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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本書紀』の「不明瞭な物事」に関する分註

        柳玟和(민화)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06 한국민족문화 Vol.28 No.-

        원래 分註는 본문의 아래에 덧 부쳐져서 본문의 이설이나 보조설명 등을 제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史料와 편자에 따라서 그 기능은 다양하여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 日木書紀의 分註는 그 형식이 매우 복잡하며 註記형식에 있어서 편찬에 참조한 서명을 명확하게 제시한 경우도 있지만 불명확한 서명 또는 아무런 서명도 제시하지 않고 註記하는 경우도 보인다. 따라서 참조한 史料에 있었던 註인지 편자의 註인지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더러 있다. 편자의 註에는 주관적인 사고가 개입된 내용이 제시되기도 하여 日本書紀 편찬 당시의 記述과정에 나타난 문제점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으며, 편찬에 사용된 史料의 성격과 함께 分註를 어떻게 이용하여 본문내용의 판단을 제시하려고 하였는가를 알 수 있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不知」ㆍ「未詳」등과 같이 본문의 불명확한 부분을 끌어내어 따로 제시한 兩註記의 특징과 차이를 분석하여 日木書紀 편찬과정에 이용된 史料의 문제점과 史料를 취급하는데 있어서 발생한 편자 자신의 思考에 관한 문제 등을 고찰하였다. 먼저 「不知」ㆍ「未詳」는 出現券과 引用記事의 史料的 성격에 따른 편재가 보이는데, 「不知」는 9권과 19권에 「未詳」는 10권부터 21권에 나타나며 兩註記 모두 한국관련 記事에 집중 사용되고 있다. 「不知」는 일본 記事에서는 지명표기에 단독 예가 보이는데 편자가 그 지명을 「不知」라고 추가 기재한 까닭은 日本書紀 편찬 당시의 寺院의 명칭이 바뀌어 옛 자료의 이름과 연관시킬 수 없었기 때문으로 추정하였다. 그러나 한국관련 記事에서는 본문 記事에 보이는 人物에 불어 註記되는 형식이 대부분으로 이들 예는 그 인물의 혈족관계, 계보 선조 등에 관한 정보가 참조한 史料만으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어서 그것에 대한 의문점을 「不知」라는, 註記 형식으로 제시한 것이 아닐까하고 추정하였다. 즉 한국 關連史料를 보는 시각이 일본 史料를 보는 시각과 조금 차이가 있었기 때문으로 판단되어지며, 이러한 註記가 집중된 권의 편자는 한국관련 記事에 등장하는 人物이 어떠한 사람이었는가를 항상 의식하면서 본문내용을 記述해 갔던 것으로 여겨진다. 「不知」는 모든 용례가 「不知~」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不知」라고 기재한 까닭을 제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未詳」와는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未詳」註記는 지명에 제시된 경우는 보이지 않고 혈족관계, 인명, 어휘 내용적 문제의 불명확 부분을 끌어 分註에 제시하고 있는데 일본 記事에는 혈족관계, 인명, 어휘 내용에 관한 부분에 註記가 보이는데 용례가 많지는 않다. 특징으로는 「未詳」의 까닭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으며 편찬에 참조한 史料의 부족과 각 史料간의 異同으로 인하여 편자가 그것을 판단하여 결정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던 부분에 註記한 경우가 대부분으로 추정되었다. 한국관련 記事에서는 아무 설명 없이 간략하게「未詳」이라고만 제시한 경우와 긴 문장의 설명 또는 인용을 하여 「未詳」의 까닭을 제시한 후에 註記하는 형식도 보인다. 「未詳」註記는 주로 혈족관계, 지명, 어휘에 제시되어있는데 그 중에서도 인명에 집중되어 있으며 내용에 관한 부분의 추가 설명에는 보이지 않는다. 또한 간략하게 인명표기에 있어서는 分註로 제시된 百濟史書아래에 붙어서 「발음이나 문자표기가 잘못되어 명확하지 않다, 未詳이다」라고 제시한 경우가 여럿 보이는데, 이것으로부터 「未詳」註記한 이유를 추청 한다면 日木書紀 편찬에 참조한 百濟史書의 인명표기가 모두 普借表記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본관련 고유명중에는 발음과 표기가 잘못되어 본래의 이름을 추정하는데 어려운 부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어지며, 참조한 자료의 제한된 틀에서 그것을 판단하여 결정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不知」와 같이 본문내용의 문제보다는 등장人物의 혈속 관계, 인명 등에 이러한 불명확한 註가 많이 보이는 것은, 편자가 한국관련史料를 취급함에 있어서 등장人物에 대하여 주의하여 항상 의식한 부분이 「不知」ㆍ「未詳」로 註記된 경우도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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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迷」․「謎」エ列甲乙の混用仮名について

