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원문제공처
          펼치기
        • 등재정보
          펼치기
        • 학술지명
          펼치기
        • 주제분류
          펼치기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 저자
          펼치기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인도네시아 지석묘의 기원 –중국 절강성 지석묘와 비교–

        조진선 한국상고사학회 2013 한국상고사학보 Vol.80 No.-

        인도네시아의 지석묘는 우리나라 지석묘의 기원 문제와 관련하여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도네시아 지석묘에 대한 연구는 충분하게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인도네시아에는 아주 다양한 형식의 지석묘들이 분포하고 있다. 필자는 이 가운데 Bagyo Prasetyo 분류 개석식, 혼합a식, 탁자a식을 초기형으로 보았다. 이러한 형식의 지석묘들은 중국 절강성의 지석묘와 구조적으로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인도네시아 지석묘문화는 중국 동남부 일대와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생각된다. 양 지역 지석묘의 유사성은 파급경로와 관련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주목되는 것은 기원전 4000~3000년경부터 시작된 오스트로네시아인의 동남아시아 팽창 경로이다. 오스트로네시아인의 팽창 경로는 중국 동남부에서 타이완섬–필리핀 제도–인도네시아 제도로 이어지는데, 이러한 경로는 明나라 때에도 해상 항로로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어 그 가능성을 더욱 높여준다. 필자는 양 지역 지석묘의 구조와 연대로 보아, 인도네시아 지석묘는 기원전후 또는 기원전 일천년기에 그 이전부터 이용되어 왔던 오스트로네시아인의 팽창 경로를 따라 중국 동남부에서 인도네시아로 파급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와 같이 인도네시아 지석묘는 기원전후경에 중국 동남부에서 인도네시아 제도로 파급되었을 것이므로 그동안 인도네시아에 지석묘가 존재하며 외형적으로 서로 유사한 점 등을 근거로 제기된 우리나라 지석묘의 남방기원설은 좀더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There are many different types of Dolmens in Indonesia. Of those, it is considered that the earliest types are Bagyo Prasetyo Unsupported cap stone type, Hybrid type-Subtipe a and Table-typed Dolmens-Subtipe a. Those types of Dolmens are more similar to the Dolmens of Zhejiang, China than the Dolmens of korea. Therefore, it is considered that the Dolmen Culture of Indonesia was closely related with the southeastern region of China. In B.C. 4000~3000, Austronesians expanded from southeastern region of China to Taiwan, Philippines and Indonesia. After that, The expansion path of Austronesians was continuous diffusion path of culture. It is assumed that Dolmen culture of Indonesia also spreaded from southeastern region of China through this path from B.C. 1st to A.D. 1st. Therefore, Dolmen culture of Indonesia formed from B.C. 1st to A.D. 1st. It is hard to believe that Dolmen culture of Indonesia was the area of origin of Korean Dolmen culture. Because Korean Dolmen culture had started to form around the 10th century B.C.

      • KCI등재

        1959년 담양 제월리 유적의 조사와 그 의미

        조진선,강은주 호남고고학회 2020 湖南考古學報 Vol.66 No.-

        담양 제월리 유적은 1959년 5월에 청동기시대 석기들과 삼국시대 고분이 조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들은 2017년 『전남대학교박물관 60년사』 편찬과정에서 1959년 조사 당시에 작성된 간략보고가 첨부된 공문서들을 발견하였다. 이 자료들에 따르면, 담양 제월리 유적은 마을 주민들이 청동기시대 석기들을 수습하면서 알려졌으며,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삼국시대 고분 4기와 고려시대 무덤 2기를 추가로 조사하였다. 최몽룡이 1976년에 담양 제월리 고분으로 보고한 것은 그중 6호분에 해당한다. 전남대학교(박물관)에서는 1959년 5월 30일에 관련 내용을 정리하여 문교부에 보고함과 더불어 발굴 허가를 얻고자 공문서를 발송하였다. 그러나 행정절차상의 문제 때문에 불법 발굴로 결론 내려졌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담양 제월리 유적은 기억 속에서 잊혀져갔다. 다행히 김원룡이 1964년에 담양 제월리 고분에서 출토된 동경 2점을 소개하였고, 최몽룡이 1973년과 1976년에 담양 제월리 유적 전반을 소개하면서 호남지역 고고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유적으로 인정되었다. 담양 제월리 유적은 조사과정에서 행정절차를 충실하게 이행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조사가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양 제월리 유적 조사는 해방 이후 경주와 개성 등 고도를 조사하는 데 머물러 있었던 한국고고학을 다른 지역, 특히 호남지역으로 이끄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또한 영산강유역에서 백제 석실분의 존재도 알렸다. 담양 제월리 유적은 1950년대 한국 고고학 조사과정의 일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학사적으로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당시에 마무리하지 못한 담양 제월리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를 지금이라도 다시 실시해서 마무리 지을 필요가 있다.

