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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와 모스크바장로회신학대학교의 교회개척

        한재희 호남신학대학교 대학원 2001 국내석사

        RANK : 249679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이 요약 할 수 있다. (1) 서론부분에서는 다음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오늘날까지 수행해 온 선교에서 교회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선교를 하고 있는가에 대한 대안으로 교회의 진정한 선교를 위해서 선교의 근원을 하나님 자신이라는 점과 선교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점에서 시작했다. 연구방법으로는 삼위일체의 하나님 안에 있는 교회와 하나님의 선교를 찾으려했다. 연구절차로는 러시아교회 특히 모스크바장로교 신학대학교에 의해서 개척된 교회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선교 안에서 러시아 교회개척을 살펴보았다. (2) 교회론의 변화에서 교회의 정의를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찾고자했다.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성령의 전으로서의 교회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물론 이것은 사도 바울이 본 교회이다. 여기서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는 점과 교회는 제도가 아니라 에클레시아인 하나님의 백성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성령의 전안에서 교회의 속성을 갖는다. 교회의 속성은 하나된 교회로서 하나됨과 거룩한 교회로서 거룩성과 보편적인 교회로서 보편성과 그리고 사도적인 교회의 사도성이다. 하나님의 선교는 사도성 안에서 계속되는 보냄을 갖는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부르심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되며 성령의 전이된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로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선교적인 사명을 수행하는 가운데 교회의 존재의 근거를 갖는다. 과거의 선교에 있어서 교회를 위한 선교나 선교열정으로 인위적인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와 다른 제도적 교회가 행한 선교의 한 모습이었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인 에클레시아 역시 하나님의 선교로 부름을 받고 있으며 에클레시아인 교회는 그 부름에 응답해야 한다. 하나님의 선교에 응답하는 교회만이 참된 교회로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교회만이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종말론적 공동체가 된다.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 관계에서는 교회는 곧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부활의 빛 속에서 '이미' 온 하나님의 나라를 선취한 교회가 세상 속에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야 한다. 세상은 하나님이 사랑한 세상으로 교회는 세상 가운데서 그 역사성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어 가야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교회와 세상과 선교, 교회와 이성과 하나님의 나라, 교회와 역사와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교회와 정치와 하나님의 나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3) 러시아 개신교회에서는 먼저 러시아 정교회를 먼저 밝혔다. 왜냐면 러시아는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 속에서 이루어진 백성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인들에게 러시아 정교회는 종교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으므로 러시아 개신교회 역시 그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교회와 러시아에 대해서는 러시아와 정교회, 러시아국가교회, 그리고 동방 정교회의 중심된 선교신학를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러시아 개신교회에 대해서는 먼저 러시아 개신교의 전래와 전파지역 그리고 선교의 대상, 오늘의 개신교의 성장을 이루어낸 지하교회의 고난과 소망 속에서 승리한 러시아 개신교회로 보았다. 이는 초대교회가 로마의 핍박을 딛고 일어난 것처럼 러시아 개신교회가 갖고있는 신앙의 전승 속에서 오늘날까지 러시아교회가 남은 자로서 성장하는데 큰 바탕을 이루었다. (4) 본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하나님의 선교에서 본 러시아 교회개척인데 먼저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개념을 정리했다. 즉,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도구이며, 선교의 근원은 하나님 자신에게 있고 그 선교의 내용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삶을 통한 교회의 참여이다. 교회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하나님의 선교공동체이며 성령은 교회가 하나님의 선교를 이루도록 인도하고 이루시는 분이다. 따라서 인위적이거나 제도적 교회에 의한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에서 배제된다. 이 같은 하나님의 선교의 관점에서 모스크바 장로교신학대학교에 의한 교회개척을 살펴보았다. 특히 교회개척의 의미를 하나님의 선교와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복음과의 관계에 비추어 찾고자 했다. 여기서 교회개척은 단순한 양적 증가의 의미보다는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복음의 활성화와 러시아 교회의 요청에 의한 상황화이며 한국교회의 지속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모스크바 장로교신학대학교의 교회개척은 '러시아인에 의한 러시아선교'의 과정이며 신학교육의 장으로 신학과 교회의 유기적 상호관계 속에서 열매를 맺어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모스크바 장로회신학대학교에 의한 교회개척은 러시아 개신교회의 활성화에 참여하는 역동적 기능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 교회개척의 방법과 성장에 있어서 러시아 교회의 성장은 양적인 교회성장보다는 러시아교회에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응답하는 유기적인 신앙공동체가 될 때 하나님의 선교 안에서 바른 교회의 바른 성장이라는 것이다. 러시아교회의 특징으로는 신학적 특징으로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 속에서 성례전의 중시와 사랑의 신학 그리고 도덕성과 부활의 신학을 들 수 있다. 예배학적 특징으로 러시아 교회가 지니고 있는 신앙전승 속에는 말씀의 선포뿐만 아니라 찬양과 시 낭송 등 신앙고백적인 적극적인 참여를 들 수 있다. 목회학적 특징은 공동체정신을 바탕으로 친교공동체로서의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러시아 교회의 선교 신학은 과거 핍박의 시기를 지나는 동안 교회들은 기본적으로 에큐메니칼 정신을 공유하고 있다. 개척교회의 분류는 러시아교회의 신앙전승을 토대로 하는 교회들과 모스크바 장로교 신학대학교에 의해서 개척된 교회들로 나눌 수 있다. 개척된 러시아교회들은 비록 한국교회의 협력 속에서 개척되고 있을지라도 러시아 교회가 지니고 있는 신앙의 전승 속에서 러시아적인 장로교회로 태어나야 한다. 러시아 교회는 러시아에서 역사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러시아 교회는 러시아에서 요구되는 개인의 영혼구원과 함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선취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예배 공동체인 교회는 세상과의 관계에서는 선교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 본질이 선교적이며 선교적이어야 한다. 선교적인 교회만이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교회가 된다. 하나님의 선교는 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오늘 러시아교회에서도 요구된다. 러시아 교회개척과 러시아 교회의 성장은 교회의 제도나 교회에 대한 단순한 개종을 넘는다. 이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선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개종하는 교회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이 세상에서 실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함으로서 새로운 변화를 찾을 수있다. 그 동안 양적 성장을 거듭한 한국교회에게 교회 갱신의 필요성과 교회갱신 기회를 갖게 한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질적인 성장을 위한 선교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참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자기를 돌아보고 반성하며 쇄신하는 겸손한 자기 비움을 경험하게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러시아교회와 파트너쉽(partnership)의 선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되고 성령의 전이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된 세계교회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러시아교회의 개척은 하나님의 선교 안에서 개교회 차원의 단순한 한국교회의 이식과 확장이 아니라 러시아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지체로서 의미를 가진다. 러시아교회는 러시아의 정교회의 영향 속에서 그 동안 성장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러시아교회는 러시아 정교회에도 충격을 줄 수 있도록 개인구원과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특히 상대적으로 우월한 도덕성을 계속 전승해야하고 다양한 계층에서 요구되는 삶의 질문에 대해서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응답 해야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삶으로 모두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 가야한다. 이를 위해서 러시아 교회는 특히 정교회의 선교신학 가운데 하나인 사랑의 신학으로 모두를 포용하는 선교를 해야한다. 오늘날 선교의 내용과 활동도 변하고 있다. 이것은 세상과의 관계 속에 있는 교회도 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근본적이고 선교의 큰 틀인 하나님의 선교 안에서 러시아교회가 열린 마음으로 러시아라는 세상과 친교를 이루어 갈 때 러시아 교회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강한 믿음과 소명의식 그리고 리더쉽(leadership)과 책임감을 가진 목회자들과 선교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한국교회는 러시아교회를 통해서 나눔과 친교공동체로서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고 있음을 기억해야한다. 하나된 교회를 위해서 한국교회는 값비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수 있어야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삶을 나누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보여주어야 한다. 다양하고 활발한 선교활동가 곧 값비싼 은혜는 아니다. 교회와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교회는 값싼 은혜 속에 있다. 오늘 한국교회에게 필요한 것은 한국교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값비싼 은혜를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가운데서 구해야한다. 한국교회는 값비싼 은혜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남기고 자기비움으로 경계를 넘어가는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해야 한다. 우리를 변화시키고 화해시키는 하나님의 선교는 한국교회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편애하시는 가난한 사람들과 약한 자들과 억압받는 자들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나누고 치유하는 교회가 되도록 할 것이다.

