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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혁거세신화를 통해 본 서라벌소국의 형성

        이종욱(Lee, Jong-wook) 한국고대사탐구학회 2016 한국고대사탐구 Vol.24 No.-

        현재 박씨 성을 가진 한국인이 많다는 사실로 보아 결국은 혁거세(赫居世)를 시조로 하는 씨족(氏族)이 현재 한국인의 다수가 될 정도로 번성한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본고는 현재 한국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인 정체성의 원점에는 혁거세를 시조로 하는 세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신라 건국신화에 나오는 6촌장을 시조로 하는 씨족과 탈해를 시보로 하는 씨족, 알지를 시조로 하는 씨족 등이 있다. 이들에 대해 후대 사람들이 칭하던 명칭이 있다. 신라의 왕을 배출했던 씨족은 후대에 종성(宗姓) 또는 천강성(天降姓)이라 불렀다. 그런가 하면 혁거세를 추대했다고 하는 서라벌6촌장을 시조로 하는 씨족이 가졌던 성을 육부성(六部姓) 또는 토성(土姓)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근현대 한국사학은 종성과 육부성 중 혁거세를 시조로 하는 박씨족 만이 아니라, 다른 씨족들의 존재를 주목하지 않았다. 한국인 정체성의 원점을 은폐해 온 것이다. 고구려나 백제인들이 아니라 신라인들을 시조로 하는 성이나 본관을 가진 한국인이 많다는 사실은 신라가 한국인의 오리진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 중에서도 신라 건국신화를 포함해 신라 초기 역사가 바로 한국인 정체성의 원점이 된다. 이 같이 신라 오리진의 한국인을 만든 출발점은 혁거세가 건국한 신라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현대 한국사학은 혁거세를 푸대접해왔다. 현대 한국사학은 혁거세 그리고 혁거세를 시조로 하는 박씨 성을 가진 씨족의 존재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쓰다 소키치에서 시작했고 이병도 선생이 이어받은 이 같은 주장은 본질적인 오류를 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근현대 한국사학이 만들어낸 것과 다른 것이었다. 신라의 모체가 된 서라벌소국을 세운 혁거세를 신라인들은 처음부터 기억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신라의 왕들도 건국신화나 시조에 대한 설화를 통해 정통성을 얻고, 계보파악을 통해 왕의 지위의 정당성을 얻었고, 시조묘나 신궁의 제사를 통해 왕의 권위나 권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혁거세의 후손들은 혁거세를 모신 시조묘 제사와 혁거세왕릉의 존재를 통해 그들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따라서 혁거세는 신라 초기부터 신라인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질 수 없는 신성한 존재였다. 이병도 선생이 신라 왕의 세계(世系)의 확실성에 대해 의문을 가진 자체가 신라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지금까지 제국 일본의 한국인 폐멸정책을 위해 희생된 한국사, 상처받은 신라의 역사, 그렇게 지워진 혁거세를 살려내고 한국인 정체성의 원점을 되찾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본고는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It could be inferred the clan, which progenitor was Hyeok’geo’se, has flourished in Korea, since there are many Koreans who has family name ‘Park’. Therefore, this article will be a starting point to understand present of Korea. The origin of Korean identities are not only consisted with clan which progenitor was Hyeok’geo’se. According to Silla National Origin Myth, there are clans which progenitor were Six Chonjang, Talhae and Alji. There were titles about these family clans that later generation had designated. The clan that produced King of Silla was called Jongseong or Chungangseong by later generation. The clans, which progenitors were Seorabol Six Chonjang and whom appointed Hyeok’geo’se as their leader, called their family name as Youkbuseong or Toseong. However, Modern and Contemporary Korean History had not focused on Jongseong and Youkbuseong which progenitor was Hyeok’geo’se as well as the presence of other clans. This research tendency means to conceal Korean identity. There are many Korean family names or family clans which progenitor was from Silla, not from Koguryo or Baekje, and it could be inferred that Korean origins are related with Silla. Above all, Early Silla History including Silla National Origin Myth contains starting point of Korean origins. As it was inferred in previous paragraph, Silla origins which indicated starting point of Korean is related with Silla founded by Hyeok’geo’se. However, Contemporary Korean History neglects Hyeok’geo’se. Contemporary Korean History does not acknowledge Hyeok’geo’se and his clan with family name Park. This trend of argument, which had started by Professor Tsuda Sōkichi and was inherited to Professor Lee Byung-Do, contains critical problems. Real Korean History is different with what Modern and Contemporary Korean History has created. Silla people remembered Hyeok’geo’se who had founded Seorabol community that were developed into Silla. Similar with other countries, Kings of Silla secured their legitimacy by Silla National Origin Myth or tales of progenitors, gained authority as king by tracing genealogy, and assure their power or dignity by tomb of their progenitor or ancestrial rites in palace. The descendent of Hyeok’geo’se had secured their authority by ancestrial rites on their progenitor, Hyeok’geo’se, and existence of Royal Tomb of Hyeok’geo’se. Therefore, existence of Hyeok’geo’se was sacred to Silla people from Early Silla History. Professor Lee Byung-Do’s question related to existence of the Silla Kings genealogy proves that he did not understand history of Silla. Victimized Korean history by Korean Ethnic Extermination Policy during Imperial Japan, scarred history of Silla, and erased Hyeok’geo’se should be restored, and Korean origin research should be restarted. This article will be the starting point.

