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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자료를 통해 본 북한민법 연구의 특징 -1997-2018 김일성종합대학학보(역사, 법률)를 중심으로-

        문흥안 ( Moon Heung-ahn ),조근형 ( Jo Geun-hyoung ) 건국대학교 법학연구소 2021 一鑑法學 Vol.0 No.48

        이 논문은 1997년부터 2018년까지 김일성종합대학교에서 발간한 김일성종합대학학보(력사, 법학)에 게재된 민사법관련 논문을 중심으로, 북한에서의 민사법률 연구의 큰 흐름을 검토해 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연구는 논문분석에 앞서 Ⅱ.에서 김일성종합대학학보 발간에 직접 관련이 있는 김일성종합대학과 법률대학에서의 법학교육 및 김일성종합대학학보의 발간에 대해 살펴보았다. Ⅲ.에서는 1997년부터 2018년까지 발간된 김일성종합대학학보 중 민사법관련 83편의 논문을 남한민법 의 체계에 따라 북한민법 학자들의 논문을 연도별, 분야별, 발표자별로 나누어 연구동향을 검토하였다. Ⅳ.에서는 Ⅱ.와 Ⅲ.에서 살펴본 내용을 바탕으로 향후 추가적인 연구에서 있어서의 시사점을 알아보았다. Ⅴ.에서는 이상의 연구에 대한 정리를 하였다. 북한에서 22년 동안 발표된 북한민법 논문을 검토한 결과, 북한 민법연구에 있어서 논문 형식과 그 내용에서 많은 진전이 있었다. 2016년 이후 해가 갈수록 논문의 분량이나 편수가 증가함에 따라 연구수준도 높아지며, 외국 민사법에 대한 소개도 많아지고 있다. 또 논문이 정치적 선전도구로부터 법리적 접근을 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그러나 북한의 민법논문은 법해설 정도 수준의 논문이 많아 남한 수준의 학술적 전문성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논문의 형식에 있어서는 2016년부터 논문에 실마리어(주제어)를 첨부하고 있지만, 다른 연구자의 논문을 인용한다거나 그에 따른 각주, 초록 등은 앞으로 갖춰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도 외국 민사법에 대한 연구자가 보이기 시작했고 그 발표가 늘어나는 것은 논문의 형식뿐만 아니라 내실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This paper aims to review the big flow of civil law studies in North Korea, focusing on thesis on civil law published in the Kim Il-Sung University Academic Journal (History, Law) published by Kim Il-Sung University from 1997 to 2018. Prior to thesis analysis, the study examined law education in Kim Il-Sung University and Law School, and the publication of Kim Il-Sung University Academics, which are directly related to the publication of Kim Il-Sung University’s academic journal in section II. In section III, 83 papers on civil law from the Kim Il-Sung University’s academic journals published from 1997 to 2018 by North Korean law scholars were categorized according to the system of the South Korean Civil Law, to review the research trends by year, field, and presenter. In section IV, the implications for further research were examined based on the foundings from the sections II and III, followed by section V with the summary of the above studies. As a result of reviewing the papers on North Korean civil law published in North Korea for 22 years, there has been much progress in format and content of the paper in the study of North Korean civil law. Since 2016 the volume and number of published paper have increased, so does the level of research level with foreign civil law being introduced. Additionally, it’s been observed in those papers that there is an effort to consider a legal approach toward a political propaganda sphere. Still, as a large portion of North Korean papers was at the level of merely providing legal interpretation on North Korean civil law, the level of academic expertise does not seem to bear that of South Korea. As for the format of the papers, the relevant key words have been added since 2016, but there still are rooms to improve for citing, adding footnotes and abstracts, etc. The fact that researches on foreign civil law started to appear in North Korea, with an increasing number of publications on them raises expectations not only for the format but also for the fidelity of the published pap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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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김일성-김정일 우상화 전략 및 특성 비교 연구

        정교진(Jung, Kyo Jin)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6 통일인문학 Vol.68 No.-

