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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The Descending and Ascending Theme in the Gospel of Thomas (NHC II,2)

        Wooil Moon(문우일)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연합신학대학원) 2017 신학논단 Vol.90 No.-

        이 논문은 도마복음(NHC II,2)에 대한 간본문적이고 종교-문헌사적인 분석으로서, 도마복음의 말씀들이 무질서하게 배열된 것이 아니라 주도면밀하게 배열되어, 전체로서 지하세계에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하강-상승 구조를 형성한다고 제안한다. 도마복음 해석가들 중 로빈슨(James Robinson, 1971)이나 퀘스터(Helmut Koester, 1971, 1989) 등은 도마복음의 집필 연대를 매우 이른 시기로 보고, 심지어 예수의 형제 야고보가 예루살렘교회를 이끌던 62년 이전으로 보면서, 도마복음이 본래 그리스어 및 아람어 예수 어록이었으나 후에 콥트어로 번역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주장의 주된 근거들 중 하나는 도마복음의 말씀들이 일정한 구조를 보이지 않고, 마치 예수의 원-말씀들을 무작위로 취합하여 무질서하게 모아 놓은 것 같은 형태를 띤다는 것이다. 그러나 페린(Nicholas Perrin, 2002)은 도마복음을 타티아노스의 시리아어 디아테사론과 언어-수사학적으로 비교·분석하여 도마복음의 각 말씀들이 열쇠말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입증함으로써 도마복음 구조에 대한 기존의 원시성과 무작위 구조론을 반박하였다. 즉, 도마복음은 170년경에 디아테사론을 참조하여 시리아어로 제작한 헤르메스 문헌의 일종으로서, 한 사람이 특별한 신학적 의도를 가지고 주도면밀하게 배열한 하나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페린은 도마복음의 특정 신학을 디아테사론과의 유사성에서 찾았을 뿐, 도마복음에서 하강-상승 구조를 찾아내지는 못하였다. 이에 본고는 도마복음이 열쇠말들로 주도면밀하게 배열된 하나의 작품이라는 페린의 제안을 수용하되, 페린의 주장에 더하여 도마복음 전체를 관통하는 하강-상승 주제를 추출하고, 그 주제의 기능과 의미와 종교-문헌사적 배경을 논함으로써, 도마복음의 원시성과 무작위 구조론을 반박한다. 하강-상승 구조는 호메로스, 베르길리우스, 오비디우스, 플루타르코스 등의 그리스-로마 고전 문헌에 빈번하게 나타나며, 대개 죽음-부활, 미숙-성숙, 무지-지식 등의 주제와 함께 등장하고, 많은 경우에 하강-상승 의례를 마친 당사자가 신적 모습으로 변모하는 결과를 수반한다. 초대기독교 문헌 가운데 하강-상승 구조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작품은 2세기 이후에 쓰인 것이 거의 확실한 도마행전인데, 도마행전에서 도마는 특별한 의례를 통하여 예수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모하고, 이 모습은 지하와 지상 세계에 나타나 죽음-부활을 통해 하강-상승 의례를 거친 사람에 의해 확인된다. 만약 도마행전과 도마복음이 같은 전통을 공유한다면, 도마복음의 하강-상승 및 변모 주제와 예수, 도마, 도마 공동체 등이 공유하는 “살아있는 모습”이라는 주제는 도마행전에 나타나는 의례와 연관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의례가 도마공동체에서 실제로 행해졌던 의례인지 아니면 문학적 장치에 불과한지를 결정하는 일은 이 논문의 범위를 벗어난다. 