      • 생태신학(Ecotheology)에 대한 과정신학적 접근 : 캅(John. B. Cobb, Jr)을 중심으로

        성종국 호남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1998 국내석사

        RANK : 249663

        나는 지금까지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유기체 철학을 이야기하는 과정철학과 이를 바탕으로 미국에서 꽃을 피우고 있는 과정신학을 스케치하고 과정신학, 특히 캅이 이야기하는 공공선(common good)을 중심으로 과정신학에서의 생태신학의 메타포인 공동체주의, 더 나아가서 글로벌주의를 살펴보았다. 우리는 생명의 위협 가운데 살고 있다. 이것은 생태계의 파괴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것은 관계가 변질된 것이며 더 나아가 관계가 깨어진 것이다. 이러한 생태계의 파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메타포를 가지고 연구하고 논의했었다. 해방신학, 생태신학, 여성신학 등이 이런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과정신학은 생태계의 파괴, 즉 인간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좋은 관점과 시각, 그리고 개념을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 과정신학은 과정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과정철학이란 유기체철학이라고 간략히 말할 수 있는데 유기체철학은 화이트헤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철학으로서 지금까지 철학 세계를 이끌어 왔던 이원론, 기계론적 사고를 깨뜨리고 새로운 철학 체계를 형성했다. 이것은 인간뿐 아니라 자연까지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즉 유기체철학에 있어서 관계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유기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관계 형성이고 그 관계를 발전시키면서 서로 변화해 나가는 것이 유기체철학의 핵심이다. 이러한 과정철학은 과정신학을 발생케 하였고, 하르트숀, 옥덴, ? 캅 등 과정신학자들을 통해서 과정신학으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과정신학에서는 지금까지의 신개념인 초월적이며, 가부장적인 신개념을 부정하고 범재신론을 이야기함으로서 하나님과 세계를 더 가깝게 느끼게 해 주었다. 과정신학은 자연과 생태계를 보는데 유기체적으로 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했으며, 자연의 억압과 착취를 극복하기 위해서 캅을 중심으로 공동체주의를 주창하게 되었다. 공동체주의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기 위한 제삼의 대안이다. 즉 지구 역사를 이끌어 온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이데올로기는 인간 중심적이며, 성장과 발달 이론을 내세움으로서 자연을 착취하고 생태계를 파괴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이러한 결과는 인간의 생명, 비인간적 존재의 생명까지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공동체주의는 이를 비판하면서 공동체주의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공동체의 회원이 함께 용기를 북돋우며, 사랑하며, 함께 발전하기를 꾀한다고 이야기한다. 즉 공동체주의는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자는 이데올로기다. 즉 인간과 비인간적 존재들과 상호 관계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 교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WCC를 중심으로 교회는 참된 교회됨을 주창하게 되었고 이를 과정신학에서는 교회가 참된 교회가 되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재정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자연과의 관계도 회복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동체주의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많은 고통이 뒤따르게 될 것이고 우리의 기득권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낮아짐의 자세를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동체주의를 추구할 때 우리 인간의 생명은 보전될 것이며, 비인간적 존재의 생명도 보전될 것이다. 즉 공동체주의는 인간과 비인간적인 존재가 함께 이루어야 하며, 함께 전진해야 하며, 이들은 유기체적으로 긴밀하게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럴 때 공동체주의는 추구되며, 성취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생태계의 위험과 인간과 비인간적인 존재까지 포함한 모든 생물의 생명의 위험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 신앙공동체에 있어서 교수 회복을 위한 한 연구 : Richard R. Osmer의 교육사상을 중심으로

        강중석 호남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1999 국내석사

        RANK : 249663

        우리는 지금까지 신앙과 신앙공동체의 가르침, 교육 내용, 교육 방법 등을 리차드 오스머의 교육사상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지금까지의 과정이 있었던 것은 신앙공동체에서의 교수 회복을 위한 목적 때문이었다. 오스머의 견해는 주로 미국 교회라는 상황(context)에서 산출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교회를 생각해 볼 때 이러한 견해가 비단 미국 교회의 상황만을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서론에서 밝혔듯이 새로운 기독교교육에 관한 이해를 요청받았다. 전도 등을 통해 한국교회의 성장은 다른 어느 나라 못지 않게 나타났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베푸신 복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러한 복을 주심과 동시에 우리에게 가르치는 책임 또한 부여하셨음을 더욱 깊이 인식하지 못하였던 것 같다. 교수 부족이 초래한 실제적인 예로, 다미 선교회 등이 1992년 10월 28일에 "예수 재림"을 외치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일은 그들이 성경의 특정부분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꿈이나 환상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신앙공동체인 교회의 현장에서도 성경과 신학에 대한 가르침 부족으로 성도들은 진정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편의나 이기주의에 빠져 신학적 규범과 실천을 왜곡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본 연구자도 신앙공동체에서 교수직에 있는 사람들의 가르침 부족만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오스머가 통찰했듯이 급속한 사회변화, 개인주의, 반근대적 권위주의 그리고 매스미디어 발달 등도 신앙공동체에서의 교수의 역할을 둔화시키거나 무디게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외적인 영향이 계속해서 더욱 증가하여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종교 다원주의가 기독교 신앙에 대한 정체성을 뒤흔들고, 의학의 발달이 생명 존중과 생명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침범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과학의 발달이 하나님에 대한 의지보다는 인간의 능력에 더욱 소망을 두게 하고 특히, 핵의 위협은 하나님의 심판보다 더 우위의 어떤 것으로 간주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문화 다원주의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선택을 더욱 신뢰하고 우월하게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파울러의 말대로 "확대된 선택(expanded choice)"속에 살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개인주의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에 대한 역작용으로 또 다른 개인주의 공동체를 낳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외적인 영향들은 결국, 기독교 신앙공동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이미 이것들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사실을 반증하고 있지 않는가? 이렇게 급속하게 변화하는 세상 가운데 신앙공동체로 부름 받은 한국교회는 어떻게 교회교육을 하여 신앙을 일깨우고 도전받게 할 것인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통찰을 가져야만 교수(가르침)의 정신과 본래적 기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가르침에 있어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한 방향은 무엇이겠는가? 이러한 우리 고민에 오스머는 신앙공동체에서의 교수(가르침) 회복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주장하는 교수의 회복은 단순한 지식 전달의 가르침이 아니라 신학적 성찰의 독특한 양식으로서 실천신학을 말하는 것이다. 실천신학적 성찰은 훈련되고 자의식적인 도덕적 사고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에 관한,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있는 세계에 관한 신학적 확신에 비추어 개개 신자와 회중에 의해서 수행된다고 하였다. 오스머가 말한 실천신학적 성찰에서, 실천신학의 핵심은 상황의 한복판에서 생겨난 성찰인데 이 상황은 하나님의 뜻이 경험의 독특한 컨텍스트에 영향을 미칠 때, 이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행동반응을 형성하고자 하는 사회적 실천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한다. 위와 같은 입장에서 그는 교육의 내용이 신념 교육, 관계 교육, 헌신 교육, 신비 교육을 말하고 이에 따른 교수방법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오스머는 신앙공동체에서의 교육이 제대로 수행되기 위해서는 회중이 교수에 함께 참여하여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오스머의 사상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가? 신앙공동체에서 교수의 목적과 기능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겠는가? 본 연구자는 네 가지로 이것을 정리하고자 한다. 첫째, 교회가 신앙공동체라는 사실을 재해석하여야 한다. 교회가 신앙공동체라는 말 자체에 어느 누구도 반대의 의견을 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공동체인 교회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 연합된 신앙공동체임을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신앙공동체라는 말도 하나의 메타포라고 할 수 있지만, 교회교육을 일선 교회 현장에서 책임을 지고 있는 많은 교역자들이 이 사실에 아직 거리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신앙공동체적 교육목회보다는 어떤 특정한 사람중심이나 어떤 특정한 연령층에 보다 더 많은 관심과 교육만을 하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신앙은 한 개인이나 특정한 연령층에서만 생성되고 발달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은 모든 관계적 산물이다.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신뢰의 관계가 그것이며, 나 아닌 다른 모든 사람과 함께 복음을 나누고 복음에 참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신앙은 전(全) 세대가 함께 하나님께 응답하고 참여하는 관계 속에서 양육되고 성숙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교회가 신앙공동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재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실천신학적 성찰의 기초단계라고 본다. 둘째, 교회교육의 전문 지도자 양성이 더욱 시급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신앙공동체를 동역자로 부르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어 교회의 교육적 사명과 예배, 섬김, 교제, 기도 등의 사역을 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역의 올바른 수행을 위해서는 전문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 마치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그 자리에 모세와 여호수아와 같은 사람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신앙공동체의 교수 회복을 위하고, 교회에 맡겨진 모든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전문 지도자 양성이 더욱 시급하다. 이 일을 구체적으로 할 수 방법 가운데 하나는 현재, 본 연구자가 속한 교단이 신학교 등을 통하여 기독교교육에 대한 교육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오스머도 이러한 주장을 하였다. 교단들은 한국교회라는 신앙공동체를 교육하는 책임과 기회를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교단과 신학교는 교회교육 전문 지도자를 더욱 양성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며, 교회는 이러한 일이 활성화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셋째, 신앙공동체에 있어서 교수 회복을 위해 신앙공동체의 지체들인 회중의 참여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신앙공동체의 교수 회복을 위해서는 신앙공동체의 지체인 성도들이 교수에 참여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참여는 꼭 학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앙공동체는 그 자체가 교육의 내용과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본 연구자는 신앙공동체, 회중의 참여를 두 가지로 나누어 주장하고 싶다. 먼저, 복음에 대한 계속적인 나눔이다. 본 연구자는 가르침이란 복음을 들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한 바가 있다. 이것은 복음으로 신앙인이 된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통해, 계속해서 복음안에 거하게 하고, 복음을 열매맺게 하려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복음에 대한 계속적인 나눔은 신앙공동체의 결속을 더욱 강화하고, 신앙공동체의 가르침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복음이야말로 신앙공동체에 대한 회중들의 정체성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사회적 실천에 대한 참여이다. 신앙공동체는 교육을 통하여 선교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선교의 방법이 다양하겠지만 한국교회 신앙공동체는 더욱 더 사회적 실천에 노력을 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가르침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혹자는 말할지도 모르나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신앙공동체가 가르침의 사역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사회적 상황에 대한 성찰을 필수로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회적 실천을 통해 신앙공동체는 신앙공동체 자체를 성찰하게 되고, 가르침을 반성하고, 재해석하여 다시금 사회적 실천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과 같은 IMF 시대에는 이러한 사회적 실천이 더욱 중요한 가르침의 한 요소가 되리라고 본다. 이렇게 우리 한국교회가 사회적 실천을 할 때, 사회적 영향력을 회복하고 개인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새로운 커리큘럼을 위한 아이디어 개발이다. 개혁교회의 출발이 그랬듯이 신앙공동체인 교회는 개혁되고 변화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묵은 교회가 될 것이고, 세상에 부적절한 하나의 집단 내지 공동체가 될지도 모른다. 특히, 신앙공동체의 교수 회복을 위해서는 교회교육의 새로운 커리큘럼이 창조되어야 한다. 아이디어 개발이 연구되고 지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신앙 생활은 신앙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신앙공동체의 신앙교육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일회적인 것이라도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교육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것이 가르침에 담긴 뜻이 아닌가? 또한, 새롭고 좋은 아이디어를 찾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설교를 잘하게 되는 것 만큼이나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고 찾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가르치는 과정을 통해서도 발견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생각나게 될 것이라(요 14:26)는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마치 오스머가 신비교육은 하나님을 '타자'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다시 말해, 신앙공동체의 교역자 또는 교사들은 교수 회복을 위한 부단한 연구도 해야 하지만 또한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 통찰을 할 때, 신앙공동체의 교수 회복이 가능할 것이고, 교사는 성령의 지혜가 충만한 신앙공동체의 한 지체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신앙공동체가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교회의 사명을 감당할 것이다.

