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음성지원유무
        • 학위유형
        • 주제분류
        • 수여기관
          펼치기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 지도교수
          펼치기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그리스도와의 연합 : 로마서 6:1-14 를중심으로

        이재숙 한영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2014 국내석사

        RANK : 232319

        로마서 전체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의는 그리스도에게 나타났으며, 그 그리스도에게 나타난 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에 게 전가된다. 그것은 삼위하나님의 사역을 통한 하나님의 사역이다. 성부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성자 하나님을 통하여 성취하고, 성령 하나님께서 적용하는 하나님의 사역이다. 우리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므로 성취하고 완성한 하나님의 사역을 통해 재창조와 성화의 사역을 성취하고 완성하였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믿는다. 즉, 하나님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의가 신자에게 전가됨을 믿는다. 본문은 하나님의 의가 하나님의 사역을 통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그리스도인에게 어떻게 그리스도인에게 전가되는지를 다룬다. 접속사를 중심으로 분석한 구조분석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신자에게 주는 유익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도록 해준다. 우리는 불의한 아담과 그의 후손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 으므로 새 생명이 주어진 존재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 수 있게 되었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예 수 그리스도에게 귀속된 존재가 되어 새로운 양식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역으로 인 하여 그리스도인은 성숙함으로 자라간다. 새로운 생명을 가진 존재는 의 롭다함을 얻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존재로서 산 자로 성화된 존재가 된다. 성화된 존재는 하나님께 드려진 존재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영화가 이루어져 온전하고 완전한 존재가 된다. 이 모든 것의 전 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살아남이 있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구속사적인 의미와 신자들이 구체적으 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루는 것의 의미를 더욱 알게 해준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살아남을 전제로 그리스도와의 연합 을 통해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사건이다. 우리는 그 리스도께서 성취한 것을 믿으며 소망 가운데 그를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 In the entire book of Romans, the righteousness of God is manifested in Christ and it also gets transferred to Christians through union with Christ. That is God’s work done through the triune God who plans by God the Father, accomplishes through God the Son and accommodates by God the Holy Spirit. We believe that God has accomplished and completed our recreation and sanctification because of Jesus Christ’s crucifixion and resurrection. Therefore, we believe that the righteousness of God is transferred to believers through God’s work. The book shows how the righteousness of God gets transferred to Christians through union with Christ from God’s work. The structural analysis is divided by conjunctions, which helps us to understand what believers earn as a result of being in union with Christ. Every human being dies because of the unrighteousness of Adam, the first man. However, we receive new life in Christ when God’s grace leads us to believe that Jesus Christ is God. The meaning of living in Christ is that we belong to Him as a new creation through His death and resurrection; and we grow to mature in Him under God’s work. A new creation becomes the righteousness of God and also becomes sanctified by the Holy Spirit. Anyone who is sanctified becomes dedicated and consecrated to God, and then he becomes complete and perfect in the glory of Christ. This is based on the premise that Jesus Christ was crucified, dead and then rose from the dead. In the scripture, it shows the redemptive-historical meaning of God’s work and the concrete meaning of uniting with Christ. Thus, God’s grace is given to Christians through God’s work and being in union with Christ on the premise that Jesus Christ died on the cross and revived. We must believe what Jesus Christ has accomplished in this world and live in hope.

      • 존 머레이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한 관점

        김신일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 2024 국내석사

        RANK : 232319

        본 연구는 존 머레이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한 관점으로 구원을 바라보았다. 머레이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매우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관한 연구는 거의 없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주제로 다룰 때, 기껏해야 한 분량으로 소개되는 정도인데 아쉬울 뿐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머레이가 바라보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한 관점을 소개하고 정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머레이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언약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여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언약이라는 틀을 이용하여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분석하였다. 연합으로 말미암아 언약 안에 있는 한 수혜자가 되는 것이며 연합으로 말미암아 언약이 구현되는 것이다. 따라서 구속 언약, 은혜 언약, 행위 언약과 같은 관점으로 큰 틀을 설정하여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측면에서 정리하였다. 첫째는 성부의 선택이다. 영원 전에 구속 언약이라는 성부와 성자의 합의를 통하여 성부는 구속자로 성자를 세우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를 선택했다. 이미 여기서부터 연합은 존재했다는 말이다. 특별히 여기서는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을 선택하신 성부의 사랑을 보게 되는데 성부의 사랑은 연합의 기초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는 성자의 완성이다. 머레이는 구속 언약이 시간 속에서 드러난 것을 은혜 언약으로 여긴다. 성부와의 합의를 통해서 낮아지심을 자처한 성자는 2,000여 년 전에 이 땅에 오셨는데 순종하심으로 구속의 완성을 이루셨다. 따라서 성자는 성부로부터 상급으로 받은 성령을 성도에게 보내시며 그리스도와 연합할 수 있도록 초청하신다. 아담과 비교하여 볼 때, 성자는 행위 언약을 성취하신 것이며 성도는 아담의 행위가 아닌 그리스도의 행위를 믿음으로 은혜 언약의 수혜자가 된다. 특별히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셔서 성도의 삶을 보증하신다. 셋째는 성령의 적용이다. 머레이는 과거의 구속 사건이 오늘날에 어떻게 나의 구원이 되는지를 설명할 때, 오직 믿음으로 가능하다고 말한다. 성자가 구속의 사역을 완성하시고 성도에게 아버지로부터 받은 성령을 보내시며 연합 안으로 초청하실 때, 믿음을 통하여 연합하게 하신다. 성령께서 믿음을 주시고 성도는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는데 이로써 언약이 구현되는 것이다. 연합 가운데 있는 성도는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에도 그리스도와의 연합 가운데 살아간다. 이처럼 본 연구는 머레이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한 관점을 언약의 틀 안에서 논의하고 있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사역을 중심으로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바라보게 한다는 유익이 있다. 이미 방법론 자체가 그리스도 없이 구원을 논의할 수 없는 구도이다. 본 연구의 결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개혁주의 구원론 분야에서 구원을 논의할 때, 균형 잡힌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콜라적인 방법을 탈피하게 하며 구원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머레이가 칼빈의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도 본 연구가 기여 하는 바라고 생각한다.

      • 칼뱅 신학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의미 : 개인의 삶과 공동체

        우성찬 장로회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 2023 국내석사

        RANK : 232319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까지 한국교회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놀라운 성장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말 교인 수의 정점을 찍고, 그 이후 감소가 시작되더니 코로나19가 시작된 2020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감소의 속도가 빨라졌다. 실제로 한국교회는 각종 통계자료에 의하면 교인 수의 감소뿐만 아니라 교인들의 신앙도 질적으로 퇴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위기는 정치‧사회‧경제적인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본질적으로 교회 내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가 타락한 것처럼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고, 목회자가 목회자답지 못하고 교인들이 교인답지 못하기 때문이다. 복음의 진리를 가지고 있는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고,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데 복음을 삶으로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복음의 열매를 맺지 못하니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이 논문은 제2세대 종교개혁자로서 개혁교회의 기초를 놓았던 장 칼뱅(John Calvin)의 그리스도와의 연합교리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삶을 사는 것, 주님의 은혜를 받은 성도가 이 세상 가운데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제시해 주고 있다. 먼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역사적인 측면과 신학적인 측면을 제시한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신비적 연합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은혜와 인간의 응답이 동시에 요구된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삶으로 성령을 통한 영적인 연합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없이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영적인 축복을 받을 수 없고 칭의와 성화의 은혜도 있을 수 없다. 그 다음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실천적 측면을 제시한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룬 신자는 점진적인 성화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된다. 하지만 성도의 혼자 힘으로는 완전한 성화를 이루기 힘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회를 세워주셨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된 공동체로서 온전히 세워지기 위해 말씀이 분명히 선포되고, 성례전이 올바르게 집행되어야 한다. 본 논문을 통해서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온전히 이루어 참된 교회로 세워지는데 좋은 안내서가 되기를 기대한다.

