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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능동구조의 언어문화와 수동구조의 언어문화 : 비교언어문화학에서 본 한국어와 일본어

        安增煥(An Jeong-whan) 한국일본문화학회 2001 日本文化學報 Vol.10 No.-

        본고는 마키노 세이이치(牧野成一、 1996)의 언어문화학이라는 관점에서 한국어와 일본어의 구조적 특징을 비교하고 있다. 언어문화학이라는 학문은 언어가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는 가설에서 출발한 언어와 문화의 관계학이다. 즉 문화적특징을 통해 언어현상을 해석하려는 것인데, 필자 역시 한국어와 일본어 사이에 존재하는 구조적인 차이점 중 중요한 것 몇 개는 한국문화와 일본문화의 차이로부터 규명될 수 있다는 확신에서 본고를 시작했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거의 모든 통사범주에서 유사하나, 수동범주에서만은 놀랄 정도로 커다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 점에 착목해서 필자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각각 능동구조의 언어와 수동구조의 언어로 유형화시켰고, 이렇게 언어유형이 다른 배경을 한국과 일본이 각각 구상의 문화와 추상의 문화라는 상반된 문화구조를 갖고 있다는 데에서 찾았다, 한편, 능동구조의 언어와 수동구조의 언어라는 언어유형에서는 두 언어의 상이한 구조적 차이를 규명하는 데에 유효한 하위의 언어 유형 몇 개가 파생되고 있음을 본고는 명백히 했다. 즉 한국어와 일본어를 각각 시점이 고정적인 언어와 유동적인 언어, 통사중심의 언어와 명사중심의 언어, 결과 중심의 언어와 과정중심의 언어로 하는 대립된 언어유형이 그것이다. 이러한 언어유형은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두 언어의 구조적인 차이를 설명하는 데에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This study compares the structural characteristics of Korean and Japanese in view of linguistic culturology by Makinoseiich (1996), Linguistic culturology is the study of a relation between language and culture, which originates form the hypothesis suggesting that language is influenced by culture. That is. through cultural characteristics language phenomena are to be explicated. I have started this study with a conviction that some important things of structural differences which exist between Korean and Japanese can be clarified from differences between Korean the two countries' culture. Korean and Japanese are similar in almost all syntactic categories, but show remarkably big differences in a passive category. Noticing this, I have embodied Korean and Japanese in their respective language of active structure and that passive structure, and find out that this different background of types of language is attributed to the opposite cultural structure in which Korea has concrete culture and Japan has abstract culture. Meantime I make it clear that some effective sub-types of language are derived in this study in clarifying dissimilar structural differences between the two languages in types of language of passive structural language and active structural language. That is, the two languages are contrary types of language in that in a point of time Korean is fixed and Japanese is fluid, Korean is verb-centric and Japanese is noun-centric, and Korean is result-centric and Japanese is process-centric. These types of language are very meaningful to explain structural differences of the two languages in an organic relation.

