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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천년설 입장에서 본 천년왕국설의 이해

        전병재 安養大學校 神學大學院 2004 국내석사

        RANK : 248703

        지금까지 성경에서 말하는 천년왕국설의 바른 성경적 해석인 무천년설의 입장을 논하였다면 한국장로교회의 천년왕국설은 절대다수의 장로교회가 믿어오는 무천년왕국설이 아니라 초기 미국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아서 세대주의 천년왕국설이 팽배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전전으로 세대주의자들은 아니다. 이들이 자란 토양과 특히 그들이 배운 신학이 보수 신학이기에 어느 정도 정화되기는 했으나 천년왕국설은, 사회복음주의의 복음을 이 세상의 것으로 생각하는데 대한 반발감과 당시 종교적 분위기의 결과로 세대주의가 자연스럽게 받아드려졌다. 이들의 주장에 대한 깊은 연구 없이 피상적으로 볼 때 역사적 전천년설과 같다는 인상이 든다. 그래서 그들의 단점도 인식하지 못하고 혼합된 상태에서 그 정신을 가지고 한국에 들여왔다. 그 결과 한국의 초기 천년왕국설은 대부분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었다. 이들의 이러한 사상이 이들이 교수를 하였기에 한국의 목회자들이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세대주의자들은 종말론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지만 무엇보다도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믿게 함으로 해서 전체적인 신앙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행사하였다. 앞에서 세대주의 영향을 받은 목회자들에게 제언을 했던 것 같이 목회자 자신들이 바른 성경관을 가지고 다시 공부 하여야 한다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이들이 변하지 않고는 결코 한국 교회는 변화되어지지 않을 것이며 이 시간도 많은 성도들은 종말론이 하나님의 사랑의 언약이며 하나님의 크나큰 상급이라는 것을 모르고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주어진 상황을 비판하면서 오늘도 산으로, 산으로 아니면 예수 점쟁이를 찾아서 골방으로 헤메고 다닐 것이다. 이들이 신비주의적인 신앙관에서 탈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 교회에서 바른 교리를 가르치고 노회와 총회에서는 지 교회를 관리하여야 할 것이다. 그 제안으로 지금까지 노회를 하면서 많은 연구와 행사를 주관했지만 이제 노회는 정치를 위한 정치적인 노회가 아니라 노회 기간을 통하여 아직도 한국장로교회가 추구하는 신학 사상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목회자들은 재 교육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교단이 추구하는 신학노선과 다른 목회자는 바르게 교육을 해야 할 것이고 이것을 거부한다면 장로교회에서 받아드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교세를 부풀리기 위해서 신학 사상이나 노선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받아드린다면 한국교회의 앞날에 바른 성경관을 심는다는 것은 힘들 것이다. 본 논문을 통하여 단순히 천년설만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대주의적 천년설의 부당함을 통하여 전체적인 성경관을 삼위일체적인 신, 구약의 통일성에서 재조명하는 시간이 되어지기를 바라는 맘에서 출발한다. 이 길만이 바른 장로교회의 정체성을 가지고 대신의 정체성을 확립 할 수 있는 길이며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목회자로서의 직분을 온전히 감당하는 시점이 되기를 바란다. 천년주의를 배척하였던 칼빈의 말을 인용함으로 본 논문을 마감하려한다. 칼빈은 강요 3권 25장 5항에서 천년주의의 오류를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천년주의자들이 그리스도의 통치 기간을 천년동안으로 제한하였다고 비판하면서 그들의 오류에 구실을 준 것이 계시록에 있음에 분명하나 그 계시록은 그들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들의 조작은 너무 유치해서 논박할 필요가 없다. 천이란 수는 교회의 영원한 복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지상에서 수고하는 동안에 당하는 각종 고난에만 적용된다. 오히려 성경 전체가 택자들의 복이나 악한 자들의 벌이 영원하리라고 선언한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에 관한 일을 전혀 모르거나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은총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려는 악의를 품고 행동하는 것이다". 라고 천년주의를 마무리 한다.

