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원문제공처
          펼치기
        • 등재정보
        • 학술지명
          펼치기
        • 주제분류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일제강점기의 한글서예 동향과 특징 연구

        김도임 한국동양예술학회 2023 동양예술 Vol.58 No.-

        한국서예사는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고려, 조선 그리고 개화기를 거쳐 일제강점기와 현대로 발전해 갔다. 시대에 따라 한국서예사에 대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가고 있지만 일제강점기의 서예, 그 중에서도 한글서예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하지만 한글 연구에 대한 필요성은 날로 더해가고 있다.  한국서예사는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고려, 조선 그리고 개화기를 거쳐 일제강점기와 현대로 발전해 갔다. 시대에 따라 한국서예사에 대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가고 있지만 일제강점기의 서예, 그 중에서도 한글서예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하지만 한글 연구에 대한 필요성은 날로 더해가고 있다.  일제강점기은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식민통치를 당한 35년간(1910-1945년)의 기간으로 전통미술과 신미술 모두를 식민지 체제 안에 두고 문화를 말살하려는 일본제국주의와 나라를 잃은 상황에서도 민족문화를 계승하려는 민족의 정신적 그리고 현실적인 항쟁이 일어나는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은 독립운동의 일환으로서도 지속적으로 보급되었다.  19세기 말 한글은 국문으로 격상되고 한국인의 문자생활에 전면적으로 등장한다.  20세기 전반기에 한글의 서예화는 시작에 불과했으며 한자만으로 이루어져 왔던 서예 문화의 관습과 언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한글에 대한 폄하 의식 또한 쉽게 바뀌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20세기 전반의 서예는 한문을 중심으로 발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글은 서예술로 작품화 이전에 한글 문헌 간행본으로서 서민들의 다양한 서체와 변화를 가지고 있었다. 간행본 중에서도 고소설에서는 한글만을 사용한 필사본의 한글을 통해서는 정형화되지 않은 다양한 자형의 형태와  한글서예의 변화와 시도들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이는 한글서체가 목판본이나 필사본으로 간행 될 때에는 작품화가 되어있는 서체로 완성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글서예는 필사만이 아닌 독립된 서예술로 승화하려는 노력이 지속되었고 일제강점기는 한글서예 뿐만이니라 문화가 전반적으로 침체된 시기 임에도 불구하고 서예 교육의 체계화와 다양한 사설 교육기관과 협회의 창립, 공모전과 휘호의 시작으로 전문 서예가가 나타나는 시기이기도 했으며 현대까지 이어지는 공모전 위주의 아카데미식 교육과 작가 발굴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현대까지 한국 서단의 중심축이 되는 서예가들을 국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한글서예 동향과 특징 연구를 통해 한글서예 근대기의 시작을 열어보고자 했다. 이 연구를 통해서 일제강점기 한글서예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KCI등재

        한글 서예의 미학 - 서체미를 중심으로 -

        장지훈,張志熏(Jang, Ji-Hoon) 한국서예학회 2019 서예학연구 Vol.34 No.-

        한글이 창제된 이후, 한글은 서예와 만나면서 풍부하고 다양한 서체와 미감을 형성해왔다. 다만 전통의 한글 서예는 어떠한 형태로 변화해왔는가에 대해서는 인식하기 용이하나, 어떠한 미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쉽지 않다. 때문에 한글 서예의 미를 논하기 위해서는 한자 서예의 예술적 특징을 한글 서예에서도 발견하고, 이를 부각시켜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한글 서예를 전통의 서법적 관점에서 조명하였다. 먼저 한글 서예의 서체는 대략 고체 ․ 정자체 ․ 흘림체로 분류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고체는 자형이 좌우대칭과 정사각의 기본적인 틀을 유지하고 있으며, 대체로 단정하고 근엄하여 경건(勁健)의 미를 느낄 수 있다. 획의 굵기 변화는 미세하나, 예서와 해서가 혼합된 남조의 해서풍처럼 기필과 수필의 방필(方筆)이 두드러지며, 대체로 금석의 졸박한 기운이 서려있다. 정자체는 전반적으로 평정한 결구와 안정적인 필세가 특징적이다. 판본의 고체가 필사화 되어가면서 고체에 비해 자형이 세련 되고 필획의 유연함이 두드러지며, 직선적인 필획과 방정한 자형의 정제된 글꼴 속에서도 맑고 담백한 운치를 느끼게 한다. 흘림체는 서간이나 가사 등의 경우, 정자체의 기본 자형을 바탕으로 때로는 거칠고 강렬한 필획을 가미하고 필속을 경쾌하 게 하여 절주(節奏)의 미가 강하다. 반면, 궁서의 경우 곡선적인 섬세한 필획을 부드럽게 연결하여 수려하면서도 정제된 멋이 깃들어 있다. 한글은 한자에 비해 비록 문자의 구조와 글꼴은 단순하지만, 한자 서예가 지닌 다양한 서체의 미학이 한글 서예에도 내재되어 있다. 특히 한글 서예는 특정 서체를 막론하고 한국인의 섬세하고 우아한 격조에서부터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한 생동감은 물론, 즉흥적이고 자유분방한 운치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자연친화적인 정서와 심미의식이 다양한 형태로 반영되어 있다.

