseas Jewish and Indians are closely bonded based on blood ties, area ties, and work ties to build Overseas Chinese network. This Chinese network plays an bridge role between China and other countries where they reside. Overseas Chinese formed Chinese economic zones mainly in Southeast Asia. As their sizes get greater, its impact is getting expanded in diverse ways. This paper focuses to analyze the background of the policies for Overseas Chinese and main policies for them. According to the changes of policies for Overseas Chinese, the impact of it on different aspects of politics, economy, and society is the main details to analyze. Main celebrities in China proclaim single nationality system and 16 letters policies. At the same time, they declared that not limited to Overseas Chinese, ethnic Chinese, compatriots in Hong Kong, Macao, and Taiwan were from China. The strategies which are not limited to establish the institutions and investment-affirmative action in order to attract funding for Overseas Chinese and to make them tied one another with ideas, invest in their countries regardless of their nationalities, and contribute need to be reviewed. The policies for Overseas Chinese focused on funding for the Overseas Chinese and protecting their rights based on the Nationality Law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and the protection of the rights and interests of Returned Overseas Chinese and their relatives. In order to attract funding for Overseas Chinese, the Chinese goverrnment promote a series of preferential policies. Through World Chinese Entrepreneur Convention, Overseas Chinese who were tied closer were encouraged to invest in their mother countries more. Politically, by adopting single nationality, dual nationality issues were solved. By prohibiting political activities in residential countries, potential factors which may cause conflicts with Southeast countries were reduced and prevented. At the same time, they were applied actively to diplomatic issues between China and other residing countries by providing with voting rights to Overseas Chinese who have China nationality except ethnic Chinese at the national People’s Congress. In addition, Chinese government contributes to develop Chinese education by attracting a great deal of investment to domestic education projects through Overseas Chinese. On the other hand, as one of the limits of the policies for the Overseas Chinese, the policies for Overseas Chinese couldn’t be adjusted into the changes of the era and executed. Mistrust in Chinese government which caused in the course of the history that Chinese government oppressed Overseas Chinese in many different aspects such as politics, economy, socio-culture, etc. made us question if the contribution of Ethnic Chinese came from patriotism. Particularly, works related to Overseas Chinese were suspended entirely during great revolution of culture. Many Overseas Chinese were excluded to bring political oppression and economic loss. Prospective policies for the Overseas Chinese must be executed widely, protective and affirmative policies which may embrace the Overseas Chinese in consideration of Overseas Chinese in the world. International situations have to be considered not to conflict with international law in terms of policy legislation for Overseas Chinese. Researchers concerned in this study judge that the series of the policies for overseas Chinese by Chinese government were successful. In addition, considering the fact that the policies for overseas Chinese are treated mainly in the 12nd 5-year plan which is announced by Overseas Chinese Affairs Office of the