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원문제공처
          펼치기
        • 등재정보
        • 학술지명
          펼치기
        • 주제분류
          펼치기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 저자
          펼치기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Hesses Einfluss auf koreanische Schriftsteller : Unter besonderer Beru¨cksichtigung von H. Tjon, B. Cho und D. Kim 전혜린, 조병화, 김동리를 중심으로

        Cheong, Kyung Yang 한국헤세학회 2002 헤세연구 Vol.7 No.-

        한국에서의 헤세 붐을 반영이라도 해 주듯이 헤세의 문학은 그 동안 한국의 작가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번역가, 수필가로서 전혜린은 헤세의 문학을 사랑하여 헤세의 작품을 직접 번역하였을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헤세의 문학을 읽도록 권유하거나 헤세에게 직접 편지를 띠워볼 것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전혜린은 자신의 체험과 삶을 바탕으로 헤세의 문학에 깊이 공감하여 자신의 낭만주의적인 성향과 더불어 헤세의 문학을 정서적인, 사상적인 관점에서 강하게 수용하였다. 시인 조병화 역시 헤세를 깊이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시작품에 헤세의 시구를 직접 인용할 정도로 헤세의 문학에 대한 강한 사랑을 표출하였다. 조병화는 특히 서정적이고 낭만주의적인 관점에서 헤세의 시문학을 수용했는데, 조병화 자신의 낭만주의적 문학세계와 헤세의 낭만주의적인 문학세계를 한데 아우르면서 자신의 문학세계를 창출하였다. 조병화는 시작품의 주제와 소재 면에서도 헤세의 문학을 적극 수용하고 변용하였다. 조병화와는 달리 소설가 김동리는 주로 헤세 문학의 종교 사상적인 측면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따라서 김동리는 헤세 문학의 낭만주의적인 면보다는 중기와 후기 작품에 중점적으로 나타나는 동양 사상적, 내재적, 신비주의 종교성에 공감하면서 자신의 문학사상에 수용하였다. 또한 김동리는 헤세와 마찬가지로 일찍부터 동양의 종교적 고전문헌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섭렵하였기 때문에, 김동리와 헤세의 문학은 인간의 자아에 존재하는 신적인 속성이나, 내재신(內在神)등의 종교적 표상을 구축하면서 내재적인 신비주의적 종교성을 공통적으로 표출하였다.

      • The Development of Hesse Reception in Korea from the Year 1926 to 1999

        Cho, Chang-Hyun 한국헤세학회 2003 헤세연구 Vol.10 No.-

        헤세의 한국수용은 크게 보아 반세기도 채 못되는 짧은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비록 그의 작품이 1920년대에 한국의 독자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나, 당시 국내의 제 여건은 그를 받아들이기에 충분치 않았고, 또한 헤세수용이 자생력을 갖고 계속 그 범위를 넓혀나갈 수 있는 환경이 못 되었다. 일본통치하에서 헤세의 수용은 한편으로는 빠른 출발을 갖기는 했으나, 일본의 언어 및 문화적인 속박으로 인하여 넓은 독자층을 형성할 수 없었고, 작품 번역이나 문헌연구에 있어서도 균형을 잃었다. 또한 비록 해방이 되었다고는 하나 사회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인 이유로 인하여 헤세의 한국 수용에 상당한 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특이할 만한 사실은 전집을 포함하여, 그의 대부분의 작품이 단행본으로 헤세의 생전에 번역되어 나왔다는 것이다. 번역은 70년대에 들어와 소위 한글 세대에 의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였으나 80년대에 들어와서는 오히려 그 이전보다 질적인 면에 있어서 떨어졌다. 그 이유는 헤세가 6-70년대를 거치는 동안 두터운 독자층을 형성하여 상업성을 갖는 작가로 부상하게 되었고, 그래서 자질이 떨어지는 역자와 출판사가 난립하였기 때문이다. 80년대에 나타난 또 하나의 특이한 현상은 헤세수용이 독자 중심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해서 독자가 헤세의 작품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의 취향과 요구에 따라 헤세작품이 다각적으로 취사선택되어 번역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의 특이한 현상이며, 이런 전집은 앞으로의 한국에서의 헤세수용에 있어서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예측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비록 헤세수용이 상업성을 강하게 띄었다고는 하지만 능동적 헤세수용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번역 태도에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점차로 오역이 감소하고 있으나 여전히 원전을 통한 번역이 아닌 비전공자에 의한 영역본이나 일역본에 의한 중역이 끊이지 않는 것이 문제점으로 남는다. 헤세작품에 대한 연구는 번역보다 더 늦게 시작되었다. 헤세에 관한 논문의 주제는 초기에 한국의 독자들에게 소개된 대로 주로 낭만주의나 동양적 내면세계 및 자아완성이라는 데 모아졌다. 초기 논문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공통점은 헤세가 얼마나 동양적인 작가 인가하는 점에 초점이 맞춰졌고 그런 연유로 해서 주로 「싯다르타」가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경향은 물론 80년대까지 이어졌으며, 이 점은 외국에서 학위논문을 마친 한국의 연구가들에게도 공통점이기도 한다. 이 분야에 대한 연구는 주로 1970년대에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헤세연구가 이 분야에 집중됨으로써 헤세가 진부한 낭만작가 내지 동양적 내면 세계만을 추구하는 작가라는 인식을 더욱 짙게 해주었다.