      • KCI등재

        한글서예의 연구현황과 개선방안

        장지훈(Jang, Ji-Hoon) 한국서예학회 2021 서예학연구 Vol.38 No.-

        한글서예는 한글이 창제된 후 각종 서체가 생성되고 작품화가 이루어져 600여년 가까이 예술적으로 변천되어 온 것은 아니다. 실제 쓰임이 위주가 된 글씨체로서 한글의 사용빈도와 확산과 발전에 따라 서체의 생성과 발전, 예술성이 서서히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한글에 대한 연구는 국어학계에서 학술적으로 많은 성과가 있었지만, 서예사적으로 한글의 예술성에 대한 연구는 크게 다뤄지지 못했다. 그러다 근래에 와서 한글서예에 대한 연구자가 늘어나고, 학문적 관심도 증대되면서 한글서예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 성과가 축적되어가고 있다. 이에 본고는 최근 30년간 한글서예의 연구현황을 살펴보고, 연구의 경향을 분석한 뒤, 향후 한글서예 연구의 개선과제를 제안해보고자 한다. 특히 한글서예의 학술적 연구내용을 도출하는 기존의 연구와는 달리 한글서예 연구아카이브 구축을 시도한 것으로, 한글서예의 연구 성과를 한 자리에 집약하고 분류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한글서예 관련 연구 저서 10편과 논문 155편을 분석한 결과, 한글서예에 관한 연구는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규모와 수준의 연구 성과를 내었다. 이는 한문서예 분야에 비해 학술적인 연구의 필요성과 그에 대한 인식이 낮았던 예전에 비해 한글서예가들이 점차 한글서예의 학문적 연구 가치와 필요성, 중요성에 대해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방증해준다. 비록 한글서예가 한문서예의 역사에 비해 2500여년 뒤늦게 출발했지만, 한문서예가 예술적·학문적으로 자리잡아가는 과정에서의 오랜 역사적 시간을 감안한다면 한글서예는 단기간에 상당히 연구가 진전되고 축적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다만 한글서예가 지난 30년간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향후 학문의 발전과 도약을 기약하기 위해서는 연구의 개선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에서 네 가지 과제를 제안하였다. Hangeul Calligraphy has not been artistically transformed for nearly 600 years since the creation of Hangeul, as various types of Calligraphy were created and produced as examples of Korean documents. It is a writing style that focuses on actual use, and the value of Calligraphy, development, and artistry were simultaneously created and developed according to the frequency and spread and development of Hangeul. Therefore, the study of Hangeul has achieved a lot of academic achievements in the field of Korean linguistics, but the study of the artistry of Hangeul in Calligraphy has not been dealt with much. Nevertheless, as the number of researchers on Hangeul Calligraphy has increased and academic interest has increased in recent years, the basic research results on Hangeul Calligraphy have been accumulating considerably. In response, the main school wants to examine the current status of research on Hangeul Calligraphy over the past 30 years, analyze the trends of research, and propose tasks to improve Hangeul Calligraphy research in the future. In particular, unlike previous studies that derive academic research content of Hangeul Calligraphy, it is meaningful that it attempted to build a Hangeul Calligraphy research archive, which summarizes and categorizes the research achievements of Hangeul Calligraphy in one place. According to the analysis of 10 research books on Hangeul Calligraphy and 155 papers, the research on Hangeul Calligraphy produced significant scale and level of research results despite the short period of time. This proves that Hangeul calligraphers are gradually increasingly aware of the value, necessity, and importance of academic research in Hangeul Calligraphy compared to the past, when the need for academic research and awareness of it was lower than in the field of Chinese Calligraphy. Although Hangeul Calligraphy started 2,500 years later than the history of Chinese Calligraphy, it is no exaggeration to say that Hangeul Calligraphy has progressed and accumulated considerably in a short period of time in the process of artistic and academic establishment. However, based on the research results of the past 30 years, four tasks were proposed in the idea that improvement of research would be necessary in order to take a leap forward in the future.

