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음성지원유무
        • 원문제공처
          펼치기
        • 등재정보
        • 학술지명
          펼치기
        • 주제분류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 저자
          펼치기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중국사학사(中國史學史) 국제학술대회國際學術大會) 특집논문(特輯論文) : 중국사 연구에서 엥겔스의 민족관습법 이론 응용

        이위쥔 중국사학회 2014 中國史硏究 Vol.93 No.-

        민족관습법은 각 민족이 오랜 생산활동 과정에서 점차적으로 형성된 해당 민족의 관습법이다. 엥겔스는 자신의 저서에서 유럽 민족관습법의 역사와 특징을 분석하여, 피통치민족의 관습법이 장구하게 보류될 수 있거나 철저하게 소멸되는 것은 생산방식과 민족 조직방식이 훼손되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임을 발견하였다. 엥겔스가 말한대로 ‘법’의 기초는 ‘의지’가 아니라 사회물질생활이며, 곧 “상호제약적 생산방식과 교환방식”이다. 민족관습법 방면의 엥겔스의 이론적 성과는 중국 역사연구에도 중요한 교훈적 의의를 지닌다. 1. 엥겔스가 논한 유럽 역사상의 민족관습법엥겔스는 자신의 저작『고대법』과『독일이데올로기』에서 법”의 기초는 어느 사회집단(일련의 개인은 더더욱 아니다)의 “의지”이며, 그것은 사회물질생활, “상호제약적 생산방식과 교환방식”으로 결정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때문에 민족관습법을 생산하는 물질생활 기초가 존재하기만 한다면 그 민족관습법은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민족관습법의 완강한 생명력에 대하여, 엥겔스는『게르만인의 고대역사』에서 상세하게 분석했다. 먼저 그는 고대 게르만인들의 민족관습법이 로마법과 만나게 된 이후에도 여전히 완강하게 천년 이상 보류된 사실을 서술했다. 충돌의 근원은, 한편으로는 로마법과 고대 게르만인의 재산분배제도가 저촉되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로마법과 고대 게르만인들의 관습법의 법률 절차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당시 게르만의 실제 통치자 바루스는 로마총독의 최고사법권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그는 결국 무력으로도 게르만인들이 자신들의 생산조직 형식과 맞지 않는 로마법을 받아들이도록 할 수 없었다. 민족관습법은 민족조직 형식과 생산방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만약 그 원래의 촌락조직, 혹 민족(혹은 씨족) 조직이 보존되어있기만 하면 민족관습법은 정복자의 법률과 맞서며 장기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오직 새로운 통치자가 폭력을 동원해 당지 주민의 생산.생활조직형식(가령 씨족)을 파괴하고, 아울러 무기와 입법 수단에 의지해 새로운 법률을 추진할 때 민족관습법은 비로서 잔재만 남거나, 혹은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2. 중국 역사상 민족관습법이 제정법과 조우한 후의 귀결점엥겔스의 민족관습법 이론은 중국 역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지도적(指導的) 의의가 있고, 동시에 중국 역사는 자신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엥겔스가 유럽의 역사를 논술할 때 “민족관습법”은 모두 피정복민족에게 존재하는 것을 가리키며, 정복민족의 법률(가령 로마법)은 그것에 상응하여 국가제정법이 되는 것이다. 중국 역사에서, 누가 통치 지위에 있든지 간에, 중원왕조의 법률은 언제나 국가제정법으로 표현되고, 소수민족의 법률은 그에 따라 민족관습법이 되었다. 이런 인식의 기초 위에서, 후자를 다시 설명하겠다. 유럽 민족관습법의 최후의 귀결은, 혹자는 장구하게 보류되고, 혹자는 부분적으로 남거나 심지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중국 역사상의 민족관습법은 거의 대부분 하나의 상황으로 귀결되었는데, 곧 우선은 제정법과 병존하다가 연후에 최종적으로 제정법 속으로 융합되는 것이다. 요· 금 왕조가 전형적인 사례가 된다. 요. 금 정권 초기에 소수민족 관습법과 중원왕조 법률은 언제나 처음에는 병존하다가 후에는 차츰 융합되는 추세를 보였다. 첫째, 건국 초기에 요와 금은 모두 한인 거주 지역에는 단독으로 한법을 실행하였는데, 곧 소위 ‘民族分治’이다. 요 태조는 건국 초부터 거란관습법의 성문법으로의 轉化를 촉진하였다(定制契丹及諸夷之法, 漢人則斷以律令)”. 