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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숭 영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6 人文硏究 Vol.- No.77
This paper is to investigate ‘forms of life’ which plays a major role in Wittgenstein's later work, Philosophical investigations and On Certainty. However, because this ‘forms of life’ has not detailedly been explained by Wittgenstein himself, the interpretations of it are controversial among many Wittgensteinian. Among these interpretations, especially, I focus on the vertical or biological interpretation and the horizontal or ethnological interpretation. The former is a position to interpret the form of life focused on the part of natural facts, and the latter is a position to interpret by focusing on cultural aspects of the human. Form(s) of life as a natural history is provided to all human beings inherently, and that of the cultural life is consistent to human being by being ·aspects of the form of life, it is impossible to communicate through language. Also, if we accept only the form of life as natural history, a description of the variety of our human cultural and linguistic aspects will become impossible. With regard to this interpretation, I argue that the correct understanding of the concept of form of life is possible, when we eclectically accept the two positions. Because this ‘forms of life’ is the basis of our language, and at the same time, it is the presupposition of language-game in Wittgenstein’s later philosophy. If we exclude the one between these two interpretations, the right explanation of this concept is impossible. 비트겐슈타인 철학에서 ‘삶의 형식’(form of life)은 의사소통 수단으로서 언어가 작동하기 위한 전제(presupposition)이자 토대(foundation)이다. ‘언어게임’은 ‘삶의 형식(form of life)’을 토대로 해서 가능해지며, 또한 그 자체가 이미 실천적인 맥락에서 삶의 형식의 한 부분이다. 최근까지 여러 철학자들에 의해 비트겐슈타인의 ‘삶의 형식’ 개념의 의미와 역할에 관해서 다양한 견해가 주장되어 왔다. 이러한 해석들은 삶의 형식을 ‘자연적 사실들’이라는 부분에 초점을 두고서 해석하고자 하는 입장(수직적 혹은 생물학적 의미(vertical or biological sense))과, 특정한 개별언어들의 해석을 위한 준거틀로서 작동하는 문화적 측면에 초점을 두는 입장(수평적 혹은 인종적 의미(horizontal or ethnological sense) 두 가지로 집중된다. 필자는 본 논문에서 이 두 가지 삶의 형식에 대한 절충적 해석을 제시하고자 한다. 자연사로서의 삶의 형식은 모든 인간에게 본래적으로 구비되며, 문화적 삶의 형식은 학습이나 훈련에 의해 습득됨으로써 일치한다. 즉 인간은 인간종(種)으로서 동일한 삶의 형식을 본래적으로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삶의 문화적 형식은 학습이나 훈련에 의해서 습득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화적 삶의 형식만을 옹호하게 되면 언어의 의사소통 가능성은 막혀 버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자연사로서의 삶의 형식만을 우리가 인정하게 된다면 우리 인간들의 다양한 문화적․언어적 양상들에 관한 설명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따라서 연구자는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에 대한 정당한 이해를 위해서는 삶의 형식을 한 단면에서 볼 것이 아니라,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개념으로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안성조 한국법철학회 2013 법철학연구 Vol.16 No.1
It is well known that ‘Form of Life’ is a Wittgensteinean concept introduced in his book ‘Philosophical Investigation’. He argued on the book the reason why we follow mathematical rules such as addition and subtract not in extraordinary directions like rule-skeptics but in one standard direction, is the agreement of ‘Form of Life’. However, it is hardly known that ‘Form of Life’ is a very useful concept when we struggle to understand the mechanism how ‘Rule of Law’ can be realized in so complicated forms of our life. That is, ‘Form of Life’ can explain how we can agree with each other when interpreting and applying diverse forms of rules. H. L. A Hart argued that legal rules can be divided into ‘core