      • KCI등재

        Selbstverstaendnis des Dichters in Hesses und Hoelderlins Lyrik

        유군더르트 한국뷔히너학회 2006 뷔히너와 현대문학 Vol.27 No.-

        헤르만 헤세는 횔덜린 시를 잘 알고 있었으며 또 일생동안 그의 시작을 경탄했던 시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횔덜린에 대한 헤세의 경탄이 시인으로서의 헤세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연구는 없다. 다시 말해 시인이라는 자기 이해에 대해 횔덜린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하는 연구는 아직 없다. 특히 헤세의 후기 시들은 횔덜린의 시작으로의 전향을 나타낸다. 시인은 이루어야할 사명과 천직이 있다는 횔덜린의 시학에 대한 전향을 헤세의 후기 시들은 나타낸다. 횔덜린은 시인의 사명과 천직은 과거에 대한 지속적인 회상이며 미래에 대한 예상 그것도 개선된 인간사회에 대한 예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헤세는 횔덜린과는 달리 시인의 사명과 천직은 과거를 불러내서 보존하는데 있다고 생각했다. 횔덜린이 가졌던 개선된 미래 사회에 대한 확신은 헤세의 시에서는 사라지고 플라톤의 이데 등 과거의 영원한 가치, 과거의 영원한 형상들을 생생하게 불러내는 것이 시인의 사명이고 천직이라고 헤세는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헤세도 그리고 횔덜린도 현실과 현재의 인간세계를 형상화해야 한다는 데는 일치했다. 횔덜린은 자연과 인간역사를 지배하고 있는 신성을 그에 특유한 새로운 신화에 의해 묘사하려했고, 헤세는 현실의 자연현상에 정신 Geist를 부여하여 질서가 지배하는 세계를 구성하려 했다.헤세는 횔덜린에게서 소위 “회상의 축제”라는 개념을 이어받았다. “회상의 축제”라는 개념은 헤세의 시에서 시간의 흐름을, 피할 수 없는 시간의 사슬을 탈피하고 초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시간의 탈피 외에도 헤세의 후기 시에는 언어와의 유희에 의해서 언어개념의 세계를 탈피하는 수단이 첨가된다. 그러나 언어개념의 탈피라는 시학은 헤세가 횔덜린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라 동양의 시와 동양철학에서 배운 것이다.

