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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일(李玄逸)과 정시한(丁時翰)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의 대비적(對比的) 고찰(考察)

        安琉鏡 한국유교학회 2013 유교사상문화연구 Vol.51 No.-

        본문에서는 17세기 퇴계학파의 일원이요 퇴계학파 형성에 首長적 역할을 한 李玄逸(1627~1704)과 丁時翰(1625~1707) 두 사람의 인물성동이론을 비교·고찰함으로써 그 동안 활성화된 기호학파 인물성동이론의 연구에서 상대적으로 약화된 퇴계학파의 인물성동이론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현일과 정시한은 모두 인물성이론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이론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현일은 사람과 사물에 같은 천명이 부여될지라도 사람의 기질은 바르고 사물의 기질은 치우쳤기 때문에 천명을 부여받은 성에도 차이가 없을 수 없다고 보았다. 반면 정시한은 사람과 사물 간에는 기품의 차이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으로 부여받은 리에서부터 본질적 차이가 있다고 보았다. 기품의 차이에 따라 닭에는 우는 리가 있고 개에는 짓는 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부여받을 때 애초에 닭에는 우는 리만 부여되었고 개에는 짓는 리만 부여되었다는 말이다. 정시한의 말에 의하면, 사물의 울거나 짓는 일단의 본연지성은 사람의 인의예지 사덕의 본연지성과 본질적으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현일이 인성과 물성의 차이를 기질적 차이로 이해한 반면, 정시한은 그들의 차이를 애초부터 부여받은 본연지성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본질적 차이로 이해하였다. 이것이 이현일과 정시한의 인물성동이론이 갖는 이론적 차이점으로 확인된다. 在本文比較考察, 17世紀退溪學派的一圓, 在退溪學派之形成做首長的役割, 李玄逸和丁時翰兩個人之人物性同異論, 因而進行了, 自所活性化畿湖學派人物性同異論之硏究, 相對的地, 所弱化對退溪學派之 人物性同異論的硏究. 總之, 李玄逸和丁時翰都是主張了人物性異論. 但在兩個人所主張異論, 能發見所分明差異. 李玄逸不能無看了差異, 雖在人與物賦與同的天命, 人的氣質正, 事物的氣質偏, 所以把天命所賦與之性. 但是丁時翰看了有差異, 在人與物間, 不止氣稟的差異, 更以上因所賦與之理, 有本質的差異. 因氣稟的差異, 唯非是鷄有鳴之理犬有吠之理, 謂有天所賦與之時, 鷄唯賦與鳴之理, 犬唯賦與吠之理. 因丁時翰之言, 事物之鳴吠一段本然之性, 本質地區分了人之仁義禮智四德本然之性. 李玄逸把人性物性的差異, 理解了氣質的差異, 則丁時翰把他們的差異, 當初所賦與本然之性異, 因以理解了本質的差異. 這是李玄逸和丁時翰, 人物性同異論之理論的差異.

      • KCI등재

        갈암<SUP>葛庵</SUP> 이현일<SUP>李玄逸</SUP>과 우담<SUP>愚潭</SUP> 정시한<SUP>丁時翰</SUP>의 사단칠정론 비교고찰

        안유경(安琉鏡) 한국국학진흥원 2018 국학연구 Vol.0 No.36

        본 논문은 갈암(이현일, 1627~1704)과 우담(정시한, 1625~1707)의 사단칠정론을 비교 고찰함으로써 두 사람의 이론적 차이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갈암과 우담은 동시대의 인물로 생몰연대도 거의 일치하는데, 그들의 대표적 저술인 갈암의 「율곡이씨논사단칠정서변栗谷李氏論四端七情書辨」과우담의 「사칠변증四七辨證」은 율곡설을 배척하는데서 출발하여 퇴계설을 옹호하는 것으로 일관한다. 그러나 갈암과 우담은 퇴계학파의 일원으로써 퇴계의 학설을 이론적으로 계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는 분명한 이론적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갈암이 퇴계와 마찬가지로 분별의 논리를 강조하여 사단과 칠정을 소종래에 따른 근원적 차이까지 인정하는 입장에서 사단과 칠정을 리발理發과 기발氣發로 구분하여 해석한다면, 우담은 혼륜과 분별의 관점을 종합하여 혼륜한 일심一心을 전제하고 그 위에서 사단과 칠정을 리발理發과 기발氣發로 구분하여 해석한다. 다시 말하면 갈암이 분별의 논리를 강화하여 퇴계의 호발설을 해석하였다면, 우담은 율곡의 혼륜의 관점을 절충하여 퇴계의 호발설을 재해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In this paper made clear the theoretical differences by comparing the sadanchiljeonglon of the Galam and Wodam. Galam and Woodam are contemporary figures, and they are almost identical to birth and death, their representative writings, “Yulgokllisilonsadanchiljeongshebyun” and “sachilbyunzeung”, starting with the rejection of Yulgok’s theory, Toegye’s theory is consistently supported. But even though Galam and Woodam were members of Toegye school, they succeeded Toegye’s theory in theory. Nevertheless, clear theoretical differences can be identified between the two. Like Toegye, Galam emphasizes the logic of discretion and recognizes the fundamental differences sadanchiljeong, interpret the two separately by dividing Libal and Kibal. Woodam, on the other hand, on the premise of one mind that combines the view of the Honlun and Bunbyul, on top of that are interpreted by dividing Libal and Kibal. In other words, Galam reinforced the logic of discrimination and interpreted Toegye’s theory, on the other side Woodam can be reinterpreting Toegye’s theory as compromising Yulgok’s theory.