of certainty’ and ‘penumbra of doubt’. According to him, ‘core of certainty’ is a standard instance in which legal rule can be applied automatically and indisputably without vagueness. He calls this instance a plain case and defines it as the familiar one constantly recurring in similar contexts. But I think, there is no explanation about the mechanism how we confirm that a case is a plain and familiar case in Hart's argument. Regarding this problem, it seems that thanks to the agreement of ‘Form of Life’ we can confirm which case is a plain and familiar case. In addition to Hart's case, we can find various cases in which ‘Form of Life’ makes us think and act in conformity with each other. Firstly, our normative judgement usually agree with each other. Homicide is generally prohibited although there are some variations in the forms of sanction against homicide for all times and places. Secondly, if the reasons of an legal argument are given in a form which anyone can understand easily, we can decide which one is a better reason. If so, there will be no disagreement in our judgement. Thirdly, even the principle of equal human dignity can be derived naturally from our ‘Form of Life’. I believe, from these considerations, we can conclude that one normative prerequisite that makes the basic principle of “Rule of Law” effective is the agreement of ‘Form of Life’.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인간의 자연사로 이루어진 ‘단일하고 공통된’ 삶의 형식에 준거해 ‘다양한’ 언어게임이 펼쳐짐으로써 언어는 유의미하게 된다는 것이라고 한다. 삶의 형식은 언어사용에 숙달할 수 있는 능력과 또 그로 인해 다양한 언어게임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삶의 형식은 삶의 양식과는 다르다. 사람들마다 삶의 양식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겠지만, 그러한 삶의 양식들은 모두 단일한 종으로서 인간의 공통된 삶의 형식에 속하는 것들이다. 즉 삶의 양식은 삶의 형식이 인간의 삶을 통해 구현된 것이다. 요컨대 인간의 삶의 형식은 단일하고 고정된 것이지만 구체적으로 그것이 구현되는 가운데 다양한 삶의 양식을 낳으며, 여러 갈래의 다종다기한 삶의 양식들 간에는 ‘언어게임처럼’ 상호 교차․중첩하는 가족유사성이 있다. 언어사용이나 덧셈, 뺄셈과 같은 규칙-따르기에서 우리가 동일한 방향으로 규칙을 따르는 것은 바로 삶의 형식에 일치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더 이상의 정당화나 근거가 요구되지 않으며, 이처럼 삶의 형식에 의해 내려지는 판단은, 아무런 의심이 없고 무엇을 해야 할 지 확신을 갖고 내리게 되는 ‘자동적’ 판단이 된다. 삶의 형식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통찰은 법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빛’을 던져준다. 법은 다양한 해석과 적용을 낳지만 무엇이 법인가에 대한 우리의 규범적 판단은 핵심적인 부분에서 일치한다. 법률의 단순한 해석에서부터 핵심규범의 실제적 적용에 이르기까지 삶의 형식이 판단의 일치를 가능케 해 주기 때문이다. 하트의 중심부 사례가 대표적인 예이다. 나아가 어떠한 법적 논증이든지, 그 논거가 “누구나 이해가 가능한 형태”로 제시되면, 다시 말해 우리의 ‘삶의 형식’에 비추어 “불일치가 발생하지 않는 형태”로 제시된다면 우리는 그 논증의 성공여부를 판별할 수 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특정한 법적 문제에 대한 판단의 불일치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규범적 가치판단의 영역이 그러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경우에도 우리는 제3자의 입장이 되어 대립되는 상대방의 입장이 어떤 이유에서 그러한 결론에 이르렀는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그리하여 상호 간에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메타판단의 일치’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러한 상호이해를 가능케 해 주는 것도 바로 우리의 공통된 삶의 형식 덕분이다. 이것은 흡사 우리가 공통된 삶의 형식을 배경으로 다종다기한 언어게임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과 유사하다. 그리고 산술적, 언어적 규칙-따르기가 ‘자동적’ 판단과정이듯이 ‘동등한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명제도 삶의 형식에 비추어 특별한 정당화나 근거제시가 불필요한 ‘자명한’ 명제가 된다. 필자는 비트겐슈타인이 제시한 ‘본래적 의미의 삶의 형식’을 확장해 우리에게 규범적 판단의 일치를 가능케 해 주는 ‘확장된 의미의 삶의 형식’을 제안해 보았다. 전자가 주로 언어사용에 있어서의 판단의 일치를 가능하게 해 주는 개념이라면 후자는 (언어사용을 포함해) 규범적 판단의 일치를 가능하게 해 주는 개념이다. 필자가 본고에서 논급한 주요 사례들은 삶의 형식이 규범적 판단의 일치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들이다. 이처럼 우리들이 (확장된 의미의) 삶의 형식을 공유하는 이상, 법의 불확정성 ...
