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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燕巖(연암) 朴趾源(박지원)의 漢詩文學(한시문학)

        박수천 ( Soo Cheon Park ) 東亞大學校附設 石堂傳統文化硏究院 2015 石堂論叢 Vol.0 No.61

        연암 박지원은 조선 후기 영·정조 시대의 최고 문장가였지만 여타의 문인들에 비해 한시는 많이 짓지 않았다. 평소에 그가 한시 짓기를 그리 즐겨하지 않았고, 그가 지었던 한시 작품도 보관이 잘 되지 않아현존하는 한시 작품들은 모두 50수 정도이다. 그러나 박지원의 한시작품이 이루어낸 문학성은 일찍부터 그의 문장들 못지않게 높은 평가를 받아 왔다. 현존하는 박지원의 한시에서 가장 두드러진 모습은 古調장편의 작품들이다. 그의 古調장편 작품들은 모두 매우 긴 편폭으로 구성되어, 탁월한 문장가로서의 필력과 역량이 한시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고 하겠다. 박지원이 시를 즐겨 짓지 않았다고 하지만, 때에 따라 거침없는 필력으로 도도한 氣勢의 장편을 만들어내는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 박지원은 한시를 지을 때 근체시의 격률에 얽매이는 것을 매우 싫어하였다. 律詩와 絶句는 그 형식의 구속으로 인해 가슴속의 말을 자유롭게 쏟아낼 수 없어 항상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이로 인해 그는 근체의 율조를 벗어나 古風으로 여러 편의 작품을 창작해냈다. 박지원이 써낸 단형의 고체 작품들은 그가 평소 지향한 ‘朝鮮之風’의 한 측면을 보여준다. 그는 『영處稿』에 서문을 쓰면서 李德懋가 조선의 森羅萬象을 시편에 담아내었으니 그것을 ‘朝鮮之風’이라 부를 만하다고 말했다. 李德懋의 시에서는 우리나라 말을 시로 적고 민요에 다 운을 달아 자연스런 작품을 이루었던 점을 지목했는데, 박지원 스스로도 그의 시작품에서 우리말을 한자로 옮겨 적거나 우리나라만의 풍속을 작품에 그려내고자 하였다. 박지원은 근체시의 격률에 구속되어 詩想을 자유롭게 펼치지 못하는 것을 싫어하여 근체시를 짓다가는 그만두어 버리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그러나 박지원도 조선 시대를 살았던 문인이라 修學期에는 과거를 염두에 두면서 근체시 형식의 작품 쓰기를 배제하지 않았고, 燕行시기에도 근체의 작품을 많이 썼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燕巖集』에는 고체시보다 근체시 형식의 작품이 더 많이 남겨져 있기도 하다. 박지원의 근체시는 5언보다 7언의 작품이 많아, 그가 근체시를 쓸 때 7언의 형식을 더 선호했다고 이해된다. 7언은 5언보다 글자 수를 더 많이 쓸 수 있어서 가슴속의 회포를 막힘없이 드러내기에 한결 편리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그의 한시 작품에서는 寫實적 繪畵性이 두드러진 典實함의 풍격이 돋보인다. Yeonam Park Ji-won was a famous prose writer of the later period of Chosun dynasty(especially the king Yeongjo and Jeongjo period). His poems are not so much, but the literary level was estimated very highly. The conspicuous point is the Old style long form poem on the Park Ji-won’s poems. His the Old style long form poem was created very long, that showed his force of writing as an excellent prose writer. Park Ji-won didn’t like the restriction of the New style poem. So he wrote many poems using the Old style which broke rules of the New style. His the short Old style poem showed the Chosun style which he wanted to make on his literary works. Park Ji-won hated restriction of the New style poem, so he quit writing that form works very often. But he was a writer of Chosun dynasty, he did not exclude writing the New style poems. Actually there are many the New style poems on his works collection 『Yeonamjib』. He wrote more poem works as 7 letter form than 5 letter form. On his poem works, the realistic inclination is remarkable such as realistic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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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천(淵泉) 홍석주(洪奭周)의 시론과 한시문학

        박수천 ( Park Soo-cheon ) 한국한시학회 2018 韓國漢詩硏究 Vol.26 No.-