      • KCI등재

        秋史 金正喜의 한글簡札과 漢文書藝와의 相關性

        김경순(Kim Kyung-Soon) 한국서예학회 2005 서예학연구 Vol.7 No.-

        秋史 金正喜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금석학자이며 서예가로 書卷氣와 文字香이 뛰어난 예술인으로서 일세를 풍미한 작가로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다. 한글간찰도 단순한 편지이기 이전에 그의 유감없는 神韻을 발휘했다. 본 논문에서는 1979년부터 공개되기 시작한 김정희의 親筆 한글 簡札 40편 중 일부를 선별하여, 한글간찰과 한문서예와의 相關性을 분석하였다. 본론에서는 한글간찰과 한문서예와의 상관성을 筆畫․結構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본 연구를 통하여 추사의 한글간찰 필획은 한문서예의 필획에서 유래되고 있다는 점과 함께 行․草書 필법을 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결구는 당시 한글서체와는 구별되는 것으로 그 어디에서도 유사한 예를 볼 수 없다. 連結字에 있어서도 한문 필법이며, 일반 한글과는 달리 생동감이 넘친다. 그리고 결구의 다양성에 대한 분석을 한 결과 한문의 행․초서에 나타나는 다양한 변화를 표현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김정희 한글간찰은 변화무쌍한 한문의 행․초 서예에 바탕한 自家風의 글씨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정희 한글간찰은 字形에서 同形反復이 거의 없다. 이는 편지 쓸 당시의 표현하려는 느낌이 강하게 반영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즉 이것은 서예의 본질인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 변형의 정신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김정희의 한문서예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와 같은 재현성의 절제는 김정희 서예의 큰 특징을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이 김정희는 한문서예에서 체험된 필획의 변화를 한글간찰 서체에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으며, 일명 추사체로 일컬어지는 한문서체를 한글에 응용하고 있었다. 이렇듯 김정희가 쓴 한글간찰 서예는 한문서예 못지않게 서예의 精髓에 접근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한글서예 연구에 큰 희망을 제공하고 있다. 그 이유는 象形文字에 바탕을 둔 한문서예의 장점을 충분히 연구하고, 그것을 한글 서예에 접목한 서예가가 김정희이기 때문이다. 현 시대는 한글 전용시대이므로 서예에 있어서도 특별히 한글의 예술화가 요구된다. 그런 현실을 감안할 때 한문서예를 근간으로 한글서예의 독창적인 세계를 개척한 김정희야말로 앞으로 한글서예의 발전에 초석이 되는 중요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김정희의 한글간찰은 서예사적으로 재정리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김정희의 한글간찰은 한글서를 예술화하는데 있어서 커다란 돌파구가 되어준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Kim Jeong-hee whose penname is Chusa was a representative calligrapher and scholar in ancient monumental inscriptions. He was well-known to the international society as an artist who had an excellent calligraphic style with its fragrance of orthography. This writer anlayzed the interrelationship of the Hangeul letters and Chinese characters calligraphy of some of Kim Jeong-hee's forty Hangeul letters which have been open to the public ever since 1979. In the main subject of this thesis, the interrelationship of the Hangeul letters and Chinese characters calligraphy was analyzed in terms of calligraphic strokes, structure, and the contemporary calligraphy styles. The calligraphy strokes of Hangeul letters resulted from those of Chinese characters and came from the technique of calligraphy of the cursive and semi-cursive styles. This structure is quite different from the Hangeul style of the same period and we can find the similar examples nowhere else. The linking letters are similar to the style of Chinese characters and are full of life and have no repetition of the same frames unlike the Hangeul style. In connection with structure, Kim Jeong-hee commanded a diverse transformations of writing by using the strokes and structure of writing in Chinese characters. Kim Jeong-hee's Hangeul letters had no influential relations with those of other contemporary Hangeul letters. His writing was of his own style. No repetition of the same frame is found in his Hangeul letters. This means that he tried to express the fundamental quality of calligraphy, laying stress on the diversity. We can also find such an expression in his Chinese calligraphy. This kind of temperance of reappearance is the unique characteristic of Kim Jeong-hee's calligraphy. He expressed his diversity of Chinese strokes in his Hangeul letters, too. As has been said above, he applied the Chusa style of Chinese characters to the Hangeul letters. Kim Jeong-hee's calligraphy of Hangeul letters can be safely said to be the essence of calligraphy like that of his Chinese characters. This fact shows a great hope in the study of Hangeul calligraphy, because Kim Jeong-hee studied the merits of Chinese calligraphy based on the pictographs and grafted this principle to the Hangeul calligraphy. As the present age is the age of Hangeul, we also need to study of the art of Hangeul in the field of calligraphy. Consequently, Kim Jeong-hee is the person who laid the cornerstone in terms of Hangeul calligraphy. From this point of view Kim Jeong-hee's Hangeul letters need to be rearranged for the history of calligraphy. His Hangeul letters must be a great breach in the artistic work of Hangeul calligraphy. Today when the creative materials of the indefinite style are scanty, the Hangeul letters of Kim Jeong-hee who used the Chinese strokes and structure of the cursive and semi-cursive style of Chinese characters, must have a great meaning and value in the history of calligraphy as a textbook