State Council, Chinese government continues to consider the policies for Overseas Chinese important. The policies for Overseas Chinese which can be modified depending on era changes are expected positively in terms that it can facilitate transaction between Overseas Chinese and China. Moreover, there are many overseas Korean. So, if we refer to the policies for Overseas Chinese as motives and apply them to our policies, we will be able to attract more contributions and investments from many overseas Korean. Key words: overseas Chinese policy, Overseas Chinese, ethnic Chinese, Diaspora
화교조리사 심층 면접을 통한 한국식 중화요리의 현지화 과정
왕상진 경기대학교 관광전문대학원 2018 국내석사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광범위한 화교 조직에 대한 연구에 비해 한국화교의 정체성 및 그들의 정착과정을 통한 연구는 미흡한 실정이다. 본 연구에서는 19세기 후반부터 이주해온 한국화교의 과정을 토대로 한국에서 현지화 과정을 거쳐 토착화 된 한국식 중화요리에 정착 과정에 대해 알아 보고자 한다. 중국요리와 중화요리의 모호한 혼용에 대해 이론을 토대로 한국식 중화요리라는 형태로 자리잡기 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고, 한국문화에서 적응하며 중화요리의 현지화를 체득한 ‘구화교’ 출신의 조리사를 대상으로 심층면접 인터뷰를 실시한 후 Colaizzi의 분석방법을 적용하여 내용을 분석하였다. 2017년 6월~9월에 걸쳐 25∼30년 이상 근무 경력을 가지고 있는 화교 2세대로서 현재 특급호텔 중식당에서 근무 중이거나 근무했던 경력이 있는 조리사들이다. Colaizzi의 분석방법은 참여자로부터 기술된 내용에서 의미 있는 문장이나 어구를 추출하고, 이를 기반으로 일반적이며 추상적인 진술을 만들어 의미를 구성하고 주제묶음으로 범주화 한 후 경험의 본질적 구조를 기술하는 방법으로서 연구 결과를 5개의 범주로 구성하여 기록하였다. 한국화교의 정착과 함께 발전해온 중화요리의 정착과 발전과정을 문헌 자료를 통해 연구해보고,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체득한 구화교 출신의 조리사들의 인터뷰 내용을 분석해 봄으로서, 현대와 미래의 한국식 중화요리의 나아갈 길을 염두해 보고자 하였다. The research efforts for the identity and settlement process of the overseas Chinese in South Korea have been poor compared with the investigation into the broad structure of the overseas Chinese all around the world. This study set out to investigate the settlement process of Korean-style Chinese food that had been naturalized through the localization process in South Korea based on the overseas Chinese of South Korea who started to move into the nation in the second half of the 19th century. The study explained the process of Chinese food settling down as Korean-style Chinese food based on the theories about the ambiguous mixed uses of terms including Chinese cuisine and Zhonghua cuisine , both of which mean Chinese food in Korean. An in-depth interview was conducted with cooks that were "old overseas Chinese" and localized Chinese food by adjusting to the South Korean culture. Their interviews were analyzed in the Colaizzi method. The subjects were second-generation overseas Chinese that had a career of 25~30 years and were currently working at a Chinese restaurant of a five-star hotel or used to work there. The interviews lasted from June to September, 2017. The Colaizzi method extracts meaningful sentences or phrases from the participants' interviews, makes general and abstract statements based on them, organizes their meanings, categorizes them into topic clusters, and describes the essential structure of experiences. The findings were organized and recorded in five categories. The present study explored the paths of Korean-style Chinese food today and tomorrow by investigating the settlement and development process of Chinese food that accompanied the settlement and development of the overseas Chinese in South Korea based on literature materials and analyzing the content of interviews with cooks that were old overseas Chinese and learned by experiences over many years.
한국전쟁 시기 한국화교의 구제활동 연구 : 인천화교협회 소장자료를 중심으로
이민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대학원 2016 국내석사
