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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계회복을 위한 기독교 청소년교육

        전성원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육대학원 2011 국내석사

        RANK : 247631

        본 논문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특징과 그들이 맺고 있는 모든 관계 속에서의 갈등요인을 분석하고 고찰함으로써 관계회복을 위한 기독교 청소년교육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고, 실제적인 프로그램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청소년들은 크고 작은 갈등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급격한 신체적 변화뿐만 아니라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해야하는 과제가 청소년들을 이중적으로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누군가와 진실한 대화를 통하여 그들의 갈등을 해결하기를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적절한 대화의 상대가 없어 또 한 번 고민한다. 이러한 때 청소년들의 갈등을 바르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맞고 그들이 원하는 방법을 제시해 주어야만 한다. 관계회복을 위한 갈등해결은 개인의 노력만이 아닌 교회와 가정, 공동체 안에서 함께 만들어가는 성경적 원리를 근거로 하여 근본적인 갈등을 해결함으로써 관계회복의 진정한 의미들을 재정립 하게 된다.

      • 컴퓨터 그래픽에서 나타나는 회화적 표현에 관한 연구 : TV 영상을 중심으로

        전성원 德成女子大學校 一般大學院 2000 국내석사

        RANK : 247631

        컴퓨터 그래픽의 발전은 그야말로 눈부시다. 컴퓨터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더불어 이를 이용한 미술적 표현도 계속 그 범위를 확장해왔다. 컴퓨터 그래픽은 이제 '컴퓨터'나 '미술'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현대인의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자리잡았다. 주라기 공원 같은 대형 헐리우드 영화 뿐 아니라 우리가 매일 접하는 TV 광고나 드라마에서도 컴퓨터 그래픽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의 제작에 있어서 컴퓨터 그래픽은 실제 촬영이 불가능한 장면들을 생생하게 표현해낸다. 그 표현의 기법이 정교화되면서 컴퓨터 그래픽이 만들어내는 '가상현실'은 점차 실제의 현실에 접근하고 있다. 이제 일상적으로 보는 드라마나 쇼, 오락프로그램에서 어느 것이 현실을 찍은 화면이고 어느 것이 컴퓨터 그래픽인지를 구별해내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렇게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컴퓨터 그래픽에 있어서의 표현적 요소들을 분석하고 컴퓨터 그래픽이 현대 인간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 지를 고찰해 보았다. 메인 프로젝트에서는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사이버 세계와 이를 널리 전파하는 TV로 둘러싸인 환경속에서의 인간의 삶을 표현해보았다. 원초적인 생명의 힘을 표상하는 손의 이미지에서부터 완성을 향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태아의 이미지, 그리고 빛과 파장, TV 매체 속에서의 인간의 이미지를 도입해 현대인의 삶의 양식을 표현했다. 서브 프로젝트에서는 연구자 본인이 방송국에서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제작한 작품들을 기본 재료로 삼아 인간의 희노애락과 그를 둘러싼 정치. 사회적 상황을 표현해보았다. 본 연구가 현대인의 생활영역 전반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컴퓨터 그래픽의 이해에 작은 도움이나마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In recent years, the development of computer graphics has been very fast and splendid. With the help of computer technology, the artistic expression of computer graphics has grown rapidly. Computer graphics is now an essential element in daily TV commercial and drama as well as in Hollywood blockbuster like 'Jurassic Park.' In the movie and TV drama, computer graphics is being used to make some scenes that can not be taken by cameras. The graphic expression is so sophisticated that it is difficult for us to find differences between the 'virtual reality' and the real world. The reality that is made by computer is approaching to the reality that is made by nature. In this study, I analyzed the elements of expression in computer graphic arts and tried to find its meaning to human life in modern world. In main project, I intended to express the human being who is surrounded by TV and cyber world that is generated by computer technology. I introduced the images of a hand, embryo, lights and waves, and a grown man who is surrounded by many TV sets. Hand means the original power of life, an embryo means the beginning of a journey to perfect being. In sub-project, I expressed the various emotions and the social, political situations that had influences on human life. I made use of some graphic images that I had made as a computer graphic designer of a broadcasting system. I hope that this study would have a small meaning in the understanding of computer graphics in this new millennium.

