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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후보

        韓國文集中楚辭序跋考論

        가첩 성신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4 人文科學硏究 Vol.32 No.-

        본고는 한국문집속의 10명의 문인들이 지은 13편의 초사 관련 서발문에 대한 고찰을 통해 한국에서의 한국에서의 초사 판본의 전파와 한국의 초사 연구 양상을 연구하였다. 한국 문집 속의 이 13편 서발문은 모두 한국과 중국 역사에서 초사 판본의 전파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증거이다. 초사 서발문에서 언급되었던 초사 판본은 현재 중국 판본의 장번시녀사해례초사(莊蘩詩女士楷隸楚辭)만 남아있고, 기타 판본은 유실되어 진일보 탐색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문집속에 수록된 서발문에 초사 판본의 전파, 초사 문학 평점, 초사 주석본 품평 등 여러 측면의 내용을 통해 한중 초사 판본의 전파 양상과 한국 문인들의 초사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다. 우선 한국에 『초사(楚辭)』필사본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李頤命의 『楚辭』 鈔本, 金氏의 『楚詞』鈔本, 申光裕와 任允摯堂의『楚辭合』鈔本, 童漢의 『楚辭抄』등이다. 동시에 우리는 李種徽의 「題楚詞新集註後」에 근거하여 李氏가 수장했던『楚辭新注』판본이 건륭3년(1738)본이며 한국에 유입된 시간은 1756년 이전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판본이 乾隆三年(1738)原刊本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증이 필요하다. 동시에 서울대학교와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된 屈復의『楚辭新註』는 중국의『楚辭新註』판본의 중요한 보완이다. 이밖에 金沢榮이『毗陵莊蘩詩女士楷隸楚辭』에 대해 지은 발문은 한중 문인 사이의 교유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毗陵莊蘩詩女士楷隸楚辭』는 중국 초사법서(楚辭法書)의 중요한 판본이므로 마땅히 중국초사법서 작품의 해제에 편입되어야 한다. 다음 한국 고대 문인들이 초사를 평점할 때, 굴원 및 주희의 관점에 대한 평론은 중국 문인들의 논점과 서로 맞물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시에 한국문집의 초사 서발문에서 申維翰은 “虛實相生” 黃景源은 “六義” 司空檍은 “哀而不怨,深得風雅之体”라는 표현을 사용하여『楚辭』에 문학적인 비평을 진행하였고 이는 모두 한국 문인들이 초사에 대한 최고의 평가라 볼 수 있다. 그 중 申維翰의 “虛實相生”의 관점은 論騷史에 있어 그야말로 시초라 할 수 있다. 그 다음 한국 고대 문인들이 주희의 『楚辭集注』 을 좋아하고 존중하였음을 알 수 있었고 동시에 한국 고대 문인들은 『楚辭章句』, 『楚辭補注』, 楚辭新註』 3종의 주석본에 대해서도 품평을 하고 존숭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논의들을 종합하여 볼 때, 한국 문집 속의 초사 관련 서발문은 초사 판본의 전파, 초사 문학 평점, 초사 주석본의 품평 등 중요한 내용을 반영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연구는 가치가 있다. 그러나 필자는 단지 『韓國歷代文集叢書』, 『韓國文集叢刊』을 중심으로 고찰하였기에 연구대상의 자료가 제한적인 점이 있다. 필자는 향후 관련 자료를 더욱 많이 수집하여 진일보 심도있는 논문을 계속 진행할 계획이다.

