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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치욱,현진해 대한내과학회 1987 대한내과학회지 Vol.32 No.3
Examination of the colon with a flexible fiberoptic colonoscope has added a new dimension in the diagnosis and treatment of many colonic disorders. In this report, we analysed the clinical findings of 3, 116 cases (3,502 times) who performed total colonscopic examination from July, 1980 to August, 1986. The results were followings; 1) The most common age groups were 30`s and 40`s and they were 48,4% of total patients, The sex ratio of male to female was 1.2:1. 2) The purpose of toal colonoscopic examinations was diagnostic in 3,170 cases (90.5%) and therapeutic in 332 cases (9.5%) and was urgent in 28 cases (0.8%). 3) The patients chief complaints were abdomonal pain (48%), diarrhea (29%), bloody stool (14.4%), and bowel habit change (11.3%) in the order. 4) Among of the 3,116 cases of total colonoscopic findings, colitis was seen in 384 cases (12.3%), hemorrhoid in 310 cases (9.9%), polyp in 303 cases (9.7%) and colon cancer in 152 cases (4.8%) and normal in 1,860 cases (59.7%). 5) The success rate of total colonoscopy was 97% and failure in 3%. The causes of the failure of toal colonscopic examination were pain in 56 cases (53%) and poor preparation in 40 cases (38.5%). 6) There was minor bleeding in 2 cases (0.06%) following total colonoscopic examination.
송치욱 경상국립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2022 남명학연구 Vol.74 No.-
동계 정온(桐溪 鄭蘊, 1569~1641)은 왜란과 호란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겪었고, 서로 상반된 정권인 광해군과 인조 집권기에 관료로 활동한 유학자다. 그리고 서로간의 갈등이 있었던 남명학파와 퇴계학파를 출입한 문인이기도 했다. 이 논문은 이런 격변기를 살아온 정온의 일관된 정치사상의 핵심을 ‘義’라고 판단하고 그 정치사상적 의미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그동안 동계의 정치활동과 척화에 대한 연구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왔으나 그의 의리론이 가진 정치사상적 의미에 대해서 조명하는 노력을 부족했다. 이 글은 그가 節義나 義理로 알려진 만큼 그의 사상에 대한 검토를 시도한 것이다. 정온은 국가절명의 순간까지 척화를 주장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서로 상반된 광해군 정권과 인조 정권에 걸쳐 관직생활을 했지만 그는 왕실의 혈육간의 관계를 중요시 하는 전은론과 국가위기 상황에서 척화를 주장하는 것은 일관된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점은 광해군의 폐모살제를 비판하고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강조했던 서인들이 정권을 잡자 역모로 왕의 형제를 죽이고 호란을 맞아 명과의 관계를 저버린 것과는 달랐다. 정온은 효를 중심으로 한 인륜이 국가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파악했으며, 이것이 국가정책의 가장 중요한 기준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점은 군주의 권력을 중심으한 자의적 정치의 요소를 배격하려 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정온은 현실 정치적 맥락의 의리보다는 三剛과 같은 인륜을 근거로 한 의리를 실현하는 것이 국가의 장기적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점이 전은론과 척화론으로 드러났다.
물러남[處]의 정치학 : 儒者와 국가권력, 그 적절한 距離의 모색 - 조선 중기 南冥 曺植의 出處를 중심으로 -
송치욱 경상국립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2018 남명학연구 Vol.60 No.-
Chulcheo(出處, working for state or living in seclusion) is the most important virtue required by scholars in Confucianism. And many scholars have tried to practice it. Typically, Nammyong Jo Shik(南冥 曺植) saw chulcheo(出處) as a great integrity of junzi (君子, the Great Man), and practiced Cheosa (處士: not serving the power) for his whole life. However, the problem was that Confucian scholars like Toegye negatively thought Nammyoung, who continuously refused Government’s appeals of entering government service. They diminished the meaning of Chulcheo(出處), and misunderstood it as a result of his personal character, not as a result of his academic achievement. In addition, even when it came to positive evaluation, they tended to emphasize personal meanings only such as integrity and to be passive in interpreting political meanings. This study is aimed at more active understanding about Nammyoung’s life as Cheosa(處士) and his ideology in this awareness of problems. For this purpose, this study focuses on a ‘distance’ from the state power that Nammyoung’s ‘Cheo (namely, ‘Resign’) has. Confucianism was positive about real politics and emphasized not only ‘Chul(出, working for state)’ but also ‘Cheo(處, living in seclusion or resign).’ This ‘Cheo(處)’ was also a factor creating confinement and tension by keeping the Confucians at a proper distance from the political power of reality. Nammyoung understood this 'Politics of Resign' well and it was intimately involved in his life as Cheosa(處士) and his ideology as Chulcheo(出處). Thus, Nammyoung’s Cheo(處) was not the result of individual characteristic, but meant ‘boundary’, ‘criticism’ and ‘resistance’ against the state power. Furthermore, it also raised the issue of changing the 'violent state power' into the ‘public state power’. Nammyoung's criticism against the intellectuals at that time - ‘know how to move forward, but don’t know how to retreat’- and the ‘politics of retreat’ he practiced can be handed down to the spirit to criticize and reject unjust power in modern political reality. Furthermore, it can be helpful in developing modern democracy by making the character of power more public. 出處는 儒學에서 선비들에게 요구한 중요한 덕목이며, 많은 유학자들이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대표적으로 남명 조식은 출처를 君子의 큰 절조로 보았으며, 평생 ‘處士’로 실천했다. 그런데 문제는 조정의 계속된 출사요구를 거부한 남명을 퇴계와 같은 당대의 유학자들은 부정적으로 보아 그 의미를 축소하거나, 학문적 體認의 결과가 아닌 개인적 기질의 결과로 이해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에도 ‘기절’이나 ‘기상’, ‘절개’등 개인적 차원의 의미만을 강조하여, ‘정치를 외면하지 않았다’며 정치적 의미에 대해선 소극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남명의 처사적 삶과 사상을 보다 적극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하여 남명의 ‘처’ 즉 ‘물러남’이 가지는 국가권력과의 ‘거리감’에 주목한다. 유학은 현실정치를 긍정하여 ‘나아가감(出)’을 강조했지만, ‘處-물러남’ 또한 강조했다. 이러한 ‘처’는 유학자들이 현실의 정치권력과 적절한 거리를 둠으로써 견제와 긴장을 만들어낸 요소이기도 했다. 남명은 이러한 ‘물러남의 정치학’을 잘 이해했으며, 그의 출처사상과 처사로서의 삶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래서 남명의 處는 개인적 기절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국가권력에 대한 ‘경계’와 ‘비판’ ‘저항’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나아가 ‘폭력적 국가권력’을 ‘공공의 국가권력’으로 변화시키려는 문제제기도 담고 있었다.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날 줄 모른다’는 당대 지식인들에 대한 남명의 비판과 그가 실천한 ‘물러남의 정치학’은 현대의 정치현실에 있어서도 부당한 권력을 비판하고 거부하는 정신으로 계승될 수 있으며, 나아가 권력의 성격을 보다 공적인 것으로 만들어나가 현대의 민주주의 발전에도 도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