      • 교키와 일본의 오대산문수신앙

        최복희(崔福姬) 한국일본불교문화학회 2011 일본불교문화연구 Vol.- No.4

        교커에 대한 연구, 즉 '교키론(行基論)'이라고 일컬어지는 연구는 매우 많은 성과물들이 축척되어 있다. 전전(戰前)의 교카연구로는 다이쇼초기에 씌어진 우메하라스에지(梅原末治)의 「교키사리병기(行基舎利甁記)에 보이는 그 성씨와 향년에 대해서」 대표적이다. 한편, 전후(前後)의 교키연구의 출발점이라고 해야 할 기타야마시게오(北山茂夫) 의 「교카론」은 전후 연구사에 기점적(起点的) 의미로서만 그 중요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이 연구는 이른바 '민중'의 입장, 즉 당시 율령반전민(律令班田農民)의 입장에서 행한 고대정치연구의 일환으로서 교키를 연구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그 문제의식이야 말로 더욱 중요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노우에카오루(井上薰)의 『교키(行基)』는 교키에 관한 모든 것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다양한 방면에서의 접근은 물론, 치밀하면서도 폭넓은 실증작업을 통해 교키의 생애를 구체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날 이 연구는 '교키연구의 기초문헌'으로 불리고 있다. 교키는 불교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 즉 정치ㆍ일본고대사ㆍ불교문화ㆍ사회복지ㆍ국문학 방면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교키라는 인물의 중요성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글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교키연구는 교카와 오대산문수신앙과의 관련이다. 그것은 오대산문수신앙의 일본잔래가 교키의 문수화산설(文殊化身說)이나 바라문승정문수치우설(婆羅門僧正文殊値遇説) 속에 그 교리와 함께 구체적인 설화의 형태로서 답습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먼저, 『일본영이기(日本靈異記)』에는 교키관한 설화가 다른 승려들의 기술보다 많다' 『일본영이기』의 교키관련 설화는 교키 사후에 형성되었다는 관점이 일반적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키가 행한 설법이 설화가 아니라 그 사적(事蹟)이 설화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아사에다젠쇼우(朝枝善照)는 "『일본영이기』의 교기설화는 『속일본기(續)日本記』에 기제된 교키전(行記傳)에 영향을 받지 않고, 전혀다른 소전에 의한 것이라는 점, 교키연구에서 참고해야할 점이다."라고 술하고 있다. 『일본영이기』 중에 「삼보를 믿고 공경하여 현보를 얻은 이야기」가 교키의 문수화신(文殊化身)에 관한 설화이다. 아사에다젠쇼우는 "이 설화는 오오토모(大伴)씨에 전승된 야스노코에 관한 자료를 참조해, 성무 천황, 동대사건립, 교키의 불교포교 등을 연결하고 있지만, 교우카이가 살았딘 시대에는, 이와 같이 일본에 오대산 불교문화, 즉 문수신앙이 전래되어 민중에 이해되기 시작해, 교카의 '문수반신설'이 성립하게 되었다 한국의 오대산과의 관련성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교키의 오대산설화, 여기에는 이미 성덕태자 성무천황, 오대산문수-교키의 일련의 전설이 완성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삼국불법전통연기(三國佛法傳統緣起)』의 동대사를 중심으로 믿어온 전설에 연계하는 것이다. 교키는 '교키보살'로도 불렸다. 