      •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성령 사역'의 관계에 대한 연구 : '구원의 서정' 안에서의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을 중심으로

        황보용 광신대학교 대학원 2007 국내박사

        RANK : 232319

        본 논문은 ‘개혁파’의 구원론을 중심으로 로마 가토릭파와 루터파와 알미니안파가 주장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성령 사역’의 ‘관계’에 대한 교리를 비교하여, ‘구원의 서정(Ordo Salutis)'에서 로마 가토릭파와 루터파의 ‘성찬중시교리’와 알미니안파의 ‘신인협동교리’ 등을 비판한 것이다. 그리하여 개혁파가 주장하는 ‘구원의 서정’ 교리만이 성도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는「성경」적인 교리라는 것을 제시하였다. 창세전에 작정된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속사역은 ‘말씀(복음)에로의 초청’으로 구원이 시작된다. ‘성령의 단독 사역’(Work of the Holy Spirit alone)으로 소명, 중생, 회심, ‘믿음’이 주어지며, 그 믿음에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Mystical Union with Christ)'이 적용되어 칭의, 수양, 성화, 견인, 영화와 같은 성도의 완전한 구원이 성취된다. 이러한 ‘구원의 서정’ 전체 순서에서 ‘성령의 주권적 사역’과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이 적용된다. 그러므로 개혁파의 구원교리는 구원의 확실성이 있다. 이러한 교리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 목회 현장에 적용하여 교회의 부흥과 성도의 실제적인 삶에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1. 로마 가토릭파의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성령의 사역’ 관계 로마 가토릭파는 구원을 ‘교회’에서부터 시작한다. 교회의 전승(傳承)과 ‘성경(복음)’, 하나님과 사제를 동일하게 생각하여 교회가 성령이고 사제가 ‘또 다른 그리스도다.’ 그러므로 사제의 ‘성례’(세례·성찬)와 연옥미사가 구원의 방편이다. ‘성령의 사역’을 무시하는 로마 가토릭파의 ‘구원의 서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1단계 ‘충족은혜(로마 가토릭 지식 습득), 2단계 사제의 ’세례(중생)‘인 ‘주입은혜·상존은혜(성체성사)’로 ‘칭의’함을 받는다. 제3단계 ‘협력은혜(선행공로)’는 ‘조력은총’이라고도 하며, 회심(고해 성사)·소명·영화를 ‘만족’이라고도 한다. 로마 가토릭파는 전 구속 적용의 단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핵심으로 ‘세례·성찬미사’에 의한 중생·칭의 교리를 꼽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연합’이라는 필수불가결한 구원의 역사를 받으려면, 오직 사제가 베푸는 충족은혜(세례)와 주입은혜(성체성사)를 받는 길 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들은 2006년에 “칭의는 인간(사제)의 공로를 포함한다.”고 신문과 기독교TV를 통하여 발표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로마 가토릭파의 구원 교리를 신학적 검증 없이 수용한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은 ‘성도의 구속’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허상이 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저들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성경」을 가감하여, 로마 카톨릭파의 교리인 ‘교황무오설’과 사제의 ‘세례·성찬교리’가 필수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로마 가토릭파 교리를 성도의 삶속에 적용한다면 성도들의 신앙생활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성화)’의 삶을 살기보다는 미사에 참석하고, 사제들에게 가서 죄를 고백하는 ‘고해성사’에 치중하고 우상을 숭배하여 ‘구원의 확신’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로마 가토릭파의 ‘구원의 서정’ 교리는 목회와 성도의 삶 속에 ‘성령의 사역’에 의한 구원을 적용할 수 없으며, 성찬교리와 ‘신인협동교리’로서 교조주의적 체제만 농후하다는 비판을 계속하여 받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들이 주장하는 ‘세례·성찬’에 의한 ‘공로주의교리’는 그리스도의 구속과 은혜의 복음과 십자가 수난이, 사제에 의하여 차단됨으로써 성령이 동인(動因)이 된 ‘성령의 주권적 사역’과 그로인한 성도와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도깨비신학’이다. 개혁파 입장에서 선을 행할 능력이 없는 인간에게 성령의 ‘중생’하게 하시는 역사를 필요로 한다. 2. 루터파의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성령의 사역’ 관계 루터파는 창세전의 구속사역은 말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은혜에 사람이 노력을 다하여 그 은혜를 잡는 것이 ‘소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교회의 세례를 통하여 ‘중생’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루터는 ‘노예의지’를 지닌 인간 편에서 본 ‘신앙’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구원이 그리스도의 은혜와 인간의 ‘협동작용의 산물’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루터파는 ‘구원의 서정(Ordo Salutis)'에서 창세전의 하나님의 작정사역과 그리스도와의 구속언약, 성령의 주권적 사역과 ’복음에로의 초청을 생략한다. 그리고 소명→조명→회심→중생‧신앙→칭의→신비적 연합→갱신→보존으로 구별한다. 구원의 순서에서 소명→조명→회심→중생‧신앙→칭의 까지는 사람의 노력과 교회의 세례, 사람의 의지에 의한 ‘믿음’과 선행에 의한 칭의가 주어지며, ‘칭의’ 이후에 ‘신인협동’으로 ‘그리스도와의 신비적인 연합(Mystical Union with Christ)’을 하고 ‘갱신’되어 ‘하나님의 형상(εἰκῲν τοῡ θεοῡ)’을 갖는다는 입장이다. 마지막으로 ‘보존’은 영생을 보증하는 단계인데, 성도의 신앙생활의 상태에 따라 성도가 소유한 구원을 잃을 수도 있고 보전할 수도 있다. 루터파의 구원론에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강조하는 장점이 있으나, 로마 가토릭파처럼 ‘세례·성찬’에 의한 ‘중생’을 주장하고, 사람의 의지에 의한 믿음과 선행으로 ‘칭의’를 이루게 한다고 하므로 성경적이지 못하다. 이들은 사람의 신앙이 ‘칭의’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룬다는 견해 때문에, ‘유효적 소명’부터 그리스도의 충족성·확실성을 상실한다. 그리고 인간의 ‘공로(功勞)’에 의한 ‘칭의’와 ‘신비적 연합’을 강조한다. 또한 루터파는 ‘회심’을 ‘신앙’과 분리시키고 이 둘을 별개의 과정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개혁파의 입장에서 ‘회심’과 ‘신앙’ 등 모든 ‘구원의 순서’는 연쇄적으로 일어나며, 논리적인 구원의 적용 순서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수양’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으며, ‘수양’을 목회와 성도의 삶 속에 적용하지 않는 큰 문제점이 있다. 이들은 ‘성도의 견인’을 기각하면서도 성도의 ‘선행’에 의한 구원의 확신은 인정한다. 그러나 ‘성도의 견인’이 없는 구원 교리는 논리적으로 그들이 주장하는 ‘보존’이 있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루터파의 구원 교리는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하여 인간의 ‘노예의지’와 ‘가항적 은혜’를 주장하므로 ‘구원의 확실성’이 없으며,「성경」에 계시되어 있는바 창세전의 구속사역에 대한 ‘성령의 주권적 사역’이 결여되었고, ‘수양’과 ‘견인’과 ‘영화’, 천국소망이 결여된 ‘신인협동’교리는 목회와 성도의 바른 삶 속에 구원을 적용할 수 없는 예비적 수준의 구원론이다. 3. 