요 태종 때에는“國制로 거란인을 다스리고 漢制로 한인을 다스리라”고 규정하였다. 사법 심리 방면에서는 南北二院의 분치정책을 실행하였다. 금 태조는 건국 초기, 법제상에서 주로 여진관습법을 채용하였다. 천보(天輔)2년 금 태조는 “國書와 詔令은 마땅히 屬文에 능한 자를 뽑아서 맡도록 해야 한다”라고 하여 마치 성문법 제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듯하다. 제3대 황제인 희종은 천권(天眷)3년(1140) 하남 등지를 공격하여 취한 후, 당지에 “형법은 모두 율문(즉 중원의 한법)을 따른다(“刑法皆從律文”)”고 선포하고, 이후 여진관습법을 강제하지 않았다. 둘째, 중원 한법은 농경문명에 적용되었기에 유목과 수렵 등의 생산방식에 기반한 거란과 여진 민족관습법보다 선진적이었다. 때문에 요와 금의 통치자들은 모두 주동적으로 혹은 은밀하게 한법을 흡수하였다. 요대 건국 초기의 정책은 民族分治였고, 태종시대부터 차츰 漢制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기 시작했는데, 가령 “발해인은 한법에 의거해 통치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거란인으로서 漢官을 받은 자는 漢儀를 따르고. 한인과 혼인하는 것을 허락했다. 제6대 황제 성종 즉위 이후, 전문적으로 율령(당시의 율령이라는 것은 당, 송의 율령을 가리킨다)을 번역하게 하여 요대 법률의 한화 과정이 시작되었고, “거란인과 한인이 서로 때려 죽음에 이르면, 그 법의 [적용]輕重은 균등하지 않다”와 같은 법은 폐지되었다. 제8대 황제 시기에는『重熙條制』를 修訂하도록 명을 내려, 중원 한법 율문인『咸雍重修條制』를 많이 흡수하고 실제로 이것을 적용하였다. 금조는 皇統 연간에 “본조의 舊制로써 수당의 제도를 겸하고 요송의 법을 참조하여 성문법전인『皇統制』를 편찬하였다. 이후『續降制書』.『大定重修制條』.『泰和律義』이 편찬되었다. 원대인 脫脫은『泰和律義』가 “실은 당율이다”라고 여겼다. 이때부터, 금조의 법제는 형식에서 내용가지 전면적인 漢化를 실현하였다. 요금의 민족관습법이 제정법을 만난 이후 병존하다가 이후 융합된 것을 설명하는 사료는 매우 많지만 여기서는 상세하게 논하지 않겠다. 3. 엥겔스의 이론으로 중국 역사를 연구할 때 나타나는 특징중국 역사상 중원에 입거하게 된 소수민족 관습법의 귀결은 대부분 “因俗而治”의 법제 방침 아래에서 우선은 중원왕조의 제정법과 병존하다가, 후자에 융합되어 갔다. 이는 비록 유럽의 상황과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엥겔스가 밝혀낸 역사 규율에 부합된다. 왜냐하면 중원에 진입한 소수민족은 모두 농경문명을 받아들여 신속하게 봉건화 되고, 생산과 생활조직 형식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관습법의 변화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因俗而治”는 중국 봉건왕조의 일관된 정책이고, 심지어 중화문화의 유전자라고도 할 수 있다. 『禮記. 王制』에서 “中國 戎夷五方의 백성은 모두 본성이 있어서 [강제로 바꾸도록] 推移할 수 없다”라고 하였고, 때문에 강역 내의 다양한 민족의 상황에 근거해 자신들의 풍속을 따르도록 하고 다양한 정치제도를 실행하였다. 秦昭王 시기 “巴郡랑中夷人” 과 맹약을 맺을 때, “秦이 夷를 범하면 黃龍 한쌍을 보내고, 夷가 秦을 범하면 淸酒 一鍾을 보낸다”고 했다. 한제국은 군현이 설치된 소수민족 지역에 “천자의 법도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허용하고, 당지의 舊俗으로 통치했다. 수당왕조도 소수민족에 대하여 “추장을 나누어 설치하고 각각 그 부락을 통치하도록 한다”, “자신들의 풍속으로 다르스게 한다”는 민족정책을 취하였다. 요대의 南北面官制度, 서하와 금대에는 藩漢 官制가 있었다. 원.명.청 시기에는 이 방면에서 더욱 제도화. 법규화가 진행되었다. 역대 봉건왕조의 법치정책이 일맥상통하게 중화문화의 兼容하고 품는 특징과 개방적인 기개를 체현하였다고 할 수 있다. 정치상에서 “大一統”의 전제 하에서 법률형식도 매우 다양했다. 중국 역사상의 국가제정법과 민족관습법이 병존하다가 융합되는 특징은 중화민족 다민족통일 융합이라는 필연적 역사 추세와 불가분의 관계이다. 유럽 내부에서는 많은 안정적 민족공동체가 있지만 통일되는 추세는 없다. 그런데 중국다민족통일 융합에는 필연성이 있다. 첫째는 지리환경적 원인, 둘째는 생산방식적 원인, 셋째는 중원문화의 개방적 성격이다. 요컨대, 엥겔스가 밝혀낸 민족관습법은 그것에 대응하는 생산방식이 보류되는 기초 위에서 보류될 수 있는 역사규율은 중국 역사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중원농경문명의 선진성 및 중원문화의 개방적 특징은 소수민족이 중원지역에 진입한 뒤에 대부분 주동적으로 중원문명을 받아들이고, 통치 지위에 있든 없든, 그들의 민족관습법은 항상 중원왕조의 제정법과 “병존하다가 융합되었다”. 이는 중국다민족통일과 융합의 필연적 역사추세와 서로 상응하는 것이다.