        본 연구는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우상화 전략 및 그 특성을 비교 연구하였다.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 시기에 상징정치, 특히 ‘지도자상징정치’를 강도 높게 시행했다. 그로인해, 김일성, 김정일 부자는 권력을 독점하고 향유하다가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을 성공시켰다. 현재, 북한 김정은 정권도 ‘지도자상징정치’가 강도 높게 작동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김일성, 김정일 시기와 비교해서 그 정도(강도)는 과연 어떨까? 북한의 유훈통치 속성상 일반적으로 김일성 시기를 가장 높게, 다음은 김정일, 그 다음은 김정은 시기 순으로 평가하기가 쉽다. 과연 그럴까? 이 질문으로부터 본 연구는 출발했다. 북한의 지도자상징정치는 지도자 우상화와 직결된다. 따라서 연구방식은 북한의 김일성-김정일 우상화 전략 및 그 특성을 비교 검토하는 것이다. 특히, 김일성-김정일 우상화에 있어 ‘신화적 사고’ 방법으로 접근했는지를 집중적으로 파악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 김일성-김정일을 신출귀몰한 초능력 · 초인간적인 인물로 묘사했는지 그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다. 연구자료는 『김일성원수님 어린시절』(1968),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선생님 어린시절』(1975)과 인민학교 국어교과서(1960년대~1990년대), 그리고 『김일성 전설집』(1987), 『김정일 전설집』(1996)을 주자료로 사용하였다. 결론부분에서 김정은 우상화와도 단순비교를 해보면서 김정은 우상화의 강도 및 김정은 정권의 지도자상징정치 현주소를 나름대로 제시했다. The Kim Il Sung and Kim Jong-Il regime had made extensive use of leader political symbology. Kim Il Sung and Kim Jong-Il were able to enjoy a monopoly of power and were able to transfer power to Kim Jong-Un. Currently, the Kim Jong-Un regime in North Korea seems to have successfully strengthened its system of political ruler symbolism. How strong is Kim Jong-Un’s system of political ruler symbology compared to him predecessors? Considering the dying injunctions of the North Korean leaders, we can assume that Kim Il Sung’s was the strongest; followed by Kim Jong-Il and then Kim Jong-Un. Could this be correct? This study begins from this inquiry. Political ruler symbology of the North is closely related to the idolization of its leaders. Therefore, the research method is to compare North Korea’s Kim Il Sung and Kim Jong-Il’s idolization strategy and its characteristics. In particular, this research focused on whether mythological thinking was employed in the idololization of Kim Il Sung and Kim Jong-Il. In other words, this study will prove that Kim Il Sung and Kim Jong-Il were depicted as supernatural or superhuman figures. As for primary materials, I will refer to the following works: “Kim Il Sung’s childhood,” “Kim Jong Il’s childhood,” “the People’s school language textbook (1960 ~ 1990),” “Kim Il Sung, a legendary house” and “Kim Jong-Il, a legendary house”.

      • KCI등재

        국어국문학과 조선어문학의 분단: 설립 초기 국립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와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의 비교연구

