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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만(鄭泰萬) 한국일본문화학회 2017 日本文化學報 Vol.0 No.72
In interpreting treaties, the interpretation in accordance with the ordinary meaning of the terms of the treaty in their context is a fundamental principle, which is also specified in the Vienna Convention on the Law of Treaties. In this paper, each of the terms in Article 2 (a) of the San Francisco Peace Treaty is interpreted in accordance with its ordinary meaning, and made clear to which country the Dokdo"s sovereignty belongs. The emphasis is on the ordinary meaning of ‘Korea’, because Japan is required to renounce all right, title and claim to Korea. Not only by SCAPIN 677 of Contracting States, the Allied Powers, but also by Ministry of Finance"s Decree No. 4(1951.2.13) and Prime Minister"s Decree No. 24(1951.6.6) of the other Contracting State, Japan, "Korea" means Korea including Dokdo. These are also visually proven by the "SCAP Administrative Areas: Japan and South Korea" of February 1946 and the "The Japanese Domain Reference Map"(日本領域参考図) of August 1951 respectively. In addition, I argue that criticisms are common in the previous studies of Korean scholars as well as Japanese scholars in the interpretation of Article 2 (a) of the San Francisco Peace Treaty on the terms such as "recognizing the independence" and "including".
중국의 공중보건 비상사태 응급관리 시스템 연구 -현황, 대외 갈등 및 전망을 중심으로-
정태요 중국지역학회 2020 중국지역연구 Vol.7 No.4
This paper analyzes the Chinese government’s crisis management system in response to the spread of the Coronavirus Disease (COVID-19). To date, China has declared and responded to the COVID-19 pandemic as a “Public Health Emergency of International Concern,” as defined by the 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Chapter 2 of this paper examines the Chinese government’s public health emergency management system in terms of the laws in place to govern the system, and organizations tasked with supporting and executing the system. Chapter 3 examines external conflicts stemming from the COVID-19 pandemic, and Chapter 4 looks into the limitations of China’s crisis management system. Since the SARS crisis in 2003, the Chinese government has been strengthening its legal systems and organizations for public health emergencies. Experts still believe China has plenty of areas to improve upon, including the efficiency and transparency of the public health emergency system, but the Chinese government now understands the seriousness of public health emergencies, and it is making every effort to mitigate outbreaks of diseases. In light of the COVID-19 pandemic, some players in the international community have blamed the Chinese government. This criticism is largely based on the fact that COVID-19 originated in Wuhan, China, and on the suspicion that the Chinese government initially tried to cover up and control information regarding the spread of the virus. Even prior to the COVID-19 pandemic, China and the United States were already butting heads in with disputes involving trade, technological competition, and the sovereignty of Taiwan. Now, COVID-19 has added another point of contention for China and the United States. 이 논문은 코로나 19 바이러스 확산에 대응하는 중국 정부의 위기관리 시스템을 분석하기 위한 것이다. 중국은 코로나 19 바이러스 위기를 세계보건기구(WHO)가 규정하는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로 정의하고 이에 대응하고 있다. 논문의 2장에서는 공중보건 응급관리 시스템을 법률과 기구로 나누어 살펴보았으며, 3장에서는 코로나 19위기 대응과정에서 나타난 대외 갈등을 살펴보았다. 4장에서는 중국 위기관리 시스템의 한계점을 짚어보았다. 중국 정부는 2003년사스 위기 이후 공중보건 비상사태에 관한 법률과 기구를 강화하고 있다. 아직까지 그 효율성 면이나 투명성에서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이 지적되고 있지만, 공중보건 비상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대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코로나 19를 둘러싸고 국제사회에서는 중국의 책임론이 대두되었다. 애초에발원지가 중국의 우한인 점이 이를 확산시켰지만, 초기에 중국 정부가 이를 은폐하고 통제하려고 한 데서 국제사회의 비난은 더욱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중국과 미국은 코로나 19 문제 이외에도 무역분쟁, 기술 패권 분쟁, 타이완 문제등에서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 19 위기는 또 다른 갈등 요소가 되고 있다.
정태기 한국통신학회 2000 정보와 통신 Vol.17 No.1
새 천년을 맞이하여 국내 이동전화 시장은 규모와 기술적 측면에서 놀랄만한 변화 를 겪게 될 것이다. 음성중심의 2세대 이동전화 서비스는 보급율이 50%를 넘어서며 포화수 준에 근접하고 있으며, 앞으로 무선데이타 통화량이 크게 증가하여 3~4년 후에는 총 통화량 의 50% 이상을 점유할 것으로 예측된다. 통신사업자들은 통신망의 광대역화와 글로벌화, IP Network 화를 더욱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으며, 올 연말로 예정된 IMT-2000 사업자 선정은 이러한 추세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인터넷과 이동전화의 융화는 인간의 삶과 문화를 한순간에 변모시킬 혁명적 위력을 내포하고 있다. 정보화 시대를 향한 정보통 신업계의 대변혁이 그 절정을 향해 가속도를 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신세기통신은 이러한 변화와 혼돈의 거친 물결 속에서 21세기 '정보통신 업계의 강자'로 도약하기 위한 힘찬 항해 를 진행하고 있다. 2000년 상반기까지 IS-2000시스템을 구축하여 최대 144kbps 수준의 고속 데이타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i-TOUCH 017 컨텐츠 (Contents)를 한층 다양화, 첨단화 하는 등 본격적인 이동인터넷 사업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또 CDMA 국제 자동로밍 서비스 를 일본, 미국, 유럽 등 전세계로 확대하여 017 서비스의 글로벌화를 이룩할 계획이다. 이러 한 통신망 진화와 이동 인터넷 사업의 상당 부분을 SK텔레콤과 함께 추진하게 될 것이며 이러한 양사간의 전략적 제휴에 따른 시너지 효과는 오는 연말 IMT-2000 사업권의 성공적 확보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21세기 정보통신산업은 광대역 통신망으로 대변되는 하드 웨어와 인터넷 컨텐츠로 대변되는 소프트웨어가 서로 융화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이에 따라 고객의 서비스 만족도나 사업자 선택 기준은 기존 통화물질 중심에서, 사업자가 제공하는 컨텐츠의 다양성이나 편리성으로 변화하는 것이 국적을 바꾸는 것보다 어려운 시 대가 멀지 않은 미래에 도래할 것이다. 신세기 통신 과 SK 텔레콤에는 현재 1,300만명이 넘 는 고객이 있으며. 이들 고객은 어 이상 음성통화 중심의 이동전화 고객이 아니라 신세기 통신과 SK텔레콤이 함께 구축해 나갈 거대란 무선 네트워크 사회에서 정보화 시대를 살아 갈 회원들이다. '컨텐츠의 시대'가 개막되는 것이며, 신세기통신과 SK텔레콤은 선의의 경쟁 과 협력을 통해 이동인터넷 서비스의 컨텐츠를 개발해 나가게 될 것이다.