      • 어거스틴의 역사이해에 관한 소고

        전성원 총신대학교 대학원 2005 국내석사

        RANK : 247631

        이 글에서 필자는 어거스틴의 종말론적 역사관의 의미와 그것의 역사적 영향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어거스틴은 고대 이후로 계속되어 왔던 그리스-로마적인 순환론적 역사관의 구조를 직선적인 역사관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하여 후대 그의 영향을 받은 역사관은 직선적인 역사관의 형태로 발전해 왔다. 어거스틴의 직선적인 역사관은 '하나님이 이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하는 확신에서 시작한다. 그의 이러한 확신은 피조물의 증거가 아니라 '무로부터의 창조'의 개념을 통해 입증된다. 첫째, 하나님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이 세계를 창조하셨다. 이처럼 창조에는 뚜렷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창조된 세계는 유한하며 종말론적이다. 둘째, 하나님만이 자존하신 존재이고 피조물은 창조자에게 전적으로 의존되어 있다. 무(無)로부터 창조된 모든 피조물은 본래의 무로 돌아가려고 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피조물이 죽음이라는 무의 위협에 직면해 있는 것은 피조물을 존재하게 하고 보존하는 존재의 근원인 하나님의 능력 때문이다. 어거스틴의 '무로부터의 창조' 개념은 모든 만물의 시작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것은 세계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시간의 시작이기도 하다 세계가 시간 안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창조된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입각하여 어거스틴은 세계가 영원하다는 옛 고전적인 윤회사상을 거부한다. 그는 모든 것이 영원히 회귀한다는 사상에 반대하여 '태초'라고 하는 시간의 절대적인 시작이 있다고 주장하였고, 그때 시작한 시간은 창조자의 섭리를 따라 어떤 과정을 거쳐 목적을 향해 진행해 가고 있다고 한다. 즉 창조와 더불어 시작된 시간은 역사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됨으로써 종말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시간을 있는 것으로 정의를 내린다. 그래서 그는 모든 시간의 본질을 흘러가고 있는 존재로 파악한다. 시간은 비 존재에로 계속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은 객관적으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의 의식 속에서만 측정이 가능하다. 인간 안에서 체험된 시간 의식은 시간 안에서 사는 인간의 실존을 드러내 보인다. 인간은 '기억한 것'(과거)에서 ·'직관한 것'(현재)을 통하여 '기대한 것'(미래)으로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무상성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시간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종말론적인 완성을 향해 계속 진행되어 가고 있다. 그리하여 시간 세계 안에서의 인류의 역사는 두 도성의 변증법적 긴장 관계로 이루어진다. 즉 역사는 '신의 도성'(civitas dei)과 ‘지상의 도성'(civitas terrena) 사이의 끊임없는 투쟁과 갈등 속에서 진행되어 간다. 어거스틴은 이러한 두 도성의 실재를 '영적'이고 '미래적'이고 '내세적’이며 '종말론적'인 실재로 보고 있다. 어거스틴은 인간의 역사가 수레바퀴가 아니라 직선과 같아서 한번 지나간 후에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번 지나가 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 없듯이 우리의 인생과 역사 또한 다시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역사의 심판 앞에서 후회 없는 삶을 살 것을 권고하고 있다. 어거스틴의 종말론에서 특이한 것은 초대 기독교 전통 속에 남아 있던 천년왕국 사상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성경의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천년왕국을 버리고 그것을 영적인 것으로 해석했다. 이와 같이 주장함으로써 어거스틴은 일직선적인 역사관을 그릴 수 하였다. 이러한 그의 역사관은 후대의 역사서술과 역사철학에 다음과 같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첫째, 어거스틴은 목적론적 사관을 뚜렷이 함으로써 역사가 지향해야할 목표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둘째, 그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보편적인 세계사 서술의 길을 열었다. 셋째, 역사의 시간 속에 시작과 끝을 설정함으로써 역사를 일직선상에 놓게 되었고, 인류의 역사 전체를 시간 단위로 묶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역사를 시작과 끝이 있는 단위로 개념화할 수 있게 되었다. 넷째, 그는 미래지향적인 '신의 도성'을 시간 세계의 역사 안에서 영원 세계로 실현되어가는 도정에 있는 것으로 설정함으로써 역사에 현재적인 역동성과 의미를 부여하였다. 어거스틴은 자신의 역사관을 통해, 혼란과 불안과 허무감과 감각적 향락주의와 기회주의, 극도의 불신, 이기주의에 빠져 있는 당시 로마인들과 후대인들을 향하여 올바른 삶의 가치관과 윤리관을 가지고 살 것을 촉구하고 있다. 즉 그는 이 세계 내에 존재하는 '신의 도성'과 '지상의 도성' 사이의 갈등과 성장과 종말로 나아가는 역사의 이해를 통해서 당시에 살았던 로마인들과 후대인들에게 올바른 삶의 역사관과 가치관 그리고 윤리관을 심어주고자 하고 있다.

