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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蘇聯 中共간 論爭의 '이데올로기'的 側面考察

        愼道晟 영남대학교 통일문제연구소 1970 統一問題硏究 Vol.1 No.-

        1960∼64年 사이에 集中的으로 나타난 蘇聯·中共 間의 '이데올로기'論爭은 Monoliithic한 共産主義가 現代의 狀況에 適應할 수 없게 되어, 分裂과 多元化를 免치 못하게 되고, 그 '이데올로기' 自體의 矛盾과 欠陷을 露呈하였다는 意味에서 現代世界의 가장 重要한 歷史的 事件의 하나라고 할수 있다. 1956年 2月에 開催된 '쏘비에트' 共産黨 第20次 大會는 처음으로 資本主義國家와 共産主義國家의 平和的 共存, 資本主義로부터 社會主義로의 平和的 移行 等의 問題를 提起함으로써 中共과의 論爭의 씨를 뿌렸으며, 또 그 秘密會議 席上에서 '흐루시체프'는 '스탈린'의 犯罪行爲를 激烈히 非難함으로써 個人崇拜와 一人獨裁를 反對하고, '쏘비에트' 政治를 民主化할것을 提案하였다. 兩國間의 對立은 오래동안 表面化하지 않고 있었으나, 許多한 숨은 摩擦끝에 中共을 決定的으로 憤怒케 한것은 1959年· 9月의 '흐루시체프' 一行의 美國訪問이었다. 이때 '니키타·흐루시체프'는 '아이젠하워' 大統領과 數次에 걸쳐 會談하고, 美·蘇 兩國의 親善과 國際平和 維持를 위한共同努力을 다짐하있으며, 또 美國 各地를 視察旅行함으로써 美國民의 生活에 대한 認識을 새롭게 하고, "資本主義와의 平和的 共存"에 관한 信念을 굳혔던 것이다. 蓄積되어 온 敵愾心의 深刻性이 처음으로 公公然하게 表明된 것은 1960年 4月 '레닌' 生誕 90周年을 記念한다는 名目으로 中共의 代表的 機關誌에 發表된 세개의 論文에 서였는데, 거기서 中共은 "帝國主義"가 存在하는 限 戰爭은 不可避하여.暴力革命을 거치지 않고 "社會主義"로 移行할수는 없다는 것을 論證하려 하였다. 그리고 分明히 蘇聯의 指導層을 가르키는 "現代 修正主義者"를 이와같은 共産主義의 根本命題에 대한 "反逆者"로 못 박았다. 이때부터 論爭은 急速히 擴大되어 雙方은 數千篇의 論文·公開狀·書簡·演說·聲明으로 攻駁하고, 그 代辯人들은 여러 國際會議 席上에서 衝突하며, 서로 各自의 支持者를 糾合하기 始作하여, 共産主義는 事實上 두개의 陣營으로 分裂되기에 이르렀다. 蘇聯이 中共에 經濟的 壓迫을 加함으로써 紛爭은 黨'챈널'에서 政府'챈널'로 옮겨졌고, 1962年末의 '큐바' 危機와 中共의 印度國境 侵犯을 둘러싼 軋轢은 兩者의 國家利益이 論爭에 介入된 程度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1963年 여름에 調印된 美·英·蘇 3國의 核實驗禁止條約은 中共을 더욱 憤激케 하였고, 따라서 中共의 蘇聯에 對한 非難攻勢를 한층 激化시켰다. 蘇聯은 中共을 "破門"하기 위한 世界 共産黨會議를 開催하려는 努力을 시작하였는데, 中共 支持黨뿐만 아니라 적지않은 共産黨이 이 會議를 忌避하려는 態度를 보임으로써 '흐루시체프'를 窮地에 빠트렸고, 이것이 그의 失脚의 한 原因이 되었다. '브레즈네프-코시킨·팀'은 反中共論爭을 中止하고, 北京과의 關係를 正常化하려는 態度를 보였으며, 中共도 이에 關心을 表示하였으나, 그럼에도 不拘하고 이러한 狀態는 오래 繼續되지 못하였다. 그것은 蘇聯의 새 指導層이 '이데올로기'論爭에 관해서만은 中共을 宥和하는듯 하면서도 實際 政策面에 있어서는 도리어 北京에 의해서 가장 非難되어 오던 方向路線을 確固히 다져버렸기 때문이다. 中蘇論爭의 基本的인 問題点은 세가지로 分析할 수 있는데, 첫째는 소위 平和的 共存에 관한 것이다. 蘇聯은 現代의 모든 條件이 '맑스'나 '레닌'의 時代와는 根本的으로 달라졌다고 하고, 特히 核武器에 의한 戰爭은 人類를 破滅시키게 될것이므로 어떠한 代價를 支拂해서든지 資本主義 諸國과의 全面戰爭을 廻遊해야 한다고 主張하는데 대하여, 中共은 이러한 政策이 "美帝國主義"에 대한 降伏이요, 後進民族의 "解放運動"을 抛棄하려는 것이라고 非難하며, "帝國主義"가 存在하는 限 平和는 不可能하다는 '맑시슴'의 古典的인 敎理를 固執하려고 한다. 둘째는 資本主義로부터 社會主義의 "平和的인 移行"에 관한 問題이다. 