      • KCI등재

        해남반도권 지석묘의 등장과 확산과정

        조진선 호남고고학회 2022 湖南考古學報 Vol.71 No.-

        해남반도는 한반도 서남단에 위치하며, 해남만과 월출산에 의해 영산강유역과 구분된다. 필자는 해남반도권을 14개 소 지구로 구분해서 지석묘 분포밀도를 살펴 보았는데, 분포밀도가 높은 지구(a·b등급), 낮은 지구(c·d등급), 지석묘가 없는 지구로 나누어진다. 지석묘 분포밀도가 높은 지역은 북동부의 성전·강진-도암(북) 지구에서 해남반도 중부를 거쳐 서남부에 있는 화산·현산-송지(북) 지구로 이어진다. 이를 벗어난 지역은 분포밀도가 낮거나 지석묘가 확인되지 않는다. 이를 바탕으로 해남반도권 지석묘의 분포밀도 등급선을 작성해 보면, A등급선은 성전→계곡→마산→산이 지구와 강진-도암(북)→옥천→해남-삼산→화산 및 현산-송지(북) 지구로 이어진다. B등급선은 북서부의 화원반도와 남동부의 강진만 서안지역으로 이어진다. 해남반도 남단의 북평지구와 송지(남)지구에서는 아직까지 지석묘가 확인되지 않았다. 해남반도권과 탐진강유역권을 함께 살펴보면, 이 지역에서 지석묘는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갈수록 분포밀도가 낮아진다. 또한, 탐진강 상류 지역은 Ⅰ기부터, 탐진강 중류~해남반도 동북부 지역은 Ⅲ기부터, 해남반도 중부와 서남부 지역은 Ⅳ기부터 지석묘가 조영되기 시작한다. 이는 지석묘가 탐진강 상류 지역부터 점차 해남반도 쪽으로 확산된 것을 나타낸다. 광주·전남지역 지석묘에서는 Ⅲ기부터 세형동검-점토대토기문화 유물들이 확인되기 시작하기 때문에 해남반도권 지석묘의 상한연대는 기원전 3세기를 크게 상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로 보아, 해남반도권에서 지석묘가 가장 활발하게 조영되는 시기는 기원전 3세기경부터 기원전후경까지이며, 기원후 1~2세기에도 지석묘가 조영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 KCI등재SCOPUS
      • KCI등재

        국립대학박물관의 설치과정과 현재

        조진선 한국대학박물관협회 2018 고문화 Vol.92 No.-

        While it has been 90 years since Korea has her first university museum, most university museums in Korea were established since the late 1950s. The first university museum amongst national universities outside Seoul was Chonnam National University Museum, which was established on April 15th, 1957. The Chonnam National University Museum Establishment Promotion Committee was formed on May 19th, 1957 with the task to amend the Decree on the Establishment of National Schools. The Decree was eventually amended on January 13th, 1959 and the establishment of Chonnam National University Museum was sanctioned by the Education Ministry. Thus, the statutory prerequisites to establish the museums were fulfilled. There was a major crisis faced by university museums from 1970s to the early 1980s, caused by shortages in qualified staff, facilities, and funding. Moreover, in 1982, the dissolution of the Decree on Standards for the Establishment of Universities and Colleges, which provides statutory grounds to university museums, further deepen the aforementioned crisis. This crisis was somehow relieved through the tireless efforts of university museum staff and their supporters. Another crisis hit university museums in 2000s and has became increasingly visible since the 2010s. The apparent causes of this current crisis are the exclusion of university museums to participate in rescue excavations, and the reduction in the number of university students. More importantly, university museums are viewed by university administrations as trivial to tertiary education, compared with other university institutions, and are thus disregarded. Therefore, university museums must continue to be proactive in performing their educational role in universities while striving to secure their statutory status as either an essential or complementary educational institution. 우리나라에서 대학박물관의 역사는 90년을 넘겼지만 대부분의 대학박물관들은 1955년 이후에 설립되었다. 서울대학교를 제외한 국립대학교 가운데 처음으로 박물관을 설립한 대학은 전남대학교이다. 전남대학교에서는 1957년 4월 15일에 박물관을 설립하였으며, 설치인가를 받기 위해 1957년 5월 19일에 ‘전남대학교중앙박물관설립추진위원회’를 조직하고, 국립학교설치령 개정을 위한 활동에 들어갔다. 그 결과 1959년 1월 13일 국립학교설치령을 개정하고 문교부로부터 설치인가를 받았다. 국립대학교에 박물관을 설치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됨에 따라 1959년부터 국립대학교는 물론 사립대학교에도 박물관이 본격적으로 설치되기 시작한다. 국립대학박물관을 비롯한 대학박물관은 1970년대부터 위기가 시작되어 1980년대에 표면화된다. 안휘준은 이 당시의 위기를 인재난, 시설난, 재정난으로 규정하였다. 게다가 1982년 대학설치기준령에서 대학박물관의 법적 근거가 상실됨에 따라 위기감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당시의 대학박물관 종사자들은 정확한 진단과 노력을 통해 위기를 어느 정도 극복하였다. 대학박물관의 위기는 2000년대에 다시시작되었으며, 2010년대에 재차 표면화된다. 지금의 위기는 대학박물관이 구제발굴에서 배제되고,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의 재정난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가장 큰 원인은 대학박물관이 근거지인 대학에서의 역할, 특히 교육영역에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서 대학 구성원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립학교설치령에서 국립대학박물관은 교육기본시설인 도서관이나 지원시설인 전자계산소 등과 달리 공동 부속시설에 편재되어 있는데, 이는 국립대학박물관의 현재 위상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따라서 국립대학박물관을 비롯한 대학박물관은 대학의 교육영역에서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면서 교육기본시설이나 지원시설로서 법적 지위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 KCI등재SCOPUS
      • KCI등재SCOPUS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