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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파 신론을 변증하기 위한 알미니우스주의와의 투쟁: 존 오웬의 신학적 출발점
이성호 한국복음주의조직신학회 2018 조직신학연구 Vol.30 No.-
Unfortunately, Owen scholars have not pay much attention to The Display of Arminianism, Owen’s first theological work. However, The Display gives us a great help to understand the Arminian controversy during the era of the English civil war. Although Owen’s criticism of Arminianism seems to be too harsh, Owen grasp the very issues in Arminianism. Owen did not consider Arminian theological errors to be trivial since Arminianism contained fatal defects in the doctrine of God. In Display Owen tried to prove how Arminianism made God an imperfect being in many ways. In Owen’s battle against Arminianism we can see clearly how closely God’s attributes, His will, His knowledge, His government and power are related to each other and what the real differences between the Reformed and Arminian theology are. 존 오웬의 첫 저서인 『알미니우스주의를 폭로함』(The Display of Arminianism)은 오웬 연구가들에게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하였지만 이 책은 영국 혁명 당시 알미니우스 논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제공하는 매우 중요한 책이다. 오웬은 알미니우스주의를 사소한 신학적 오류로 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알미니우스주의의 신론에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판단에 근거하여 오웬은 알미니우스주의를 우상숭배, 심지어 무신론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비록 알미니우스주의에 대한 오웬의 비판의 정도가 심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웬은 알미니우스주의 안에 있는 핵심적 오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폭로』에서 오웬은 알미니우스주의가 참되고 완전한 하나님을 어떻게 신론의 중요한 측면(하나님의 속성, 작정, 섭리 등)에서 불완전한 존재로 만들었는지를 증명한다. 이를 위하여 오웬은 성경뿐만 아니라 알미니우스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 보편적 신학방법인 스콜라주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오웬의 첫 신학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개혁주의와 알미니우스주의 사이에 존재하는 세밀하고도 명확한 차이를 보다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김홍만 한국개혁신학회 2011 한국개혁신학 Vol.32 No.-
John Wesley acknowledged ‘sober Calvinism’ which could be compatible with Arminianism. Wesley definitely admitted doctrine of original sin, and positively regard God’s providence. Even Wesley thought there was no difference between himself and Calvin in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However, Wesley said there are differences between Calvinism and Arminianism. Moreover, Wesley criticized Calvinism, especially doctrines of predestination, election and reprobation, irresistible grace, and final perseverance. Wesley thought that these doctrines caused believers to ignore their sanctification. Wesley debated with John Gill in regarding to predestination, election, perseverance. In this point, Wesley equated Calvinism with Antinomianism. However, John Gill was not a Calvinist, but a hyper-Calvinist. Hyper Calvinism was a sort of Antinomianism. In another word, Wesley confused Calvinism with hyper-Calvinism. Calvinism is totally different from hyper-Calvinism. Calvin asserted the importance of the doctrine of predestination which he believed as its goal the sanctification of believers. Moreover, Calvin never said predestination as determinative doctrine. Calvin taught the relation of justification and sanctification. Calvinism is not Antinomianism. Even today, in churches, confusions between Calvinism and hyper-Calvinism still exist like Wesley’s. On the other hand, hyper-Calvinism in Korean churches has brought to ignore sanctification in the believers. Therefore, firstly, there should be clear distinction between Calvinism and hyper-Calvinism, secondly, there should be taught that hyper-Calvinism is error. 웨슬리는 온건한 칼빈주의를 인정하였으며, 알미니안주의와 함께 공존할 수 있다고 하였다. 분명히 웨슬리는 원죄를 인정하였으며,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였다. 웨슬리는 칭의 교리에 있어서 자신과 칼빈주의와 차이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와의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말하였고, 더 나아가서 칼빈주의에 대해서 비판을 하였다. 웨슬리는 그 시대의 칼빈주의자들의 예정, 선택과 유기, 저항할 수 없는 은혜, 성도의 최종적 견인 교리에 대해서 비판하였다. 이러한 칼빈주의자들의 가르침은 도덕률폐기론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결국 성화를 무시하게 된다고 하였다. 웨슬리는 그 당시 칼빈주의 신학자인 존 길과의 논쟁에서 더욱 이러한 신학적 성향에 대해서 비판하였다. 그러나 웨슬리가 그 당시 이해하였던 칼빈주의는 하이퍼 칼빈주의이었다. 하이퍼 칼빈주의자들은 예정, 선택과 유기, 저항 할 수 없는 은혜, 성도의 최종적 견인 교리를 통하여 인간의 책임 부분을 완전히 제거 해버렸다. 그러나 웨슬리는 이러한 하이퍼 칼빈주의를 칼빈주의로 오해하였던 것이다. 실제로 칼빈은 예정을 가르치면서 성화를 강조하였으며, 칭의와 성화가 불가분의 관계인 것과 성도의 견인에서 인간의 책임 부분이 있음을 말하였다. 따라서 웨슬리는 하이퍼 칼빈주의에 대한 비판을 한 것이다. 물론 하이퍼 칼빈주의는 잘못된 신학이며, 반드시 개혁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날에도 웨슬리처럼 하이퍼 칼빈주의를 칼빈주의로 오해하고 성화를 무시하는 성향이 한국교회에 있다. 따라서 칼빈주의와 하이퍼 칼빈주의를 분명하게 구별하여 잘못된 가르침을 개혁해야 할 것이다.