      • Hermann Hesses fru¨he Gedichte

        Noh, Tae-Han 한국헤세학회 2003 헤세연구 Vol.10 No.-

        헤세는 원래 시인으로서 작가생활을 시작했다. 열세 살 때 "시인이 아니면 그 어느 것도 되고 싶지 않다"고 결심한 헤세는 평생 이에 충실하려 노력했으며, 죽음의 순간까지도 「부러진 나무 가지의 삐걱대는 소리」 라는 시를 손질했다. 60여 년에 이르는 작가 생활 동안 헤세는 독일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시적 유산에 버금가는 시작품을 1400 편 이상 남겼다. 시인으로서의 헤세는 그러나 지금까지의 헤세 연구에서 소홀히 다루어졌다. 독일·프랑스 오스트리아·미국 등지에서는 그의 시에 대한 연구가 더러 있었지만, 한국에서의 헤세 시 연구는 극히 미미한 실정이다. 헤세 시에 대한 연구는 시작품들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이는 시·소설·수필·비평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헤세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특히 그의 소설작품들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데 유의미한 단서들을 제공해주며, 작가로서 또 인간로서 헤세가 겪게 되는 변화와 발전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들을 제시해 준다. 헤세의 시들은 그가 특정 이념이나 사조를 넘어 폭넓은 문학세계를 구축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헤세 평자들의 일치되는 견해에 따르면 그의 시 창작은 대체로 세 시기로 나누어져 전개되며, 각각의 시기는 시인이 자기 자신과 투쟁하고 인생과 대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도달하게 되는 여러 단계와, 시의 내용과 형식 양면에서 빠르게 나타나는 여러 경향들을 반영한다. 그러면서도 헤세의 시는 전체적으로 주제와 형식 양면에서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그의 시의 내용과 형식이 점차적으로 변형·변화·발전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일 뿐 아니라 특히 그의 초기 시가 크게 평가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헤세 시 창작의 초기는 1895년에서 시작하여 그가 정신적인 면에서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 1916년경까지 계속된다. 이 시기의 시들은 대부분 4행 연 셋으로 이루어지고 모티브나 주제가 소박하며 자연스러운 서정이 시의 분위기를 지배한다는 점에서 민요적이고 음악적이며 낭만적이다. 또한 이들 시에서는 음향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내면의 움직임이 통제되고 다듬어진 언어의 흐름 속에서 표현된다. 초기 시가 그러나 시적 기교를 배제하고 있는 것 아니다. 여기에서는 민요조의 노래를 읊조리는 순박한 청년의 모습뿐 아니라 꿈의 세계에 몰입하는 조숙한 기교주의자의 면모가 보이기도 하고, 비관적인 시각에서 스스로를 반성하는 회의주의자의 모습이 비치기도 한다. 소박하고 단순한 멜로디가 시의 분위기를 지배하면서도 그 덧없음이나 순간성에서 포착된 자연풍경·체험·기분 등이 새로운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순수한 음향, 소박하면서도 깊이 있는 어소, 명확하고 절제된 이미지, 보편적인 정서 등을 특색으로 하는 헤세의 초기 시들은 시인 헤세의 본질과 시적 재능을 순수하면서도 노련한 형식으로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헤세 시 창작의 초기를 대표하는 두 편의 시 「안개 속에서」 와 「엘리자베트 3」 을 초기 시의 일반적 특성과 관련지어 살펴본다.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헤세의 시 가운데 하나인 「안개 속에서」 는 헤세 시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인 '인간 실존의 고독'을 다루고 있으며, 헤세의 뛰어난 연애시 가운데 하나인 「엘리자베스 3」 은 탁월한 이미지 연결과 언어의 음악성으로 널리 애송되고 있는 시이다.