알미니안파의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성령의 사역’ 관계 알미니안의 의미는 하나님은 항상 사람을 구속하려 하시지만 사람이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구속 섭리에 항거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알미니안파가 주장하는 ‘구원의 서정’은 그리스도의 선행은총으로 모든 인간이 원죄가 없는 상태에서 소명→회개·신앙→칭의→중생→성화→견인으로 구별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구원은 ‘그리스도와의 충족적 은혜’로 시작하나 그리스도의 은혜와 인간의 협력 작용으로 성취되는 것이라고 하며, ‘그리스도와의 연합’ 관계는 ‘성령의 주권적 사역’이 아니라 인간의 전횡적 의지에 달린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알미니안파의 인간론 중심의 ‘신인협동교리’는 성도에게 ‘구원의 확실성’을 주지 못한다. ‘신앙’을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따로 독립시키고, 성도의 ‘구원’에서 가장 근본적인 요소로서 인본주의적 ‘신앙’을 구성하고 있으며, 성도의 의지로 ‘신앙’의 은혜를 잃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성도의 삶에 ‘성령의 단독사역’에 의한 ‘신앙’과 완전한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을 적용할 수 없다. 실제 예를 들어보면 교회 역사상 가장 열정적인 목회자중의 한사람이었던 18세기 영국의 감리교 웨슬레 목사는 일만 명 출석 초대형 교회를 영국의 각 도시 마다 세우고 ‘나의 교구는 세계다!’라는 슬로건을 외치며, 유럽과 미국과 한국에 까지 감리교회를 전파했지만 그가 소천한지 200년 만에 그가 세운 영국의 일만 명 교회는 하나도 없이 사라졌다. 그 뿐만 아니라 그가 영국의 노예제도를 성경적이 아니라며 반대했고 술과 도박을 금지하도록 노력했으며, 복음전도를 하다 고난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했지만 영국을 포함한 유럽 교회의 몰락과 함께 그가 세운 사회적 공로마저 빛을 바랬다. 양차 세계대전 후 그의 신인협동의 교리는 이제 다시는 성도의 삶에 올바른 ‘신앙’을 적용할 수 없게 되었다. 알미니안파의 자유의지와 ‘신인협동교리’에 영향을 받아 펠라기우스주의와 반(半)펠라기우스주의로 회귀한 자유주의 신학자 쉴라이에르마허와 그의 영향을 받은 신정통주의자 칼 바르트와 실존주의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이 있다. 이들은 모두 인간중심의 신학자로서,「성경」은 ‘신화’라는 공통된 입장을 가지고 있다. 쉴라이에르마허는 ‘「성경」과 교회의 필연성’을 뒤집어 교회에서 성경말씀이 나왔다고 주장함으로써 로마 가토릭 교회의 ‘교황무오설’을 지지하였다. 그는 ‘그리스도 안의’ 인격적 ‘좌소’가 아닌 몰아지경(엑스터시)의 ‘종교 감정상태’를 주장한다. 그리고 이들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인간의 전횡적의지에 달린 것이라고 주장하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과 인간의 ‘원죄’를 부인한다. 따라서 창세전에 예정하신 하나님의 객관적 구원 사역과 이천년 전에 십자가 수난을 받은 그리스도의 구속 은혜는 오늘날의 나의 실존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다. 자아충족적인 개념에 기초한 이들의 구원의 관심은 오직 인간예수와 도덕적 연합만 존재하는 것이다. 칸트, 키에르케고르, 하이데거, 헤겔, 파스칼, 부버 등은 인간의 ‘자아 충족적 원리’에 기초하여 신학적 인간론을 말한다. 한편 초교파연합단체인 한국대학생선교회(C.C.C)에서는 ‘성령의 주권적 사역’을 생략하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한다고 가르치고 나서, ‘성령수여의 두 단계’ 이론을 가르치고 우리가 믿음으로 성령 충만을 체험하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즉 “우리는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각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게 되며, 또 그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각자의 초청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과, “우리는 믿음으로 성령 충만을 받습니다. 그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약속하신 풍성하고 열매 맺는 신앙생활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고 가르치는 것이 그러하다. C.C.C에서는 ‘성령의 주권적 사역’에 의한 성경말씀을 믿는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적용받는다. ‘성령충만’한 생활의 비결을 발견 한다 등으로 수정해야 할 것이다. 요약정리하면 개혁파입장에서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구속사역에 협력할 수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알미니안파의 교리는 ‘성령의 세속적 내재론’이 근본적인 문제이다. 그 결과 ‘성령의 단독사역’으로 주어지는 ‘믿음’과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이 적용되는 완전한 구원은 인정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은총에 대한 인간의 노력과 믿음에 의한 ‘신인협동론’을 주장한다. 알미니안파의 영향을 받아 펠라기우스주의와 반(半)펠라기우스주의로 회귀해버린 ‘자유주의’자들에게는 ‘합리적·도덕적·감정적인 ‘그리스도와의 연합’만이 존재할 뿐이다. 우리는 이들의 인간론 중심의 신학에서 ‘성령의 주권적 사역’에 의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확신을 주는 칼빈주의 신학과 개혁파교회로 모여야 한다는 절대적인 목회 교훈을 얻는다. 4. 개혁파의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과 ‘성령의 사역’ 관계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scriptura scripturam interpretatur).’는 입장에 서있는 개혁파의 ‘구원의 서정’교리는 신론, 인죄론, 기독론, 성령론 등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구속 적용을 시작하는 특별한 행위 주체이고 그리스도는 ‘구원의 충족성’을 주는 구원의 중심이다. 성령은 구원의 주권적 사역을 담당하는 요소이다. 개혁파의 구원론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에 기초를 둔 ‘은혜의 교리’이므로 ‘구원의 확실성’이 있다. 창세전에 예정된 성도의 객관적인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그리스도의 구속은혜’와 ‘성령의 사역’으로 이루어진다. 이와 같은 사실은「성경」이 증언하며 또 가르친다(에베소서 1장 1-14절).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증언하며,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의 은혜는 모든 것에 선행한다고 가르친다. 존 칼빈은 그의 저서「첫 번째 교리문답주석」과「성경주석」과「기독교강요」에서 ‘성령의 단독사역’으로 ‘믿음’이 주어지며, 그 믿음으로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이 성도에게 주관적으로 적용된다. 성도의 주관적인 ‘구원의 서정’에서 ‘성도의 조력’은 전혀 필요하지 않으므로 ‘구원의 확실성’이 있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미국의 칼빈주의 신학자 A. A. 하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신비적’인 이유는 그리스도와 성도간의 긴밀(緊密)한 관계나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성도를 변화시키는 능력이나 결과적으로 성도들에게 새 생명의 부활처럼 모두 지상적(地上的)관계의 유추(類推)를 초월하는 ‘성령의 단독사역’에 의한 구원이기 때문이라고 진술한다. 이렇게 볼 때 바울과 어거스틴, 칼빈과 모든 칼빈주의 신학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사역이 적용된다는 견해를 지닌다. ‘구원의 서정’에서 시간적인 의미보다 동시다발적인 경험이며, 논리적 순서인 ‘소명’과 ‘중생’과 ‘회심’과 ‘믿음’과 ‘칭의’와 ‘수양’과 ‘성화’와 ‘성도의 견인’과 ‘영화’까지 구원의 각 단계마다 ‘성령의 단독사역’으로 주어지는 것이며,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이 적용되어 성도에게 ‘구원의 확신’을 준다. ‘그리스도 밖에서’(에베소서 2장 3절), 그리스도 없는 ‘믿음’이 어디 있겠는가? ‘구원의 서정’에서 개혁파교리를 요약정리하면 칼빈은 객관적인 ‘삼위일체 하나님’ 관점에서 구원을 이해했으며, ‘성령의 단독 사역’으로 주어지는 ‘믿음’과 그 믿음으로 인해 성도와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이 적용되어 완전한 연합이 성취되는 관계를 가르쳤다. ‘성령의 단독사역’은 ‘구원의 서정’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유효적 소명’을 주며, 논리적으로 구원의 전 순서를 포괄하여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의 적용을 가능하게 하여 구원을 준다. 