      • KCI등재

        신라 초기 박씨왕 시대를 보는 눈 -신라 국가형성기 정치발전단계를 중심으로-

        이종욱 한국고대사탐구학회 2018 한국고대사탐구 Vol.28 No.-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나오는 신라 내물왕 이전 기록을 조작된 것이라 하며 내물왕 이전 역사를 은폐・말살하는 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쓰다 소키치가 시작한 신라 내물왕 이전 역사말살론은 근본적으로 한국인의 존재를 말살하는 잘못된 주장이었다. “쓰다 소키치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혁거세신화와 『삼국사기』 박씨왕 시대의 자료에 들어 있는 역사적 사건과 사실 그리고 시간을 재구성하여 국가형성발전단계, 지배세력과 신분, 중앙정부조직과 지방통치조직 등을 구조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본 논문에서는 신라 시조 혁거세 거서간에서 제8대 아달라 이사금까지의 박씨왕 시대의 왕호, 지배세력과 신분, 정치조직을 중심으로 당시 신라 사회의 다양한 면들이 서로 연관되어 조직된 사회체제(commingling of institutions)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신라 건국신화는 신라에서 立邦・設都를 거쳐 6촌(6부)을 통합한 徐羅伐小國이 형성되었으며, 혁거세가 6촌(6부)의 지배세력이 아니라 6촌(6부)를 통합한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 즉 왕이 되었음을 알려준다. 차차웅이라는 왕호를 사용한 시기 서라벌소국과 이웃한 소국들은 낙랑과의 원거리교역을 위한 교역망을 형성했다. 이후 이사금이라는 왕호를 사용한 시기 서라벌소국은 진한 소국을 정복해 들어갔다. 서라벌소국의 건국 당시 박씨족은 왕국 전체를 지배하던 세력으로 출발했다. 박씨왕 시대에 탈해를 시조로 하는 석씨족이 월성에 자리 잡고 알지를 시조로 하는 김씨족이 계림에 등장한 이후, 박씨족・석씨족・김씨족은 혼인을 통해 연결되어갔다. 그들 씨족에서 왕・왕비・왕모 등이 배출되었으며, 신라의 왕을 배출했던 박씨족과 석씨족・김씨족은 6부의 세력이 된 일이 없었다. 반면 6부성을 가진 세력들은 서라벌6촌이 추장사회단계에 있을 때 최고의 지배세력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혁거세세력이 이주하여 6촌을 통합해 서라벌소국을 형성하며 2급 지배세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박씨왕 시대의 박씨족・석씨족・김씨족과 그 밑의 신분을 가졌던 과거 서라벌6촌 세력들의 존재는 후일 신라 골품신분을 편제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정사당 설치 이전 박씨왕 시대의 신라는 궁실정치 시대로 규정할 수 있다. 이 시기 신라에서는 왕정과 궁실의 통치가 구별되지 않고 궁실을 중심으로 두 가지 업무가 처리되었다. 또한 궁실정치 시대에 관직・관등・관부의 분화・설치는 맹아 단계에 머물렀다. 그리고 134년 정사당 설치 이후에는 정사당정치를 행했다고 생각해 보았다. 이 시기 정사당의 업무는 궁실의 업무와 구분되기 시작했으며 관직은 분화되는 과정을 거쳐 나가게 되었다. 한편 박씨왕 시대 신라는 피정복소국을 중앙집권적으로 통치한 것이 아니라, 피정복소국의 왕실세력을 제거하고 그 밑의 지배세력들은 제후적인 존재로 그대로 두어 통치하였다. 또한 신라에서는 정복되었던 피정복소국이 배반을 하면 군대를 보내 토평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이러한 피정복소국 지역에서는 군-촌-마을로 이어지는 3단계지방통치조직이 편제된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신라초기 박씨왕 시대는 신라 사회체제의 기본적인 구조가 만들어진 시기였다.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사회체제는 나아가 고려・조선을 거쳐 현재까지 이어지는 사회체제의 바탕이 되었다. “쓰다 소키치의 함정 ... The Park clan was the central force during the early days of the Silla. Other clan, Seok, which progenitor was Sok T'alhae appeared in Wolseong and Kim clan which progenitor was Alji, appeared in Gyerim. These clans were related with Park clan by marriage. Kings and queens, even king’s mothers were from Park, Seok and Kim clan. Three clans never had been the leader of Six Bu. However, when the kings were from Park clan, three clans became the ruling power. Three clans and other political powers were the origin of Golpum-je: Bone rank system(骨品制). Council for Political Affairs before Jeongsa-dang settled all of the important affairs of the state in palace in Silla. Also, central administrative system was at an early age. After Jeongsa-dang, Political Affairs was divided into two categories and official sets was subdivided into several sets. In Silla, King of the Parks reigned a kingdom by killing monarch in colony and letting their lord become a feudal lord. Also, when people of the colonies rebelled against Silla, Silla’s army set an ease. Therefore, three stages of ruling organization, district-town-village, was formed in colony. Social system established in Silla became the origin of the present social system. Being free from “Paradox by Professor Tsuda Sōkichi” and regaining our history from early Silla, we can find new origin of Korean. Because Koreans are Silla origin, not the son of Dangun, the legendary founder of Gojoseon.