‘생활의 형태’ 그리고 ‘생활의 정서’ 공동체 -김광균론
장동석 구보학회 2018 구보학보 Vol.0 No.18
The form of Kim Kwang - gyun poetry is shaped by filling in the life problems of the colonies, that is, thoughts. The form is the result of sensing the gap. Kim Kwang - gyun's poem senses the gap between the unspeakable reality of life and the production intention to pull it into a poetry. The property of life is denatured by sensory action. In other words, it is displaced from the community problem in the special situation that life is colonial, to the community problem in the universal situation beyond the division of time. The poetic methodology for this was ‘thought of form'. The morphological thought, life, is in the process of creating meaning, and therefore appears as a process of continuing an indeterminate state. The 'life of matter' is invisible to the back of the form and is leaping beyond a certain political purpose, so 'thought of form' is a poetic way of presenting ideas without being captured by the power of colonial rule. In other words, it is a method of producing poems that transform the thoughts of the real world into poetic ones. At this time, the 'emotion' of Kim Kwang - gyun poetry is the cause of the morphological thought. Therefore emotion comes from the appearance of the form. In other words, the phrase of the formula that shapes the shape of the form indicates emotion. Because the cause is presented in the form, the meaning category of the cause is revealed more indefinitely than it is presented in the voice. Emotions and forms are connected in causal contexts, encompassing causal contexts. Cause is evident because it is presented in form. It is unclear because it is presented only as a form at the same time. Clearness and uncertainty also interact with the emotional response to the cause. Through this, the form and emotion of Kim Kwang-gyun's poetry has a depth that it is unclear in clarity or clear in unclear. 김광균 시의 형태는 피식민지의 생활 문제(사상)을 기입하면서 조형된다. 형태는 생활 문제를 말할 수 없는 현실과 그것을 시로 견인하려는 제작 의도 사이의 간극을 감각한 결과이다. 감각작용에 의해 생활의 속성이 변성한다. 즉 생활이 피식민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의 공동체 문제에서 시대 구분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상황에서의 공동체 문제로 전치된다. 이를 위한 시적 방법론이 ‘형태의 사상성’이었다. 형태화된 사상, 즉 생활은 의미를 생성하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그러므로 불확정적인 상태를 지속하는 과정 자체로 나타난다. 생활 문제가 형태의 이면으로 비가시적으로 제시되는 것 그리고 일정한 정치적 목적 이상으로 도약한 것이기에, ‘형태의 사상성’은 피식민지 지배 권력에 포착되지 않으면서 사상을 제시할 수 있는 시적 방법이 된다. 즉 현실의 사상을 시적 사상으로 변성시키는 시 제작 방식이다. 이때 김광균 시의 ‘정서’는 형태로 견인된 사상을 원인태로 한다. 그러므로 정서는 형태의 모습에서 비롯된다. 즉 형태의 모습을 조형하는 수식 구절이 정서를 지시한다. 원인이 형태로 제시되기 때문에 목소리로 제시되는 것보다 원인의 의미 범주가 불확정적으로 드러난다. 정서와 형태가 인과적 맥락을 포괄하면서, 이것 이상에서 접속되는 것이다. 원인이 형태로 제시되기 때문에 뚜렷하면서 동시에 형태만으로 제시되기 때문에 불분명하다. 원인에 조응하는 정서에도 또한 분명함과 불분명함이 상호 작용한다. 이를 통해 김광균 시의 형태와 정서는 분명함 속에 불분명함을 또는 불분명함 속에 분명함을 깊이로 가진다.
