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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륵의 명호와 미래불로서의 사상적 기반

        박민현 한국정토학회 2017 정토학연구 Vol.27 No.-

        본 논문은 미래불로서의 미륵의 명호와 그 사상적 기반에 대해 고찰해 본 것이다. 먼저 미륵은 미륵이라는 이름 외에도 아일다(阿逸多, 아지타)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지만 언제부터 미륵이 아일다라는 이름을 동시에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아함경』을 비롯한 초기 불전들을 중심으로 그 둘의 상관성을 고찰해 보았다. 첫째로 『아함경』에는 총 다섯 개의 소경에 아지타란 이름이 등장하고, 미륵이라는 이름은 열다섯 개의 소경에 등장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아지타는 크게 부처님의 제자, 이교도 사문 만두의 제자, 그리고 6사외도의 아지타케사캄발리로 구분된다. 하지만 이들은 전혀 미륵과는 상관성이 없는 인물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미륵은 수행과정에 따른 지위에 따라 네 가지 경우로 분별되어 독립적으로만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즉 부처님의 제자, 삼세 수행자로서의 미륵보살, 도솔천에 거주하는 일생보처보살로서의 미륵보살, 미래에 출세할 미래불로서의 미륵불이다. 특히『중아함경 「설본경」에서는 아지타와 미륵이 동시에 등장하지만, 이 둘은 전혀 상관성이 없는 각각의 부처님의 제자들이다. 이와 같이 볼 때 최소한 『아함경』 단계에서는 아지타와 미륵은 별개의 인물로서 설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둘째로 『숫타니파타』와 『현우경』은 그 이야기의 구조와 내용의 유사성으로 인해 이 둘의 관계를 유추해 볼 수 있는 훌륭한 자료들이다. 만일 이 두 경전이 동일한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면 삥기야는 빈기기에 대응하고 아지타는 미륵에 대응하므로 아지타와 미륵을 동일인물로 간주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하지만 이 두 경전이 제작된 시기에는 어느 정도 시간적 차이가 존재하고, 두 경전의 동일성을 입증할 문헌학적, 역사학적 고증이 아직은 불충분하기 때문에 아지타와 미륵을 동일 인물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렇다하더라도 그 가능성을 유추해볼 수 있는 가장 초기의 사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셋째로 『법주기』에서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16명의 대아라한이 등장하는데 이 중 열다섯 번째 인물이 바로 아지타이다.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아지타에 대한 내용은 보편적인 미륵사상과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기도 하고 전혀 상반되는 사상이 혼재되어 있다. 따라서 『법주기』의 내용만으로는 아지타와 미륵이 동일인물이라고 단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설출세부의 율장에서 분리된 『마하바스투』에는 명확히 아지타와 미륵의 동일성이 밝혀져 있다. 그리고 『마하바스투』는 B.C 2세기부터 제작되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대승경전들보다 그 제작시기가 앞선다고 볼 수 있으므로 아지타와 미륵의 동일성을 입증할 최초의 경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제작 시기는 최대 A.D 4-5세기까지 이어지므로 쉽사리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미륵불이 석가모니불을 이어 다음 세대의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공식적인 인증절차나 그를 입증할 사상적인 기반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수행중인 불제자에 불과한 미륵이 스스로 미래의 부처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설득력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사상적 기반 중의 하나가 바로 석가모니불 외에도 삼세에 걸쳐 수많은 부처가 존재한다는 삼세제불 사상이다. 과거불 사상은 석가모니불의 본생담 으로부터 비롯되어 그것이 일반화되고 정형화되었으며 궁극적으로는 과거에 셀 수 없이 많은 부처가 존재했었다는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대중부를 통해서는 시방의 모든 불국토에 현재 수많은 부처님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현재불 사상이 등장하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아미타불은 현재 극락정토에 거주하고 있는 부처님이며, 이후 ‘4방불’, ‘6방불’, ‘10방불’ 등 시방의 무수한 불국토에 무수한 부처님들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미래불 사상으로 가장 대표적인 사상은 성수겁천불 사상이다. 그리고 현겁천불은 구류손불부터 석가모니불까지의 과거불 사상뿐만 아니라 미륵불을 포함한 995명의 미래불 사상이 혼재되어 있다. 