      • 朝鮮後期 西南海岸地域 寺刹建築의 特性에 關한 硏究

        전성원 弘益大學校 大學院 2003 국내석사

        RANK : 247631

        조선후기는 변화의 양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시기로, 전통사회와 근대사회와의 전환점에 위치하여 과도적 특성이 드러난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격심한 사회변동과 아울러 경제성장의 현상이 뚜렷해지고, 사찰 건축 역시 이 변화를 반영하여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서남해안 지역은 조선후기 상업 자본의 발달이라는 관점에서 그 특별한 의의를 지니고 있으며, 이런 경제활동은 건축을 포함한 지역 사회 전반에 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당시 건축계의 조영조직, 건축적 기술의 수준, 사회적 변화 등의 요인들에 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사회, 경제적 측면에서의 고찰을 통해 당시 사찰 건축의 부흥 원인을 그 시대적 배경에서 찾고, 서남해안지역 사찰건축의 특성을 분석하고자 한다. 사찰시주목록과 조선후기 사회·경제적 상황을 기준으로 사찰 조영자본의 특성을 분류하면 지역별 차이를 보인다. 첫째, 조선후기 상업자본의 발달로 형성된 서민계층의 시주를 주된 조영자본으로 하는 사찰은 서남해안지역과 낙동강에 인접한 사찰이다. 서남해안지역 사찰의 사례로는 해운을 배경으로 강화 정수사, 논산 쌍계사, 익산 숭림사, 부안 개암사와 내소사, 고창 선운사, 영광 불갑사, 해남 미황사, 여수 흥국사를 들 수 있으며 낙동강 유역 사찰로는 내륙수운을 배경으로 영주 성혈사, 경산 환성사, 산청 율곡사, 양산 신흥사, 청도 대비사와 대적사, 운문사를 들 수 있다. 둘째, 왕실의 지원하에 조영된 사찰은 삼남지역에 분포하는 규모가 큰 대찰이며, 김제 금산사, 부산 범어사, 구례 화엄사, 보은 법주사가 그 사례이다. 조선후기 상업자본 발달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서남해안지역 사찰은 낙동강 유역 사찰과 비교해, 농업생산력과 해운경제활동에 있어 월등함을 나타낸다. 이는 조영배경이 같은 상업자본이라 할지라도, 서로 다른 건축특성을 낳게 되고, 왕실의 지원을 받아 조영자본의 특성이 전혀 다른 삼남지역의 대찰과도 상이한 건축적 특성을 나타낸다. 서남해안지역 사찰건축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전각구성에 있어 주불전이 뚜렷한 중심성을 갖는다. 상업자본으로 부를 축적한 새로운 시주층은 서민계층으로, 사상적·공간적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시주층의 이러한 성향은 사찰의 전각구성에 그 영향을 미쳐, 서남해안지역 사찰은 주불전 외에는 공간적으로 비중을 갖고 있는 전각이 없다. 이러한 사실은 왕실의 지원하에 조영된 삼남지역의 사찰이 규모가 크고, 대웅전, 대적광전, 미륵전 등 위계가 비슷한 전각들로 구성된 것과 비교해 확인할 수 있다. 둘째, 시주층의 기복적 성향으로 인하여 명부전 건립이 활성화되었다. 서남해안지역 사찰은 낙동강 유역 사찰과 비교해 대부분의 사찰이 명부전을 건립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인다. 왕실의 지원하에 조영된 규모가 큰 사찰들은 대부분의 불전을 모두 갖고 있으므로, 명부전을 건립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나, 규모가 비슷한 낙동강 유역의 사찰들 중 명부전을 건립한 사찰이 단 한 곳뿐이라는 것은 서남해안지역 사찰만의 특성으로 분류 될 수 있다. 명부전의 건립은 해로를 중심으로 한 서남해안지역이 낙동강 유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는 점과, 활발한 해상활동에 따른 잦은 해난사고로 인해 망인천도의 재의식이 요구되었던 당시 지역적 특수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세째, 예불 의식의 변화에 따라 불전 내부공간이 확장되었다. 조선시대 일반화된 불전 내부공간의 확장은 그 기법에 있어 지역별 차이를 보인다. 낙동강유역 사찰의 경우 내진주의 전열을 제거하는 감주법이 주로 사용되는데 비해, 서남해안지역 사찰에서는 감주법과 함께 내진주를 후퇴시켜 불단 앞의 공간을 확보하는 이주법이 많이 사용되었다. 이는 서남해안지역사찰이 실내예불의식의 증가에 따른 공간확장의 필요성을, 신도들의 편의를 위해 보다 적극적인 확장기법을 통해 구체화했음을 의미한다. 네째, 조각장식과, 꽃살문, 천장의 의장성을 통해 뚜렷한 장식화 성향을 보인다. 구조재와 비구조재를 막론하고 나타나는 장식은 사찰의 경제력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부분으로, 새로운 시주세력의 경제적 영향력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서남해안지역의 조각장식은 그 구성이 화려하고, 섬세함을 특정으로 하는데, 불교적 상징성과 시주층의 기복적 성향을 동시에 반영한다. 창호에 사용된 꽃살문양은 불교사상에서 비롯되었으나, 공예적 기법으로 장식성이 강하고, 다른 지역과 비교해 서남해안지역 사찰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서남해안지역 사찰 불전의 천장은 내출목이 증가하는 경향과 함께, 천장에 층급을 도입함으로써 건물고의 이용도를 높이고 불전내부의 장식성을 증대시키는 효과를 준다. The second half of the Chosun Dynasty is remarkable period that variation appears, and transition period situated between tradition society and modern age society. Since war of Korea in 1592, economic growth becomes clear together with severe society change and buddhist temple construction is taken by new situation reflecting this change. Southwest coast district is retaining the particular significance in the point of development of trading capital on the period of Chosun Dynasty, and this economy activity causes the effect on community whole including construction.