또한 도마복음이 구체적으로 누가 언제 어떤 언어로 쓴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도 이 논문의 범위를 벗어난다. 이 논문은 도마복음(NHC II,2)에 대한 간본문적이고 종교-문헌사적인 분석으로서, 도마복음의 말씀들이 무질서하게 배열된 것이 아니라 주도면밀하게 배열되어, 전체로서 지하세계에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하강-상승 구조를 형성한다고 제안한다. 도마복음 해석가들 중 로빈슨(James Robinson, 1971)이나 퀘스터(Helmut Koester, 1971, 1989) 등은 도마복음의 집필 연대를 매우 이른 시기로 보고, 심지어 예수의 형제 야고보가 예루살렘교회를 이끌던 62년 이전으로 보면서, 도마복음이 본래 그리스어 및 아람어 예수 어록이었으나 후에 콥트어로 번역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주장의 주된 근거들 중 하나는 도마복음의 말씀들이 일정한 구조를 보이지 않고, 마치 예수의 원-말씀들을 무작위로 취합하여 무질서하게 모아 놓은 것 같은 형태를 띤다는 것이다. 그러나 페린(Nicholas Perrin, 2002)은 도마복음을 타티아노스의 시리아어 디아테사론과 언어-수사학적으로 비교·분석하여 도마복음의 각 말씀들이 열쇠말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입증함으로써 도마복음 구조에 대한 기존의 원시성과 무작위 구조론을 반박하였다. 즉, 도마복음은 170년경에 디아테사론을 참조하여 시리아어로 제작한 헤르메스 문헌의 일종으로서, 한 사람이 특별한 신학적 의도를 가지고 주도면밀하게 배열한 하나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페린은 도마복음의 특정 신학을 디아테사론과의 유사성에서 찾았을 뿐, 도마복음에서 하강-상승 구조를 찾아내지는 못하였다. 이에 본고는 도마복음이 열쇠말들로 주도면밀하게 배열된 하나의 작품이라는 페린의 제안을 수용하되, 페린의 주장에 더하여 도마복음 전체를 관통하는 하강-상승 주제를 추출하고, 그 주제의 기능과 의미와 종교-문헌사적 배경을 논함으로써, 도마복음의 원시성과 무작위 구조론을 반박한다. 하강-상승 구조는 호메로스, 베르길리우스, 오비디우스, 플루타르코스 등의 그리스-로마 고전 문헌에 빈번하게 나타나며, 대개 죽음-부활, 미숙-성숙, 무지-지식 등의 주제와 함께 등장하고, 많은 경우에 하강-상승 의례를 마친 당사자가 신적 모습으로 변모하는 결과를 수반한다. 초대기독교 문헌 가운데 하강-상승 구조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작품은 2세기 이후에 쓰인 것이 거의 확실한 도마행전인데, 도마행전에서 도마는 특별한 의례를 통하여 예수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모하고, 이 모습은 지하와 지상 세계에 나타나 죽음-부활을 통해 하강-상승 의례를 거친 사람에 의해 확인된다. 만약 도마행전과 도마복음이 같은 전통을 공유한다면, 도마복음의 하강-상승 및 변모 주제와 예수, 도마, 도마 공동체 등이 공유하는 “살아있는 모습”이라는 주제는 도마행전에 나타나는 의례와 연관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의례가 도마공동체에서 실제로 행해졌던 의례인지 아니면 문학적 장치에 불과한지를 결정하는 일은 이 논문의 범위를 벗어난다. 또한 도마복음이 구체적으로 누가 언제 어떤 언어로 쓴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도 이 논문의 범위를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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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복음 로고스 개념에 대한 철학적 고찰