19세기말 미국장로교회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개정 논의에 대한 고찰
김홍만(Kim, Hong-Man) 한국개혁신학회 2010 개혁논총 Vol.14 No.-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was composed to bring forth piety in the family. Because ignorance and doctrinal error prevailed in England during the mid 17th century, families and churches were impious. To remedy the situation, the Westminster Divines assembled to draft a confession that would hold forth sound doctrines and rectify errors. One of the errors at the time was Arminianism. In 1729,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was adopted as a standard confession of the Presbyterian Church of the U.S.A. Since the Adoption Act (1729), all candidates for the pastoral office in the Presbyterian Church of the U.S.A. had to subscribe to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However, after the Second Great Awakening, in 1837, the Presbyterian Church of the U.S.A. was assailed by Charles Finney's revivalism and semi-Pelagianism which divided the denomination into Old School and New School. As a New School theologian Finney especially attacked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New School essentially followed Pelagianism which was a definite departure from Calvinism. Despite their differences in theological positions, Old and New School were reunited in 1869. After this reunion, Arminianism spread throughout the Presbyterian Church of the U.S.A. At this point, there were some who wanted to revise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according to Arminianism and Modern theologies. Finally, in 1903, the Presbyterian Church of the U.S.A. revised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The revision demonstrated that the Presbyterian Church of the U.S.A. had discarded Calvinism and had opened itself to error. Therefore, today's Korean Presbyterian Church should confirm its theological identity and take a firm stance against error. It must see the importance of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and encourage its use.
이진락(Lee Jin Lak) 개혁신학회 2016 개혁논총 Vol.40 No.-
많은 다른 역사적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에드워즈는 자기 시대의 문제를 붙잡고 씨름했다. 그는 아르미니우스주의의 위협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했고 이에 대응하여 종교개혁신학과 청교도신학의 역사적 정통성을 수호하려고 했다. 여기서 핵심적인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의 문제였다. 그러므로 본고는 에드워즈의 자유의지 개념을 개괄적으로 고찰하고 정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의지는 선택이다. 선택은 좋아하고 기뻐하는 쪽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동기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선택 후에 선택의 결과를 보고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 전에 이미 선택하게 만드는 동기가 작동한다. 그러므로 의지의 선택에는 중립이 없다. 의지는 정신 혹은 마음의 성향에 따라 선택한다. 그러므로 도덕적으로 필연적으로 성향을 따른다. 하지만 외부적인 강제나 방해 없이 자신이 좋아하고 기뻐하는 대로 선택한다는 점에서 자유롭다. 자유의지와 관련해서 에드워즈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의지의 자기 결정과 도덕적 책임의 문제다. 의지가 자기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없다면 도덕적 책임도 없다는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의 논리의 모순성을 에드워즈는 철저하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중립 상태 혹은 무관심 상태에서의 의지의 자기 결정은 허구일 뿐이며, 도덕적 책임은 의지의 자기 결정이 아니라 정신 혹은 마음의 성향이나 기질과 관련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과 더욱 부합한다. 전반적으로 볼 때, 분명히 에드워즈는 역사적 종교개혁신학의 정통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인간의 문제를 좀 더 깊게 탐구함으로써 자유의지론의 분야에서 신학 지평을 확장시켰다. 전통적인 칼빈주의의 토대 위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높이면서도 인간론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당대의 철학적 개념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자유의지론의 문제를 훌륭하게 설명했다. Edwards has contended with the problem of his day like many other historical figures. He thought the most critical thing was the threat of Arminianism. He responded strongly against that, and defended the historical orthodox of Reformed and Puritan theology. The point was the freedom of will. Therefore this paper aims to apprehend and arrange the concept of Jonathan Edwards free will generally. To will is to choose. Choice is aroused by the motive that makes the mind move towards the direction of what it likes or enjoys. The motive works not after choosing but before choosing. The choosing of the