이에 대한 시대적 배경으로, 8 세기 일본에는 승명(僧名)에 보살칭호를 더하여 불렀던 것이 성행하였던 것이다 또 민중을 위해서 이타행을 행하는 승려들은 자신들을 '보살' 또는 '화주(化主)' 라고 자칭하고 집단을 이루기도 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속일본기(續日本記)』와 『일본영이기』의 기록을 검토해 보면, 교키에 대 한 칭호는 '교키보살'로 불리 기 시 작하다가 차차'문수보살의 화신'으로 바꿔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삼보회(三宝絵)』에 처음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교카와 바라문승정과의 교류에 대한 설화의 성립에 관하여 코네야마다카코(米山孝子)는 "교카, 바라문승정의 교류사실 교키문수화신설이나 오대산신앙의 유포, 바라문승정의 고승전화 등 다양한 요소가 접합하여 『보살전래기(菩薩傳來記)』 설화가 『삼보회』로 거슬러 올라가 성립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교키의 문수화신섣은 요사다야스오(吉田靖雄)도 지적한 바와 같이, 경전 등에 의한 문수의 종교적 역할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보이는 데, 그것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바라문승정래조설(婆羅門僧正文殊値遇説)은 사상이라기보다는 『불정존승타라니경(仏頂尊勝陀羅尼經)」 서문 등으로 널리 알려진 오대산 문수치우(文殊値遇)의 설화의 「형(型)」에 따라 본조목적(本朝目的)이 가미된 형태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行基に対する研究、すなわち'行基論' とも言える研究はかなり進んでいる。 戦前における行基研究は、大正初期に書かれた梅原末治の「行基舎利瓶記にみえたるその姓氏と享年について」が早い例である。 戦後の行基研究の出発点ともいうべき北山茂夫の「行基論」は、戦後の研究史の起点的意味合いのみで重要な位置を占めているのではない。この研究の重要性は、働く民衆の側、つまり当時の律令班田農民の立場に立って行った古代政治研究の一環として行基を研究対象に設定きれた、その問題意識にこそあるといえよう。 井上薫の『行基』は、行基に関する全てといってよいほどの問題が論ぜられ、多方面にわたって精緻な分析と、旦つゆきとどいた実証作業に支えられて、行基の生涯が跡づけられている。今日この研究をきして'行基研究上の基礎文献'と呼ばれている。 行基が仏教のみでなく、各方両の分野において、所謂、政治ㆍ日本古代史ㆍ仏教文化ㆍ社会ff1副止、きらには国文学までも研究されていることは、行基は日本の肯代において重要な人物からである。 きて、この論文において何よりも重要な行基研究の一つは、行基と五台山文殊信仰との関連である。それは、五台山文妹信仰の伝来は、行基の文殊化身説や婆羅門僧正文殊値遇説の中にその教理と共に具体的な説話の型として踏襲されているのを見ることが、できるのである。 まず、『日本霊異記』には、行基に関する説話が、他の僧侶との記述より比較的に多く記されている。『日木霊異記』での行基にまつわる説話は、彼の死後に形成されたと考えられていることが一般的である。ここで大事なのは、行基のなした説法が説話ではなく、その事蹟が説話になっていることである。しかし、朝枝善照は" 「日本霊異記』の行基説話は、「続日本紀』に記載される行基伝に影響をうけていない、全く別の所伝によるものである点、行基研究上からも参考すべきものである。"と述べている。 『日本霊異記』の中で「三宝を信敬し、現報を得る紘一」が、行基の文殊化身に関する説話である。朝枝善照は"この説話は大伴氏に伝承された大部屋栖野占に閲する史料を参照し、聖武天皇、東大寺建立、行基の仏教伝道などを結び付けているが、景戒の時代には、このように、日本に、五台山仏教文化、すなわち文殊信仰が伝来し多くの民衆に理解きれていてはじめて、行基の「文殊反化」説が成立することになる。韓国の五台山との関連性も検討すべきであろう。"と言っている。 行本の五台山説話、ここにはすでに甲徳、太子一聖武天皇、五台山文殊一行基の一連の伝説が完成している。これは、『三国仏法伝通縁起』に東大寺を中心に久しく信じ伝えた伝説に連繋するものである。 行基は'行基菩薩'とも呼は、れた。この背景には、8世紀の日本では、僧名に菩薩号を付した呼び方が盛行していた、つまり、民宋利益の利他行をもって、「菩薩」や「化主」と呼称され、自称した一群の僧尼が存在していたのである。 『続日本記』と『日本霊異記』の記録を検討してみると、行基に対する称号は、'行基菩薩'と呼ばれはじめてから、'文殊菩薩の化身'というように変化していったと考えられる。 最後に、『三宝絵』に初見する行基と婆羅門僧正との交流の説話の成立について米山孝子は、"行基、婆羅門僧正の交流事実、行基文殊化身説や五台山信仰の流布、婆羅門僧正の高僧伝化など、様々な要素が長合して「菩提伝来記」の説話が『三宝絵』に遡って成立していたのである。"という。 行基の文妹化身説には古同靖雄氏の指摘されるように、経典等による文殊の宗教的役割が大きく影響していると思われるが、それに対応して作られた新たな婆羅門僧正来朝説は、思想というよりも、「仏頂尊勝陀羅尼経』序文などで、広く知られた五台山での文殊値遇の説話の「型」に従って、来朝日的がはめ込まれたような形になっていることが分かる。

