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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택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22 인문과학연구 Vol.- No.74
1010년에 있었던 고려와 거란의 전쟁에 대한 기록은 원래의 역사책에서 1달 정도의 차이가 난다. 이 글에서는 이를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현존 자료를 총망라하여 서로 대조하면서 정밀한 전투일지를 작성하였다. 이때 첫째, 강조의 전사 시점을 압록강(鴨淥江) 전투에서로 보는가 압록강(鴨綠江) 전투에서로 보는가가 쟁점이 된다. 둘째, 『요사』의 압록강(鴨淥江)과 『고려사』의 압록강(鴨綠江)은 다른 강임을 명확하게 구분하였다. 셋째, 강조의 전사, 현종의 항복 요청까지를 1차전으로 이후를 2차전으로 간주하였다. 넷째, 실제 치열했던 전투는 요동에서 전개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므로, 비교적 기록이 자세한 홍화진(興化鎭), 통주(通州), 동주(銅州) 전투와 관련하여 1차전과 2차전에서 혼재되어 있는 기록은 1차전 위주로 재구성하였다. 다섯째, 평양(平壤), 감악산, 개성, 창화현에서 전개된 2차전의 경우 전투 기록이 자세하지 않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국경선 전투에 동원되어 최소한의 방어력만을 남긴 상황에서 거의 ‘무혈입성’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요동의 최후방어선인 요양전투가 소강상태에 빠진데다가 계절도 12월의 혹한기를 당하여 다소 맥이 빠졌기 때문이다. 여섯째, 특히 개성 입성의 경우, 현종의 남행으로 거의 무장해제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이는 거란의 침입이라는 외세에 더하여 강조의 정변으로 아직 입지가 약했던 현종을 둘러싼 국내 정치 세력 간의 긴장이 반영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