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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지식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김옥균 - 후쿠자와 유키치의 <시사신보>를 중심으로-

        윤상현 동아시아고대학회 2020 동아시아고대학 Vol.0 No.57

        본고는 일본의 대표적인 지식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의 <시사신보(時事新報)>(1882-1936)를 중심으로 갑신정변 전후로 한 김옥균의 행적을 살펴봄으로 써, 당시 일본인이 인식한 김옥균의 위상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이는 신문이란 매 스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재현된 김옥균과 그 당시 조선을 둘러싼 국제 정세가 일본 민중에게 어떻게 전달되어, 인식 및 비판해 왔는지를 재검토하는 일이라 하겠다. 즉 후쿠자와가 <시사신보> 논설을 통해 언급된 김옥균의 위상은, 1차적으로 1884년 12월 4일 갑신정변 실패 경과를 보도하여 청나라로부터의 자주독립과 부국 강병을 주장한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파를 소개하면서, 2차적으로는 당시 서양문명 의 유입과 제국주의라는 긴박한 국제정세 속에서 조선과 청나라의 유교주의를 비 문명으로 규정 및 이러한 비문명에서 문명세계로 탈아(脫亜)해야 한다고 하며 국민의 통합과 단결을 주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김옥균이 망명 이후 약 10 여 년 동안 오사카 사건이나 오가사와라 섬 유배 등 그의 행적을 보도함으로써 청 나라와 조선에 있어서 김옥균의 반향을 환기시키거나 혹은 와다 엔지로나 스나가 하지메와 같은 수많은 일본 청년지사들에게 선망과 존경의 대상으로 반향을 불러 일으키는 동시에, 한편으로 청나라와 조선에 대한 소극적인 일본정부를 비판하는 자세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나아가 1894년 3월 김옥균이 상하이에서 홍종우에게 암살된 소식과 일본 정치계 인사들 및 국민들의 애도를 표하는 보도는 김옥균의 위상은 물론이고 그의 사상과 인간적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김옥 균 유해 처우 방식을 둘러싼 청나라와 조선의 불합리성을 비난하며, 당시 일본정 부의 청나라와 조선에 대한 침략확장을 위한 국민 여론을 형성시키고자 하는 사상 적,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고자 한 면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시사신보>에 나타난 김옥균, 다시 말해 후쿠자와 유키치가 바 라본 김옥균은, 비록 후쿠자와가 김옥균를 통해서 당시 청나라와 조선 여론에 대 한 국민들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 및 통일시켜, 마침내 일본정부가 1894년 7월 청일 전쟁을 선포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하더라도, 조선의 개화사상가이면서도 동시에 김옥균이 주장했던 조선, 일본, 중국이 힘을 합해 서구 열강을 물리치자는 삼화주 의(三和主義)는 동양 삼국을 문명 세계로 이끌고자 한 근대 사상가라는 점에서 후 쿠자와와 동지적 유대감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김옥균의 위상과 시대인식은 당시 일본 대중들에게도 전달되어 인식되었다고 하겠다. This thesis considers Kim Ok-Kyun’s traces around the Gapsin Coup focusing on Ziji Shinpou by Fukuzawa Yukichi. This work reveals Kim’s status recognized by the Japanese at that time, and reviews the recognition and comments on the issue how Kim and international situation surrounding Chosun were reported, represented and criticized through mass media like newspapers in Japan. Fukuzawa Yukichi introduced Kim Ok Kyun and the Enlightenment Party in the editorial of Ziji Shinpou, mentioning the process of the Gapsin Coup and its failure in 1884. Fukuzawa criticized Kim because Kim insisted Independence from the Qing Dynasty in China. Fukuzawa regarded Confucianism of Chosun and the Qing Dynasty as uncivilization considering the international situation at that time. The situation had turned urgent under the European civilization and Imperialism. Fukuzawa suggested Japan should escape from Asia and enter the Europe, and demanded the integration and unity of the Japanese. Also, Fukuzawa reported Kim’s traces around the Osaka incident or banishment to the island of Ogasawara for 10 years since Kim refuged in Japan, which aroused the sensation about Kim both in Chosun and China. At the same time, his writing showed the criticism on the Japanese government for the reason of passive position toward both country. Besides, the news that Kim was assassinated by Hong Jong-Wo in Shanghai in 1894 and the report about the condolence Japanese politicians and people expressed clearly showed Kim’s thought and humane qualities as well as Kim’s status. On the other hand, however, Fukuzawa criticized irrationality of both countries over the treatment after Kim died, which offered the theoretical grounds on which Japan invaded into them, and contributed to form this public opinion. As a result, Japan started the Sino-Japanese War in 1894. Kim Ok-Kyun’s thought and awareness of the times, however, influenced on the Japanese deeply. Especially, Kim’s Sanwa-shugi(三 和主義), the argument that three countries of Chousun, Japan, and China should cooperate and defeat the Western powers, definitely represent Kim as the modern thinker who intended to lead for Oriental three countries toward civilization.