      • 교키와 일본의 오대산문수신앙

        최복희(崔福姫,) 한국일본불교문화학회 2011 일본불교문화연구 Vol.- No.5

        行基に対する研究、すなわち'行基論' とも言える研究はかなり進んでいる。 戦前における行基研究は、大正初期に書かれた梅原末治の「行基舎利瓶記にみえたるその姓氏と享年について」が早い例である。 戦後の行基研究の出発点ともいうべき北山茂夫の「行基論」は、戦後の研究史の起点的意味合いのみで重要な位置を占めているのではない。この研究の重要性は、働く民衆の側、つまり当時の律令班田農民の立場に立って行った古代政治研究の一環として行基を研究対象に設定きれた、その問題意識にこそあるといえよう。 井上薫の『行基』は、行基に関する全てといってよいほどの問題が論ぜられ、多方面にわたって精緻な分析と、旦つゆきとどいた実証作業に支えられて、行基の生涯が跡づけられている。今日この研究をきして'行基研究上の基礎文献'と呼ばれている。 行基が仏教のみでなく、各方両の分野において、所謂、政治ㆍ日本古代史ㆍ仏教文化ㆍ社会福祉、きらには国文学までも研究されていることは、行基は日本の肯代において重要な人物からである。 さて、この論文において何よりも重要な行基研究の一つは、行基と五台山文殊信仰との関連である。それは、五台山文殊信仰の伝来は、行基の文殊化身説や婆羅門僧正文殊値遇説の中にその教理と共に具体的な説話の型として踏襲されているのを見ることが、できるのである。 まず、『日本霊異記』には、行基に関する説話が、他の僧侶との記述より比較的に多く記されている。『日本霊異記』での行基にまつわる説話は、彼の死後に形成されたと考えられていることが一般的である。ここで、大事なのは、行基のなした説法が説話ではなく、その事蹟が説話になっていることである。しかし、朝枝善照はII 「日本霊異記』の行基説話は、「続日本紀』に記載される行基伝に影響をうけていない、全く別の所伝によるものである点、行基研究上からも参考すべきものである。"と述べている。 『日本霊異記』の中で「三宝を信敬し、現報を得る縁」が、行基の文殊化身に関する説話である。朝枝善照は"この説話は大伴氏に伝承された大部屋栖野古に関する史料を参照し、聖武天皇、東大寺建立、行基の仏教伝道などを結び付けているが、景戒の時代には、このように、日本に、五台山仏教文化、すなわち文殊信仰が伝来し多くの民衆に理解きれていてはじめて、行基の「文殊反化」説が成立することになる。韓国の五台山との関連性も検討すべきであろう。"と言っている。 行本の五台山説話、ここにはすでに聖徳太子一聖武天皇、五台山文殊行主主の一連の伝説が完成している。これは、『三国仏法伝通縁起』に東大寺を中心に久しく信じ伝えた伝説に連繋するものである。 行基は'行基菩薩'とも呼ばれた。この背景には、8世紀の日本では、僧名に菩薩号を付した呼び方が盛行していた、つまり、民宋利益の利他行をもって、「菩薩」や「化主」と|序称され、白称した一群の僧尼が存在していたのである。 『続日本記』と『日本霊異記』の記録を検討してみると、行基に対する称号は、'行基菩薩'と呼ばれはじめてから、'文殊菩薩の化身'というように変化していったと考えられる。 最後に、『三宝絵』に初見する行基と婆羅門僧正との交流の説話の成立について米山孝子は、"行基、婆羅門僧正の交流事実、行基文殊化身説や五台山信仰の流布、婆羅門僧正の高僧伝化など、様々な要素が接合して『菩提伝来記』の説話が『三宝絵』に遡って成立していたのである。"という。 行基の文殊化身説には古田靖雄氏の指摘されるように、経典等による文殊の宗教的役割が大きく影響していると思われるが、それに対応して作られた新たな婆羅門僧正来朝説は、思想というよりも、『仏頂尊勝陀羅尼経』序文などで、広く知られた五台山での文殊値遇の説話の「型」に従って、来朝日的がはめ込まれたような形になっていることが分かる。 교커에 대한 연구, 즉 '교키론(行基論)'이라고 일컬어지는 연구는 매우 많은 성과물들이 축척되어 있다. 전전(戰前)의 교카연구로는 다이쇼초기에 씌어진 우메하라스에지(梅原末治)의 「교키사리병기(行基舎利甁記)에 보이는 그 성씨와 향년에 대해서」 대표적이다. 한편, 전후(前後)의 교키연구의 출발점이라고 해야 할 기타야마시게오(北山茂夫)의 「교키론」은 전후 연구사에 기점적(起点的) 의미로 서만 그 중요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이 연구는 이른바 '민중'의 입장, 즉 당시 율령반전민(律令班田農民)의 입장에서 행한 고대정치연구의 일환으로서 교키를 연구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그 문제의식이야 말로 더욱 중요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노우에카오루(井上薰)의 『교키(行基)』는 교키에 관한 모든 것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다양한 방면에서의 접근은 물론, 치밀하면서도 폭넓은 실증작엽을 통해 교키의 생애를 구체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날 이 연구는 '교키연구의 기초문헌'으로 불리고 있다. 교키는 불교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 즉 정치ㆍ일본고대사ㆍ불교문화ㆍ사회복지ㆍ국문학 방면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교키라는 인물의 중요성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글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교키연구는 교키와 오대산문수신앙과의 관련이다. 그것은 오대산문수신앙의 일본전래가 교키의 문수화산설(文殊化身說)이나 바라문승정문수치우설(婆羅門僧正文殊値遇説) 속에 그 교리와 함께 구체적인 설화의 형태로서 답습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먼저, 『일본영이기(日本靈異記)』에는 교키관한 설화가 다른 승려들의 기술보다 많다' 『일본영이기』의 교키관련 설화는 교키 사후에 형성되었다는 관점이 일반적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키가 행한 설법이 설화가 아니라 그 사적(별원)이 설화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아사에다젠쇼우(朝枝善照)는 "『일본영이기』의 교기설화는 『속일본기(續日本記)』에 기제된 교키전(行基傳)에 영향을 받지 않고, 전혀 다른 소전에 의한 것이라는 점, 교키연구에서 참고해야할 점이다."라고 술하고 있다. 『일본영이기』 중에 「삼보를 믿고 공경하여 현보를 얻은 이야기」가 교키의 문수화신(文殊化身)에 관한 설화이다. 아사에다젠쇼우는 "이 설화는 오오토모(大伴)씨에 전승된 야스노코에 관한 자료를 참조해, 성무 천황, 동대사건립, 교키의 불교포교 등을 연결하고 있지만, 교우카이가 살았던 시대에는, 이와 같이 일본에 오대산 불교문화, 즉 문수신앙이 전래되어 민중에 이해되기 시작해, 교카의 '문수반신설'이 성립하게 되었다. 한국의 오대산과의 관련성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교키의 오대산설화, 여기에는 이미 성덕태자-성무천황, 오대산문수-교키의 일련의 전설이 완성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삼국불법전통연기(三國佛法傳統縁起)』의 동대사를 중심으로 믿어온 전설에 연계하는 것이다. 교키는 '교키보살'로도 불렸다. 이에 대한 시대적 배경으로, 8세기 일본에는 승명(僧名)에 보살칭호를 더하여 불렀던 것이 성행하였던 것이다. 또 민중을 위해서 이타행을 행하는 승려들은 자신들을 '보살' 또는 '화주(化主)'라고 자칭하고 집단을 이루기도 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속일본기(續日本記)』와 『일본영이기』의 기록을 검토해 보면, 교키에 대 한 칭호는 '교키보살'로 불리 기 시 작하다가 차차'문수보살의 화신'으로 바꿔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삼보회(三宝絵)』에 처음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교키와 바라문승정과의 교류에 대한 설화의 성립에 관하여 코네야마다카코(米미孝子)는 "교거, 바라문승정의 교류사실 교키문수화신설이나 오대산신앙의 유포, 바라문승정의 고승전화 등 다양한 요소가 접합하여 『보살전래기(菩薩傳來記)』 설화가 『삼보회』로 거슬러 올라가 성립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교키의 문수화신설은 요사다야스오(吉田靖雄)도 지적한 바와 같이, 경전 등에 의한 문수의 종교적 역할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보이는 데, 그것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바라문승정래조설(婆羅門僧正來朝說)은 사상이라기보다는 『불정존승타라니경(仏頂尊勝陀羅尼経)」 서문 등으로 널리 알려진 오대산 문수치우(文殊値遇)의 설화의 「형(型)」에 따라 본조목적(本朝目的)이 가미된 형태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KCI등재