        문우일(Moon, Wooil) 한국신약학회 2013 신약논단 Vol.20 No.2

        본고는 요한복음에 나타나는 로고스 개념을 사상사비평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그 철학적 특성 및 기능을 논한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필로의 작품에도 인격화 된 로고스 개념이 등장하기 때문에 과연 요한복음 저자가 필로의 영향을 받아 인격화 된 로고스 기독론을 펼쳤는가에 관하여 오랜 논의가 있었다. 그런데 요한복음의 인격화된 로고스는 필로의 인격화된 로고스 개념과 완전하게 일치하지 않으므로 요한복음이 필로의 영향을 직접 받았는가에 관하여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했다. 더구나 요한복음의 철학은 그 어떤 기성 철학과도 완전하게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대중적 플라톤주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본고는 요한복음이 특정 기성 철학을 엄밀하게 적용하지 않는 까닭은 저자의 철학적 소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예수와 요한공동체를 변호하기에는 그 어떤 기성 철학도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제안한다. 본고는 요한복음이 필로의 영향을 직접 받았는가의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채, 박식한 저자가 어떤 형태로든 필로 방식의 로고스론을 접했을 가능성을 열어둔다. 또한 본고는 요한이 필로의 중-플라톤주의 로고스론을 고스란히 답습하지 않고, 정통 플라톤주의를 응용하여 필로가 이데아 차원으로 승화시킨 유대 영웅들을 가시적 차원으로 끌어내리고 대신 인간 가운데 오로지 예수만을 이데아 차원으로 묘사함으로써 다신론적 가능성을 배제하고 필로 방식의 로고스론을 견제한다고 제안한다. This paper explores the concept of Logos i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and analyzes its philosophical features and functions. The methodology is the history of ideas suggested by Arthur O. Lovejoy in a form modified with Stephen Hinds’s theory of intertextuality. Philo of Alexandria personifies the Platonic and Stoic notion of logos and applies it to real persons, and thereby many scholars discussed whether his notion influenced the personified Logos in John. No scholarly consensus has been made, however, mainly because Philo uses the Stoic idea of logoi spermatikoi while the Logos in John is not immanent in the universe but can be either accepted or rejected by particular persons. Since the doctrine of Logos in the Johannine prologue does not precisely repeat any specific idea of established philosophy, some critics like Charles K. Barrett and Martin Hengel consider the author of the Fourth Gospel less versed in philosophy and define his/her idea as a form of “popular Platonism” or of “dominant Platonism.” This paper, however, suggests that the Johannine doctrine of Logos is deliberately designed to defend the onto logical priority of Jesus and the Johannine community against the Philonic notion of logos which defines Israel and several Israelite patriarchs in terms of the divine log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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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의 누룩 비유(13:33)와 맥락

