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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南田 元仲植의 ‘筆隱’에 담긴 隱逸적 삶

        조민환(Jo, Min-hwan) 한국양명학회 2016 陽明學 Vol.0 No.45

        과거 중국역사에서 出仕와 隱逸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과감하게 은일을 택한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가 바로 東晋의 陶淵明이었다. 도연명은 歸去來한 心遠의 정황을『귀거래사』에 진솔하게 표현하는데, 南田 元仲植은 이런 도연명의 귀거래 한 삶을 본받고자 하였다. 남전이 즐겨 쓴 문구 중에는 虛靜한 심령을 반영하는‘閑’자, ‘虛’자, ‘靜’자를 비롯하여 ‘무엇 너머’라는 의미의‘外’자, ‘세속적 가치 있음이란 것이 없다’는 의미의‘無’자 등이 많이 보인다. 이런 단어들은 바로 心遠의 은일적 삶을 반영한다. 이같은 남전의 ‘도연명 따라 하기’는 서예의 입장에서 볼 때, 心遠에서 출발한 참된 서예를 통해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밝히고자 한 還我의 서예미학이었다. 남전은 ‘환아정신’에서 출발하여 爲己之學으로서의 서예를 실천하고자 하였다. 남전의 筆隱 지향적 삶은 ‘山靜日長’에 담긴 無事의 虛靜한 은일적 삶으로 이어진다. 남전은 은일적 삶을 ‘閑’자를 통해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많은 시를 통해 寓意하고자 한다. 아울러 다양한 禪詩를 통해 세속적인 공명에 얽매이지 않고 우주대자연에 자유롭게 逍遙自在하고자 하는 정신경지를 추구하고 있다. 남전은 최종적으로 “物外遊, 心無累”의 逍遙自在의 경지를 붓과 함께 하고자 했다. 기교의 工拙 與否를 따지는 것에서 벗어나 자신의 천연의 본성을 붓에 담아 자유롭게 펼치고자 하였다. 이같은 사유는 궁극적으로 ‘서예란 무엇인가’에 대한 남전의 답으로 이어졌다. 바로 인문예술로서의 서예인식과 逸格 지향의 서예정신이었다. In Chinese history, there are characters who have lived a life of seclusion. For example, TaoYuanMing is an example. After returning to his hometown, TaoYuanMing lives a secular and disconnected life in his mind. Nan Tian(南田), YuanZhongzhi(元仲植) is a calligrapher who lived in modern Korea. He wanted to live a life of this kind. He made his calligraphy work as a favorite work with phrases expressing a leisurely life, a quiet life, and a life in a secular world. These phrases reflect the world of life he intended. The calligraphy creation of the following expression along the line of TaoYuanMing was an effort to find the lost figure of oneself. He sought to spread his true calligraphy world through his search for the lost self. His seclusion-oriented life was a life in which he did not want to be secular, and expressed his life as his work. He tried to express his seclusion in terms of leisure. In addition, he tried to express his own seclusion through various poems of the Buddhist scent. And to express his freedom through his poetry that is not bound by secular honor and desire. The spiritual world without any bounds and no hanging on objects was the calligraphy spirit he intended. This spirit of art was an understanding of calligraphy in humanities and an artistic spirit that wanted to bring free souls. When he created an artwork, he did not care about the goodness and the badness of artistry, and hr wanted to freely open his own artistic sensibility.

