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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자의 상상력과 대중문화의 소통 : 현대 한국의 대중가요를 중심으로

        이종성 한국동서철학회 2012 동서철학연구 Vol.66 No.-

        장자는 그 동안 많은 문학가 및 예술가들에게 창조적 에너지와 모티프를 제공해 왔다. 대중문화에 대한 장자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크다. 그 이유는 장자가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철학적·문학적·예술적·문화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고는 장자의 철학적 상상력이 한국 대중가요에 접목된 경우를 찾아 그 접점의 담론을 몇 가지 주제로 나누어 살펴본 것이다. 클릭비의 <소요유>는 『장자』 제1편의 편명을 노래제목으로 그대로 차용한 경우에 해당하고, 푸른새벽의 <호접지몽>은 『장자』 『제물론』의 결론이기도 한 ‘호접지몽’의 이야기를 제목으로 차용했을 뿐만 아니라 노랫말의 구성 체계까지 비슷하게 구상한 특징이 있다. 그리고 『장자』에 자주 등장하는 여러 가지 은유들 중에서 새의 은유를 가요에 접목한 것들도 발견되는데, 이는 장자적 상상력의 대중가요화가 갖는 또 하나의 특징이다. 그 가운데 김도향의 <벽오동>에 나타난 봉황은 암울한 현실을 넘어서고자 하는 비판적 담론의 소재로 채택되었다. 또한 정광태·이태원이 부른 <도요새의 비밀>이나 안치환의 <알바트로스> 등도 비상의 염원과 자유를 노래한다는 점에서 장자의 봉황새의 은유적 이미지와 닮았다. 특히, 안치환의 <알바트로스>와 <똥파리와 인간>이라는 가요는 장자가 대비하는 ‘봉황새’와 ‘올빼미’의 관계와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양자는 서사구조의 형식과 내용이 매우 비슷하다. 자유로운 비상을 위해서는 현실적 장애물에 대한 준열한 저항정신이 전재되어야 함을 노래한다는 점에서 안치환의 새의 비유를 통한 해방정신은 장자의 ‘무위’의 자유정신을 닮았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장자의 상상력이 대중가요와 만나 꿈과 자유를 노래하고, 암울한 현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저항담론으로 이야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장자의 상상력은 끊임없이 현대의 대중가요와 만나 새롭게 창조·변형·생성되고 있는 것이다. 장자적 상상력의 지반에는 ‘소통’의 철학적 담론이 토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대중문화가 자칫 문화의 획일화와 속물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일각의 우려는 기우에 머물게 된다. 장자적 상상력의 원형 및 그 변용의 형태로 나타나는 다양한 문화들은 오히려 대중의 의식적 고양을 요청하며, 치열한 자기반성을 촉구하는 특이성을 나타낸다. 이러한 특이성은 장자의 상상력이 대중가요 이외의 또 다른 대중문화와의 소통에도 언제나 열려있음을 시사해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至今莊子給衆多文學家和藝術家們提供了創新性的題材和能量, 其對大衆文化的影響也흔大,之所以有這마大的影響, 是因爲莊子思想豊富的蘊涵著能構通大衆的哲學性, 文學性,藝術性, 文化性的想象力. 文本以莊子哲學的想象力與韓國大衆歌謠相接軌的情況爲例, 對其接點分幾個主題進行探討. 首先, Click-B 的《逍遙遊》 其歌名與 《莊子》第一篇的片名相同. Blue dawn 的《蝴蝶之夢》其歌名與《莊子》<齊物論>結論的“蝴蝶之夢”相同, 其說唱構成體系也흔像莊子的構想. 而且選取《莊子》的隱喩當中的鳥用于歌謠的情況也隨處可見, 這是莊子想象力被大衆歌謠化的零一個特征. 其中, 金道鄕《碧梧桐》的歌曲中鳳凰以要超越暗郁現實的批判素才來出現. 鄭光泰, 李泰遠唱的《鷸鳥的秘密》和安致環唱的《信天翁》等,歌唱的是渴望飛翔的願望和自由, 這一點흔像莊子的鳳凰所具有的隱喩.特別是安致環的 《信天翁》和《蒼蠅和人》歌曲中的隱喩比較,類似于莊子的鳳凰 (원鵝)‘和치’的比較, 兩者的敍事結構的形式和內容흔相似. 在唱了爲了自由的飛翔必須以現實障碍物的嚴峻的抵抗精神爲前提的一點上, 安致環的通過鳥來反映的自由精神和莊子的‘無爲"自由精神雷同. 通過以上考察可知, 莊子的想象力與大衆歌謠的相遇, 敍說了歌唱自由和夢想, 超托暗郁現實的 “反抗”話題.如此마莊子的想象力與現代的大衆歌謠相遇之後, 不團的被重新創造, 變形. 生成. 這是莊子的想象力‘疏通’的哲學話語爲其根底之敵.于是憂慮大衆文化如果不愼會引來文化的大衆化, 劃一化, 俗物化是多余的. 莊子的想象力圓形以及變容的形態出現的多樣文化, 反而顯現出羔羊大衆意識, 促進强烈繁盛自我的特性. 這一特性的意義在于,其實給我們莊子的想象力不信能喝大衆歌謠相疏通, 而且能근其他的大衆文化相疏通.