본 연구는 동아시아에서의 갈등과 한국전쟁이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한국화교가 시행했던 구제활동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한국화교사회의 모습을 재현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아울러 이러한 시대적 경험이 후일 한국화교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고찰하였다. 본 연구의 주요 분석 자료는 인천화교협회 소장자료이다. 이 자료는 역대 인천화교단체가 생산한 공문서로, 아직 세간에 공개된 적이 없는 희귀자료에 속한다. 본 연구는 그 중에서도 구제 관련 공문서에 대한 분석을 시도했다. 이를 통해 파악한 구제활동의 구체적인 방식과 특징은 다음과 같다. 한국화교의 구제활동은 ‘여한전지재교구제위원회(中華民國旅韓戰地災僑救濟委員會, 이하 전재구제위원회)’를 주축으로 하여, 중화민국 주한대사관 및 대륙구총, 연합판사처 등이 협력하는 거대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진행되었다. 전재구제위원회는 ‘현물공여에서 자립기반 구축을 위한 구제로의 전환’이라는 원칙하에 긴급·임시구제, 생산구제, 교육구제 등 다방면에서 구제활동을 전개하였다. 전쟁 초기에는 구제금 또는 구제품을 배부하는 것이 주된 활동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기술교육, 사업자금대출, 화교학교 재건 등으로 확장된다. 구제진행과정에서는 현지의 정황을 폭넓게 반영하고 대처하는 등 매우 실사구시적인 면모를 나타냈다. 구제활동에 따른 영향에는 다음의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전제구제위원회는 구제대상자 선정을 위해 빈민화교 생활실태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화교관리체제가 정비되었고, 한국화교사회의 조직력과 결속력이 더욱 강화되었다. 둘째, 한국화교들은 중화민국 주한대사관의 지도하에 조직을 구성하고 구제원칙을 수립하였으며, 더 나아가 중화민국 대만정부와 직접적으로 협력하여 구제활동을 진행했다. 이는 한국화교들로 하여금 중화민국 대만정부에 대한 귀속의식을 확립하는 데에 영향을 주었다. 이상의 본 연구는 인천화교단체의 공문기록을 바탕으로 하여 한국전쟁 시기 한국화교의 구제활동을 분석한 최초의 연구이다. 특히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연계성을 지니는 구제활동을 통해 당시 한국화교사회의 존재양태를 파악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또한 기존 한국전쟁 연구에서 거의 논의된 바 없는 이주집단을 다루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본 연구는 한국의 화교학교 내 한국 학생의 유입 현상에 주목하고,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화교학교의 특수한 역사 배경과 한국 학부모의 화교학교 선택을 살펴보고자 한다. 1882년부터 한국화교의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교육에 대한 수요 증가에 따라 화교학교를 세우기 시작하였다. 한국 화교는 한국에서 차별을 당해 오면서 화교 정체성을 강조하는 민족교육을 계속 고수하였다. 화교학교가 제일 많았던 1970년대에는 전국에 60개정도가 있었고 화교학교의 번성은 한국정부가 화교학교에 대한 방임 정책과 대만 정부가 화교교육을 지원한 배경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화교의 중요성이 약화되어 대만 정부의 지원이 감소되었고, 한국 정부도 학교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었다. 뿐만 아니라 화교인구의 감소 그리고 경제, 교통, 교육의 질 등의 이유로 인하여 화교학생의 수가 줄어들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화교학교가 생존하기 위해 중국이나 한국 학생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첫 화교학교는 1902년에 인천에서 세워졌고 오랫동안 치외법권의 존재로 있어왔다. 1999년에 화교학교는 ‘각종학교’로 인정을 받고 학교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현재 한국정부는 화교학교를 다른 외국인학교와 같은 체계 안에서 관리하고 있다. 외국인학교에 대한 한국학생의 입학 조건이 화교학교에도 적용되었다. 화교학교 내 한국학생의 유입에 대해 정부는 눈을 감아주었지만 최근 외국인학교 한국 학생 입학 문제의 여파로 화교학교도 엄격한 단속을 받게 되었다. 정부의 규제와 제한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 학부모들이 자녀를 화교학교로 보내는 이유는 글로벌 문화자본에 대한 욕망과 중국어의 부상에서 찾을 수 있다. 학교 선택제도의 자유화로 인해 학부모의 교육 선택은 자유로워졌고 자녀의 미래 설계에 부합하는 교육 전략을 짜고 학교를 선택한다. 화교학교는 이러한 맥락에서 중국어 글로벌 문화자본의 추구, 국내 조기유학의 방편 그리고 한국 공교육을 대체하는 등의 방식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화교학교의 정체된 교육체계는 한국 학부모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한다. 화교학교는 정부 간의 사각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각국에서 일어난 교육 개혁의 영향을 받지 않고 여전히 구시대의 교육 방식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학교가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하여 학생의 학습 환경과 교육적 자원이 부족하며 학생들의 중국어 수준도 낮아지고 있다. 한국 학부모의 중국어에 대한 교육열은 이러한 학교의 현실과 괴리가 있으며 학교와의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다. 화교학교의 교육 체계와 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지만 한국정부의 도움이 없이 현재의 곤경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특히 최근에 화교학교 내 한국학생의 단속은 화교학교의 존폐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며, 화교학교의 존폐는 화교사회의 지속과 관련되기 때문에 한국 사회가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는 데에 있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스페인에 사는 화교가정 자녀의 다중언어 교육 경험에 관한 내러티브 탐구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현재 글로벌,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문화와 문화 간의 소통과 교류, 경쟁과 협력이 빈번해지고 있으며, 이와 동시에 주요 소통 수단인 언어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져서 다중언어 교육도 관심을 많이 받게 되었다. 