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find out unique characteristics of Buddhist temples on southwest coast district through social and economical inquiry at that time. Via the buddhist temple benefactor list and social, economical situation at that time, the characteristic of temple's construction costs shows local differences. First, Buddhist temple which was done almsgiving by the commons class which is formed by development trading capital into main building capital is Buddhist temples which adjoin southwest coast district and Nakdong river. Second, the Buddhist temples which were built under support of royal family in three southern provinces is large one. Comparing Buddhist temples on the southwest coast district which took charge important role at that time with on the side of Nakdong river in the point of trading capital development, display that the former was far better in agriculture productivity and sea transport economy activity. This shows different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of them though they had the same background of trading capital, and of large Buddhist temples which was built under support of royal family in three southern province. The characteristics of the Buddhist temples on the southwest coast district are as followings ; First, the main Buddhist sanctum have a centripetal inclination in the constitution. New benefactor class which accumulate the wealth into trading capital as the commons, dislike historically, spatially complicated and difficult thing. These inclination of benefactor class affects the composition of Buddhist temple, Buddhist temples on the southwest coast district are no sanctum which have importance spatially beside main Buddhist sanctum. This can be confirmed by comparing with large temples which was built under support of royal family in three southern provinces is consist of Daewoongjeon, Daejeokwangjeon, Mirukjeon as be alike in grade of rank. Second, as disposition of benefactor's blessing, the construction of Myungbujeon was activated. The most Buddhist temples on the southwest district have Myungbujeon, comparing with the one on the side of Nakdong river. The Buddhist temples which were built under support of royal family have many kind of sanctum, it is so natural. But the temples on the side of Nakdong river which are similar scale don't have it. The cause of construction of Myungbujeon on the southwest district was regional peculiarity : this district was accumulating the much wealths relatively than that one, and as frequent marine accident by lively sea activity, the Buddhist service for the deceased was required. Third, according to change of worship ceremony, inner space of Buddhist sanctum was extended. Extension of inner space in Buddhist sanctum was generalized in th second half of the Chosun Dynasty, its techniques show regional difference. As method of expansion that inner columns were decreased was be mainly used on the side Nakdong river, on the southwest district was used with it, and that inner columns were moved. Forth, through the ornament of sculpture, flower lattice door and ceiling, the Buddhist temples on the southwest coast district show the characteristics of ornament. Whether it be structural timber or not, ornament can't be separated from temple's economic power. It was reflection of new benefactor influence. The ornament on the southwest district is marked by that the composition is splendid and delicate, reflect inclination of benefactor's blessing and Buddhist symbolism. Flower lattice which is used in windows and doors was started in Buddhism, inclination of ornament is strong and it is used be mainly on the southwest coast district. The ceiling with tendency that Naechulmok increases, raise utilization of interior height and inclination of ornament.