      • KCI등재

        장자(莊子)의 "도(道)"와 게슈탈트 심리치료의 "게슈탈트Gestalt"

        양승권 ( Seung Gueon Yang ) 동양철학연구회 2015 東洋哲學硏究 Vol.84 No.-

        이 논문은 장자莊子사상과 게슈탈트 심리치료의 방법론적인 친화성을 연구해 장자 사상의 현재적 의의를 확장했다. 펄스F.Perls에 의해서창안된 게슈탈트Gestalt 치료 기법은 기존의 여러 서양 심리학 분야들과동양의 도가道家사상 및 선불교 등이 접목되어 탄생한 분야다. 장자사상과 게슈탈트 심리치료는 실존적인 위기 상황에 대처해 삶의 방식을 ``존재중심``으로 이끌도록 자극한다. 이 논문은 장자 사상을 게슈탈트 심리치료와 연접시키면서 특히 장자의 ``도道`` 심급에 대해 집중했다. 필자는 ``게슈탈트Gestalt``를 개체에게 내재되어 있는 도道가 전체로서의 도道와 그때그때 합일되는 이미지 형성이라고 간주한다. 또한 게슈탈트심리치료에서 말하는 ``게슈탈트`` 형성을 잠시 스쳐가는 도의 실현에 대한 그때그때의 ``근본적인 느낌``과 실현이라고 전제한다. 총합적 의미의도道가 나에게 편재되어 있는 미시적 도道와 같은 지평에 있다는 것은 장자가 설파하는 도道담론의 핵심이다. 장자의 도는 일의적인 의미성도 아니고 무無의미성도 아닌 범汎의미성이다. 장자 사상이나 게슈탈트 심리치료는 모두 ``호모 파티엔스Homo Patiens``로서의 인간의 고통을 걷어내기 위한 이론이다. 장자 사상과 게슈탈트 심리치료는 ``공감 의식``을 중시한다. ``공감 의식``이란 나와 타자(자연환경을 포함한)의 단절을 다시 화해시키는 마음가짐이다. 장자의 방법과 게슈탈트 심리치료의 전제는 남에 의해서가 아닌 내 스스로에 의한 ``나 자신의 보살핌``이다. 펄스에 의하면 인간은 오직 자신의 진실한 본성으로서만 성장할 수 있다. 장자에게도 마음의 치료는 인위적인 노력이 아니라 ``본래 스스로 그러함``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 게슈탈트 심리치료도 인간을 결함을 가진존재라고 보지 않는다. 펄스에 따르면 식물이나 동물은 자신의 성장을 스스로 막지 않는데, 단지 인간만이 자신의 성장을 막는다. 장자도 하늘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뭇 생명들이 호흡을 원활히 하도록 구멍을 뚫어주고 있는데 인간만이 스스로 자기 구멍을 틀어막고 있다고 개탄한다. 인간의 타고난 본성은 정해진 원칙이 아니라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므로, 마치 아름다운 자연 대상을 완상하듯이 인간을 바라보아야만 한다. 이 점은 장자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였으며 게슈탈트 심리치료에서도 상담자가 내담자를 향해 지녀야만 할 기본적 태도다. 주로 우주론적 성격이 농후한 노자의 도道에 비해 장자의 도道가 유심론적 경향이 강한 측면을 생각해 보면, 장자 사상에 대한 현대 심리학적 연구는 지금보다 더욱 활발히 진행될 필요가 있다. 장자는 모든 변별되는 가치들을 하나로 소통시키고자 하는 데에 관심을 집중했으며, 현실 참여와 뒤로 물러섬 사이의 순환 체계를 특별히 강조했다. 이런 측면을 전면에 내세운 심리치료 유파가 바로 게슈탈트 심리치료다. 게슈탈트 심리치료는 크게 보아 ``동양사상+서구심리학``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본논문에서는 이를 ``동양사상×서구심리학``이라는 ``적분``적 차원으로 승화시키고자 했다. This paper has expanded present meanings of the ideas of Chuang Tzu by comparing them with the methodology of psychological treatment. Gestalt therapy developed by Fritz Perls is a field which was created by grafting Western various existing psychology fields onto Taoism and Zen Buddhism. The ideas of Chuang Tzu and Gestalt therapy stimulate ways of life into the "center of existence" from dealing with existential crisis situations. This paper especially focused on the concept of "Tao" of Chuang Tzu while compared with the Gestalt therapy. The writer considers Tao inside an individual to be united with Tao of the whole from time to time. Also, I premise that formation of "Gestalt" is a "fundamental feeling" case by case about the realization of Tao passing for a while. The thing that Tao of macroscopic meanings are on the same line with microscopic Tao inside me is the core in discussion of Tao which is said by Chuang Tzu. The ideas of Chuang Tzu and Gestalt therapy are all theories to remove pains of humans as "Homo Patiens". The ideas of Chuang Tzu and Gestalt therapy emphasize "awareness of sympathy". The awareness is mental attitude to reconcile severance between me and others (including natural environment) again. The method of Chuang Tzu and the premise of Gestalt therapy are "caring for myself" by not others but myself. According to Perls, humans can grow only by their true essentiality. In Chuang Tzu, mental treatment can be realized by "originally being done of itself", not by artificial effort. In Gestalt therapy, humans are considered as existence equipped with everything already. According to Perls, plants or animals do not block their own growth but only humans block their own growth. Chuang Tzu laments that the sky drills holes day and night so that lives can breathe smoothly but only humans close their own holes for themselves. The innate natures of humans are different per person. So, we should see humans like appreciating beautiful nature. The point was the attitude that Chuang Tzu treated people and also a basic attitude which should be had by counselors for clients. Tao of Chuang Tzu emphasizes minds compared with Tao of Lao Tzu which is mainly imbued with cosmology. Considering the character of the ideas of Chuang Tzu, modern psychological studies on the ideas of Chuang Tzu are necessary to expedite more actively. Chuang Tzu intended to make diverse values communicated into one. And, he particularly underlined circulation between participation in reality and stepping back from reality. A school of psychological treatment which asserted this aspect on the front is Gestalt therapy. The therapy may be expressed "Orientalism + Occidental psychology" broadly. However, this paper tried to sublimate it into the dimension of "integral" called "Orientalism × Occidental psychology".