첫째,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구속사역인 하나님의 ‘창세전(創世前)의 작정’을 강조하였다(에베소서 1장 3, 4절). 둘째,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구속사역을 통하여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들과 죄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였다(요한복음 3장 16절). 셋째, ‘성령의 단독사역’과 구속사역을 통하여 성도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었다. 넷째, ‘믿음’으로 구원 받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기도와 간구’로 천국소망을 갖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세상에서 성령의 ‘견인’을 받는 기도와 간구로서 이 세상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5. 결론 및 제언 바울과 어거스틴, 칼빈과 칼빈주의 신학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전의 구원사역이 적용된다고 주장한다. ‘복음에로의 초청’으로 시작되는 성도의 구원은 성령의 주권적 사역이다. 주관적인 ‘구원의 서정’에서 ‘소명’과 ‘중생’과 ‘회심’과 ‘믿음’과 ‘칭의’와 ‘수양’과 ‘성화’와 ‘성도의 견인’과 ‘영화’의 각 단계는 시간적인 의미가 아니라 구원의 동시다발적이고, ‘논리적인 경험의 순서’를 의미하며, 성도에게 ‘구원의 확신’을 준다. 로마 가토릭파와 루터파의 ‘성례·공로주의’와 알미니안파의 ‘신인협동’교리는 모두 사상의 ‘합리주의’로서 타락한 인간이 신인협력을 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들의 구원론은 모두 ‘그리스도 충족성’을 상실한 도덕적 구원의 공감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 신학과 신정통주의, 실존주의 신학은 개혁파의 교리와 정반대 입장이다. ‘삼위일체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을 부정하는 이들은 인간의 ‘자아 충족적 원리’에 의하여 하나님의 구원이 나오는 줄 믿는다. 이러한 인본주의 사상을 가진 자들을 모두 합하여 비유하면, 공전하는 태양이 멈추어도 시간은 여전히 흐른다는 진리를 모르고, 참 빛과 거울에 반사된 빛의 차이를 모르듯이, 창조주의 지혜와 의(Justification)와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주신 지혜와 의의 차이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이 땅 위에서 낙원(樂園)이 나오는 줄 믿는다. 저 강 건너 초자연적 질서가 있는 세계를 믿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개혁파의 ‘성령의 단독사역(Work of the Holy Spirit alone)'으로 주어지는 ‘믿음’과 그 믿음에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Mystical Union with Christ)이 적용되어 성도의 완전한 구원이 성취된다는 성경적인 구원 교리를 겸허하게 수용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성도에게 ‘그리스도의 충족성’으로 ‘구원의 확신’을 심어 주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도 타락한 인간이 성령과 협력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성령의 세속적 내재론’과 ‘신인협동교리’로 신앙의 ‘합리주의자’들이 되어 ‘성령의 사역’에 의한 ‘믿음’과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과 ‘성도의 견인’과 기도의 확신이 결여되었다. 그리스도는 모두가 다 하나가 되도록 오신 것이므로(요한복음 17장 21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확신을 주는 개혁파교회를 세계로 전파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와 신비적 연합’을 한 성도는 광야 같은 나그네 길에서, ‘성도의 견인’을 받아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께로부터 보호하심(기도응답)을 받으며, 교회는 예배와 설교와 기도를 통해 복음을 선포하며, 가난과 무지와 외침과 신분차별과 남북분단으로 한이 맺힌 이민족을 위해 성령의 바람으로 위로를 하고, 세계만방의 모든 문제들, 곧 에큐메니칼운동, 진화론(이사야 44장 2절), 신학과 철학과 교육과 모든 문화에서의 자충족성 원리, 인권문제, 석유문제, 환경문제, 재난 등을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실례를 들어 대한민국에 2006년 7월 24일(월) 전후로 발생한 장마폭우에 14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2조원 이상의 재산피해를 당했다. 이러한 재난과 위기의 때야말로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들은 “오늘도 살아계셔서 우리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통성기도를 할 때가 아니겠는가? ‘물에 빠진 사람은 헬프 미!(사람 살려!)한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다. 따라서 수많은 사람의 영혼과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께 헬프 미!(사람 살려!) 기도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과 몸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도록 ‘믿음’을 준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것이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난다. 우리는 성경적인 개혁파의 교리를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할 것이다. This dissertation is a study focusing on the soteriology of reformed theology in a comparative and critical view concerning the relationship of Roman Catholicism, Lutheran and Arminianism with the study of the 'Union with Christ' and the 'Work of the Holy Spirit'. The Roman Catholic Church bases its Faith on the doctrine of salvation. Roman Catholicism emphasizes their soteriology by focusing on sacramentism rather than the Holy Scripture.(The Holy Spirit is emphasized through sacramentism since the Holy Spirit is "the only efficient agent in the application of redemption"). The main role of the Holy Spirit in the process of our salvation is to make us one with Christ. Having examined the concepts behind the 'Union with Christ', the next step is to study what the Bible has to say concerning the actual union between Christ and his people during the course of history. This union underlies and makes the entire process of salvation possible. Throughout this process we are only saved in Christ and by the work of the Holy Spirit. The following steps outline the process of our salvation: Firstly, we are initially united with Christ in the 'calling' and 'regeneration'. Secondly, we appropriate and continue to live out of this Union through 'Faith' and 'conversion'. Thirdly, we are 'justified' in Union with Christ. Fourthly, we are 'sanctified' through Union with Christ. Fifthly, we persevere in the life of 'Faith' in Union with Christ. Sixthly, we are even said to die in Christ. Seventhly, we shall be raised with Christ. Eighthly, we shall be eternally 'glorified' with Christ. Ninthly, we shall ascend to heaven with Christ.