        정종현(Jeong, Jong-Hyun) 동악어문학회 2021 동악어문학 Vol.83 No.-

        본 연구는 1946년 9월과 10월에 각각 설립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와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의 제도적 편제와 교원 집단, 교과목 등을 비교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두 대학교의 교사(校史), 미군의 노획문서, 초창기 학생들의 회고 등을 분석했다. 이 두 제도의 토대가 되었던 경성제국대학 조선어문학 전공이 해방 이후 두 대학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가, 이후 분단된 두 국가의 이념이 두 대학의 차이를 어떻게 만들어갔는가 등에 대해 ‘식민지-탈식민지의 연속과 비연속의 겹눈의 독법’으로 접근하고자 했다. 미국식 대학이념의 영향을 받으며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으로 재편되었다. 김일성종합대학의 문학부는 소련식 제도인 까페드라, 아스삐란트라 등이 결합된 형태로 구성되었다. 두 대학의 국어국문학과 조선어문학 전공 교수진은 경성제대 법문학부 조선어문학 전공 출신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조선어문학 전공은 경성제대에 유일하게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국어학과 고전문학 중심이었던 제국대학 제도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어서, 설립 초기에는 현재와 같은 국어학, 고전문학, 현대문학의 3분 체계가 아직 마련되진 않았다. 그렇지만, 두 대학 모두 제국대학의 외국문학 전공자들에 의해서 현대문학 교육이 시작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ompare institutional framework & teacher"s group, curricular subject & academic atmosphere between the Department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for the College of Liberal Arts and Sciences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the Faculty of Joseon Language and Literature (朝鮮語文學部) at Kim Il Sung University (金日成綜合大學), which were established, respectively, in September and October of 1946. For this, an analysis was made on a school history (校史), the U.S. military"s captured documents and the early students" retrospection of two universities. The aim was to approach with ‘the continuous and non-continuous double-eyed dogma of colony-decolonization’ as for how a major in Joseon Language & Literature (朝鮮語文學) at colonial Keijo Imperial University (京城帝國大學), which had been the foundation of these two systems, had influence upon two universities after the liberation, and as for how the ideology of two divided nations after this proceeded with making a difference between two universities. With being affected by the ideology of American university, the Faculty of Law and Literature at Keijo Imperial University (京城帝國大學) was reorganized into the College of Liberal Arts and Sciences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The literature department at Kim Il Sung University (金日成綜合大學) was made up in the combined form of kapedeula and Aspirantra of corresponding to a Soviet-style system. The teaching staffers with a major in the Department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and in Joseon Language and Literature (朝鮮語文學) of two universities were formed the principal axis by those with a major in Joseon Language & Literature (朝鮮語文學) for the Faculty of Law and Literature at Keijo Imperial University (京城帝國大學). This was probably natural because a major in the Joseon Language & Literature (朝鮮語文學) was only established in Keijo Imperial University (京城帝國大學). The influence of Imperial University in which the Korean language and classical literature formed the center remained strongly. Thus, the three-division system in Korean Linguistics, Classical Literature and Modern Literature like now was not arranged yet in the early days of its establishment. However, both universities could be confirmed to have been begun the modern literature education by the foreign literature majors at Imperial University.

      • KCI등재후보

        益重青青志, 昭我唐家光: 一个新罗人的传奇往事 -以唐代新罗人金日晟墓志为线索-

        王连龙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문화예술콘텐츠연구소 2016 문화와예술연구 Vol.7 No.-