      • 인간존엄에 관한 신학적 논증의 가능성과 한계

        임종태 호남신학대학교 대학원 2018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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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는 다원적 가치가 공존하는 탈종교적 사회이다. 그런 만큼 서로 다른 이념과 사상과 행위를 함께 공유하며 인류의 평화로운 공존을 실현하기 위한 보편적 가치를 필요로 한다. 1948년 12월 10일 유엔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이 공표된 이후 인권의 가치와 이념은 인간의 보편적 존엄과 가치실현을 위한 윤리적이며 법적인 기초로 인정되고 있다. 인권은 인간의 존엄성을 전제한다. 그러나 인간의 대한 이해만큼이나 인간이 존엄한 이유에 대한 논의와 주장은 너무 다양하고 이에 대한 이론적 합의도 쉽지 않다. 사회과학적 토의만이 아니라 신학적이며 윤리적 논의에서도 인권논증에 대한 다양한 신학적 논증이 존재한다. 본 논문은 로마가톨릭교회, 러시아 정교회, 그리고 개혁교회의 신학적 입장을 서로 비교하면서 인권의 논증의 가능성과 한계를 탐구하였다. 세 교회는 모두 인간존엄의 신학적 근거를 ‘하나님의 형상’에서 구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존귀하게 지으셨다. 비록 인간이 죄를 짓고 자기파괴와 멸망의 길로 걸어갔지만 하나님은 자기형상대로 지으신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하나님의 형상, 곧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새사람을 입게 하였다. 다만 문제는 이와 같은 신학적 논증이 오직 그리스도인들에게만 배타적으로 적용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신학적 논증이 이러한 배타성과 종교적 특수성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개방적’으로 논증되어야 한다. 개방적 논증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형상을 다른 문화와 종교의 맥락에서 그 자신의 고유한 방식으로 논증하도록 허락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논증방식을 절대화하거나 완성하지 않으려는 자세이다. 이러한 논증방식이 가능한 신학적 전제는 이웃과 이방인과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소명과 책임에 있다. 이웃, 이방인, 그리고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과 소명은 도덕적 공동체가 자신을 보편적으로 개방하도록 지속시킨다. 결국 개방적 논증을 통해서 종교와 문화 간에 열린 대화가 가능하게 된다.