        문우일(Moon, Wooil) 한국신약학회 2018 신약논단 Vol.25 No.3

        이 논문은 마태복음의 누룩 비유(13:33)를 평행 본문들과 비교하고 주변문헌들을 참조하여 분석한 것이다. 누룩 비유는 누가복음(13:20-21)과 도마복음(96)에도 나오지만, 특히 마태복음에서는 중심부인 13장에 나오고, 13장에서도 한가운데에 등장한다. 예수세미나 회원들은 현존하는 예수 비유들 가운데 가장 신뢰할 만한 비유를 마태복음의 누룩 비유라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마태복음의 누룩 비유에 대한 선행연구는 두 자료설과 Q자료설의 영향으로 그 중요성을 간과하였고, 율리허(A. Jülicher)의 한 비교점 이론의 영향으로 누룩 비유의 비교점이 대조인지 성장인지를 결정하는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하였다. 더구나 스캇(B.B. Scott)은 휠라이트(Philip Wheelwright)의 병치은유(diaphor) 이론을 누룩 비유 해석에 적용하기 위하여 지중해 연안에서 여자, 누룩, 숨김의 주제가 예외 없이 부정적이었다고 해석함으로써 누룩 비유의 함의와 맥락을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리벤버그(Jacobus Liebenberg)는 유대 전통에서 누룩을 넣은 유교병(레 7:13; 23:17, LXX)과 숨김 주제가 언제나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고 바르게 지적한다. 이 논문은 리벤버그의 지적을 토대로 유대 및 헬라적 유대 문헌과 초대기독교 문헌에서 누룩과 유교병, 숨김 주제가 언제나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음을 입증한다. 또한 초대기독교 저자들은 누룩 비유의 여자를 비천하고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보다는 비범하고 신비하게 보았음을 입증한다. 예컨대 터툴리안과 힙폴리투스는 누룩 비유의 구성 요소들을 부정적이거나 비천하게 평가하지 않고, 이교도 신비 의식과 유사하게 읽힐 수 있는 점을 우려하였다. 한편, 마태복음 13장에서 누룩 비유는 겨자씨 비유뿐만 아니라 다른 파종과 추수 비유들(씨 뿌리는 자의 비유 및 그 해석, 알곡과 가라지 비유)과도 연결되는데, 이 논문은 마태복음의 누룩 비유 맥락이 파종과 추수 이후에 유교병을 소제로 드리는 유대 전통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제안한다. This paper explores the words, themes, ideas, and context of the Parable of the Leaven in Matthew 13:33 and suggests a reading from the perspective of the Jewish Festival of Weeks during which leavened bread must be offered. In order to read some meanings peculiar to the Matthean context, the paper analyzes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between the Matthean text and context of the parable and the other versions of the parable such as in Luke 13:20-21 and NHC II,2 GThom 29. Only in Matthew, the leaven parable is combined not only with the Parable of the Mustard Seed but also with the other sowing and harvest parables such as the Parable of the Sower and its interpretation, and the Parable of Weeds among the Wheat. The Parable of the Leaven appears in the middle of the Gospel of Matthew, and the Matthean version won the most votes for the likely authentic parable of Jesus from the Jesus Seminar fellows as seen in the Red Letter Edition (1988). Nevertheless, the parable in Matthew and its context has not been explored enough partly because the two-source theory and Q source hypothesis focus more on Mark and Luke rather than on Matthew. A. Jülicher’s theory of one point of comparison has further inclined previous studies of the parable too much towards the discussion whether the point of the parable is comparison or contrast. Moreover, B. B. Scott (1989) interprets all the themes of woman, leaven, and the act of hiding in the parable as negative symbols of the first-century Mediterranean world only to apply Philip Wheelwright`s concept of diaphor to the parable by force. Jacobus Liebenberg (2001), however, rightly points out that leavened bread and the act of hiding were not always negative in the world. Based on Liebenberg’s observation, this paper further proves that the offering of leavened bread in the Festival of Weeks in Lev 23:17 is attested in the Hellenistic Jewish Literature, such as in Philo, Josephus, and Dead Sea Scrolls. In addition, no extant early Christian text interprets the woman and the act of hiding in the parable as neg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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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도나무에 깃든 평화