      • KCI등재

        헤세이티와 헤세이티즘

        최이선 대동철학회 2021 大同哲學 Vol.96 No.-

        헤세이티즘은 대물 양상성, 개별 본질, 동일성 조건, 개별화, 가능성의 크기 등 여러 논 의 문맥에서 도입되었다. 각각의 문맥에 따라 헤세이티즘은 조금씩 다른 논점과 형식화로 설명되었다. 본고는 헤세이티즘이 논의되는 몇 가지 주요 논의 맥락과 그 맥락에서의 헤세 이티즘이 어떻게 이해되는지, 그리고 그 문제점을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들을 벗 어나는, 더 강한 버전의 헤세이티즘을 제안해 볼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관련 개념들 을 수정하게 된다. (1) 헤세이티/디스니스라는 속성을 개별자를 포함한 속성으로 특징화하 는 것에서 비환원적 비질적 속성으로 특징화하는 전환, (2) 양상적 헤세이티즘 논의에서 벗어난 비양상적 헤세이티즘 논의의 가능성, (3) 헤세이티즘과 라이프니츠의 식별불가능 자의 동일성 원리가 경쟁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 (4) (질적 속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비환원적 동일성과 비환원적 개별성/구분성의 차이, 그리고 그에 대응하여 유일성 (uniqueness)과 단일성(singularity)의 차이, (5) 비환원적 개별성이 기존의 헤세이티즘의 문제점인 미미한 본질(trivial essence) 그리고 껍데기뿐인 가능성(empty possibility)을 어떻게 벗어나는지를 논의한다. Haecceitism has been introduced into various fields of discussion, de re modality, an individual essence, the identity condition, individuation, the size of possibility, etc. In these various topics, haecceitism has been understood and used in different ways. We analyze these characteristics of haecceitism, find the problems they bring about, and modify them to find a stronger version of haecceitism. In order to solve the problems, we attempt to establish (1) haecceity/thisness characterized in terms of an irreducible non-qualitative property rather than in terms of property including individuals, (2) the nonmodal theorem of haecceitism that could avoid the modal complications, (3) haecceitism compatible with Leibniz’s Principle of Identity of Indiscernibles, (4) the proper distinction between irreductive identity and irreductive individuality (to qualitative properties), isomorphic to the distinction between uniqueness and singularity of individuals, (5) the notion of irreductive individuality to avoid the infamous problems against haecceitism, the allowance of trivial individual essence and empty possibilities such as swapping and piling.

      • KCI등재

        헤세의 시에 대한 횔덜린의 영향

        Yu-Gundert, Irmgard 한국독일현대문학회 2005 뷔히너와 현대문학 Vol.24 No.-

        헤세는 일생동안 횔덜린의 시를 좋아한 시인이었다. 횔덜린의 영향은 헤세의 초기 시에서 시작해서 후기 시 전체에 이른다. 횔덜린의 영향은 또한 헤세의 시 창작 3가지 면에까지, 다시 말해 언어의 음악성, 시의 내용 그리고 시의 사상적 구조 등에까지 이른다. 이상의 횔덜린의 영향과 더불어 헤세의 시에는 반대로 횔덜린 영향에 역행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다시 말해 헤세의 시에는 횔덜린 시의 정신과 형식에 역행하는 요소들이 들어있는데 그것들은 독일 낭만주의 시의 영향, 그리고 후기에 와서는 인도와 동양 철학의 영향, 특히 중국 시의 영향이 된다. 특히 헤세에 대한 중국 시의 영향은 시의 내용을 순간적이고 논리적으로는 거의 규정할 수 없는 시로 만든다. 반면에 횔덜린의 시는 하나의 개념이 하나의 의미가 아니라 다양한 의미를, 그리고 하나의 문장이 하나의 내용이 아니라 다양한 내용을 발생케 하므로 난해한 시들이다. 헤세의 시에는 한편으로는 횔덜린의 영향과 다른 한편으로는 인도와 동양 사상이 양축을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헤세가 자주 사용하는 상징으로 초월(Transzendenz)의 경험을 의미하는 초월경험의 상징을 추구해본다. 이 초월경험이라는 상징에 의해서 헤세 시에 대한 2가지 영향이, 다시 말해 한편으로는 횔덜린의 영향과 다른 한편으로는 동양 철학과 동양 종교의 영향이 양립하면서도 서로 상승작용에 의해 헤세의 특유한 시가 형성됨이 인식된다.