will cannot be neutral. The will chooses according to the disposition of mind or heart. So it follows the disposition with the moral necessity. But it is free in that it chooses what it likes without compulsion and restriction. Edwards thought the self-determination of will and the moral responsibility is the most important subject with regard to the free will. Edwards criticised throughly and strongly the contradiction of Arminian opinian that if the will has no self-determining power, there is no moral responsibility. The selfdetermination of the will in the state of indifference is just fiction. It is more agreeable with the common sense that the moral responsibility is not related to the self-determination of the will but to the disposition of mind or the propensity of heart. On the whole Edwards kept the orthodox of the historical Reformed theology authentically. Especially he studied deeper into the anthropology, and then expanded the theological horizon in a study on the free will. He exalted the sovereignty and glory of God on the foundation of the traditional Calvinism, while he took a deep interest in the problem of anthropology and explained the subject of the free will excellently to make good use of the contemporary philosophical concept.
개혁주의 유산으로서의 칼빈주의 개념 고찰: 벤자민 B. 워필드의 칼빈주의 이해를 중심으로
류길선 ( Ryu Gil Sun )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2021 역사신학 논총 Vol.39 No.-
워필드에게 칼빈주의는 넓은 의미에서 세 가지 용례로 사용될 수 있다. 먼저, 칼빈주의는 칼빈이 직접 가르친 내용들, 즉 다양한 신학적, 교회론적, 정치적 문제들에 관한 관점들을 가리킨다. 둘째, 칼빈주의는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칼빈과 아우구스티누스주의로부터 물려받아 발전시킨 교리 체계이며, 따라서 루터파와 구분된다. 칼빈주의의 세 번째 용법은 가장 넓은 방법으로 사용되는데, 여기에서 칼빈주의는 신학, 윤리학, 철학, 사회학, 정치학, 그리고 교육학적인 관점들에 연관된다. 워필드는 두 번째 용법, 즉 개혁파 교회의 교리 체계로서의 칼빈주의를 선호하는 한편, 첫 번째와 세 번째 용법들을 간과하거나 외면하지 않는다. 이는 워필드가 취하는 칼빈주의의 용례들이 한결 같이 모두 개혁파 내에서의 칼빈주의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개혁주의 유산으로서의 칼빈주의에 대한 워필드의 관점은 네 가지 주요한 관점을 제공한다. 첫째, 그가 언급한 교리 체계는 예정론과 같은 특정교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칼빈의 신학적 사상의 영향 가운데 경건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발전한 교리 체계, 더 쉽게 말하면 경건의 체계를 의미한다. 둘째, 그동안 잘못 이해되어 왔던 칼빈주의에 대한 오해들, 예를 들어 칼빈주의를 메마르고 구세대적이라는 비판들을 일축한다. 셋째, 칼빈주의가 협소한 개념이 아니라 다양한 개신교 교파들과 연관성을 가지는 포괄적인 개념임을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워필드는 보다 직접적으로 칼빈의 사상에 한 걸음 밀착하여 칼빈의 신학 가운데 나타난 기독교 유신론의 형식적 원리를 제공하고, 신학과 실천의 관계에 있어서 개혁주의 유산이 남긴 탁월성을 돋보이게 함으로써, 현대의 만연한 무신론과 기독교 윤리 문제에 대한 올바른 대안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다. Warfield believes that Calvinism could be used in the three usages. First, it means Calvin’s own theological position, indicating various theological, ecclesial, political issues. The second option is the system of doctrine taught by Calvin and the Augustinianism associated with the whole body of the Reformers, in distinction from the Lutheran Churches. The third use of the term Calvinism designates the most broad way in which Calvinism is involved to Christian Worldview in terms of the entire body of conceptions including theological, ethical, philosophical, social, political, and educational perspectives. While Warfield prefers the second usage of the term, he does not neglect the first and third ones. Warfield chooses the second usage of calvinism, and provides the focal point of the calvinistic view, by exploring the life and works of Calvin, considering the Christian theism, and differentiating it from Lutheranism and Arminianism. Warfield’s perspective of calvinism as the Reformed heritage implies four significant points of view. First, calvinism as the system of doctrine taught by the Reformed churches does not indicates the certain doctrine such as predestination, but rather signifies religion which encourages the Christian life in relation to God. Second, it terminates a misconception that calvinism is the dry and outmoded philosophy. Third, calvinsim for Worfield is not narrow but includes comprehensive perspective which shows a close relationship between other Protestant groups. Finally, he provides a fundamental framework the Christian theism in Calvin’s theology, helping today’s Reformed theologions who need an alternative to the modern context which is pervaded with atheism.
