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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우 ( Cheol Woo Lee ) 한민족문화학회 2009 한민족문화연구 Vol.28 No.-
The sample the present time when boils investigates about structure and quality of the Dan-gun myth which us keeps the oldest mythical circle. To myth the unreality with actuality, appears basically in impossible this possibly talk inside and there is a case which is tolerated. And like this the quality which is universal is visible Dan-gun myth. If is like that and does what kind of point of Dan-gun myth do to make like this thing tolerate. When structure this the mythical quality and mythical structure are immanent simultaneously, with the fact that the quality from before is tolerated. The sample from this world-wide myth theory of the most which is interpreted the Dan-gun myth which has opposing structure and comparison (3 chapter) does and discusses and the tripodal structural set reason of Dan-gun myth is popular world-wide mythical quality and universal discusses. The latent tripodal structure which is a structure of Dan-gun myth goes in gear and with nanative quality of Dan-gun myth the popularity which is a goal of myth and accomplishes also political of myth accomplishes number of copies with the fact that. Creates a myth and according to the aspect which develops the culture and a philosophy and a narrative structure of the people arm triumph of the transposition opposition which is a foundation of world-wide mythical interpretation changes. The narrative composition power from myth above that and equips the transposition opposing structure which is a fact that. In order for to respect Dan-gun`s godless the absoluteness of are contrary to use the mythical narrative technique which amalgamates in one place. The mythical quality observed being provided with the various branch the sample from, godless characteristic breaks hereupon in the center but popularity, justifiability, justification, political and the subordinate sincerity profile of myth Does not state above the side which is subordinate the margin the viewpoint which is various could be included the magnification of discussion under guarding against should have boiled referred in the method of the medicinal wine many. The fragrant class of myth all satisfactorily finally, means that beconrs piece which operated in the method which distinguishes the aspect which becomes.
단군신화의 웅녀 서사를 통해 본 원시-고대 한국인의 인간관 -『삼국유사』본을 중심으로
정소연 국제비교한국학회 2024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32 No.2
본고는 삼국유사 소재 단군신화의 ‘웅녀 서사’ 부분을 건국신화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웅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인간의 서사로 접근한 것이다. 단군신화의 웅녀 서사 는 곰에서 인간이 되는 과정이 매우 자세하다는 점이 주목되는 텍스트로서 이에 나 타난 인간의 자기정체성을 살펴보았다. 2장에서는 웅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서사로, 웅녀는 사람이 되기 전에는 호랑이와 신과의 관계에서 수직적이거나 경쟁적이지 않 고 수평적이고 평화로운 관계를 지향하였고, 사람이 된 후에도 다른 생명과 소중한 관계를 맺고자 하였음을 살펴보았다. 3장에서는 인간이 되는 과정 자체에 더 초점을 두고 웅녀 서사에 나타난 인간의 자기정체성 인식이 어떠한지 살펴보았다. 곰은 다른 건국시조신화의 특성과 달리 빛에 대한 금기를 지키되, 신이 말한 100일이 아니라 21일만에 인간이 됨으로써 인간이 신에게만 의지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자유의 지를 통해 천명을 변화시키는 적극성, 주체성, 고유성을 가진 존재라는 인식을 살펴 보았다. 이로써 본고는 단군신화의 웅녀 서사를 중심으로 원시-고대 한국인이 인식 한 인간의 정체성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논의함으로써 단군신화에서 웅녀 서사 의 위상과 의의를 새롭게 조명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This paper approached Ungnyeo(熊女) as a human being and discussed it as a human narrative, focusing on the ‘Uungnyeo narrative’ part of the Dan-gun(檀君) myth in Samguk Yusa(三國遺事). The Ungnyeo narrative of the Dan-gun myth is a text that notes that the process of a bear becoming human is very detailed, and in Chapter 2, I read this narrative as a story in which Ungyeo is the main character. Before Ungnyeo become a human, it was examined that Ungnyeo aimed for a horizontal and peaceful relationship with a tiger and god, not vertical or competitive, and wanted to establish a valuable relationship with other lives even after becoming a human. Chapter 3 focused more on the process by which a bear becoming a human being itself and read it as a narrative featuring humans. The bear and the tiger are the two paths that humans choose with free will, and unlike the characteristics of the foundation myths, the bear is not passive being. God said through taboos on light in 100 days, but the bear reduced to 21 days, it shows the perception that humans are beings with activeness, subjectivity, and uniqueness that change heaven’s will. As a result, this paper is meaningful in that it sheds new light on the status and significance of the Dan-gun myth by discussing how human identity recognized by primitive ancient Korean appears, focus- ing on the Ungnyeo narrative of the Dan-gun myth.