중국은 예로부터 다민족·다문화 국가이며 민족 간 교류와 언어 다양성 보호를 위해 일찍이 소수민족 지역에서 다중언어 교육을 해왔다. 하지만 다중언어 능력을 익힐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고 다중언어 교육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주소이다. 연구자는 수년간 대외 중국어 교습 경험을 통해 스페인에 사는 화교 자녀들이 보편적으로 다양한 언어 능력을 사용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스페인 또한 중국처럼 다민족·다문화 국가이자 일찍이 다중언어 교육을 해왔다. 스페인에 사는 화교 자녀들의 언어 환경은 대부분 나라와 비교하여 더 복잡하지만, 이들 화교 자녀들의 다중언어 능력은 오히려 더 뛰어나다. 이런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요인에 의해 형성되는 현상으로, 가정 언어 환경의 영향, 부모의 인식과 교육 방식, 국가·학교 언어 교육 정책의 영향 등을 중요한 예를 들 수 있다. 본 연구의 목적은 Clandinin & Connelly의 내러티브 탐구를 기반으로 스페인에 사는 화교 가정 자녀들의 다중언어 교육 경험을 연구 대상과의 대화를 통해 다른 다문화 가정 자녀와 중국 일반가정 자녀에게 주는 시사점에 대해 분석하는 데에 있다. 이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연구 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스페인에 사는 화교 가정 자녀들의 다중언어 교육 경험은 어떠한가? 둘째, 다중언어 교육에 대한 화교 가정 어머니와 자녀의 인식은 어떠한가? 셋째, 다중언어 교육을 받은 화교 가정의 경험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 연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본 연구에서는 내러티브 탐구를 사용하였으며, 연구 참가자는 스페인에 사는 3개의 화교 가정에 속하는 어머니와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현재 다중언어 교육을 받고 있으며 본 연구를 위해 2021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이때, 인터뷰 자료, 현장 메모, 강의실 관찰, 사진, 동영상 등을 수집한 데이터로 인코딩된 서술이다. 이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스페인에 사는 화교 가정 자녀들의 다중언어 교육 경험들은 공통으로 남다른 언어 환경이 제공되었고, 부모의 적극적인 태도, 학교 내 우수한 다중언어 교육 방식과 다양한 교육 활동들의 도움을 받아 자녀들의 다중언어 발달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둘째, 본 연구에 참여하는 화교 가정 어머니는 자녀에게 다중언어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반드시 다중언어 교육을 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다중언어 교육은 크게 어렵지 않고, 어머니는 다중언어 교육이 일찍 시작될수록 아이들의 다중언어 발달에 유리하다고 인지하고 있었다. 셋째, 다중언어 교육을 받은 화교 가정의 경험이 주는 의미가 크게 나타났다. 먼저 아이에게 자신감과 자부심 등 마음을 고무시키는 힘을 가지게 함을 알 수 있었다. 그 외 다중언어 교육은 아이들에게 강한 정체성과 건전한 세계관을 만들어 다중 문화에 대해 알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런 성공 경험은 다른 가정에서도 모범이 되며 아이의 다중언어 교육의 발전에 긍정적인 작용을 가져왔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통해 참여자들의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다중언어 교육의 경험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의 교육법이 결과적으로 성공한 비결은 가정이나 국가, 학교 한쪽의 노력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이 세 기관 모두가 함께 작용하여 아이의 다중언어 학습에 흥미를 불러일으켜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었던 점에 있다. 이를 본보기로 삼아 국가, 학교, 부모의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더 좋은 정책과 교육 자원 및 교육 방법과 부모의 협조 등의 필요성을 제언하는 바이다. The world we live in has now entered a globalized multicultural society. In such a background the communication and exchange competition and cooperation among countries, nations and cultures have become more frequent. At the same time the role of language as the main means of communication has become more important than ever. Multilingual education has also received widespread attention. China has been a multi-ethnic and multi-cultural country since ancient times. In order to protect inter-ethnic communication and linguistic diversity. China has carried out multilingual education in ethnic minority areas long ago. However there are not many people who can master multiple language abilities and multiple language education is not going very smoothly. Through years of experience in teaching foreigners Chinese, the researcher can observe that the Chinese children who are living in Spain generally use multiple language abilities. Spain is also a multi-ethnic and multi-cultural country like China. It has conducted multi-language education a long time ago. The language environment for the Chinese children living in Spain is more complicated than that in most countries, but the multiple language abilities are more prominent for Chinese children overseas. This ability is not innate, but it is formed by various factors, such as the influence of family language environment, parents' cognition and education methods, the influence of national and school language education policies, etc.