        문우일(Moon, Wooil) 한국신약학회 2015 신약논단 Vol.22 No.1

        이 논문은 요한복음의 평화 주제를 그리스-로마 및 헬라화 된 유대 전통에 비추어 사상사(history of ideas) 관점에서 조망한 것이다. 요한복음이 작성될 즈음에 그리스-로마 및 유대 교육을 받은 유대 지식인들이 접했음직한 문헌들이 평화를 어떻게 정의하는가를 살피고, 유사한 사상들이 요한복음에 나타나는가를 탐색한 것이다. 유대 지식인의 예로는 알렉산드리아의 필로와 요세푸스를 택하였다. 필로와 요세푸스가 직접 언급하는 현존하는 선행본문들(ante-texts) 가운데 평화를 다룬 본문을 빈도가 높은 순서로 열거하면, 구약성경, 플라톤, 호메로스, 아리스토텔레스, 헤시오도스등이다. 두 유대인 저자들은 로마 정치는 자주 다루었으나 라틴어 문헌은 거의 인용하지 않았고, 고대 그리스어 문헌들을 자유롭게 사용했다. 이런 경향을 고려하여 이 논문은 그리스어문헌과 로마정치를 반영하되, 학계동향을 따라 요한복음과 필로의 평화 개념이 어느 지점에서 공명하는가를 찾는 데 집중하였다. 이를 위하여, 필로와 요세푸스가 언급한 그리스어 문헌의 평화를 탐색하면서 요한복음과 접촉하는 부분이 있는가를 살피고, 필로와 요세푸스의 평화를 요한복음과 비교하면서 소개하고, 마지막으로 ???νη 라는 용어를 포함하는 요한복음 본문을 간략히 다루었다. 요세푸스 및 필로와 그들의 선행문헌 이외의 다른 그리스어 문헌과 로마정치와 구약성경과 기타 신약성경 등에 나타나는 방대한 평화 개념은 지면의 한계로 인하여 논의 전개에 필요한 경우에만 다루었다. 평화 본문들을 분석한 결과, 비록 요한복음은 ???νη라는 단어를 6회 사용할 뿐이나, 당시 그리스-로마 세계와 헬라화된 유대 세계에 널리 알려진 다양한 평화 주제들을 도입하여 “예수 평화”를 선포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요한복음이 선포하는 예수 평화는 유대 솔로몬의 평화와 로마 가이사의 평화와 그리스의 신-인간-우주를 아우르는 평화 개념을 능가하는 것으로서 정치적 평화, 심리적 평화, 철학적 평화, 우주적 평화 등의 성취요, 우주 질서와 인간 정의와 인간에 대한 하나님 사랑과 인간들 사이의 서로 사랑을 지향하는 평화임이 밝혀졌다. This paper explores the theme of peace i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from a Greco-Roman and Hellenistic-Jewish perspective, and the primary methodology is the history of ideas. It discusses various concepts of peace in Philo of Alexandria and Flavius Josephus and their most common ante-texts in order to make a rough estimate of what definitions of peace may have been accessible to Jewish intellectuals and the author(s) of the Fourth Gospel in the Mediterranean world of the first century. My analysis indicates that most common ante-texts of Philo and Josephus include the Greek Old Testament (LXX), Plato, Homer, Aristotle, and Hesiod in order of frequency. Although interested in Roman politics, the two Jewish authors hardly show interest in Latin literature. Therefore, this paper discusses ideas of peace, not in Latin literature, but in Homer, Hesiod, Plato, Aristotle, Philo, and Josephus, examining whether those ideas are resonate with the Johannine concepts of peace. Particular attention is given to how Philo uses Greek and Jewish ante-texts in defining peace and whether his definitions of peace serve to defend Israel against Pax Romana, because recent interpreters of the Fourth Gospel, such as Wayne Meeks (1976), Peder Borgen (1986), and Jey Kanagaraj (1998), effectively argued for some possible influence of Philo on John. This analysis suggests that Israelite nationalism is stronger in Philo’s concepts of peace than in those of the Fourth Gospel, although both texts share many similarities with each 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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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모가 아닌 의로운 심판으로