      • KCI등재

        헤세 문학의 수용, 자기완성의 수신서

        안미영 ( Ahn Mi-young ) 한국문학언어학회(구 경북어문학회) 2017 어문론총 Vol.73 No.-

        이 논문은 헤세 문학이 한국에 수용되는 과정에 주목했다. 헤세 문학 수용의 특이성을 살펴보기 앞서 한국문학사의 전개과정과 대비하여 헤세 문학이 수용되는 과정을 천착했다. 근대문단에서 헤세는 동양 친화, 낭만주의, 반전(反戰) 작가로 소개되었다. 해방기에는 1946년 노벨문학수상과 함께 헤세의 문학적 성과에 관심을 가지고 작품의 구체적인 경향을 소개했으나, 내면을 탐구하는 낭만적 작가로 수용했다. 1950년대에 이르면 한국 대학의 독어독문학과가 개설됨으로써 독학문연구의 토대가 마련되고 헤세 문학의 번역과 소개가 활발해진다. 1960년대 이후에는 독일에서 학위를 받는 전공 지식인이 강단과 평단에서 활동하면서 헤세의 전집간행을 비롯하여 학술적 접근이 이루어졌다. 한국의 헤세문학 수용자들은 정치적이고 현실적인 맥락이 아니라 학문의 완성과 지적 성장을 위해 그의 문학을 읽고 논의했다. 1960~1970년대 이르면 헤세 문학은 자기완성의 수신서로 수용되었다. 『싯다르타』를 비롯한 동양적 정취의 작품이 수신서로서 지식인 작가들에게 감응을 주었다면, 『데미안』을 비롯한 『크눌프』,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등이 청소년의 성장소설 독본으로 수용되었다. 세계의 이해를 근거로 한 인간 탐구가 아니라 개인의 자기완성을 위한 수신서로서 헤세 소설을 수용했다. 헤세가 두 차례 세계전쟁을 경험하면서 현실에 저항하고 갈등했던 요소들이 배제 된 채, 성장소설이라는 범주에서 이해했으며 그 과정에서 방랑과 모험보다는 절제가 강조되었다. 헤세 소설이 자기완성의 수신서로 수용된 것은 수용자들의 지적 특이성에 기인한 탓이기도 하지만, 출판사를 비롯한 1960~70년대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성격도 한 몫 한다. 1962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실시되는 등 성장 위주의 사회논리가 팽창했으며, 이 시기에는 고도의 경제성장을 목표로 자본주의가 급격히 확산되었다. 방랑, 시행착오, 모험보다는 정진(精進), 절제, 성실, 근면이 요구되었다. 그런 까닭에 인간이 지닌 자유에 대한 탐구가 깊이 있게 개진되기 어려웠으며, 경제활동을 위해 사회적 개인이 갖추어야 할 기능을 구비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다. This study focuses on the process of accepting Hesse literature in Korea. The attention was drawn to the 1960s and 1970s when it was considered that interest in Hesse literature reached its peak. Before examining the specificity of acceptance of Hesse literature, this study grasped the process of accepting Hesse literature in preparation for the development of Korean literature. Hesse was introduced as an oriental-friendly, romantic, anti-war writer in the modern literary world. In the liberation space, with the prize of Nobel Prize in 1946, the specific tendency of his works was introduced with deep interest in his literary achievement, but he was understood as a romantic writer exploring the inside. By the 1950s, the academic foundation of German language and literature departments at Korean universities was established and the translation and introduction of Hesse literature became more active. After the 1960s, scholarly intellectuals who received a degree in Germany started to work in the classrooms and theaters, and began to access scholarly approaches, including publishing a complete collection of Hesse. Korean accepters read and discussed Hesse novels for academic completion and intellectual growth, not political and realistic contexts. As early as the 1960s and 1970s, Hesse literature was accepted as a discipline textbook of self-completion. "Siddhartta" and works with other Oriental moods were received as discipline textbooks to respond to intellectual writers, and "Demian", "Knulp", "Narziß und Goldmund" were accepted as youth growth novels. It was not a human inquiry based on the understanding of the world, but Hesse novels as a discipline textbook for self-completion of the individual. His works were understood in the category of growth novel, excluding elements that resisted and conflicted with reality as Hesse experienced two world wars, and in the process, wandering and adventure were regarded as wasted and temperance was emphasized. Hermann Hesse`s novels in the 1960s and 1970s were embraced by the self-completion discipline textbooks, which is the intellectual peculiarity of Hesse literature accepters but we cannot overlook the nature of the society as a whole, including the publishers. At that time, the social logic of growth centered on the five-year economic development plan was implemented from 1962, and capitalism was spread rapidly aiming at high economic growth. The situation was demanding devotion, temperance, sincerity and diligence rather than wandering, trial and error, adventure. For this reason, it was difficult to deeply explore the freedom of human beings and the focus was on the functions to be equipped as human beings for social activities and economic activities.

