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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하야시 후미코의 『전선(戰線)』 에 나타난 전쟁담론 고찰

        이상복 한일군사문화학회 2016 한일군사문화연구 Vol.22 No.-

        하야시 후미코는 전쟁을 미화하기 위해서 정치권력의 지배하에 결성된 “펜부대”의 요원으로, 북안 부대의 병사들과 함께 일주일간 생활하며, 그때 보고느꼈던 최전선의 일을 통신으로 적은 『전선』을 발표한다. 『전선』에는 부대의 기본적인 작전 내용이나, 대국적인 전술에 대한 표현은 거의 없고, 군대와 국민의 사기고양을 위해 일본의 침략 전쟁을 미화하고 병사를 찬미하는 문장 표현이 많이 있다. 또, 전시 상황과 황군의 승리, 우월성 선전, 적국에 대한 보복 선동 등, 침략자의 우월감을 부각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후미코는 중국병사에 대한 노동력 착취와 인권 침해를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표현하고, 그것을 침략자가 전쟁의 승리로 얻는 특권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여성 작가 특유의 관점과 감각으로 전장에서의 병사들의 생활상을 후방에 전달하고, 더 나아가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직접 한구에 입성한 것이 크게 주목 받아, 전선은 후미코의 출세작 방랑기에 이어 인기작이 되었다. 결국, 군대와 국민 사기 진작, 일본의 침략 전쟁 미화, 전쟁의 열기 고취 등, 최초의 여성 종군작가 후미코는 일본 정부의 기대에 부응한 작가였다. 林芙美子は戰爭を美化するため政治權力の支配下に結成された「ペン部隊」の要員として、北岸部隊の兵隊と一緖に一週間生活し、その時見て感じた最前線のことを通信で書いた _戰線_を發表する。_戰線_には部隊の基本的な作戰內容とか、大局的な戰術に對する表現はほとんどなく、軍隊と國民の士氣を高めるために、日本の侵略戰爭を美化し、兵隊を贊美する文章の表現がたくさんある。また、戰時狀況と皇軍の勝利、優越性の宣傳、敵國に對する報復扇動など、侵略者の優越感を浮き彫りにしている。それだけではなく、芙美子は、中國兵隊に對する勞動力の搾取や、人權侵害をあまりにも當然なこととして表現し、それは 侵略者が戰爭の勝利で得られる特權であると自慢している。そして、女性作家ならではの觀点と感覺で戰場の兵隊たちの生活ぶりを後方に傳え、ひいては女性として初めて直接、漢口に入城したことが大きく注目されて、_戰線_は芙美子の出世作_放浪記_に續く人氣作となった。結局、軍隊と國民の士氣高揚、日本の侵略戰爭美化、戰爭の熱氣鼓吹など、最初の女性從軍作家芙美子は日本政府の期待に應えた作家だった。