      • KCI등재

        南田 元仲植선생의 落款에 보이는 雅號 고찰

        朴載福 동양고전학회 2016 東洋古典硏究 Vol.0 No.64

        落款은 작품을 완성한 다음에 작가가 자신의 이름과 작품에 관한 설명을 기술하고 印章을 찍는 것을 가리킨다. 낙관은 크게 낙관 글씨와 印章으로 구분되는데, 낙관글씨에는 그 작품에 대한 기본 정보를 기록하고 낙관인장에는 주로 작가의 아호와 성명을 새긴 인장을 포함한다. 현재까지 정리된 南田 元仲植(1941-2013)선생의 낙관 글씨와 인장에서 다양한 형태로 사용한 아호들을 확인 할 수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낙관 글씨와 인장을 분석하여 다양하게 불리던 그의 아호들을 새롭게 찾아내고 아호들의 사용연대를 구체적으로 고증해 보았다. 1. ‘南田’이란 아호는 인천 ‘桂陽山’의 다른 이름인 ‘安南山’에서 취한 것으로, 1963년 제12회 국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劍如선생에게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줄곧 사용하였으며, 아호 뒤에 ‘散人’, ‘學人’, ‘山人’, ‘居士’를 추가하기도 하였다. 2. 堂號는 크게 서실, 거주지, 흠모하는 인물, 좌우명 관련 등의 4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서실 관련 당호로는 ‘劍如書院’(혹은 ‘劍如書樓’), ‘典農書室’(혹은 ‘典農書巢’, ‘典農揅墨室’, ‘揅墨會室’, ‘拜峰書室’), ‘墨耕書室’, ‘柴溪書巢’(혹은 ‘柴溪書室’, ‘柴溪書樓’) 등이 확인되는데, 이는 자신이 소속되거나 지도한 서실의 당호이다. 거주지 관련 당호로는 ‘東九山房’(혹은 ‘東九艸廬’), ‘淸溪山居’, ‘美山洞天’, ‘開仁軒’, ‘美山開仁軒’, ‘開仁山房主’, ‘活水齋’, ‘美山活水齋’(혹은 ‘美山活水齋主人’), ‘美山活秀山房’, ‘美山天然山房主’, ‘豊雪軒’, ‘美山豊雪軒’(혹은 ‘美山豊雪軒主’), ‘朝陽廔’, ‘束艸朝陽廔’, ‘快雪軒’, ‘束艸快雪軒’, ‘花浦書樓’(혹은 ‘華浦書樓’), ‘花浦竹亭書樓’(혹은 ‘華浦竹亭書樓’), ‘花浦竹亭書菀’(혹은 ‘華浦竹亭書菀’), ‘菁莪書樓’(혹은 ‘花津菁莪書樓’), ‘松竹齋’, ‘松茂竹苞齋主人’ 등이 확인된다. 흠모하는 인물 관련 당호로는 ‘阮劍齋’(혹은 ‘阮劍齋主’, ‘阮劍齋主人’)가 확인되며, 좌우명 관련 당호로는 ‘鈍齋’, ‘頓悟齋’ ‘不染亭’, ‘自怡軒’ 등이 있다. 3. 낙관글씨에서 아호와 이름은 초서체를 주로 쓰고 해서 혹은 행서로 쓴 것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낙관글씨에서 ‘南’의 자형이 1995년 정월을 기점으로 완전히 변화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각 시기별로 자형의 변화에 차이가 있어 이를 통해 작품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4. 화진포 자택과 시계서실에 보관된 전각작품 중에서 성명인과 아호인 76점을 선별하여 고찰하였다. 이들의 印文과 側款을 판독하고 분류하여 인문에 보이는 성명인과 아호인의 조합을 6개로 분류하고 측관의 내용을 판독하여 새긴 연대를 고증하고 표로 제시하였다. 5. 남전선생의 작품을 2기 5단계로 구분하고, 각 시기별로 주로 사용된 아호와 인장의 특징, 변화양상을 정리하여 제작연도가 표기되지 않은 작품들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였다. 그동안 전시도록에 소개된 일부 아호와 당호에 대해서만 인지하였을 뿐 남전선생이 생전에 사용하였던 다양한 아호들의 특징과 사용연대를 명확하게 분석하지 못하였다. 본고의 고찰을 통해 남전선생의 아호는 물론 그 작품성향과 작품연대를 좀 더 명확하게 추정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Nakgwan (落款) refers to an artist writing his name and explanation about his work after completing it and then affixing a seal on it. Nakgwan is largely divided into nakgwan words and the seal. Nakgwan words contain basic information about the work, and the seal mainly includes the artist’s name and pen name. From Namjeon Won Jungsik(南田 元仲植; 1941-2013)’s nakgwan words and seals presently being organized, we can find his pen names used in various forms.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his nakgwan words and seals to find out diverse pen names of his newly and ascertain the years of their use precisely. 