        연천(淵泉) 홍석주(洪奭周)의 시론은 성정(性情)과 천기(天機)에서 출발해 감인(感人)과 기실(紀實)의 문제로 집약된다. 그는 사람의 성정에서 근본한 시란 작가의 천기가 발현된 것이라 단적으로 말하였다. 그의 성정과 천기의 문학적 논의는 시작품의 ‘감인(感人)’이란 효용론으로 이어진다. 홍석주는 시의 비평적 층위를 ‘의(意), 사(辭), 기(氣)’의 셋으로 나누고 그 각각이 구현해야 할 문학성이 ‘진지(眞摯), 조달(條達), 유동(流動)’이라 말했다. 시작품에 담아낼 작가의 의(意)는 진지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 작품에 구사하는 사(辭)는 조리[條]가 있고 잘 전달[達]될 수 있어야 하며, 작품의 전체적 기세는 자연스럽게 흘러 움직여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어 시작품의 쓰임[用]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感人]이라 말해, 그의 시론의 가장 독자적인 측면은 바로 감인(感人)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홍석주는 자신의 시대에서 모의(模擬)와 부화(浮華)한 형식에만 빠져 있는 문단을 비판적 시각으로 보아, 이에 시문학의 근본적 문제를 거론해 감인(感人)의 논리를 한층 더 크게 부각시킨 것이었다. 결국 감인(感人)의 시론은 홍석주 자신이 살았던 그 시대 문단이 지닌 현실적 폐단에 대한 문제 인식과 그 진단에서 도출된 논의라 할 수 있다. 홍석주는 시작품이 진정한 감인(感人)의 효용을 가지기 위해서는 의도된 인위적 꾸밈을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는 근체시가 지닌 인위적 율격에 대해 부정적인 논의를 펼쳐 보였다. 시의 올바른 길은 응당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인데, 율시가 나온 이후에는 억지로 규정된 율격을 맞추려다 보니, 자연스러운 천기(天機)의 발현과는 거리가 멀어져 마침내 감인(感人)의 시가 되지 못했다고 논의하였다. 홍석주는 당시의 문단을 비판하면서 올바른 문학 창작의 한 방법으로 기실(紀實)을 제시한다. 홍석주는 시작품이 천기자연(天機自然)의 참된 성정을 온전히 발현해 내려면 서정을 하면서 기실(紀實)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기실(紀實)의 논의는 홍석주가 기존의 진경(眞景)과 진시(眞詩) 주장을 끌어와 다시 창작방법론의 핵심적 지향점으로 부각시킨 것이었다. 홍석주의 한시작품에서는 평담(平淡)과 사실(寫實)의 문학성을 대표적인 시적 성취로 거론할 수 있다. 그가 시론으로서 개진한 감인(感人)과 기실(紀實)의 논의가 자신의 작품에서는 평담(平淡)과 사실(寫實)의 문학성으로 표출된다고 하겠다. 평온(平穩)하고 담박(淡泊)한 작품적 풍격(風格)은 홍석주의 시편에서 일찍부터 나타나 보인다. 홍석주는 주로 근체시에서 자신의 작품적 문학성을 이루어냈는데, 별도로 일반적 문인들에 비해 고시(古詩) 작품을 많이 남긴 점이 하나의 특징적 면모라 할 수 있다. 홍석주의 시편에는 기실(紀實)의 시론에 따른 사실적(寫實的) 표현이 상당히 두드러지는 편이다. 눈앞의 실경(實景)을 진솔하게 그려내는 작품들이 시문집에 두루 나타나 있어, 기실(紀實)의 지향은 그의 시론과 작품 창작의 기본적 토대였던 것으로 보인다. 홍석주가 자신의 시편에서 평담(平淡)과 사실(寫實)의 문학성으로 지향한 귀결점은 바로 감인(感人)이었다. 작품에서 자신의 진정(眞情)을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표현함으로써 결국은 그것을 읽는 사람들의 공감을 기대한 것이었다. The poem theory of Hong Seog-joo(洪奭周) is focused on Impressing-someone( 感人) and Recording fact(紀實) that were starting from One’s real nature(性情) and the profound secrets of Nature(天機). He insisted directly that the poems expressed one’s own real nature were expressing of writer’s the profound secrets of Nature. His such theory of literature related on the pragmatic theory named Impressing-someone. Hong Seog-joo(洪奭周) had the censorious view on the current literary circles which showed only imitation and splendid appearance. So he emphasized the theory of Impressing-someone more. After all, his theory of Impressing-someone was come from recognizing problems and diagnosis of the his days literary circles. He showed theory of Recording fact(紀實) as the new and correct literary writing method. He stressed on the Recording fact if literary works expressed One’s real nature(性情) wholly without missing truth. Hong Seog-joo(洪奭周) expressed the literariness of Plane light(平淡) and Realistic(寫實) on his poems especially. His theory of Impressing-someone(감인(感人)) and Recording fact(紀實) made the literariness of Plane light and Realistic on his poems. Such literariness came out several poem works his early days. According to his poem theory, he made realistic expression frequently on his many poem works. So intending to Recording fact(紀實) was his basic theory of making poem 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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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정언묘선(精言妙選)』 풍격론(風格論)