      • KCI등재

        1920-50년대 한글 서예의 한글 인장 사용 연구

        이인숙(Lee, In-suk) 한국서예학회 2012 서예학연구 Vol.21 No.1

        This thesis is written to look into the aspects of Hangeul seal-engraving art by the year of 1920-1950's. It was possible for Hangeul seal-engraving art to become a new form of art in the 20th century, since Hangeul was used as Korean letters instead of Chinese and Hangeul became a part of calligraphy. The founders of Hangeul calligraphy are Hanseo(翰西) Namgung-eok(南宮檍 1863-1939) and Sahudang(師候堂) Yun Back-young(尹伯榮 1888-1986). By them, Hangeul calligraphy works were appeared in the court style of writing the Korean script, but Chinese seal-engraving has been used. Hangeul seal-engraving was not used by 1930's, and at that time it was the general situation of the times. The first Hangeul seal-engraving was showed in Iljung(㊀中) Kim Chung-hyeon(金忠顯 1921-2006)'s Sijoshipchup(時調十疊) in 1942. Kim Chung-hyeon used Hangeul seal-engraving in his Hangul calligraphy in the early 1940's, which showed his pioneering consciousness, and after that he used several Hangeul seal-engravings in 1940s and 1950s. His Hangeul seals were engraved by his brother Yeocho(如初) Kim Eung-hyeon(金膺顯 1927-2007). Kim Eung-hyeon, calligrapher and seal engraver, is recognized as the most important artist used Hangeul seal engraved by himself. His first Hangeul seal-engraving was identified in his work, Hoongyejasonga(訓戒子孫歌) in 1946, which he made at the age of 20. Hyodereiyeui(효뎨례의) by Kim Eung-hyeon, he recreated the shape of the coins and letter forms in Joseon dynasty as a modern Hangeul art, and it created a model of beautiful Hangeul seal-engraving patterns. He achieved a remarkable work as a pioneer in the field of Hangul seal-engraving art. Galmul(갈물) Lee Chul-kyung(李喆卿 1914-1989) used the separate writing forms of Hangeul seal-engraving in 1947 and her sister, Gokdul(꽃뜰) Lee Mi-kyung(李美卿 1918-) used similar forms of Hangeul seals. These seals seemed like from their father, Yaja(也自) Lee Man-gyu(李萬珪 1889-1978), a Hangeul scholar who wanted his daughters to learn the court style of Hangeul writing and gave them Hangeul pen names. Ohsechang(오세창), Mumu(뮤뮤) by Wichang(葦滄) Oh Se-chang(吳世昌 1864-1953) is Hangeul seal-engraving made before his death in 1953, and '뮤뮤' is hard to understand its meaning. Considering that Oh Se-chang was a translater, fluent in Chinese and also the meaning of the seal letters, I assume that the Chinese pronunciation of 'mùmù(穆穆)' was engraved as '뮤뮤' in Korean letters. The followings are some representatives in the early Hangeul seal-engraving art: Namgung Eok contributed to the pioneering achievement of the court style of writing the Korean script to be realized and disseminated. Lee Chul-kyung and Lee Mi-kyung, the daughters of Lee Man-gyu, a Hangeul scholar, put their efforts to expand the base of the court style of writing the Korean script. Kim Chung-hyeon used Hangeul seal-engraving in his Hangul calligraphy in the early 1940s. Kim Eung-hyeon who was a pioneer in Hangeul seal-engraving art and developed the very first phase of it. Oh Se-chang who left Hangeul seal-engraving as a national pioneer. Oh Se-chang and Kim Eung-hyeon are recognized as seal engravers who engraved Hangeul seal for the first time. Kim Eung-hyeon is recognized significantly as the first person who engraved his own Hangeul seal-engraving and used it on his Hangeul calligraphy works. 한글 인장예술은 한글이 國文으로 사용되고, 서예의 한 분야로 자림 매김 된 이후 새롭게 성립된 분야이다. 한국서예사에서 한글 서예와 한글 인장예술은 매우 중요함에도 아직 연구가 미흡하다. 이러한 인식 아래 1920-1950년대 한글 서예에서 한글 인장이 사용된 상황을 한글 인장예술의 초기 양상으로서 살펴보았다. 한글의 서예 작품화는 1920-1930년대 翰西 南宮檍(1863-1939)과 師候堂 尹伯榮(1888-1986)으로부터 시작되었으나 이들은 한문 인장으로 낙관하였으며, 조선미 술전람회 한글 서예 입상작에서도 한글 인장을 찾아 볼 수 없었다. 1930년대까지는 한글 서예에도 한문 인장으로 낙관하여 한글 인장이 사용되지 않았던 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시대적 상황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본고에서 살펴 본 바 한글 인장이 사용된 한글 서예의 현전하는 가장 이른 예는 1942년 작인 一中 金忠顯(1921-2006)의 <時調十疊>이다. 김충현은 1940년대초 선구적으로 한글 서예에 한글 인장을 사용하였고, 1940-1950년대에 여러 벌의 한글 인장을 사용하였음을 확인하였다. 김충현이 사용한 한글 인장은 대부분 동생인 如初 金膺顯(1927-2007)이 새겼다. 김응현은 서예가, 전각가로서 한글 인장을 직접 새겨 사용한 최초의 작가로 주목되며, 확인되는 이른 용례는 20세 때인 1946년 작 <訓戒子孫歌>이다. 김응현은 한글 인장예술을 개척한 선구적 전각가로서 한글이 주조된 조선시대 별전을 응용한 葉錢形印 <효뎨례의>(인31)로서 한글 閑章에 있어서 하나의 전형을 창출하였다. 갈물 李喆卿(1914-1989)은 1947년 작<고시조>에서 한글 풀어쓰기로 된 인장을 사용하였고, 동생 꽃뜰 李美卿(1918-)도 이와 유사한 한글 인장을 사용하였다. 이들이 1940-1950년대에 사용한 한글인장은 딸들에게 한글 호를 지어주고 궁체를 학습하게 한 한글학자인 아버지 也自李萬珪(1889-1978)의 안목에서 나온 것으로 여겨진다. 20세기 전반기에 활동한 많은 전각가들 중 한글을 새긴 전각가는 葦滄 吳世昌(1864-1953), 雲如 金廣業(1906-1976), 鐵農 李基雨(1921-1993), 김응현 등에 불과하다. 오세창의 한글 인장 <오세창>, <뮤뮤>는 그가 사망한 1953년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뮤뮤’는 뜻을 알기 어렵다. 필자는 ‘穆穆’의 중국어 발음 ‘mùmù’를 한글로 새긴 것으로 추정하였다. 오세창이 중국어에 능통했던 漢語 역관이었던점, 소리 나는 데로 표기하는 한글의 표음문자로서의 특징, ‘위엄 있고 온화함’이라는 뜻을 가지는 印文이 자신의 이름인 ‘오세창’과 함께 새겨진 점 등이 그 이유이다. 그렇다면 <뮤뮤>는 이른 시기의 한글 閑章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한글이 한국인의 문자생활에 전면적으로 부상한 초기에 선구적으로 한글 궁체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작품화에 힘쓰고 한글서예 교본을 남긴 남궁억, 자신의 집안에 보내진 궁중의 편지를 통해 궁체를 서예화하고 후진을 양성한 윤백영, 한글학자 이만규의 딸들로 궁체 저변화에 노력하고 일찍이 한글 인장을 사용한 이철경과 이미경, 궁체 일변도의 한글 서예에서 훈민정음창제 당시의 판본을 연구해 古體를 창안하고 1940-1950년대에 여러 벌의 한글 인장을 사용한 김충현, 한글 인장예술의 선구자로서 초기 국면을 개척한 김응현, 일제강점기 민족 운동가이자 서예가, 전각가로서 한글 인장을 남긴 오세창 등을 한글 인장예술 초기의 대표적 인물로 꼽을수 있다. 오세창과 김응현은 한글 인장을 처음으로 새긴 전각가로 자기 매김 되며, 김응현은 자신의 한글서예에 한글 인장을 自刻自用한 최초의 작가로서 의미가 크다.