      •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교육을 위한 통전적 가르침에 관한 연구

        김정훈 호남신학대학교 대학원 2005 국내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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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study on teaching has been one of the focal issues of Christian education for many years for both the Eastern and Western world alike. The role and the function of teaching nowadays seems to be a crucial subject for Christian educators in this twenty first century as the educational environment looks more and more devastated year after year. The relationship between teacher and students is becoming weaker and more fragile than ever before, and the classroom is turning into a place where only mere knowledge is being transmitted rather than a place where the life styles of teacher and students are being formed and transformed through their interaction. The society is changing fast and it is becoming more severed than ever. To the contrary, through the fast growing internet speed innovations, the world has become one village. Consequently people around the world do influence each other whether or not they choose to. So called postmodernism which accelerates competition, isolation, confusion, and dehumanization prevails in this globalized world. Churches in Korea face the similar problem and experience great difficulties in Christian education. Many people have left the church already and Christianity has lost its good reputation in society. The effective role of teaching therefore must be emphasized in this dissolved educational environment because there is no hope for society nor the church without finding a way out. Although this study does not try to suggest 'the way' all at once, it will search means to help people to see where they are going. It addresses, ultimately, how Christian educators will be able to develop more useful and meaningful tools to help the Church's educational processes, which eventually will enhance and benefit the condition of society as a whole. With this kind of academic hope for Christian education, this dissertation was written. In chapter 1, the purpose, method, and the limit of this writing was mentioned. This is crucial because it poses the question that the writer has dealt throughout the dissertation and explained why the subject "teaching" was selected out of many other options. In order to give a rationale for writing this dissertation, the writer has defined 3 crucial terms: postmodernism, wholistic, and teaching. Then, the writer went on to describe and analyze 'teaching' with various perspectives from chapters 2 to 8 as follows. Chapter 2 looked at teaching from the philosophical point of view. It evaluated the writings of teaching of Socrates, Plato, Aristotle of the West, and of Lao-Tzu (Lao Tan the "Old Tan"), Yi Hwang (T'oegye), and Yi I (Yulgok) of the East. The reasons for choosing three from each world were to see the traces of the philosophical views on teaching and how they influenced us, so we can find better ways to improve our current teaching quality. The 'Maieutics' of Socrates, 'Idealism' of Plato, 'Realism' of Aristotle still have enormous impact on our teaching even today. All three of the West are essential when dealing with educational philosophy because they were the pioneers from whom almost all western thoughts were born. Socrates ignited the discussion on the importance of self and questions. Plato moved one step further after his teacher and enabled us to see that external perception consisted of ideas. Contrary to his predecessor, Aristotle opened up the new world of thoughts and asserted that what we experience is more real than what we perceive. The concepts of Lao-Tzu's Tao' (道) and 'Wu-Wei (無爲),' The concepts of T'oegye's 'principle (理)' and 'respect (敬),' and Yi I's idea of 'Unifying knowledge and conduct (知行竝進)‘ are very cores to Eastern educational philosophy that emphasized autonomy of the learner, importance of an inspiring and dynamic interaction between teacher and student, and motivation, cultivating education respectively. All three of the Eastern teachers knew the importance of the teaching not just as a function but as a reflection of a teacher's lifestyle and they put emphasis on the education of the mind of learners. Chapter 3 looked at teaching from the historical and theological point of view. It examined the historical foundations from the biblical era to 1960, and it has dealt with theological flow since 1960. From the Old Testament times, this study found that teaching in the synagogues and homes were the two important models for our family education. From the study of the New Testament era, this study finds that perhaps the teaching of Jesus Christ is the most suitable model for teaching for our day. However, since there were many discrepancies in terms of culture and time gaps, we must be wise in selecting the best out of Jesus' teaching. During the early church period, kerygma and didache appeared frequently and the teaching style was a sort of catechesis nowadays which utilizes the rote memorization and recitation during the teaching learning process. At that time the catechesis was very effective in evangelizing and educating the heathens. The teaching of Augustine was closely related to his theological understanding and is relevant even to today's theological teaching. From the study of medieval church education, this study finds that the role of using symbols was critically important and the teaching of Aquinas was analyzed with special attention. His idea of teaching is that teacher must be able to cultivate the minds of the learner since human beings are capable of being able to reach certain levels of intelligence which God gave them inner abilities to know the truths. An evocative role of teaching is the key issue for him. The writer finds that Aquinas' idea was the evolvement of his predecessor Aristotle. This innate reasoning ability was later transmitted to Maria Harris who developed the aesthetic teaching by using imagination. From the study of teaching during the Reformation era, Martin Luther and John Calvin's teaching are focused among many others. Luther shook the old ground that the church used to teach by. He denied the vague usage of icons and formalism that only made people, of that era, more ignorant. He focused on the family teaching and Bible based teaching and furthermore he asserted the importance of teaching how to read the Bible in their own language. His sensitive revolt against Catholicism eventually made him exclude even the good usage of symbols in religious education which is very unfortunate. For Calvin, teaching only makes sense when it reaches the goal the teacher has set. By that he meant that the teacher must not be content that he only gave some meaningful lessons for the students. Then the study looks at the influences that the evangelicalism, liberalism and neo-orthodox theology gave to current teaching and how it formed and transformed the practical theology and teaching today. Chapter 4 analyzed the educational aspect of teaching. It surveyed the various definitions on teaching and then evaluated the essence of teaching in detail. By doing that, it has dealt with the technical side of teaching as well. Moreover, it looks deeply at the relationship between teacher and students and how teachers must understand their students in terms of their learning styles. Joseph Lowman's view on the teacher-student relationship and the classroom dynamics, and Richard Mann's extensive study on student types were introduced and evaluated in detail. The writer finds out that this kind of study practically helps the teacher to understand how students learn in various environments. Also, this chapter brought special effort in describing and analyzing the post-modern perspective on Christian education. The post-modern phenomena is crucial to understanding why today's learner shows unusual characteristics in the classrooms. Therefore, it is imperative for teachers to know the special features of it and know how to deal with it. There may be three different attitudes toward the post-modernity. For some, we must be objective against it and restore the old tradition of modernity (so called the tradition of Renaissance). For some, we must pick and choose what is good for our days. For others, we must face the challenges and utilize what is available for us with positive assertiveness. On the whole the writer poses himself in the very last position and studies the influences of postmodernism to our culture and how it became so influential. As a result, this position became one of the crucial backbones of this dissertation. Chapter 5 focused on the educational foundation on teaching. This study is important because it will be the frame of reference as to which categories will be used to analyze the comtemporary educational theories in the Christendom. Chapter 6 analyzed teaching theories of comtemporary Christian educators. Jack H. Seymour and Donald E. Miller's approach was adopted in order to look at teaching theories as a whole. They have five different categories in teaching. They are (1) tradition(historical-theological) (2) church(communal) (3) human (psychological) (4) mission(emancipatory), and (5) methodology (practical). In the first category (tradition), George A. Coe and Sara Little's views of teaching were compared and analyzed. Their theological foundation is quite different from each other and it is not the writer's intention to compare their theologies. However, Coe was studied because he was the one who emphasized the role of socialization in teaching whereas Little emphasized intentionality in teaching. For the second category (church), the writings of John H. Westerhoff and C. Ellis Nelson were analyzed. Their writings show that they both use social science and biblical principles in forming their theories. However, Westerhoff emphasized worship for forming the community of faith whereas Nelson uses both liturgy and some teaching. For the third category(human), James Fowler and Gabriel Moran's teaching theories were evaluated. Both scholars used developmental theories in teaching. However, Moran's view on teaching contains the therapeutic and healing aspect and effect. Thus his view was beneficial informing the writer's perspectives. For the fourth category (mission), Paulo Freire and Letty M. Russel's teaching theories were selected and evaluated. Their views were extremely helpful to open a new horizon for becoming a reflective teacher who is able to encourage active participation of the students. For the fifth category (methodology), several prominent educators were selected: James M. Lee who championed in using the social science for teaching, Thomas Groome and Mary E. Moore who utilized the hermeneutics-praxis centered teaching, and Maria Harris who cleverly connected aesthetics in her teaching, Richard Osmer who saw teaching as one of the endeavors in practical theology, and finally Parker Palmer who saw teaching as spiritual pilgrimage. In sum, various educators' views provide and enhance the perspective of the writer and become the framework for extracting the juice of one's own view of teaching. Chapter 7 proposed a wholistic view of teaching in this post-modern era. For doing that, the special phenomena of the twenty first century in terms of culture and thought were presented. In doing so, a method called "critical reflective thinking" developed by Stephen D. Brookfield was used to look at the past understanding on teaching and deep/serious self criticism was done in the process of writing this dissertation. It is unfortunate that the writer's inner pain and reflection may not be shown in writing but it was truly painful and yet rewarding after all. From this long and hard academic travel, the writer suggests nine teaching principles that will make our teaching wholistic as follows: Teaching must (1) be founded on the balanced philosophical ground. (2) be founded on the healthy theological ground. (3) be learner centered through a critically reflective process. (4) encompass the needs of post-modern learners. (5) equip the learners with spiritual leadership. (6) have both hidden and yet intentional aspects. (7) have both aesthetic and artistic aspects. (8) have both therapeutic and healing aspects. (9) touch and bind emotion and spirituality aspects. Lastly, chapter 9 summarized what this study had achieved and what we can do next. Some findings were mentioned and the focal issues were, for example, tension between socialization and intentional teaching. Socialization has to do with community of faith whereas intentional teaching has to do with intentional function of teaching itself. A similar discussion was done in terms of using hidden curriculum and explicit curriculum. In conclusion, if we successfully adopt and apply the above nine principles in our teaching, our teaching in the ministry will be wholistic and applicable for the learners who are living in the post-modern culture. The Word of God which was given to 'them, there, then' will be appropriately transformed and understood as 'us, here, now' Word of God. The hermeneutical gap will be bridged by the effort and prayer of passionate teachers who constantly seek out the best possible teaching quality for their learners. Even in this twenty first century as many say that there is no set philosophy, theology, principle to live by we can still help the people of post-modernity through the wholistic teaching principles proposed above. And this is the humble and yet firm assurance that the writer came to reach through the long and painstaking academic journey. 