        박수천 ( Park Soo-cheon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21 石堂論叢 Vol.- No.79

        『정언묘선(精言妙選)』은 율곡(栗谷) 이이(李珥)가 자신의 문학 인식에 따른 시학의 전범(典範)을 보여주기 위해 찬집한 중국시 선집이다. 율곡은 『정언묘선』에서 시적 전범을 간결하게 요약된 풍격(風格)으로 제시하고 그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선별해 수록하고 있다. 「원자집(元字集)」에서 주로 선발해 모은 작품은 충담소산(沖澹蕭散)의 풍격을 가진 것이라 하였다. 여기서의 중심 개념은 당연히 충담(沖澹)이며 소산(蕭散)은 이 충담(沖澹)함을 부연 설명해 놓은 말이다. <정언묘선서(精言妙選序)>에서도 충담소산(沖澹蕭散)을 다시 요약해 충담(沖澹)이라 기술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율곡은 충담(沖澹)을 여러 시적 전범들 중 가장 대표적 풍격으로 인식하였다. 「형자집(亨字集)」에서 표방한 한미청적(閒美淸適) 풍격은 한가로운 아름다움으로서의 ‘한미(閒美)’가 중심적인 의미라 할 수 있다. 율곡 자신의 정신적 지향의 한 면모가 ‘한가로움’이었기 때문에 문학에서도 전범으로 삼을 만한 하나의 문학성을 ‘한미(閒美)’라 말한 것이다. 「이자집(利字集)」에서 표방한 청신쇄락(淸新灑落)의 풍격도 ‘청신(淸新)’ 중심의 문학성을 지목한 것이라 여겨진다. ‘쇄락(灑落)’은 ‘청신(淸新)’의 이미지를 더욱 잘 드러내기 위해 부연된 말이라 하겠다. 『정언묘선』 각 권에서 제시한 풍격들을 살펴보면 율곡은 문학비평의 주요 준거를 의경(意境), 사어(辭語), 격조(格調) 등으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 그는 의경을 가장 중심적 요건으로 파악했다. 『정언묘선』의 「정자집(貞字集)」은 용의정심(用意精深)을 기준으로 선집한 것이라 하였다. 선발된 작품은 ‘정심(精深)’함이 두드러진 풍격으로 구현되었는데, 바로 작가의 의경이 ‘정심(精深)’함을 파악한 것이다. 「인자집(仁字集)」에서는 정심의원(情深意遠)한 작품들을 가려 뽑았다고 했는데, 그것은 작가의 ‘정과 뜻[情意]’이 ‘심원(深遠)’한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선발했다는 말이다. 「정자집(貞字集)」의 용의정심(用意精深)한 풍격은 의경 중심의 작품 선발 기준이면서 한편으로는 작품 창작기법의 한 측면을 거론한 것으로 보인다. 즉, 시인이 작품을 창작할 때는 그 의경이 정밀하고 깊게 표현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인자집(仁字集)」에서 표방한 선발 기준인 정심의원(情深意遠)의 경우도 작품의 창작방법을 함께 말하고 있다. 작품이 지향해야 할 바의 깊은 서정과 길게 이어지는 의경은 훌륭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시인이 작품을 창작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기도 하다. 「의자집(義字集)」에서는 격사청건(格詞淸健)을 말했는데 작품의 격식과 사어(辭語)의 측면에서 맑고 굳센 면모를 평가한 것이다. 여기서는 작품 비평의 층위로서 격식과 사어를 들고, 본받아야 할 문학성과 창작방법으로서 격사(格詞)의 청건(淸健)함을 보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자집(禮字集)」 작품들의 대표적 풍격은 정공묘려(精工妙麗)라 했는데, 이 말은 ‘정공(精工)’에 의미 비중이 더 있고 ‘묘려(妙麗)’는 ‘정공(精工)’의 효과를 부연해 설명한 풍격이라 보여진다. 작품에서 이루어진 정공묘려(精工妙麗)한 풍격은 율곡이 생각한 또 하나의 시적 전범이면서 창작방법의 일면이기도 하다. 율곡은 『정언묘선』의 여덟 편에 각각 기준으로 삼은 작품의 풍격을 제시해 놓았다. 「원자집(元字集)」에서 ‘충담(沖澹)’의 풍격을 먼저 거론해 그것을 가장 중시하는 태도를 보이면서도, 나머지 일곱 편에서 기준으로 삼은 풍격들이 모두 학시(學詩)의 전범이라 하였다. 시문학 작품이 지닌 여러 층위들 중에 율곡은 특히 의경의 측면을 중시하여, 그것을 올바르게 구현하는 창작방법을 각 편의 표제적인 풍격으로 나타내 보였다. 율곡은 이러한 시학을 통해 『정언묘선』이 학자들의 존심양성(存心養性)을 위한 하나의 교본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 것이었다. 