존 웨슬리(John Wesley)의 구원확신론에 대한 개혁주의적 고찰
윤종훈(Jong Hun, Yoon) 신학지남사 2021 신학지남 Vol.88 No.4
본 논문은 감리교 신학의 창시자 존 웨슬리의 구원론 가운데 구원확신론에 대한 다양한 증거들을 살펴보고 이를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고찰하고 있다. 이를 위해 먼저 초대교회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구원확신론에 대한 다양한 이해를 살펴본다. 웨슬리가 활동할 당시 영국은 두 가지 신학적 조류가 흐르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앙글리칸을 중심으로 형성된 이신론적 합리주의의 도전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이성주의를 강하게 거부하였던 열광주의였다. 이 두 사상은 구원론의 핵심사상이었던 구원확신론에 대한 많은 신학적 문제점을 산출하게 되었다. 웨슬리는 당시 양대 신학 흐름에 반기를 들고 성경적인 구원론을 세우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구원 확신에 대한 적극적인 증거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에 입각한 성령의 내적 증거를 제시하였다. 또한, 그리스도와 성령의 내적 증거에 대한 실증적인 근거로서 “오직 성경”을 강조하였다. 왜냐하면, 웨슬리에게 있어서 성경이야말로 신자의 구원 확신의 실제이자 신적 기원이 된다고 확신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소극적 증거로서, 신자의 변화된 양심을 강조하였다. 이처럼 변화된 양심을 통하여 신자는 간접적인 구원의 확신을 경험하게 된다고 주장하였으며, 성령의 선물로 주어지는 성화적 믿음을 강조하였다. 그는 이러한 성화적 믿음이 성령의 열매로 이어진다고 주장하였다. 비록 웨슬리의 구원확신론은 개혁주의적인 색채가 강하지만, 알미니안주의적인 예지예정과 구원의 확신을 가진 이후에도 구원에서 실패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침으로써 개혁주의 노선에서 벗어나게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This paper examines various evidence of the doctrine of assurance of salvation of John Wesley, the founder of Methodist theology, and analyzes and considers it from a Reformed perspective. To this end, we first look at the various understandings of the doctrine of assurance of salvation, from early Christianity to the modern era in church history. At the time Wesley was in action, England had two theological thoughts. One of them was the challenge of the Deistic Rationalism formed around Anglican. Another was Enthusiasm, which strongly rejected rationalism. These two ideas have produced many theological problems with the doctrine of assurance of salvation, which has been the core thought of the Soteriology. Wesley rebelled against the two major theological trends at the time and tried to establish a biblical theory of salvation. He presented the inner proof of the Holy Spirit based on the salvation ministry of Jesus Christ as a direct proof of the assurance of salvation. He also emphasized “the Bible” as an empirical basis for internal evidence of Christ and the Holy Spirit. Wesley has convinced that the Bible was the real and divine origin of the assurance of the salvation of the believer. He emphasized the changed conscience of the believer as indirect evidence of the assurance of salvation. He argued that by this changed conscience believers experience the assurance of salvation indirectly. Although Wesley’s assurance of salvation is of a strong reformed theological color, He deviated from the reformed line by asserting that the believer could fail in salvation even after he had the conviction of salvation, which is the perspective of Arminianism.