      • KCI등재

        생태철학적 시야에서 본 장자 학파의 기술관

        황종원(Hwang JongWon) 한국중국문화학회 2022 中國學論叢 Vol.- No.73

        필자는 본문에서 장자 학파의 기술관이 지닌 특징을 밝히고 그것의 생태 철학적 의의를 드러냈다. 장자 학파의 견해에 따르면, 자연의 운동은 자연성을 따르는 데 반해, 인간의 기술은 작위로 치닫는다. 이 작위적 기술의 실질은 상혼과 제휴한 공업 기술이다. 우리는 『장자』 곳곳에서 상공업 기술에 대한 비판의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인간이 소나 말을 이용하는 것을 동물 학대라 주장하고, 농사가 상공업적 농사가 될 때 일어날 재앙을 경고하며, ‘기심’과 결합한 기계 기술의 사용을 거부한 것 등이 다 그것들이다. 하지만 장자 학파는 단순히 기술을 비판만 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상공업적 기술의 폐해를 극복한 채집적 기술을 추구했다. 이 기술을 발휘하려면 갖가지 자기중심적인 욕망을 버리고, 그 욕망에 이끌려 사물을 대상화하는 ‘자아’를 잊어야 한다. 이에 장자는 심재와 좌망의 수양을 제안했다. 장자 학파가 추구한 기술은 이 수양을 통해 자기중심적 욕망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자연의 자연성을 최대한 존중하며 따라가는 기술이다. 포정이 소를 해체할 때 사용한 기술을 비롯해, 곱사등이가 물건 줍듯이 매미를 잡는 기술, 목수 경이 기운을 소모함이 없이 쇠북 받침을 만들 때 사용한 기술 등은 모두 채집적 기술이다. 채집적 기술은 단순히 원시 사회로 후퇴하는 기술이 아니다. 오늘날 이것은 자연의 원초적 생명성을 되살리는 현대의 기술 사용 원칙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장자 학파 기술관의 생태철학적인 의의이다. 笔者在本文中着重探讨了庄子学派技术观的特征及其生态哲学意义。根据该学派的说法,万物的运动都遵循“道”之“氣化”原則,而人类的技术却走向“僞”。这“僞”的技术實際上就是与商魂結合的工业技术。我们在《庄子》一书中到处都可以找到该学派对工商业技术的批判。例如,他们主张人类利用牛马是虐待动物的行为,警农业成为工商业农业时发生的灾难,拒绝使用与“机心”相结合的机械技术。然而,庄子学派并没有简单地批评技术。他们还追求一种采集技术。要想发挥这一技术,必须摒弃各种以自我为中心的欲望,忘记被这种欲望所吸引,将事物对象化的“自我”。于是,庄子就提出了“心斋”与“坐忘”的修养。该学派所追求的是在寡欲的前提下尊重并听从“物”之自然性的技术。庖丁解牛时采取的技术、驼背像捡东西一样抓蝉的技术、木匠庆不消耗力气制作铁鼓垫时使用的技术等皆是一种采集技术。这种采集技术并不是简单地向原始社会后退的技术。如今,它还可以成为恢复自然原始生命性的现代技术使用原则,而这是庄子学派技术观的生态哲学意义所在。