『Jeongeunmyosun(精言妙選)』 is an anthology of Chinese poems which was made by Yulgok(栗谷) Lee-yi(李珥) for showing the best model of poetry. He presented several short name of style and collected many equivalent works. The poems of 「Wonjajip(元字集)」 have the style as Clean-light(沖澹). Yulgok(栗谷) thought that the Clean-light(沖澹) were the representative style as the best model of poetry. The poems of 「Hyungjajip(亨字集)」 have the style as Leisure-beauty(閒美). Yulgok(栗谷) intended ‘Leisure’ mentally, so he mentioned Leisure-beauty(閒美) as a model of poetry. The poems of 「Leejajip(利字集)」 have the style as New-clean(淸新). New-clean(淸新) is the literariness of neat and tidy. Studying the showed style of 『Jeongeunmyosun(精言妙選)』’s each part, we can know that Yulgok(栗谷) recognized important matters of literary critique such as Intention(意境), Words(辭語), Forms(格調). Especially Yulgok(栗谷) understood that Intention(意境) was the most important matter. The mentioned style of 「Jeongjajip(貞字集)」 is deep precisely Using-Intention(用意精深). That is a standard of collecting poems focus on Intention(意境), also that seemed an aspect of work-writing skill. The mentioned style of 「Injajip(仁字集)」 is deep-emotion and long-intention(情深意遠). It showed an aspect of work-writing skill as well. The mentioned style of 「Eujajip(義字集)」 is Form-word’s clean and sound(格詞淸健). It estimated the aspect of poem’s form and words. The mentioned style of 「Lyejajip(禮字集)」 is skillful-elegant(精工妙麗). Yulgok(栗谷) also insisted that it is another model of poetry and an aspect of work-writing sk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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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극관(南克寬)의 「사시자(謝施子)」에 나타난 문학의식(文學意識)

        박수천 ( Soo Cheon Park ) 한국한시학회 2013 韓國漢詩硏究 Vol.21 No.-

        남극관은 오랜 질병으로 인해 26세의 이른 나이로 생을 마감한 인물이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일찍부터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았고, 20세 때에는 生員試에 2등으로 급제해 장래가 촉망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신병으로 인해 立身의 꿈을 접고 집안에서 칩거하며 괴롭고 힘든 투병 생활을 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많은 독서를 하면서 자신의 문학의식을 다듬어 나갔고, 그것을 잡록의 형식으로 기록해 놓은 것이 「謝施子」이다. 「謝施子」는 제명의 뜻처럼 쓸모없는 시시한 이야기가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학문세계를 드러낸 저작이었다. 남극관은 성품이 곧고 깨끗해 별다른 욕심을 갖지 않았으나, 침식을 잊어 버릴 정도로 책읽기만 극히 좋아했다고 한다. 여러 잡기적 기술을 모은 「謝施子」에는 문학 분야 외에도 천문, 역법, 지리, 역사, 서법, 금석학, 언어, 문자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견해를 두루 담고 있어 그의 평소 독서가 아주 광범위했음을 증명해 보여준다. 「謝施子」에는 중국 문단에 대한 관심과 문학 비평의 기사가 비교적 많은 편이다. 그 당시 조선 문단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던 公安派와 竟陵派의 문학론에 대한 전체적 평가를 내리고, 그 중 竟陵派를 주도한 鍾惺의 논의가 더 우월하다고 말했다. 남극관은 문장이란 세상의 治亂을 따라 그 盛衰를 같이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나라의 흥망에 따라 그 문장의 성쇠가 나타나니 明나라 말기의 문학이 그렇게 낮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였다. 문학과 時運의 관계를 그가 처음 거론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견해가 남극관의 문학에 대한 기본 인식이었던 점은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 남극관의 문학적 관점은 公安派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측면이 있다. 남극관은 袁宏道의 논의를 수용하면서 일단 적극적인 찬동의 뜻을 표하였다. 문학이 개인의 정감과 얽매이지 않는 개성을 드러내야 한다는 데에 생각을 같이하고, 각 시대의 변화를 따라 문학도 변화하고 발전한다는 견해에도 동감을 했다. 