      • 청소년쉼터 종사자들이 지각한 쉼터종합평가에 대한 인식과 개선방안에 대한 연구

        전성원 명지대학교 대학원 2022 국내박사

        RANK : 247631

        본 연구는 청소년쉼터 종사자들의 쉼터 종합평가에 대한 인식과 그들이 생각하는 종합평가에 대한 문제점을 파악하여 개선방안을 모색하고, 나아가 청소년쉼터가 청소년복지시설로 전문화하는 방안을 제안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이를 위해 첫째, 청소년쉼터 종사자가 지각하는 종합평가지표 구성에 대한 인식과 문제요인 탐색, 둘째, 종합평가 영역과 지표 내용이 지역 여건과 현장의 요구를 어느 수준으로 반영하고 있는지 여부, 그리고 향후 함께 개선되어야 할 평가지표와 기준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셋째, 향후 청소년쉼터 종합평가가 쉼터의 서비스 향상과 운영 효율성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탐색함으로써 청소년쉼터 평가제도의 개선방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연구를 위해 문헌연구 및 청소년쉼터 시설장을 대상으로 하는 종합평가지표에 대한 양적조사, 포커스그룹 인터뷰(FGI)를 실시하였고, 문헌연구는 청소년쉼터와 관련한 정부 및 기관 등의 간행물, 운영지침, 평가 관련 연구논문과 6차에 걸쳐 실시된 청소년쉼터 종합평가 보고서, 보도자료 등을 분석·정리하였다. 설문지 구성은 종합평가 영역 및 지표의 현실성과 그 개선방안을 도출하고자 2019년(제6차) 종합평가지표를 토대로 일반적인 사항, 종합평가준비과정, 종합평가 위원 및 지표, 종합평가결과 및 활용, 종합평가 개선을 위한 의견 등 5개 영역으로 나누었다. 조사대상은 2022년 3월 기준 전국 137개의 청소년쉼터 시설장들로 한정하여 질문지를 통한 의견수렴 방식으로 수행하였다. 그리고 포커스그룹 인터뷰(FGI)는 청소년쉼터 시설장들의 종합평가에 대한 실제적 인식을 수렴하는 것을 목표로 설문조사에서 충분히 얻기 어려운 내용을 토대로 수집하여 분석하였다. 연구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첫째, 청소년쉼터 종사자들은 종합평가를 준비하면서 쉼터 운영, 입소청소년들의 보호 업무를 겸하다 보니 여러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었다. 둘째, 종합평가 절차에 대하여 모니터링 방식이 종합평가의 실시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지에 대해 객관성, 신뢰성, 충분성이 부족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셋째, 평가도구인 지표에 관해서는 평가지표가 대도시와 중소도시의 지역적 차이나 쉼터의 유형별 특성을 세밀하게 반영하지 못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넷째, 종합평가제도 개선에 대하여는 시설장들은 평가지표의 사전 확정, 평가위원의 전문성, 평가지표의 신뢰성, 주관기관의 연속성 부분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종합평가를 준비하는 현장 실무자들은 지역별, 유형별 쉼터의 특성을 반영한 평가지표 개선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차이를 보였다. 본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연구자는 다음과 같이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종합평가의 준비 및 과정상의 어려움을 경감시키기 위해서 평가지표의 사전 고시와 평가 절차의 연속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평가영역과 지표, 그리고 평가요소를 유형별 기간 중심의 모니터링 평가에서 쉼터 유형별 기능 중심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 셋째, 종합평가의 공통 영역 및 지표를 간소화해야 할 것이다. 시설환경 및 안전관리 지표 중 지자체에서 점검한 결과를 종합평가에 반영함으로써 소모적인 행정작업을 최소화하고 위기청소년에 대한 사회환경적 변화에 부응하여 청소년쉼터의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조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종합평가가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종합평가결과의 바람직한 활용을 위해서는 평가결과 활용과 사후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즉 종합평가제도가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평가 주관기관이 종사자들의 동기부여와 시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유인책을 적절히 마련하고, 평가결과에 따라 개별 기관에 맞는 컨설팅이 병행되도록 체계적인 평가 사후 지원책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종합평가의 목표는 청소년쉼터 운영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므로 쉼터 운영의 내실화와 효율화, 그리고 효과성 검증 등 사회적 책임성을 뛰어넘어 빠르게 변화하는 가정 밖 청소년들이 처한 환경과 예측하기 어려운 다양한 위기청소년을 위한 서비스 기준들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져야 할 것이다. This study aims to ascertain youth shelter workers' perception of the comprehensive evaluation system, identify problems that they consider, find ways to improve the system, and furthermore to propose ways to specialize youth shelters as youth welfare facilities. To achieve these goals, first, it was to figure out the youth shelter workers' perception of the composition of comprehensive evaluation indicators and problem factors. Second, it was to identify which level of reflecting the indicators and the areas of the comprehensive evaluation reflect the regional condition and shelters’ needs, and then precisely check the evaluation indicators and standards that need to be improved together in the future. Third, it was intended to suggest ways to improve the youth shelter evaluation system by exploring ways in which the youth shelter comprehensive evaluation can contribute to the service improvement and operation efficiency of the shelter in the future. For the study, a quantitative survey of comprehensive evaluation indicators and focus group interviews (FGI) were conducted, and for the literature study, publications, operation guidelines, evaluation-related research papers, and six youth shelter comprehensive evaluation reports and press releases were analyzed and organized. The composition of the questionnaire was based on the 2019 (6th) comprehensive evaluation index to derive the reality of the comprehensive evaluation areas and indicators, and their improvement measures, and it was divided into five areas, including general matters, comprehensive evaluation preparation process, the committee members and indicators, evaluation results and utilization, and opinions to improve comprehensive evaluation. As of March 2022, the survey targets were limited to 137 youth shelters nationwide and conducted in a way collecting opinions through questionnaires. In addition, the focus group interview (FGI) was collected and analyzed based on the contents that were difficult to obtain sufficiently from the survey, with the aim of collecting youth shelter managers’ practical awareness on the evaluation. Study results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while preparing for the comprehensive evaluation, youth shelter workers were experiencing various difficulties of concurrent work such as shelter operation and daily services for the youth. Second, for the comprehensive evaluation procedure, it was recognized that objectivity, reliability, and sufficiency were insufficient as to whether the monitoring method achieved the original purpose of the comprehensive evaluation. Third, as for the indicators, the evaluation tool, it was recognized that the evaluation index did not reflect the regional differences between large cities and small or medium-sized cities concretely, and the characteristics of each type of shelter properly. Fourth, regarding the improvement of the system, the heads of facilities argued that the evaluation index should be determined in advance, and the expertise of the evaluation committee, the reliability of the evaluation index, and the continuity of the supervising agency should be considered to be improved. In addition, field practitioners preparing for the comprehensive evaluation showed different opinions on evaluation indicators reflecting the characteristics of shelters by region and types to be improved. Based on the results of this study, suggestions are as follows. First, in order to prepare for the evaluation and to alleviate difficulties in the process, prior notice of evaluation indicators and continuity of evaluation procedures should be made. Second, it is necessary to reorganize the evaluation areas, indicators, and evaluation elements not based on the monitoring evaluation of the period-centered evaluation but on the function of each type of shelters. Third, it is necessary to simplify the common areas and indicators of comprehensive evaluation. Among facility environment and safety management indicators, the results of inspection by local governments has to be reflected in the comprehensive evaluation so as to minimize administrative work, and the evaluation should be improved to contribute to the creation of a safe and healthy environment for youth shelters in response to the social and environmental changes for youth in crisis. Fourth, for the desirable use of the comprehensive evaluation results, the utilization and follow-up management of the evaluation results must be systematically performed. In other words, to achieve its original purpose, the evaluation agency should properly prepare incentives to motivate workers and make youth shelters actively participate in the evaluation, and also systematic evaluation follow-ups for supportive measures should be prepared to ensure that consulting for individual organizations is progressed according to the results. Fifth, the goal of the comprehensive evaluation is to present the direction of youth shelter operation, and it should be developed in the direction of presenting the service standards for the out-of-home adolescents in a rapidly changing environment and for the youth in crisis that are difficult to predict, beyond the social responsibility such as improving operation, efficiency, and verifying effectiveness of the shelter.