        대학 교양수업에서의 일본문화 관심도 경향분석 및 교육방안 모색

        김선희 한국일본언어문화학회 2021 일본언어문화 Vol.57 No.-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objective data of interest in Japan, reveal its trend, and seek the direction of education through a survey on the frequency of expression of associated words related to society and culture in Japan. In fact, the emphasis on culture in university language education is due to the globalization and information age and the reorganization of curriculum, and this is why the number of lectures on social culture in universities is increasing. The need for cultural education, which was neglected in language education in the past, has been emphasized, but it is undeniable that it is a transitional situation that is recognized as a basic knowledge to develop language skills. Through the observation of the frequency of expression of culture-related words in this study, it can be recognized that university students are interested in Japanese society and culture in various fields. In general, other cultures were mainly delivered in the form of knowledge through media, newspapers, books, and magazines, but in the recent information age, a large amount of cultural items are delivered quickly and directly through various media such as the Internet. In addition, the spread of the Internet, YouTube, and SNS has led individuals to actively and selectively interact with and learn about culture at their own discretion.In addition, the number of ways to travel in person and experience socializing is increasing. Through this study, it can be assumed that the direction of cultural education should be changed, as there are perception gap of culture between generations, individual experiences and education, and the utilization of media, etc. In future university education, various IT technologies such as virtual reality space (Metaverse) should be combined to provide Japanese culture education through SHEEF experiences.

      • KCI등재
      • 일본불교의 영향을 받은 근대불교의 다면성

        김광식(金光植) 한국일본불교문화학회 2013 일본불교문화연구 Vol.- No.9

        고찰은 한국 근대불교를 연구함에 있어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대상주제인 일본불교에 대한 시각을 재인식하려는 글이다. 근대불교에 영향을 준 일본불교에 대한 연구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미약하였다. 이는 근현대 불교 연구의 부진, 정치적인 영향, 근대불교에 대한 성찰의식의 나약, 기존의 편협한 사관 등이 중첩된 결과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일본불교가 끼친 영향, 일본불교가 한국에 건너와서 행하였던 실상과 본질 일본불교에 대한 인식 등을 다면적 관점에서 살펴야 한다고 본디. 필자는 실사구시적인 입장에서 일본불교의 모든 것을 바라보자고 제언한다. 그리하여 기존 연구 시각이었던 단면성, 일방성, 일국성, 주관성에서 벗어나 이제는 다면성, 보편성, 객관성으로 나가자는 것이다. 이런 전제하에서 본고에서는 필자가 일본불교를 재인식할 수 있는 주제를 선별하여 그에 담긴 개요 성격 등을 요약하고자 한다. 필자가 선택한 그 주제는 첫째 불교 근대화, 둘째 근대적인 관리조직인 법, 셋째 재일 불교유학생과 근대불교학, 넷째 한국불교 전통의 이완, 세속화의 가속 등이다. 필자의 이 글이 일본불교 연구의 재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는 없겠지만 이 분야 연구의 지평을 심화시키는데에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부연할 것은 일본불교와 연관된 자료의 발굴, 자료집 발간에도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기초적인 작업, 토양하에서 연구가 촉발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에서의 근대불교 연구 동향의 파악, 관련 저술 및 논문의 입수, 근대불교를 주제로 하는 한일 양국의 학문적ㆍ문화적 교류 등도 유의해야 한다, 本考察は、韓国近代仏教を研究するに当たって決して見過ごすことのできないテーマで、ある日本仏教に対する視角を再認識しようとしたものである。近代仏教に影響を与えた日本仏教に対する研究は、その重要性にも関わらずいまだ微弱であるといえる。これは、近現代仏教研究の不進、政治的な影響、近代仏教に対する省察意識の懦弱、既存の偏狭な史観などが重疊された結果である。 しかし、これからは日本仏教が及ぽした影響、日本仏教が韓国に渡ってきてしていたことの実像と本質、日本仏教に対する認識などを多面的な観点から研究すべきであると思う。筆者は質事求是的な立場で、日本仏教のすべてをみていこうと提言する。そして、既存の研究視角であった断面性、一方性、一国性、主観性から脱皮し、これからは多而性、普遍性、客観性に向かうへきであろう。 こうした前提のもとで、本稿で筆者は日本仏教を再認識できるテーマを選別し、それに含まれた概要、性格などを要約してみたいと思う。筆者が選んだテーマは、第一に仏教近代化、第二に近代的管理組織である法、第三に在日仏教留学生と近代仏教学、第四に韓国仏教伝統の弛緩、世俗化の加速などである。筆者のこの考察で日本仏教研究の再認識を基本的に変えることはできないかも知れないが、この分野研究の地平を深化するところに役に立つことを期待する。 敷衍すべきことは、日本仏教と関連する資料の発掘、資料集発刊などもにてを急ぐべきであるということである。このような基礎的な作業、土壌のもとで研究が觸發するはずである。また、日本で、の近代仏教研究の動向の把握、関連著作や論文の入手、近代仏教を主題をする韓日両国の学問的ㆍ文化的な交流なども深めて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