Church Government in French Churches in the 17th Century
Paul Wells 고신대학교 개혁주의학술원 2016 갱신과 부흥 Vol.17 No.1
본 논문은 17세기 프랑스 개혁교회에서 교회정치가 어떻게 형성되 었는가를 고찰한 논문이다. 칼빈의 교회 정치 개념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프랑스 개혁교회는 1559년에 제정된 ‘라 로쉘 고백문’(La Rochelle Confession)과 함께 채택되었던 38개 항목의 ‘교회권징 조례’(La disicipline ecclésiaque)를 1659년까지 252개의 항목 으로 발전시켰다. 교회의 조직 구조는 장로-총회식 제도(le régime presbytéro-synodal)로 불리는데 지역적 다양성의 원리와 통합적 일치성의 원리 사이에 상보성에 주목하면서 교회의 권위가 회중에게 놓여 있음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회중성의 강조가 곧 회중주 의(cogreatationalism)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 개혁교 회의 정치형태는 오히려 반계급적이면서도 권위를 인정하는 일종의 피라미드식 구조를 지니게 되었다. 교회의 권위는 지역교회에서 장로회 또는 당회로, 그리고 장로회 또는 당회에서 지역 총회로, 그리고 지역 총회에서 전국 총회 또는 대회의 구조로 발전되었다. 이는 프랑스 개혁교회가 발전시킨 독특한 형태의 장로교주의로서 칼빈의 교회 정치 개념을 프랑스 개혁교회의 필요성에 맞게 수정시킨 것이었 다. 이 구조는 당회와 총회의 지속적 모임을 정당화했으며 이를 통해서 정규적 사역과 권징의 실천적 시행이 프랑스 개혁교회에서 가능해 졌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 개혁교회 총회에서 주로 다루어졌던 주제들은 크게 두 가지로 윤리적 문제들과 신학적 논쟁에서 비롯된 문제들이었다. 첫째, 윤리적 문제와 관련해서 장로회, 즉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당회는 모든 교회 멤버들에게 주어진 권위로부터 위임받아 권징을 시행했는데 이는 주로 행정적인 것으로 해석되었다. 장로회는 또한 교회에 의해서 파견된 대표자들로서 정당성을 지니고 총회에 참석했다. 총회의 권위는 상대적 권위 이상의 것이 아니었으며 성경에 복종하는 한, 교회 들의 뜻을 정당하게 대변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총회가 인간적 제도이므로 사실상 새로운 교리와 의식을 제정하는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둘째, 신학적 논쟁과 관련해서 로마 가톨릭, 알미 니우스주의, 소무르 지역에서 출발한 아미로주의의 주장들에 대한 신학적 독단성을 교회 법정에서 처되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17 세기 프랑스 교회의 주요 논쟁 주제는 알미니우스주의와 논쟁에서 파생된 신학적 문제들이었다. 일반적으로 총회는 이들에 대해서 단호한 입장을 취했지만 자신들의 신학적 주장을 과격하게 내세우려 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관용을 베풀고 건전한 교리로 이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태도를 취하였다. This article deals with the origin and development of the church government in the reformed churches in the 17th century. French churches, heavily influenced by Calvin s understanding of church government, had further expanded “the Church Discipline”(1559) with its original 38 articles into 252 articles until 1659. The structural system of the church was called the presbyterian-synodal system. This system especially emphasized the fact that ecclesiastical authority lies in the congregation while noting there is a factor of complementarity between the principles of diversity and unity. But this emphasis does not mean church had adopted congregationalism. In fact, the French church in the 17th century had developed a pyramidal governing system characterized by combining anti-hierarchical attitude and that of submissive to authority. The authority of church, which is originated from local church, is now represented by presbytery or session, from presbytery to local general assembly, from local general assembly to national synod or general assembly. This was a original church government system developed by French Reformed Church. It was modified version of Calvin s understanding of church government suited for the necessity of French Reformed Church. It provided a rationale for the consistent meeting of session and general assembly. As a result, it was possible to conduct regular ministry and practical discipline in the French Reformed Church. There were two subjects which had been mainly dealt with in the general assemblies of French Reformed Church: ethical problems and problems related to the theological controversies. First, regarding ethical problems, presbytery, which was composed of ministers and elders, practiced church discipline utilizing the power originally given to church members. General assembly had a relative authority. The meaning of relativity was interpreted as representing the will of local churches as long as general assembly was subjected to Scripture. Sec-ond, regarding problems resulting from theological controversies, general assembly dealt mainly with Roman Catholicism, Arminianism and Amyraldism. The French Reformed Church had decided dogmatism exhibited by these groups should be prohibited by church court. One of the most controversial issues in the French Reformed Church in the 17th century was problems related to the controversies against Arminians. General assembly had maintained very strict attitude towards them in general. Yet some degree of tolerance had been shown to those who were not radically propagating their thoughts along with maintained an attitude of persuading them with sound doctrines.