      • KCI등재후보

        전장(戰場)과 후미코의 무상감-"북안부대(北岸部隊)"를 중심으로-

        이상복 한일군사문화학회 2014 한일군사문화연구 Vol.18 No.-

        도쿄(東京)에서의 생활에 지쳐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던 하야시 후미코(林芙美子)는 펜 부대의 일원으로서 북안부대에서 병사와 함께 생활을 하게 된다. 이 때, 최전선에서 보고 느낀 경험을 살려 『전선』과 『북안부대』를 발표한다. 그 중에 일기형식으로 쓴 『북안부대』에는, 전장에서의 비참한 모습과 후미코의 무상감이 잘 묘사되고 있다. 참혹한 전장에서의 중국군과 일본군에 대한 후미코의 표현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중국인 시체를 ‘물체’로까지 비화하는가 하면, 또 고장 난 무기로 대항하는 어린 소년병의 모습 등을 통하여 열악한 중국의 실상을 알리고 있다. 그러나 일본군 병사는 내지의 가족들이 자랑스러워하며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표현며, 처참한 모습은 자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후미코는 생명의 위험을 느끼는 전장에서, 도쿄에서의 작가활동과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첫사랑의 문제 등으로 지쳐 있던 자신의 내재된 무상감을 발견하고, 죽어서 도쿄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처럼 후미코는 『북안부대』에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다. 東京で的生活に疲れ、新しい突破口を探している林芙美子は、ペン部隊的一員として北岸部隊で、兵士と生活を共にすることになる。こ的時、最前線で見て感じた經驗をもとに"戰線"と"北岸部隊"を發表する。そ的內的、日記形式で書かれた"北岸部隊"には、戰場で的みじめな姿と芙美子的無常感が豊かに描寫されている。みじめな戰場で的、中國軍と日本軍に對する芙美子的表現には現著な差が見られる。中國人的死體を「物體」として表現しているし、末た、故障した武器で對抗する幼い少年兵的姿等を通し、劣惡な中國的實狀を全元ている。しかし、日本兵士的姿は、內地的家族が自慢して誇りを持てるように表現して、妻慘な姿は自制されているということがわかる。個人的に芙美子は、生命的危驗を感じる戰場に書いて、東京で的作家活動と家長として的責任感、初戀的問題等で疲れた自分的內在する無常感を發見し、死んで東京に太りたいと考元るようになる。こ的ように、芙美子は"北岸部隊"に自ら的率直な感情をそ的末末描き出している。

      • KCI등재

        ‘대륙문학’의 기획과 이기영의 『대지의 아들』

        QIAN CHUNHUA 만주학회 2017 만주연구 Vol.- No.23

        This paper studies the relationship between Lee Gi-young’s The Son of the Earth and ‘continent exploitation literature’, focusing on the fact that the novel was a ‘continent literature’ designed by Chosun Ilbo. Chosun Ilbo proceeded with this plan, which originated from internal and external circumstances of the literary world at a time when total mobilization systems of writers started with the ‘corps of the pen’. It was also labelled ‘continent literature’, despite clear awareness that it represented ‘continent exploitation literature’ that eclipsed the typical continental literature of that time. Therefore, Lee Gi-young’s The Son of the Earth was product sandwiched between external pressure as a ‘planned novel’ and the inner desires of the writer. In turn, such internal-external antipodal relationship presented several gaps in the novel’s composition, presenting several limitations on the novel as a whole. 본고는 <조선일보>에서 ‘대륙문학’으로 기획한 이기영의 <대지의 아들>이 사실은 식민지말기 집중적으로 생성된 ‘대륙개척문학’의 한 양상이었음을 살펴보았다. 비록 ‘대륙문학’이라는 이름으로 기획되었지만 그것은 ‘대륙개척문학’을 지칭하는 또 다른 별칭일 뿐이었다. ‘대륙개척문학’은 ‘생산문학’과 마찬가지로 식민지말기 국책문학의 하위 장르의 하나였고 주로 1938~1942년 ‘농민문학간화회’와 ‘대륙개척문예간화회’의 회원들에 의해 집중적으로 창작되었다. 조선일보가 이와 같은 기획을 진행하였던 것은 당시 ‘펜 부대’를 시작으로 하는 문인총동원체제와 일본에 의해 주도되었던 새로운 만주이민정책의 시행이 시기적으로 조응하면서 새롭게 부각되기 시작했던 ‘만주 개척’에 대한 관심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대지의 아들>은 소재나 구성, 인물형상의 부각 등 몇몇 면에서는 ‘대륙개척문학’의 형식과 요소들을 갖추고 있지만 ‘개척문학’의 중요한 이념이었던 ‘개척정신’과 ‘만주 명랑’을 서사화하는 데에는 실패하고 있다. 이는 작가 이기영이 ‘대륙문학’의 이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거나 내면화하는 데에는 협조적이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이렇듯 『대지의 아들』은 ‘기획소설’이라는 외적인 압력과 그 문학적 이념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없었던 작가의 내적인 갈등 사이에서 길항하면서 생성된 텍스트였다. 동시에 이 작품은 식민지말기 ‘만주 개척’의 의미를 다시 천착해 볼 필요가 있음을, 특히 1940년대 초반에 집중적으로 생성되었던 만주 재현 문학을 ‘개척’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다시 읽을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 KCI등재