      • KCI등재

        『莊子』「天下篇」作者一考

        서대원 한국도교문화학회 2023 道敎文化硏究 Vol.59 No.-

        『莊子‧天下篇』은 매우 유명한 선진 작품이며 또한 미문이기도 하다. 현대의 많은 연구자들은 이 편이 최초의 중국 철학사라 여기기도 하고 적지 않은 학자들은 이 편을 통해 선진 사상을 연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래부터 특히 현대에 이르러 이 편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이 『莊子‧天下篇』이 누구의 작품이냐 하는 것이다. 우선 莊子 작품이라는 주장과 莊子 작품이 아니라는 주장으로 나누어지며 莊子 작품이 아니라는 측은 장자 후학, 유학의 영향을 받은 도가 학자, 순자 혹은 그 문인 정도의 설이 유력하다. 그리고 현재에는 『莊子‧天下篇』은 莊子 작품이 아니라는 설이 유력한 듯하다. 그럼에도 『莊子‧天下篇』의 저자에 대한 논의는 끝이 나지 않은 듯하다. 필자는 『莊子‧天下篇』이 장자의 작품이 아니라는 여러 근거를 살펴보았으나 그것이 ‘분명한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 이외의 근거를 통해, 순자나 그의 후학, 혹은 유학에 영향을 받은 도가 더 나가 장자 문인 등이 『莊子‧天下篇』의 작자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미 앞에서 언급한 여러 이유로, 필자는 『莊子‧天下篇』이 장자 본인의 작품이라 판단한다. 최소한 매우 분명한 근거나 자료가 나오기 전까지는 『莊子‧天下篇』은 장자의 작품이라 여겨야 정당할 것이다. 〈Tianxiapian〉 in 《Zhangzi》 is a famously advanced piece and the last section of this work. Many contemporary scholars consider 〈Tianxiapian〉 the first history of Chinese philosophy and not a few of them study the Chinese advanced idea through it. However, since ancient times there has been a lot of debate among scholars about 〈Tianxiapian〉 and this is more so in modern times. One of the most debated subjects is who the true author of 〈Tianxiapian〉 is, or whether 〈Tianxiapian〉 was written by Zhangzi himself or not. Those who doubt that it was written by Zhangzi argue that it was probably written by either a student of Zhangzi’s, or Xunzi[荀子], a Daoim scholar influenced by Confucianism, or another writer from Zhangsi school. Even today, the dominant view seems to be that the true author of 〈Tianxiapian〉 in 《Zhangzi》 was not Zhangzi. Nevertheless, the debate about the identity of this work does not seem to reach a conclusion. This paper examined various grounds of the argument that the author of 〈Tianxiapian〉 was not Zhangzi, but has concluded that none of the grounds are reliable. Furthermore, by reviewing many other bases, this paper maintains that Xunzi[荀子] or his student, or another Daoism scholar influenced by Confucianism, or any other writer of Zhangzi school could not be the author of 〈Tianxiapian〉. Rather, because of those reasons aforementioned, this paper holds that 〈Tianxiapian〉 was indeed written by Zhangzi himself. Until a definite evidence or proof material is found, it must be fair that we assume that Zhangzi was the author of 〈Tianxiapian〉 in 《Zhang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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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자의 죽음에 대한 태도

        정우진(Jung Woo jin) 한국동양철학회 2015 동양철학 Vol.0 No.44

        장자는 죽음의 철학자다. 그는 죽음의 불가지론자였지만, 죽음에 관해 많은 말을 남겼다. 그에게 죽음은 중요한 철학적 테제였음에 분명하다. 선행연구자들은 장자의 죽음관을 그의 세계관으로부터 구성해냈다. 그들은 장자가 죽음과 삶을 구분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장자가 죽음을 찬양했던 것처럼 말하기도 했다. 장자의 죽음관을 정확히 도출하기 위해 고찰한 장자의 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정밀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달한 결론이다. 본고에서는 장자의 죽음에 대한 태도가 환영과 거부의 사이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주장에 도달하는 와중에 생명, 개체, 기 그리고 감응의 문제를 다뤘다. 장자의 생명은 생기다. 생기는 언표되기 어렵지만 명확하게 체험할 수 있다. 인식과 존재를 섞어 놓는 기는 상징적 존재로서, 변화의 조짐이기도 했다. 변화는 일기의 변화였으므로, 세계와 격절된 개체는 성립할 수 없었다. 장자의 개체는 개방적이었다. 개방된 개체는 세상과 감응했다. 자의식은 감응을 방어했으므로, 도가수양론에서는 자의식의 제어를 요구했고, 자의식이 제거된 상태의 체험을 중시했다. 호흡법과 같은 명상법이 중시된 까닭이다. 죽음은 감응을 방지하는 자의식의 소거를 의미하는 동시에 감응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장자에게 죽음은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니다. 다만, 죽음에 저항하는 것은 세상과의 격절을 만들고 감응을 거부하는 것이었으므로, 장자는 죽음을 애써 거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장자의 죽음에 대한 태도는 환영과 거부의 사이에서 찾아야 한다. Zhuangzi was a philosopher who had interest in the matter of death. Considering the fact the other contemporary philosophists did not show much interest in this matter, he can be told as a philosophist of death. Previous studies, which studied the view of death of Zhuangzi through his world-view, reached similar conclusion that Zhuangzi thought death is similar to life. I don't think this conclusion is wrong. However, more precise investigation shows a little difference with the conclusion of previous studies. The life is understood by the concept of qi(氣), which is clear, but not comprehensible with language. Qi is a symbol of change and change itself. Death was understood as the change of qi by Zhuangzi. The individuality that is departed from the world is not to be accepted on the premise there the world is one qi itself. The individuality of Zhuangzi should be an open system. A closed individuality can't be imagined in the world-view of Zhuangzi. Therefore, there is not a clear distinction in the world-view of Zhuangzi. An individual as an open system interacts with circumstance and each other. Qi mediated this interaction, whose meditation is called as resonance. The self-cultivation of Daoism recommended the resonance through qi. Death means not only the disappearance of self-consciousness that prevented resonance but also the impossibility of resonance. Therefore, Zhunagzi is not to be thought that he accepted death with joy. For the refusal of death proves the failure of resonance. Therefore, his stance on the matter of death could be placed between acception of death with joy and refusal with obstin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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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가적(道家的) 은사(隱士)의 삶과 웰빙 : 장자(莊子) 심은적(心隱的) 삶의 태도를 중심으로