      • KCI등재

        엥겔스의 포스트자본주의론의 재조명: 어소시에이션론적 관점

        정성진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2020 마르크스주의 연구 Vol.17 No.1

        Engels did not reject ‘Utopian Socialism’ in the name of ‘Scientific Socialism’. Engels took the core idea of ‘Utopian socialism’ and developed it into a theory of postcapitalism, i.e., socialism or communism. Engels was more enthusiastic about ‘Utopian Socialism’ than Marx. Engels also identified himself with the principle of ‘self-emancipation of working-class’ earlier than Marx. Engels theorized the political economy of socialism, including labor-time calculation planning, as a separate discipline, distinct from the political economy of capitalism. In his later years, Engels extended the arena of postcapitalism beyond value, class, and state, toward gender and ecology. For Engels, postcapitalism was open-ended. Contrary to conservative or anarchist accusations, Engels belongs to the tradition of ‘socialism from below’ (‘democratic socialism’) with Marx. Like Marx, Engels envisioned postcapitalism as the free and full development of ‘association’ [Assoziation]. This paper demonstrates the last point by examining all the texts of Engels where the word ‘association’ appears. This paper also discusses some important differences in conceptualizing ‘association’ between Marx and Engels, focusing on planning, freedom and the re-establishment of individual property. 엥겔스는 이른바 ‘과학적 사회주의’의 관점에서 ‘유토피아 사회주의’를 일방적으로 기각하지 않았다. 엥겔스는 유토피아주의자로 불릴 정도로 오웬, 푸리에와 같은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의 논의를 적극 수용하여 포스트자본주의론을 발전시켰다. 마르크스의 포스트자본주의론에서와 마찬가지로 엥겔스의 포스트자본주의론에서도 어소시에이션 개념은 핵심적이며, 이는 엥겔스의 평생의 텍스트들에서 확인된다. 이는 엥겔스의 포스트자본주의론이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을 추구하는 ‘아래로부터 사회주의’ 흐름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엥겔스는 포스트자본주의론을 노동시간 계산 계획 모델로 정식화했다는 점에서, 또 포스트자본주의론 자체를 하나의독립된 이론으로 체계화했다는 점에서, 마르크스보다 앞섰다. 엥겔스는 포스트자본주의론를 하나의 폐쇄된 체계가 아니라 미완의 개방된 체계로서 사고하면서, 이를페미니즘과 생태사회주의 영역으로 확장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어소시에이션의필수적 요소인 자유와 개인적 소유에 대한 엥겔스의 이해는 마르크스와 중요한 차이를 보인다. 이런 차이가 엥겔스를 마르크스로부터 분리하여 마르크스와 대립하는소비에트 마르크스주의의의 원조로 간주하는 근거가 될 수 있는지는 더 검토되어야한다.