김홍만 ( Hong Man Kim ) 한국개혁신학회 2011 한국개혁신학 Vol.32 No.-
웨슬리는 온건한 칼빈주의를 인정하였으며, 알미니안주의와 함께 공존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분명히 웨슬리는 원죄를 인정하였으며,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였다. 웨슬리는 칭의 교리에 있어서 자신과 칼빈주의와 차이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와의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말하였고, 더 나아가서 칼빈주의에 대해서 비판을 하였다. 웨슬리는 그 시대의 칼빈주의자들의 예정, 선택과 유기, 저항할 수 없는 은혜, 성도의 최종적 견인 교리에 대해서 비판하였다. 이러한 칼빈주의자들의 가르침은 도덕률폐기론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결국 성화를 무시하게 된다고 하였다. 웨슬리는 그 당시 칼빈주의 신학자인 존 길과의 논쟁에서 더욱 이러한 신학적 성향에 대해서 비판하였다. 그러나 웨슬리가 그 당시 이해하였던 칼빈주의는 하이퍼 칼빈주의이었다. 하이퍼 칼빈주의자들은 예정, 선택과 유기, 저항 할 수 없는 은혜, 성도의 최종적 견인 교리를 통하여 인간의 책임 부분을 완전히 제거해버렸다. 그러나 웨슬리는 이러한 하이퍼 칼빈주의를 칼빈주의로 오해하였던 것이다. 실제로 칼빈은 예정을 가르치면서 성화를 강조하였으며, 칭의와 성화가 불가분의 관계인 것과 성도의 견인에서 인간의 책임 부분이 있음을 말하였다. 따라서 웨슬리는 하이퍼 칼빈주의에 대한 비판을 한 것이다. 물론 하이퍼 칼빈주의는 잘못된 신학이며, 반드시 개혁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날에도 웨슬리처럼 하이퍼 칼빈주의를 칼빈주의로 오해하고 성화를 무시하는 성향이 한국교회에 있다. 따라서 칼빈주의와 하이퍼 칼빈주의를 분명하게 구별하여 잘못된 가르침을 개혁해야 할 것이다. John Wesley acknowledged ``sober Calvinism`` which could be compatible with Arminianism. Wesley definitely admitted doctrine of original sin, and positively regard God`s providence. Even Wesley thought there was no difference between himself and Calvin in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However, Wesley said there are differences between Calvinism and Arminianism. Moreover, Wesley criticized Calvinism, especially doctrines of predestination, election and reprobation, irresistible grace, and final perseverance. Wesley thought that these doctrines caused believers to ignore their sanctification. Wesley debated with John Gill in regarding to predestination, election, perseverance. In this point, Wesley equated Calvinism with Antinomianism. However, John Gill was not a Calvinist, but a hyper-Calvinist. Hyper Calvinism was a sort of Antinomianism. In another word, Wesley confused Calvinism with hyper-Calvinism. Calvinism is totally different from hyper-Calvinism. Calvin asserted the importance of the doctrine of predestination which he believed as its goal the sanctification of believers. Moreover, Calvin never said predestination as determinative doctrine. Calvin taught the relation of justification and sanctification. Calvinism is not Antinomianism. Even today, in churches, confusions between Calvinism and hyper-Calvinism still exist like Wesley`s. On the other hand, hyper-Calvinism in Korean churches has brought to ignore sanctification in the believers. Therefore, firstly, there should be clear distinction between Calvinism and hyper-Calvinism, secondly, there should be taught that hyper-Calvinism is error.