      • KCI등재

        Schwellenüberwindung im Problemfeld „Das Fremde und das Eigene“ - Die Hesse-Rezeption in Korea

        장정자 한국헤세학회 2009 헤세연구 Vol.22 No.-

        국제화, 세계화가 논의되고,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현실에서 “낯선 것”과 “자신의 고유함”사이에서 발생하는 대립은 국가 간, 문화 간의 대화를 통한 절충이 가능하다고 보는 이상적 시각과, 반대로 “문명의 충돌”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는 시각이 공존한다. 도대체 국제화의 야누스적 면모를 감당할 만한 중간이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문학의 수용미학이론, 혹은 수용사적 연구는 신일희가 말하는 감당할 만한 중간을 ‘한국, 혹은 동양에서의 헤세수용’에서 제시해줄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작가 헤르만 헤세의 경우를 택한 것은 유럽작가로서, 그것도 정통적인 경건주의 기독교 신학에 뿌리박고 있으면서도, 싯다르타, 동방순례, 유리알 유희 같이 아시아의 종교, 불교와 브라만교를, 고대 중국철학의 지혜를 주제로 다루는, 충돌이나 갈등없이 그야 말로 동,서양을 아우르는 헤세의 개방적인 관용의 세계관 때문이다, 이 논문에서는 우선 한국에서의 헤세수용의 연구결과들을 번역물, 한국 작가들에게 끼친 영향, 연구논문 및 연구서, 헤세수용의 근간이 되는 매(개)체 등 순서로 정리해 보았다. 헤세 수용에서 특징적인 것은 인터넷 강국으로서의 한국의 위상을 보여 주는 연구, 해석과 함께 헤세 팬들의 인터넷 활동을 통한 헤세수용의 확장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헤세 수용은 한편에서는 헤세 대중화와 맞물려 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작곡가, 시인, 미술애호가 정신분석 심리학자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러한 대중성 내지 다양성은 시대정신에 맞게, 문학이 “읽혀질 뿐만 아니라, 보여지고, 청취되고, 무대에 올려지고, 화폭에 담아지며, 노래로 불려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들은 단편적이고, 시대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오해”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학술연구를 하는 학자들에게 “달리보기”을 제시해 줌으로써 “풍요로움”으로, 차봉희의 표현을 빌리면, 수용의 “풍요로운 오해 fruchtbare Missverständnisse” 로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본다.