      • KCI등재

        『옥원중회연』 한글 필사본의 서지학 고찰과 서사기법

        이정자(李正子) 한국서예학회 2015 서예학연구 Vol.27 No.-

        韓文書法是昇華韓國文字成了文化遺産的. 考察這樣韓文書法話, 可能直到18世紀極發達國文小說. 在18世紀文學上一批出來的大變化是飜譯成韓文的小說. 這樣時代的變化形成國文小說的一些讀者, 而 出現了爲充足讀者的筆寫者. 到現在傳來當時筆寫國文本. 其中現在以韓文書法家爲範本小說是韓國學 中央硏究院藏書閣本的『玉鴛重會緣』. 因此對這小說要硏究幾個問題. 第一, 首先訪問首兒大學校奎章閣, 而考察了『玉鴛重會緣』的韓文筆寫本. 這筆寫本卷末有添記. 所以由這筆寫本能可知書名 · 書體 · 筆寫者 · 筆寫時期 · 分量 · 添記 · 連作有無 · 所藏處 · 圖書的大 小. 第二, 韓國學中央硏究院藏書閣本的『玉鴛重會緣』看不見添記和後人題跋. 因此參考所藏處的筆 寫本考察了書名 · 書體 · 分量 · 所藏處 · 圖書的大小. 第三, 在延世大學校所藏本『옥원재합』的標題同一首兒大學校奎章閣本『옥원재합긔연』的. 但 因相異內面題目, 而分別了首兒大學校奎章閣本是『옥원재합긔연』, 延世大學校所藏本是『옥원재 합』的. 『옥원재합』卷末有添記, 據添記內容可知筆寫時期, 而不知筆寫者. 還在添記中可知個紹自 身的內容, 而不知他的性別 · 職業 · 年齡. 因此對書誌學的側面來說, 只可知書名 · 書體 · 分量 · 所藏 處 · 圖書的大小而已. 第四, 梨花女子大學校所藏本的標題同一韓國學中央硏究院藏書閣本的『玉鴛重會緣』. 但兩本的 書體不一致, 卽韓國學中央硏究院藏書閣本是正書和行書, 而梨花女子大學校所藏本是混合正書和行書 的書體. 而且在梨花女子大學校所藏本『玉鴛重會緣』中看不見添記和後人題跋. 因此參考所藏處的韓 文筆寫本, 只可知書名 · 書體 · 分量 · 所藏處 · 圖書的大小而已. ?外判斷還沒發現的有異本下, 要搜輯在全國博物館 · 大學校 · 圖書館, 而到現在還沒發現的. 有 機會的話, 不斷要搜輯日本圖書館和俄國博物館等的韓文筆寫本. 若發現『玉鴛重會緣』的異本, 在韓 文書法史有意義. 第五, 韓國學中央硏究院藏書閣本的價値和影響. 在漸漸提高書法文化意識的當代, 現存朝鮮後期的韓文筆寫本是極感謝的事情. 特別直接能看到的事情是眞光榮. 雖然別時代而變文化, 當時筆寫者和現代韓文書法家皆通過韓文的筆?創造韓文美. 其中是韓文的好範本. 因 國文小說最高潮發達時筆寫本, 極端雅?勁, 分間布白勻麗. 但各異本有差, 而可能韓國學中央硏究院 藏書閣本是最好範本. 本硏究主題的主要目的是在分別書誌學的資料. 因爲首先執筆前一定有對範本正確理解, 才可能正 活用範本. 한글서예는 우리글을 예술로 승화하는 문화유산이다. 이러한 한글서예의 원류를 살펴보면 국문 소설이 가장 활발하였던 18세기를 만날 수 있다. 18세기 문학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한글로 된 소설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는 국문 소설의 새로운 독자층을 형성시켰고, 독자층을 충족시켜야하는 필사자들이 많이 나타났다. 그리고 당시 필사한 한글 필사본들이 현전하고 있다. 본 연구는 이 가운데 현재 한글서예인들이 가장 범본으로 삼고 있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본 『옥원중회연(玉鴛重會緣)』을 포함한 5종류의 서지학과 서사기법의 특징 을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이 소설에 대하여 몇 가지 주제를 가지고 연구 한 결과로 삼고자 한다. 첫째, 먼저 서울대학교 규장각을 방문하여 서울대학교 규장각본 『옥원재합긔 연』,『옥원전해』의 한글 필사본을 살펴보았다. 이 도서에는 권말에 첨기가 있다. 이에 소장된 필사본을 참고로 서명 · 서체 · 필사자 · 필사시기 · 분량 · 첨기 · 연작의 유무 · 소장처 · 도서의 크기 등을 알 수 있었다. 둘째,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본 『옥원중회연』은 본 내용 어디에도 첨기나 후 인들의 글씨가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소장처의 필사본을 참고로 하여 서명 · 서체 · 분량 · 소장처 · 도서의 크기 등을 살펴보았다. 