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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사야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루아흐)의 개념과 역할

        조덕환 한세대학교 일반대학원 2022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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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이사야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루아흐)의 개념과 역할 조덕환(구약학 Th. M) 한세대학교 일반대학원 본 논문의 목적은 이사야서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루아흐(영)에 대해서 그 성격과 역할을 찾고 이사야서 내에서 이 루아흐가 차지하는 중요성과 위치를 제시하는 데 있다. 또한 이사야서 핵심 주제들인 심판과 구원, 시온, 거룩, 정의와 공의, 종말론이라는 측면을 이해하는 핵심 역할임을 밝히는 데 있다. 다른 이사야서 주제 연구 성과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루아흐 연구 가운데서 이사야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루아흐) 본문 전체를 다룬 연구물을 중심으로 연구의 흐름을 파악한다. 그리고 각 본문에 나타난 루아흐의 역할과 성격 그리고 문맥을 통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사야서 내에서 루아흐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제시한다. 또한 루아흐 본문들 사이에서 긴밀한 연관성이 있는 본문들은 그 관련성 연구를 통하여 이사야서의 하나님의 영이 어떻게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살펴본다. 본 논문은 본문의 진정성 여부나 이사야서를 각 시대로 구분하여 연구하는 방법을 따르기 보다는 66장 전체를 한권의 책으로 놓고 최종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의 본문을 놓고 연구한다. 본 논문에서는 이사야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 연구에 앞서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에 대한 일반적인 고찰을 해본다. 즉, 구약성서 안에서 루아흐가 어떻게 연구되어 왔는지 그 발자취를 추적하며 주요 연구물들을 중심으로 그 연구사를 진행하고 이어서 이사야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에 대한 최근 50년간 핵심 연구물들을 선별하여 연구의 방향과 진행을 살펴보고 선행 연구를 통하여 본 논문의 연구가 나아가야 할 연구 방향의 지침으로 삼는다. 또한 각 연구물에 대한 신학적인 평가를 통하여 본 논문 연구에서 어떠한 부분은 선행 연구 결과를 반영하지만 어떠한 부분은 성서적인, 학문적인 근거를 가지고 그 주장에 대한 거부를 하기도 한다. 본문 연구에서는 이사야서 하나님의 영 본문인 16개의 본문을 그 개념과 역할에 따라 첫째, 야웨의 기질/감정 또는 의지. 둘째, 야웨의 카리스마적 영. 셋째, 야웨의 비카리스마적 영으로 범주화하여 연구를 진행한다. 이러한 본문 연구를 통해 도출된 결과물을 가지고 각 카테고리별 본문들을 종합하며 더 나아가 그 하나님의 영 본문들이 이사야서 전체에서는 어떠한 역할과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밝힌다. 이렇게 종합과 이사야서 전체 안에서 세가지 범주화된 하나님의 영 본문의 역할과 위치를 밝힘으로 인하여 이사야서의 핵심 신학적 주제들을 파악함에 있어서 이 하나님의 영이 얼마만큼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본문 분석과 주요 학자들 연구와 영 분류와의 비교 분석을 통한 결과 이사야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은 윤리적 개념, 기존 카리스마적 영의 고정관념 교정, 내면의 변화, 말씀의 보편화, 이방인에게도 임하는 영의 보편화, 피조 세계 전체를 변혁시키는 우주적, 종말론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 아모스의 기도 : 아모스 7장을 중심으로