      • 개혁파 신학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리와 그 교회론적 맥락 : 칼뱅, 바빙크, 빌링스를 중심으로

        남기창 고신대학교 일반대학원 2023 국내석사

        RANK : 232319

        개혁파 신학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리와 그 교회론적 맥락 : 칼뱅, 바빙크, 빌링스를 중심으로 남기창 고신대학교 대학원 신학과 교의학 본 논문은 개혁파 신학의 관점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리를 고찰하고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리의 교회론적 의의를 밝히고자 한다. 특히 대표적인 개혁파 신학자인 장 칼뱅, 헤르만 바빙크, 토드 빌링스를 중심으로 개혁파 신학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리의 특징을 정리하고, 교회론적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리가 교회에 주는 유익들을 제시할 것이다. 제1장에서는 본 논문의 연구 목적과 더불어 연구 방법과 범위를 제시한다. 아울러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리에 대한 현대 신학자들의 연구동향들을 제시할 것이다. 제2장은 장 칼뱅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리를 고찰한다. 특히 구원론을 중심으로 그리스도께서 객관적으로 실현하시는 연합과 성령께서 주관적으로 실현하는 연합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칭의와 성화의 이중은총이 결합되는 것도 확인할 것이다. 또한 칼뱅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리가 가지는 교회론적 의의도 연구한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본질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칼뱅의 성찬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리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임을 제시할 것이다. 그리고 칼뱅이 강조하는 어머니로서의 교회의 역할에도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바탕이 됨을 확인할 것이다. 제3장은 헤르만 바빙크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리를 고찰한다. 바빙크의 신학에서 창조에서부터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바라보는 것이 인간 이해에 있어서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연구할 것이다. 바빙크는 참된 인간이 되기 위해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바빙크가 개혁파의 전통을 따라 언약의 기초 위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리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것이다. 더불어 바빙크의 유기체적 삼위일체론에서도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교회론적으로도 바빙크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리는 분명하고도 풍성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계시에 대한 바빙크의 이해를 따르면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없이는 하나님과 교회와의 교제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바빙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그리스도와의 교제의 뿌리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신자는 그리스도와의 교제로 인한 열매들을 실제로 누리게 된다. 바빙크는 교회 역사에서 나타난 그리스도를 본받음을 연구하고 참된 그리스도를 본받음은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한다. 제4장은 토드 빌링스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리를 연구한다. 빌링스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실제적으로 교회에 어떤 유익을 주는가에 큰 관심을 갖는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말미암은 양자됨이 어떻게 우리에게 올바른 정체성을 갖게 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인해 전적타락 교리가 우리에게 인간의 실존적인 절망을 깨닫게 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바라보도록 한다는 그의 주장도 살펴볼 것이다.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에 대한 대립적인 이원론적 개념이 어떻게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조화를 이루게 되는지도 고찰할 것이다. 그리고 교회론적으로 복음과 정의의 관계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리의 역할을 연구하고, 성육신적 사역 모델이 아닌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리에 따른 참여적 사역 모델을 제시할 것이다. 결론인 제5장은 앞서 논의한 개혁파 신학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리에 대한 연구들을 요약하고, 본 논문의 의의를 두 가지로 적용한다. 우선 칼뱅과 바빙크, 빌링스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리를 통합하는 작업을 통해 개혁파 신학에서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리의 주요특징들을 정리할 것이다. 그리고 개혁파 신학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리가 가지는 실제적이고도 풍성한 교회론적인 의의를 제시함으로써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리들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오늘날 교회에 주는 유익들을 회복하고 지켜가기를 기대하게 한다. 주제어: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회론, 장 칼뱅, 헤르만 바빙크, 토드 빌링스 The Doctrine of Union with Christ in Reformed Theology and Its Ecclesiastical Context: Focusing on John Calvin, Herman Bavinck, and Todd Billings Nam Gi Chang Kosin University Graduate School Department of Dogmatics This thesis examines the doctrine of union with Christ from the perspective of Reformed theology and identifies the ecclesiological implications of the doctrine. It will specifically summarize the characteristics of the doctrine of union with Christ in Reformed theology, focusing on representative Reformed theologians such as John Calvin, Herman Bavinck, and Todd Billings. Additionally, it will offer the ecclesiological benefits of the doctrine of union with Christ for the church. Chapter 1 presents the objectives of this thesis, along with the methodology and scope of the study. It will also explore the trends among contemporary theologians regarding the doctrine of union with Christ. Chapter 2 examines John Calvin’s doctrine of union with Christ, particularly in the context of soteriology, exploring the objective realization of union by Christ and the subjective realization of union by the Holy Spirit. The chapter will also delve into how the double grace of justification and sanctification is combined in union with Christ. Furthermore, it will study the ecclesiological implications of Calvin’s doctrine of union with Christ, revealing that the essence of the church as the body of Christ lies in its union with Christ. This chapter will demonstrate that an understanding of the doctrine of union with Christ is essential to comprehending Calvin’s sacramental theology, and it will highlight that union with Christ underlies Calvin’s emphasis on the church’s role as a mother. Chapter 3 examines the doctrine of union with Christ in Herman Bavinck. The study will investigate how Bavinck’s view of union with Christ from creation has implications for our understanding of humanity. Bavinck argues that being a true human being is synonymous with being a true Christian. The chapter will show that Bavinck follows the Reformed tradition in understanding the doctrine of union with Christ on a covenantal basis. It will also explore how union with Christ fits into Bavinck’s organic Trinitarianism. Ecclesiologically, Bavinck’s doctrine of union with Christ holds clear and rich implications. According to Bavinck’s understanding of revelation, fellowship with God and the church is impossible without union with Christ. Bavinck contends that union with Christ is the root of fellowship with Christ. The chapter will demonstrate that believers united to Christ actually enjoy the fruits of fellowship with Christ. Bavinck studies the imitation of Christ in church history and argues that true imitation of Christ is only possible in union with Christ. Chapter 4 examines Todd Billings’ doctrine of union with Christ. Billings is concerned with the practical benefits of union with Christ for the church. The chapter will explore how our adoption in union with Christ gives us a right identity. It will also examine his argument that, due to our union with Christ, the doctrine of total depravity compels us to recognize our existential hopelessness and turn to salvation in Christ. The chapter will also consider how the opposing dualistic concepts of God’s transcendence and immanence are harmonized in union with Christ. Ecclesiologically, the chapter will study the role of the doctrine of union with Christ i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gospel and justice and propose a model of participatory ministry based on the doctrine of union with Christ rather than an incarnational model of ministry. Chapter 5, the conclusion, will summarize the studies of the doctrine of union with Christ in Reformed theology discussed above and apply the discussion of this thesis in two ways. First, it will offer the main characteristics of the doctrine of union with Christ in Reformed theology through the work of integrating the doctrine of union with Christ in Calvin, Bavinck, and Billings. Second, it will present the practical and enriching ecclesiological implications of the doctrine of union with Christ in Reformed theology, reaffirming the importance of the doctrine of union with Christ and encouraging believers to recover and guard its benefits for the church today. Key words: Union with Christ, Ecclesiology, John Calvin, Herman Bavinck, Todd Billings