피타고라스학파 사상의 교육학적 함의: ‘형식’의 개념을 중심으로
차영주 ( Cha Young Ju ) 한국교육철학학회(구 교육철학회) 2018 교육철학연구 Vol.40 No.2
본 연구의 목적은 피타고라스학파의 사상에 비추어 대상 세계와 인간의 삶이 어떻게 관련 맺는지를 밝히고 그에 따른 교육학적 함의를 도출하는 데에 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대상 세계에 보편적 형식이 내재되어 있음을 통찰하고 우주 안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을 총체로서의 하나의 형식인 ‘코스모스’에 통합시킨다. 그리고 인간의 삶 역시 그러한 코스모스에 편입되어 늘 균형과 적도(適度)를 벗어나지 않는, 그야말로 하나로 잘 어우러진 조화로운 삶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피타고라스학파의 사상은 대상 세계에서 발견되는 ‘존재의 형식’과 인간에게 있어서의 ‘삶의 형식’이 단일하게 통합된 ‘하나의 형식’을 알아가는 교육의 여정을 잘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의 사상에서 교육은 부단히 형식을 도야하고 그것을 삶에서 구현해 나아가는 ‘정화’(淨化)의 과정이다. ‘정화’란, 영혼의 눈을 뜨고 이 세계의 참된 모습을 순수하고 투명하게 파악해 가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 이전에는 모두 다르게 보이던 사물이나 현상들이 종국적으로는 하나의 형식에 대한 사례들로 통합되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피타고라스학파의 사상은 이 세계와 인간의 삶이 하나의 형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드러냄으로써, 인간의 배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분명한 답을 제시한다. 배움의 궁극적인 목적은 내마음 안에 잠재된 보편적 형식에 다가서는 것이고, 아름다운 삶이란 그것에 편승하는 삶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larify how object world is related to human life in light of Pythagorean thought and to draw educational implication accordingly. Pythagoreans penetrated a universal form which is inherent in object world and integrated all things in this world into Uni-Form as a totality, ‘cosmos’. And they emphasized human life also should be a harmonious life that is well integrated into cosmos which always does not deviate from the balance and due measure. From this viewpoint, it can be said that Pythagorean thought shows well the journey of learning to know the Uni-Form which unifies form of being in object world and form of human life. According to their thought, education is a constant process of purification to discipline the form and to realize it in one's life. ‘Purification’ means the process of opening the eyes of the soul and grasping the true form of this world purely and transparently. It means that things or phenomena that seemed different from each other before are ultimately integrated into cases of Uni-Form. In short, Pythagorean thought presents a clear answer to the fundamental question of human learning by revealing that this world and the human life are connected by the Form. The ultimate goal of learning is to approach the universal form latent in one's mind and a beautiful life is the life in which the universal form is realized.
4·19혁명의 유산과 궁핍한 시대의 리얼리즘 ―1960~70년대 백낙청의 비평과 역사의식
김수림 상허학회 2012 상허학보 Vol.35 No.-
Park Chung-hee regime asserted that they were trying to succeed and realize a legacy of the April 19 Movement to justify taking power with military forces. It made potential movements of people that denied given life and serching for a another form of life without any specific end(telos) as a most significant premise of the new political paradigm. Furthermore, with this premise Park Chung-hee regime built a logic which rationalized dictatorship and destruction of democratic forms. Paik Nak-chung also pointed out that gesture of the people who denied given form of life and sought different one underlies historic change as a true origin. From this view he de-constructed common way of understanding the April 19 Movement as a 'victory of democracy'. It was not only a matter of a democratic rights or civil rights, but people's life that is fullfilled with negativiy on denial of their given life and social condition. It was this negativity of life without any certain end (potentiality of life) which underlies a concept of 'civic conciousness' or 'national conciousness', 'people's conciousness' as a primary premise. It was also the intersection between the literary theory