      • 韓國 近代佛敎 ‘帶妻食肉’의 二元的 路線

        김광식(Kim Gwang sik) 한국일본불교문화학회 2015 일본불교문화연구 Vol.- No.13

        본 고찰은 한국 근대불교에 큰 영향을 끼친 일본불교에 대한 본질을 이해하기 위하여, 일본불교의 상징으로 지칭되었던 이른바 ‘帶妻食肉’의 문제를 정리한 논고이다. 근대기 불교의 대처식육에 대한 문제는 근대불교의 본질 이해의 단서로 인식한 연구가 일부 있었다. 그러나 한국 내부의 대처식육의 인식 및 수용에 대한 이념, 한국불교내부의 대처식육에 대한 찬반양론의 흐름은 정리되지 않았다. 특히 한국에 영향을 미친 일본의 대처식육에 대한 성격까지는 연구가 미치지 못하였다. 대처식육의 문제는 한국의 근현대 불교를 설명하는 가장 본질적인 주제이다. 이를 통하여 韓日 불교의 교류, 이질적인 불교문화 등에 대한 다양한 연구 과제를 도출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의 지금까지 연구는 연구 관점의 단순성, 민족 감정의 문제, 일본에서의 연구 성과를 수용하지 않은 한계 등이 복합적으로 개재되어 심화되지 못했다. 필자는 이와 같은 연구 성과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이 고찰에서는 대처식육이 한국 근대불교에 수용되었던 제반 흐름을 몇 개의 시기로 구분하여 개괄적으로 살폈다. 그러면서 대처식육에 대한 수용을 긍정(善)과 부정(惡)으로 대별하면서 그에 내재한 인식을 분석하였다. 본고가 한일불 교 문화의 이해, 교류 등에 일조가 되길 기대한다. 本考察は、韓国近代佛教に大きな影響を及ぼした日本佛教に対する本質を理解するために、日本佛教の象徴ともいわれている'帶妻食肉'の問題を整理した論考である。近代期佛教の帶妻食肉に対する問題は、近代佛教の本質理解の手掛かりとして認識している研究がいくつなされている。しかし、韓国内部の帶妻食肉の認識やその受容に対する理念、韓国仏 教内部の帶妻食肉にたいする賛否両論の流れは整理されていない。特に韓国に影響を及ぼした日本の帶妻食肉に対する性格までは研究が進んでいない。帶妻食肉の問題は、韓国の近現代仏教を説明する最も本質的な主題であるといえる。それにも関わらず、韓国での今までの研究はその観点の単純性、民族感情の問題、日本での研究成果を反映していない限界などが複合的に関わり、研究が深まらない原因になっていると思われる。筆者は、このような研究上の限界を認識しながら、この考察では帶妻食肉が韓国近代佛教に受容されてきた流れを幾つかの時期に区分して概括的に論究した。また、帶妻食肉の受容を肯定(善)と否定(悪)として大別し、それに内在している認識を分析した。本稿が韓日佛教文化の理解、交流などに少しでも役に立つことを期待する。

