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西游錄」 所在 漢詩에 나타난 韓溪 李承熙의 文明意識

        송지현 영주어문학회 2023 영주어문 Vol.53 No.-

        This study is to figure out Lee Seung-hui’s Civilization Consciousness(文明意識) in the poem of 「Seoyurok(西游錄)」. Lee seung hui is a korean independence activist during the colonial period. In 1909, He established a base of independence movement which is called ‘Han heung dong(韓興洞)’ in Mishan of Jilin province, but he m oved a base of independence movement to Andong of Fengtan province. He found out Gonggyo Movement(孔敎運動) in Andong, so he established Korean Organization of Confucius Religion in Manchuria(東三省 韓人孔敎會). His branch was officially approved by Gonggyohoe (孔敎會) where there is a main branch in Beijing, which made him visit Qufu. 「Seoyurok」 is the record of journey in Beijing and Qufu. It is the travel essay, and he expressed his feeling about his journey in the poem . We found out Lee Seung-hui’s Civilization Consciousness in the poem of 「Seoyurok」. When he moved from Andong to Beijing, he mentioned Dangun and Gija. He said that Dangun founded the country and Gija is the person who transmitted civilization and gave edification. In addition, it showed that Consciousness of Native Land(故土意識) which recalls previous territory that was part of Korea through Dangunand a sense of self-esteem(自尊意識) that Korea is the only one country with authenticity of confucian culture through Gija. He had a pride of Confucian culture through Dangun and Gija. When he experienced westernized china and western culture, he worried about the future, but at the same time he accepted westernization from the perspective of Sinocentrism. Lee Seung hui tried to keep korean history and tradition, even though he was in difficult situation. A lot of his works he had performed in China could be highly appreciated as a kind of independence movement that dreamed of new beginning and revival of our nation. 이 연구는 한계 이승희의 「서유록」 소재 한시에 나타난 문명의식을 찾기 위해 시도되었다. 이승희는 우리나라가 일제의 통치를 받게 되자, 중국으로 망명했던 인물이다. 그는 1909년 길림성 밀산부에 ‘한흥동’이라는 정착촌을 건설하였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1913년 봉천성 안동현으로 이동하였다. 안동현에서 중국의 공교 운동에대해 알게 된 이승희는 동삼성한인공교회를 설립하였다. 그리고는 곧장 북경으로 가서 공교회의 지부로 승인을 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하여 곡부도 다녀오게 되었다. 안동현을 떠나 북경과 곡부를 둘러본 여정을 담은 기록이 바로 「서유록」이다. 「서유록」 은 이동 경로와, 각 공간에서 느낀 바를 쓴 한시를 수록한 일기체 기행문이다. 「서유록」의 한시를 통해 이승희의 문명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안동현에서 북경으로 이동할 때 단군과 기자가 종종 언급되었다. 기본적으로 단군은 나라를 세운 국조로, 기자는 문명을 전달하고 교화를 펼친 인물로 인식하였다. 단군을 통해 고대의 영토를 떠올리는 고토의식이 주로 드러났으며, 기자를 통해 우리나라가 유교 문화의 정통성을 가진 유일한 나라라는 자존의식이 나타났다. 이승희는 단군과 기자를 통해서우리나라의 오랜 역사를 잊지 않고 유교 문화에 대해 자긍심을 갖는 태도를 보였다. 또한 이승희는 서구화된 중국의 현실을 맞닥뜨리고 서양인을 직접 접하면서, 서구화에 대한 우려와 안타까움을 표출하였다. 동시에, 중화의식의 기준에서는 서구를 인정하는 유연한 태도도 보였다. 서구에 대한 낯섦과 거부감을 중화의식으로 극복하며, 우려와 기대가 공존하는 의식을 드러냈다. 이승희는 암울했던 시대적 상황과 험난한 타국에서의 현실 속에 우리나라의 역사와 전통 의식을 지키려 노력했던 인물이다. 그가 우리 민족의 새로운 시작과 부흥을꿈꾸며 펼쳤던 중국에서의 다양한 활동들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 KCI등재