of Paik Nak-chung and the regime of Park Chung-hee, not at the level of logic but the level of premise. Park Chung-hee regime had given clear end to this potentiality of people's life. It was the 'economic development' and 'modernization of the homeland' that people had to accomplish. The new paradigm had subordinated potentiality of life and the time of revolution to a new goal, a evolution of a history. Despite of different character, Paik Nak-chung also understood history as a evolutionary process towards to an end which is actualization of potentiality of life. In this 'sense of history', acturalization of life towards historical end replaced a potentiality of life. In other words, a task of realization replaced experiments for a potential form of life. 박정희 체제는 군사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4·19혁명의 유산을 계승하고 실현한다는 명분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른바 “혁명계승론”을 통해서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표현에 호응하여 명확한 목적(telos) 없이 주어진 삶을 부정하고 새로운 삶의 형식을 찾고자했던 사람들의 잠재적인 움직임을 4·19혁명의 해석을 둘러싼 상징투쟁과 정치적 패러다임의 핵심적인 전제로 삼았다. 박정희 체제는 더 나아가서, 이러한 전제로부터 서구적 민주주의 제도의 형식에 대한 파괴(쿠데타와 독재정치)를 합리화하는 논리를 구축하였다. 백낙청 또한 4·19혁명을 자유 민주주의의 승리로서 해석하는 입장을 탈-구축하여 민족·민중의식의 각성 과정으로서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자유민권사상과 같은 관념의 차원이 아니라 주어진 삶으로부터 탈피하여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사람들의 몸짓을 역사적 변혁의 근원으로서 전제했다. 시민의식·민족의식·민중의식 등의 개념을 통한 주체화의 과정 속에는 “못살겠다”고 몸부림치는 인간의 삶이 잠재되어 있었으며, 논리와 개념의 차원이 아니라 전제의 차원에서 백낙청의 문학론과 박정희의 패러다임 사이에는 숨은 교차점이 존재하고 있었다. 박정희 시대의 패러다임은 주어진 삶의 방식을 부정하고 다른 삶의 방식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잠재적인 몸짓을 경제적인 차원에서 해석하였으며, 이러한 삶의 목적으로서 경제성장과 조국근대화라는 텔로스를 부여하였다. 이러한 패러다임 속에서 주어진 삶을 부정함으로써 혁명의 시간을 맞이했던 사람들의 잠재적인 몸짓은 경제성장과 민족중흥 그리고 조국근대화라는 목적에 종속되었다. 비록 제시된 목적지와 그 성격은 전혀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박정희의 경제성장 패러다임과 분단체제의 극복이라는 역사적 과제로 연결되는 백낙청의 민족문학론은 역사를 삶의 목적을 창출하여 실현하기 위한 과정으로서 이해하고 있다. 그러한 역사적 사고방식 속에서 역사적 목표를 향해 스스로를 실현해가는 진보의 과정은 다른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움직임들의 잠재성을 대신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삶에 부여된 목적을 실현하는 과제가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한 실험을 망각에 빠뜨림으로써 주어진 것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사고하는 방법을 궁핍한 상태에 처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박정희 시대의 끈질긴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사막의 한 복판에서 꽃 피우기: 쿳시의 「마이클 K」와 아감벤의 “벌거벗은 생명”을 중심으로
임태연 한국중앙영어영문학회 2017 영어영문학연구 Vol.59 No.3
This paper explores Giorgio Agamben’s concepts of two different forms of life—“bare life” defined in Homo Sacer and “happy life” in Coming Community—discussing their relationship with Michael K’s identity in J. M. Coetzee’s Life & Times of Michael K. Michael’s solitary yet sufficient life as a gardener offers us a more extended way of understanding Agamben’s notions of “happy life,” or “form-of-life.” Throughout the novel, Michael undergoes a significant transformation. At the beginning, his life in many ways resembles Agamben’s concept of “bare life,” but soon new form of life begins to emerge in his deserted condition of life. In other words, Coetzee later in the novel shows us a touch of hope and political futurity through Michael’s passive-active resistance against the government’s identity politics. However, Agamben’s “pure potentials” should not be confused with moralistic values such as will power, faith, and determination. Rather, it is achieved when one’s state of abandonment is pushed to the extreme beyond any light of humanistic values. Both Coetzee in Life & Times of Michael K and Agamben in his theories well demonstrate what it means to live as a “bare life” and what mode of being inaugurates the true “form-of-life” in today’s global biopolitical system.