        조민환 ( Min Hwan Jo ) 東洋哲學硏究會 2008 東洋哲學硏究 Vol.53 No.-

        웰빙은 일종의 몸의 철학이다. 하지만 도가적 차원에서 볼 때 단순히 몸과 관련된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도가는 外物로부터 부림을 당하지 않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심신의 자유로움과 안락함을 추구하고자 한다. 이런 점이 가장 잘 나타나는 것은 장자철학이다. 장자는 기본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일반적인 웰빙과 다른 식 혹은 다른 차원의 웰빙을 찾고자 한다. 장자는 기본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웰빙식 차원에 맞추어 논의하지는 않았다. 즉 장자가 살았던 시대도 오늘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한 시대였고, 따라서 장자가 논의한 사유를 가지고 오늘날 웰빙에 적용한다는 것은 애당초 무리가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자가 말한 인간의 외물에 사역당하는 삶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 안타까움으로부터 벗어나라고 제시하는 철학에는 오늘날 웰빙의 관점에서 보아도 적용 가능한 면이 많다. 왜냐하면 장자가 살던 그 시대의 인간들이 추구하고 가치를 부여했던 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추구하고 가치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과 일정 정도 통하는 면이 있고, 그것에 대한 극복방안은 우리가 인간인 이상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장자가 말하는"逍遙遊" 는 그동안 내가 옳았고 행복했다고 여겼던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의미가 있고 또 나를 현실에서부터 벗어나게 하는 초탈의 의미, 달관의 의미가 있다. 이런 점에서 장자는 현실 초월이 아닌 현실에 살면서 내가 진정으로 만족하고 즐거워하며 편안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에 장자는 세속을 떠난 形隱적 은사보다는 세속에 살면서 세속의 외물로부터 자유로운 心隱적 은사를 말한다. 그 心隱적 은사의 삶은 逍遙정신을 기본으로 하면서 도의 체득을 통한 活身, 存生, 養神, 長生등을 꾀한다. 아울러 소요유를 통하여 至美至樂을 얻고 그러한 至樂無樂의 삶을 통하여忘適之適을 추구하고자 한다. 즉 遊心의 경지에서 遊世하는 至人의 자유로운 삶의 방식은 도가적 웰빙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인간의 수명이 이전에 비해 보다 늘어난 상태에서 신체적으로 온전한 몸으로, 건강한 몸으로 여생을 마치는 데에 단순 養形의 차원이 아닌 몸과 마음을 모두 편안하고 안락하게 하는 活身과 全生, 養神, 長生을 꾀하는 장자 식의 삶의 방식은 오늘날의 웰빙을 추구하는 삶과 깊은 관련성이 있다고 본다. 隱士和隱逸文化, 是中國傳統文化一個獨特的現象. 中國的隱士, 在其隱居生活中所追求的生活方式, 井神樂趣和價値理想, 都是與西方的隱士全然不同的. 隱逸作爲一種文化的存在, 타包括古代士人普遍追求的淸高的人格理想, 淡泊寧靜的生活方式和典雅的文化品位. 們知道莊子是一個隱士. 對莊子來說, 由于看到了避世型的隱士的困境, 所以他選擇了隱居于人群中這樣一種生活方式, 莊子就由這種隱居方式, 開闢出一種新的隱士類型. 莊子選擇是一種所謂心隱的方式, 這種心隱就是說, 我的形體可以不隱藏, 可以生活在這個世界上. 我們讀莊子的話, 可以看到里面흔多關于心的論述, 心可以獨立的, 但是形是不可以的, 形是一個比較被動的存在. 可是心却可 以通過一定的工夫和修煉, 達到某種境界, 和世俗的人群, 世俗的心靈不一樣的東西. 莊子通過這樣一種心隱的方式, 通過忘形給隱士的生活提供了一種新的類型, 叫陸沈. 我們可以說現代意義上的休閑理論和休閑事業, 與中國傳統的隱逸文化沒有什마必然關係. 但是, 當社會文名進一步發展, 當現代人們把對休閑的思考從打發空餘時間上升到追求人生意義上, 情況就不太一樣了. 現代物質文明的高度發展旣帶給人類利益, 也給對人類巨大的壓力, 如何在現代文明的條件下擺脫異化, 擺脫必然性, 尋조眞正的愉快和幸福, 追尋靈魂的高尙, 乃至尋조生命的意義, 都是現代思想家們汲汲以求其答案的大問題. 然而這在中國的隱逸文化傳統中, 却幾乎從來就不是問題. 從莊子的逍遙遊精神, 到後代隱士們所追求的那種閑寂, 恬淡, 寧靜, 悠遠的境界, 以及隱逸文化所標擧的那種淸高的人格理想, 淡泊寧靜的生活方式和典雅的文化品位, 在這些中國古代文人那里, 似乎從來就不曾缺少休閑. 休閑的獲得需要一種遊戱精神, 而遊戱精神終極之說, 是一種遊的心態. 遊有三義, 達觀, 閑寂, 忘我. 莊子提倡遊心, 必先有遊心者, 然後才能遊世. 這種心隱的隱士生方式和精神樂趣有關係現代的wellbeing方式和思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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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자의 언어에 대한 견해