      • 포스트 코로나와 그리스도의 연합체 : 칼뱅의 교회론 중심으로

        이태호 장로회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 2023 국내석사

        RANK : 232317

        본 논문의 목적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교회의 대면 모임 과 공동체를 회복하는데 있다. 여기서 필자는 교회의 대면 모임은 필수적인 것이고, 비대면 모임은 임시적·예외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필자는 이를 칼뱅의 『기독교 강요』를 중심으로 논하고자 하며, 추가적 으로 칼뱅의 저서들과 칼뱅 신학자들의 논의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칼뱅은 『기독교 강요』(1541)판의 사도신경 해설 부분의 성도의 교제 (sanctorum communion)를 설명할 때, 『기독교 강요』(1536)판의 같은 부분 을 설명할 때 없던 “연합”(unio)이라는 새로운 표현의 단어를 등장 시킨다. 그가 볼 때 교회는 “그리스도의 연합체”(societas Christi)이기 때문이다. 그 가 말하는 교회는 가시적 측면과 비가시적 측면으로 구분은 되지만 연합체 본질은 분리되지 않는다. 그리고 참 교회의 표지는 말씀과 성례의 시행이다. 또한 성도의 교제는 성도와 그리스도의 수직적인 교제와 성도와 성도 간의 수평적인 교제이다. 더불어 그는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성도들은 자신의 은사에 따라 각자의 직분을 수행하며,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유기적으로 결속한다. 성례는 영생의 약속이며, 적응 신학적 관점에서 은혜의 가시적 형태이다. 그리고 세례는 신앙의 공적 선포이며, 그를 통해 성도는 거룩함으로 나아간 다. 또한 성찬을 통해 주님은 성도를 양육하신다. 성찬에서 성도들은 그리스 도의 내어줌으로 자극 받아 자신을 공동선을 위해 내어줌으로 모두가 유기적 으로 하나가 된다. 또한 중보자 그리스도는 성도들의 기도를 자신의 기도와 연합하게 하신다. 성도들은 공적 기도를 통하여 서로를 사랑으로 돌아보며 기도한다. 또한 성도들은 공동체 안에서 성화를 이루어 나가며, 자기 부정을 통해 자신의 자원들을 유기적으로 결속하여 교회를 위해 헌신한다. 교회의 모든 직제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을 일으키는 외적인 은총의 수단이며, 직제를 통해 성도는 유기적으로 연합하고 하나 됨으로 나아간다. 성도들은 교회에서 유기적·물리적 교제를 통하여, 서로의 선물을 나누고, 함께 성찬에 참여하며, 성화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본 논문의 목적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교회의 대면 모임 과 공동체를 회복하는데 있다. 여기서 필자는 교회의 대면 모임은 필수적인 것이고, 비대면 모임은 임시적·예외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필자는 이를 칼뱅의 『기독교 강요』를 중심으로 논하고자 하며, 추가적 으로 칼뱅의 저서들과 칼뱅 신학자들의 논의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칼뱅은 『기독교 강요』(1541)판의 사도신경 해설 부분의 성도의 교제 (sanctorum communion)를 설명할 때, 『기독교 강요』(1536)판의 같은 부분 을 설명할 때 없던 “연합”(unio)이라는 새로운 표현의 단어를 등장 시킨다. 그가 볼 때 교회는 “그리스도의 연합체”(societas Christi)이기 때문이다. 그 가 말하는 교회는 가시적 측면과 비가시적 측면으로 구분은 되지만 연합체 본질은 분리되지 않는다. 그리고 참 교회의 표지는 말씀과 성례의 시행이다. 또한 성도의 교제는 성도와 그리스도의 수직적인 교제와 성도와 성도 간의 수평적인 교제이다. 더불어 그는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성도들은 자신의 은사에 따라 각자의 직분을 수행하며,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유기적으로 결속한다. 성례는 영생의 약속이며, 적응 신학적 관점에서 은혜의 가시적 형태이다. 그리고 세례는 신앙의 공적 선포이며, 그를 통해 성도는 거룩함으로 나아간 다. 또한 성찬을 통해 주님은 성도를 양육하신다. 성찬에서 성도들은 그리스 도의 내어줌으로 자극 받아 자신을 공동선을 위해 내어줌으로 모두가 유기적 으로 하나가 된다. 또한 중보자 그리스도는 성도들의 기도를 자신의 기도와 연합하게 하신다. 성도들은 공적 기도를 통하여 서로를 사랑으로 돌아보며 기도한다. 또한 성도들은 공동체 안에서 성화를 이루어 나가며, 자기 부정을 통해 자신의 자원들을 유기적으로 결속하여 교회를 위해 헌신한다. 교회의 모든 직제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을 일으키는 외적인 은총의 수단이며, 직제를 통해 성도는 유기적으로 연합하고 하나 됨으로 나아간다. 성도들은 교회에서 유기적·물리적 교제를 통하여, 서로의 선물을 나누고, 함께 성찬에 참여하며, 성화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 칼빈의 영성 :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중심으로

        정주성 總神大學校 一般大學院 2004 국내석사

        RANK : 232317

        과연 칼빈에게는 영성이라는 말이 어울리는가? 아니 칼빈에게는 영성이 있는가? 칼빈과 칼빈이 대표하는 개혁주의 교회는 영성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영성은 신학과 관련이 없고, 더구나 교리와는 별개의 것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칼빈에 대해서 단면적으로 생각할 때에, 칼빈을 딱딱한 조직신학자요 냉랭한 행정가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칼빈은 성령의 신학자요 영성이 풍부한 목회자였다. 그는 개인 기도와 성경읽기를 생활화하였고, 개인 기도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용서와 인도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칼빈의 영성은 경건으로 표현된다. 하나님에 대한 경험에 상응하여 우리의 삶을 형성하는 양식을 ‘영성’이라고 할 때, 칼빈의 영성은 경건으로 표현된다. 칼빈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하나님을 경외함, 그리고 하나님께 복종을 경건에 포함시켰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자식으로서의 영성을 말하였다. 즉 하나님 아버지를 두려워하나 품삯을 주고받는 고용관계에 있는 일꾼이 아니라, 아들로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의 태도를 강조한 것이다. 칼빈의 경건에는 예배와 기도, 지식과 훈련이 포함된다. 따라서 칼빈의 경건은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이웃들을 향한 사랑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칼빈의 경건은 역사적으로 “근대적 경건”과 16세기 프랑스 인문주의의 배경을 가진다. “근대적 경건”을 통해서 경건에 있어서 개인주의가 강조되었고, 그것은 16세기 프랑스 인문주의를 거쳐서 칼빈에게도 이르렀다. 또 “근대적 경건”은 하나님과 개인의 관계를 중시하였고, 스콜라주의의 사변적인 신학에 대한 반동으로 지식보다는 경험을 강조하였다. 그러다보니 경건과 지식은 조화를 이루지 못하였고, 지식은 등한시되었다. “근대적 경건”의 영향을 받은 16세기 프랑스 인문주의자들은 “근대적 경건”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개인의 관계를 중시하였으나, 경건과 지식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였다. 특히 페트라취와 장 제르송, 에라스무스의 역할이 중대한데,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경건과 지식을 같이 추구하였던 것이다. 칼빈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은 에라스무스이다. 에라스무스는 그의 [훈련교본]에서 ‘그리스도에게 받아들여질 만한 성품을 갖도록 도움을 주는 삶의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에라스무스의 영성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 중심적이었다. 그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규정했고, 외형적인 기구로서의 교회 개념을 경시하였다. 그러나 그는 교회의 권위를 충분히 인정하였으며, 신앙을 전통과 교회의 권위 위에 세웠다. 이것은 칼빈과 다른 점이다. 칼빈은 교회는 영적 어머니로서의 중요성을 가지긴 해도, 개인의 영적인 생활에 가시적 교회의 권위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칼빈의 경건의 근거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칼빈의 구원론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구원이란 곧 그리스도와 연합된 것이다. 구원이란 개별적으로 예수를 믿어 사후에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라기보다는 지금 여기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이해할 수 없는 연합이다. 인간의 이성으로서는 그 초자연적 연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칼빈은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을 설명하기 위해서 결혼의 비유, 머리와 지체들로서의 비유, 교회 구성원간의 연합의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영적인 연합이다. 그리스도가 육적으로 내려오셔서 연합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한 연합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로부터 어떤 육체적인 요소도 받지 않는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언약적 연합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표자로서 언약적 머리이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아담과 상응하신다. 아담이 온 인류의 대표자였던 것처럼 예수님도 새로운 인류의 대표자가 되시는 것이다. 그러면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어떻게 해서 시작되는가? 그것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서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성령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다. 성령은 그리스도와 성도를 연결해 주는 띠요 결합력인 것이다. 그리스도는 육체로는 우리와 멀리 떨어져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계시는 그리스도가 어떻게 우리와 연합할 수 있을까? 성령께서 그리스도와 우리를 연합하게 하시는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는 것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신비에 속한 일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신비한 연합인 것이다. 성령께서 비밀리에 우리 영혼에 물을 뿌려서 정결케 하심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그리스도와 연합에 들어갈 수 있는가?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이다. 물론 믿음도 성령께서 일으키신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 안에 믿음을 일으키시는 일이다. 따라서 믿음 또한 성령의 역사이지만, 우리 편에서 볼 때 우리의 반응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 믿음은 무엇에 대한 믿음인가? 그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믿음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믿음이란 맹목적인 믿음이요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믿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들어간다. 그런데 여기서 말씀이란 말씀 속에 약속된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를 인격적으로 신뢰함으로써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리스도에게 나아가지 않으면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들어가는 것은 무엇보다 성령의 역사로 시작되며, 성령께서 우리 안에 일으키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즉 말씀 속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신뢰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들어간 결과는 칭의와 성화이다. 칭의와 성화는 시간적인 단계를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와 연합한 결과로써 동시에 주어지는 이중 은혜인 것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떠나서 칭의는 있을 수 없다. 칭의는 법정적인 선언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실제적인 사건으로서 주어지는 선물인 것이다. 따라서 칭의는 단순한 법정적 선언에 머물 수 없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였으므로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 받게 된 것이다. 즉 칭의로 인하여 성도는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되었으므로, 그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의가 드러나는 삶을 살게 되었고, 필연적으로 그렇게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화를 이루어가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하여 주어진 칭의와 성화는 동시적인 것이다. 칭의를 얻은 다음에 얼마간 시간이 지난 다음에 거룩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의롭다 하심 받은 그 순간부터 거룩한 삶이 요청받는 것이다. 성화는 성도 개인의 거룩하게 살려는 노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화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결과로써 주어지는 것이므로,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 형상을 닮아가고자 할 때에 성령께서 성도 안에서 이루시는 역사인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거룩하게 살려고 하면 율법주의에 얽매이게 되고 마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의해서만 성경적 의미의 성화를 이루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는 삶 속에서 풍성한 영성을 나타내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는 무엇보다 기도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신앙이 있다면 기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진실한 성도라면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기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것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는 이제는 자기의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자기를 부인해야 하는 이유는 아담의 원죄로 인하여 본성이 죄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내면적인 태도에서 시작되는데, 자기 부인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환경에 대한 것이고 환경으로 인한 고난을 말한다.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를 자기 것으로 여기고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자기부인과 십자가를 지는 것은 내세를 명상함으로써 가능해진다. 비록 땅에서 살고 있지만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도는 영광스러운 천국의 생활을 명상함으로 세상을 무시할 수 있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는 진정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말할 때 먼저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그리스도인은 율법을 모두 지켜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나서 자유를 얻었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성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공로를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율법에로의 자유를 누리게 된다.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뜻을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은 것이다. 세 번째로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자유는 무해 무익한 것들에 대한 자유이다. 하나님은 피조물을 필요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위해서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용도에 맞추어서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는 이웃의 유익을 위해 사랑으로 제한해야 한다. 나 자신의 자유가 이웃을 해치게 된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는 사랑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리고 이웃을 위한 사랑도 하나님의 공의를 넘어서지 못한다. 결국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 칼빈의 생활영성의 핵심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칼빈의 영성은 사도적 영성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영성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신앙생활에 더욱 활력이 넘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추구하는 영성이 그리스도를 떠나서 개인의 어떤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영성과 지식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감정적으로 고양된 상태를 지향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영성’이 말씀과 그리스도를 떠나서 독창적인 형태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 비추어 볼 때에 칼빈의 영성은 개혁교회에 좋은 대안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의인의 삶의 원천인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관한 연구 : 로마서 6장을 중심으로