        우승화 한세대학교 일반대학원 2019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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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dissertation is a study that focuses on the prayer recorded in Amos 7 in the view of intercession. The purpose of this dissertation is to derive theological meaning from the prayer of Amos that Amos performed intercession in his prayer as a prophet, not to request God to fulfill His responsibility on the basis of the Covenant, but to ask for the unconditional mercy and grace of God. First, I discussed the argument on the relationship between prophet and prayer in the section dedicated to the background of this research. Intercession is clearly distinguished from Lament. They both include the element of lamentation, but intercession does not appeal for oneself, but it is for other people. Also, despite some scholars' argument, intercession is an important task for a prophet to deliver the people's message to God. In this viewpoint, Amos is a prophet who fulfilled the basic responsibility to be an intercessor. In the light of the Old Testament tradition, what is the prayer of Amos based on? W. Brueggemann claims that Amos' intercession was based on the covenant that God made with Jacob. He says that Amos' intercession has a purpose to remind Jehovah God about His responsibility and duty for the people of Israel. However, M. Widmer and many other scholars argue that Amos' prayer is not asking for the fulfillment of responsibility in the Covenant, but it rather is asking for the grace of God to the compassion and mercifulness of His character. According to Widmer, Amos' prayer is not commanding God to remember the Covenant with Israel in order to request the fulfillment of the responsibility of the promise. Widmer found the support for this argument from the statement in the prayer that appeals to the grace and mercy of God and the admittance of Israel's helplessness. In this point, Amos' intercession follows Moses' tradition, and it also correlate with the pattern of prophet Joel's prayer. In the canonical context, Amos' prayer stands upon the background of his identification as a prophet and messenger. Amos did not stand by his own will to become a prophet, but he was established as a messenger of judgment by the strong divine intervention (Amos 7:14-15). To the contemporary circumstance of immense corruption and unrighteous hierarchy in the society of Israel, Amos proclaimed that there will be a day of judgment to Israel. Now, Israel had to face the God of Judgment (Amos 4:12). On the other hand, some scholars focused on the fact that the series of Amos' vision is placed in the later part of the prophetic book. The vision reports are difficult to interpret the meaning from its order in terms of the document's date from the viewpoint of redaction criticism. However, in the view of canonical criticism, judgment should have a premise of Israel's sinfulness, so the vision reports are placed after the accusation of the nation's crime in order to lay the foundation for the intercession of Amos. The first two visions are not led to proclamation but to the intercession of Amos. In the first intercession of Amos, he takes the name of Jacob instead of Israel in order to emphasize the helplessness of Israel to God and lay the basis of forgiveness. For this reason, it is difficult to accept the view that Amos' prayer is based on the covenant of Jacob's tradition, and he made the appeal to God for the fulfillment of covenantal responsibility. God already faithfully fulfilled His covenant to Israel (Amos 4:6-13; 5:4). Amos only presents the helplessness of Israel to rely on God's mercy and forgiveness. However, the sin of Israel is not forgiven - the intercession only made God's mind tender to delay the coming of judgment. Also, Amos' intercession has the limitation that it did not connect to the cancelation of the judgment. Secondly, Amos made another intercession in his prayer after he saw a vision of a great ocean engulfing the land. Amos' second intercession does not ask for forgiveness, but he asks for the delay of impending catastrophe. Amos delays the judgment of God once again. God becomes patient again, and He takes the request of the prophet - He delays the judgment. Amos' intercession has three major theological meanings. First is the pathos of God. The pathos of God is the mercy of God towards the people who cannot avoid judgment for sinfulness. Intercession makes an appeal to God's pathos on the basis of the character of God which includes His love, mercy, and passion. Secondly, Amos' intercession brought change in God's will. The prophet relied on God's passion to change the will of God. Intercession can delay God's judgment, and it also can change the intensity of divine intervention. Lastly, God's ‘regret’ is emphasized. God's regret (niḥam) is not about sin, but about the tenderness in God's mind towards the sinful people. As J. Jeremias also explained, God's regret led prophet Amos to make intercession, and the judgment of God was delayed. God's regret is the change in His mind toward the people whom He loves. 본 논문은 아모스 7장에 기록된 아모스의 기도를 중보기도의 관점에서 진행한 연구이다. 아모스는 예언자로서 중보기도를 수행했으며, 그의 기도는 언약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의무이행을 촉구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조건 없는 자비와 은혜에 기인한 기도라는 논지를 토대로, 아모스의 중보기도의 신학적 의미들을 도출하는 것이 본 논문의 목적이다. 중보기도는 탄원과 명확히 구분된다. 모두 슬픔의 요소를 포함하지만, 자신을 위한 탄원과는 달리, 중보기도는 타인을 위한 기도다. 또한 일부 학자들의 논쟁에도 불구하고, 중보기도는 사람의 말을 하나님께 전하는 예언자의 중요한 직무이다. 이런 점에서 아모스는 예언자의 기본 직무를 수행한 중보기도자이다. 구약의 전통과 관련하여 브루그만(W. Brueggemann)은 아모스의 중보기도가 야웨와 야곱과의 언약을 근거로 한 것이며, 아모스의 중보기도는 이스라엘에 대한 야웨의 책임과 의무를 상기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비드머(M. Widmer)를 위시한 다수의 학자들은 아모스의 기도가 언약적 의무 이행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 즉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에 기인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호소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그의 기도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기억해야 하고, 약속과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아모스의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에 호소했고, 이스라엘의 약함을 근거로 제시했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기도는 모세의 전통과 요엘의 기도와의 공통점을 갖는다. 정경적 맥락에서 아모스의 기도가 수행된 데는 예언자로서, 그리고 메신저로서의 배경이 존재한다. 아모스는 자신의 의지로 예언자가 된 것은 아니며, 하나님의 강권적인 인도하심으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예언자임을 밝힌다(암 7:14-15). 당시 사회에 갑을관계와 사회적인 악이 편만했던 부패의 온상 이스라엘을 향해, 아모스는 이스라엘에게 심판의 날이 올 것을 선포한다(암 5:18-20).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직접 대면을 준비해야 한다(암 4:12). 한편, 몇 몇 학자들은 아모스서에서 환상 시리즈가 아모스서 후반부에 배치된 것에 주목했다. 환상시리즈는 편집비평적 관점에서 문서의 생성시기로 판단하면 순서배치에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그러나 정경비평적 관점에서 볼 때, 심판은 이스라엘의 죄를 전제해야 하기에, 환상시리즈가 죄의 고발 이후에 배치된 것은 아모스의 중보기도의 전제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처음 두 환상은 선포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는 아모스의 중보기도를 유도한다. 아모스의 첫 번째 중보기도에서, 그는 '이스라엘'이라는 호칭 대신에 '야곱'을 선택한다. 이는 하나님께 이스라엘의 약함을 부각시키고, 용서의 근거로 삼기 위함이다. 아모스의 기도가 야곱전통에서 비롯되는 언약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언약적 의무수행을 촉구하고자 했다는 견해는 수용하기 어렵다.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에게 언약을 성실히 수행했다(암 4:6-13; 5:4) 아모스는 단지 야곱의 미약함을 들어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구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죄는 용서되지 않았다. 단지 예언자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이 누그러지고 심판은 지연되었을 뿐이다. 또한 그의 기도는 완전한 심판의 철회가 아니라는 한계를 지닌다. 두 번째 불로 큰 바다와 육지를 삼키는 환상을 보고, 아모스는 다시 중보기도를 시도한다. 그의 두 번째 기도는 죄악을 용서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재앙을 중지해달라는 요청이다. 아모스는 한 차례 더 하나님의 심판을 지연시킨다. 하나님은 재차 인내하며, 그의 요청도 받아들이신다. 그리고 심판을 연기하신다. 아모스의 중보기도는 세 가지 신학적 의미를 지닌다. 우선 하나님의 정념(pathos)이다. 하나님의 정념은 죄악으로 심판이 불가피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이다.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본질적인 성품, 곧 하나님의 사랑, 자비, 그리고 긍휼에 기인하여 하나님의 정념에 호소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아모스의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의지의 변화를 가져왔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긍휼에 '의지(依支)'하여, 하나님의 '의지(意志)'를 바꾸어놓는다. 중보기도는 심판계획을 지연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의 완급을 조절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후회가 부각된다. '하나님은 후회<니함>'은 죄에 대한 후회가 아니다. 하나님의 후회는 범죄한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의 누그러짐(tenderness)이다. 예레미야스(J. Jeremias)의 설명대로, 하나님의 후회는 아모스는 예언자의 중보기도를 유도했고, 하나님의 징벌을 유보시켰다. 하나님의 후회는 그 사랑하시는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 마음의 지각변동이다.