      • KCI등재

        屈復《楚辭新註》在韓國的流播研究

        賈捷 열상고전연구회 2015 열상고전연구 Vol.43 No.-

        본고는 《楚辭新註》 서울대학교 소장본의 해제, 고려대학교 소장본의 해제, 한 국과 중국에서 현존된 乾隆戊午年 간행의 《楚辭新註》의 간행 특징과 문헌적 가 치 및 조선 후기 문인 李種徽 소장의 《楚辭新註》등 내용을 통하여 屈復의 《楚辭 新註》가 한국에 유입되고 전파된 양상을 고찰해 보고자 하였다.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중국국가도서관 소장 《楚辭新註》 受業門人 同梓本이 초간본이고, 고려 대학교 소장본과 초간본은 모두《楚辭新註》 판본중의 선본이고, 居易堂本은 乾 隆 1738년 간행 판본중의 졸본이다. 서울대학교 소장본은 乾隆 1738년에 출판 된 또 다른 판본으로서 중국에는 소장되지 않은 것이며 그 출판 시기는 중국국가 도서관 소장 초간본 및 弱水草堂本보다 늦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李種徽의 《題楚詞新集註後》를 통하여 屈復의 《楚辭新注》가 조선에 유입된 시기는 최소 1756년 이전임을 알 수 있다. This paper respectively explore Qu Fu's ChuCiXinZhu(楚辭新註) propagation situation in South Korea from the comments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collection and Korea University collection, published features and literature value of the extant collection version of China and South Korea of Qianlong Wu Wu annual, and the late Joseon Dynasty scholar Lee Jonghwi’s collection of ChuCiXinZhu(楚辭新註). Through the research, the author thinks that the National Library of China’s collection of ChuCiXinZhu(楚辭新註) ShouYeMenRenTongZiBen(受業門人同梓本) should be the first published version. The first published version and the collection of Korea University is the good version of ChuCiXinZhu(楚辭新註) of Qianlong published version in 1738; Juyi Tangben(居易堂本) is the bad version. Seoul National University collection is another version; and there is no this collection in China. The publishing period should be later than the National Library of China’s collection and Ruoshui Caotangben(弱水草堂本). In addition, according to Lee Jonghwi TiChuCiXin JiZhuHou(題楚詞新集註後) can speculate that the earliest introduction time of Qu Fu's ChuCiXinZhu(楚辭新註) of Joseon Dynasty should be before 1756.

      • KCI등재

        《楚辭章句》清初溪香館刻本補正

        가첩,천금매 한국중국문화학회 2014 中國學論叢 Vol.42 No.-

        청초 계향관(溪香館)각본 《초사장구(楚辭章句)》에 대한 소개는 최부장(崔富章)의 저술《초사서목오종속편(楚辭書目五種續編)》과 《초사서록해제(楚辭書錄解題)》에 가장 처음으로 해제가 기록되어 있다. 그 후로 많은 연구자들이 그의 해제는 그대로 인용하였으나 그 해제는 정확하지 않은 점도 있고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점도 있다. 그가 해제에서 출판자라고 지적한 엄선생(嚴先生)이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낸 학자가 없다. 이에 본고는 엄선생의 정체를 밝혀내고, 또 계향관각본이 조선에 전파된 상황을 고찰해 보았다. 일련의 고증을 거쳐 필자는 청초 계향관각본 《초사장구》의 출판자 엄선생은 바로 노지희(盧之頤)의 선생인 명말청초 항주의 유명한 유학자 엄무순(嚴武順) 이라는 것을 밝혀내었다. 그리고 이 청초 계향관 각본《초사장구》는 현재 북경 탁덕국제경매회사에 소장되어 있는데 여기에 계향관 각본의 장정 양식도 있고 조선인 이관명(李觀命)의 장서인도 찍혀있고 또 안정복(安鼎福)의 《군서병문(群書并文)》에 서문이 초록되어 있는 것 등의 내용을 통해 이 계향관각본은 18세기에 이미 조선에 전파되어 조선 사대부들에게 읽혀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본고는 초사가 조선에 전파되고 유통되는 과정에 대한 연구의 일환으로 본고를 작성하였는데, 향후 이와 관련된 연구는 계속 진행될 것이며 더욱 심도 있는 연구로 나아갈 것이다.