홍경자 ( Hong¸ Keungja ) 한국가톨릭철학회 2021 가톨릭철학 Vol.- No.37
본 논문은 국내에서는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은 짐멜의 죽음 관에 대해 규명하고 있다. 짐멜은 당시의 생철학자들과는 달리 삶과 연관된 죽음의 문제에 깊이 연구하면서 죽음을 주체로서의 개인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파악한다. 죽음은 단순히 삶의 외부에 설정된 경계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짐멜은 죽음을 밖에서 기다리는 난폭한 존재나 어느 특정한 순간에 인간에게 덮쳐오는 운명, 등 뒤에서 비수로 찌르는 사신으로 파악하지 않고, 실존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죽음이 삶 자체에 불가피하게 내재해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당시에 죽음을 이해했던 낭만주의자들의 사고방식을 깊이 수용하면서 자신의 철학을 전개해 나갔던 짐멜은 죽음이 ‘삶의 내재적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생철학자들이 죽음의 문제를 삶의 종말이나 혹은 삶과 대립하는 개념으로만 단순하게 파악했다고 비판한다. 이 점이 당시의 생철학자들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짐멜 사유의 독특함이다. 짐멜에게 중요한 것은 죽음을 삶의 형식과 관련하여 파악하는 것이고, 이러한 파악은 죽음을 해명하는 실마리이자 핵심 개념인 ‘삶’과 ‘형식’에 대한 고찰이 선행될 때 더욱 분명해진다. 그런 점에서 본 논문은 우선 삶의 본질과 형식에 관한 형이상학적 논의로 시작한 뒤, 죽음과 불멸에 대한 논의로 확대, 심화해 나가고 있다. This paper examines Simmel’s view of death, which has not been dealt with earnest in Korea. Unlike the philosophers of life at the time, Simmel deeply studied the problem of death related to life and understood death as an important factor in completing oneself as an individual. Death is not simply a boundary set outside of life. In that sense, Simmel does not conceive of death as a violent being waiting outside for death, a fate that strikes humans at any moment, or being stabbed in the back by a dagger, but understands that death is inevitably inherent in life itself. Simmel developed his philosophy while deeply embracing the way of thinking of romantics who understood death at the time. He criticizes that although death is an ‘inherent form of life’, those who studied biophilosophy simply grasped the problem of death only as an end of life or confrontation with life. This is the uniqueness of Simmel’s thinking, which is clearly different from biophilosophers of the time. What is important to Simmel is to grasp death in relation to the form of life. This understanding becomes clearer when considering ‘life’ and ‘form’, both which are clues and key concepts that explain death, is preceded. In this regard, this paper first begins with a metaphysical discussion on the essence and form of life, and then expands and deepens into a discussion on death and immortality.
최영은 ( Choi Young-eun ),김창환 ( Kim Chang-hwan ),권용호 ( Kwon Yong-ho ),두하은 ( Doo Ha-eun ) 한국도서(섬)학회 2018 韓國島嶼硏究 Vol.30 No.2
This research was conducted to analyze plant life forms of Andeok valley in Nam Jeju-gun(county) of Jeju Island by dividing the life forms into three categories:dormancy form, radicoid form, and disseminule form. Of the total 420 species surveyed, phanerophytes (P) of dormancy form were most prevalent as 87 taxa or 20.71% followed by hemicryptophytes (H) and therophytes (Th) with 79 taxa or 18.81% and 75 taxa or17.86%, respectively. In addition, geophytes (G) and nanophnerophytes (N) were relatively abundant with 66 taxa (15.71%) and 54 taxa (12.86%) respectively. Since evergreen shrub grows on the understory vegetation where P is distributed, the distribution of N was observed to have a fairly high proportion. Th is composed of species, which are introduced by anthropogenic disturbance and alien species invaded. In this context, human activities might affect the distribution of Th. The distribution ratio of chamaephytes (Ch) and hydatophytes (HH) reflects the geographical characteristics of Andeok valley, which has various shapes of cliffs. As the river length of Andeok valley is long and its stream flow is plentiful, a relatively large number of HH were distributed in the valley. As for the distribution of the plants surveyed in 1995, 2004, and 2017, the number of species of dormancy forms has been increased, while its distribution rate has shown asimilar proportion. This might be significantly influenced by both climate conditions and topographical features. Of propagation forms, R5(non-clonal growth) of radicoid from was predominant as 236 taxa (56.19%), followed by R3 (rthizomatous plants) and R4 (stoloniferous plants) with 58 taxa (13.81%) and 32 taxa (7.62%), respectively. Unlike the percentage of root types, which are bulb, corm, tuber and tuberous root, a fleshy root has a wide variety of plant species with 14 taxa. In terms of disseminule form, D4 (only by gravity) including 168 taxa (40%) was predominant, followed by D1 (disseminated by wind and water) including 93 taxa (22.43%) and D2 (by animals and man) containing 91 taxa (21.67%). The proportion of D1 and D2 reflects regional characteristics and geographical and geomorphological properties, which were influenced by a deep ravine of Andeok valley.