가르침에 대한 연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금까지 계속되어오고 있으며 아마 아직도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일 것이다. 특별히 오늘날과 같이 가르침의 현장이 붕괴되고 사제지간이 소원해졌으며, 단지 지식 전달의 장으로만 전락된 현실에서는 더욱 가르침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시급한 실정이다. 21세기의 사회는 점점 더 다원화되고, 디지털 문화와 교통수단의 발달과 더불어 첨단 인터넷으로 인한 정보화 사회가 가속화됨으로 인해 서로 동 떨어져 있던 전 세계가 지구촌화 되어 지리·정보적으로는 전보다 훨씬 더 가까워지고 일상적인 삶은 훨씬 더 편해졌으나, 실제 삶의 질은 예전보다 나은 것 같지 않다. 사실 요즘 사회는 경쟁이 더 치열해졌고 사람들은 소외감을 전보다 더 심하게 느끼며 혼란과 비인간화의 현상이 더 깊어지는 오늘을 우리는 대개 탈현대 시대, 즉 포스트모던 시대라고 부른다. 이렇게 사상적, 문화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가르침의 모습을 연구하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더욱이 한국 교회는 이제 수적인 성장이 둔화된 상태에 있으며 사회는 불교, 천주교, 유교보다도 기독교를 더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 현실이다. 더욱이 교회 교육의 현실은 더 참담하다. 예장통합 『교육백서』 에 의하면, 지난 5년간 한국교회는 2002년 현재 거의 30%의 청소년들을 이미 잃어버린 상태이며, 교회 교육에 대한 신뢰는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차제에 본 논문은 어떻게 하면 교회 교육이 다시금 질적 향상을 도모하여 먼저 교인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나아가 일반 사회에서 조차 인정받고 신뢰받는 길을 모색하였다. 물론 모든 교육의 문제를 이 논문으로 다 해결하려는 시도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어떻게 하면 교회 교육자가 실제로 활용가능하며 의미 있는 가르침의 역할을 회복할 수 있을지를 깊이 생각하며 연구한 논문이다. 본 논문은 이러한 소망 가운데 태동되었다. 본 논문의 간략한 장별 핵심은 아래와 같다. 1장에서는 왜 필자가 가르침이라는 주제를 선택했으며, 연구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목적과 방법을 범위 설정과 함께 기술하였다. 또한 본 논문의 중요한 용어에 대한 개념 정의를 서술하였다. 그런 후, 아래에 나오는 다섯 가지 범주에 논문의 초점을 맞추었다. 2장에서는 가르침의 철학적 토대를 살펴보았다. 서양에서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그리고 동방에서는 노자와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가르침을 살펴보았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사고는 현대 교육철학에도 면면히 그 맥락이 이어져 오고 있으며, 아직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별히 소크라테스가 역설한 산파술로서의 가르침은 자아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으며 질의응답을 통해 학습자의 마음속에 있는 어렴풋한 생각을 마치 산모가 아기를 잉태하는 것과 같은 질문과 응답의 과정을 통하여 하나의 뚜렷한 사상으로 형성해 나갈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교육철학적 씨앗을 배태하였다.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은 그의 스승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삶은 우리가 겉으로 느끼며 인식하는 것보다 아이디어 혹은 생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생각을 불어 넣어 줌으로써 내면세계를 중시하는 관념주의 혹은 이상주의라는 사상을 인류에게 선물로 주었다. 이에 반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자기 스승 플라톤의 주장이 마치 동전의 한 면과 같음을 발견하고 그 동전의 이면에 있는 진리를 탐구하는 원리에 대하여 역설하기를 우리가 인식하는 내면의 세계 보다는 경험하는 현실세계가 더 실재적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실재론 혹은 경험주의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 세 철학자의 교육철학은 거의 모든 서양 철학이 시작하는 출발점으로 필수적인 교육사상이기 때문에 다루었다. 한편 동양의 사상가 노자가 펼친 교육사상은 무위(無爲) 사상으로서 언뜻 보기에 교사의 가르치는 역할 자체를 무의미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의 가르침이 무조건적으로 비의도적 가르침만을 묘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겉으로는 아무런 의도성이 보이지 않고 오히려 학생이 알아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 같아도, 실제로 내용을 깊이 고찰해 보면 교사가 부단히 학습자의 입장을 고려하고 그가 가진 능력을 파악하여 자율적 능력을 키워주며 배양하는 고도로 숙련된 잠재적 의도성을 내포한 가르침이었다. 한국의 자랑스러운 교육사상가인 퇴계 이황은 주로 그의 『언행록(言行錄)』 에서 가르침에 대한 자신의 교육철학을 펼쳤다. 그는 자신이 고안한 이(理)와 경(敬)의 사상을 통하여 교사와 학생이 서로 만나서 인격적으로 삶을 나누는 감화의 교육, 존경을 바탕으로 한 인격교육을 강조하고, 학습자의 개인적 차이를 고려한 가르침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이를 감발교육(感發敎育)이라 하여 배우는 이로 하여금 감동받고 각성하며 스스로 분별하는 가르침을 중시했고, 가르침이란 학습자의 안에서 잠재하고 있는 능력을 이끌어 내어 발휘하게 하는 것이라는 교육철학적 입장을 견지하였다. 또한 율곡 이이의 가르침은 실천을 중시하는 지행병진(知行竝進)의 가르침이다. 마치 성경의 "우리가 다 아는 것과 믿는 것에 하나가 되어"(엡 4:13)와 같은 말씀처럼, 율곡은 지식은 곧 행함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 또한 그는 심성 교육과 전인적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엄격한 훈육을 통한 가르침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교육철학을 가진 학자였다. 서양의 세 철학자의 경우와 같이 동양의 이 세 철학자는 교육자로서 철저하고 일관된 신념을 가진 이들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교사의 자기 성찰적인 삶과 모범적인 삶의 모형이 될 것을 역설하였으며, 가르침과 학습의 목적은 개인의 잠재력과 균형 잡힌 심성을 개발하여 어느 한 곳으로도 치우지지 않는 전인적인 교육을 목표로 하였다. 이와 같은 이유로 동서양에서 각 3인의 교육 철학자를 선택하여 그들의 교육철학을 연구하였다. 3장에서는 가르침의 역사적 토대를 살펴보았다. 첫 부분은 성서시대로부터 1960년대까지의 역사적 토대를 중심으로 가르침을 연구하였고, I960년 이후부터는 신학적 토대를 중심으로 가르침을 살펴보았다. 성서시대의 가르침으로는 구약성서시대의 히브리인의 가르침을 살펴보았고 다음으로 유대인의 교육에서 가르침을 살펴보았다. 구약성서시대의 가르침은 가정과 회당을 중심으로 한 가르침의 원형으로 오늘날 가정교육에도 큰 시사점을 주고 있다. 신약성서 시대의 가르침은 의도성과 비의도성이 혼재되어 있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한 분명한 목적 아래 가르침이 이루어졌으나, 그 가르침의 형태는 틀에 박힌 교육방법이 아니라, 현재에서 삶을 통해, 실물을 통해, 비유로, 영적 통찰력으로, 감동으로, 기적으로, 마음을 치유하시는 것으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예수의 가르침은 어쩌면 이 논문이 제시하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교육을 위한 통전적 가르침의 가장 합당한 모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적합한 가르침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연구하고 오늘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바울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한 사도시대의 가르침과 초대교회의 가르침, 나아가 초대 교회 교부중의 커다란 획을 그었던 어거스틴의 가르침을 살펴보았다. 이 시기의 가르침은 주로 복음 전달을 위한 강의식 전달이었지만 그 가운데는 비유와 상징, 상담, 대화, 토론 등 오늘날 교육현장에서 접목시킬 수 있는 모습들도 많이 나타나 있다. 이는 모든 삶의 규범을 가르침의 영역에 포함시켰고 학습자 중심의 가르침이었다. 초대교회의 가르침은 케리그마와 디다케가 함께 나타났고 카테키시스로서의 가르침이었다. 그리고 이 시대 이교도 문화의 도전은 가르침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처럼 세계화된 사회 속에서 이 당시의 교육적 영향과 문화의 수용관계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연구였다. 또한 어거스틴의 교육이론은 그의 신학사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중세의 가르침은 세례교육과정 중심의 중세 전기 가르침과 예배, 축제, 연극, 건축 등의 비공식적 가르침에 관한 후기 가르침으로 나누어 보았고, 그 가운데 상징적 가르침을 부각시켜서 서술 및 분석하였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재조명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가르침을 따로 다루었다. 아퀴나스는 잠재력을 실현시켜 인간으로 하여금 미지의 것을 알게 하며 하나님을 참으로 이해할 줄 아는 존재로 변하게 하는 과정을 가르침의 과정으로 보았다. 아퀴나스는 주입식 가르침을 지양하였으며 학습자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토대로 선천적으로 주어진 이성을 활용하는 예술적 행위로 가르침을 언급하면서 학습자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런 교육사상은 후일 마리아 해리스에게로 이어졌음을 밝혔다. 종교개혁기에서는 마틴 루터와 존 칼뱅의 가르침을 다루었다. 루터의 가르침은 이전의 형식주의와 상징주의 교육의 맹종적인 교육형태의 기반을 뒤흔들어 놓았다. 루터의 가정교육과 성서중심의 가르침, 일반대중을 위한 가르침과 이해할 수 있는 모국어로 성경을 읽혀야 한다는 그의 교육사상은 오늘날 기독교교육에서도 지대한 영항을 미치고 있다. 다만 당시 가톨릭교회의 의도적인 우민정책에 지나치게 예민한 나머지 개혁 과정에서 성상(icons) 등을 이용한 상상력 개발과 예술을 통한 교육의 좋은 면을 배제시킨 점이 안타까운 부분이다. 칼뱅에게 있어 가르침은 교사가 의도한 신성한 교육목표를 달성할 때만 그 가르침이 가치를 지닌다. 교사의 가르침이 학생들에게 약간의 의미 있는 경험과 지식전달을 해 주었다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신학사조의 흐름과 가르침의 관계는 복음주의 신학, 자유주의 신학, 신정통주의 신학과 가르침의 관계를 주로 살펴보았고, 1960년 이후 다양하게 나타난 현대적 사조와 가르침의 밀접한 관계를 분석하였다. 그리고 잭 세이무어가 분류한 다섯 가지 범주, 즉, 종교교수 이론, 신앙공동체 이론, 영적발달 이론, 해방 이론, 해석 이론과 가르침의 관계를 연구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근 돈 브라우닝, 에드워드 팔리, 리차드 오스머를 중심으로 한 실천신학으로 분류한 가르침의 본질적 역할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4장에서는 가르침의 신학적 토대를 서술 및 분석하였다. 먼저, 여러 가지 가르침의 정의를 정리하였고, 다음으로 가르침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세분화하여 살펴보았다. 이는 가르침의 기술적 측면에 해당한다. 그리고 가르침에서 교사와 학생의 관계와 학생 이해에 대해 연구하였는데, 조셉 로만은 가르침에 대한 문제, 교사와 학생의 이해관계 등을 잘 정리했고, 리차드 만은 다양한 학생 유형에 대한 그의 독특한 통찰을 보여주었다. 위의 두 연구는 아주 상세한 것이어서 오늘날 교사가 학습자의 여러 유형을 깊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본다. 또한 가르침에 대한 포스트모던적 견해를 다루었다. 이는 철학적 측면과도 연관이 되지만 21세기 사상적 변화에 큰 특징이기에 따로 자세히 다루었다. 먼저 포스트모더니즘과의 단절을 주장하는 입장과 고전에 대해 향수를 느끼는 입장, 그리고 연속성과 어느 정도 불연속성을 주장하는 입장에서 이해하고, 다음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이 가르침에 끼친 영향력을 연구하였다. 이와 같은 영향력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교육을 위한 통전적 가르침의 이론 형성에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5장에서는 가르침의 교육학적 토대를 다루었다. 가르침의 정의와 방법을 기술하는 가운데 가르침을 교수와 학습이라는 관점에서 다루었으며 이는 바로 다음에 다루어질 6장의 이론을 설명하고 분석적으로 해부하는데 필수적인 작업이다. 6장에서는 현대 기독교교육학자들이 본 가르침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였다. 가능한 한 모든 기독교교육이론들을 담기 위해 신학적 사조의 흐름과 가르침을 다룬 잭 세이무어와 도날드 밀러의 접근 방법을 참조하여 전통(역사적-신학적 흐름), 교회(공동체), 인간(심리학), 선교(해방), 교수방법(실천)의 다섯 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 현대 기독교교육학자들을 이 범주 안에 넣어 살펴보았다. 첫째 범주인 전통(역사적-신학적 흐름)과 가르침의 영역에서는 조지 알버트 코우의 가르침과 사라 리틀의 가르침을 다루었다. 이들은 각각 신학적으로 자유주의와 복음주의 영향을 받았지만, 코우는 가르침의 '사회화'라는 측면을 더 강조한 반면, 사라 리틀은 가르침의 '의도성'이라는 측면을 더 강조하였다. 둘째 범주인 교회(공동체)와 가르침에서는 존 웨스터호프와 엘리스 넬슨의 이론을 살펴보았다. 이들은 사회과학적 접근에도 해당되지만 신앙공동체라는 측면을 부각시켜서 연구한 이들임이 밝혔다. 셋째 범주인 인간(심리학적 접근)과 가르침에서는 신앙발달측면에서 가르침을 접목한 제임스 파울러의 가르침을 살펴보았다. 이는 학습자를 이해하고 학습자가 어떻게 신앙이라는 내용을 형상화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고 보았다. 그리고 가브리엘 모란의 가르침은 치유적, 상담적 가르침으로 보이는 데 그의 이론은 단순한 가르침을 넘어선 철학을 담고 있는 사상이었다. 이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교육을 위한 통전적 가르침에 중요한 모태가 되었다. 넷째 범주인 선교(해방)와 가르침에서는 파울로 프레이리의 의식화 이론과 레터 러셀의 선교교육론적 가르침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해방적 접근은 이전에 보지 못한 부분을 보게 하는 비판적이며 창의적인 성찰의 토대를 제공하여 주고, 학습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가르침에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하여 주었다. 다섯째 범주인 교수방법(실천)과 가르침에서는 사회과학적 접근을 한 제임스 마이클 리의 가르침을 살펴보았고, 해석학적 접근을 시도한 그룸과 무어의 가르침을 살펴보았으며, 예술적-심미적 가르침을 역설한 마리아 해리스의 가르침을 다루었고, 실천신학으로 가르침을 분류하고 이론을 세운 오스머의 이론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영성형성을 학습의 과정으로 삼는 파커 팔머의 가르침에 관한 이론을 다루었다. 이와 같은 교수방법의 범주는 다양한 가르침의 사상들이 함께 속해있다. 이것은 의도성을 증시한 제임스 마이클 리의 가르침과 조용한 의도성의 측면을 강조한 토마스 그룸과 메리 무어의 가르침, 그리고 의도성 그 자체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습이 이루어지는 마리아 해리스와 파커 팔머의 가르침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분류와 접근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교육을 위한 통전적 가르침의 구체적 기술에 매우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해 주었다. 7장에서는 포스트모던 시대인 21세기에 기독교교육을 위한 통전적인 가르침을 제시하였다. 이를 위해 21세기 시대적, 사상적 특징 속에서 가르침을 살펴보았고, 기독교교육이 지향해야 할 통전적 가르침을 위해 비평적 성찰 과정으로 과거 기독교교육이 지향했던 가르침의 모습을 되돌아보았으며, 새로운 기독교적 가르침을 위한 비평적 성찰로 스티븐 브룩필드의 견해를 참고 하였다. 물론 프레이리나 러셀의 이론도 이런 비평적 성찰을 주지만 구체적인 측면에서 브룩필드의 이론이 중요한 토대를 형성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오랜 산고의 과정을 통해 필자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교육을 위한 통전적 가르침의 9가지 원리를 아래와 같이 제시하였다. (1) 균형 있는 철학적 토대 위에 세운 가르침 (2) 올바른 신학에 토대를 둔 가르침 (3) 교사의 비평적 성찰을 통한 학습자 중심의 가르침 (4) 포스트모던 시대의 필요를 경험과 참여와 이미지 창출과 공동체 형성을 통하여 채워주는 가르침 (5) 학습자로 하여금 교회와 사회를 위하여 영적 리더십을 갖추게 하는 가르침 (6)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안으로는 교사의 철저한 계획과 준비와 실행을 포함한 온전한 의도성을 갖춘 가르침 (7) 예술적-심미적 토대를 확고히 갖추어 종합적으로 학습자의 필요를 채워주는 가르침 (8) 경쟁 속에서 소외와 혼란을 느끼고 비인간화를 경험한 학습자의 상한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가르침 (9) 학습자들의 영성과 감성을 하나로 묶어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는 가르침 마지막 장인 8장에서는 본 논문이 발견한 사실을 사회화와 의도성이라는 관점에서 재분석하였으며, 이는 비의도적 가르침과 의도적 가르침 사이의 긴장 관계를 밝혀내기 위한 것이었다. 결국 위에 제시한 아홉 가지 원리를 교회 교육 현장에서 적절하게 적용한다면, 본래 '오래 전 우리 조상들에게 그들의 역사 문화적 상황에서 주어졌던' 하나님의 말씀을 21세기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여기에 사는 포스트모던인들이' 이해하고 느끼고 결단하여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함께 건강한 신앙공동체를 이루어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 이 논문을 통하여 갖게 된 연구자의 겸허한 기독교교육학적 확신이다.