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experience of multilingual education for children from Chinese families living in Spain based on Clandinin & Connelly's narrative inquiry through conversations with the study subjects and bring implications to the children from other multicultural families and from Chinese ordinary families. The specific research questions to achieve the purpose of this research are as follows. First what is the multilingual education experience for the children of Chinese families living in Spain? Second what do the mothers and children of overseas Chinese families think about multilingual education? Third what is the significance of the overseas Chinese family experience receiving multilingual education? To solve these research problems a narrative inquiry was used in this study and the study participants were mothers and children belonging to three Chinese families who are living in Spain. The children are currently receiving multilingual education, and interviews were conducted from January 2021 to October 2021 for this study. At this time coded narratives were carried out by collecting data such as interview materials, on-site notes, classroom observations, photos and videos. The results of this study were as follow: First the multilingual education experience of the children from overseas Chinese families living in Spain had in common that they got help from providing a distinctive language environment, the positive attitude of the parents, the excellent multilingual education methods in the school and various educational activities. They had brought positive effects to children's multilingual development. Second mothers from overseas Chinese families participating in this study believed that multilingual education was very important for their children and had a strong will to provide multilingual education. Moreover,they thought that multilingual education was not difficult, and the earlier multilingual education started, the better it would be for children's multilingual development. Third the experience of overseas Chinese families receiving multilingual education was of great significance. First of all it could be seen that children had inspiring powers such as self-confidence and pride. In addition, multilingual education had also cultivated children's strong sense of identity and a sound worldview, allowing them to understand multiple cultures. Moreover this successful experience also played a demonstrative role in other families and had played a positive role in the development of children's multilingual education. Through such research results we have learned about participants’ active and effective multilingual education experience. The secret to the ultimate success of their educational methods is that they cannot only rely on the separated efforts of the family, the country, and the school, but make three parts together to let children be interested in multilingual learning and produce greater results. Taking this as an example, the necessity of better policies and educational resources, educational methods, and parental assistance are put forward based on the interaction of the country, school and parents.