      •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후회

        김인규 한세대학교 대학원 2019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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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은 후회 하시는가? 민수기 23장 19절은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구약은 하나님의 불변성(immutability)만을 말하지 않고 그의 뜻이 바뀌고 심지어 일련의 행동들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때 하나님의 후회 또는 돌이킴으로 번역할 수 있는 히브리어 נחם(니함)이 사용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가변성(mutability)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무엇 때문에 후회하셨는가?’하는 의구심은 매우 자연스럽다. 모순처럼 보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 개념을 주제로 이따금씩 학자들의 의미 있는 연구가 있어왔다. 후회(נחם)를 이해하려는 연구의 흐름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 된다. 첫 번째는 감정적 의지변화로 하나님의 후회를 이해하려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의 의지를 바꾸시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행위의 변화를 의미한다. 두 번째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더 깊이 할 수 있도록 돕는 신인동감론적 은유로 이해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격성과 살아계심을 기초로 하나님의 후회를 인간의 후회와 동일한 것으로 읽는 은유적 표현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끝으로 관계의 긴장에서 발생되는 하나님의 후회가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심판이라는 모순된 행동 간의 관계 또는 이스라엘과 세계와의 초월적-내재적 관계에서 발생되는 긴장으로 하나님의 후회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하나님의 후회에 대한 세 가지 이해를 종합하여 상응하는 본문들을 분석하여 종합적인 결론을 내리고자 하였다. ‘후회’(נחם)의 의미는 다음의 세 가지 주제로 구분해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구약의 장르로 자리 잡은 하나님의 후회는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고백이다. 구약 전반에 퍼져있는 하나님의 후회는 다양한 전통에서 자리 잡은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이해이다. 요엘 2장 13-14절과 요나 4장 2절은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뒤바뀐 결정들을 통해서 역사의 의미를 돌아보며, 하나님에 대한 고유한 이해를 고백하고 있다. 둘째, 하나님의 후회하심은 구원을 위한 것으로 새로운 계획을 향하도록 한다. 창세기 6장 6, 7절에서는 노아와 함께 인류의 새로운 시작을, 사무엘상 15장 11, 35절에서는 왕의 실각에서 이어지는 역사의 재편을 예고한다. 셋째, 하나님은 자신의 주권행사로서 후회하신다. 인간과 세계와 관계하시는 하나님은 심판을 선고·이행 또는 선회를 할 때 다른 어떤 것에 영향을 받지 않음으로 자유롭게 자신의 뜻을 돌이키신다. 하나님의 후회(נחם)는 그가 인간과 세계와 관계하시는 분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러는 한편 구약은 하나님의 내적 속성들 사이에서 그리고 이스라엘과 세계의 관계에서 고유한 모순을 그대로 드러낸다. 결코 양립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심판과 구원, 죄와 용서 등과 같은 하나님의 속성은 그 자체만으로도 또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긴장이 발생 한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후회는 이 긴장으로부터 기인한다. 하나님의 사랑, 자비, 은혜와 같은 자신의 불가변적 속성을 지키기 위해서 기어코 그의 가변성으로 대표되는 후회를 감내하신다. 때문에 하나님의 후회하심은 그의 자유로운 주권행사임과 동시에 인간과 세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은혜의 코드라 할 수 있다.