그러나 남극관은 袁宏道의 시작품이 복고론자들이 썼던 일상의 恒語를 애써 기피하느라, 도리어 辭語의 편폭이 좁아져 진실한 개성의 표현에 어려움이 많았음을 지적하면서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다. 公安派와 竟陵派가 제시한 문학론을 남극관이 긍정적으로 수용하면서도 또한 그들의 미흡한 측면을 간과하지 않았던 것이다. 남극관은 金昌協의 문학과 문학론을 거론하면서도 그의 비판적 견해를 제시하였다. 남극관의 집안은 소론의 명문가라 노론계 인사들과는 政論이나 문학론에서 의견을 같이 하기 어려워 그의 논의에서 黨論의 감정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겠지만, 일단은 남극관이 자신의 문학론적 견지에서 비판론을 개진한 것이라 하겠다. 金昌協이 주안점을 둔 것은 작품에 표현된 意趣였는데 비해, 남극관이 작품 평가의 기준으로 삼은 것은 氣格이었다. 남극관은 문장의 경우 體裁가 갖추어져야 한다고 말했고, 시에서는 우선 氣格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남극관은 金昌協 시론의 성취를 일부 인정하면서도, 鄭斗卿 평가의 경우 그의 氣格이 가장 뛰어난데 단지 思致만으로 그를 낮추어 말한 것은 작품의 한 측면만을 본 편협한 처사였다고 비판했다. 작품의 평가는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며 또한 그 작품에서 가장 높은 성취를 이룬 측면에 중점을 두어야 올바른 비평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남극관의 생각이었다. 남극관의 문학의식은 前後七子의 의고적 문학론을 기반으로 公安派와 竟陵派가 주장한 개성 발현 중시의 문학론을 함께 수용하고 있다. 公安派와 竟陵派는 의고론을 강력히 부정했지만, 남극관은 그들 이론의 장점을 아울러 자신의 문학론으로 발전시키고자 하였다. 작품의 氣格을 중시하면서 그것의 전범으로 盛唐을 존숭하였고, 지나친 擬古에 빠져 개성과 독창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을 경계했다. 그러나 「謝施子」에서 남극관은 그의 문학적 지향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도 않았고, 또한 자신의 문학의식을 체계적으로 이론화하지도 않아, 그의 문학론은 실제 미완의 단계에 머무르고 말았다 하겠다. 그가 일찍 요절하지 않고 在世의 기간이 좀 더 길었다면 더욱 심도 있고 독창적인 문학론을 형성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Nam, Keug-Kwan(南克寬) died at the age of 26 from his disease. He was recognized his literary talents from the people around him. But he stayed indoors to overcome his disease almost everyday. During these days he had many times for reading books, and he made his own literary thoughts. He wrote his several thoughts as a form of miscellaneous notes, named 『Sasija(謝施子)』. 『Sasija(謝施子)』 was a kind of book which showed his high level study. He wrote several subject besides literature such as astronomy, calender, geography, history, calligraphy, language. In the book 『Sasija(謝施子)』, there are many articles about literary critique and Chinese literary circles. Nam, Keug-Kwan(南克寬) thought that the trend of literature followed the flourish of the society. As his view of literature, he accepted the theory of Kong-An group(公安派) critically. He had same opinion that literary works expressed individuality without any restricting. Besides he accepted the theory of Kong-An group(公安派), he didn`t passing over their weak points. Nam, Keug-Kwan(南克寬) criticized the works and literary theory of Kim, Chang-Hyub(金昌協). Kim, Chang-Hyub(金昌協). estimated the intention of writres(意趣), but Nam, Keug-Kwan(南克寬) showed the energetic spirit(氣格) of writers as his critique standard. To evaluating literary works, it needs diversified investigation. And it must focus on the excellent side of the works. That was Nam, Keug-Kwan(南克寬)`s literary thoughts. He estimated the best T`ang Style(盛唐) highly, and he insisted the originality(獨創性) of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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