우병훈 한국개혁신학회 2015 개혁논총 Vol.34 No.-
스코틀랜드 장로교 신학자 딕슨(David Dickson, c.1583-1663)은 구속언약론의 발전사에서 초기에 위치하는 인물이지만, 그 교리의 중요한 요소들을 잘 정립하여 후대에 전수함으로써 개혁주의 구속언약론의 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딕슨은 구속언약론을 주석적, 교리적, 논쟁신학적, 실천적 측면에서 두루 발전시켰다. 그의『히브리서주석』,『 사도들의모든서신서주석』,『 마태복음주석』『, 시편주석』등은구속언약교리의성경적근거를잘제시하고있다. 또한, 웨스트민스터 신조 해설집인『구원하는 지식의 요체』(제임스 더럼과 공저)와 중생론을 다룬『거룩한 치료』에서도 구속언약 교리가 잘 부각되고 있 다. 무엇보다딕슨은1638년“총회연설”『, 거룩한치료』『, 사도들의모든서신서 주석』에서 구속언약 교리를 알미니우스파와 대항하기 위해 적극 활용하였다. 딕슨은 구속언약론을 다른 교리들 예를 들어 삼위일체론과 기독론과 잘 조화시켜서 개혁신학을 더욱 풍성하게 했다. 또한 그는 구속언약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여러 조항들에서 발견해 냄으로써 구속언약론이 개혁주의권내에서 뿌리내리도록 했다. 그리고 딕슨은『거룩한 치료』에서 구속언약을 성도의 삶에 실제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성도들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면서도 성화의 삶을 잘 가꾸어나가도록 도와주었다. 딕슨의 구속언약론에서 나타나는 위와 같은 다양한 특징들은 향후 구속언약론의 발전에서 중요한 기초석이 되어 그 교리의 역사에 뚜렷한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The Scottish Presbyterian theologian David Dickson (c.1583-1663)contributed very much to the development of the doctrine of the covenant of redemption (i.e., the pactum salutis). Although his doctrine stood in the early stages of its development, it comprised important elements of the doctrine. He formulated the doctrine from exegetical, doctrinal, and elenctic perspectives. Dickson’s commentaries on Hebrews, the New Testament letters, Matthew,and Psalms persuasively offer biblical foundations for the doctrine. The Summe of Saving Knowledge (1649), a companion piece to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and a collaborative work with James Durham, clearly sets forth the threefold covenant scheme?the covenant of works, the covenant of redemption, and the covenant of grace. Therapeutica Sacra, which treats the doctrine of regeneration, also presents the doctrine of the covenant of redemption in detail. Dickson’s “Speech to the General Assembly” (1638) endorses the doctrine to refute the errors of Arminianism. In his various works, Dickson harmonized the doctrine of the covenant of redemption with other doctrines such as Trinitology and Christology along with the basic tenets of Reformed theology, and in so doing he developed Reformed theology more deeply. He also found the doctrine of the covenant of redemption in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and rooted the doctrine within Reformed circles. Most of all, Dickson practically applied the doctrine in his Therapeutica Sacra to the life of believers to provide them with a vivid dynamic for sanctification as well as a full assurance of salvation. In sum, the above characteristics of Dickson’s doctrine of the covenant of redemption played a very important role for the orientation and development of the doctrine for Reformed theology and life.
윤종훈 총신대학교 2022 總神大論叢 Vol.42 No.-
This research aims to systematically analyze the contents of Owen's work, A Display of Arminianism, and to evaluate its theological characteristics. From a biblical foundation, Owen examined the problems of Arminian theology that were prevalent in Britain at the time. He dealt with various biblical themes, such as the decrees of God, predestination, original sin, the death of Christ, faith, grace, righteousness, and man's free will, all from a very argumentative and epistemological perspective. He also used the hermeneutic methodology of theology to describe in detail how the works of God's providence and decrees have accomplished the history of salvation. Owen thoroughly used the Scriptures for his hermeneutics to achieve this purpose, representing the most unique and extraordinary phenomenon of Puritan theology. 본 연구의 목적은 청교도 신학의 완성자인 존 오웬의 알미니안주의의 해부라는 작품에 대한 구조적 분석 및 신학적 특징들을 고찰함에 있다. 오웬은 당대 잉글란드에 풍미하였던 알미니안 주의의 신학적 문제점들을 은혜신학적 관점에서 철저하게 분석하고 개혁주의적 대안을 제공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경륜, 예정, 섭리, 원죄,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믿음, 은혜, 의로움을 위시하여 인간의 자유의지와의 상관성을 논쟁적이고도 인식론적 관점에서 상세하게 다루었다. 특히 그는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의 사역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구원사에 적용되었는지에 관하여 해석학적인 방법론을 동원하여 분석하였다. 오웬의 신학은 청교도 신학의 특징적 방법론인 연합 신학에 근거하여 수많은 성경구절을 동원하여 알미니안주의의 문제점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 였다. 이러한 그의 신학적 특징은 개혁주의 전통인 칼빈주의에 철저하게 입각하였으며 어거스틴 신학적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