이렇듯 삼세에 부처가 존재한다는 사상을 토대로 본다면 미륵은 얼마든지 미래의 부처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미 부처를 이룬 석가모니불의 수기와 부촉은 의심할 바 없는 확실한 인증이라고 할 수 있다. 『일체지광명선인경』이나 『중아함경』「설본경」, 『비화경』 등에는 미륵에 대한 부처님의 수기가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금첩가사나 자신이 입었던 분소의를 미륵에게 전해 주는 과정을 통해 그 수기에 대한 확실성을 담보하였다. 『잡보장경』이나 『현우경』, 『중아함경』「설본경」, 『아육왕경』 등에는 미륵을 자신의 대를 이을 미래의 부처로 모두에게 보증하였다. 즉 미륵은 결코 스스로 자신이 미래의 부처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미륵은 불교 사상사에 있어서 삼세제불 사상 그리고 수기와 부촉사상을 통해 미래불로서의 그 지위와 위상을 확고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Maitreya has a different name in various Mahayana Sutras(大乘經典) including the Maitreya urdhva-janma sutra(彌勒上生經) that is a contemplation of Maitreya Bodhisattva ascending to the Tusita Heaven. It is the very ‘阿逸多’ that does a transliteration of Ajita. It is an important concern to we know when he becomes this name and comes to the same thing with it. Ajita is found in the Agama(阿含經), the early Buddhist scriptures. However, this name has nothing to do with Maitreya and is just the disciple of Buddha or a person of non-Buddhist way. Therefore, I suggest that Maitreya and Ajita are different people at the Agama. It is also difficult to find the definitive answer about their relationship through 『Sutta-Nipāta』, 『賢愚經』, 『法住記』, 『Mahāvastu』 etc. Maitreya is the future Buddha, and therefore he will succeed Buddha as the Buddha of the future. It means that Maitreya needs the official process or ideological foundations in order to become the future Buddha. One of them is ‘the thought of all Buddhas’(三世諸佛). It is no question at all that Maitreya is the future Buddha because Buddha already exists three times over the past, present, and future. Moreover, there are conclusive evidences; one is the permission(授記) that receives a prediction of enlightenment, and the other is request(咐囑) that is the verbal promise for the transmission of the Buddha-dharma. According to this, Maitreya is firmly to establish the status of the future Budd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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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17~18세기 三身三世佛掛佛圖 양식 연구

        김선희(Kim, Seon-Hee) 동서미술문화학회 2013 미술문화연구 Vol.3 No.3

        이 논문은 17, 18세기 인조?정조기의 <삼신삼세불괘불도>를 중심으로 형식 분류와 양식특징에 대해서 고찰한 글이다.이 시대는 전란 이후 사회적 변혁과 안정기를 거치며 소실된 불교사원을 복원하고, 활발한 불화조성으로 구도?형태?색채?문양 등에 있어 불화양식이 확립되는 시기로, 조선시대 불화 양식은 물론 불교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겠다. 조선시대 17세기 이후 三身?三世佛의 융합에 따라 괘불화의 경우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불이 한 조를 이루는 ‘비로자나삼신불’과 석가불?약사불?아미타불로 구성되는 ‘석가모니삼세불’이 혼합된 ‘삼신삼세불괘불도"는 조선시대의 새로운 도상으로서, 오불?사불?삼불 세 가지 형식으로 구분된다. 불상조각은 속리산 법주사 대웅전 상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3불 형식(비로자나?약사불?아미타불)이 전형을 이루고 있음이 파악된다. 이러한 도상은 17세기 오불회괘불도의 영향을 받아 18세기 삼신삼세불괘불도에서 정점을 이룬다. 둘째, 17세기 괘불도는 매우 다양한 구도를 보여주는데, ‘ㅗ’형 그리고 ‘역삼각형(▽)’, ‘횡방형(?)’, ‘사다리꼴"등의 배치법과 한 화면에 2단 또는 3단 의 群圖形式의 구도법이 보인다. 