이재원 고조선단군학회 2003 고조선단군학 Vol.9 No.-
A Study on the Dan-Gun myth in the history of south and north Korea literature
강영경 ( Kang Young-koung ) 한국여성사학회 2012 여성과 역사 Vol.- No.16
본 논문은 『삼국유사』 고조선조의 기록을 분석하여 웅녀의 역할을 살펴본 것이다. 단군신화 속에서 곰이 인간으로 된 의미는 수렵생활을 하는 곰토템족이 농경생활을 영위하는 환웅족의 선진적이고 안정적인 식량획득방법을 수용하여 자신들에게 맞게 수렵문화의 기반 위에서 농경문화를 결합시킴으로써 풍요로운 사회를 성취해 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웅녀는 인간이 되기 위해 神과 환웅에게 기도했지만 환웅은 답이 없었다. 신이 제시한 쑥과 마늘은 우리 몸을 이롭게 해주는 식물성 食材이자 아픈 자를 치료해 주는 藥材에 관심을 가지고 적응하면서 관찰하고 그 효용가치를 알아 가면서 필요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보관해두고 비축하고 재배할 필요가 있는 식물임을 알게 해 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신이 제시해 준 100일의 日光禁忌는 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공간에서 외부와 차단된 채 100일을 견디어 내야 하는 것인데, 이는 정신적인 인내력이 필요함과 함께 일정 기간 땅 속에 있다가 싹을 틔우는 농경의 기다림도 내포되어 있었다. 웅녀가 신이 제시한 조건을 견디어 내고 사람의 몸을 얻었다는 것은 유용한 식물의 재배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 그리고 기다려야 하는 식물의 생리를 터득해 냈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웅녀가 농경생활의 이로움을 알고 이를 영위하는 인간이 되고 싶었지만 환웅이 다스리는 인간세상의 농경생활 속에 편입해 들어가거나 그에 예속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웅녀는 자신들의 전통생활에 맞게 주체적으로 새로운 문화를 포용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웅녀족은 농경생활인보다 더욱 풍요로우며 안정적이고 역동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더구나 웅녀는 신이 제시한 백일의 기간을 단축하여 21일 만에 목표를 성취하였다. 웅녀가 얼마나 치열하게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목표를 성취해 냈는지 보여주고 있다. 웅녀가 인간이 되고자하였던 궁극적인 목적은 공동체 모두의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생활을 위한 것으로서 共益을 위한 것이었다. 웅녀가 세운 또 하나의 서원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여 출산하는 것이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웅녀는 크고 위태로운 3개의 봉우리가 있는 크고 제일 높은 산의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 아래에 여러 번 가서 주술의례를 거행하였다. 그리하여 환웅은 거짓으로 변하여 웅녀와 결합하였다. `假化`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잉태를 원했던 주체는 웅녀였으며, 잉태를 하고 단군을 출산한 주체도 웅녀였다. 그리하여 웅녀는 단군의 어머니이자 고조선의 시조모였으며 그녀가 죽은 후에는 고조선의 국모신 위치에 있었다. 이에 비해서 환웅은 단군의 아버지로서 확고한 위치에 있지 않으며 그 역할도 불분명하고 고조선의 國父神으로서 숭배 받은 흔적은 나타나 있지 않으며 이후 한국의 역사에서 국부신에 대한 숭배의 전통도 드러나지 않고 있다. 고조선은 춘추전국시대에 요하유역을 중심으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주변의 나라와 짐승 가죽을 특산품으로 교역을 하고 있었고, 왕을 칭하면서 燕을 침공할만한 군사력을 가진 강력한 국가였으며, 연과 국경을 마주하면서 그 면적은 적어도 2000 리 이상의 영역을 소유했던 광대한 영역국가였다. 그리하여 고조선은 기원전 2세기까지 동북아지역에서 가장 앞선 사회였고, 고조선의 청동기문화는 황하유역의 청동기문화와 계통이 다르고 유목민의 오르도스식 청동기와도 구별되는 독창적인 성격을 지니면서 한국사의 독자성과 연결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이 동아시아 역사 속에서 독창적인 문화를 창출해냈으며 한국역사 속의 첫 고대국가인 고조선이 건국된 배경에는 명민하고 지혜로우며 담대하고 치열하게 성실하였던 웅녀가 있었기에 가능하였음을 알 수 있다. In the myth of Dan-Gun, A Bear wanted to be a human being. And the bear ate mugwort and garlic during 21 days without sunlight. It means that hunters knew the utility and benefit of agriculture. Through these ascetic practice the bear became a woman, called Woong-Nye. Through her efforts, the hunting society embraced agricultural methods and they were blessed with productiveness. Next, Woong-Nye wanted gestation. For this, she climbed biggest mountain including three peaks. And she carried out the ceremony of incantation under the alter-tree. Ultimately she coupled with Whan-Woong who was the son of Divinity. At last, She gave birth to Dan-Gun who established the first nation, in Korean history, called Cho-Sun. Woong-Nye was the mother of this nation. She was discernment, wise, courage and faithful. Woong-Nye provided economic productiveness for Cho-Sun. And she established the religious order which all constituent joined voluntarily. Therefore, Cho-Sun was the largest nation and the lead of surrounding countries, in East-North Asia. Compared with Woong-Nye, Whan-Woong was ancillary position about the birth of Dan-Gun. But Confucianists distorted and excluded the records about Woong-Nye. Woong-Nye was the backer of first nation in Korean history.