1. His pen name, ‘Namjeon(南田)’, originated from ‘安南山(Mt. Annam)’, another name of ‘桂陽山 (Mt. Gyeyang)’ located in Incheon. Presumably, he received it from Sir Geom Yeo (劍如) while preparing for the 12th National Art Exhibition in 1963. He used it continuously after then, and he also added ‘散人(Sanin)’, ‘學人(Hakin)’, ‘山人(Sanin)’, ‘居士(Geosa)’, too, after it. 2. Dangho(堂號) can be largely divided into four parts: the workshop, address, the person he looks up to, and motto. As dangho related to his workshop, we can find ‘Geomyeoseoru(劍如書樓)’, ‘Geomyeoseowon(劍如書院)’, ‘Jeonnongseosil (典農書室), ‘Jeonnongseoso(典農書巢)’, ‘Jeonnongyeonmuksil (典農揅墨室)’, ‘Yeonmukhuisil (揅墨會室)’, ‘Beabongseosil(拜峰書室)’, ‘Mukkyeongseosil (墨耕書室), ‘Sigyeseoso(柴溪書巢)' etc. This is the dangho of the workshop which he belongs to or teaches in. As dangho related to his address, we can see ‘Dongguchoryeo(東九艸廬)’, ‘Cheonggyesangeo(淸溪山居)’, ‘Misandongcheon(美山洞天)’, ‘Gaeinheon(開仁軒)’, ‘Gaeinsanbangju(開仁山房主)’, ‘Hwalsujae(活水齋)’, ‘Misanhwalsujae(美山活水齋)’, ‘Misanhwalsujaejuin(美山活水齋主人)’, ‘Misanhwalsujaeju(美山活水齋主)’, ‘Misanhwalsusanbang(美山活秀山房)’, ‘Pungseolheon (豊雪軒)’, ‘Misanpungseolheon (美山豊雪軒)’, ‘Misanpungseolheonju(美山豊雪軒主)’, ‘Misanchenyeosanbangju(美山天然山房主)’, ‘Joyangru(朝陽廔)’, ‘Sokchojoyangru (束草朝陽廔)’, ‘Sokchokwaeseolheon (束草快雪軒)’, ‘Hwaposeoru(花浦書樓)’, ‘Hwaposeoru(華浦書樓)’, ‘Hwapojukjeongseoru (花浦竹亭書樓)’, ‘Hwapojukjeongseoru (華浦竹亭書樓)’, ‘Hwapojukjeongseowon(花浦竹亭書菀)’, ‘Hwapojukjeongseowon (華浦竹亭書菀)’, ‘Cheongaseoru(菁莪書樓)’, ‘Songjukjae(松竹齋)’, ‘Songmujukpojuin (松茂竹苞齋主人)’ etc. As dangho related to a person he respects, we can find ‘Wangeomjae(阮劍齋) or ‘Wangeomjaeju(阮劍齋主)’, ‘Wangeomjaejuin(阮劍齋主人)’, and as dangho related associated with his motto, we can see ‘Dunjae(鈍齋)’, ‘Donojae(頓悟齋)’ ‘Bulyeomjeong(不染亭)’, or ‘Jaiheon(自怡軒)’. 3. In his nakgwan words, his names and pen names are mainly written as Choseoche, and what are written as Haengseo are only few. In his nakgwan words, the form of ‘Nam(南)’ is changed completely from the first month of 1995. Also, the form of a word changes by time, so we can estimate the year that his work was made by that. 4. This researcher selected and examined 80 or so his name and pen name seals among the seal works preserved in his Hwajinpo house. After reading and classifying their Inmun(印文) and Cheukgwan(側款) and classifying the combinations of his name and pen name seals found in their Inmun, this author figured out the contents of Cheukgwan and ascertained the era carved and presented them in a table. 5. Dividing Sir Namjeon’s works by 2 eras and 5 steps and arranging the characteristics of pen names and seals mainly used in each period and the aspects of their changes, this researcher suggested criteria to figure out works without the year that they were made in objectively. So far, researchers have recognized only some of the pen names or dangho introduced in exhibition work books but failed to analyze the characteristics of diverse pen names of his Sir Namjeon used in his lifetime and the years of their use clearly. Through consideration here, this study has laid the foundation to estimate not only Sir Namjeon’s pen names but also the features of his works and the year that a work was made more accurately.