      • 죽음을 기억하고 삶을 누려라 : 전도서 9장 주석

        김예원 한세대학교 2018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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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도서의 모호한 지혜를 이해하는 작업은, 지혜로 가는 탐색의 길과 같다. 이는 마치, 지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코헬렛의 의도처럼 보인다. 혼돈의 현대 사회에 이 지혜는 분명 필요하다. 정경 안에서 전도서는 다른 지혜서들과 긴밀한 연결을 이루며, 동시에 자신만의 독특성을 가지고 자신의 논리를 펼친다. 전도서를 이해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첫째, 이 책안에 모순되는 진술이 나온다는 점과 둘째, 성경의 다른 곳의 말과도 모순된다는 점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학자들의 연구가 오랜 기간 이어져왔다. 본 논문은 전도서의 연구사를 살펴보고 네 가지로 정리했다. 첫 번째, 문학비평과 편집비평의 방법론이다. 코헬렛이 전통지혜의 말을 가져다 썼으나, 이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다. 즉, 모순되는 모든 내용이 코헬렛의 말이라는 것이 이를 지지하는 학자들의 입장이다. 두 번째, 인용이론이다. 코헬렛의 입장과는 다른 전통지혜를 인용하였고, 이때의 인용은 ‘동의’의 의미가 아닌 오로지 ‘반박’을 위한 인용인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상반된 입장이 혼재되어, 전도서 내부의 사고의 긴장이 생겼다는 입장이다. 세 번째, 수용이론으로 대화형식의 논박문이라는 입장이다. 인용이론의 해석이 갖는 한계를 보완한다. 코헬렛이 전통지혜를 계승하면서도 비판적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관찰을 통합시키는 것이 가능하게 한다. 네 번째 서술형 사고패턴의 적용이 있다. 잠언에서는 거의 적용되는 전개방식이 전도서에서는 ‘혼합형’으로도 나타나면서, 서로 상충되는 내용이 생겨났다는 이론인데, 본 논문의 논쟁점인 9장의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다. 9장에서 논쟁이 되는 본문은 1a절, 4-5a절, 16a절과 17-18a절이 있다. 이것들을 수용이론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1절의 ‘그 의로운 자들 그리고 그 지혜자들 그리고 그들의 행위가 그 하나님 손안에 있다’는 말은, 지혜가 안녕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는 전도서를 관통하는 코헬렛의 메시지이다. 1절은 지혜서의 구절을 응용하여, 기존에 통용되어오던 신앙, 인과응보의 믿음을 문제 삼는다. 자신이 의로운 자리에 속하였다 확신할지라도, 그 행위와 결과는 하나님 손에 있음을, 일이 일어날 시점조차 사람이 예측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선인과 악인에 대한 정당한 보응이라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동일한 운명이 그들 모두를 기다리고 있다는 관찰로부터 접근한다. 독자를 죽음 앞으로 이끄며, 허무를 철저히 경험시킨다. 4절의 속담 차용은 ‘산 개’의 가치를 따지며, 모든 산 자들에게 소망이 있음을 말한다. 무분별한 죽음에 초점을 맞춘다면 인생은 분명 악하고 부질없는 것이지만 바로 이때, 열등한 것에 더 큰 가치를 둔다. 오직 생명이 있다는 이유로. 이러한 반전의 효과가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생명이 가치의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12절부터 나오는 지혜의 한계, 16절의 지혜가 힘보다 나으나 가난한 자의 지혜가 멸시를 받는다는 발언, 18절의 지혜가 무기보다 나으나 죄가 많은 선을 무너뜨린다는, 코헬렛이 열거하는 이 말들은, 사실상 당시 독자들에게는 익숙한 전통지혜가 주던 믿음이었다. 7-10절 절정에 이르러 삶을 누릴 것을 강조하자마자, 지혜의 약점들에 대해 나열한 것은 그 의도가 분명해 보인다. 어떠한 예외의 경우는 존재한다. 지혜는 보장을 약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 아래 악한 일들을 적나라하게 보고하며, 현실적인 고민을 통해 오히려 ‘삶’을 더욱 강조하는 것이 코헬렛의 지혜다. 죽음 앞에서 삶을 대하는 그는 참으로 지성적이면서 비판적이고 객관적이다.

      • 전도서에 나타나는 죽음이해 : 상황조건적 인간학의 관점에서

        이장균 한세대학교 일반대학원 2023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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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상황조건적 인간학(Konstellative Anthropologie)’이라는 야노브스키(B. Janowski)가 제안한 방법으로 전도서 안에서 나타나는 죽음이 가지는 의미 변화를 관찰하며, 전도서에서 말하는 죽음과 다른 구약 본문의 차이를 관찰한다. 전도서에 나타나는 죽음은 전통 신앙들(토라, 지혜)과의 차이뿐만 아니라 주변 문화와의 차이도 볼 수 있는 주제다. 전도서에서 코헬렛은 죽음을 통해 삶을 해석한다. 코헬렛이 말하는 죽음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죽음은 시간을 통해서 인간 삶의 가치와 공동체의 가치를 알려준다(전 2:12-17; 3:1-9). 인간은 시간의 한계 안에서 자신과 자기 세대의 한계성을 인식한다. 이러한 한계성 안에서, 인간은 영원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공동체와 함께 삶의 가치를 찾으라고 말한다. 둘째, 죽음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능력의 한계를 보여준다(전 3:16-22; 8:1-9). 코헬렛은 인간을 살아 있을 때 행하는 것이 전부인 존재로 이해한다. 그래서 코헬렛은 매일 자신에게 주어진 수고를 통해 기쁨과 즐거움을 찾으라고 언급한다. 셋째, 죽음은 비탄과 고통을 공감하고 수용하는 표현이다(전 4:1-3). 코헬렛은 죽음을 통해서 인간이 겪는 부조리나 슬픔을 공감한다. 이는 인간을 향한 연민이자 동시에 사회를 향한 분노의 표현이다. 넷째, 죽음은 인간이 삶에서 겪는 편향성을 피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다(전 7:1-6; 7:15-18). 인간에게 악과 의로움은 삶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코헬렛은 하나님을 경외를 통해 악이나 의로움으로 치우치지 않는 삶을 살라고 언급한다. 다섯째, 죽음은 인간의 조건을 규정한다(전 9:1-6). 살아있는 자는 죽은 자와는 다르게 삶을 개선시킬 수 있다. 코헬렛은 인간이 마음 속에 있는 악에 미쳐 살다가 죽지 않는 것이 인간의 조건이라고 말한다. 코헬렛이 말하는 죽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삶의 시간을 온전히 채우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인간은 사는 동안 하나님 경외하고 자기 스스로 욕망을 관리하며 살아가야 한다.