      • KCI등재
      • KCI등재

        朝鮮刊 『選賦抄評注解刪補』引 『楚辭』 各篇之考實

        賈捷 열상고전연구회 2016 열상고전연구 Vol.54 No.-

        조선시기에 유통된 『선부초평주해산보(選賦抄評註解刪補)』는 필사본, 관판본, 방각본 세 종류가 있다. 『선부초평주해산보』는 필사본이 먼저 유통되었다가 지방 관아에서 목판본으로 간행하였고, 후에 또 방각본이 간행되면서 내용의 증보가 발생하였다. 『선부초평주해산보』는 『문선』 중의 부(賦) 작품들을 위주로 선별하여 수록하였고 『문선』 외에 기타 부 작품들도 추가하였다. 이 책의 관은본은 『초사(楚辭)』속의 「이소경(離騷經)」 한 편만을 수록하였고, 방각본에는 「이소경(離騷經)」 외에 또 『초사』속의 「구가(九歌)」, 「구장(九章)」, 「천문(天問)」을 더 추가하였다. 이로부터 『선부초평주해산보』는 비록 직접 『초사』를 저본으로 간행한 것은 아니지만 모두 『초사』속의 「이소경」, 「구가」, 「구장」, 「천문」을 부 작품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초사』 작품의 주해(注解)도 주희의 『초사집주(楚辭集注)』를 바탕으로 주석하였는데 조선 시기에 복각한 주희 『초사집주』양상림(楊上林) 간본을 저본으로 하여 수정하였을 것으로 본다. 『선부초평주해산보』의 주해에는 정확하고 합리적인 산삭도 있지만, 잘못된 삭감도 있다. 관판본 속의 「이소경」 주석에는 오류가 비교적 적고, 방각본 속의 「구가」, 「구장」, 「천문」의 주석에는 상대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많다. 그 외에 방각본의 「구가」, 「구장」, 「천문」 각 편은 많은 부분을 삭감하고 교감과 주음을 하였는데, 관판본 속의 「이소경」에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조선시기에 간행한 『선부초평주해산보』간본은 조선시기의 『초사』의 「이소경」, 「구가」, 「구장」, 「천문」의 수용과 주희의 집주를 높이 평가하는 양상을 연구하는 면에서 매우 중요한 문헌적 가치가 있다. Xuanfu Chaoping Pizhu Shanbu(Deleting and Adding Commentary of Selected Works) which was circulated in Chosun era included three versions, namely written edition, offical edition and folk printed edition. This was a process of recarving, deleting and adding up for various versions, ranging from being written by hands, locally printed in official houses to being printed in the folk houses. Xuanfu Chaoping Pizhu Shanbu, mainly on fu (descriptive prose interspersed with verse) from Wenxuan (selected proses), added other proses outside Wenxuan. The official edition only selected one prose, namly Lisao Jing from Chuci, while the folk house printed edition added Jiuge Jiuzhang, and Tianwen from Chuci. The version of Xuanfu(Selected Works)was not the same as Chuci,but both official and folk printed versions identifies Lisao Jing, Jiuge, Jiuzhang, Tianwen as a piece of fu (descriptive prose interspersed with verse). Besides, Xuanfu(Selected Works), whose explanatory notes were completely based on Zhuxi’s Chuci Jizhu, was likely to be deleted and added up according to Yang Shanglin’s Chuci Jizhu reprinted in Chosun era. The explanatory notes of various chapters of Chuci in Xuanfu Chaoping Pizhu Shanbu was reasonably deleted and changed, sometimes mistakenly removed. However, compared with Jiuge, Jiuzhang and Tianwen of folk printed edition, Lisao Jing of official edition contained much less commentary errors. In addition, Lisao Jing of official edition was not deleted, collated and phonetically notated in such a large quantity in every chapter as Chuci of folk printed edition. Therefore, Xuanfu Chaoping Pizhu Shanbu had important literature value not only in exploring the acceptance of Lisao Jing, Jiuge, Jiuzhang and Tianwen in Chosun era, but also in canonizing Zhuxi’s annotation.