      • 천년왕국의 무천년왕국설에 대한 비판적 고찰 : 계 6:9-11; 13:1-18; 19:11-20:10의 시제를 중심으로

        권중휘 베뢰아 국제 대학원 대학교 2008 국내석사

        RANK : 248703

        무천년왕국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기본적으로 요한계시록을 묵시로 취급한다. 묵시와 계시는 차이점이 크다. 묵시가 개인적인 체험이기 때문에 주관적이어서 객관화 할 수 없는 반면, 계시는 개인적인 체험이라도 전 우주적으로 객관화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 요한의 증거는 분명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계 1:1)고 하는 것은 전 우주적인 계시라는 것을 증거 한다. 무천년주의는 천년왕국이라는 용어 자체가 성경본문에 직접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천년왕국설을 주장하는 자체가 오류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의 증거는 역사적인 천년왕국이 지상에 실현될 것과, 이것과 유기적으로 연관된 다른 많은 문제들을 포함하고 있다. 무천년왕국설의 세부 주장들은 성경의 여러 증거들과 대치되고 있으며, 그들은 이러한 대치를 피하기 위해 천년왕국 관련 본문을 영적으로 해석하거나 비유로 해석하는 편리함을 내세워 논쟁을 교묘히 피해가고자 한다. 이에 본 연구는 전천년왕국설을 주장하기 보다는 무천년왕국설의 오류를 밝히는데 목적을 두었다. 천년왕국설은 네 가지 설이 있으나 크게는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천년왕국을 교회시대로 해석하는 무천년왕국설과 후천년왕국설은 성도의 최후의 거처인 낙원(낙원과 아버지 집을 동일시함)이 천년왕국이라고 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요한계시록을 비연대기적으로 해석하고, 비유나 영적으로 해석함과 더불어 성도의 육체적 부활과 중간상태를 부인한다. 둘째, 전천년왕국설과 세대주의 전천년왕국설은 요한계시록을 문자적이며 연대기적으로 해석한다. 더불어 성도의 육체적 부활과 중간상태와 최종적 영역을 구분한다. 이러한 천년왕국설 논쟁의 핵심에는 요한계시록 6:9-11; 13:11-18; 19:11-20:10이 있다. 무천년주의는 세 본문에 등장하는 순교자, 사단의 세력, 심판의 장소가 모두 동일사건, 동일 세력, 동일 장소라고 한다. 그러나 6:9과 13:15의 순교자와 순교사유가 다르고 20:4에는 이 둘이 함께 등장하고 있으며, 19:20과 20:2-3의 심판받는 대상과 장소가 20:10에 함께 등장한다. 두 본문은 한 본문에 종합된 형태이지 세 본문이 결코 한 사건이며 동일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증거 한다. 요한계시록을 비연대기적으로 해석하는 배후에는 20:2-3의 등장하는 ‘사단’을 ‘무저갱’에 던져 넣는 장면보다, 19:20에 등장하는 ‘짐승과 거짓선지자’가 먼저 ‘불 못’에 던져지는 장면이 먼저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20:10에 ‘불 못’이 등장하기 때문에 순서가 맞지 않는다고 본다. 그러나 이것은 사건의 순서가 뒤바뀐 것이 아니다. 사단에게 쓰임 받은 ‘짐승과 거짓선지자’의 행위의 악함이 너무나 명백하여 더 이상 심판을 미룰 필요가 없기 때문에 ‘불 못’에 먼저 던진 것이고 ‘사단’은 마지막 유혹의 사역이 남아 있기 때문에 잠시 ‘무저갱’에 가두었다가 나중에 ‘불 못’에 것이다. 본문은 연대기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따라 기록되었다. 요한계시록 6:9과 13:15의 두 본문의 순교자들이 동시에 최종 영역인 ‘아버지 집’에 가는 것이 아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19:20과 20:2-3의 심판받는 대상이 최종 영역인 ‘불 못’ 에 가기 것도 아니다. 성도든 불신자든 간에 중간상태의 영역에 반드시 머물러야 한다. 성도의 부활은 이러한 중간상태인 낙원에 있다가 주의 재림 때에 먼저 일어나는 자들과, 땅에서 들려올라가는 자 모두를 말한다. 무천년주의의 주장처럼 중간상태가 없다면, 즉 낙원이 아버지 집이라면 다시 부활하여 이 땅에 내려올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성도의 중생을 부활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다. 성도는 죽어서 곧장 ‘아버지 집’에 가는 것이 아니라 몸이 부활하기까지 쉬며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중간상태로써의 ‘낙원’에 먼저 간다. 불신자도 죽은 즉시 ‘불 못’에 가는 것이 아니라 최후의 심판 때까지 ‘무저갱에 가서 형벌을 기다리는 것이다. 무천년주의가 부활을 영해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중간상태의 영역을 부인하기 때문에 중생이라고 하거나 낙원에 들어감 자체를 부활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성도가 죽어서 최종상태의 영역인 낙원에 가기 때문에, 낙원에 가 있는 자체가 최고의 선에 이미 도달한 것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낙원에 있는 상태는 무엇이 부족하거나 더 채워져야 하는 불완전한 상태가 전혀 아니라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본 연구를 통하여 본문 시제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이는 요한계시록이 연대기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연대기적 해석은 중간상태의 영역을 