이후 화면을 꽉 채운 二段構圖는 그대로 傳承되어 18세기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셋째, 17세기 괘불도에 나타나는 형태는 16세기 불화의 양식적 특징에서 유사함을 많이 나타내고 있으며, 특히 국립중앙박물관 소장<四佛會圖>와 친연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어서 나타나는 1650년 作갑사 괘불도의 괴체화(塊體化)경향 등의 흐름은 1684년 作부석사 괘불도로 이어져 17세기 전반기의 소조비로자나불상과 동일한 양식적인 특징이 나타난다. 18세기 괘불도에서는 앞 시대에 비해 권속수가 많아지며 다소 경직되고 정형화된 모습이지만 대형작품에서 보여주는 화면 구성과 세련된 형태미 등에서 당대의 수작으로 평가된다. 넷째, 이 시기 괘불도의 색채적 특징은 비록 채색은 낡았지만 맑고 은은하여 17세기 불화의 고상한 분위기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적색과 녹색 계열을 주조색으로 하고, 佛身의 金彩,金泥와 변용한 황색 筆線, 광배의 화려한 연당초 문양, 중간 계열의 색사용 등은 명종대 왕실발원 불화의 섬세함과 화려함이 여전히 남아 있다. 18세기부터는 점차 탁해지고 장식적인 면과 진채적 성향이 나타나는 시기이지만 새로운 화풍을 계승하여 세대양식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게 한다. 이와 함께 전란 이후 피폐와 곤궁 속에서도 조선의 여러 신앙과 교리가 의식을 통해 만들어진 그림과 불상 조각이므로 그 가치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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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17-18세기 三身三世佛掛佛圖 연구

        김선희 한국불교학회 2014 韓國佛敎學 Vol.71 No.-

        In this paper, we studied type classification and form features around <Three World Buddhas Banner Paintings> during the reign of Injo⋅ Jeongjo in 17th, 18th century. The times are when Buddhist temples destroyed by fire through social change and stabilization period after war were restored and Buddhist painting style was established in composition⋅ form⋅color⋅pattern etc. by actively creating Buddhist paintings and can be said to hold an important position in research for the style of Buddhist paintings of the Joseon Dynasty as well as history of Buddhist paintings. According to the fusion of Trikaya⋅Three World Buddhas after 17th century of the Joseon Dynasty, in case of Buddhist Banner Paintings, ‘Three World Buddhas Banner Paintings’ in which ‘Seokgamoni Three World Buddhas’ consisting of Seokgamonibul⋅Yaksabul⋅Amitabul and ‘Biroojana Trikaya buddha’ composed of a group of Biroojanabul⋅ Nosanabul⋅Seokgamonibul are mixed is a new painting of the Joseon Dynasty and divided into three types of five Buddhas⋅four Buddhas⋅ three Buddhas. Except the sculpture in the main hall of Sokrisan Beopjusa, most Buddha sculptures are found to be formed with Three Buddhas type (Biroojana⋅Yaksabul⋅Amitabul). This painting was influenced by Hanging Painting of Five Monks Assembly in the 17th century and peaked in Three World Buddhas Banner Paintings in 18th century. Second, Buddhist Banner Paintings in the 17th century show various compositions such as placement method of ‘ㅗ’ type and ‘inverted triangle (▽)’ , ‘lateral square(▭)’, ‘trapezoid’ etc. and group image form of 2-stage or 3-stage in one screen. And then 2-stage composition filling the screen has been handed down and shows us the flow of the 18th century. Third, the form shown in Buddhist Banner Paintings in the 17th century is quite similar to stylistic characteristics of Buddhist Paintings in the 16th century and in particular, it shows affinity with <Four Buddhas Gathering Painting> owned by National Museum of Korea. And then the flow of big chunk tendency etc. of Gapsa Buddhist Banner Painting created in 