        당대(唐代) 신라인(新羅人) 김일성(金日晟)의 묘지(墓志)는 최근 중국 서안(西安) 응탑구(雁塔區) 삼교촌(三爻村)에서 출토되어 2010년에 대 당서시박물관(大唐西市博物館)에 소장되어 있다. 묘지 내용을 보면, 김 일성은 신라왕의 종형(從兄)으로 어린 나이에 당나라에 귀의하여 벼슬이 종삼품 광록경(光祿卿)에 이르고 대력(大歷) 9년(774)에 장안(長安)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그의 생애가 전설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신라인의 묘지가 극히 드물기 때문에 이 묘지는 당과 신라의 관 계를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사료적 가치가 있다. 본고에서는 김일성 묘지와 관련된 제반 문제를 고찰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해 내었다. 첫째, 전래문헌과 출토자료의 기록에서 신라왕실 자제 중에 ‘김일○ (金日○)’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당대 제왕이 하사한 이름이 자주 발견되는데, 여러 변방의 수장으로 당나라에 귀의한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김일성(金日晟)’은 ‘김일제(金日磾)’와 비슷하기 때문에 김일성은 당나라에 귀의한 후 개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묘지에 기록된 김일성의 생존연대를 추정해 보면, 김일성은 효 성왕(孝成王) 혹은 경덕왕(景德王)의 종형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혜공 왕(惠恭王)의 종형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배제할 수 없다. 신라 왕실의 자 제 중에 당나라에 들어가 숙위(宿衛) 학습하는 연령을 근거하면 김일성 은 성덕왕(聖德王)이 당나라로 조공을 보내어 숙위로 머물게 되었다. 개원(開元) 8년(730)에 성덕왕의 조카인 김지만(金志滿)이 당나라에 들어 와 숙위가 되어 오랫동안 당나라 조정에 있었는데, 그 행적이 김일성과 여러 방면에서 중복된다. 셋째, 김일성은 당나라에 들어와 은청광록대부(銀青光祿大夫)와 광록 경(光祿卿)을 제수 받았다. 현재 전래문헌의 기록에 당나라에 들어가 숙 위가 된 신라 왕실 자제에게 하사한 벼슬의 현황을 보면, 김일성이 제수 받은 광록시경(光祿寺卿)의 직책밖에 보이지 않는다. 구시(九寺)의 여러 경(卿)은 예악제향(禮樂祭享)과 민족외교(民族外交) 등의 업무를 담당하 였는데, 신라 왕실 자제들이 숙위관례(宿衛觀禮)에서 배운 것과 일치한다. 넷째, 김일성이 당나라에 들어간 후에 벼슬이 광록시경(光祿寺卿)에 이르렀고 장씨(張氏)와 혼인하였다. 오랫동안 장안(長安)에 거주하는 사 이에 안록산(安祿山)의 난이 발생하였는데, 그가 오랫동안 장안에 체류하 고 높은 관직에까지 승진한 것은 이 난과 깊은 관련이 있다. 김일성의 묘 지는 문장이 간략하고 크기도 비교적 작아 그 직책의 등급과 부합되지 않는데, 이는 장씨의 무덤을 이장하고 부부 합장묘지를 다시 썼기 때문이다. 다섯째, 김일성은 장안 영수(永壽)의 필원(畢原)에 장사 지냈는데, 영 수향(永壽鄉)의 처음 설치는 수대(隋代) 대흥현(大興縣)까지 거슬러 올 라갈 수 있다. 당나라에 들어와 영수향은 장안현에 관할되어 범위가 북 쪽으로 장안성 교외까지 이르고 동쪽은 천문가(天門街)를 경계로 하고 남쪽은 위곡(韋曲)까지 이르고 서쪽으로는 강촌(姜村) 일대까지 관할에 들어갔다. Newly discovered epitaph of Jin Risheng of Tang Dynasty has important historical value to the history of the Tang dynasty. The name of Jin Risheng was renamed in Tang Dynasty, he was nephew of Seongdeok, also from brother of Xiao Cheng King and Jingde king. Jin Risheng long-term resident in Changan and promoted the officer should be related to the "AN-shi rebellion". The Sui Dynasty set up Yongshou township, Yongshou township jurisdiction belonged to Changan County in Tang Dynasty , its northward range to Changan suburb, east to Tianmen street bounded, up to the southern boundary of the Wei Qu, the West will be ginger village area into subordinate.