      • 하나님의 연설의 의도 : 욥기 38-39장을 중심으로

        정준희 한세대학교 일반대학원 2022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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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의 목적은 욥기 38-39장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연설의 의도를 밝히는 것이다. 욥기 38-39장은 욥의 고난이 시작된 이후 한 번도 등장하지 않으셨던 하나님의 욥의 대면 희망에 대한 응답임과 동시에 고난 속에서 혼란스러워 하는 욥을 향한 하나님의 첫 연설이 나타나는 본문이다. 그런데 이 연설은 욥과 친구들의 악과 고난에 대한 논쟁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욥기의 전체적인 맥락 안에서 통일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로 인해, 기존의 연구에서 하나님의 연설의 의도는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고, 욥의 반응으로부터 하나님의 연설의 의의를 찾는 역추적하는 연구가 다수를 차지해왔다. 따라서 본 연구는 욥기의 하나님의 연설에 관한 기존의 연구들 보다 하나님의 의도 자체에 집중하여 진행한다. 이를 위해 첫째, 하나님의 현현을 중심으로 동사 아나(ענה), 야웨, 폭풍을 주제로 연구하여 하나님의 구원 의지와 교육의 의도를 밝힌다. 둘째, 하나님의 연설의 어조와 형식, 내용을 중심으로 욥의 발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창조를 주제로 한 하나님의 수사의문문을 통한 교육 의도를 발견한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연설의 의도는 기존의 견해대로 하나님께서 욥의 발언을 외면하시거나 그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시려는 것, 무지한 욥을 심판하고 조롱하시려는 것, 그리고 고난 중에 있는 욥을 무조건 위로하시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욥의 발언을 듣고 계셨다는 사실로 위로하시고, 욥을 고난으로부터 구원하심과 동시에, 그를 제자리로 돌려놓으시기 위해 의인 욥의 무지함에 대한 견책을 포함하여 교육하려는 의도를 가지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본 연구를 통하여 단편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하나님의 연설의 의도를 면밀히 고찰하고 욥기 전체 맥락 안에서 이해하여 하나님의 연설의 의도가 의인 욥을 향한 교육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자 한다. ABSTRACT Yahweh’s Purpose in His Speeches : With a focus on Job 38-39 Jung, Jun Hee (Th. M.) The Graduate School of Hansei University This study investigates to shed light on Yahweh’s purpose in his speeches in Job 38-39, which features Yahweh’s answer to Job’s hope to see him that has not appeared before him since the beginning of his hardship and, at the same time, Yahweh’s first speech for Job that is confused in his suffering. Yahweh’s speech feels distant from the unity of Job’s overall context, most of which covers disputes over evil and hardship between Job and his friends. Previous studies thus paid little attention to Yahweh’s purpose in his speeches. Most of the previous studies traced back Job’s reactions to find significance in Yahweh’s speeches. The present study thus focused on Yahweh’s purpose itself more than previous studies on his speeches in the Book of Job. The investigator first examined Yahweh’s will for salvation and his purpose for education by investigating Yahweh’s manifestation based on the topics of the verb ענה, Jehovah, and tempest. The study then discovered Yahweh’s purpose for education through rhetorical questions based on the topic of creation prominent in Job’s remarks with a focus on the tone, form, and content of Yahweh’s speeches. In conclusion, Yahweh’s purpose in his speeches was far from the old opinions that cited Yahweh turning his back on Job’s remarks, defending himself from Job, judging and mocking ignorant Job, and offering unconditional consolation to Job in hardship. In his speeches, Yahweh reprimands righteous Job and his ignorance and intends to provide him with education to comfort him with the fact that Yahweh has listened to his remarks from the beginning, save him from his hardship, and return him back to his original place. The study closely examined Yahweh’s purpose in his speeches were easy to be understood in fragments and promoted its understanding within the overall context of Job, demonstrating that Yahweh’s purpose in his speeches was to offer education to righteous Job.