蘇聯은 오직 暴力에 의해서만 資本主義 支配體制를 打到할 수 있다고 主張한 共産主義의 낡은 革命理論을 修正하여, 現代의 條件下에서는 資本主義國家의 勞勸者들은 選擧와 議會의 民主主義的 節次를 通해서 平和的으로 "社會主義"를 實現할 수 있다고 하며, 中共은 이와 같은 理論은 하나의 欺瞞이고, '프를레타리아'의 革命的 情熱을 冷却시키는 것이라고 攻擊한다. 끝으로 蘇聯은 그들自身이 이미 "社會主義" 建設을 完了하였으므로 이제는 "共産主義"로 前進할 段階라 規定하고, 이에 따라 國內에 있어서의 階級闕爭이 必要없게 되었으므로, '프를레타리아' 獨栽國家이던 '쏘비에트'聯邦은 "全人民의 國家"로, '프를레타리아' 階級政黨이던 '쏘비에트'共産黨은 "全人民의 黨"으로 發展하였다고 宣言하였다. 그러나 中共은 이와같은 蘇聯의 主張은 共産主義의 正統的 理論에 違反되는 것이며, 蘇聯의 實情은 現在 도리어 資本主義로 後退하고 있다고 非難한다. 이에 대해 蘇聯은 中共이야말로 似而非 共産主義라 反駁하여, 兩者의 論爭의 結果는 蘇聯이나 中共이 다 眞正한 社會主義도 共産主義도 아니라는 것이 되고 말았다. 以上과 같은 兩者間의 對立은 冷靜히 分析하여 볼 때 實質上의 큰 差異로부터 發生한 것은 아니다. 그들 사이의 對立은 基本哲學에 대한 見解差異라기 보다는 戰略上의 强調点 또는 戰術上의 優先順位의 差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이 論爭은 共産主義 '이데올로기'에 있어서의 狂信的·暴力的 色彩의 濃談이라는 点에 있어 重要한 意義를 지니고 있고, 또한 이것을 契機로 共産主義의 劃一性이 흔들리게 되었다는 点에서 적지 않은 歷史的 意味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Karl Marx가 共産主義를 體系化한 19世紀·中華은 産業革命과 資本主義가 바야흐로 發展期에 있던 時期였고, 그의 唯物論 哲學은 이와 같은 時代的 背景에서 形成된 것이다. 그러나 그後 '맑시슴'은 時代의 變遷에 제대로 適應하기가 어렵게 되었으니, '맑스'의 辯證法的 唯物論과는 달리 가장 落後퇸 資本主義國家였던 '러시아'와 前近代的 農業國家인 中國에서 共産主義 革命이 成功한 反面에, 高度로 工業化된 先進 資本主義國家에서는 그러한 革命의 機微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린데다가 蘇聯은 半世紀동안의 强制的 經濟建設의 結果 어느덧 近代的인 産業國家로 成長하여, '쏘비에트'社會의 階級構造와 國民의 精神狀況에 큰 變化가 일어나고, 이것이 아직도 '도그마틱'한 '이데올로기'의 極烈性을 維持하고 있는 中共과의 사이에 摩擦을 일으키게 된 根本 要因이다. 毛澤東의 極端한 "敎條主義"는 '맑시슴'의 正統性을 固守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其實 그것은 權力鬪爭의 한 手段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中共의 勢力擴張을 目標로하는 國家的·民族的 利己主義의 僞裝이고, 對內的으로는 소위 文化大革命에서.드러난것과 같이 反對勢力을 除去하기 위한 道具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와같은 '이데올로기'가 妥當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을 可能하게 하는 心理的 背景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人間精神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憎惡"의 心理이다. '맑스'의 全體系는 "憎惡"의 視角에서 모든 事物을 觀察한데서 이루어진 것인데, 그것은 20世紀 初葉의 '러시아'나 現代의 여러 後進地域과 같이 大衆的 貧困과 不合理한 社會體制가 存在하는 곳에서는 成功의 可能性이 充分히 있는 反面에 그러한 與件이 사라지고 나면 그 '이데올로기' 自體도 妥當性을 喪失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今後에 있어서의 科學·技術의 高度의 發達과 生産力의 急激한 成長, 그 結果로서의 人類社會로부터의 貧困의 追放과 諸國民間의 理解의 增進 等으로 말미암아 共産主義는 不可避한 限界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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