      • George Albert Coe의 교육사상 연구

        오상영 호남신학대학교대학원 2000 국내석사

        RANK : 249663

        코우는 진보주의 종교교육을 주도한 20세기의 위대한 기독교교육학자이자 미시적 관점에서 거시적 관점으로 즉 교회 안에서 교회 밖으로의 관심으로 종교교육을 확대한 교육의 사회적 이론을 주창한 최초의 이론가였다. 코우의 교육사상이 전통적 기독교 교리에서는 종종 벗어나기는 하였으나 그의 발전적인 교육사상은 결코 축소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스테븐스(Maryanne Stevens)가 지적한 바와 같이, 코우의 신학은 교회적 환경과 교육적 환경에서 기능하는 비판적 신학이며, 그것을 종교의 기능적 기술로서 해석했다는 점에서 그가 사회-문화적 상황(The Socio-Cultural Context)을 중요한 택스트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코우는 현대적 의미에서 해석학적 통찰력을 가졌던 교육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해석학이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라고 할 때, 그는 사회-문화적 상황과의 끝없는 신학적 성찰 즉 해석학적 과정을 시도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코우의 교육사상을 분석하는 해석의 틀로서 교육신학의 해석학적 관점은 본 연구의 타당성을 더해 주었다. 코우가 발달적인 측면에서 계속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사회-문화적 상황은 1)과학적 방법의 대중화; 2)남북전쟁의 여파와 세계대전의 발발; 3)산업혁명의 발달이었으며, 그와 더불어 그에게 지대한 사상적 영향을 미쳤던 자유주의 신학, 미국사회복음운동, 그리고 경험주의 철학은 그의 교육사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여기서 우리는 코우의 교육사상을 구조적으로 그리고 통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교육 신학적 단서로서 1)종교적 경험; 2)인간과 사회적 가치; 3)과학적 방법을 추출해 낼 수 있었다. 이들 단서들은 '하나님의 내재성과 인간의 가능성'을 핵심으로 한 '진화와 진보'의 교육 신학적 대전제 속에서 상호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코우의 교육사상을 구성하고 있다. 회심을 경험하지 못했던 코우는 그 당시의 핫 이슈였던 '종교적 경험'을 교육적 논의의 대상으로 중요하게 다루지 않을 수 없었고, 그것은 과학적 방법이라는 시대정신과 만나면서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그의 교육적 논의의 대상은 인간과 사회적 가치에 있었다. 인간의 유용성과 자아실현 그리고 사회적 가치로서의 하나님의 민주주의 실현은 코우의 교육목적이었던 것이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코우는 각 인격간의 성장(인격원리)을 중요시하였으며, 이 것은 인격간의 '상호작용'(interplay)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교사는 바로 이러한 인격적 상호작용이 활발히 이루어지도록 돕는 기관이나 사람인 것이다. 즉 교회와 부모, 전문적인 교사들이라고 하였다. 또한 코우는 사회적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곳을 교육의 장으로 보면서 개인이라는 자아와 사회라는 공동체 사이의 상호작용(종교교육의 사회적 이론)에 의해 개인과 사회는 변화되어 진다고 믿었다. 코우는 가정, 국가, 학교, 교회, 그리고 교회학교를 사회화를 수행하는 중요한 종교교육의 장으로 보았다. 코의 교육방법은 인간의 인격을 형성하는 과정에 필요한 모든 것을 그리고 아이들이 사회화 과정에 참여하도록 하는 어른들의 자발적인 활동전체를 교육의 방법으로 보았다. 코우의 교육사상에 대한 비판에서 우리는 코우를 의심할 바 없이 종교교육의 신학적 교육학적 기초를 세우는데 공헌하였으며 새로운 사회적 질서의 윤곽을 그렸던 당대의 최고의 기독교교육자이라고 평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코우는 그의 놀라운 공헌에도 불구하고 그의 교육사상에 나타나고 있는 제한성을 가지고 있었다. 복음적 관점에서 볼 때 코우는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문제를 이끌어 갔으며, 신의 "초월성"을 배제한 인간의 가능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점들은 이론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윤리적 차원의 사회적 변혁에 대한 강조는 오늘날 윤리적 책임성이 희박한 한국교회에 경종을 울리며, 교회교육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도록 이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다양한 상황(컨텍스트)에 직면해 있다. 코우가 꿈꾸었던 '교육을 통한 하나님의 민주주의 건설'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는 참으로 많다.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환경과 통일은 물론이고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사이버(cyber) 세계는 우리의 중요한 컨텍스트이다. 이들 상황들에 대해 책임 있게 대처할 사명이 한국교회에 있으며, 교육교육의 사회화를 통하여 이러한 사명은 성취될 것이다.

      • 신학교육과 목회현장과의 상관관계에서 바라본 교육목회에 대한 연구

        김광일 호남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2000 국내석사

        RANK : 249663

        1990년대 이후 한국교회의 성장이 멈추었다. 교회의 위기단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위기단계는 외적, 내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면서 또한 우리의 현실과 우리 자신을 뒤돌아볼 수 있는 반성과 함께 더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디며, 더 힘찬 도약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주후 1884년 이 땅에 복음이 전파 된지 한 세기만에 전체인구의 23.5%가 기독교인이라고 할만큼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와 한국교회는 세계 교회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지난 1950년까지의 한국 기독교 신자는 30만이 못되었고, 50-60년대의 기독교 신자도 최대한으로 잡아도 100만이 못되었다. 그런데 1960년대에는 연 평균 약 10만 명씩 성장하여, 1970년에는 교인수가 200만명 대를 넘어섰고 1980년도에는 700만이 넘는 숫자를 기록하고 있고 1) 교회의 숫자도 23000여 교회에 이르고 있다. 2) 한국교회는 세계 선교역사이래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경이적인 성장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이러한 성장의 속도가 멈추었고 오히려 퇴보하는 현상이 발생하여 교계에서는 한국교회가 몰락해 가는 서구교회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소리가 높아져가게 되었다 교계의 많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이러한 한국교회의 쇠퇴요인을 시대적인 요인, 또는 교회 교육의 문제나 목회자의 자질 문제 등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며 그 문제점과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한 그들의 말에 동감하면서 필자는 미래 한국교회의 목회자로서 또한 현재 신학교육을 받고 있는 신학도의 입장에서 한국교회 위기에 대한 방안을 시대적인 요인이나 교회적인 차원뿐 아니라 또한 오늘날의 신학교육의 각도에서도 바라보며 연구해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한국교회를 이끌어 가는 목회자들의 신앙과 신학을 양성하고 그들을 신앙의 지도자로 배출한 곳이 지난 날의 한국의 신학교육기관들의 모습이라고 한다면 미래의 한국교회의 보이지 않는 뿌리는 분명히 바로 미래의 한국교회를 이끌어갈 목회자들을 양성하는 오늘의 신학교육의 모습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하였다. 즉 미래의 한국 목회자들의 정신을 이끌어갈 오늘의 한국신학교의 신학교육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미래의 한국교회의 정신적인 기초를 다지는 것이요 보이지 않는 한국교회 목회의 뼈대를 세워나가는 한국교회의 미래를 향한 너무나도 중요한 기초작업이라 할 수 있는 것이며 따라서 한국교회의 앞날은 먼저 미래의 한국교계를 이끌어 갈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신학교에서부터 올바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교회를 위한 새로운 신학교육의 모습들을 이 분야의 교수님들이나 목회자님들께서 연구하여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필자는 가르치는 입장이 아닌 배우는 입장에서의 오늘의 신학교육에서 느끼고 생각하고 고뇌해 본점들을 이야기하며 부족하나마 나름 데로의 미래의 한국 교회를 위한 새로운 신학교육의 방향을 제시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본 논문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새로운 신학교육의 모습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틀 속에서 전개해 나가게 된다. 첫 째는 신학의 방향에 관한 문제이다. 즉 신학교육의 방향이 지식 위주의 학문적인 신학에서 말씀 위주의 신앙적인 신학으로 변화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학교육의 방향뿐 아니라 미래의 한국교회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가게 될 것 인가를 결정짓는 중요한 사항이 될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체계성 있는 교육이 실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대는 지식과 정보의 홍수시대이다. 신학교육의 본질은 세상 학문을 초월한 신적인 학문을 다루는 교육이다. 그러므로 신학의 관점은 항상 그 구심점이 분명해야 한다. 쏟아져 나오는 이 시대의 지식과 정보 그리고 신학지식에 관한 수 많은 서적들은 우리가 신학을 배우는 참 목적과 복음적인 사고에 대한 중심으로부터 언제나 우리를 멀어져가게 하는 위험적인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이단과의 대립의 역사였다. 그리고 그 이단사상들의 근원은 항상 인본주의 철학과 지식주의로부터 비롯되었다. 십자가의 도인 기독교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수는 언제나 이러한 인본주의적 철학과 지식주의의 이단과 신학에 의해 도전 받아왔고 때로는 침식당해왔다. 그리고 그러한 이단사상들은 오늘날에 와서는 다원화되어가고 상황화 되어가는 신학의 다양성 속에서 그야말로 적그리스도의 모습으로 가장하여 우리의 신학교육의 그리스도적 신앙의 토대를 흔들어 대고 있는 것이다. 격변화 되어가며 물질주의와 인본주의로 치닫는 시대 속에서 신학교육의 중요한 모습은 새로운 것은 무조건 받아들이는 지식의 안내자의 역할이 아니라 시대를 분별하여서 먼저 이 시대에 여러 형태로 우리 앞에 놓여지게 되는 신학의 본질성과 비 본질성을 분류하는 영적인 분별력이 필요하게 되며 또한 이 시대의 지식에 휩쓸려 가는게 아니고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정보와 지식이 무엇인가를 체계적으로 선별하고 분류하여 신학도들에게 제시해줄 수 있는 효율적인 교육을 위한 연구가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이론보다는 실제적이고 실천적인 신학교육 즉 목회와 신학의 실제적 접목으로서의 신학교육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논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교육목회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신학교육의 본질(방향성) 회복과 체계적인 분류와 교육의 실제성을 일으켜 세우는 새로운 전환을 이루어나가는 신학교육의 내용과 형태를 말하는 것이다. 필자는 신학교육에서 지금까지(신학부에서 신대원까지 8년의 과정동안) 피교육자의 입장이었다. 그러므로 이 논문에서 다루려고 하는 신학교육의 문제점들, 구조적인 모순들, 감추어진 문제점들에 대해 전문가다운 충분한 견해를 갖추지 못하였다. 또한 교회학교 교육이외에는 교육자적인 경험 역시 전혀 없다. 그래서 본인의 논문의 연구자료나 연구범위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교육자로서의 전문경험이 없이 교육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많은 부족함을 느낀다. 그러나 교육이란 배우고 가르친다는 상호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교육을 받는 입장에서 바라본, 그리고 우리의 교육이 그리스도 신앙을 다루는 신학교육인 점에서, 시대적인 흐름 속에서 한 그리스도 신앙인으로서 바라본 신학교육의 과제들을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본 논문을 작성하기 위한 본인의 연구자료로는 먼저 신학교육을 받는 입장으로서 그 동안 공부하고 기도하면서 "신학교육이 그리고 신학도의 삶이 이러한 방향으로 나갔으면 좋겠다" 하고 나름 데로 메모해두었던 자료들이 있다. 또한 여러 신학 서적이나 관계 서적을 읽으며서 신학도의 삶이나 학문함에 있어서 공감했던 부분들을 모아두었던 자료들이 있다. 또한 선,후배 신학도들을 만나 신학도의 학문함에 있어서 구조적인 문제들에 대해 의견을 나누면서 일치하고 공감했던 부분들이 있다. 그리고 논문을 작성하기 위해 참고하였던 서적들과 자료들이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교회의 사명은 미래에 대한 기약없는, 그리고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도전이 아니라 이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이루어놓은 영원한 승리의 복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며, 성령의 권능을 받아서 땅 끝까지 그 복음을 전파하는 그야말로 가슴 벅찬 사명인 것이다. 그리고 오늘의 신학교육의 사명은 이러한 이 시대의 교회의 사명과 승리를 위해 이 시대의 지식자들, 건축자들이 버린 돌 그리스도(말씀)를 다시 일으켜 세워서 교회의 영적 기초를 세워주고 어떠한 시대의 거센물결에도 흔들리지 않은 교회의 십자가의 뼈대를 세워주며 세상 바라보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참된 신앙 지도자들을 배출하는 참으로 값지고도 귀중한 사명인 것이다. 신학이란 멸망으로 향하는 시대의 흐름을 좇아가는 학문이 아니라 시대의 중심에 서서 그리스도를 따라가며 그 시대를 그리스도에게로 이끌어가는 그리스도의 말씀의 빛을 비추는 등불의 역할을 담당하는 학문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신명기의 유일신 신학 연구