      • KCI등재

        한국문집 중의 초사 서발문에 대한 고찰

        가첩 성신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4 人文科學硏究 Vol.32 No.-

        본고는 한국문집속의 10명의 문인들이 지은 13편의 초사 관련 서발문에 대한 고찰을 통해 한국에서의 한국에서의 초사 판본의 전파와 한국의 초사 연구 양상을 연구하였다. 한국 문집 속의 이 13편 서발문은 모두 한국과 중국 역사에서 초사 판본의 전파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증거이다. 초사 서발문에서 언급되었던 초사 판본은 현재 중국 판본의 『장번시녀사해례초사(莊□詩女士楷□楚辭)』만 남아있고, 기타 판본은 유실되어 진일보 탐색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문집속에 수록된 서발문에 초사 판본의 전파, 초사 문학 평점, 초사 주석본 품평 등 여러 측면의 내용을 통해 한중 초사 판본의 전파 양상과 한국 문인들의 초사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다. 우선 한국에 『초사(楚辭)』 필사본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李□命의 『楚辭』□本, 金氏의 『楚詞』□本, 申光裕와 任允摯 堂의 『楚辭』合□本, 童漢의 『楚辭抄』 등이다. 동시에 우리는 李種徽의 「題楚詞新集註後」에 근거하여 李氏가 수장했던 』楚辭新注』판본이 건륭 3년(1738)본이며 한국에 유입된 시간은 1756년 이전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판본이 乾隆三年(1738)原刊本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증 이 필요하다. 동시에 서울대학교와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된 屈復의 『楚辭新註』는 중국의 『楚辭新註』판본의 중요한 보완이다. 이밖에 金澤榮이 『毗陵莊□詩女士楷□楚辭』에 대해 지은 발문은 한중 문인 사이의 교유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毗陵莊□詩女士楷□楚辭』는 중국 초사법서 (楚辭法書)의 중요한 판본이므로 마땅히 중국초사법서 작품의 해제에 편 입되어야 한다. 다음 한국 고대 문인들이 초사를 평점할 때, 굴원 및 주희의 관점에 대한 평론은 중국 문인들의 논점과 서로 맞물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시에 한국문집의 초사 서발문에서 申維翰은 “虛實相生”, 黃景源은 “六義”, 司空檍은 “哀而不怨,深得風雅之體”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楚辭』에문학적인 비평을 진행하였고 이는 모두 한국 문인들이 초사에 대한 최고의 평가라 볼 수 있다. 그중 申維翰의 “虛實相生”의 관점은 論騷史에 있어 그야말로 시초라 할 수 있다. 그다음 한국 고대 문인들이 주희의 『楚辭集注』을 좋아하고 존중하였음을 알 수 있었고 동시에 한국 고대 문인들은 『楚辭章句』, 『楚辭補注』, 『楚辭新註』 3 종의 주석본에 대해서도 품평을 하고 존숭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논의들을 종합하여 볼 때, 한국 문집 속의 초사 관련 서발문은 초사 판본의 전파, 초사 문학 평점, 초사 주석본의 품평 등 중요한 내용을 반영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연구는 가치가 있다. 그러나 필자는 단지 『韓國歷代文集叢書』, 『韓國文集叢刊』을 중심으로 고찰하였기에 연구 대상의 자료가 제한적인 점이 있다. 필자는 향후 관련 자료를 더욱 많이 수집하여 진일보 심도있는 논문을 계속 진행할 계획이다.

      • KCI등재
      • 关于《楚辞》注本与著者的研究

        賈捷(JiaJie) 고려대학교 한자한문연구소 2012 동아한학연구 Vol.- No.8

        최근 50년 동안《楚辭》주석본과 주석가에 관한 연구가 한창 진행 중에 있다. 오늘날《楚辭》주석본과 주석가 연구 간의 불균형 및 편중성을 인식하며, 본고에서는 朱季海의《楚辭解故》를 중심으로, 주석본 연구, 저자 연구, 史·考·論을 결합한 연구방식을 적용하여 朱季海 선생의 일생과 그의《楚辭》주석인 《楚辭解故》를 전면적·체계적으로 분석함으로써 朱氏의 학문방법론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첫째, 미비한 문제들을 가려내어 楚語·楚事·故書 등을 考?하여 결정하였다. 둘째, 王逸·洪興祖의 학설을 중시하되 다른 名家의 학설도 아울러 논의하였다. 셋째, 내적 증거를 찾아 작품을 변별하였다. 넷째,《楚辭》연구에 다양한 학문 지식과 연구 방법론을 적용하여, 오랜 학문에서 참신한 견해를 도출해내었다. 朱季海의《楚辭解故》가 지닌 이러한 考證的 측면에 관해서는 아직《초사》학계에서 논의되지 않았기에, 본고에서는 토대적 성격의 개별 연구를 통해, 《초사》주석가 및 주석본에 대한 연구 가치를 제고하고 나아가 《초사》학 연구에 현존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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