        신광하(申光河) 기행시의 몇 가지 국면

        이은주 ( Yi Eunju ) 한국한문고전학회(구 성신한문학회) 2018 漢文古典硏究 Vol.36 No.1

        이 글은 신광하의 기행시에 나타난 몇 가지 측면을 살펴본 것이다. 전 생애에 걸쳐 여러 차례 여행을 떠났던 만큼 신광하는 여행으로 유명하고, 그의 시문 역시 주로 여행이라는 관점에서 연구되었다. 다만 그동안 신광하의 기행시에서 주목된 점은 주로 백성의 피폐한 삶을 고발하고 현실비판적인 서사시 창작의 맥락이었고, 논의대상은 주로 「북유록」과 「백두록」에 한정되었다. 그러나 신광하의 기행시권은 단일하지 않고 「사군록」, 「서유록」 등 다양한 관심사와 성격을 보여주는 시들이 많다. 이 글의 목표는 신광하의 기행시가 다양한 층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밝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신광하가 맏형 신광수에게서 일정한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였다. 「북유록」과 「백두록」에 수록된 시는 주로 함경도 백성들의 피폐한 삶과 그 참상을 보여주는 데에 있지만, 여타의 시에 비해 좀 더 구체적이고 특수한 상황을 그리고 있다. 신광하는 이 일대를 다닌 뒤에 관료들에게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했을 정도로 관의 수탈과 백성의 고통, 임금의 은혜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수준을 넘어서 구체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서유록」은 평양을 유람한 일반적인 시처럼 보이지만, 세상을 떠난 신광수의 흔적을 발견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때로는 신광수의 시가 남아있는 곳에서 감회를 느끼며, 때로는 신광수의 예전 시를 염두에 두고 시를 짓고 있으며 때로는 신광수가 평양에서 지었던 시를 환기시키는 내용의 시를 지었다. 「사군록」의 경우에는 인문 경관보다는 기이한 장관을 형상화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이렇게 신광하의 기행시는 다양한 편차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평생 여행에 몰두했던 신광하가 가지는 개성일 것이다. This article examines several aspects of Shin Kwangha's travel. He had traveled all over the country for many years, and he was famous for his trip, and his poems were also studied mainly from the perspective of travel. However, in the meantime, Many studies on Shin Kwangha's travel poems have been mainly focused on the "Bugyurok" and "Baekdur ok" in the context of the creation of epic poetry, which criticizes the life of the people. However, there are many poems that show various interests and personality, such as "Sagunr ok". The point of this essay is that Shin Kwangha has various levels of travel and Shin Kwangha is influenced by his older brother Shin Kwangsu. The poems in "Bugyurok" and "Baekdurok" mainly show the depraved life of the people of Hamkyung Province and their devastation, but they are more specific than other poems. Shin Kwangha has been dealing with concrete issues beyond the typical showing of the grief of the people, the suffering of the people, and the grace of the king so much that he tried to present a solution to the bureaucrats after attending this area. "Seoyurok" seems to be a general poem that traveled to Pyongyang, but it is trying to discover the traces of Shin Kwangsu, who left the world. Sometimes he felt relieved in the place where Shing Kwangsu's poetry remains, sometimes making poetry with Shin Kwang-soo's poe m in mind, and occasionally making poem that reminds us of Shing Kwangsu's Pyongyan g masterpiece. In the case of "Sagunrok", the use of natural products was prominent. In order to emphasize the rugged natural scenery, Shin Kwangha focused the poetic expressi on on maximizing this point.

      • KCI등재

        호고와好古窩 류휘문柳徽文이 쓴 기행일기의 전존傳存 양상과 자료적 가치

        최은주 한국국학진흥원 2022 국학연구 Vol.- No.48

        본고는 현전하는 일기 자료가 저자 친필본부터 문집 수록본까지 그 형태가 다양하다는 것과 때로는 같은 저자의 같은 기간 같은 경험의 일기가 서로 다른 형태로 함께 전해진다는 사실을 일차적으로 주목한 것이다. 더불어 일기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인 현장성과 즉시성을 감안할 때 일기자료의 전승과 보존 과정에서 그 특징이 어떻게 유지되고 또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살펴보려 한 것이다. 그 사례로서 호고와 류휘문이 직접 작성한 필사본 기행일기 5종과 류휘문 사후 문집에 수록된 기행일기 4종 그리고 문집에 수록된 관련 시 작품을 함께 검토 분석했다. 그리고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차이점을 포착했다. 필사본 기행일기 5종 가운데 1종은 현장성과 즉시성이 두드러지는 친필 초고본이었으므로, 류휘문의 기행일기는 동일 기간 동일 여행의 일기 4종이 현장에서 작성한 초고본과 여행 직후 손수 정리한 편집본 그리고 류휘문 사후 간행된 문집에 수록된 것까지 총 3개의 형태가 모두 남아있는 셈이었다. 살펴본 결과 류휘문의 기행일기는 현장 초고본에서 문집에 실리는 과정까지 역동적인 전승 보존의 양상을 거쳤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장 초고본은 여행 도중 작성한 것으로 그때그때의 주어진 상황 속에서 기본적인 체계 없이 날짜의 흐름대로 즉석에서 바로 기록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생생한 현장감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류휘문이 여행을 마치고 손수 정리한 편집본의 일기는 현장 초고본보다 현장감은 다소 떨어졌지만 몇 가지 측면에서 자료적 활용 가치가 극대화되었다. 일단 여행 지역에 대한 다방면의 지식 정보를 포함해 그 내용이 풍부했고, 다음으로 지인들과 여행 경험을 공유하기 위한 여행 지침서의 성격이 두드러졌으며, 마지막으로 여행을 매개로 또는 여행을 소재로 창작한 시문詩文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어서 작문 동기와 배경을 생생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크게 부여할 수 있었다. 더불어 여행을 매개로 주고받은 지인들의 시문도 같이 실려 있어 그 연결 고리를 읽어내는 것도 용이했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적 경향의 자료적 가치는 후손들의 노력으로 문집에 수록되면서 크게 약화되었다. 문집의 기본 체제에 맞추기 위해 하나의 저술을 해체해 문체에 따라 별도로 수록했고, 지면의 한계로 인해 내용을 대폭 산삭했으며, 여행을 매개로 주고받은 지인들의 시문이 모두 누락된 것이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면 문집 수록 일기는 보이지 않는 그 이면의 기록 배경에 대한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