셋째, 연세대학교 소장본 『옥원재합』은 표제명이 서울대학교 규장각본 『옥원 재합긔연』과 동일하였다. 그러나 속 제목이 다르므로 서울대학교 규장각본은 『옥 원재합긔연』, 연세대학교 소장본 『옥원재합』으로 구분하도록 하였다. 이 소설의 권말에는 첨기가 쓰여 있었다. 첨기의 내용으로 보아 필사시기는 알 수 있었으나 필사자 자신이 누군지는 정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한 내용이 첨기에 보이기는 하지만 성별이나 직업 또는 나이 등을 알 수 없었다. 따라서 서지 적 측면은 서명 · 서체 · 분량 · 소장처 · 도서의 크기 정도만 알 수 있었다. 넷째, 이화여자대학교 소장본 『옥원중회연』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본 『옥원중회연』과 표제명이 동일하다. 그러나 두 도서의 서체는 다르게 필사하였는데 한 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본은 ‘정자’와 ‘흘림’이고, 이화여자대학교 소장본은 ‘정자’와 ‘흘림’을 섞어 쓴 ‘흘림’의 형태이다. 그리고 이화여자대학교 소장본 『옥원중회연』은 권두나 권말에 첨기나 후인들이 쓴 내용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따라서 소장처의 한글 필사본을 참고로 하여 서명 · 서체 · 분량 · 소장처 · 도서의 크기 정도만 알 수 있었다. 이외에도 아직 발견되지 않은 이본이 있을 거라는 추측 하에 전국의 박물관과 대학교 및 도서관 등을 대략적으로 살펴보았으나, 아쉽게도 같은 이름의 고서나 이본은 현재까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 지을 수 없기에 일본 도서관이나 러시아 박물관 등에도 한글 필사본이 존재하고 있는지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생각이다. 이유는 한글서예의 범본으로 삼고 있는 『옥원중회연』의 낙 질이나 새로운 이본이 발견된다면, 이는 한글서예학에 큰 의미가 있는 일이 될 것이 기 때문이다. 다섯째,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본 권지십일을 선택하여 서사기 법의 특징을 몇 가지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이는 국문 소설이 가장 활발하던 시기의 정점에 필사되었기 때문에 가장 단아하 고 힘이 있으며 공간의 분배 비율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이본들의 글씨 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본과 조금의 차이가 있으므로 아마도 오랫동안 서체의 모본으로써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본을 범본으로 삼고 글씨를 쓸 것 같다. 다음은 『옥원중회연』의 가치와 영향이다. 서예의 문화의식이 점차 가치를 높여 가는 이 시대에서 조선후기의 한글 필사본이 현존하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그 필사본을 직접 살펴 볼 수 있다는 것은 진실로 영광스러운 일이 었다. 비록 시대는 다르고 문화도 바뀌었지만 당시의 필사자들이나 현대의 한글서예 가들은 한글의 필획을 통하여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예술의 도구로 한글을 채용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본 의 글씨는 본보기로 삼기에 훌륭한 범본이다. 이 글의 연구 목적은 서체의 모본으로 사용하기 전에 가장 기초가 되는 서지학 연구에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필법을 기술하였다. 왜냐하면 이는 가장 기본적인 연 구로 초학자들이 붓을 잡기 전에 먼저 범본으로 삼아야 할 교재에 대한 정확한 분별력이 있어야 비로소 이를 올바르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한글서예의 현대적 변용과 전승으로서 손글씨 콘텐츠의 방향성 제언