      • 「겨울의 유산」에 나타난 한‧일불교

        김호성,金浩星 한국일본불교문화학회 2009 일본불교문화연구 Vol.- No.1

        한국인으로 태어났으나 일본인으로 귀화한 일본작가 다치하라 마사 아키(立原正秋, 1926〜80)는 그의 체험을 토대로 자전적 소설 「겨울의 유산(冬のかたみに)」을 남기고 있다. 특히 한국의 무량사와 일본의 건각사에서의 선 체험을 작품 속에 녹여내고 있다는 점에서, 선소설(禪 小說)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 작품 속에 한국불교에 대한 묘사와 일본불교에 대한 묘사가 공존하면서, 한국의 선과 일본의 선이 교류하는 모습에 주목하여 한, 일불교의 소통이라는 문제에 천착해 보았다. 그러면서 이상적인 불교의 모습이 이 작품 속에 그려지고 있다고 보아서, 그것을 ‘상상의 불교’라고 이름 하여 보았다. 우선「겨울의 유산」유산 속에는 1930년대 중반 무렵의 한국불교에 대한 묘사가 행해지고 있다. 여기에는 이미 작가가 일본불교에 충분히 습윤 (濕潤)된 뒤에 작품이 씌어졌다는 점에서 일본불교적인 영향이 없지 않아 보인다. 그러면서도 스승들의 묘사나 조선시대 선승들의 선시를 인 용하는 등 우리 불교에 대한 올바른 묘사 역시 존재한다. 이런 예비적 고찰을 행한 뒤에, 작품 속에서 한국과 일본의 선은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또 왜 그는 돌아가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이기고서 돌아오지 않고 일본에서 살아가게 되었는가에 대하여 고찰해 보았다. 작가는 일본의 선이 자칫 알음알이에 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경계하면서, 주인공이 임제선과 조동선의 어록을 함께 읽는 모습을 통하여 우리 불교와는 다른 일본불교의 모습을 제시한다. 또한 선승 세끼링 (碩林)의 존재를 통하여 스승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나라(奈良)의 고사 (古寺)에서 일본 안에서도 무량사가 존재함을 자각하게 된다. 이러한 작품의 결론은 ‘한국’과 ‘일본’이라는 역사적 업연의 한계를 벗어나서, 불교 안에서 하나로 어우러지며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평가하고 싶다. 一体どうして私は日本仏教を語ろうとするのか。この問いの答えは即ち我々が日本仏教に関して話すことを忌む所以と表裏を成して いると思う。もともと仏教を伝えあげた方は我々だったとの一種の歴史的な優越感と言うか、または源泉指向意識によるインドや中国への関心の重々しさに比べられる相対的な疎外などとを挙げよう。いや、おそらくそれより帝国主義時代の日本にやられた植民地体験、別けても仏教に対して加えられた弾圧の記憶が未だ生々しく 残っている所以かもしれない。その理由は如何であろうと、我々にとって日本仏教とはあまり度外視するべき存在であったのが事実で ある。もちろん近世․近代の不幸な歴史から目を背けることはできない である。そうではあるが我々の中の憎みや怨みなどの呪縛を断ち切 れ、束縛からもトラウマからも自らを束縛から、トラウマから開放 できればそれより大した自由があろうか。その一方法で私は、仏教 を通じる韓国・日本お互いの実体と存在を認めて理解していくによっ て相互間に会通/疎通ができようはずであると信じている。こうし た訳で「日本仏教を勉強しましょう」という旗じるしを掲げてき た。そのうちに一人物が目についてきた。彼は立原正秋(1926-80)という作家であり、彼の作品の『冬のかたみに』のためである。この作品は「少ししかない自力門/聖道門の小説の代表作」として評価されているだけでなく、いろいろな面で問題作になってきた。別けても私が着目したのはこの作品に描かれている韓国仏教と日本仏教の有様の断面であった。 作家の自伝小説として、或いは自伝に準じるものとして知られているこの『冬のかたみに』の第1部と第2部には1920,30年代の韓国仏教が描かれている。それは当時の純な韓国仏教の有様もあるし、また作家の理想としてのあらざるをえない韓国仏教の像もあ る。また日本仏教風とうか日本仏教的要素が混じて塗られている韓国仏教の様子もある。その上で作品の第3部「建覚寺山門前」には主 人公の渡日後の日本生活とともに仏教体験が述べている。即ち日本仏教の姿がうかがえる。たとえ文学的に形象化されている形にしてもこの作品『冬のかた みに』を検討していく際、私は韓・日仏教の疎通の光というか一すじ の希望のようなものを感じられた。作品に描かれている韓・日仏教の有様や面影、また両者の間の相違というか対立的または区別される 様子[二相]を越えて義相(625-702)の「法性円融無二相」という語 句まで浮かばせるようになった。即ち主人公の梵海禅文はそんなに 長いあいだ懐かしんでいた無量寺に、いつかはきっと戻るべき所として思っていた無量寺についに帰れない。その代わりに奈良の唐招提寺の金堂の瓦葺き屋根の曲線美から、また鎌倉の建覚寺(建長寺と 円覚寺の合称であるか)の居士林での修行などから、『徒然草』や『方丈記』などの日本中世の古典から、無量寺または韓国仏教の風土を見つけ出している。それは一生を通して彼(作品の主人公または 作家自身)を日本にいられるようにする力であり、また韓・日仏教の 疎通であった。従って仏教的な立場から見ると彼が住するところが 韓国であっても日本であっても、それは非本質的なものに過ぎないと言える。彼の居所は何処でも良い。なぜなら彼は、もはや「仏教 の内」、「仏教の中」で生きていられる所以である。自分の姿を映してみるには鏡が必要である。それは他者という鏡であろう。すなわち他者という鏡に自分を映して自らを省みることは基本的に自分と他者をの比較であり、融合でもある。そうした他者という名の存在は多様すればするほどもっと多面的な自分の面目が見つけよう。我々の仏教の現実を映し、融合させる鏡になってく れる対象は実に色々ある。チベット仏教もあり、ヴィパッサナー(Vipassana)修行に関わる南方仏教もあり、書物の翻&#

      • KCI등재

        학술지 논문게재와 심사자의 학력・연구경력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권혁인 한국일본언어문화학회 2021 일본언어문화 Vol.57 No.-

        This study is to understand the appropriateness of the review in the process of reviewing papers by Korean academic societies. In other words, we are investigating what kind of review is being conducted in the process of reviewing papers, and aim to make proposals for a more rational and reliable system. Since various factors are involved in the publication of submitted papers, comprehensive research is needed, but this time, we will focus on the aspect of judges. In other words, he raised the issue of the influence of the qualifications of the reviewers and their tendencies on the dissertation review. In this way, by classifying the basic data in the dissertation review process, it became clear that although there is a certain flow as a whole, homogeneity cannot be ensured by the method of scoring each reviewer. After all, in order to prevent such deviations in the scores of multiple reviewers, we changed the direction to a system in which one reviewer is in charge of multiple papers in the same field, and dissertations were distributed to a large number of reviewers with different tendencies. The current system of entrusting review should be reviewed. As a future task, let’s try to understand the inconsistency of the examination and the difference in the score due to the tendency of the examiner by comparing the range of the score of each judge with the poster one by one.