      • KCI등재

        화가 헤르만 헤세 - 치유로서의 그림그리기

        노태한 ( Noh Tae-han ) 한국독일언어문학회 2017 독일언어문학 Vol.0 No.77

        헤세는 무엇보다도 위대한 작가였다. 수많은 산문과 시, 서간, 비평문, 시사평론을 남겼다. 그러나 그는 작가인 것만큼 화가이기도 했다. 3천 점이 넘는 스케치와 수채화를 남겼다. 헤세는 그림 그리는 작가면서 글을 쓰는 화가였다. 이 글은 `화가 헤세`를 다룬다. 헤세는 수많은 화가들과 친교를 맺고 여러 미술 조류들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기는 했지만 그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거나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또한 그들로부터 직접적인 영향과 자극을 받지도 않았다. 작가로서나 화가로서 헤세는 자신만의 길을 걸었으며, 그럼으로써 두 예술 분야 모두에서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했다. 헤세는 그림그리기를 기쁨과 여유와 만족을 주는 행위, 대상세계로부터의 해방과 치유,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 삶을 견딜 수 있게 하고 의미를 잃어가는 문학창작에 거리를 가질 수 있게 하는 탈출구로 이해했다. 헤세의 그림에서는 `아름다움`이 중요했으며, 이 아름다움을 헤세는 스위스 테신 주의 다채로운 자연에서 발견했다. 작가로서와 화가로서 헤세의 이중재능은 두 예술 분야 모두에서 세인의 인정을 받았다. 두 가지 재능은 또한 상호간에 효과적인 영향을 미쳐서, 한쪽 재능이 없으면 다른 쪽이 불가능할 정도로 서로 밀접하게 결합되었다. 화가 활동과 관련한 헤세의 주옥같은 수상문, 글과 그림이 완벽한 조화를 보여주는 시와 산문, 화가의 내면 심리를 탁월하게 묘파하고 있는 소설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등은 헤세가 이중재능 소유자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도 `화가 헤세`와 그의 그림은 독창적이었다. Hermann Hesse ist vorrangig ein außergewohnlicher Schriftsteller. Er verfasste zahlreiche Prosawerke, Gedichte, Briefe, Buchkritiken und politische Schriften. Er ist aber auch Maler, der etwa 3.000 Bilder gemacht hat. Hesse ist ein Dichter, der malt und ein Maler, der dichtet. Mit vielen Kunstlern seiner Zeit war er bekannt und befreundet und er verfolgte die aktuellen Kunststromungen. Er bewegte sich aber nicht in den Kunstmetropolen der Welt und gab anderen Kunstlern keine neuen Impulse. Umgekehrt sind auch direkte Einflusse seiner Kunstlerfreunde kaum festzustellen. Bildnerisch wie schriftstellerisch ging Hesse ganz eigene Wege, was ihn zu einem authentischen Kunstler macht. Hesse sah seine Malerei als Freude, Befriedigung und Befreiung von der gegenstandlichen Welt, als “Ausweg, um in bittersten Zeiten das Leben ertragen zu konnen und um Distanz von der Literatur zu gewinnen.” Als Maler legte Hesse seinen Schwerpunkt auf das Schone. Schonheit fand er in der farbenfrohen Tessiner Landschaft, die er 1919 zu seiner “vorbestimmten Heimat” und zum “ersehnten Asyl” machte. Die poetische und malerische Doppelbegabung Hesses fand in beiden Kunstbereichen Anerkennung. Beide Talente befruchteten sich gegenseitig. Das eine ware ohne das andere kaum moglich gewesen. Seiner Doppelbegabung verdankt man zahlreiche Betrachtungen uber seine Maltatigkeit, verschiedenartige Verbindungen von Bild und Schrift und sogar eine ganze Erzahlung uber das Seelenleben eines Malers wie Klingsors letzter Sommer. Das alles macht Hermann Hesse und seine Bilder einmalig.

      • KCI등재

        Die drei Zen-Gedichte Hermann Hesses : Anverwandlung des Fremden ans Eigne

        Irmgard, Yu-Gundert 한국뷔히너학회 2003 뷔히너와 현대문학 Vol.21 No.-

        헤르만 헤세가 3개의 선불교 시를 쓴 것은 1960년 빌헬름 군데르트가 벽암록을 독일어로 번역한 것에 대한 반응이다. 따라서 3개의 선불교 시는 헤르만 헤세에 대한 선불교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3개의 선불교 시에는 헤세가 벽암록을 통해 새로 얻은 불교사상과 또 다른 종교적 철학적 사상들이 이상적으로 조화되어 내재해있다. 또 다른 종교적 철학적 사상들이란 인도의 불교, 중국의 도교, 그리고 서양의 기독교 신비설을 의미한다. 헤르만 헤세의 문학이 인도의 불교, 그리고 중국의 도교와 잘 조화된 문학이라는 사실은, 다시 말해 헤르만 헤세가 인도의 불교와 중국의 도교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로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헤르만 헤세의 문학이 선불교 사상과 서양의기독교 사상과 조화를 나타내는 문학이라는 사실은 새로운 것이다. 본 논문은 헤르만 헤세의 3개의 시를 분석함에 의해 여러 가지 종교적 전통과 사상을 추적하고자 한다. 본 논문의 초점은 서양 기독교의 신비설과동양의 신비한 사상이 만나는 점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의 신비설과 동양의 신비설, 양자의 신비설의 조화와 응화가 헤르만 헤세의 문학이고, 헤르만 헤세의 시라는 결론을 유도하려는 것이 본 논문의 목적이다.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