        문우일(Moon, Wooil) 한국신약학회 2017 신약논단 Vol.24 No.3

        이 논문은 요한복음의 정의(正義)를 외모라는 관점으로 분석하되, “외모에 따른 심판”과 “정의로운 심판”이 무엇이고, 어떤 전통을 배경으로 하는지 탐색한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유대 지도자들에게, “외모에 따라 심판하지 말고 정의로운 심판으로 심판하라”(μὴ κρίνϵτϵ κατ` ȍψιν ᾀλλἀ τὴν δικαίαν κρίσιν κρίνϵτϵ, 7:24)고 경고한다. 즉, 외모에 따라 판단/심판하는 일을 정의롭지 못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 논문이 외모 중심 판단을 경계하는 성서 본문에 주목하는 까닭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라는 암울한 상징계를 재고하기 위한 성서적 단서 하나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하여 요한복음 7장 24절에 사용된 언어와 주제가 주변 전통과 문헌 가운데 어떤 것과 가장 가까운지를 탐색하고 그 전통 및 문헌과 어떤 유사성과 상이성을 보이는가를 분석하여 요한복음 특유의 의미를 추출한다. 엄밀한 선행본문이나 자료를 제시하는 것은 이 논문의 범위를 벗어난다. 분석을 토대로 이 논문은 신약성서 가운데 오로지 요한복음만이 정의로운 심판/판단/재판과 외모에 따른 심판/판단/재판을 대조시키고(7:24), 이 주제는 유대 전통을 예수 전승으로 독특하게 재해석한 것이라고 제안한다. 그리스 문헌에도 유사한 주제가 포착되지만, 다신론을 전제로 한 그리스 문헌의 정의 및 정의 관련 개념들은 요한복음의 언어와 상당한 거리가 있다. 정의와 정의로운 심판의 원천을 하나님 한 분으로 보고 인간은 정의로운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는 구약성서 전통을 요한복음과 많은 헬라적 유대 문헌들이 공유하지만, 다른 문헌들과 달리 요한복음은 예수 전승을 가미하여 독창적인 정의관을 전개한다. 특별히 70인역에서 외모가 아니라 정의와 진리로 심판하는 하나님 개념을 포착하여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를 친밀한 사랑으로 연결하고, 그 사랑으로 태생적이고 외적인 조건들을 극복하여 세상을 구원한다는 정의관을 전개한다. This paper explores the theme of justice i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by discussing the meaning and background of the passage in John 7:24: “Do not judge by appearances, but judge with right judgment” (NRSV). The language in John 7:24 is congenial to the LXX rather than any other Hellenistic Jewish or Greco-Roman text, and Jesus’s interpretation of the Jewish concept of divine judgment stands behind the Johannine passage. The Fourth Evangelist finds in Jesus’s teaching a priority is given on the realization of divine justice whereas the judgement by appearances such as social and familial status, physical appearances, national origin, race, gender, disability, etc are criticized. According to J. Lacan, individual desire is not fully structured by the individual but conditioned by the desire of the society. Thus one should de-construct the social structure of desire first in order to construct an alternative standard of value. Jesus’s standard of justice accounted in the Fourth Gospel facilitates an alternative value of goodness that can serve to deconstruct the biased standards of beauty and justice of this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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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복음의 율법과 사랑

        문우일(Wooil Moon) 한국신학정보연구원 2013 Canon&Culture Vol.7 No.1

        이 글은 요한복음의 율법과 사랑을 탐구한다. 페르난도(G. Charles A. Fernando)는 모세의 율법과 예수가 전한 사랑은 상보적인 것으로서 율법은 사랑을 위한 예비 단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2001). 그러나 페르난도의 주장은 요한복음에서 모세의 율법과 예수의 사랑의 계명이 빚어내는 긴장 관계에 관한 선행 연구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페르난도와 달리 판카로(Severino Pancaro)는 마틴(James L. Martyn)의 사회학적 가설(1968)을 도입하여 요한복음에서 율법과 사랑 사이의 긴장은 요한 기독교인들이 바리새파 유대인 회당에서 출교 당한 정황을 반영하는 것이라 해석했다. 판카로에게 사랑은 유대인 정체성을 상실한 유대 기독교인들의 종파적 견해를 대변하는 것이며, 율법(노모스)은 1세기말에 얌니야 회의에서 정통 유대교로 승인 받은 바리새파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다. 이 글은 사랑을 요한 종파(sect)의 덜 유대적인 개념으로, 율법을 정통 유대교의 매우 유대적인 개념으로 해석하는 판카로의 해석을 재고한다. 대신 요한 공동체는 모든 유대교와 결별한 종파가 아니라 유대 일부 집단과만 대립한 신앙 체계(cult)였다는 푸글세스(Kare Fuglseth)의 가설을 도입하여, 요한복음의 사랑 개념도 율법 못지않게 유대 전통에 깊이 뿌리박은 개념이라고 제안한다. 율법과 사랑은 여호와의 계명들에 대한 서로 다른 두 해석인 것이다: 율법은 유대 지도자들의 계명 해석이요, 사랑은 요한 공동체의 계명 해석이다. This paper explores the law and love i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G. Charles A. Fernando argued that the law given through Moses does not stand against love revealed by Jesus but the former is complementary and preparatory to the latter in John (2001). His suggestion, however, does not reflect strong knowledge of scholarly discourse on the tension between the Mosaic law and Jesus’s love commandment in John. Severino Pancaro interprets the tension by adopting James L. Martyn’s sociological hypothesis about the segregation of the Johannine Christians from the synagogue of Pharisaic Jews (1968). For Pancaro, love represents the sectarian view of Jewish Christians, who can hardly identify themselves as Jews, while the law (nomos) the traditional view of Judaism confirmed as orthodox by the Council of Yamnia in the late first century A.D. This paper reconsiders Pancaro’s extreme dichotomy between the less Jewish love of Johannine sectarianism and the very Jewish law of orthodox Judaism. Kare Fuglseth redefines the Johannine community not as a sect but as a cult which manifested tension only with a certain group of Judaism rather than with Judaism itself. Relying on his hypothesis, this paper proposes that both the law and love in John are firmly rooted in the Jewish tradition: The law and love signify two different interpretations of God’s commandments: the former is of the Jewish leaders and Jesus’s opponents in John while the latter is of the Johannine 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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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호텍스트성에서 미메시스 비평까지