      • 사무엘서에 나타난 루아흐

        김예원 한세대학교 영산신학대학원 2015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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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아흐>는 본래적 의미였던 자연현상으로서 ‘바람’에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움직이는 바람으로서의 ‘숨/호흡’으로 발전되고, 사람의 ‘생명력/목숨’ 더 나아가 ‘정서’ 등으로 확대 심화되어 사용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무엘서에서 <루아흐>는 한 인간을 다른 존재와 구별시키는 특권으로 작용하지만, 인간 내부에 존재하면서 그를 다른 인간과 구별시키는 고유함도 의미한다. 이때 <루아흐>는 인간에게 존재하는 감정적, 지능적 기능 전체를 통치하게 되는데, 사실 인간의 감정적 기능들은 쉽게 조절할 수 없고, 마치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 억제하기 힘들다는 측면에서 ‘바람’과 ‘숨’이 가지는 기능과 맥을 같이 한다. <루아흐>는 특정 인물에게 들이 닥치거나 그를 사로잡아 일시적이지만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유발시킨다. 이 현상은 대상의 윤리적 상태와는 무관하게 발생하며 그저 야훼의 현존과 행위를 위한 표식으로 본다. 즉 <루아흐>자체가 야훼의 현존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구약에서 야훼의 <루아흐>는 야훼의 활동력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사무엘서의 <루아흐>는 야훼에 대한 사람의 조정 불가능성과 야훼의 활동성 혹은 역동성에 대하여 암시하고 있다. 사람의 노력으로 얻거나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가시적인 야훼의 힘을 이 땅에 가시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하는 한 방편이다. 물리적이고 신체적 차원에서 급작스러운 변화를 의미하나, 표식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즉 내면적 정화나 회개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단지 야훼가 그 안에 존재한다는 표지적 역할 즉, 야훼의 행위를 나타내어 보여준다는 것이다. 사무엘서에 나타나는 <루아흐>는 특정 인물에게 임하는 그들만의 전유물로 나타나고 있다. 구약은 <루아흐>자체와 야훼를 개념적으로나 내용적으로 분리하지 않는다. 조직적으로 서술하지 않는다. 이는 구체적인 체험을 통해서만 이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속적 의미와 신학적 의미는 정확하게 구분되기가 어렵다. 또 다른 사무엘서의 <루아흐>의 독특한 특성은 ‘악령’에 대한 것이다. <루아흐>를 야훼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인간의 감정과 관련하여 볼 때에, 그 감정들 대부분은 부정적인 정서와 연결되고 있었고, ‘악한 영’ 역시 인간을 사로잡아버리는 여러 영들 가운데 부정적 기능을 하는 영의 하나로 이해될 수 있었다. 사무엘상 16:14, 15, 16, 23; 18:10; 19:9등에서 살펴보았듯이 악령에 시달리는 사울의 모습이 등장한다. ‘야훼께서 보내신 악령’이라는 표현이 계속해서 나온다. 히브리어 문장에서 두 개의 연계 형이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때 일반적으로 가능한 번역은 ‘악한 신의 영’이지만, 유일 신적 관점에서 ‘악한 신의 영’이 아닌 ‘야훼께서 보내신 악한 영’이라고 번역하는 것이다. 감정은 한 인간의 영혼을 구성하고 있는 의지와 성향이 지닌 활기차고 감지 가능한 활동이다. 참된 신앙은 대체로 감정 안에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야훼는 무감각하며 생기 없는 무감각한 종교를 취하지 않는다. 성서의 여러 곳에서 야훼 스스로도 활발한 감정의 표현을 나타내고 있다. 말씀들의 통해 우리는 영적으로 열정적인 상태에 있어야 하며, 우리의 마음이 생동감 있는 신앙안에 거해야 함을 알 수 있다(롬 12:11; 신 6:4-5; 10:12; 30:6). 본서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사람의 의지가 야훼의 뜻과 상반된 방향을 가질 때, 그 감정의 상태이다. 일반적으로 감정(affictions)과 격정(passions)을 종종 같은 것으로 취급하나, 이 사이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감정은 의지와 성향이 모두 왕성하고 생생하게 활동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비해, 격정은 본능에 미치는 효과가 더 갑작스럽고 더 격렬하며 충동적인 상태로서 통제가 되지 않는 경우에 사용되는 단어다. 사울에게 임한 ‘야훼의 악한 영’이 이러한 격정과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사울은 모든 상황의 흐름을 알면서도 야훼의 굳은 결단에 대하여는 알지 못하였다. 야훼의 뜻에 어긋나버린 사울은 상황에 대한 올바른 판단이 불가능해졌다. 사울은 자신이 위태롭다는 사실을 제외하고서는 다른 것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한다. 사울은 자신의 위태로움이 다윗으로부터 말미암는다고 인식하였으나, 내러티브는 이것을 야훼의 목적에 의하여 처하게 된 상황임을 명백히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야훼의 냉엄한 의지와 병적인 그러나 막강한 사울의 대결로 볼 수 있다. 삼상 11:6에서 하나님의 <루아흐>로 인하여 승리를 얻고 그것이 본인의 것이 아님을 명확히 알았던 사울이 그 사실을 잊어버린 것으로 본다. 사울의 주인이 참으로 야훼이심을 잊은 것이다. 동일하게 야훼의 <루아흐>를 수여받은 다윗은 권력 투쟁의 와중에도 야훼의 목적을 향하여 묵묵히 자신을 내어 맡겼으나, 사울은 이것에 맞섬으로서 야훼의 악한 영에 의해 고통을 받는다. 다윗에게는 야훼의 <루아흐>의 임재가 지속되면서 이전의 황홀경 체험자들과 분명한 구별을 갖게 된다. 거룩한 감정이 거하는 곳이 몸이 아니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몸의 상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사울이 하나님