이경섭 ( Lee Kyoung-sup )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2017 동국사학 Vol.63 No.-
백남운은 식민지시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관점에서 『조선사회경제사』와 『조선봉건사회경제사』를 저술하여 식민주의 사관을 극복하고 한국사의 보편적 발전 과정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특히 고대사의 영역을 다룬 『조선사회경제사』의 緖論에서 「단군신화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발표한 바 있다. 여기에서는 일본인 연구자들의 단군 인식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최남선, 신채호 등 민족주의 역사가들의 단군신화 해석에 대한 비판이 중점이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당시는 학술계에서 조선학운동의 흐름이 가시화되던 시기였으며, 이미 단군이 조선의 역사와 문화의 기원이자 상징으로 대중적인 영향력을 획득하고 있었다. 세계사적 보편성 속에서 조선사를 체계화시키려 노력한 백남운의 관점에서는 단군으로부터 기원하고 상징되는 조선 민족의 형상화는 ‘하나의 특수한 문화사관’이며, 과학적 역사관으로 조선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위협적인 ‘반동적’ 역사관에 다름 아니었다. 이에 백남운은 단군신화가 계급사회의 산물이며 시대에 따른 변화의 가능성을 지적하면서 단군이 실재적이지도 특정한 인격자도 아님을 분명히 하였다. 해방 이후에도 백남운은 『조선사회경제사』에서 제기한 단군신화론을 견지하고 있었다. 미군정 아래에서 부르주아민족주의자들이 교육이념으로 홍익인간을 차용하려고 할 때에도 일제의 그것과 다름없는 국수적 반동사관이라고 적극적으로 비판하였다. 또한 한국전쟁기 저술로 추정되는 『조선력사』에서도 기존의 단군신화 인식에 근거하였고, 이후 북한학계에서 진행된 단군신화 토론회에서도 자신의 신화 인식을 견지하였음이 확인된다. 그러나 당시 북한 역사학계는 고조선과 단군신화를 연결시키려고 했기 때문에 백남운의 단군인식은 비판을 받게 된다. 이러한 흐름은 당시 김일성에 의한 ‘주체의 제기’라는 배경에서 북한 역사학계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에서 민족주의 역사학의 관점을 보다 강화시키려는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이 과정은 완고한 마르크스주의자였던 백남운이 북한 역사학계에서 서서히 배제되어가던 정황을 암시한다고 생각된다. Baek Nam-woon wrote The Economic History of the Joseon Society and The Economic History of the Feudal Joseon Society from the perspective of Marxist historical studies during the colonial days, trying to overcome the colonial view of history and demonstrate the universal development process of Korean history. In his “Critical Opinions of the Dangun Myth” in the introduction of his The Economic History of the Joseon Society that covered the ancient history, in particular, Baek criticized some nationalist historians including Choi Nam-seon and Shin Chae-ho for their interpretations of the myth. From the perspective of Baek that tried to systemize the Joseon history in the universality of the world history, the embodiment of the Joseon people that originated in Dangun and were represented by him was a “single particular view of cultural history” and “reactionary” view of history that was very threatening to the understanding of Joseon history based on the scientific view of history. Baek pointed out that the Dangun Myth was an outcome of the hierarchical society and was subjected to possible changes according to the times and made it clear that Dangun was neither real nor certain man or character. Even after the liberation of Korea, Baek maintained his theory on the Dangun Myth that he raised in his The Economic History of the Joseon Society. When the bourgeois nationalists tried to adopt the idea of Hongikingan as the educational ideology of the nation under the US military regime, Baek actively criticized it as a nationalist reactionary view of history that was the same as the view of history advocated by the ruling Japanese. Baek maintained his old attitude toward the Dangun Myth in his The Joseon History, which is estimated to have been written during the Korean War, and at the discussions about the myth held by the academic circles of North Korea. In the early 1960s when the historical circles of North Korea tried to connect the Dangun Myth to Gojoseon, however, his perception of the myth was under fire. This flow can be understood in the context of the historical circles of North Korea trying to reinforce the perspective of nationalist historical studies instead of Marxist historical studies in the background of “Juche” raised by Kim Il-sung those days. This process implies the circumstances in which Baek, who was a stubborn Marxist, was gradually excluded from the historical circles of North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