        문우일(Wooil Moon) 한국신약학회 2012 신약논단 Vol.19 No.1

        본고는 불가리아계 프랑스인 탈구조주의자이며 기호학자인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정의한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e)이라는 기호학적 개념이 어떻게 데니스 맥도날드의 ‘미메시스 비평법’으로 진화하게 되었는가를 탐구한다. 먼저, 크리스테바의 상호텍스트성 이론을 소개하고, 그녀가 텍스트 해석에 있어서 저자보다는 텍스트와 독자를 극단적으로 강조한 것에 대해 반응한 주요 문학 이론들을 소개한다. 그 이론들은 롤랑 바르트의 『저자의 죽음』, 헤롤드 블룸의 『영향력에 대한 갈망』, 지안 콩테의 경쟁 의도를 결여한 시적 언어 개념, 스테픈 하인즈의 억압된 인유에 대한 해석 요청 등이다. 이런 개념들을 개괄하는 이유는 이어서 소개하는 리차드 헤이스와 데니스 맥도날드가 각각 제안한 상호텍스트성 이론들을 효과적으로 이해하기 위함이다. 헤이스와 맥도날드는 상호텍스트성에 관한 세속적 문학 이론들을 신약성경 비평 영역에 적용한 학자들 가운데 가장 자주 인용되는 성서비평가들이다. 헤이스는 상호텍스트성 연구를 성서 인유에 제한했으나, 맥도날드는 신약의 상호텍스트성 연구 범위를 그리스-로마 문화권에서 행한 미메시스 전통으로까지 확장했다. This paper explores how Dennis R. MacDonald"s idea of Mimesis Criticism has evolved from the semiotic concept of intertextuality defined by Julia Kristeva, a Bulgarian-French post-structuralist and semiotician. For this purpose, the paper introduces Kristeva"s definition of intertextuality and some other literary theories that provide responses to her extreme stress on the roles of the text and the reader, rather than the author, in interpreting texts. Those theories encompass Roland Barthes"s Death of the Author, Harold Bloom"s Anxiety of Influence, Gian B. Conte"s non-emulative concept of "poetic langue," and Stephen Hinds"s hermeneutical demand to interpret suppressed allusions. This brief survey of literary concepts aims to attain basic knowledge to understand the intertextuality theories respectively expounded by Richard Hays and Dennis MacDonald. Both Hays and MacDonald are the most referred biblical critics among those who adapted the secular literary theories regarding intertextuality to the area of New Testament literary criticism. While Hays restricts his intertextual study to biblical allusions, MacDonald shifts the paradigm of the New Testament ante-textuality study to the Greco-Roman mimesis prac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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