      • 제5공화국의 출판통제정책과 출판문화운동

        전성원 성공회대학교 문화대학원 2014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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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제5공화국(1981년 3월 3일 ~ 1988년 2월 24일) 시기 출판통제정책의 유형과 사례들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출판통제정책이 담고 있는 지배이데올로기와 이에 저항했던 청년지식인들의 출판문화운동 양상과 이 운동이 지니고 있는 문화적 의미와 성격을 규명하고자 한다. 제5공화국이 출범하고 유지되었던 1980년대는 정치사적으로 볼 때 30여 년에 걸친 군부정권 시대의 후반기에 해당한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이후 1979년 10·26 사건으로 권좌에서 물러날 때까지 대통령 박정희는 18년간 대한민국을 통치해왔다. 박정희 정권은 반공주의와 경제성장우선주의를 지배이데올로기로 내세워 ‘한국적 민주주의’란 미명 아래 권위주의 독재체제를 이끌어왔다. 이 시기를 군부정권의 전반기에 해당한다고 본다면, 1979년 12·12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 정권 시대와 1987년 그의 후속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노태우 정권 시대는 군부정권의 후반기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 정권 시기 경제성장의 이면에는 노동자·농민의 희생과 민주주의와 인권이 억압당하는 상황이 존재했다. 박정희 정권은 분단 상황을 앞세워 반공이데올로기를 더욱 강화하는 한편, 긴급조치 등으로 유신독재체제를 계속 유지해 나가려다가 YH 사건과 부마항쟁 등 민주주의와 인권을 갈구하는 민중의 저항에 부딪혔다. 유신체제에 대한 위기의식이 높아지는 가운데 결국 권력 내부자의 총에 맞아 죽는 10·26 사건이 발생했다. 10·26 사건은 유신체제의 위기를 고조시켰던 민중의 저항이 없었다면 발생하기 어려웠지만, 이 사건이 없었다면 제5공화국 역시 존재할 수 없었다. 권위적인 유신체제의 정점이었던 박정희의 후원과 비호 속에서 군내의 요직을 두루 차지하고, 정보를 장악할 수 있었던 신군부 세력은 ‘80년 서울의 봄’을 통해 분출되었던 민주화 열기를 진압하고 정권을 이어가기 위해 5월 광주의 희생을 요구했다. 5공 정권은 광주항쟁의 유혈 진압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서야 성립될 수 있었다. 이것은 시민사회에 대한 국가의 일방적인 힘의 우위에 의한 통치의 마지막 단계였다. 5공 정권은 출범부터 정치적 정당성이 없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처음 출범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국가 강권력(hard power)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정권을 유지할 수 없었다. 군부정권 후반기에 이르러 강권적 통제만으로 더는 정권의 안정을 보장할 수 없게 되자 5공 정권은 강권적 통제를 위장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과 방법(soft power)을 취하게 되었다. 억압적 국가장치(RSA)에 의한 직접적인 폭력과 더불어 국가의 막강한 홍보기관, 거대언론기업의 대중매체, 지배권력 블록의 사설연구기구, 대학의 연구기관 등과 같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ISA)들을 총동원해 진보적 이념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한편, 개혁 없는 체제 안정에 기여하는 보수이념을 전파·홍보하는 이데올로기 투쟁, 또는 문화투쟁(Kulturkampf)을 전개했다. 5공화국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문화정책을 국가의 주요 정책으로 입안하는 등 문화·예술 전반에 관심을 보인 정권이었다. 이 시기는 유신체제 이래 지속해 온 경제성장으로 삶의 질 향상과 문화 복지에 대한 대중의 욕구가 성장한 시기였다. 5공 정권은 정치·경제 분야의 억압적 통치체제와는 달리 문화 분야에서는 과거의 규제와 통제 지향에서 지원과 조장 위주로의 정책적 변화가 점차 가시화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이에 따라 문화의 자율적 기능이 높아지고 다양한 형태와 내용의 예술 활동이 일정 한도 내에서 보장되었다. 5공 기간 중 정치·경제·사회적으로는 사용할 수 없었던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유독 문화 분야에서는 ‘문화적 민주주의’ 또는 ‘문화 민주화’와 같은 방식으로 즐겨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문화의 상징성과 효용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숨은 의도가 있었다. 광주항쟁을 국가폭력으로 억압하는 등 정통성이 부족한 상황에서 집권하였기 때문에 5공 정권은 문화정책을 지배체제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려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1970년 전태일 열사의 죽음과 1980년 광주항쟁 등의 영향으로 대학의 청년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친미·반공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과 지배질서에 대한 본질적 회의가 출판문화운동을 통해 널리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5공 정권은 출판문화운동에 대해 사상 유례가 없는 통제정책을 펼쳤다. 5공 정권은 반공법을 국가보안법으로 통합하고, 비민주적이며 권위주의적인 정권에 저항하는 언론을 탄압하여 대규모 언론해직자를 양산하는 언론기본법 등을 제정하였다. 그 과정에서 이에 저항하는 청년세대 지식인들은 정부의 억압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출판문화운동을 펼치며 저항이데올로기로서의 민주화 담론을 널리 유포하였다. 제5공화국 정부는 이에 대한 억압수단으로 국가보안법, 출판법, 등록허가제 시행과 등록 취소, 납본제도를 이용한 사전 검열 등을 실시하였고, 출판사에 대한 불법적인 압수수색과 도서압수를 비롯해 출판인 구속을 자행하였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당시 출판문화운동이 지니고 있는