      • KCI등재

        북한 정권 초기 <우리의태양: 김일성장군찬양특집>에 나타난 수령 찬양가 연구

        이정아 민족음악학회 2023 음악과 민족 Vol.- No.65

        본 연구는 해방 1주년을 맞이하여 발간한 <우리의태양: 김일성장군찬양특집 >에 수록된 리찬 작사·김원균 작곡의 <김일성장군의노래>, 박세영 작사·황보태 작곡의 <김일성장군>, 홍순철 작사·주선규 작곡의 <김일 성장군의노래>의 가사와 음악을 분석했다. 이 가요들은 '김일성 장군'과 관련된 주제들로 이루어졌으며 서로 경합을 벌인 것으로 유추된다. 그럼으로써 김일성에게 지도자로서의 정당성과 신화적 위엄을 부여하는 첫관문의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것은 현 수령 찬양가의 출발점을 제시한다. 가사의 공통된 주제는 '김일성 장군', '장백산', '김일성 항일혁명 빨치산 투쟁', '김일성장군 개조정강'이다. 리찬, 박세영, 홍순철은 위의 주제들을 근거로 김일성이 국가건설의 유일한 지도자임을 형상화한다. 그러나 이들의 형용 기법은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리찬의 가사는 평이하다. 다시 말해, 일반적인 언어로 김일성의 경력과 공적을 말함으로써, 그가 민족의 태양임을 명확하게 인지시킨다. 위와 같은 리찬의 묘사는 고리키가 제시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스탈린 형상화와 유사함이 확인된다. 하지만, 리찬의 최대 결점은 일본 시가의 7·5조의 운율을 토대로 한다는 것이다. 한편, 박세영과 홍순철의 가사는 어려운 단어, 은유, 상징 등으로 모호하게 전달한다. 이것은 당시 문학계의 분위기를 전해준다. 다시 말해, 리찬의 가사는 북한 문학이 지향해야 할 방향과 목적에 부합하는 전형을 제시했다면, 박세영과 홍순철은 결점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어 김원균, 황보태, 주선규 음악의 선율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이들 선율의 주요 공통점은 1, 2, 3도 협소한 음정 위주의 진행과 드문 4, 5도 도양진행, 부점리듬의 사용이다. 김원균과 주선규는 6도의 진행까지도 나타난다. 이들 모두는 도약진행을 가사의 강조에 적용한다. 하지만, 김원균은 적소에 배치함으로써 주요 가사를 효과적으로 강조한다. 반면, 황보태와 주선규는 여기서 벗어난다. 수령 찬양가의 분석 결과 가사와 음악은 소련과 일본의 영향력이 공존했음이 증명된다. 결론적으로 리찬 작사·김원균 작곡의 <김일성장군의노래>는 경합에서 살아남아, 현재까지도 이어진다. 북한은 전쟁 발발 이전부터 일본 제국주의적 요소의 타도로써 사회주의 국가의 정당성을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모순되게도 <김일성장군의노래>에는 일본 시가의 7·5조 가사와 일본 군가풍의 부점리듬은 여전히 불리고 있음이 확인된다.

      • KCI등재

        해방기 좌익 신문 『조선인민보(朝鮮人民報)』의 항일투사와 김일성 형상: ‘수령형상’의 기원과 형성 탐색을 위한 시론 (1)