        패전 이후 전환기 시대의 두 여성작가

        손지연(Son, Ji Youn) 동아시아일본학회 2014 일본문화연구 Vol.0 No.51

        This thesis is focused on comparing and studying the post-war works of the female writers Miyamoto Yuriko and Hayashi Humiko, who became active before the World War II and during wartime. First, in the case of Miyamoto Yuriko, she expressed antagonism against state violence and the fascism of the pro-emperor throughout the wartime, and joined the writers" union, which was part of the Japanese proletariat, in 1930 when the war intensified. She led a hard life of being imprisoned, discharged, and banned from writing. Hayashi Humiko, on the other hand, as a member of the wartime "pen battalion", cooperated actively, and she published numerous works catering to the state of affairs. What is interesting is that the new keyword “anti-war” is lumps together two female writers who came from such different backgrounds. The limitations of both authors are clear. Humiko took on the role of cheerleader for the war faithfully, vividly showing the aftermath of defeated war and mental panic, while Yuriko, who was one of the few female writers who could be questioned for the post-war responsibility of the literati as a proletarian writer.

      • KCI등재

        소설 改寫 및 시국 隱喩 -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의 전쟁관 시론

        무붕 한중인문학회 2019 한중인문학연구 Vol.63 No.-

        일본 대중 문학 작가 요시카와 에이지가 『삼국지연의』을 원본으로 개작한 『삼국지』는 중 일전쟁 시기에 등장했다. 작가는 삼국 이야기의 전반적인 프레임을 유지하면서 서사 방식에서부터 인물 이미지와 사상 및 문화에 이르기까지 두루 개작하였다. 9․18 事變 후, 요시카와 에이지는 일본 군부가 조직한 ‘十四日’에서 활약하였는데, 처음에는 신문사의 특파원 신분이었으나 그 이후 정부의 명령으로 ‘펜 부대(ペン部隊)’의 일원이 되어 시종일관 침략 전쟁의 ‘協力’ 역할을 도맡았다. 요시카와 에이지의 전쟁관은 그의 문학 창작에 이입되었고, 이러한 이입은 『삼국지』 속에서 크게 보아 두 방면에서 표출되고 있다. 하나는 疆土를 開擴하는 曹操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재구성함으로써 일본의 대외적 팽창에 대한 정당성을 암시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침략 전쟁이 天하는 합리적인 근거를 조작하기 위해 ‘왕화사명(王化使命)’ 론을 극력 선양하는 것이다. 소설 중에 나타나는 참혹한 전쟁에 시달리는 민중에 관한 묘사는 양심이 남아 있는 작가가 전쟁을 직접 목격한 후 인간성에서 표출된 보통 사람에 대한 약간의 동정과 연민일 뿐이었다. 사실상 작가는 소위 ‘왕화사명’이라는 것으로 전쟁에 깊이 빠져 있던 보통사람을 구하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이 모든 환상이 일본의 패전으로 인하여 물거품이 되었고, 요시카와 에이지 본인도 문화 戰犯으로서 양심적 고문과 도덕적 가책을 겪게 되었다. Eiji Yoshikawa, a modern Japanese popular literature writer, created historical novel San Goku Shi, which is the adaptation version of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during Japanese war of aggression against China. From a frequenter of “Fortnight Community” organized by Japanese army after September 18th Incident, to a special correspondent of newspaper office, and then to a member of “literature troop” dispatched by the Japanese government, Eiji Yoshikawa’s support for the war synchronizes with the progress of the war and his view on war has been implanted in his novels. Specifically for San Goku Shi, his view on war is displayed by two aspects: the first is the rebuilding of Cao Cao’s image which implies the legitimacy of his aggression; the second is the promotion of the “royal mission” that “the cultivated shall civilize the barbarous”, which serves as the legal basis for the justification of the aggression war. However, all the fantasies are destroyed by Japan’s losing and Eiji Yoshikawa also descends into a culture war criminal, tortured by conscience and censured by mor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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