확인할 수 있으며, 중간상태 영역의 확인은 육체적 부활을 필수적으로 뒤따른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본 연구를 통하여 무천년왕국설이 오류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천년왕국은 반드시 지상에 역사적으로 실현될 것이다. Generally those who assert the Amillennialism regard the Book of Revelations of John as apocalypse. There is widely difference between apocalypse and revelation. Both has personal experiences. However, revelation is one of God's promise which can be objective universally, whereas apocalypse is so subjective that it could not be objective. Apostle John's testimony is also very clear about it. The Revelation 1:1 says that "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 which God gave him to show his servants what must soon take place. He made it known by sending his angel to his servant John," which also testifies it is the pan-universal revelation. We can not find the term of 'the Millennial Kingdom' itself. In this reason the Amillennialism still maintains that the theory of the Millennial Kingdom is absolute fallacy. However, the testimony of the Bible includes that the historical Millennial Kingdom shall appear, and with which many other related issues still exist. Detail doctrines of the Amillennialism contradict many proofs in the Bible. Even they have been trying to turn craftly away some controversy through allegorical interpretation or pneumatic exegesis on related text about the Millennial Kingdom, which is so timesaving opportunism. Therefore, this theses intends to disclose the fallacy of the Amillennialism, not maintains only the Premillennialism. In general, four types of millennialism exist with regard to Christian Eschatology. But it can be divided into two parts. Firstly, the Amillennialism and the Premillennialism who interpret the Millennial Kingdom as the Church age believe that paradise, the last dwelling place of saints, is the Millennial Kingdom. They regard paradise in the same light as the Father's house. Their common points are these: They interpret the Revelation of John as non-annalistic writing, and deny the bodily resurrection of saints and the intermediate state with allegorical or pneumatic exegesis. Secondly, the Premillennialism and the Pre-tributional(or dispensational) Premillennialism expound the Revelation as literal and annalistic writing. With this, they divide the bodily resurrection of saints, the intermediate state and the final state. The Revelation 6:9-11; 13:11-18; 19;11-20:10 present the heart of the dispute with regard to the Millennial Kingdom. The Amillennialism tells us that the martyr who are to be found in these three text, the authority of Satan, and the place of the judgment are all identical events, identical authorities, and identical place. But the things I point out are these: the martyr and the reason of martyrdom in 6:9 and 13:15 are quite different, and these both appear together in 20:10, and the punished obeject and place of 19:20 and 20:2-3 are also founded in 20:10. It proves that two text is the complicated form of one text, not the same event or the identical person. The reason why they