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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논문 : 개항 초기(1876~1880) 부산주재(釜山駐在) 일본관리관(日本管理官)의 파견,활동과 그 특징

        최보영 ( Bo Young Choi ) 동국사학회 2014 동국사학 Vol.57 No.-

        본 연구는 1876년 10월 일본이 부산에 파견한 釜山駐在 日本管理官의 파견경위와 그들의 활동을 분석해 개항 초기 일본의 대조선 인식과 외교정책의 초기형태를 고찰한 것이다. 관리관은 1880년 2월 부산에 領事가 파견되기 전까지 조선에 상주한 최초의 근대적 외교관이다. 일본은 1871년 영사관제를 마련해 본격적으로 해외 곳곳에 영사를 파견하였다. 부산 개항 이전에 이미 일본은 11개 도시에 영사를 파견할 정도로 영사파견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개항 당시 조선의 대일감정의 악화 등으로 말미암아 근대적 제도인 영사를 파견하지 않고 관리관이라는 새로운 명칭의 외교관을 파견하였다. 관리관은 일본이 오직 부산에만 파견한 독특한 명칭의 외교관인 것이다. 이시기 파견된 관리관은 네 명으로 이들은 모두 해외경험이 있거나 개항 전 조선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이후 조선의 개항장에 영사로 재부임하는 경우가 많았다. 원산의 초대 총영사와 부산의 초대 영사는 모두 관리관 출신이었던 것이다. 영사에 준하는 관리관은 자국민을 보호하고 무역상 이익을 확장시키는 데 주력하였을 뿐만 아니라 조선과의 외교현안을 협의하고 처리하는 등 공사의 대리업무까지 수행하며 실로 다양하게 활동하였다. 개항 초기 파견된 관리관은 부산으로 이주하는 자국민의 정착과 세력 확장을 위한 첨병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던 것이다. This article is to analyze the details of dispatch of the Japanese``s Gwanrigwan to Busan and their activities, and is to consider the recognization of Japan to Chosun and diplomatic policy at the early of Opening of Port. The Japanese``s Gwanrigwan was the first modern diplomat residing in Chosun before the dispatch of Japanese consul in Busan on February 1880. After organizing the system of the Consul in 1871, Japan had sent the consul to abroad. Dispatch a consul was a general practice to Japan that had sent a consul to 11 cities before the Opening of Busan Port. But in those days of Opening of Port, due to the anti-Japanese sentiment Japan had not sent a consul who was a modern diplomat but a Gwanrigwan who was titled newly. Gwanrigwan who was sent only to Busan was an unique official name four men was dispatched at this times, but they had overseas experiences or activities in Chosun. And most of them had restarted for their post as a consul of opening ports in Chosun. The first consul general in Wonsan and Busan was a former Gwanrigwan. Receiving the same treatment of as consul, Gwanrigwan had protected Japanese in Chosun, promoted the interest of their traders, and discussed diplomatic issues with Chosun, and performed the proxy task of diplomatic minister. After all the analysis, the Gwanrigwan who was sent in Chosun at the early of Opening of Port was working as an advance guard for settlement of Japanese in Busan and the extension of their power into Chosun.

      • KCI등재

        개항 초기(1876~1880) 釜山駐在 日本管理官의 파견·활동과 그 특징

        최보영 동국사학회 2014 동국사학 Vol.57 No.-

        본 연구는 1876년 10월 일본이 부산에 파견한 釜山駐在 日本管理官의 파견경위와 그들의 활동을 분석해 개항 초기 일본의 대조선 인식과 외교정 책의 초기형태를 고찰한 것이다. 관리관은 1880년 2월 부산에 領事가 파견 되기 전까지 조선에 상주한 최초의 근대적 외교관이다. 일본은 1871년 영사관제를 마련해 본격적으로 해외 곳곳에 영사를 파 견하였다. 부산 개항 이전에 이미 일본은 11개 도시에 영사를 파견할 정도 로 영사파견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개항 당시 조선의 대일감정의 악화 등으로 말미암아 근대적 제도인 영사를 파견하지 않고 관리관이라는 새로 운 명칭의 외교관을 파견하였다. 관리관은 일본이 오직 부산에만 파견한 독특한 명칭의 외교관인 것이다. 이시기 파견된 관리관은 네 명으로 이들은 모두 해외경험이 있거나 개 항 전 조선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이후 조선 의 개항장에 영사로 재부임하는 경우가 많았다. 원산의 초대 총영사와 부 산의 초대 영사는 모두 관리관 출신이었던 것이다. 영사에 준하는 관리관 은 자국민을 보호하고 무역상 이익을 확장시키는 데 주력하였을 뿐만 아니 라 조선과의 외교현안을 협의하고 처리하는 등 공사의 대리업무까지 수행 하며 실로 다양하게 활동하였다. 개항 초기 파견된 관리관은 부산으로 이 주하는 자국민의 정착과 세력 확장을 위한 첨병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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