        최강미 ( Choi Gangmi ) 국방대학교 안보문제연구소 2020 국방연구 Vol.63 No.1

        북한소설 연구에서 ‘김일성 형상’은 주요한 주제 중의 하나이다. 1960년대 후반 북한의 주체시대가 시작되면서 문예작품에서는 김일성 형상화를 의미하는 ‘수령형상화’가 중요한 정책적 과제로 지정된 이래 북한소설은 김일성의 형상이 전면화되거나 전제된 텍스트로서 특징화되어 왔다. 그러나 수령형상화의 연원은 해방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김일성이 등장하는 해방기 소설은 삽입된 일화나 인물을 이루는 요소 등에서 당시 저널리즘을 통해 소개된 김일성 관련기사들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특히 김일성의 형상은 당시 속속 귀환하던 항일투사들의 소개기사내용과도 밀접한 관련을 보인다. 따라서 대중 매체에 소개된 김일성의 모습을 검토해 보는 작업은 해방기 소설에서 김일성 형상의 의미를 모색해 보기 위한 기초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그 첫 번째 작업으로서 해방기 서울에서 발행된 최초의 국문신문이자 대표적인 좌익 매체 중 하나였던 『조선인민보』에 실린 귀환 항일투사들의 소개기사와 김일성 관련 기사를 검토하면서 김일성 형상의 초기 모습을 당대 저널리즘을 통해 형성된 항일투사 형상의 연속선상에서 살펴보았다. 초기 김일성의 형상은 다른 항일투사들의 형상을 이루고 있는 내용 요소들을 대체로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정보가 구체적이지 않은 데 비해 찬양의 수사가 과도해지면서 불균형이 심화되는 경향을 보여 준다. 특히 다른 항일투사들과 달리 투옥 경험 등 고난에 대한 구체적인 이력이나 정황이 제시되지 않음으로써 강하지만 훼손되지 않는 낭만적 투사 이미지도 형성되고 있다. 한편 전자의 불균형은 다른 인물의 구체적인 정보를 활용해 이상화할 수 있는 여지를 높여 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본고는 일종의 시론(試論)으로서 한계를 지니며, 이후 두 번째 작업인 북한에서 발행된 매체의 기사를 검토하는 후속 작업을 통해 수령형상의 기원과 형성에 대한 탐색을 좀더 보충하고 논의를 확장해 가고자 한다. Kim Il-sung's character' is one of the main topics in the study of North Korean fictions. Since North Korea's 'the era of Juche(self-reliance)' began in the late 1960s, "Suryeong Hyeongsanghwa", which means making the figure of Kim Il-sung as a character for fictions was designated as an important policy task in the field of North Korean literature work. And North Korean fiction has been characterized as texts which are based on the Kim Il-sung's figuration or display it at the whole narrative. However, the origin of "Suryeong Hyeongsanghwa" can trace back to the Korean liberation period, and the episodes inserted into the narratives and elements comprising the figure's character in North Korean fictions which have Kim Il-sung as a fictional character in the period have many parts overlapping with mass media articles by which Kim Il-sung was introduced. Especially, the Kim Il-sung's figure has close relation with the content elements constructing the image of anti-Japanese fighters who came back to Korea at that time. Therefore, the work that look-over the figure of Kim Il-sung introduced via mass media can be basic materials for exploring the meaning of Kim Il-sung's character in the North Korean fictions of the liberation period. As the first work of a preliminary step, in this article I looked into the early form of Kim Il-sung as one of the anti-Japanese fighters with their image constructed by mass media in that time through analyzing articles in Choseon Inminbo which is one of the representative left-wing and the first newspaper in Korean published at Seoul after the liberation of Korea. The early form of Kim Il-sung shared most content elements by which other anti-Japanese fighters' image was constructed. However, because the rhetoric of praise are getting more excessive compare to his not specific information, the unbalance of Kim Il-sung's figuration goes deeper. Especially also an image of romantic fighter who is strong but not damaged has been constructed because there is no clear description about his severe experience including imprisonment unlike that other fighters usually mention their experience of imprisonment. On one hand, the unbalance can be interpreted as a possibility for idealizing his character more by using other's specific information. This article has some limitation as a sort of essay. Therefore after this, I am going to supply more contents for exploring about the origin and formation of Suryung Hyeongsang and expand this discussion through successive work, checking articles of mass media published in North Korea at that time.