      • 共同住宅의 親環境性能 評價方法에 관한 硏究

        전성원 中央大學校 大學院 2001 국내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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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환경의 오염에 따른 환경보전의 문제는 오늘날의 산업정보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히 대처해야 될 문제중의 하나이다. 건설은 국가 경제의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6년 기준 59조원 또는 GDP의 14%에 해당하며 전체 취업자의 9%에 해당하는 전문직 및 기능직 고용창출을 하고 있다. 또한 국가의 재생산 가능한 부의 50% 이상이 건설시설에 투자된다. 따라서 건설 산업에서 운영과 자원 효율성을 증진시키는 작은 변화조차도 경제적 부와 환경 개선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건축이 다른 산업․경제부문보다 환경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매우 지대하며 그 영향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선진 각국에서는 환경친화적이고 지속가능한 개발의 개념을 도입한 환경친화적 건축, 지속가능한 건축, Green Building, 생태건축 등 다양한 이론과 개념으로 지구환경문제에 대처하면서 보다 쾌적하고 인간적인 건축물을 창출하기 위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환경친화적인 건축의 적절한 가이드 라인의 제시 및 건설 촉진을 통한 환경 보존의 활성화를 위한 환경관리기법으로 환경성능 평가제도를 도입․시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환경성능 평가제도는 건물 전과정(Life Cycle Assessment LCA)을 통한 자료조사 및 이에 대한 환경성능평가를 하여 건물의 환경성능을 인증하는 제도로 건물의 전과정동안 환경성능을 분석하여 가장 환경적으로 건전한 조건으로 설계할 수 있는 지침을 만들고 또한 환경친화적 건축의 개발이나 개선뿐만 아니라 환경친화정도의 판단등 다양한 환경관리를 목적으로 사용되어, 향후 도래할 Green Round의 각국의 건축물에 대한 환경평가에 사용될 가장 기본적인 기술수단으로 발전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선진각국은 BREEAM, LEED, GBTool, 등 자국내 경제적, 환경적, 기술적 특성에 맞는 환경성능 평가방법에 대한 연구가 이미 1990년대초부터 시작되어 현재 실제 적용단계 수준에 이르고 있으며 환경성능 평가에 따라 자국내 건물에 대한 규제 및 제한을 실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국내 건축물의 환경성능 평가제도는 도입 초기 단계로 외국의 평가제도를 일부 수정․적용한 것으로, 국내의 경제적․환경적․기술적 특성의 고려가 미약하여, 이에대한 적용에는 상당부문 우리나라 실정과 차이가 발생하여 평가결과에 대한 신뢰성에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따라서 국내 실정에 적합한 환경성능 평가방법에 대한 연구가 매우 시급한 실정이다. 이에 국내 경제적․환경적․기술적 특성을 고려한 국내 실정에 적합한 환경성능 평가방법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건축물의 사용용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구성을 이루고 있어 이에 대한 범용적인 적용은 다소 무리가 발생하며 건물 유형에 따라 구분하여 평가제도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에서는 공동주택을 대상으로 건축물의 환경성능 평가방법을 개발함으로써 건물 전반에 걸친 환경성능 평가방법의 개발을 촉진하고자 하였다.