      • 근대일본과 조선총독부의 종교정책 관계에 대한 연구

        원영상(元永祥) 한국일본불교문화학회 2014 일본불교문화연구 Vol.- No.11

        본 논문은 식민지 시기 조선총독부의 종교정책을 일본 국내의 내적인 정책과의 관계를 통해 고찰한 것이다. 그 첫 번째로는 근대 일본국가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추진했던 신도국교화 과정과 관련한 것이다. 이는 근대 일본이 신불분리 정책을 통해 선도를 국가 전래의 제사로 전환하는 동시에 천황을 제사장의 위치로 확립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국민을 국가선도체제 아래에 두는 동시에 무소불위의 천황제 확립에 그 목표가 있었다, 한반도에서는 애초에 없던 일본의 신도가 교화를 시작하고, 일본과 같은 국가신도의 위상을 확립하는 데에 주력했다. 이는 물론 격렬한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종교계는 국가신도숭배의 강제화에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식민지 지배전략은 일본의 근대기 상황을 그대로 한반도에 이식시키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종교단체법의 제정과 한반도의 종교정책에 관한 것이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국민을 통제하는 법령들이 수립되어 갔다. 그것은 치안경찰법과 치안유지법, 국가총동원법, 그리고 종교단체법이다. 치안경찰법은 경찰국가의 기능을, 치안유지법은 국가의 비판의식을 억누르기 위한 것이다. 국가총동원볍은 전쟁에 모든 물자와 인력을 총동원하기 위한 것이며, 종교단체법은 종교를 국가의 하부구조에 두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상황과 관련하여 조선총독부의 사찰령 공포, 본말 사법을 비롯한 사찰에 관련된 법령의 제정, 유교계에 대한 규칙 제정, 신사사원규칙과 포교 규칙의 제정 등을 놓고 볼 때, 일본에 선행하여 한반도의 종교계를 통제하고 있다. 이로써 일본과 한반도의 종교에 대한 통제가 일원화되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국체명정운통과 조선총독부의 종교정책에 관한 것이다. 일본 국내에서는 국체론과 천황제에 관한 논쟁에 마침내 정부가 개입하여 국체명정운동을 실시했다. 1, 2차에 걸친 국체명정운동을 통해 천황기관설의 부인, 『국체의 본의』 를 발간하고, 특히 후자에 있어서는 재국헌법과 교육칙어의 내용을 제천명하고 있다. 이는 본격적인 전시국가 체제에 돌입하기 위한 국민에 대한 통제책이었다. 이러한 시기는 한반도에 대한 무단통치의 시기와 맞물려있다. 종교에 대해서는 유사종교의 해체와 같은 정책이 실시되었다. 조선총독부 또한 일본 국내와 같이 국체명정에 대한 훈령을 내려 한반도의 민중을 일본과 같이 사상적 검열을 강화했다. 이러한 신체적, 물질적, 정신적 제약과 통제를 통해 전시국가의 체제에 편입시킨 것이다. 즉, 내선일체의 정책이 바로 그것인 것이다. 이처럼 일본과 한반도의 종교정책의 관계는 향후 더욱 면밀하게 연구될 필요가 있다. 本論文は、植民地時期朝鮮総督府の宗教政策を、日本国内の内的政策との関係を通じて考察したものである。その一番目は、近代日本国家の正体性を確立するために推進した神道国教化過程と関連したことである。近代日本は神仏分離政策を通じて、神道を国家伝来の祭儀に転換した同時に天皇を祭司長の位置に確立させたのである。即ち、国民を国家神道遁体制の下におくと同時に無所不為の天皇制確立にその目標があったのである。韓半島の朝鮮総督府の政策では、初めからなかった日本の神l道が教化を始め、日本と同じように国家神道の位相を確立きせることに力を入れた。これについては勿論激烈な抵抗を呼び起こし、宗教界は国家榊道崇拝の強制化に葛藤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このような植民地戦略は、日本近代期の状況をそのまま韓宇島に移植させたことと密接な関係があると言える。 二つ目は、宗教団体法の制定と韓半島の宗教政策に関することである。日清戦争と露日戦争を経て国民を統制する法令が樹立されていく。それは治安警察法、治安維持法国家総動員法、そして宗教団体法である。治安警察法は、警察国家の機能を、治安維持法は国家に対する批判意識を抑圧するためのものである。国家総動員法は戦争にすべての物資と人力を総動員するためであり、宗教団体法は宗教を国家の下部構造に置くためである。日本の状況と関連して、朝鮮総督府の寺刹令公布、本末寺法を始め、寺刹に関連がある法令の制定、儒教界に対する規則制定、神社寺院規則と布教規則の制定をみると、日本に先行して宗教界を統制していると言える。このように、日本と韓半島の宗教統制が一元化きれていくことがわかるのである。 最後に、国体明徴運動と朝鮮総督府の宗教政策に関することである。日本国内では国体論と天皇制に関する論争に政府か介入して国休明徴運動を実施した。l、2次にかけた国体明徴運動を通じて天皇機関説の否認、『国体の本義』を発刊し、特に後者においては帝国憲法と教育勅語の内容を再闡明している。これは、本格的な戦時国家体制に突入するための国民に対する統制策であった。この時期は韓半島に対する武断統治の時期と噛み合っている。宗教に対しては類似宗教の解体のような政策が実施された。朝鮮総督府はまた日本国内のように、国体明徴に対する訓令を下し、韓半島の民衆に対して日本と同じように思想的検閲を強化した。このような身体的、物質的、精神的制約と統制を通じて戦時国家の体制に編入きせたのである。内鮮一休の政策がまさにそれである。このように、日本と韓半島の宗教政策関係は今後ともより綿密に研究きれていく必要があると思わ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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