      • KCI등재

        해방후 북한체제 형성과정에서 김일성의 위상과 역할에 관한 연구

        이시형(Lee Si-Hyung) 한국정치정보학회 2006 정치정보연구 Vol.9 No.2

        본 연구는 북한에서 해방이후부터 사회주의국가를 수립하기 이전까지의 3년여 기간에 걸쳐 진행되어 왔던 사회주의체제의 형성과정에서 김일성의 지위와 역할을 분석하여 김일성에 대한 재평가를 해보았다. 본 연구에서 기초분석자료로 활용된 노획문서에 의하면 북한의 공산주의세력들이 북한정국을 주도해 나가는 초기과정에서부터 김일성의 지위와 역할이 매우 확고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의 초기상황을 보여주는 각종 문건들에서는 김일성이 북한정국을 주도하는 소련군정이나 지배집단 및 인민대중들에게 가장 폭넓은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김일성은 소련에 의해 선택되어 해방직후 초기부터 북한정국의 주역으로 등장할 수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주의체제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축적하면서 최고지도자로의 자리에 부상하는데 성공하였다. 1946년 초반 공산당 내부에서는 김일성의 노선과 정책을 유일한 지도적 지침으로 하여 모든 조직과 구성원들이 그의 의도와 명령, 지시를 관철하는 김일성 지도체계가 작동하고 있었다. 김일성을 비롯한 북한공산주의자들은 사회주의체제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소련을 우호적이고 협력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당국가체제를 구성하는 당ㆍ정ㆍ군과 같은 제도적 장치들은 물론이고 사회주의적 개조작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북한에서 당국가체제의 형성과 역량의 증대는 반대로 소련군정 당국으로부터의 권한을 양도받는 과정을 동반하였다. 즉 북한에서 당국가체제의 형성은 소련으로부터의 자율성을 획득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김일성은 당국가체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공산당과 군을 창설하는 주역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자생적으로 출범한 인민위원회도 공산당의 지배체제로 편입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임시인민위원회의 출범을 계기로 북한에서는 소련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국가에 준하는 체제로서의 역량을 갖추고 북한사회를 움직여 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북한지도부는 북한에서 당국가체제를 건설해 나가는 과정에서 인적, 물적 자원의 부족을 직면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김일성은 북한체제의 건설에 필요한 자원을 구소련이나 중국으로부터 확보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 This study examines the role and position of Kim Ilsung in the process of building North Korean government since the liberation. According to the obtained documents Communist forces, the position and role of Kim Ilsung in North Korea have been very firm since the beginning of the North Korean Government. Early Documents shows that Kim Ilsung has been supported by USSR Army Military Government and ruling groups. Kim has been selected by Soviet Union to be a key player in the North Korean political situation. In the process of building Socialistic System, he successfully accumulated the ability to be the leader and became the top leader eventually. In 1946, the North Korean Communist Party has built "Kim Il Sung Leadership System" which is operated only by Kim's order and intention. Kim Ilsung and the North Korean Communists considered U.S.S.R. as a friendly and negotiable country in the process of building a socialistic system. Therefore, they had very close relationship with U.S.S.R. in the areas of Party-Government-Army system and reforming whole social system. After Kim built the Party-State system and accumulating more power, the USSR Army Government transferred more power to him. In other words, building the Party-State System was a process of obtaining an autonomy from the USSR. In the process of building the Party-State, Kim Ilsung has played a important role in building the North Korean Communist Party and Army. Also, he made a very decisive role in acquiring 'The People's Committee' which has borne of itself. By the beginning of 'The Temporary People's Committee', he showed he can control the North Korean Society as a separate country leader without the support of USSR any more. However, North Korean Communist Party leaders are suffering from lack of human and material resources. In this aspcet, Kim Ilsung has made a big contribution in obtaining resources from USSR and China in the process of building North Korean Government system.

      • 김일성체제와 정치신화에 관한 연구

        김경호 한국시민윤리학회 2005 한국시민윤리학회보 Vol.18 No.2

        순항하고 있는 남북관계가 더욱 진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시도된 본 연구는 김일성체제에 작동되고 있는 정치신화에 대하여 탐구하였다. 신화란 실제로는 근거가 없는 어떤 믿음을 의미하고, 정치신화도 단순히 정치적인 것에 대한 허구나 환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북한체제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정치신화가 어떠한 유형의 믿음을 결정하고 있고, 그 논리적 구조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북한에서 김일성체제의 형성과정과 최고 통치자가 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그 과정에서 김일성은 북한의 최고통치자가 되기 위하여 많은 권력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그와 더불어 그는 혁명전통을 재조명하기 시작하였다. 1955년 4월에 개최된 전원회의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창조적 적용과 북한자체의 사회주의이론화를 위한 민주기지론을 채택하였다. 그 후 김일성은 1967년 5월 제4기 제15차 전원회의를 계기로 혁명전통의 재조명을 시도하면서 역사해석의 독점을 이루게 되었다. 역사해석을 독점한 김일성은 혁명전통과 김일성의 탄생 및 핏줄에 대한 정치신화를 만들어 북한사회에 내재화하였다. 즉 항일혁명전통은 김일성의 신화이고 그가 신이 되는 과정이었고, 그의 탄생도 민족의 운명을 구해주기 위하여 민족의 위대한 태양으로 탄생되어 주체의 시대를 맞이하였다는 것이다. 김일성의 핏줄은 혁명의 성스러운 가족인 김정일 동지로 계승하게 되면서 후계자화하였다. 그 후 김정일의 정치신화는 백두산 밀령 탄생설과 조선혁명의 근원을 풍수사상과 도참설의 중요한 개념을 사용하면서 정치신화를 계속 만들어 가고 있다. This study is trying to detail things about North Korea through the legend of it. The legend is a kind of belief which is not based on the truth. The political legend is simply a fiction about things political. The system of North Korea has kept nervous since the beginning. As a result, it has focused on keeping the system rather than develops the country. This structural-character caused the legend. Especially the legend in the system of North Korea played the definite role in keeping the sole system of Kim, Il-Sung and electing the successor.