        박창근 서울기독대학교 대학원 2013 국내석사

        RANK : 232316

        본 논문은 로마서 6장을 중심으로 의인의 삶의 원천인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하여 살피려는 것이 목적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한 의인의 실존이 무엇이며 그리스도와 연합된 의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살피려 한다. 로마서 6장에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사상의 논점인 ‘세례’를 발견하고 세례가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연합의 상징임을 확인하였다. 세례는 그리스도가 성도들을 위해 대속적 죽음을 죽었고, 성도가 그와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데, 성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었음을 뜻하며, 세례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부활한다는 신앙고백을 공적으로 극화하여 나타낸 하나의 의식임을 확인하였다 또한 바울은 롬 3:21-5장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말하는 중에 6장에 들어오면서 세례를 말하고 있으므로 이 둘의 관계를 확인하였는데,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전제된 세례와 믿음의 관계는 의인화를 위하여 구원에 관련되는 상호간에 불가분의 관계로서 믿음을 생각지 않고서는 세례를 말할 수 없고 믿음의 전제가 없는 세례는 그 의식 자체로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연합한 의인은 옛 통치인 죄로부터 해방된 존재이며, 새 통치인 하나님께 순종을 위해 해방된 존재임을 확인하였다. 그러므로 의인의 삶은 그리스도와 연합이 전제된 삶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악이 통치하는 옛 세대를 종식시키고 새 세대의 통치가 도래하는 종말론적 사건이므로 그 구조가 종말론적인 구조임을 확인하였다. 그리스도와 연합함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롬 6:3). 그리스도와 연합된 의인의 새로운 실존은 죄의 종이었던 옛 실존인 자연인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실존이다. 이 새 존재는 죄와 죽음의 권세 아래에 있는 세상에 속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 속하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존재이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여 ‘이미’와 ‘아직’속에 있는 현실의 자리에서 의의 무기가 되어 죄와 투쟁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이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음을 깨달아 참된 예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죄에 대하여 죽은 자이므로 더 이상 죄에 대하여 반응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즉각적으로 순종하여 세상과 구별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또한 성도들 사이에서도 반드시 연합이 이루어져야 하므로 우리의 무너진 공동체성을 회복하여 분열을 멈추고 교회와 교계가 하나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 바울의 세례 이해와 성령의 역할 : 로마서 6:3-5를 중심으로