        최유진 대동철학회 2008 大同哲學 Vol.45 No.-

        이 논문은 장자의 언어에 대한 견해에 대해 연구한 것이다. 장자는 당시의 언어 사용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그리하여 「장자」에는 언어에 대한 부정적 표현이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장자가 전적으로 언어를 부정했다고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존하는 「장자」가 그 증거이다. 그러면 장자의 언어에 대한 견해는 어떠한가? 이 논문에서는 먼저 그가 언어와 의미의 관계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에 대해 논의하였다. 장자는 언어를 고정불변의 알맹이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에 대해서 비판하고 언어는 수단에 불과함을 주장하고 있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도와 언어의 한계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장자 사상의 핵심인 도를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기본적으로 도는 말로 할 수 없다는 것이 장자의 주장이다. 그는 그것을 여러 방면으로 주장하여 도는 단순한 언어적 차원이 아님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언어로 도를 전달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또한 그의 주장이다. 기존의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하면 가능하다고 본다. 따라서 다음으로는 장자의 표현방법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장자」에는 기존의 표현 방법과는 다른 독특한 표현 방법이 있다. 불언지언(不言之言), 말과 침묵을 떠난 말, 망언(忘言)의 말이 그것이다. 전통적으로는 우언, 중언, 치언의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그밖에 그는 부정, 우화, 비유 등의 방법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 도이긴 하지만 도의 정신으로 또는 도의 방식으로 언어를 사용한다면 도의 표현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장자의 주장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장자의 이상적인 언어는 바로 걸림이 없는 도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This thesis is a study on the Zhuangzi's view of language. Zhuangzi was critical of the usages of language of scholars of that time. Therefore there are many negative expressions about language in the book of Zhuangzi. But Zhuangzi did not negate language entirely. Then what's the Zhuangzi's view of language? In this paper, firstly we examined the Zhuangzi's view of relation of language and meaning. He argued that the name doesn't have any permanent essence. And language is not a end but a means. It's a means of meaning. Secondly we discussed the relation of Dao and language. Zhuangzi insisted that Dao couldn't be expressed by language basically. So we have to use other means to convey Dao. Zhuangzi expressed that as a language of non-language. Thirdly we examined the means of expression by Zhuangzi. Those are three famous modes of Zhuangzi's saying- 'dwelling words'(yuyan), 'double-layered words'(chongyan), 'goblet words'(zhiyan). And Zhuangzi used denegation, paradox and irony. In conclusion we can say that Zhuangzi's language is a language of Dao. Attaining Dao is the most important in Zhuangzi. And the language of Dao is the best language.

      • KCI등재

        『莊子』 예술론에 대한 반성적 시론

        이종선 동양철학연구회 2013 東洋哲學硏究 Vol.74 No.-

        『Chuang-tzu』 has never regarded art as purpose or object, and never pursued specific art. However, after Xu Fu-guanread Chuang-tzu(莊子) as art in his Chuang-tzu spirit of Chinese Art』, Chuang-tzu has been led to a major breakthrough to be understood as “the spirit of art”. Like this, the statements that 『Chuang-tzu』 are understood as art conflict wit 『Chuang-tzu』. Thus, introspection work is requested whether the points expanding denotation of 『Chuang-tzu』 to art are valid suggestions or not. The introspection work should be accomplished with ‘Chuang-tzu can be understood by Chuang-tzu’. Namely, words, writings, concepts, and statements of Chuang-tzu should be considered and accomplished by 『Chuang-tzu』Art or the spirit of art cannot be found in thoughts of Chuang-tzu. But, we can saythat 『Chuang-tzu』 reflected by prism of Confucianism opened the rise of art. Though we probably say 『Chuang-tzu』 contains philosophical backgrounds which enabled later generations’ artworks or final grounds where art can be accomplished, grounds of the Confucianism was necessary for Chuang-tzu to expand the denotation into art or the spirit of art. The thoughts of ‘Xuanxue’ played the part of role. Therefore, the thoughts of Chuang-tzu and the thoughts of ‘Xuanxue’ should be separated. 『장자』는 예술을 목적이나 대상으로 삼은 적이 없으며, 특정한 예술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서복관이 『중국예술정신』에서 『장자』를 ‘예술’로 讀解한 이후, 『장자』는 “예술” 혹은 “예술정신”으로 이해되는 획기적 전환을 맞게 된다. 이렇듯 『장자』를 예술로 이해하는 진술들은 『장자』와는 모순된다. 그러므로 『장자』의 외연을 예술의 영역까지 확장하는 논지들이 『장자』에 근거한 타당한 주장인지 등에 대한 반성작업이 요청된다. 이때의 반성작업은 ‘以莊解莊’, 즉 『장자』의 말과 글, 개념과 진술로써 『장자』의 “예술성”을 되 집어 보아야 하는 작업이다. 물론 미학연구 방법론에 따라 감성론이나 심미론 등의 측면에서 『장자』의 사유를 심미감성론으로 고찰해본다면 그것은 가능할 것이다. 美/醜 등의 개념이나, 함지악 등이 심미감성론적 이해의 틀이 될 수 있으며, 아울러 心의 高揚의 과정인 숭고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감성론⋅심미론의 영역으로 미학적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렇듯 미학연구방법론에 근거하여 『장자』를 반성하여 볼 때, 『장자』의 사유에서 예술 혹은 예술정신을 찾아 볼 수는 없다. 장자의 사유는 예술이나 문화를 온축하여 전해주는 人爲가 아니라 無爲無不爲, 無爲自然을 주된 내용으로 하기 때문이다. 다만 儒學적 프리즘에 투영된 장자가 예술의 흥기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장자의 사유가 내용으로써 유가적 형식과 만나 예술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장자』에는 후대의 예술작품이 가능하게 된 철학적 배경이나, 예술이 성립할 수 있는 최후의 근거들은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예술 혹은 예술정신으로 외연을 넓혀 가는대는 인위와 인문적인 儒學의 틀거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 역할을 담당한 사유가 바로 玄學이었다. 그러므로 『장자』의 사유와 현학의 사유는 구별되어야 한다.