      • 아우구스티누스의 종말론적 역사관

        전성원 서울시립대학교 2005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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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 문 초 록 이 글에서 필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종말론적 역사관의 의미와 그것의 역사적 영향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대 이후로 계속되어 왔던 그리스 - 로마적인 순환론적 역사관의 구조를 직선적인 역사관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하여 후대 그의 영향을 받은 역사관은 직선적인 역사관의 형태로 발전해 왔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직선적인 역사관은 ‘신이 이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만물을 창조했다’고 하는 확신에서 시작한다. 그의 이러한 확신은 피조물의 증거가 아니라 ‘무로부터의 창조’의 개념을 통해 입증된다. 첫째, 신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이 세계를 창조했다. 이처럼 창조에는 뚜렷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창조된 세계는 유한하며 종말론적이다. 둘째, 신만이 자존하신 존재이고 피조물은 창조자에게 전적으로 의존되어 있다. 무(無)로부터 창조된 모든 피조물은 본래의 무로 돌아가려고 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피조물이 죽음이라는 무의 위협에 직면해 있는 것은 피조물을 존재하게 하고 보존하는 존재의 근원인 신의 능력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무로부터의 창조’ 개념은 모든 만물의 시작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것은 세계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시간의 시작이기도 하다. 세계가 시간 안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창조된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입각하여 아우구스티누스는 세계가 영원하다는 옛 고전적인 윤회사상을 거부한다. 그는 모든 것이 영원히 회귀한다는 사상에 반대하여 ‘태초’라고 하는 시간의 절대적인 시작이 있다고 주장하였고, 그때 시작한 시간은 창조자의 섭리를 따라 어떤 과정을 거쳐 목적을 향해 진행해 가고 있다고 한다. 즉 창조와 더불어 시작된 시간은 역사의 과정을 통해 신의 목적이 성취됨으로써 종말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을 있는 것으로 정의를 내린다. 그래서 그는 모든 시간의 본질을 흘러가고 있는 존재로 파악한다. 시간은 비 존재에로 계속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은 객관적으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의 의식 속에서만 측정이 가능하다. 인간 안에서 체험된 시간 의식은 시간 안에서 사는 인간의 실존을 드러내 보인다. 인간은 ‘기억한 것’(과거)에서 ‘직관한 것’(현재)을 통하여 ‘기대한 것’(미래)으로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무상성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시간은 신의 섭리 속에서 종말론적인 완성을 향해 계속 진행되어 가고 있다. 그리하여 시간 세계 안에서의 인류의 역사는 두 국가의 변증법적 긴장 관계로 이루어진다. 즉 역사는 ‘신의 국가’(civitas dei)와 ‘지상의 국가’(civitas terrena)의 끊임없는 투쟁과 갈등 속에서 진행되어 간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러한 두 국가의 실재를 ‘영적’이고 ‘미래적’이고 ‘내세적’이며 ‘종말론적’인 실재로 보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역사가 수레바퀴가 아니라 직선과 같아서 한번 지나간 후에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번 지나가 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 없듯이 우리의 인생과 역사 또한 다시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역사의 심판 앞에서 후회 없는 삶을 살 것을 권고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종말론에서 특이한 것은 초기 기독교 전통 속에 남아 있던 천년왕국 사상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천년왕국을 버리고 그것을 영적인 것으로 해석했다. 이와 같이 주장함으로써 아우구스티누스는 일직선적인 역사관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그의 역사관은 후대의 역사서술과 역사철학에 다음과 같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첫째, 아우구스티누스는 목적론적 사관을 뚜렷이 함으로써 역사가 지향해야할 목표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둘째, 그는 신의 섭리 속에서 보편적인 세계사 서술의 길을 열었다. 셋째, 역사의 시간 속에 시작과 끝을 설정함으로써 역사를 일직선상에 놓게 되었고, 인류의 역사 전체를 시간 단위로 묶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역사를 시작과 끝이 있는 단위로 개념화할 수 있게 되었다. 넷째, 그는 미래지향적인 ‘신의 국가’를 시간 세계의 역사 안에서 영원 세계로 실현되어가는 도정에 있는 것으로 설정함으로써 역사에 현재적인 역동성과 의미를 부여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역사관을 통해, 혼란과 불안과 허무감과 감각적 향락주의와 기회주의, 극도의 불신, 이기주의에 빠져 있는 당시 로마인들과 후대인들을 향하여 올바른 삶의 가치관과 윤리관을 가지고 살 것을 촉구하고 있다. 즉 그는 이 세계 내에 존재하는 ‘신국’과 ‘지상국’의 갈등과 성장과 종말로 나아가는 역사의 이해를 통해서 로마인들에게 올바른 삶의 가치관과 윤리관을 심어주고자 했다. Abstract Augustine's eschatological View of History written by Seongwon Jeon In this article I have the purpose to examine the meaning and historical influence of Augustine’s eschatological view of history. Augustine changed over from a traditional Greek-Roman circular structure to a linear structure in the view of history. And then several post-Augustine's views of history have developed on the basis of Augustine's. Augustine's view of history that has a linear structure originated from a conviction that God created all things. His belief was established by the notion 'creatio ex nihilo'. He suggests it as follows: First, God created this world purposefully. Creation has an obvious purpose. Therefore, there are God's intention and divine providence in this created world. This created world has been ruled by God's definite eschatological purpose. Second, God is the only self-existing being. Creatures depend on God, the Creator completely. All creatures created out of nothing are inclined to go back to the original nothing. The existence of all creatures in itself depend on the power of God, the root of itself. Augustine’s conception of 'creation out of nothing' is the beginning of all things. This is not only the beginning of all things in this world but also of time. This world was created not in time but along with time by God. Augustine denies an old classical transmigrationism of eternal world. He insisted that the Beginning is the absolute starting point of time. And then he insisted also that time go toward the purpose after the providence of God. Because the providence of God has been fulfilled by historical course, time started at God's creation will come to an end. Augustine defines the concept of time while asking the question: what is time? Time flows without interruption. So Augustine understands that the nature of time is flowing existence. Time flows to non-existence continually. Therefore it can be measured by myself in my consciousness only. The consciousness of time reveals that human being exists in time. Human history has established on the dialectic relation of two cities(civitas). In other words it said that history has been progressed in ceaseless struggle and conflict between 'civitas dei' and 'civitas terrena'. Augustine understands 'the city' as the actual being of spirit, future, and afterlife. Augustine talks to his reader about history. Human history is not in the form of circular but linear line. So it is irreversible after once passed. Because we can't reverse the passed time, we can't do our passed life and history, either. So Augustine says that you must live a regretless life. In Augustine's eschatology, there is not the Millenarian Kingdom in the sense of Judeo-Christian tradition especially. Augustine discarded it in God's revelation and interpreted it as a spiritual one. That's why he was able to draw his own view of history in the form of linear line. Augustine has affected the philosophy of history ever since in following respects. First, it clarified that there is a goal designed by God in mankind's history. Second, it opened the way to describe the world history according to God's providence. Third, it regarded history as in the form of linear line and posited time units in the whole human history. Fourth, it could give dynamic and meaningfull factors to history on the basis of civitas d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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