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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린의 철학사상

        金昭中 韓國共産圈硏究協議會 1988 共産圈硏究論叢 Vol.1 No.-

        지구상에 처음 등장하는 사회주의 공유제를 실현하고 마지막으로는 '인류의 해방'을 궁극적으로 달성한다는 공산주의 사회실현을 위해 마르크스주의를 이론과 실천의 무기로 신봉하고 국가와 당의 이념체계로 삼은 스타린은 레닌과 함께 가혹한 혁명의 시대에 목표를 분명히 하고 전진했다. 무산계급을 이끌고 짜르정부를 타도한 스타린은 빈농의 출신에서 일약 레닌의 고급 당 간부가 되어 활약했고 제3세계의 민족해방운동을 세계 사회주의 혁명의 테두리에 묶어 세계의 공산화에 심혈을 기우렸고 이에 실패하자 '一國社會主義' 건설을 향해 줄달음쳤다. 레닌의 사후에는 또한 레닌주의를 높이 치켜들고 政敵을 가차없이 레닌주의의 '寶刀'로 내리치며 당을 독점하고 一人支配體制를 강화했으며 나아가 세계 공산당을 자유롭게 조정하면서 소련의 강력한 발전과 세력의 확장에 전력했다. 그러나 그가 휘두른 거대한 권력은 단순히 물리적인 힘에서 나온것만은 아니였다. 그에게는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미래 이상사회로 틀림없이 진입할 수 있다는 '保證書'가 있었다. 세계는 늘 운동·변화하며 인류역사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늘 운동·변화하고 있다는데 착안하여 '부조리'에 찬 현실도 운동·변화의 원리에 따라 개혁될 수 있으며 또 개혁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의 자각적 행동(혁명)에 의해 자연규율과 같은 사회발전규율을 인식하고 이용함으로써 세계의 개조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세계관이자 방법론인 마르크스주의·레닌주의 철학사상을 강력하게 수용한 스타린은 많은 착오에도 불구하고 이를 대부분 계승·발전시켰다. 첫째, 인식론에서 이론과 실천의 결합을 주장했으니 이는 혁명가로서 실천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더 체득하고 있었을 것이며 또 실천에는 반드시 훌륭한 보편적인 이론, 즉 마르크스주의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혁명실천은 군중(인민)을 위한 것인만큼 혁명간부는 늘 군중과 밀접한 관계를 가져야 하고 관료주의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군중노선'을 주장했다. 또한 실천은 객관실재 및 객관규율을 정확히 알아야만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며 객관규율과 주관적인 능동성(실천성)은 서로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천명했으니 이는 소련의 현실 및 혁명규율을 정확히 파악하고 강력한 실천력을 발휘하자는 것이다. 둘째, 유물변증법은 자연·사회·사유의 상호 연계와 발전에 관한 학설로서 유물론과 변증법의 유기적인 통일체이다. 유물주의는 세계의 물질성과 정신의 물질로 부터의 파생성을 주장함으로써 객관현실의 존재가 이성·정신보다 더 중요한 것인즉 언제나 객관적인 존재·현상 및 그 규율을 존중하고 사고·인식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객관세계는 변증법적 운동을 계속하며 어떤 사물·현상이든 고정적이지 않고는 변하고 발전하며 그 변화·발전에는 일정한 규율(법칙)에 의거하고 있고, 운동하는 이유는 외부적인 조건도 중요하긴하나 결정적인 것은 내적인 모순때문이다. 이 내적 모순으로 모든 사물은 질량호변하고 부정의 부정을 하면서 변화·발전하는데 스타린은 모순 즉 대립통일에서 대립(투쟁)면만을 강조하고 통일(동일)을 배제하는 '잘못'을 범했고, 또 '부정의 부정'규율을 언급치 않아 사물 발전의 굴곡성(나선형식 발전)을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나 사물의 상호 연계성과 운동·발전을 주장한 면에서 유물변증법의 기본원리에 일치된다고 보겠다. 세째, 스타린은 역사유물주의에서 특별히 마르크스주의 철학사상을 발전시켰는데 ①사회역사 발전규율의 객관성을 자연규율과 비교하여 설명하면서 그 진리성을 주장하고 사회주의 사회에 특유한 '경제규율'도 제시했다. ②사회존재, 즉 사회물질생활 조건을 연구하고 이의 사회인식에 대한 결정적 작용과 반작용을 논하면서 생산방식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③생산방식의 내부모순 즉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사회발전의 기초가 되며 인류역사는 생산의 발전사요 생산방식의 변천사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발전사임을 제시했다. 또한 생산력의 혁명적 성질과 발전의 動因임을 강조했다. ④경제기초와 상부구조와의 관계에서 상부구조의 능동적 역할에 대해 강조하고 또 상부구조내의 의식형태와 제도사이의 관계문제를 다루었으며, ⑤계급과 계급투쟁에서는 과도시기의 계급투쟁을 설명하고 두 종류의 성질이 다른 모순과 이의 처리 방법을 논하고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계급구성의 변화와 착취계급의 잔재와 계급투쟁의 존재 빛 소멸론과 사회주의 사회발전의 동력문제를 다루었다. ⑥마지막으로 공산주의 고급단계로 향한 과도에 대해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생산력발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상 중요한 몇가지 점과 관련된 것이 본 논문에서 비교적 상세히 다루어질 것이다.