        柳玟和(민화, Yu, Min-Hwa) 일본어문학회 2009 일본어문학 Vol.46 No.-

        「迷」·「謎」は廣韻では、いずれも外轉第十三開の四等韻に属しており、上古音は[miei]と推定されているが、両字は日本の万葉仮名資料ではエ列甲乙の混用が見える仮名である。 「迷」·「謎」の仮名例は、万葉集の「迷」の独例(メ乙)を除いては全用例が日本書紀中に見られ、「迷」はメの甲類と乙類に、「謎」はメとべの甲類とべの乙類に混用されている。 本稿では「迷」·「謎」甲乙混用の原因を考察するために、日本書紀におけるエ列甲乙仮名の廣韻に示されている漢字音と巻別使用状況を調べてみた。その結果、日本書紀のα群ではメ、べの甲類は[-iei]、乙類は[-ɐi]が中心母音として用いられているが、β群はα群に比べ、メ、べ甲乙類仮名に多くの母音が用いられており、特に、α群の甲類に用いられた中心母音である[-iei]が、β群では甲乙両類の仮名に用いられており、母音[-iei]をもつ「迷」·「謎」が、β群の乙類に属していることが観察できた。 従来、「迷」·「謎」の甲乙混用に関して、先行研究では中国側における漢字音の問題と日本語の三音節の人名を二字の漢字に当てたための音韻の相違などの見解が出されていたが、本稿の考察から「迷」·「謎」の甲乙混用は、日本書紀の二区分からみればβ群による誤用であると解釈できよ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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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本書紀』における任那人名と官職名考察

        柳玟和(민화) 동북아시아문화학회 2017 동북아 문화연구 Vol.1 No.53

        This paper studies how the names, job titles, district titles, and rank titles of the Mimana people were arranged and used in certain situations in Nihonshoki to investigate the characteristics of the names and job titles of the subjects of Mimana. The Mimana people"s names and job titles can be seen in Volume 5, 6, 9, 15, 17, 19, and 22 of Nihonshoki, which consists of 30 volumes in total. The folklores recorded in Volume 5 and 6 show names of the Mimana people which are interpreted from Japanese to Korean; and in Volume 9-19, there are several Japanese style names and also some people recorded as Omi (“臣”), Shisha (“使者”), or Kanko (“韓子”) of the Mimana Nihonfu replacing their names. Furthermore, the documents exhibit “知”, “智”, “遅”, “至”, “支”, and “岐”, those mainly used as 尊称末尾字 (an affix used in names to show respect) of the Silla people"s names, and also “奚” and “甲背”, which was used as 末尾 (a suffix) in the names of the Baekje people. It can be deduced, therefore, that the people"s names of Mimana had similarity to that of Silla and Baekje. “王”, “王子”, “王児”, “王妹”, and “日本府臣” seem to be used in very limited cases for the job titles of the Mimana community. Additionally, its district titles can be seen in Volume 22: “㖨部” and “習部”—both borrowed from Silla"s district titles. As for the rank titles, the following words are used: “干岐” and “旱岐” in Volume 6-17; “旱岐”, “次旱岐”, “下旱岐”, “上首位”, and “二首位” in Volume 19; “大舍” and "達率" in Volume 22. Mimana basically made use of the official rank systems of Silla and Baekje for its rank titles, rather than organizing its own independent system. Until Volume 19, the names of the Mimana people are written in the form of the following order: (job title) + name + rank title . However, in Volume 19, the name forms use two types of arrangement: name + rank title, and rank title + name. These forms again changes in Volume 22, showing district title + rank title + name in order. This kind of arrangement is similar to how Silla changed its way of documenting n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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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本書紀に現れる'テヒト'について