        임채홍 호남신학대학교 대학원 2001 국내석사

        RANK : 249663

        Many people think that monotheism has a little extreme tendency, so they underestimate or misunderstand monotheistic faith in the Hebrew Bible. This study is an attempt to know the original monotheism which Israelites developed through their own history by reviewing Deuteronomy. This study has three starting points. The first one is about the nature of monotheism in the Hebrew Bible. Israelites thought that God is not a static and dogmatic being but a dynamic living being. So I tried to move from Greek philosophical understanding to biblical understanding on Yahweh, for Israelites felt Yahweh their God not through their thinking but met him in their life. The second one is about the origin of monotheism. Most rescent scholars think that monotheism originated at the time of Deutero-Isaiah according to the evolutional assumption of J. Wellhausen, but I support the traditional argument that it began in Mose's period. The third point is about the uniqueness of monotheism in Deuteronomy. There are some expressions in Deuteronomy which cannot be found in the other books in the Old Testament: the opposition of idol worship, centralization of cult, tradition of covenant, the confession of monotheism, the doctrine of election and so on. I insist that the assertions and institutions in Deuteronomy strengthen the faith of monotheism. The above-mentioned points show that the theology of monotheism has two important aspects of theological meaning. One thing is Yahweh, Israelite's God is their only and own God who is different from the god of theocentrism which is said in the theology of religion. Yahweh, the God is who deals with the human history, was not imported from another civilization or made at the end of natural evolution, but he reveals himself to Israelites and lives with them who confess he is a living God in their life. The other thing is the wisdom and lessons that they can overcome all trials in their lives through the recovery of the faith in Yahweh even though they suffered many difficulties in history. The message in Deuteronomy is that human beings can overcome the sufferings and miseries which are repeated in history only when they return to the only God.