정태의 서경대학교 산업기술연구소 1998 産業技術硏究所論文集 Vol.5 No.-
The object-oriented methods are being rapidly accepted as the solution for the software crisis. Object-oriented systems are composed of the integration of independent object modules; their merits are such that it is possible to reuse objects already developed, and that, when changes are required, modifications are restricted to some independent objects such that their affects to other objects are so little. In this paper, we deal with the macro assembler for next-generation microprocessors which has the merits of object methods. Whenever a microprocessor is newly developed, new assembler should be developed or the existing assembler be modified. In the former, it leads to the loss of time and money by the repeated developments, and, in the latter, it causes the problem of inefficient productivity since other modules are to be analyzed for the affections followed by modifications of one module, especially in the existing assemblers. To resolve these problems, the object-oriented macro assembler suggested in this paper consists of independent objects separable such that it shows reusability and reduces the inefficient productivity by minimizing the affects to other objects. Moreover, the object-oriented macro assembler integrates a macro pre-processor into an assembler, and uses automata for analyzing input streams to reduce the compile time.
정태만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8 인문과학연구 Vol.0 No.58
It was known that the Ming Dynasty attempted to rule directly Cheollyeong of the Gangwon Province and further north, SSangsung-Chongganbu area at the end of the Koryo era. By the way, in December of 1387, the Joo, Wonjang, founder of the Ming Dynasty, had informed that the Ming and Koryo Dynasty should be bounded by the Cheollyeong. The Cheollyeong was not in the northern end of Gangwon Province but in Liaodong area. This can be known from the Ming's answer to Koryo's claim that the land in the northern part of Cheollyeong is Koryo’s Land. The Ming regarded thoroughly that the Cheollyeong, which Koryo says, was not in Gangwon Province but in Liaodong area. And, notified that from the old days, the Abrok River was the border of Koryo, and the Cheollyeongwi had already been established in Liaodong area. This means that the Joo, Wonjang, founder of the Ming Dynasty had originally intended to set up the Cheollyeongwi not on the north side of Gangwon Province but on the Liaodong area. It also means that Ming had no intention to govern SSangsung-Chongganbu area at that time, further north of Cheollyeong of nowadays Gangwon Province. By the way although Joo, Wonjang ordered to inform the facts on the above-mentioned to Koryo, in Koryo History, not only the facts that "the Cheollyeongwi was already established in Liaodong" are omitted, but also the facts are recorded in a distorted way saying that "Ming has ceased discussions on the establishment of the Cheollyeongwi. The link between these historical facts led to the conclusion that in 1388, the border between Ming and Koryo Dynasty was the Cheollyeongwi of Liaodong area. 고려말 1387년 12월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명나라와 고려간에 철령을 경계로 할 것을 통고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 철령은 강원도 북단의 철령이 아니라 요동의 철령이었다. 이는 고려가 ‘철령과 그 이북의 문주, 함주, 공험진 등이 고려땅’임을 주장한 표문을 명나라에 제출한데 대해, 명 태조가 ‘요동의 봉집현에 이미 철령위가 설치(1388년 3월)되었고, 고려는 옛날부터 압록강을 경계로 해왔으므로, (요동의) 철령과 그 이북땅은 명나라땅’임을 주장하여 거부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즉, 고려가 그 철령이 ‘강원도 철령’인지 ‘요동의 철령’인지 명시하지 않고, 고려땅임을 주장한데 대해, 명나라는 철두철미하게 요동에 있는 철령에 관한 것으로 간주하고 고려의 요구를 거부한 것이다. 이는 애당초부터 주원장이 강원도 북단 철령이 아닌 요동의 철령을 경계로 하여, 그곳에 철령위를 설치하고자 했고, 당연히 강원도 철령 이북의 쌍성총관부 지역을 직접 통치할 생각도 없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위의 철령위에 관한 사실들을 고려에 통고하도록 명령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는 ‘요동에 이미 철령위가 설치되었다(1388년 3월)는 사실’이 누락되었을 뿐만 아니라, “명나라에서 철령위 설치 논의가 중지되었다”고 왜곡되게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누락 왜곡이 오늘날 교과서에까지 왜곡되게 기록된 원인의 시작이다. 그 후 대일항쟁기에 일제 학자들에 의해 '고려말 문제가 된 철령은 강원도 철령'을 말하는 것으로 고착되고, 해방 이후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그대로 답습되어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또한, 위의 역사적 사실을 연계시키면, 고려말 1388년 당시 명나라와 고려간 국경은 요동땅 철령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