interpret the Revelation as non-annalistic is that the scene in 20:2-3, in which 'Satan' were thrown into 'the bottomless pit', comes earlier than the scene in 19:20, in which 'the beast and the false prophet' were previously cast into 'the fiery lake of burning sulfur'. They continually think that it is our of order because 'the fiery lake of burning sulfur' is written again in 20:10. However, it is obviously not out of its oder. The deed of 'the beast and the false prophet', who were used by Satan, were such a cruel and evil that the punishment wouldn't need to be postponed. That is why they were thrown into 'the fiery lake of burning sulfur' in advance. On the other hand, Satan were bounded in 'the bottomless pit' for a while, and then he would be cast into 'the fiery lake of burning sulfur' because he would have to do the work of the last temptation. The text is written annalistic according to the stream of time. It is also not true that the martyrs in the Revelation 6:9 and 13:15 entered the Father's house at the same time, where is the final state. Even the object, who would be punished in the Revelation 19:20 and 20:2-3, would not enter 'the fiery lake of burning sulfur' as the final state. Whether one is saint or unbeliever, he must stay in sphere of the intermediate state. Those who will be resurrected as saints include those who stay in paradise, the intermediate state, and raise first at the Lord's Second Coming, and also those who come up from land. If there would not be the intermediate state as the Amillennialism's state, in other words, paradise refers to the Father's house, it does not need to resurrect again and come down on this earth. By this reason, there is a limit which they could not but say the regeneration of saints is resurrection. However, saints take a rest and wait the Lord's Second Coming in 'paradise' as the intermediate state until being resurrected, not directly enter 'the Father's house' after death. Needless to say, unbeliever enter 'the bottomless pit' and wait the punishment until the last judgment, not immediately enter 'the fiery lake of burning sulfur'. The basic reason of the Amillennialism's allegorical or pneumatic exegesis on resurrection is that they deny the sphere of the intermediate state. Under this context, they should say the regeneration and entering paradise is resurrection in itself. Because saints directly enter the sphere of the intermediate state after death, staying in paradise itself is regraded as reaching the ultimate good already. They assert that being in paradise is not the imperfect state at all, where is required or filled with something. Through this study I found that the tense of the text are different. This fact let me to know that the Revelation should be interpreted as annalistic, and the annalistic interpretation can explain the existence of the intermediate state, and its proof definitely follows the resurrection of the flesh. In conclusion, we could find that the Amillennialism's assertion is absolute fallacy. The Millennial Kingdom will appear historically on this earth wit