        김은정 호서대학교 대학원 2023 국내박사

        RANK : 232316

        본 논문에서 저자는 로마서 6장 3-5를 중심으로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와 연합의 세례에 대해서 논의한다. 바울은 로마서 6장 3-5에서 세례를 그리스도의 죽음과 먼저 연결하고 그다음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된 상태에서 살아나는 것으로 이해한다. 성도가 믿음으로 받는 세례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성도가 동참하는 연합의 세례다. 세례를 받으므로 성도는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새 생명을 얻는다. 따라서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는 더이상 죄에 종노릇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아직 죄의 세력이 있는 현세에 살므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된 세례를 받아 죄와 죽음에서 자유롭게 된 성도들이라고 해도 죄의 영향력 아래 노출되는 삶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죄로부터의 해방에는 믿음의 자기결정이 따라야 하며 이를 이루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믿음에 의한 세례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아담의 영역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그리스도 예수의 영역으로 옮겨지게 한 것이다. 과거에는 아담을 따라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가 새 아담 예수 안으로 들어오는 확증으로 바울은 세례를 제시한다. 기독교의 세례의 배경에는 유대교의 세례가 있고 요한의 세례에서 기독교 세례의 기원을 찾는다. 이 세례를 받는 믿음의 행위를 통한 성도는 연합이 의미하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부활의 소망을 그가 얻은 새 생명의 삶에서 나타내야 한다. 성령께서 세례받은 믿는 자들의 삶 속에 함께 하셔서 말씀이 요구하는바 거룩함을 이루신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와 연합의 세례와 성령의 역할을 살 펴 보는 것은 성도들에게 믿음으로 받은 세례가 하나의 의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재 세례로 부여받은 새 생명의 삶을 사는 의무와 책임이 따름을 알게 하며, 세례받은 성도의 정체성을 확고히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받은 성도가 더는 죄의 지배 가운데 살지 않고 성령의 영역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자로서 합당하게 살아가게 하고, 그리스도와 연합된 새 생명의 삶에 대해 확고한 믿음과 자세를 고취시켜 줄 것으로 기대한다. In this paper, author discusses the baptism of christ and the Union Paul talks about, focusing on Romans 6:3-5. In Romans 6:3-5, Paul understands that baptism is first linked to Christ’s death and then comes to life in union with Christ’s resurrection. The baptism of the saints by faith is the baptism of the union in which the saints join in the death and resurrection of Christ. By baptizing the saints die against sin and gain a new loving life against God. Therfore, the saints who were baptized and united with Christ no longer have to serve as servants of sin. However, since they live in a world where there is still power of sin, even saints who are freed from sin death by baptism associated with Christ’s death live under the influence of sin. Therefore, the self-determination of faith must follow the self-determination of faith in the loveration of these who believe in a new life through union, and it is the Holy Spirit who achieves this. Baptism by faith was transferred from the realm of Adam, who was forced to die of sin, to the realm of Christ Jesus, who gained eternal life. Paul presents baptism as a confirmation that mankind, who had no choice but to die after Adam in the past, enters the new Adam Jesus. The background of Christian baptism is jewish baptism and the origin of Christian baptism is found in John’s baptism. The baptized saint must express the suffering, death, and hope of resurrection of Christ, which the union means, in the life of his mew life. This is possible because the Holy Spirit is with the lives of baptized believers to achieve the holiness required by the Word.

      • 들음의 신학적 의미 : 칼빈을 중심으로

        김규보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09 국내석사

        RANK : 232303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세상이 처음으로 관계하는 수단은 말씀이었다. 따라서 세상이 하나님을 인식하는 방법은 계시하시는 말씀을 “들음”이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타락 이후의 인류의 역사는 지속적인 듣기 실패의 역사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의 실패는 성경에 기록된 역사를 넘어 초대교회, 중세, 근현대,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 교회의 듣기 실패 원인은 들음의 방법을 형상숭배, 화채설과 같은 보기, 느끼기 등의 다양한 감각적 방법으로의 변화를 시도한 것에 기인한다. 모든 듣기 실패의 근본적 원인은 결국 신 중심적 신학에 대한 인간 죄성의 반발이다. 이러한 오만불손한 인간 마음의 부패를 막는 교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아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되는 계시에 겸허히 의존함이다. 이런 맥락에서 종교개혁은 중세 교회의 들음의 시각화 촉각화에 대한 반발로, 진정한 의미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을 회복하고자 한 시도였다. 성경적 들음의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수납함이고, 이는 구원을 얻는 길이며, 하나님 백성이 되는 기준이자 하나님의 백성으로 끝까지 남아있는 방편이고,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수단이다. 성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들음은 그 대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한한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말씀을 통해 자기 자신을 계시하셨고, 말씀이 육신 되신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다. 모든 세계가 말씀으로 지어졌으니, 말씀은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의 매개요, 또한 중보자 되신 그리스도가 말씀의 성육신이니 말씀은 구속주 하나님과 죄인된 인간의 매개이다. 하나님의 온전한 계시로서 말씀과 그리스도는 오늘날 성경의 충족한 계시로 우리에게 주어진다. 즉, 인간은 창조세계와 하나님 사이의 매개로서의 말씀과 죄인과 구속자의 중보로서 그리스도, 충족한 계시로서의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들음”은 내적요소와 외적요소로 구성되는데, 내적요소는 믿음과 성령이며, 외적요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 칭의와 성화의 의의 전가이다. 각 요소는 상호 영향을 주며, 특히 내적요소는 들음의 근원으로서, 외적요소를 이끈다. 한편, 외적요소는 내적요소를 더 강화하여 점차 들음의 영향과 효과를 확대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이란, 성령의 조명을 받아 믿음으로 그 말씀을 수납하여, 말씀의 가르침을 배움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고, 그리스도를 인한 죄사함의 축복과 회개함으로 의롭다 칭함 받으며, 새로운 피조물로서 다 이루신 그리스도의 순종과 성화의 의를 순종함으로 전가 받아 끝까지 하나님의 백성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들음의 내적요소와 외적요소의 역동은 그리스도의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서의 삼중 직분과 동일하며, 이는 “들음의 신학”이 그리스도와 연합과 연결됨을 내포한다. 과거의 전통적인 구원서정의 구원사 속에서 “들음”은 그것의 매우 포괄적인 개념 때문에 어떤 한 단계나 부분으로 국한되어 위치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연합 중심적인 구원사 속에서 들음의 개념은 매우 중요한 한 국면울 넘어 중심축이 되기까지 한다. 들음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발판과 그 자체, 그것의 결과를 총체적으로 포괄하는 개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의 기초를 마련하고, 그리스도와 연합되며, 또 그 연합의 총제적인 결과를 이루어 간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내적)”으로 “들음(외적)”을 이루는 것이 신자들의 삶과 신앙의 중심적인 원리이다.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God has revealed Himself with the Word. Thus, from the beginning the manner of the relationship between God and the created world is the Word. Therefore the way for the world to recognize God is “listening” to the Word of God. However, after the depravity of Adam the history of mankind in the Bible is the history of persistent failure of listening to the Word of God. This failure has continually kept going from the beginning to now. It causes the failure the fact that churches tried to change the way to find the will of God from listening to the Word of God to the other sensory ways, like seeing or feeling, with idolatry and transubstantiation. Ultimately the essential cause of the failure is the rebellion of man’s sin against the God-centered theology. To recover from the depravity of the haughty mind, we need a doctrine, the Word of God. We could get the knowledge of God when we humbly rely on the revelation declared by the Word of God. In this context, the Reformation is the trial to recover the true meaning of the “listening” to the Word of God as a counteraction against the visualization or sensualization of “listening” in the Medieval Church. The meaning of the biblical listening is to accept the Word of God with believing in Jesus Christ, and it is the way to receive the salvation, the standard to be a person of God, the manner to remain as the people of God and the method to unite with Jesus Christ. The object of the biblical listening is restricted within the Word of God by the Bible. The Word of God includes the Word which is the intermediation between the Creator God and the created world and the Jesus Christ, the incarnate word who is the intermediator between the Savior God and a sinner man. These are revealed fully enough by the Bible. The “listening” is composed by internal elements and external elements. The internal elements include the Holy Spirit and the belief. And, the external elements are the knowledge of God, the righteousness of justification and the righteousness of sanctification. Every element is influenced by each others. Especially the internal elements, as the intrinsic factors of listening, lead dynamics of the external elements. In turn, the external elements broaden the effect and efficiency of the internal elements by reinforcing it. These dynamics are the same as the threefold duty of Jesus Christ, the priest, the king and the prophet. It means that “the theology of listening” is closely related with the unity with Jesus Christ. In short, the theology of listening is a comprehensive concept that includes a foothold, itself and the results of the unity with Jesus Christ in today’s theology of the salvation which emphasizes the unity with Jesus Christ as a core of salvation, beyond the order of salvation. In conclusion, by listening to the Word of God we could prepare the foundation of the unity with Christ, unite with Jesus, and accomplish the comprehensive results of the unity. In fact, the centered principle of Christian life and belief is to achieve the “listening (external)” with the “listening (internal)”to the Word of God.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