      • 南田 元仲植 선생의 학서과정과 작품성향 고찰

        박재복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문화예술콘텐츠연구소 2016 문화와예술연구 Vol.7 No.-

        서예는 함축적인 언어를 간결한 선으로 표현하는 매우 추상적인 시각 예술이다. 또한 知性과 感性을 겸비하고 미적인 ‘情’과 지적인 ‘理’가 상호 융합하여 표현된 心像의 예술로서 그 글씨를 보고 그 사람의 人性과 品格은 물론 도덕성까지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南田 元仲植 선생은 劍如 柳熙綱 선생의 高弟로 생전에 서예와 전각 작품을 비교적 많이 남겼다. 남전선생의 작품에 대해, 靑冥 任昌淳 선생은 “준마가 거침없이 들판을 내닫는 듯하다.”라 하였고, 如初 金膺顯 선 생은 “천성이 진중하여 溫故知新의 新을 창출해 내었다.”라 하였고, 嘉 軒 崔完秀 선생은 “韓中 서예를 관통하여 자기화하고 채색을 이용해 문자조형의 미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라고 하였다. 현재 남전 선생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 있어 그의 생애와 서법예술 을 구체적으로 논하는데 상당한 제약이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주요 전시작품을 토대로 남전 선생의 학서과정과 작품성향을 살펴보고, 그 작품 연대를 체계적으로 구분해 보았다. 남전 선생의 예술세계를 인생에 일대 전환이 되는 사건과 거주지 이전 을 주요시점으로 2기 5단계로 구분하였다. 먼저 1990년 5월 서예에 전 념하기 위해 직장을 사직하고 강원도 인제 미산에 은거하는 시점을 중심 으로 크게 전후 2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전기(學書期: 1941-1989)는 학창시절과 직장생활을 하던 시기로, 1971년에 제20회 국전 낙선전을 기준으로 修鍊期와 硏鑽期 2단계로 나 눌 수 있다. (1) 修鍊期(1941-1971)는 검여 선생에게 입문하여 서예를 도제식으로 사사받으며 안진경의 서풍을 충실히 임서하는 한편 검여선 생이 주로 공부하던 청대 서예가들과 추사의 글씨를 집중적으로 공부하 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 硏鑽期(1972-1989)는 스승의 필법을 계 승하여 강인한 필치의 행서와 예서를 구사하는 한편 漢簡과 같이 새로 발견된 자료에 천착하여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려는 의지도 확인할 수 있다. 후기(成熟期: 1990-2013)는 산수가 수려한 강원도에 기거하며 서예에 전념하던 시기로, 속초와 고성 죽정리로 이주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隱匿 期, 完熟期, 超逸期 3단계로 세분할 수 있다. (1) 隱匿期(1990-1998)는 인제 미산에 거주하던 시기이다. 1995년을 전후로 그 서풍에 변화가 있 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1995년부터 매년 개최한 ‘시계서회전’과 몇 번의 중국답사와 연관이 있을 듯하다. 특히 이 시기에는 중국에서 새로 발견된 자료에 대해 끊임없는 연찬을 하여 자신의 작품에 활용하고 있음 을 확인할 수 있다. (2) 完熟期(1999-2004)는 속초에 거주하던 시기이다. 이 시기의 작품에서는 흰 화선지나 검은 먹보다는 각양각색의 다양한 색지와 석채를 활용하여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 다. (3) 超逸記(2005-2013)는 고성 죽정리에 거주하던 시기이다. 이 시 기에는 임서보다 창작품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말년에 항암치료를 받으 면서 구도자와 같은 심정으로 작품에 몰입하였던 그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이 남전 선생은 역대 한중서예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연마하 여 5체를 두루 섭렵하였다. 이 중에서 특히 族徽가 있는 금문과 漢簡을 이용한 작품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해서는 顔眞卿의 해서에 기초하여 寫經을 깊이 공부하였고, 행초는 왕희지 계통을 근간으로 米芾의 것을 소화하여 자신의 서풍을 선보이고 있다. 스승의 인품과 예술혼을 흠모하고 이를 후학들에게 전해주고자 무던히 애쓰던 남전선생의 人品高와 藝術香은 다시 후학들에게 이식되어 새 로운 형태로 면면히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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