1650 led to Buseoksa Buddhist Banner Painting created in 1684, showing stylistic characteristics which are the same as modeling, Biroojana Buddhist Sculpture in the first half of the 17th century. The 18th century Buddhist Banner Painting has more dependents compared to the previous period and is somewhat rigid and formal but evaluated as the masterpiece of the times in terms of screen configuration and sophisticated physical beauty etc. shown in large works. Fourth, though old, the colors of Buddhist Banner Paintings of the times are clear and delicate, showing the elegant atmosphere of 17th-century Buddhist paintings well. The main colors are red and green and delicacy and gorgeousness of King Myeongjong royal family praying Buddhist Paintings still remain in gold painted Buddha body, gold dust and transformed yellow line, colorful lotus rinceau pattern of halo, use of middle colors etc. The 18th century is the time when they became increasingly turbid and decorative aspect and deep-colored tendency appeared but the new style of painting was inherited allowing us to realize changes in the generation form. In addition, it turned out to be enough to feel their value because these are painting and Buddha sculptures made by several beliefs and doctrines of Joseon through rituals even in exhaustion and impoverishment after war. 이 논문은 17, 18세기 인조.정조기의 <삼신삼세불괘불도>를 중심으로형식 분류와 양식특징에 대해서 고찰한 글이다. 이 시대는 전란 이후 사회적 변혁과 안정기를 거치며 소실된 불교사원을 복원하고, 활발한 불화조성으로 구도.형태.색채.문양 등에 있어 불화양식이 확립되는 시기로, 조선시대 불화 양식은 물론 불교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겠다. 조선시대 17세기 이후 三身.三世佛의 융합에 따라 괘불화의 경우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불이 한 조를 이루는 ‘비로자나삼신불’과 석가불.약사불.아미타불로 구성되는 ‘석가모니삼세불’이 혼합된 ‘삼신삼세불괘불도’는 조선시대의 새로운 도상으로서, 오불.사불.삼불 세 가지 형식으로 구분된다. 불상조각은 속리산 법주사 대웅전 상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3불 형식(비로자나.약사불.아미타불)이 전형을 이루고 있음이 파악된다. 이러한도상은 17세기 오불회괘불도의 영향을 받아 18세기 삼신삼세불괘불도에서정점을 이룬다. 둘째, 17세기 괘불도는 매우 다양한 구도를 보여주는데, ‘ㅗ’형 그리고 ‘역삼각형(▽)’, ‘횡방형(.)’, ‘사다리꼴’ 등의 배치법과 한 화면에 2단 또는 3단의 群圖形式의 구도법이 보인다. 이후 화면을 꽉 채운 二段 構圖는 그대로傳承되어 18세기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셋째, 17세기 괘불도에 나타나는 형태는 16세기 불화의 양식적 특징에서유사함을 많이 나타내고 있으며, 특히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四佛會圖>와친연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어서 나타나는 1650년 作 갑사 괘불도의 塊體化경향 등의 흐름은 1684년 作 부석사 괘불도로 이어져 17세기 전반기의 소조비로자나불상과 동일한 양식적인 특징이 나타난다. 18세기 괘불도에서는 앞시대에 비해 권속수가 많아지며 다소 경직되고 정형화된 모습이지만 대형작품에서 보여주는 화면 구성과 세련된 형태미 등에서 당대의 수작으로 평가된다. 넷째, 이 시기 괘불도의 색채적 특징은 비록 채색은 낡았지만 맑고 은은하여 17세기 불화의 고상한 분위기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적색과 녹색 계열을주조색으로 하고, 佛身의 金彩, 金泥와 변용한 황색 筆線, 광배의 화려한 연당초 문양, 중간 계열의 색사용 등은 명종대 왕실발원 불화의 섬세함과 화려당초 문양, 중간 계열의 색사용 등은 명종대 왕실발원 불화의 섬세함과 화려함이 여전히 남아 있다. 18세기부터는 점차 탁해지고 장식적인 면과 진채적성향이 나타나는 시기이지만 새로운 화풍을 계승하여 세대양식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게 한다. 이와 함께 전란 이후 피폐와 곤궁 속에서도 조선의 여러신앙과 교리가 의식을 통해 만들어진 그림과 불상 조각이므로 그 가치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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