      • KCI등재

        신라 초기 박씨왕 시대를 보는 눈

        이종욱(Lee, Jong-wook) 한국고대사탐구학회 2018 한국고대사탐구 Vol.28 No.-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나오는 신라 내물왕 이전 기록을 조작된 것이라 하며 내물왕 이전 역사를 은폐·말살하는 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쓰다 소키치가 시작한 신라 내물왕 이전 역사말살론은 근본적으로 한국인의 존재를 말살하는 잘못된 주장이었다. “쓰다 소키치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혁거세신화와 『삼국사기』 박씨왕 시대의 자료에 들어 있는 역사적 사건과 사실 그리고 시간을 재구성하여 국가형성발전단계, 지배세력과 신분, 중앙정부조직과 지방통치조직 등을 구조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본 논문에서는 신라 시조 혁거세 거서간에서 제8대 아달라 이사금까지의 박씨왕 시대의 왕호, 지배세력과 신분, 정치조직을 중심으로 당시 신라 사회의 다양한 면들이 서로 연관되어 조직된 사회체제(commingling of institutions)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신라 건국신화는 신라에서 立邦·設都를 거쳐 6촌(6부)을 통합한 徐羅伐小國이 형성되었으며, 혁거세가 6촌(6부)의 지배세력이 아니라 6촌(6부)를 통합한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 즉 왕이 되었음을 알려준다. 차차웅이라는 왕호를 사용한 시기 서라벌소국과 이웃한 소국들은 낙랑과의 원거리교역을 위한 교역망을 형성했다. 이후 이사금이라는 왕호를 사용한 시기 서라벌소국은 진한 소국을 정복해 들어갔다. 서라벌소국의 건국 당시 박씨족은 왕국 전체를 지배하던 세력으로 출발했다. 박씨왕 시대에 탈해를 시조로 하는 석씨족이 월성에 자리 잡고 알지를 시조로 하는 김씨족이 계림에 등장한 이후, 박씨족·석씨족·김씨족은 혼인을 통해 연결되어 갔다. 그들 씨족에서 왕·왕비·왕모 등이 배출되었으며, 신라의 왕을 배출했던 박씨족과 석씨족·김씨족은 6부의 세력이 된 일이 없었다. 반면 6부성을 가진 세력들은 서라벌6촌이 추장사회단계에 있을 때 최고의 지배세력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혁거세세력이 이주하여 6촌을 통합해 서라벌소국을 형성하며 2급 지배세력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박씨왕 시대의 박씨족·석씨족·김씨족과 그 밑의 신분을 가졌던 과거 서라벌6촌 세력들의 존재는 후일 신라 골품신분을 편제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정사당 설치 이전 박씨왕 시대의 신라는 궁실정치 시대로 규정할 수 있다. 이 시기 신라에서는 왕정과 궁실의 통치가 구별되지 않고 궁실을 중심으로 두 가지 업무가 처리되었다. 또한 궁실정치 시대에 관직·관등·관부의 분화·설치는 맹아단계에 머물렀다. 그리고 134년 정사당 설치 이후에는 정사당정치를 행했다고 생각해 보았다. 이 시기 정사당의 업무는 궁실의 업무와 구분되기 시작했으며 관직은 분화되는 과정을 거쳐 나가게 되었다. 한편 박씨왕 시대 신라는 피정복소국을 중앙집권적으로 통치한 것이 아니라, 피정복소국의 왕실세력을 제거하고 그 밑의 지배세력들은 제후적인 존재로 그대로 두어 통치하였다. 