      • 포괄적 선교신학의 모색 :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의 비교를 중심으로

        조창환 호남신학대학교 대학원 2005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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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의 내용을 중심으로 역사적인 변천과 특징적인 내용들을 살펴보았다.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에 나타난 신학사상들은 시대적 흐름 속에서 당시의 시대의 가치관과 또한 시대가 요구하는 기독교적인 응답이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는 성육신의 신앙과 정통 신앙을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개연성과 변화의 가능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초대교회로부터 중세교회, 종교개혁의 교회, 계몽주의와 합리주의, 그리고 19세기의 경건주의와 대각성운동들은 당시의 상황 가운데서 올바른 신학으로 시대에 응답하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보는 것이 보쉬의 신학적인 평가이다. 신학은 항상 시대적 요구와 보조를 맞추어 왔다. 이제 우리는 포스트모던이라는 시대 속에서 지난날의 수많은 가치관들에 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전통적인 가치관과 사상, 그리고 방식들이 변화를 요구 받고 있으며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기를 기대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한국교회는 국내교회의 성장은 물론이고, 세계선교에 놀라운 헌신과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는 또한번의 격동의 물결 속으로 내몰리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와 종교 전반에 걸쳐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경제 그리고 시장 개방의 압력 속에서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다. 이와 더불어서 한국교회의 성장 지상주의 정책에 비상이 걸렸다. 교회의 성장이 멈춘 것이다. 이에 각 개교회들은 이러한 위기를 새로운 프로그램 도입으로 극복하려하고 있다. 또한 교회성장위주의 선교정책과 자본주의적인 선교정책에 제동이 걸쳤다. 이와같이 한국교회는 내적인 어려움과 함께, 한편으로 세계교회 속에서, 그리고 세계적인 상황 가운데 이제 새롭게 적응하고 변화되어야 한다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도전은 교회의 일치와 협력을 요구하고 있다. 레오나르도 보프 (Leonardo Boff)는 그의 『주의 기도』에서 그리스도 신앙은 영적. 초자연적인 실재들에만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물질적이고 역사적인 현실에도 가치를 부여한다고 하였다. 그리스도 공동체는 영적인 차원의 해방뿐 아니라, 인간 존재의 총체적인 해방을 요구한다고 하였다. 이를 위해서 알로이스 피어리스(Aloysius Pieris)는 교회일치운동의 4가지를 제시하기도 한다. 한국교회는 아직도 19세기 복음주의 선교관 뿐만 아니라 신앙의 형태와 신학까지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분위기다. 개인영혼 구원은 개교회주의로 이어지고, 개교회 성장정책은 교회간의 경쟁을 유발하는 자본주의적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성장 일변도의 가치는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한국교회가 일치와 협력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수 없다. 2003년에 "오늘의 상황과 교회일치운동"이라는 제목으로 '한국기독교교회 교회일치위원회' 주관으로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또한 「한국교회일치와 연합을 위한 모임」 이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한교협) 그리고 교단장 협의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해와 협력위원회"(13인위)를 구성하고 두 기구를 하나로 합친 연합기관을 2007년까지 만들기로 했다. 이런 통합논의에 대하여 김동선교수는 2004년 11월 1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회일치위원회와 신학연구위원회가 주최한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운동 발전을 위한 학술대회와 공청회"에서 발표한 "일치의 딜레마에 대한 신학적 고찰과 교회의 본질"이라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포괄적인 문제를 제안하고 있다. 첫째는 '교회의 하나됨과 교회의 교회 됨'은 분리할 수 없다. 교회일치운동의 목적은 교회의 교회다움을 회복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리차드 니버(R. Liebur)의 「교회분열의 사회적 배경」에서 말을 인용하여 교회의 분열은 교회의 윤리적인 패배라고 하였다. 나치주의에 대한 교회의 에큐메니칼적인 연대와 인종차별에 대한 남아프리카교회의 투쟁은 교회가 세상의 불의에 대하여 교회가 하나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교회의 일치운동은 교회의 연합의 과정에서 교회의 교회다움을 회복하는 문제, 즉 세상에 대한 교회의 책임 문제를 진지하게 묻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둘째는 지역교회의 변화를 동반하는 연합운동의 과정이 요구된다. 이것은 교회를 기구로 이해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고 그리스도인 공동체로 인식한다면 교회연합운동은 기구를 통합하는 운동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을 하나로 묶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 우선 지역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에서 세상의 잘못된 가치체계와 구조가 부분적으로 극복되고 있음을 경험하고, 또한 그 경험을 통해 분열된 세상을 치유하면서, “세상이 믿을수 있도록"(요17:21) 유기적으로 연합하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셋째는 한국교회일치와 연합운동은 세계교회의 일치운동과 흐름과 함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연합운동은 모든교회를 '거룩한 공회'로 부르는 세계교회의 일치운동과 맥락을 같이하며, 또한 세게교회와 대화하면서 더욱 협력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에 이 논문의 결론 부분으로 한국교회가 포괄적인 선교신학을 수용하고, 교회 내에 적용함으로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 세상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올바른 증인으로 서기를 기대하면서 포괄적 선교를 제안해 본다. 첫째는 교회의 예전적인 접근이다. 이는 성만찬을 통한 교회일치의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리마문서(BEM 문서)는 "성만찬의 거행과 친교 안에서 교회의 일치를 이룰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서로 다른 교회에서 가르침에 있어서나, 예배에서 성찬자체를 새롭게 하여야 한다는 내용에 대해서 한국인의 식사전승을 코이노니아의 성만찬 빛 안에서 토착화해야 한다고 보았다. 유럽교회협의회(CEC)이 발표한 '유럽에큐메니칼 헌장'은 교회의 가시적인 일치로 '성만찬적 친교'를 말하고 있다. 이에 분열된 한국교회가 지역별로, 아니면 같은 구역에 있는 교회들이라도 일년에 한번씩이라도 성만찬을 함께하는 예배를 드리는 방식을 제안한고 싶다. 또한 한국개신교 안에서 조차도 예배의 분위기와 순서가 다양하여 다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익숙치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각교회적인 상황과 배경은 이해한다 해도 너무 각양각색의 예배 방식과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에 일반 평신도들은 다른교회에서 예배드린다는 것을 꺼리는 실정이다. 개신교 안에서라도 예배의 순서의 일치 통해서 하나됨을 기대해 본다. 둘째는 선교에 대한 바른 교육의 필요성이다. 일반적으로 한국교회 교인들은 선교라는 말을 해외선교로 이해하는 19세기 복음주의 선교관을 가지고 있다. 또한 선교를 하나의 교회의 프로그램이나 선교는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선교는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일로 여긴다. 실제적으로 한국교회 교인들 중에서 선교에 대하여 교육을 받거나 공부를 한 사람은 많지 않은 실정이다. 그러기에 선교라는 말에 막연한 의미와 단지 들어던 내용 속에서 선교를 이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회와 선교의 본질적인 관계, 교회와 세상과의 관계안에서의 선교, 연합과 일치로서의 선교, 교회의 윤리적 삶으로서의 선교, 타종교에 대한 관계 안에서의 선교, 세계교회와의 관계 안에서의 선교 그리고 세계화와 같은 흐름 속에서의 선교,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와의 관계에서의 선교, 제3세계의 불의한 상황 가운데의 선교와 같은 선교신학적인 내용이 일반 교인들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에큐메니칼'이란 용어를 들어 본적도 없는 사람이 대다수를 차지 한다. 이에 앞으로 포괄적인 선교를 위해서 지역교회와 개교회 차원에서 목회자를 비롯한, 일반 평신도에 이르는 선교신학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교회들이 공동의 사역과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실천함으로 상호 협력을 이루는 기반이 될 것이다. 셋째는 지역교회들의 연합적인 활동이다. 최근에 사회복지 정책의 활성화로 이를 국가기관에서 지원하여 종교단체가 시행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 복지기관의 위탁 운영, 노인들 식사하는 식당 운영, 지역사회 공부방 운영등 복지적인 차원에서 지원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신교의 개교회주의로 인해서 한 교회가 큰 프로젝트를 감당할 수 없어서 운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복지기관을 카톨릭에 위탁운영시키는 것은 바로 이러한 개신교의 문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지역교회들이 협력을 통해서 개교회에서 소규모 운영되는 복지사업들을 지역교회들이 협력하여 전문가를 통한 공동의 운영함으로 교회의 일치와 협력을 이루어갈 수 있을 것이다. 넷째로는 큰교회와 작은 교회의 연합시스템의 연구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처럼 대교회와 적은교회간의 심각한 갈등을 보이고 있다. 개척교회를 포함한 적은교회는 교회의 본질을 세상 속에서 실천하기 보다는, 큰교회에 교인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몸부림과 함께 교인수 채우기에 정신이 없다. 교인들의 큰교회를 향한 수평적 이동으로 적은교회는 실망에 싸여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큰교회들은 더욱 기승을 부려 교회부풀리기에 여념이 없다. 건물크기와 교인수 그리고 회계예산은 하나님의 은총과 교인들의 믿음을 증명하는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가난한 자와 세상에서 어려운 자를 돌보라고 하고 있다. 심지어 희년의 정신은 함께 누리며 나눔이 아닌가. 큰교회는 자신이 가진 것을 놓지 않으려고 하며, 적은 교회는 큰교회를 모델 삼아 그대로 따라가려고 한다. 큰교회끼리 경쟁이요, 적은교회끼리 경쟁의 구조 안에 있는 것이 현실이다. 19세기 선교상황이 한국교회 안에서 제현되고 있다. 주는교회와 받는교회, 큰교회는 적은교회를 종속시키는 관계이다. 이에 큰교회든지 적은교회든지 이제는 하나님의 선교의 틀 안에서 동일한 하나님의 일군으로 파트너 쉽을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큰교회는 적은교회를 위해 단지 몇푼의 예산만 지원하 것이 아닌 교회의 본질을 회복할 수 있는 관계형성을 시행하여야 한다. 교육프로그램의 공동개발과 실천, 선교적인 사역에의 공동의 참여, 교인들의 교류와 공동의 예배드림들을 큰교회는 적은교회에 대한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강도 만난 이웃은 큰교회 입장에서는 바로 적은교회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논문을 통해서 선교의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안을 부족하게 제시했다. 아직은 미숙한 선교신학적 지식과 경험이지만 앞으로 내 자신의 성숙을 기대해보며, 한국교회에 적은 기여가 되기를 바란다.

      •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대한 영적권위 : 에베소서 6:10-17절을 중심으로

        김승철 호남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1999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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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생각했던 영적 권위를 가진 그리스도인에 대한 신학자들의 통적인 의견은 성령은 인격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령을 소유한 사람들은 인격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것이라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영성을 하나의 관계성 속에서 이해하는 오성춘 교수는 먼저 영성의 의미를 4가지로 나누어 말한 것을 요약해 보아도 알 수 있다. 첫째로 기독교 영성은 그리스도의 삶의 구현이다. 둘째로 기독교 영성은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삶'으로서 기독교 영성은 성령께서 그리스도인 안에 오셔서 이루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며, 성령의 능력을 따라 살 때에만 가능하다. 셋째로 기독교 영성은 주 예수 님과의 인격적 교제의 삶으로서 예수 님과의 만남과 교제는 삶 자체의 변화를 가져온다. 넷째로 기독교 영성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기독교 영성은 하나님이 먼저 찾아와 우리를 부르시고 은혜를 베푸실 때 그것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의 응답을 필요로 하는 쌍방의 상호 작용이며 필생의 삶의 과정임을 강조하고 있다. 김경재 교수는 오성춘교수와 같이 기독교 영성 이해를 '관계의 개념'으로 정의 내리고 있으며, 그는 인간의 영성을 '관계의 개념이며 영이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나타난 생명현상'으로 말하며, 영성이란 하나님의 형상을 구현한 참 인간성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영성이란 하나님의 형상을 구현한 참 인간성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김경재 교수는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차원보다 수평적인 차원을 더 강조한 것으로서, '절제와 나눔의 삶'이란 "건강한 인간의 본래적 모습이며, 하나님의 형상의 구체적 구현 형태이고, 다가오는 시대의 성숙한 인간의 영성이어서 인간의 개체와 공동체가 함께 구원받는 유일한 길" 이라고 절제와 나눔의 삶을 기독교 영성의 핵심으로 제시하고 있다. 에베소서에서 말하고 있는 영적인 삶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 이루어져 있을 때 성도는 사단의 공격에서 이길수 있으며, 하난미안에서 성령 충만한 삶으로 살 수 있다. 목회자가 가지는 성령 충만한 삶은 하나님 안에서 사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 산다는 것은 하나님처럼 될 수도 없고, 하나님처럼 되어서도 않되고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교만해지게 두시지 않는다. 이렇게 교만해지지 않을 수 있는 길이 인격적인 삶의 모습이 뒷받침될때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할때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곳에서나 빛을 발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부터라도 성령의 인격으로 새롭게 변화되어질 수 있는 개혁을 이루는 바람의 주체자들이 되어야 하겠다. 올바른 신학 사상과 올바른 윤리의식으로 우리의 복음의 옷을 갈아 입혀야 하겠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복음 안에서 우리 신앙인 이 가지고 있어야 할 자유함이 있어야 하겠다. 가장 먼저는 신학교에서 올바른 신학사상이 정립된 정규 교육이 이루어지는 교육을 목회자가 훈련되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성경 말씀을 자기의 사상에 꿰 맞추지 말고 자신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로 조명되어지는 삶으로 이루어지는 작은 디딤돌이 되었으면 한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는 바로 우리의 삶속에 지켜져야 할 또하나의 작은 실천인 것이다. 영성, 성령, 인격, 사랑, 공의, 십자가, 이것들 중 하나만을 강조하다 보면 오류에 빠지기 쉽다. 어느 하나만을 강조하지 아니하며, 삶의 여정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길을 걸어가게 될 때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성령을 소유한 영성은 바로 우리 신앙인의 인격인 것이다. 이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령의 은혜의 선물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더 구체적이고 세심한 연구가 우리에게는 너무나 부족함(자료 및 신학적 연구 )을 이 연구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이는 우리의 신학적인 연구 또한 한쪽으로 치우쳐진 것임을 입증하는 좋은 실례라 하겠다. 이제는 우리의 신학이 영성과 함께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때라 생각한다. 이에 우리 모두가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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