        이채론,노창현 글로벌문화콘텐츠학회 2022 글로벌문화콘텐츠학회 학술대회 Vol.2022 No.6

        오늘날 급증하고 있는 한글 캘리그라피에 대한 관심과 유행은 한글 서예의 질적 하락을 야기 시킨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서예와 손 글씨에 대한 관심을 점차 증가시키고 있다, 이는 디지털 시대 기계문명이 대체해가고 있는 육필문화의 위기에 대한 대처가 될 수 있으며 한글문화콘텐츠 개발에도 긍정적인 시각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한글이 창제된 이후 한글의 부흥은 창제된 당시가 아닌 조선후기에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한글이 가진 민족적이고 민주적인 성격이 대중매체인 소설과 조우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한글은 창제 당시 애민사상과 자주적인 성격을 바탕으로 백성의 교화를 목적으로 반포되었다. 이를 위해 한글 목판본 인쇄를 위한 판본체가 발전하였고, 이후 왕실을 중심으로 필사체인 궁체가 발달하였다. 조선후기에 이르러 백성들의 문화 속에서 꽃피운 한글 서체는 민체다. 한글 캘리그라피의 도입과 확산은 전통 서예라는 기반 위에 현대 디자인이 융합하면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한글 민체의 등장과 성장은 대중매체인 한글 소설과 연관성이 있었으며, 한글 캘리그라피의 등장과 성장은 대중들의 감성과 아날로그에 대한 수요시장에 의해 이루어졌다. 한글 캘리그라피가 가진 개방적이고 창의적이며 자유분방한 특성은 한글 민체의 성격과 닮았으며, 그 시대적 배경 역시 비슷하다. 이러한 양자간 연관성에 대한 연구는 디지털 시대 육필문화의 전승으로서 한글 서예가 가진 가치를 상기시키고 향후 한글 서예, 보다 근원적으로는 손 글씨가 문화콘텐츠로 기능하기 위한 방향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 KCI등재

        신영복 한글서예의 캘리그라피적 가치

        이영애(Yeong-Ae Lee) 한국서예학회 2023 서예학연구 Vol.42 No.-

        신영복은 다양한 호칭으로 불린다. 대학교수, 경제학자, 무기수, 사형수, 동양고전학자, 문학가, 에세이스트, 사상가, 시대의 지성인, 시대의 스승, 서예가 등이다. 이 연구에서는 ‘서예가 신영복’을 조명하였다. 그의 다양한 호칭이 말해주듯이 굴곡진 삶에서 꽃피운 사상이 온전히 서(書)에 스며들어 동시대의 사람들과 소통의 수단으로 역할을 한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전통 한글서예에서 탈피한 독자적인 문자예술의 면모를 일신하면서 대중에게 친숙한 예술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발흥한 캘리그라피 예술 장르는 개인의 취향과 개성을 중시하는 사회문화 기조와 맞물린다. 이 중심에 신영복의 한글서예가 있다. 그의 한글서예는 방송이나 영화 타이틀, 책 제호, 상품 로고 등 다양한 디자인으로 활용되면서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캘리그라피 장르와 사뭇 다르지 않다. 즉 그의 글씨는 현대의 캘리그라피 예술문화 속에서 어색함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신영복의 한글서예가 지니고 있는 캘리그라피적 표현성을 분석함으로써 그의 문자예술이 갖는 중요한 가치를 찾을 수 있었다. 첫째, 개성과 정감을 내포한 형식미가 있다. 둘째, 시대를 반영한 예술 장르에 속한다. 셋째, 대중들이 가까이하는 문자예술이다. 이처럼 신영복의 한글서예는 전통서예의 재현에서 벗어나 새로운 서체의 조형미를 구현하였다는 점에서 선구적 위치에 있으며 더불어 변화하는 서(書)예술의 이정표가 되는 예술적 의의가 있다. 지금의 캘리그라피 예술문화는 전통서예의 확장에서 기인한 산물인 것은 분명하며 시대적 요구에 의한 서예술의 자연스러운 변화 양상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문자를 사용하는 인간의 삶이 영위되는 한 문자에 정감을 담아내고자 하는 예술의 지향은 서예술 문화의 발전을 이끌 것이다. Shin Young-bok is called by various titles. They are university professors, economists, life-threatening prisoners, death row prisoners, oriental classicists, writers, essayists, thinkers, intellectuals of the times, teachers of the times, and calligraphers. In this study, 'calligrapher Shin Young-bok' was illuminated. As his various titles suggest, the thoughts that blossomed in his tumultuous life fully permeated into his writings and served as a means of communication with contemporaneous people. The reason why this was possible is that it has established itself as an art familiar to the public while renewing the aspect of an independent character art that has broken away from traditional Korean calligraphy. The calligraphy art genre, which has emerged since the mid-1990s, meshes with the social and cultural trend that values individual taste and individuality. At the center of this is Shin Young-bok's Korean calligraphy. His Korean calligraphy is not very different from the calligraphy genre we recognize as it is used in various designs such as broadcasting or movie titles, book titles, and product logos. In other words, his handwriting has no awkwardness in the modern calligraphy art culture. Accordingly, by analyzing the calligraphic expressiveness of Shin Young-bok's Korean calligraphy, it was possible to find the important value of his letter art. First, there is a formal beauty that implies individuality and emotion. Second, it belongs to an art genre that reflects the times. Third, it is a letter art that the public can get close to. As such, Shin Yeong-bok's Korean calligraphy is in a pioneering position in that it has deviated from the reproduction of traditional calligraphy and realized the formative beauty of a new typeface, and has artistic significance as a milestone in the ever-changing calligraphy art. It is clear that the current calligraphy art culture is a product of the expansion of traditional calligraphy, and it can be seen as a natural change in calligraphy art according to the needs of the times. As long as the lives of people who use letters are conducted, the direction of art to contain emotions in letters will lead the development of calligraphy art culture.