이 논문은 한국 정부의 화교정책의 변화에 따른 한국 화교(한화)의 적응과정과 방식을 살펴보고 그들의 적응 유형을 도출하고자 한다. 베리에 따르면, 소수민족집단 이민자들의 거주국의 사회문화적 적응은 ‘다른 인종과 민족집단과의 관계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가’와 자신들의 문화적 특성이나 관습의 유지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가에 따라 통합, 동화, 고립, 주변화의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또한 고든은 소수민족 집단이 거주국에 적응하는데 7단계가 있는데, 이 중에서 사회문화적 적응은 제 1단계로 간주된다. 한국화교들은 1882년 청나라 군인을 따라 상민의 신분으로 장사를 하러 온 사람들에게서 그 시초를 찾아볼 수 있다. 한국정부 성립이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대중국수출입 무역을 통해서 경제적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일제식민지배가 끝나고 대한민국정부 수립 이후에 민족경제를 발전하고 보호하자고 하는 입장에서, 한국 정부는 외국인의 경제활동에 대하여 여러 제한 조치를 취하게 된다. 하지만 한국정부는 한국국적의 귀화와 교육에 있어서는 제한정책 대신에 ‘방임’정책을 취한다. 한국전쟁을 겪는 동안 한국화교들은 경제적으로 이미 큰 타격을 입게 되지만, 한국정부의 제한적 경제조치는 그들에게 더 큰 어려움을 주었고, 이러한 배경 속에서 한국화교들의 경제력은 더욱 위축되어 갔다. 비록 경제력은 약해졌지만 그들은 한국정부의 다방면의 배제정책에 적응하기 위해, 화교에 대한 교육과 화교사회 내부의 사회단체 조직을 통해서 강한 민족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했다. 1970년부터 1980년에 이르는 동안 한국 땅에서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화교들이 대거 제3국으로 재 이동했는데, 이는 한국정부의 배제정책 하에서 한국화교들이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데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이 시기의 적응유형을 고립형으로 간주할 수 있다. 화교들은 이 시기 강한 민족정체성을 유지하되 한국사회에 대한 참여는 적극적이지 않은 고립적인 특징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다가 초국가 시대에 들어와서 한국정부가 외국인에 대한 제한 정책을 크게 완화하게 된다. 이는 주로 1990년대 초 중한수교, 1998년 한국 금융위기의 영향, 그리고 한국 내 해외한인에 대한 관심도의 증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특히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외국인의 경제활동을 제한하는 조치를 대폭 수정하였고, 한국 내 소수민족의 귀화절차도 이전에 보다 용이해지게 된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2002년에 영주권 허용에 이어 2006년에는 지방선거권까지 한국 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부여함으로서 한국내 외국인들의 적응은 점차 새로운 기회를 맞게 된다. 이러한 한국의 정책변화에 따라서 한국 내 화교들의 적응 방식도 새로운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즉, 이전의 중화민족의 정체성이 점점 “한화”의 정체성으로 변했으며 한국화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韓”의 면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또한 경제적 제한 정책의 완화에 따라서 화교들의 경제활동이 다양화해졌다. 그들은 국경을 넘어 보따리 장사를 하면서 한국 내에서 관광업과 같은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기회를 포착하여 과거 제3국으로 이탈했던 화교들의 양상은 점차 한국에 기반을 잡았고 국제 화교사회와도 네트워킹하기 시작했다. 이는 그들의 새로운 적응양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화교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정책은 아직 실행한지 얼마 안 된 것이기 때문에, 이를 변수로 한국화교들의 적응유형이 벌써 변화했다고 단정하기는 힘 든다. 다만 한국화교들은 점점 “한화”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현지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다 보면, 이론적으로 그들의 적응유형은 통합형으로 변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소수민족 이민자인 화교들은 점차 거주국의 주류사회에 활발히 참여하면서도 자신들의 고유한 전통과 문화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초국가주의 시대에 한국정부가 화교들을 사회내로 통합하고 화교들로 하여금 한국과 중국 양국간의 조화를 도모함은 물론, 나아가 한국의 경제발전에 화교네트워크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한국 내 화교들을 한국사회의 진정한 구성원으로 수용하며 적극적으로 이들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