      • 1967년 ‘5.25 교시’를 통한 북한의 역사왜곡연구

        안성호 충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2015 사회과학연구 Vol.32 No.2

        우리는 일제로부터 광복을 되찾은 날을 연합국 미국이 일본을 패망시 켜 우리가 해방된 날로 기념하나 북한은 조국해방의 날 의미를 그렇게 해석하지 않는다. 김일성이 항일 빨치산 주체의 광복군을 만들고 소련 군과 함께 한반도로 진공해가지고 일제를 쳐부수고 조국을 해방한 것 으로 역사왜곡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은 20여년에 걸친 만주항일무장투 쟁이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최고 최후의 투쟁이었고 바로 이 투쟁에 의 해서 조국해방이 이루어졌다고 규정한다. 이는 역사왜곡이고 공산당식 선전선동에 불과한 것이다. 북한은 일제하인 1930년대 초 김일성이 결성한 항일유 격대가 항일투쟁과정에서 공산주의혁명가들의 모범이 되는 생활방식을 창출했다고 하면서 이를 항일유격대식이라고 지칭하였다. 김일성은 한참 연하로써 1930년대 항일무장운동을 하던 훨씬 이전부터 안중근, 유관순, 이승만, 김구, 안창호, 윤봉길, 이봉창, 조만식, 김규식, 김좌진, 이청천, 이회영 등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만주벌판에서 상해 임시정부에서 머나먼 미국 땅에서 왕성하게 항일무장투쟁, 외교활동, 교 육활동, 민족경제부흥운동 등 다양하게 독립 운동하였던 역사적 사실 등을 왜곡하거나 무시하고 있다. 오로지 김일성이 이끄는 항일무장투쟁 의 대오가 소련군과 함께 중국만주와 조선북부지역에서 전민항쟁을 조 직하면서 일제의 무력을 섬멸하면서 진군하여 조국을 해방시켰다고 과 장하면서 역사를 날조하고 있다. 게다가 김일성은 1967년 소련군대보다 항일유격대가 광복에 기여했다고 선언하여 소련군대를 폄훼한 것은 김 일성유일사상체계확립과 김일성-김정일 부자세습체제를 위하여 행하여 진 역사왜곡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김정일이 2인자로 등극한 이후에 는 1974년 항일유격대식 슬로건은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 으로라는 구호를 제시하면서 일반화되기 시작한데서도 잘 알 수 있다.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구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국가들의 붕괴와 체제전환과정과 1994년 김일성사망에 따른 체제위기와 극심한 경제난 에 직면하면서도 항일유격대식의 삶의 방식체득을 더욱 강조하였다. 이 는 북한 주민들의 사상적 해이를 방지하고 김일성-김정일 부자세습체 제와 사회주의 혁명열의를 선전선동 고취하고자하는 고도의 전략이 깔 려있는 것이다. 북한은 1930년대 반일 반제국주의 투쟁식 잔재가 여전 히 남아 시대착오적인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우상화에 빠져있다. 북한은 여전히 광복70주년을 맞이해서도 해방 전후 김일성 독재정권 수립과정, 김일성에 의한 6.25불법남침 등 과거사에 대하여 전혀 반성하 지 않고 김정은을 통한 김일성 식 역사왜곡을 지속적으로 자행하고 있 다. 본 논문은 바로 북한의 역사왜곡의 서막이라 할 수 있는 1967년 5.25교시를 중심으로 북한의 근현대사 역사왜곡과 김일성-김정일-김정은에 이은 날조역사, 역사조작과 3대에 걸친 광신적인 우상화작업 등을 분석·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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