      •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재림신앙에 대한 연구

        김우진 계약신학대학원 대학교 2004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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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신학적인 측면과 주요 신구약 성경과천년왕국설과 요한계시록중에서 구원관과 교회관에 관련된 구절들을 살펴 보았는데 그것들을 먼저 장별로 요약하고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재림신앙을 제안을 하고자 한다. Ⅰ. 서론에서 연구의 목적을 마태복음 25:5-7에서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 새” 한 것같이 졸며 자는 처녀들을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라고 외칠 수 있는 재림 신앙을 가지고 깨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이 나오기를 목적으로 한다고 하였다. Ⅱ. 재림의 신학적 이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목적을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다섯 가지로 요약하여 논술하였고 재림의 용어(원어) 정의를 아홉가지를 하였으며 재림의 징조로서 네 가지를 살펴보므로 마지막 때에 되어질 일들로 시대를 분별하게 하였다. 그리고 재림의 단일성과 임박성에서 재림에 임해야 하는 성도의 자세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Ⅲ. 신구약 성경의 재림신앙에서 요엘서와 아모스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날에 대하여 배경과 각각의 의미와 신약에서의 주의 날(여호와의 날)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여호와의 날은 성도들에게는 소망의 날이나 불신자들에게는 두려운 날이며 멸망의 날이었으며 그 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이다. 그리고 공관복음서와 바울 서신서에서 나타난 재림 신앙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와 때의 불확실성이 있으나 주님의 재림의 확실성이 거듭하여 강조되며 재림에 대비한 계속적이며 끊임없는 영적 준비를 요청하며 강조하고 있다. 사도행전에서의 재림신앙은 재림의 확실성을 나타내며 그리스도가 재판장으로 오시며사단을 완전 정복하고 만유를 회복시키며 다윗 왕국을 회복시키신다. Ⅳ. 천년왕국설에 대한 견해와 평가에서 역사적 전천년설은 네가지 천년설 가운데에서 가장 성경적인 견해라고 본다. 역사적 전천년설의 요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징조(복음의 세계적 전파, 이스라엘 전국의 회심, 대배교와 대환란, 적그리스도의 출현)가 있은 후 재림하시면 모든 악의 세력을 멸하시고 천년왕국을 성도들에게 주셔서 천년동안 살게 하신다. 그러나 예수님 재림이 있기 전에 성도들은 적그리스도의 출현으로 대환란을 통과하게 될 것이므로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재림의 신앙으로 무장하여야 한다. Ⅴ. 요한계시록의 재림신앙에서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구원관을 ① 성취된 구원(중생, 칭의, 양자) ② 현재 진행중인 구원(성화) ③ 미래에 이루어질 구원(부활, 영화)으로 분류하여 논하였는데 어린양의 속죄, 이신칭의, 하나님의 자녀로 칭함,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 일곱 교회에 주시는 칭찬과 책망을 통하여 이기는 자로서 구원을 이루어감, 성도의 기도가 하나님 보좌 앞 금단에 드려짐, 다시 예언하기 위하여 작은 책을 먹음, 144000명의 신앙과미래에 천상에서 이루어질 영화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교회관을 지상교회는 전투적인 교회로서 신앙를 지키며 사단의 역사를 물리칠 것을 일곱교회와 해당 구절들을 통하여 주님께서 명령하신 말씀들을 중심으로 교회관을 살펴보았다. 또한 지상교회에서 신앙을 지키며 참고 인내하던 성도들이 천상교회에서 어린양은 성도들의 목자가 되고 성도는 신부, 어린양은 신랑이 되어 완전히 연합하게 되며 새예루살렘으로 에덴동산의 회복을 본다. 이상의 요약한 것을 토대로 하여 다음과 같이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재림신앙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요한계시록 1:1-3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라고 하셨다.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며 반드시 속히 될 일이며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한 것을 그대로 믿어야 한다. 둘째,성취된 구원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고”(계 5:9)와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 7:14)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을 믿으므로 원죄를 사함을 받고 자범죄는 어린양의 보혈로 씻을 수 있다. 이것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이신칭의 이다. 그리고 구원을 얻은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계 21:7). 셋째, 진행 중인 구원에서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계 1:9)와 일곱 교회에게 주시는 편지에서 구원받은 성도로서, 어린양의 신부로서,어린양의 고난에 동참하여 이 세상을 이길 것을 강하게 권면하고 있다(처음 사랑 회복, 죽도룩 충성하라, 우상 섬김을 금함, 행음을 금함, 인내의 말씀 지킴, 믿음을 부요 하게 함). 또한 성도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며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계 10:8)에서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복음을 전도할 것을 말씀한다. 넷째, 144,000명의 신앙 즉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 14:4-5)을 본받아야 한다. 즉 주님을 위하여 순교할 각오를 해야 한다. 이 말씀에 대한 해설은 Ⅴ. 요한계시록의 재림신앙,A. 구원관,2. 현재 진행중인 구원(성화), e. 144,000명의 신앙에서 참조 바란다. 다섯째, 미래에 이루어질 구원에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계 7:15)와 “유리 바다 가에 서서”(계 15:2)에서 주님 재림하시면 하나님 앞에서 보호를 받아서 안식을 누리며 목자가 된 주님의 인도를 받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할 것을 믿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해야 한다. 여섯째, 순교자(계 20:4-5)들은 첫째 부활을 해서 심판하는 권세를 받고 천년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한다. 일곱째,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4)에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하나님이 임재 하셔서 처음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하나님의 위로와 하나님과 백성간에 아름다운 교제가 있을 것이다. 여덟째, 교회관에서 지상의 교회는 전투적 교회로서 예수 그리스도와교회를 신랑과 신부로 상징하였고, 그리스도를 양무리의 목자로 보았고, 세상을 향한 제사장으로서의 교회, 예수 그리스도는 머리시요 교회는 몸,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이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며 방파제이다. 아홉째, 하나님의 현재성, 환상성, 초월성, 존엄성, 전지전능, 편재성, 영원성 및 찬양의 대상임을 믿어야 한다. 교회는 어린양의 신부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완전 연합을 이룬다. 열번째,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 21:5)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을 갱신한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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