      • KCI등재

        한글서예 서체명칭의 통일방안 연구

        장지훈(Jang, Ji Hoon) 한국서예학회 2015 서예학연구 Vol.27 No.-

        한자서예의 서체는 시공을 초월하여 운필과 결구, 즉 서사의 형태에 따라 篆書 ․ 隸書 ․ 楷書 ․ 行書 ․ 草書 5체로 분류된다. 이에 반해 한글서예의 서체는 약42종의 명칭이 사용되고 있어서 마치 42종의 한글서체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중 의 대부분은 한 두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명칭이기 때문에 보편타당성을 갖지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동일한 서체에 대해 각기 다른 명칭을 사용한 결과이다. 40여 종의 한글서예 서체명칭은 형태적 특징에 따른 분류가 아니라 사용자 ․ 용도 ․ 책자 ․ 장소 등에 따라 임의로 부여되었다. 때문에 한글서예의 서체는 분류와 명칭에 있어서 서예학적 연구가 시도되어야 마땅하다. 즉, 한글서예 서체의 분류와 명칭은 과거의 서체를 통섭하면서 현대를 아우르고, 후대로 계통성을 이어갈 수 있 도록 보편성과 체계성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에 본 연구는 ‘순수서예적 측면’에서 한글을 붓으로 서사하여 나타난 자형의 體勢가 지닌 ‘형태적 특징’에 따라 한글서체의 체계적인 분류와 명칭통일을 시도하 였다. 용필과 결구에 의한 서체의 분류는 일정한 시대나 특수한 상황에 한정되지 않고, 시공을 초월하여 형태적 계통성을 갖는 서체로 분류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에 의해 ‘곧음체’, ‘바름체’, ‘흘림체’, ‘진흘림체’ 4종으로 분류 ․ 제안하였다. 이 4종의 서체명칭과 분류체계는 서사자 ․ 장소 ․ 용도 ․ 도구 등의 조건에 상관 없이 붓으로 서사한 문자의 체세에 의한 형태적 특징에 따라 정리된다. 이는 산발 적으로 사용되었던 기존의 서체명칭과 분류에서 벗어나 ‘순수서예적 입장’에서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명명할 수 있는 방안이다. 수없이 다양한 서체를 포괄할 수 있 는 분류방법이며, 명칭 또한 순수한글로서 함축적이고 간명하게 인식될 수 있다. In Chinese calligraphy, the fonts are classified into five types - Zhuanshu, Lishu, Kaishu, Xingshu, and Caoshu - by the way of description such as the movement of brush or the structure, transcending time and space. On the other hand, when it comes to the font of Hangul calligraphy, there have been used about 42 names so that it seems 42 different types of Hangul font are in use. Since a majority of them were made by one or two people, they are lack of universal validity in most cases, resulted from giving different names to the same font. About 40 kinds of font names in Hangul calligraphy have been classified not by physical feature but randomly by user, purpose, book, or place. Hence, the study in a calligraphic approach should be tried to establish the classification and name of the fonts of Hangul calligraphy. In other words, classification and name of the fonts of Hangul calligraphy should encompass the past and the modern while having universality and systemicity to be descended to the subsequent generation. At the aspect of pure calligraphy, this study tries to make a systemic classification and the unity of names by physical feature in the shape of typeface presented in description of Hangul with brush. The classification of font by the use of brush and the structure is a way to classify the fonts as having physical systemicity not limited in specific times or certain situation, transcending time and space. In this way, this study makes classification, suggesting four types of font including Godeumche (Straight Font), Bareumche (Upright Font), Heulimche (Cursive Font), and Jinheulimche (Genuine Cursive Font). These four names of font and the classification system are arranged by physical feature in the shape of character described by brush, regardless of writer, place, purpose, or writing supplies. From the existing font name and classification sporadically used, this suggestion is the way of systemic classification and naming at the aspect of pure calligraphy. It is the classifying method that encompasses numerous different fonts and also makes it possible for the name of font itself to be recognized simply but implicitly as a pure word.

      • KCI등재

        평보 서희환 서예의 근대성 연구

        金熙政 동양고전학회 2013 東洋古典硏究 Vol.0 No.51

        본 논문은 한글서예에서 독자적 서예 조형 언어를 확립한 평보 서희환의 서예를 통해 ‘근대적 예술 개념으로서의 서예’를 확인해 보고자하는 시론이다. 이를 위해 근대성의 지표로서의 ‘자율성’에 근거하여 서예의 자율성 문제에 있어서의 순수형식과 한글서예의 자율성(독자성) 문제를 한자로부터 독립양상을 제시하였다. 서예의 자율성과 한글서예의 자율성(독자성) 문제는 난제가 아닐 수 없다. 서예의 소재인 문자[漢字]의 문제와 한글이 서예의 예술성(조형성)을 얼마나 잘 담아낼 수 있는 소재인가의 문제가 상존하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중국글자로 인식하고 있는 漢字를 서예의 소재로 삼는 한, 우리는 그들에 종속을 피하기 어렵다. 서희환은 이러한 문제를 한자서예의 예술성을 빌려 한글서예의 예술적 퀄리티를 높이는데 성공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그의 한글서예 탐구 의지는 이른바 ‘한글(훈민정음) 창제원리의 철학성과 과학성’보다는 한글의 조형적 예술화에 있었음을 그의 예술관과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