        민화(柳玟和,Yu, Min-Hwa) 일본어문학회 2010 일본어문학 Vol.51 No.-

        日本書紀の古写本にはテヒトの語彙が見られ、巻14、15、25、26 に散在している。テヒトは巻14では才伎に西漢、手末、今來が上接 した語形であらわれるが、それ以降の巻では巧手者、才伎、才伎者は単 独形として用いられることから、テヒトの表記の特徴は巻14と、以降の 巻に分けることができる。日本語的な用語のテヒトが手人と書かれず、才伎、才伎者、巧手者のような漢語で表記されているのは、日本書 紀が純粋漢文体を志向したために、漢語表記を原則としたと思われる。こ れについては同時期の文字資料では手人は見えるが、才伎、才伎者、巧手者が確認されないからである。 テヒトの意味であるが、巻14では手末才伎が諸技術者や専門家を 総称する普通名詞として使われていたり、織物などの手工業生産物と関 連のある職人を指したりしており、同一表記においても職種において は細部的な違いが見られる。他に手末才伎と才伎も記事内容からは、意味領域において明確な違いは現れない。ただし、テヒトが帰化 系の専門職の技術者や技術集団を指していることには共通性があるとい えよ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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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鮮時報』의 문자표기 고찰

        민화 한국일본어교육학회 2023 日本語敎育 Vol.- No.103

        『朝鮮時報』의 문자자료로서의 성격을 고찰하기 위하여 가나표기, 한자와 한자어 표기, 한국어 어휘의 사용상황에 대해 살펴보았다. 가나 표기, 한자와 한자어 표기 있어서 다양한 양상이 보였다. 『朝鮮時報』가 창간된 19세기 후반은 문자표기에 있어서 혼란과 변화가 있었던 시기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언문일치 운동과 함께 학교 교육이 시작되었지만 「歴史的仮名遣い」를 계승한 표기법은 발음과의 불일치로 인하여 혼란이 있었고, 신문물의 도입과 함께 들어온 다량의 외래어가 일본어에 융화되어가는 과정 속에 표기의 혼란은 더욱 더 가중되었던 시기였다. 『朝鮮時報』에서 보이는 문자 표기의 사용상황이 당시의 일본 내에서 쓰여 진 문자자료와 상이하다고 단정 짓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朝鮮時報』는 문화와 언어를 달리하는 부산지역에서 약 46년간 간행된 일본어 신문이며, 일본어로 표기하기 어려운 한국어 어휘가 한자, 또는 가나로 음역되어 사용된 예가 보인다. 한자어 사용에 있어서도 다양한 표기 형태가 존재하는데,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금후 면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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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本書記」分註の性格と區分いについ : 朝鮮關係記事を含む分註との比較を中心として

        柳玟和 대한일어일문학회 2004 일어일문학 Vol.22 No.-

        本稿は『日本書紀』の分註を本文との關連性によって分析し, 各卷の分註の特徵およひ區分について考察したものである. 特に朝鮮關係記事を含む分註との比較を中心に檢討し, 分註が『日本書記』中に占める役割と共に『日本書記』區分論について再考した. 考察の結果, 固有名の異名や續柄を記した分註は, 卷1から卷7に多用されており, これらの卷では固有名の註記に力を人れていたことが考えられ, これは史料によって固有名が統一されていなかったり, 系圖の異なるものがあったためと思われゐ. また, 本文內容の異說を記した分註は卷2, 卷4かう9, 卷2カら18, 卷22, 卷24カら27に部分的に偏在している. 本文內容の補足說明を記した分註はほぼ全卷に亘って多用されている. 中でも券14から券27(一部の券を除く)に偏纂者の考えや疑問を下した註が多くみえることから, 券14からは編纂に利用される關聯史料が增えていたことが考えられる. 固有名の補足說明や異說は「亦名·亦曰·又云·更名」のように註記するのが基本的な刑とみらなるが、同じ目的の場合, 內容の補足說明や異說に用いられる「或本·別本_ のような形式もあるニとから, 註記形式はその內容や性格を嚴格に區別して使っているようには思われない. 朝鮮關係の分註の特徵は固有名の異說を記したものがみえないことである. これは朝鮮史料は, すでに整理されていたためと考えられる. 從來『日本書紀』區分と, 朝鮮史料の區分が少少異をるのは19以前百濟史書との關聯性, 卷20から23までの史料欠落などから生じた問題と思われ、卷24から27, 卷29·30の區分は『日本書紀』の區分論と全く異なるものではない。本稿空、朝鮮關係記事の分註に引かれた書名を明記しない分註の引用形式は各卷所引の日本の分註に準じており, 朝鮮關係記事の分註も日本の分註の引用形式の同樣に各の卷同一編纂者によって記載されていったことが推定さ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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