      • 中共에 있어서 黨과 軍의 關係 : 地方軍區의 政治的 役割을 中心으로

        李健一 韓國共産圈硏究協議會 1988 共産圈硏究論叢 Vol.1 No.-

        中共에서의 軍의 정치적 역할은 中共黨內에서의 권력투쟁과 건군노선에 영향을 받아왔다. 권력투쟁은 軍의 정치개입의 정도를 결정해주었고, 건군노선의 영향은 軍자체 내에서 흡수되어 왔으며 黨·軍關係의 기본원칙으로 되어 있는 ‘以黨領軍’ 體制에 대한 도전으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中共軍의 성장과정에서 나타났듯이 黨과 軍은 대립적 個體가 아닌 종속적 結合體의 관계로 발전해 왔다. 中共軍은 공산혁명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위해서 전력의 核인 黨의 支柱로서 수단적 역할을 수행해왔기 때문에 제도적 집단으로서의 자체 이익을 가질 수가 없었다. 마르크스·레닌主義의 조직원칙에 근거한 軍에 대한 黨의 절대적 영도체제가 정권 수험 이전에 이미 제도화 되었으며, 정권이 수립된 이후에도 이러한 제도는 정치체제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 이와 같이 中共의 黨·軍關係는 이론과 경험을 토대로 모습을 갖추어 왔으며 단순한 제도적 차원이 아닌 권력의 문제로 위치하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中國에서의 中央의 정치권력은 地方權力의 장악 없이는 안정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中共政權이 수립된 이후 ‘以黨領軍’원칙의 초점이 軍事權의 中央集中과 地方權力의 분산에 맞추어지고 있는 것도 전통적인 권력유지의 형태가 현실정치에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정권수립 이후에는 黨과 軍간의 機能的 未分化現象이 협조와 종속의 兩者關係를 가져다주었지만 정권수립 이후에는 地方에서의 黨과 軍간의 충돌을 자극해줌으로써 中央과 地方간의 권력관계에 영향을 주는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地方權力의 肥大化는 中央黨 내의 권력투쟁에 의해서만 가능했지, 독자적으로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 권력투쟁으로 因한 黨中央의 분열은 地方黨의 와해를 가져오며, 지방의 정치 질서가 마비되면 地方軍의 정치적 역할은 증대하게 된다. 이러한 地方軍權의 강화는 逆으로 中央黨 내의 권력투쟁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奪權過程에서 나타난 中央軍의 정치개입현상은 中央黨 내에서의 권력쟁탈을 위한 파벌투쟁에 軍內의 系派勢力들이 끌려들어간 피동적 행동이었으며, 그것이 中共軍 전체의 파벌적 성향을 탈피한 제도적 집단으로서의 黨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시작되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中共의 地方部隊들은 中央에 대한 군사적 도전을 자제해 왔으며 黨中央의 절대적 영도를 인정하면서 地域 내에서의 일정한도의 地方軍權이 확보되는 것으로 만족했다. 中共에서의 건군노선투쟁은 軍에 대한 黨의 지도원칙에 하등의 영향을 주지 않았다. 革命化路線이튼 正規化路線이든 그 차이가 있다면 혁명성을 강조하면서 대중동원방식에 의해서 효율성을 추구해아 한다는 것과 전문성에 근거하여 제도적인 관리방식으로 효율성을 추구해야 된다는 것의 대립이었지, 그것이 근본적으로 권력구조의 개혁을 전제로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中共軍은 黨에 대해 대항적이 아닌 종속적 태도를 견지하면서 군사적 영역에서의 자주권이 확보되기를 바랐다. 그렇다고 그것이 黨과 軍간의 역학관계를 뒤집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革命化路線이 추구되었던 시기에는, 軍이 非軍事的 活動까지를 수행해야 하는 기본임무 때문에 정치적 역량이 강조될 수밖에 없었으며, 이로 因해서 地方軍과 民兵의 위치가 主力軍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기 때문에 地方軍區의 권한이 비대해질 수밖에 없었다. 鄧小平이 추진하고 있는 軍現代化作業도 黨·軍 鬪係에 질적 변화는 주었지만 기본원칙만은 오히려 강화하고 있는 편이다. 이를 위한 措處로서 鄧小平은 ‘以黨領軍’의 제도적 장치인 정치공작제도를 강화하여 主力軍과 地方軍을 철저히 통제함으로써 中央의 권력안정를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中共은 ‘13大’를 통해 세대교체에 의한 黨·政·軍의 기능분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상호 경험적 배경이 다른 신진간부들에 의해서 고유의 영역에 대한 전문성이 강조되고 있다 黨內의 實權階層은 거의가 군사적 경험이 없는 黨官僚 출신으로 구성되었으며, 軍內의 고위간부들도 권력투쟁에 개입되어 정치적 경험을 가졌던 자들이 물러나고 직업주의적 경향이 강한 젊은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地方에서의 순수 黨官僚에 의한 地方軍區 통제는 軍을 군사적 영역에 묶어둠으로써 정치권력에서 배제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中共에서의 軍에 대한 黨의 절대적 통제와 軍의 정치적 역할 배제는 이미 제도적으로나 기능적으로 상당히 안정된 국면으로까지 와 있다고 하겠다.

      • 北韓의 政治社會化 變因에 關한 硏究 : 學校變因을 中心으로

        李峻炯 韓國共産圈硏究協議會 1988 共産圈硏究論叢 Vol.1 No.-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체제의 안정, 유지, 발전, 존속을 위해 정치교육 즉 정치사회화과정의 의도적 계획을 외면한 예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일찍이 서양에서는 플라톤이 동양에서는 공자가 정치교육의 중요성을 명확히 했던 것이다. 각 나라의 정치이념과 체제, 전통과 교육체계에 따라 각기 상이한 정치교육이 실시되고 있으나, 최근에는 정규의 교육과정에서 정치교육을 취급하고 나아가서는 독립교과로 정치교육을 취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는 나라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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