      • 창세기 1:1-2:4a에 나타난 고대근동 신화의 탈신격화 연구

        김동훈 한세대학교 대학원 2015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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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cients' mythical imagination is well brought out by examining on their delineation regarding nature. They believed the nature itself contained divine order and also endowed all things in natural environment with divinity. This kind of faith led to animism and physiolatry resulting in advertising their polytheistic character of the society. However, through careful consideration of Israel's creation account and allowing for common cognitive environment at the same time, we can plainly see that the creation account found in the Bible, especially Gen 1:1-2:4a, has a distinctive feature. The writer of Gen 1:1-2:4a boldly achieves eliminating mythological character of all surrounding nature. We call this process, demythologization. Since the mid-20th century, some ecologists began to assert that the root cause of ecological crisis we have been facing originates from the creation account in the Bible. They have blamed the Bible for causing anthropocentric understanding of nature and also the dichotomous 'God-world paradigm' which they thought it justified human exploitation of nature. However, a closer look at the texts reveals mistakes in their viewpoints. The purpose of the demythologization process by the author in Gen 1:1-2:4a, is for his readers and hearers to conceive ‘God-centric' view of the world and not 'anthropocentric' understanding of nature. Through cosmically extending the sovereignty of God in the reality of the exile period and socio-political crisis the author endeavored to secure Israel's identity and their view of faith. This paper premises that imageries of nature in Gen 1:1-2:4a are reflecting the mythological ones’ from neighboring country to some degree which occurred through the interaction within the cognitive environment of Ancient Near East in its days. However, the usage of Ancient Near Eastern mythological imageries by the author of the Bible is not because he's a blind admirer due to his exhaustion of imagination. The reason of his usage is to draw in the mythologized imagery intentionally in order to demythologize them and proclaim 'God-centric' view of the world which it was his theological plan. These assertions in this paper is undergirded by the reconstitution of demythologization intended by the author through comparative studies between the imagery of nature in Gen 1:1-2:4a and its probable corresponding imagery found in the Ancient Near East suggested by the scholars. Particularly the mythological imageries of Egypt exhibits high correlation with Gen 1:1-4:2a. As the final outcome, this paper is emphasizing that the author's overall narrative view which is presented in a consistent fashion in Gen 1:1-2:4a is in fact the demythologization of Ancient Near Eastern mythology. Therefore this certainly shows that the text is 'God-centric' and not 'anthropocentric' composition, which once again substantiate the fault of the criticism to creation account in the Bible made by the ecologists in the mid-20th century. And also this paper has significance for synthesizing the demythologizing features found in Gen 1:1-2:4a which was partially pointed out by scholars so far. 자연에 대한 고대인들의 신화적인 상상력은 그들이 자연에 대하여 어떻게 기술하였는지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들은 자연 그 자체에 신적 질서가 있으며, 신성이 자연환경의 모든 사물 속에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은 정령신앙과 자연숭배로 이어져 사회는 점차 다신론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창조기사를 살펴보면 당시의 공통적인 인식론적 환경을 고려했을 때 매우 특징적임을 알 수 있다. 창세기 1장의 성서기자는 모든 주변 환경의 신화적 성격을 제거하는 일을 담대하게 성취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자연에 대한 탈신격화라고 부른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몇몇 생태학자들은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생태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성서의 창조기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성서의 창조기사에 나타난 자연에 대한 탈신격화로 인하여 사람들이 ‘인간 중심적’인 자연이해와 이분법적인 ‘하나님-세계 패러다임’을 갖게 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러한 관점들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창 1:1-2:4a에서 성서기자가 보여주는 탈신격화 과정의 목적은 그의 독자들 혹은 청자들로 하여금 ‘인간 중심적 자연이해’가 아닌 ‘하나님 중심적 세계관’을 갖게 하는 데에 있다. 성서기자는 포로기의 현실과 사회·정치적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전우주적으로 확장하여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신앙관을 지키려 했다. 본고는 창 1:1-2:4a에 나타난 자연에 대한 표상들이 고대 근동 당시의 인식론적인 환경 안에서 이루어진 상호작용으로 인해 이웃 나라들의 신화적 표상에 대한 어느 정도의 반영을 나타내고 있음을 전제한다. 그러나 성서기자가 고대 근동의 신화적 표상들을 사용한 것은 상상력 고갈에 의한 무비판적인 도용으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성서기자가 이를 사용한 것은 신격화된 표상들을 의도적으로 끌어들여 그것들을 모두 탈신격화시킴으로써 ‘하나님 중심’적인 세계관을 천명하기 위한 신학적인 의도로 비롯된 것이다. 본고의 이러한 주장은 창 1:1-2:4a에 나타난 자연에 대한 표상들과 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고대근동 신화 안에서의 가능성 있는 대응적 표상들을 비교 연구함으로써 성서 기자의 탈신격화 과정을 재구성하는 것을 통해 뒷받침 된다. 특히 창 1:1-2:4a이 이집트의 신화적 표상들과 높은 연관성을 보여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창 1:1-2:4a에서 일관성 있게 나타나는 성서기자의 전체적인 서술 관점이 고대근동 신화의 탈신격화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필히 ‘인간 중심적’이 아닌 ‘하나님 중심적’인 초점을 강력히 보여주며 이러한 사실은 20세기 중반에 나타난 생태학자들의 성서 창조기사에 대한 비판이 잘못되었음을 또 한 번 입증한다. 또한 본고는 창 1:1-2:4a의 본문과 관련하여 각각의 학자들이 부분적으로만 지적했던 탈신격화적인 특징들을 종합해보는 의의를 갖는다.