전라북도 부안군ㆍ고창군 무인도서에 분포하는 식물의 생활형에 관한 연구
최영은 ( Choi Young-eun ),김창환 ( Kim Chang-hwan ) 한국도서(섬)학회 2017 韓國島嶼硏究 Vol.29 No.4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identify characteristics of plant life forms of 10 uninhabited islands in Buan-gun and Gochang-gun of Jeollabukdo by analyzing three categories of the life form: Dormancy form, Radicoid form and Disseminule form. Of the dormancy form in 10 uninhabited islands, hemicrytophyte (H) was observed to have the highest proportion, fo1lowed by Geophytes (G). H was dominant with about 40% or more of distribution ratio in Imsudo island, Mugamdo island, and Dojeamdo island. H and G were found to be most distributed in SojukdoIsland and TanjungkumdoIsland with the same proportion. In addition, G was predominant as 24.29%, followedby H (18.27%) and N (Nanophanerophytes, 17.14%) in JageuntanchidoIsland. In terms of propagation form, R5 (non-clonal growth) of radicoid from was predominant, followed by R3 (rhizomatous plants), R4 (stoloniferous plants) and R2,3(rhizomatous or climbing plants) across all islands studied. Of disseminule form, D4 (only by gravity, without any modification for migration) was found to be most prevalent. Particularly, D4 was most dominant in ImsudoIsland, OejodoIsland, MugamdoIsland, SuribawedoIsland, TanjungkumdoIsland, and DojeamdoIsland with 50% or more of distribution ration followed by D1 (disseminated by wind and water) while, D2 (by animals and man), D2,4 and D3 (by mechanical propulsion) were rarely distributed.
생물형태 이미지의 현대적 표현 연구 - 20세기 전반 작가를 중심으로-
김용선 한국일러스아트학회 2013 조형미디어학 Vol.16 No.3
Keep a close watch about nature is a good method to grow up of formative thinking. This is a clear fact that lots of artists, first year of 20th century, enjoyed to drawing organic forms or symbolical life forms. The reason background of these life forms for drawing is the new experience vision, as develop as new scientific technology, shows a new life form and it can make them more imagination. Machine civilization contributes to the advancement of capitalism and helps to make more comfortable and effective things for human life. On the other hands, the human spirit is in crisis of loss. The doubt from original expression and systematic life by mechanized makes artist interest about original expression and they had focused of archetypal and original expression life. At the same period, the vitalism which is life theology philosophy of Bergson, Lead suggested the way of vision and realize of life. In addition, the character of Biomorphic art makes organic from of nature to each one. So as express as figurative work with artist’s inner world, possibility of imagine word show the other possibility of expression. This thesis is study for expending an artistic expressiveness of modern artist with symbolic meaning and metaphorical thing on each works with artists in center who work to motive was about life from as Joan Miro, Andre Masson, Arshile Gorky, William Baziotes, Henny Moore, Jean Arp, Beate Kuhn etc. With vitalism background philosophy. 자연을 끊임없이 관찰하는 일은 조형적 사고를 성장시키는 중요한 방법의 하나이다. 20세기 전반기의 많은 예술가들이 유기적인 형태나 상징적인 생물형태를 즐겨 그렸다는 점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생물형태가 작품 소재로 등장한 배경은 20C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새로운 시각 경험이 새로운 생물형태를 보게 하였고 또 상상하게 하였다. 기계문명은 자본주의의 번영과 함께 인간생활을 효율적이고 안락한 삶을 누리도록 기여했지만 인간정신은 오히려 상실의 위기에 처했다. 기계화에 의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생활공간에 대한 회의는 자연과 생명의 근원적인 표현에 관심을 가지게 하여 원형적이고 유기적인 생명감 표현에 예술가의 눈을 돌리게 했다. 이와 같은 시점에 베르그송, 리드의 생명주의 철학인 생명주의는 생명을 바라보는 시각과 그 구현의 길을 제시해 주었다. 또한 생물형태주의 미술이 갖는 성격이 자연의 유기적 형태를 매개로 하여, 작가의 내면세계, 상상의 세계를 무의식의 우연성을 빌어 회화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생명력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은 표현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본 논문은 생명주의 철학을 이론적 배경으로 호안 미로(Joan Miro), 앙드레 마송(Andre Masson), 아르실고르키(Arshile Gorky), 윌리암 바지오테(William Baziotes), 헨리 무어(Henry Moore), 장 아르프(Jean Arp), 비테 쿤(Beate Kuhn) 등 생명체 형상을 모티브로 제작한 작가를 중심으로 작품 속에 나타난 상징적 의미와 은유하고 있는 내용을 조명하여 현대작가들의 미적표현을 확대하고자 한 연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