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김도형(Kim Do-Hyung),장은영(Jang Eun-young),경남호(Kyong Nam-Ho),김홍우(Kim Hong-Woo),김성완(Kim Sung-Hwan),김창석(Kim Chang-Suk) 한국태양에너지학회 2011 한국태양에너지학회 논문집 Vol.31 No.3
This study draws economic expense factors according to the influence of generation resulted from slipstream and the arrangement of the complex when arranging and designing the complex for offshore windpower development as a model of 50㎿ offshore wind farm and conducts economics analysis. According to the result of the analysis, O (Optimize) arrangement was the one that has the highest generation for having the best windpower resources in terms of design and being least affected by slipstream; however, the arrangement requires expensive submarine cables and high installation cost. Therefore, according to the analysis of economics, it was thought that 50㎿ complex should have less economics as BC ratio 0.95 than the series arrangement of main wind direction and I+80 series arrangement would be rather more economical. This economics evaluation provides comparison according to the arrangement of the development complex considering the uncertainty of the electricity price and gross construction cost. And it is expected that the result of economics evaluation would greatly differ by installation capacity, and the reason is that the cost of electric infrastructure takes up a higher portion than the gross construction cost of the development complex. The only way to compensate this part is to make the windpower development complex larger. It seems that it will be necessary to enhance spot applicability to evaluate economics afterwards and pay consistent attention to and conduct follow-up research on the economics evaluation of the complex construction.
金弘宇(Kim Hong-Woo) 한국정치학회 1986 한국정치학회보 Vol.20 No.2
朝鮮의 正祖朝(1777-1800)는 이른바 西學 또는 天主學運動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시기이다. 正祖代의 西學은 대체로 두번에 걸쳐 크게 일어났다. 첫번째는 李承薰이 冬至使行의 書狀官으로 임명된 그의 부친 李東郁을 따라 燕京, 즉 北京에 다녀온 직후인 1784년 봄부터 중국인 신부 周文謨가 들어온 1794년에 이르는 약 10여년에 걸친 기간이다. 두번째는 正祖大王이 昇遐한 1800년 6월 이후의 6개월간의 기간이다. 天主學이 正祖朝에 두 차례나 크게 일어났던 이유는 첫째 당시 지식인들이 가졌던 “새로운 것”에 대한 강한 호기심에서 찾을 수 있다. 둘째는 당시의 天主學이 가졌던 補儒論的 성격에서 찾을 수 있다. 세째는 당시 조정의 대응자세에서도 찾을 수 있다. 천주학이 正祖朝에 급격히 그 세력을 신장함에 따라 전통적 성리학을 추종하는 士類계급들은 심각한 위협과 위기를 느끼고, 천주학을 적극적으로 비판ㆍ공격하게 되었다. 正祖朝의 천주학비판은 前期와 後期로 나누어지며, 이들은 다시 온건론과 강경론으로 양분된다. 安鼎福은 前期 온건론의 대표적 인물이고, 李獻慶은 前期 강경론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리고 蔡濟恭과 正祖는 후기 온건론을, 李基慶과 洪樂安은 후기 강경론을 각각 대표한다. 이것을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표 참조〉 본 논문에서는 前期의 천주학비판에 국한하여 살펴본다. 安鼎福의 西學批判은 첫째 “師弟ㆍ親戚ㆍ姻戚”의 관계로 얽히어 있는 南人의 세력을 보호한다는 제한된 목적에서 쓰여졌다. 두째 安鼎福은 어디까지나 西學을 “따져서 배척함으로써” 西學에 감염된 자들의 “마음을 돌이키고 생각을 바꾸게 하려”는 설득의 방식에 입각해 있다. 세째 安鼎福은 자신의 설득이 이미 西學에 감염된 자들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豫感하고 있었다. 네째 安鼎福은 “西洋科學과 技術에 대하여는 비판을 加하지 않고 오직 기독교 교리에 비판을 집중”하고 있다. 李獻慶의 西學批判은 3가지 점에서 安鼎福의 비판과 차이를 보인다. 첫째 李獻慶은 朱子學이 쇠퇴했음을 분명하게 인식했다. 두째 그는 西學禁止를 위한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단기적으로는 西學書를 태워 없애는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儒學을 보다 밝히고 또 널리 가르치는 것이다. 세째 그는 西洋科學의 우월성을 부인한다. 이상과 같은 차이점과 아울러 李獻慶은 安鼎福과 세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첫째 天主學과 佛敎를 동일시한 점, 둘째 天主學이 짧은 시일 내에 “그치거나 끊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 오히려 보다 치열해지고 또 만연될 것으로 내다본 점, 세째 西學敎徒를 夷狄과 같이 異端視는 하였지만, 反國家的 逆賊의 무리로는 인식하지 않은 점이다.
金弘宇(Kim Hong-Woo) 한국정치학회 1990 한국정치학회보 Vol.23 No.2
본 논문의 목적은 천주학비판을 통해 나타난 성리학 내의 강ㆍ온론간의 상충되는 입장을 살펴보고, 이와 관련하여 정약용의 ‘배교’문제를 재조명하려는 데 있다. 온건론의 입장은 두가지 점으로 집약된다. 첫째 서학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외적 강제나 억압보다는 ‘明正學’에 의한 서학의 자연적 소멸에서 찾아야 한다. 둘째 사건을 확대시키기보다는 축소시켜야 한다. 반면 강경론의 입장은 이와는 정반대로 나타난다. 즉. 설득보다는 강제를, 축소보다는 확대를 강조한다. 그러나 강ㆍ온 양론의 근본적 차이는 전자, 즉 강경론이 서학도를 “逆賊”으로 따라서 ‘제거’의 대상으로 본데 대해 후자, 즉 온건론은 이들을 ‘天賊’으로, 따라서 ‘敎化’의 대상으로 보았다는 데 있다. 이와 아울러 西學派 내에도 강ㆍ온론간의 대립이 나타났다. 대표적인 예로서 이승훈의 강경론과 정약용의 온건론간의 대립이다. 결론적으로 정약용의 ‘배교’는 一元論的 世界觀에 대한 거부를 함축한다. 왜냐하면 정약용은 성리학의 모화주의나 서학의 교황주의가 모두 강경론의 입장인 동시에 일원주의와는 逆?的인 의미에서 동질적인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사회과학자가 본 법학연구 헌법의 시민적 읽기 한국 헌법학 반성을 위한 프롤로그
김홍우 ( Hong Woo Kim )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2006 서울대학교 法學 Vol.47 No.3
A Constitution is a text, in principle, open to all citizens. Any people who can read is supposed to read it and to know it. In a way, the Constitution is compared to Bible which is open to all laymen. These, too, are encouraged to read Bible and to learn it by themselves by simply reading it. With the growth of modern legal science, however, the Constitution has become much an intricate science and required much a technical understanding, that no lay-citizens dare to read it without the intervention of legal experts. This has caused the legal science to become more autonomous and less ministerial. This paper proposes to begin anew a pre-juristic reading of the Constitution, guided by the common sense of the ordinary citizens. This will open a way to actualize the Aristotelian ideal of civic politics, where ordinary people enjoy the right of sharing in deliberative and judicial affairs, thereby attaining the actual sense of citizenship in their st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