      • 사사기에 나타난 <루아흐>

        김주현 한세대학교 일반대학원 2012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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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 문 초 록 사사기에 나타난 <루아흐> 김주현(Th. M) 한세대학교 사사기는 구약의 사도행전이라 불릴 정도로 ‘영’의 역사가 많이 나온다. 그렇기에 구약의 <루아흐>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사사기는 중요하다. 또한 <루아흐>를 중심으로 성서본문을 해석하는 것은 신학적 해석에 있어서 중요한 방법 중에 하나이다. 사실상 본문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루아흐>를 중심으로 보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는 많은 의미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이러한 연구가 없는 것이 문제이며 그나마 2008년에 나온 마틴의 연구가 있으나 더욱 발전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연구된 사사기 또는 <루아흐>의 연구를 통해 사사기의 <루아흐>를 살펴보면 첫째, 본문에서 나타나는 <루아흐>를 <야훼>와 동일하게 여김으로 <루아흐>만이 갖는 역할과 의미를 간과하고 있다. 그래서 둘째, <루아흐>를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능력으로 본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루아흐>가 임하지 않은 사사들에게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난다는 문제가 있다. 결론적으로 <루아흐>를 구별하여 인식하지 못하고 셋째, 후대의 해석적 눈으로 사사기에 <루아흐>의 역할과 의미를 바라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럼으로 이 연구를 통해 첫째, 사사기에서 <루아흐> 본문만을 따로 떼어 놓고 보면 특별한 기능이 있음을 발견했다. 우선 사사기가 여호수아의 업적을 뒤집고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면 <루아흐> 본문은 사사들의 업적을 뒤집고 그들이 야훼 구원사역의 동역자로서 얼마나 부족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둘째, 특별한 구조가 있음을 발견했다. 사사기의 내러티브들의 본문(삿 3:7-16:31)에서 더욱 타락해 가는 4단계의 처음은 모두 <루아흐>가 임하는 사사들의 내러티브들로 시작한다. 이를 통해 <루아흐>가 특별한 능력이라는 기존의 연구들은 거부된다. 오히려 능력적인 면은 축소되며 <루아흐>는 심판의 상황으로 가는 사사기와 사사들의 모습을 부각시키고 있다. 셋째, 옷니엘 내러티브를 통해 ‘<루아흐>의 임재 3단계’를 정리했다. 이를 통해 <루아흐> 임재를 기준으로 깊어지는 사사들의 문제점을 밝혔다. 그리고 그 속에서 드러난 <루아흐>의 역할과 의미를 찾아보았다. 더 나아가 <루아흐>가 나오는 각각의 내러티브를 살펴봄으로서 첫째, 개별 사사들에게 <루아흐>가 임한 방식과 역할을 통해 사사들이 갖고 있던 특성을 찾아보았다. 그래서 야훼의 구원사역에 동역자가 될 수 없는 이들에게 특별히 <루아흐>가 임함으로 구원에 대한 야훼의 끈질긴 사랑의 마음을 살펴보았다. 둘째, 사사기에서 <루아흐>의 역할과 의미는 카리스마적 능력이나 전쟁의 승리와 같은 것에 있지 않음을 밝혀 보았다. 사사기의 구원 사역의 주체는 야훼로 진정한 사사는 야훼뿐이다. 옷니엘 내러티브에서 <루아흐>(삿 3:10)는 사사들의 변화 모습을 드러내주는 기준 역할을 한다. 기드온 내러티브에서 <루아흐>(삿 6:34)는 겁쟁이 기드온을 어둠에서 빛으로 끌어내어 구원의 시작점을 연다. 구약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루아흐 라아>(삿 9:23)는 내러티브들의 가운데 위치해서 <루아흐>의 영향력 축소와 개인적인 실수나 사용이 확대되는 기점역할을 한다. 입다 내러티브에서 <루아흐>(삿 11:29)는 협상가 입다를 통해 야훼의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마음을 보여준다. 삼손 내러티브에서 <루아흐>(삿 13:25, 14:6, 19; 15:14)는 블레셋으로 인한 위험이 아닌 순간에 자기만 생각하는 삼손을 지키고 그가 하나님과 자신과 백성에게 실수하지 않도록 이스라엘을 구원으로 이끄는 작은 빛을 지키려 애쓴다. 야훼는 어떠한 순간에도 <루아흐>를 받을 지도자를 준비하시고 그를 보호함으로 죄와 억압에서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구원의 시작을 만드신다. 따라서 사사기에서 나타난 <루아흐>는 겉으로 드러나고 있는 심판을 향해가는 백성들의 운명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루아흐>는 백성을 구원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야훼의 마음을 반전(反轉)적으로 드러내주는 간접적인 능력이다. 한 마디로 사사기의 <루아흐>는 자기백성을 어떠한 상황에서도 구원을 향해 이끌려는 야훼의 끈질긴 사랑의 빛이다. Abstract <rûaḥ> in the Book of the Judges Kim, Joo Hyun Major in the Theology of Old Testament The Graduate School Hansei University The Book of Judges mentions "Spirit" so many times that it is sometimes called "Acts of the Apostles of the Old Testament." Thus, it is very important to study rûaḥ in the Old Testament. Interpreting the text with focus on rûaḥ is an important method of theological interpretation because if rûaḥ will not be focused on when studying the text, many important meanings may not be revealed. The problem, however, is there have been few studies on this. Among these was Martin’s study in 2008, which needs to be further developed. The results of the examination of rûaḥ in the Book of Judges through the existing researches on the Book of Judges or on rûaḥ show the following: (1) as the rûaḥ that appears in the text is regarded as the same as Yahweh, the role and meaning of rûaḥ are overlooked; (2) rûaḥ is regarded as a special power granted by God, which is a problematic interpretation because rûaḥ is not recognized distinctively as the same phenomenon occurs to the judges who have not received rûaḥ and (3) it results in the error of viewing the role and meaning of rûaḥ from the interpretative perspective of posterity. Through this research, the following were found: (1) When only the rûaḥ text is viewed separately in the Book of Judges, there are special functions. If the Book of Judges reverses the achievements of Joshua and reveals the reasons for such, the text of rûaḥ will reverse the achievements of the judges and will reveal that they are inadequate salvation coworkers. (2) There are special structures. In the text of the narratives in the Book of Judges(Judg. 3:7-16:31), the first of the four stages of degradation begins with the narratives of the judges who receive rûaḥ Through this, the existing researches that regard rûaḥ as a special power are rejected. Rather, the aspect of power is reduced, and rûaḥ highlights the appearance of the judges in the Book of Judges by turning to the circumstances of judgment. (3) Through the Othniel narrative, the three stages of the dwelling place of rûaḥ were summarized. Through this, the deepening problems of the judges were clarified based on the dwelling of rûaḥ and the role and meaning of rûaḥ revealed in it were explored. Further, by examining each narrative where rûaḥ appears, first, the characteristics of the judges were examined based on how rûaḥ comes to the individual judges, and their roles. By so doing, Yahweh’s tenacious love for salvation, with the special rûaḥ dwelling in those who cannot become Yahweh’s salvation coworkers, was examined. Second, an attempt was made to clarify that the role and meaning of rûaḥ in the Book of Judges do not consist in such things as charismatic power or victory in war. The principal agent of salvation work in the Book of Judges is Yahweh, and the true judge is only Yahweh. In the Othniel narrative, rûaḥ(Judg. 3:10) plays the role of a criterion showing the changing appearance of the judges. In the Gideon narrative, rûaḥ(Judg. 6:34) marks the starting point of salvation by leading the coward Gideon from darkness to light. The rûaḥ rahȃ(Judg. 9:23) that first appears in the Old Testament is placed in the middle of the narratives and plays the role of the basic point of the reduction of the influential power of rûaḥ or of the expansion of the individual errors or use. The rûaḥ n the Jephthah narrative(Judg. 11:29) shows Yahweh’s heart of "nevertheless" through the negotiator Jephthah. The rûaḥ n the Samson narrative(Judg. 13:25, 14:6, 19; 15:14) tries to maintain a little light that leads Israel to salvation, to protect Samson, who thinks only of himself at the moment of danger not caused by the Philistines, and to keep him from making mistakes in relation to God, himself, and the people. At any moment, Yahweh prepares the leader who will receive rûaḥ and makes the beginning of salvation that of the start of an upright life, helping him turn away from sin and repression by protecting him. Accordingly, the rûaḥ that appears in the Book of Judges shows that the fate of the people at the time of judgment is revealed outwardly. At the same time, however, rûaḥ is an indirect power that reversely reveals the heart of Yahweh, who converts the people for their salvation. In short, rûaḥ in the Book of Judges is the tenacious love of Yahweh, who leads His people to salvation come what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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