또한 신라에서는 정복되었던 피정복소국이 배반을 하면 군대를 보내 토평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이러한 피정복소국 지역에서는 군-촌-마을로 이어지는 3단계지방통치조직이 편제된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신라초기 박씨왕 시대는 신라 사회체제의 기본적인 구조가 만들어진 시기였다.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사회체제는 나아가 고려・조선을 거쳐 현재까지 이어지는 사회체제의 바탕이 되었다. “쓰다 소키치의 함정”을 벗어나 신라 초기 박씨왕 시대의 역사를 되찾는다는 것은 한국인의 오리진을 새롭게 찾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인은 단군의 자손이 아니라 신라 오리진이기 때문이다. The Park clan was the central force during the early days of the Silla. Other clan, Seok, which progenitor was Sok T’alhae appeared in Wolseong and Kim clan which progenitor was Alji, appeared in Gyerim. These clans were related with Park clan by marriage. Kings and queens, even king’s mothers were from Park, Seok and Kim clan. Three clans never had been the leader of Six Bu. However, when the kings were from Park clan, three clans became the ruling power. Three clans and other political powers were the origin of Golpum-je: Bone rank system(骨品制). Council for Political Affairs before Jeongsa-dang settled all of the important affairs of the state in palace in Silla. Also, central administrative system was at an early age. After Jeongsa-dang, Political Affairs was divided into two categories and official sets was subdivided into several sets. In Silla, King of the Parks reigned a kingdom by killing monarch in colony and letting their lord become a feudal lord. Also, when people of the colonies rebelled against Silla, Silla’s army set an ease. Therefore, three stages of ruling organization, district-town-village, was formed in colony. Social system established in Silla became the origin of the present social system. Being free from “Paradox by Professor Tsuda Sōkichi” and regaining our history from early Silla, we can find new origin of Korean. Because Koreans are Silla origin, not the son of Dangun, the legendary founder of Go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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