      • KCI등재

        <장자못> 전설과의 비교를 통해서 본 <장자풀이>의 인물 형상화 방식과 신화적 의미

        정제호 고려대학교 한국언어문화학술확산연구소 2017 Journal of Korean Culture Vol.36 No.-

        This study explores and describes mythic meaning through the depiction of characters in a shaman song, <Jangjapuli>. In this study, the song is compared with <Jangjamot> passed down as a myth in order to analyze mythic meaning of <Jangjapuli>. Narrative structure in the introduction is analogous between the two pieces. However, the two pieces proceed separatively toward different endings as a result of Daughter-in-law's choices concerning salvation for a monk. The difference is decisive factor for figuring out the meaning of <Jangjapuli>. Daughter-in-low in <Jangjapuli> is not just a facilitator. She foresees Jangja's death, practices hospitality to messengers of death, and overcomes critical situations with her wisdom. This Daughter-in-low's conduct could not be considered an ordinary person and is dissimilar to Daughter-in-low in <Jangjamot>. Nevertheless, Daughter-in-low in <Jangjapuli> is not considered divine and not assigned holy duty. That is because she behaves as a middleman at home, in demonstrating abilities and between God and hum ans. Especially, she arbitrates in disputes between God and humans by practicing hospitality to God and consoling humans who are in crisis of death. In addition, she behaves as a middleman consistently, as a result, she cannot be considered as divine. However, she is analogous to a shaman. She presents the sense of afterlife and builds a chamber for comforting humans by connecting with God. In this context, <Jangjapuli> generates its own mythological world view as a shaman song by the depiction of characters. From this point of view, the point of <Jangjapuli> is to present characteristics of the death angels. The characteristics appear clearly in the relationship between Jangja as a human, Daughter-in-law as a middleman, and God as death angels. 본고는 <장자풀이>의 인물 형상화 방식을 통해 이 무가가 갖는 신화적 의미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장자풀이>가 갖는 신화적 의미를 분석하기 위해 본고에서는 전설로 전승되는 <장자못>과 비교를 수행하였다. <장자못> 전설과 <장자풀이>는 초반부 서사를 거의 동일하게 가져간다. 하지만 도승의 구원 시도에 대한 며느리의 선택에서 두 작품은 엇갈리며 서로 다른 결말을 향해 달려가게 된다. 이렇게 <장자풀이>가 초반부를 <장자못> 전설과 유사하게 가져가면서도 며느리의 선택을 통해 후반부를 다르게 가져가는 것은 작품이 갖는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지점이라 볼 수 있다. 특히 <장자풀이>의 며느리는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다. 장자의 죽음을 정확하게 예견하고, 굿을 열어 저승차사들을 대접하고, 다시 장자를 잡으러 온 차사들로 인한 위기를 지혜로써 극복하는 인물이다. 이러한 며느리의 모습은 범인으로 평가할 수 없는 모습으로, <장자못>의 며느리와도 큰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장자풀이>의 며느리는 신으로 좌정하거나, 신직을 받는 인물이 아니다. 이렇게 <장자풀이>의 며느리가 신격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은 그녀가 계속해서 ‘중간자’로 위치하고 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며느리는 세 가지 층위, 바로 ‘집안 내에서’, ‘능력을 발휘함에서’, ‘인간과 신의 관계에서’ 중간자로 위치한다. 이러한 며느리의 위치는 인간과 신을 중재하는 인물로서 자리하기 때문에 중간자로 볼 수 있다. 죽음의 위기에 처한 인간을 위로하고, 인간에게 죽음을 내리는 신을 대접하여 양자 간의 상생을 이끌어내는 인물이 바로 며느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장자풀이>의 며느리는 계속해서 ‘중간자’로 존재하기 때문에 신격으로 좌정하지 못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이런 며느리의 모습은 신과 인간을 대리하고 중계하는 무당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무당들은 <장자풀이>의 며느리를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투영하고, 무가 안에서 활약하는 양상을 보인 것이다. 저승에 대한 관념을 제시하고, 그 안에서 신과 연결될 수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제시함으로써, 굿에 참여한 인간들을 위로 할 수 있는 지점들을 만들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장자풀이>는 며느리의 인물 형상화 방식을 통해 하나의 무가로서 갖는 신화적 세계관을 만들어 나갔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장자풀이>는 장자도 며느리도 신이 아닌 존재가 된다. 이렇게 신이 아닌 등장인물들이 제시될 수 있는 것은 <장자풀이>가 갖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 바로 ‘명관’들의 성격을 제시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즉, <장자풀이>의 중심은 바로 저승차사와 같은 명관들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장자 등에 초점을 맞춰 <장자풀이>의 신성성을 약하게 평가한 것은 재고되어야 한다. 오히려 <장자풀이>는 인간인 장자, 중간자인 며느리, 신인 저승차사의 관계 속에서 명관들의 성격을 제시하는 무가로서의 기능을 명확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고를 통해 장자, 며느리의 인물 특성이 보다 분명하게 제시됨으로써 <장자풀이>가 명관들의 성격을 풀어주는 무가로서의 성격을 명확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KCI등재