      • KCI등재

        김옥균의 죽음을 둘러싼 역사적 재해석

        윤상현 인문사회 21 2022 인문사회 21 Vol.13 No.2

        본 연구의 목적은 현대 대중문화에 재현되는 김옥균과 갑신정변의 역사담론이 각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형되고, 재생산되어 가는지를 재조명하는데 있다. 그 예로 『김옥균을 죽여라』는 1924년 일제 식민지 조선 경성을 작품 배경으로 하여, 주인공 류경호가 ‘홍종우의 책’을 둘러싸고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즉 김옥균이 죽음을 맞이한 지 1924년 시점에서, 과연 홍종우가 김옥균을 암살한 진범인지하는 진위 문제는 지금까지 조선과 일본정부 간 밝혀내지 못한 진실들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워 재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김옥균의 행적과 죽음은 과거 조선 및 일본과 중국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현재 대중들에게 역사에 대한 반성과 비판은 물론, 새로운 역사인식의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 그의 위상과 의의는 앞으로도 유효하다고 본다.

      • KCI등재

        문학적 담론을 통한 무사도의 근대적 재구성 : 무사도의 변용 양상을 중심으로

        윤상현 韓國外國語大學校 外國學綜合硏究센터 日本硏究所 2012 日本硏究 Vol.0 No.52

        本稿では武士道の変容の様相を近代という談論の中で、どのように変容し続けていくのかについて考察してみた。すなわち、近代文学の中に現われた武士道を再評価し、今まで皮相的·一律的に受け入れてきた武士道を、時代の流れによって再定立しようと試みた。 まず、明治時代における武士道は當時日本をめぐって国外的な帝国主義による西欧勢力の侵略や国内的な西欧文化の受容による社会混乱と不安を、過去武士道の忠の思想で新しい時代を対応しようとした。そして、大正時代にいたっては固有の伝統的な武士道が近代時期に輸入されたキリスト教によって混種的な武士道で再解釈されており、これは結果的に當時新しく派生された倫理的·社会的な行動規範の中で西欧文明の無批判的に受容したと言えよう。また、日本戦後における武士道は戦争や外来思想の輸入にナショナリズムと美的な価値の表象である文化が結び付いて再創出されたが、一方、敗戦以後の文学作品では国民の国家に対する献身という偏狭した愛国心、ショービニズムの形で表出されているのがうかがえる。 このように武士道は決められた形態ではなく、各時代に合わせて変容され、再構成されていくのがわかる。それゆえに、武士道の変容の様相は近代日本を理解する一つのキーワードであり、同時に現在日本を理解するための一つの方法論であると言えるだろう。ひいては、武士道が現代日本の社会において、どのように再現しているのかを文化的な現象を通して検討するのも意義があるのではないかと思われる。 つまり、現代社会における武士道は日本人の行動規範に内在しているのは勿論、文化的な諸般現象、例えば、文学や映画、漫画、ゲームのキャラクターに変容されており、特に文学的な談論での主人公の死は国家(天皇)ではなく、個人の名誉や義理に変わりながら再現し続いている。従って、このような武士道の変容の様相についての考察は、単に過去の専有物としての武士道ではなく、現代日本の文化現象を理解し、究明することに必ず必要であると言え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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