      • KCI등재

        이현일의 ‘격물치지’설

        안유경(安琉鏡) 한국동양철학회 2008 동양철학 Vol.0 No.30

        이현일의 격물치지는 대학 에 서술된 ‘致知在格物’ 혹은 ‘物格而後知至’의 내용에 충실하고 있다. 이것은 곧 주자의 격물치지에 대한 철저히 계승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반드시 만물의 理를 궁구한 연후라야 心속에 구비된 衆理 를 밝힐 수 있다는 관점을 견지하였다. 때문에 ‘자기에게 절실한 것’을 먼저 하고 ‘널리 物理를 살피는 것’을 뒤로 해야 한다는 先後本末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한갓 근본에만 힘쓰고 말단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일관되 게 강조하였다. 비록 格物의 목적이 致知에 있을지라도 밖으로의 ‘格物’을 통해서만 안으로의 ‘致知’가 완전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 ‘格物’이란 바로 ‘致知’를 이루기 위한 전제조건임을 알 수 있다. 또한 “格物을 말할 때는 진실로 내가 궁구하여 물리의 극처에 이르는 것을 말하지만, 物格을 말하는데 이르러서는 물리의 극처가 나의 궁구하는 바에 따라 이르지 않음이 없다”는 이황의 설과 마찬가지로, ‘格物’단계에서는 이르는 대상을 나의 마음(心)으로 보아야겠지만, ‘物格’단계에 이르러서는 이르는 대상을 물리(理)로 보아야 한다는 보고 ‘理到說’을 인정하고 있다. 아울러 신익황은 金長生(혹은 이이)의 학설을 인정하는 입장에서 이황의 ‘이도설’이 갖는 논리적 부당성을 제기하자, 이현일은 이이의 학설을 비판하고 상대적으로 이황의 학설을 지지하였다. 즉 이이의 ‘등불비유’가 바깥대상의 고찰과 이해를 강조하는 정주학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본심만을 밝힐 것’을 주장하는 육학 의 뜻이라고 비판하고, ‘물리가 원래 극처에 있다’는 설은 또한 정주학의 ‘천하의 물에는 리가 있지 않음이 없고 일물 가운데도 精粗와 本末의 차이가 있다’는 뜻에 맞지 않다고 비판하였다. 이처럼 이현일의 格物致知는 정주학의 “오늘 하나의 물에 나아가고 내일 하나의 물에 나아가 축적된 것이 많은 뒤에 豁然貫通의 곳이 있다”는 격물하는 과정과 절차를 중시하였으며, 이황의 理到說을 긍정함으로써 인식주체인 내가 物理를 궁구하는 단계를 지나서 주희가 말하는 豁然貫通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인식대상인 물리가 자연히 주관의 의식 속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李玄逸的格物致知是可以知道忠實了‘致知在格物’和‘物格而後知至’的內容著述 大學. 這樣的觀點是可以說明徹底地程朱學的繼承. 他是必窮究萬物的理然後才把 心中所具備衆理能發明的觀點堅持了. 因爲‘切實於自己’以爲先‘觀察於物理’以爲 後認定了先後本末的差異但不能努力根本輕視末段. 總而言之李玄逸的格物致 知重視了程朱學的‘今天格於一物明天格於一物’ 許多蓄積然後豁然貫通的格物過程 和節次肯定了李愰的理到說作爲認識主體自己經過窮究物理之段階朱到了熹說 明的豁然貫通之境地作爲認識對象物理自然到了在主觀的意識中强調了.

      • KCI등재

        조선후기 퇴계학파의 ‘理發說’에 대한 해석

        안유경(安琉鏡) 한국동양철학회 2006 동양철학 Vol.0 No.25

          본 논문은 이황의 리발설이 갖는 문제의식과 그것의 해석과정을 퇴계학파를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퇴계학파에서는 기본적으로 이황의 리발설을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그 시대적 요구와 해석자의 학문체계의 전개과정에서 理發 하나만을 인정하기도 하고 理發ㆍ氣發을 모두 인정하기도 하는 해석상에 다양한 차이를 드러냈다. 이러한 이황학문에 대한 해석의 다양성은 퇴계학파의 학문체계에 대한 이론적 발전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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