        일반 논문 : 『장자(莊子)』 예술론에 대한 반성적 시론

        이종선 ( Jong Sun Yi ) 동양철학연구회 2013 東洋哲學硏究 Vol.74 No.-

        『장자』는 예술을 목적이나 대상으로 삼은 적이 없으며, 특정한 예술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서복관이 『중국예술정신』에서 『장자』를 ‘예술’로 讀解한 이후, 『장자』는 “예술” 혹은 “예술정신”으로 이해되는 획기적 전환을 맞게 된다. 이렇듯 『장자』를 예술로 이해하는 진술들은 장자와는 모순된다. 그러므로 『장자』의 외연을 예술의 영역까지 확장하는 논지들이 『장자』에 근거한 타당한 주장인지 등에 대한 반성작업이 요청된다. 이때의 반성작업은 ‘以莊解莊’, 즉 『장자』의 말과 글, 개념과 진술로써 『장자』의 “예술성”을 되 집어 보아야 하는 작업이다. 물론 미학연구 방법론에 따라 감성론이나 심미론 등의 측면에서 장자의 사유를 심미감성론으로 고찰해본다면 그것은 가능할 것이다. 美/醜등의 개념이나, 함지악 등이 심미감성론적 이해의 틀이 될 수 있으며, 아울러 心의 高揚의 과정인 숭고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감성론·심미론의 영역으로 미학적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렇듯 미학연구방법론에 근거하여 『장자』를 반성하여 볼 때, 『장자』의 사유에서 예술 혹은 예술정신을 찾아 볼 수는 없다. 장자의 사유는 예술이나 문화를 온축하여 전해주는 人爲가 아니라 無爲無不爲, 無爲自然을 주된 내용으로 하기 때문이다. 다만 儒學적 프리즘에 투영된 장자가 예술의 흥기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장자의 사유가 내용으로써 유가적 형식과 만나 예술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장자』에는 후대의 예술작품이 가능하게 된 철학적 배경이나, 예술이 성립할 수 있는 최후의 근거들은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예술 혹은 예술정신으로 외연을 넓혀 가는대는 인위와 인문적인 儒學의 틀거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 역할을 담당한 사유가 바로 玄學이었다. 그러므로 장자의 사유와 현학의 사유는 구별되어야 한다. Chuang-tzu has never regarded art as purpose or object, and never pursued specific art. However, after Xu Fu-guanread Chuang-tzu(莊子) as art in his Chuang-tzu spirit of Chinese Art, Chuang-tzu has been led to a major breakthrough to be understood as “the spirit of art”. Like this, the statements that Chuang-tzu are understood as art conflict wit Chuang-tzu. Thus, introspection work is requested whether the points expanding denotation of Chuang-tzu to art are valid suggestions or not. The introspection work should be accomplished with ‘Chuang-tzu can be understood by Chuang-tzu’. Namely, words, writings, concepts, and statements of Chuang-tzu should be considered and accomplished by Chuang-tzu. Art or the spirit of art cannot be found in thoughts of Chuang-tzu. But, we can saythat Chuang-tzu reflected by prism of Confucianism opened the rise of art. Though we probably say Chuang-tzu contains philosophical backgrounds which enabled later generations’ artworks or final grounds where art can be accomplished, grounds of the Confucianism was necessary for Chuang-tzu to expand the denotation into art or the spirit of art. The thoughts of ‘Xuanxue’ played the part of role. Therefore, the thoughts of Chuang-tzu and the thoughts of ‘Xuanxue’ should be separ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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