      • KCI등재

        엥겔스 다시 읽기: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에 대한 엥겔스의 논평

        미하엘 하인리히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2020 마르크스주의 연구 Vol.17 No.1

        For a long time, Marx and Engels were effectively seen as one intellectual unit whereby a proposition expressed by one was believed to express the view of both. Particularly in the case of Engels’ remarks on the relation of “logical” and “historical” presentation in this review were such writings considered to be fully representative of Marxian “logical-historical” method. In the second half of the 20 th century, however, the differences between Marx and Engels were stressed ever more emphatically and Engels was even accused of distorting Marx’s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There are indeed considerable differences between Marx’s and Engels’ approach to method. However, Engels’s presentation in this review was strongly influenced by the fact that much of the information he received from Marx was unclear and incomplete. Communication between Marx and Engels was often far more ambiguous and indeterminate, atleast regarding theoretical problems in the field of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than is often assumed to be the case. 오랫동안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하나의 지적 통일체로 여겨졌으며, 그로 인해 한명이 표현한 입장은 둘 다의 견해를 표명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특히 마르크스의『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에 대한 엥겔스의 논평문에서 ‘논리적’과 ‘역사적’ 서술의 관계에 대한 그의 언급은, 마르크스주의 ‘논리역사적’ 방법을 온전히 대표하는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차이는 더욱 강조되었고, 엥겔스는 심지어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왜곡했다고 비난받았다. 실제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방법에 대한 접근방식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엥겔스 논평문에서 제시된 견해는 그가 마르크스로부터 받은 많은 정보가 불분명하고 불완전하다는 사실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특히 마르크스와 엥겔스 사이의소통은 적어도 정치경제학 비판 분야의 이론적 문제에 대해 종종 생각되는 것보다모호하고 불명확했다.

      • KCI등재

        “자연은 변증법의 시금석이다”: 엥겔스의 ‘자연변증법’과 신유물론

        서동진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2020 마르크스주의 연구 Vol.17 No.1

        With the increasing rise of New Materialist discourses against anthropo- centrism everywhere, we are forced to ponder the identity of Marxist materialism. In this article, we re-visit Friedrich Engels’ Dialectics of Nature and its related texts, which have been underestimated and even dimissed over the past century. His thought about nature, being, subject and dialectics in major works have been criticised as being imbued with scientism, physicalism, dogmatic metaphysics, and naturalism. Against the grain, in this article, we assert to need to rethink Engels’s dialectics of nature in order to reconstruct Marxist materialism and combat the impact of New Materialist discourses. In particular, we suggest reconsidering the phrase “following Hegel’s mistaken lead” mentioned in Lukács’s text, and fearlessly approve of Hegel’s Naturphilosophie and its ontological thought. Hegel’s thought was an attempt to traverse between being (substance) and thought (phenomenon), retaining crucial lessons of critical philosophy since Kant’s Copernican turn. Therefore, reversing the insistence that Engels fabricated naturalist materialism by following Hegel’s mistaken lead, this article states that Engels’s dialectics of nature paved the way to overcome naïve materialism and idealism. 신유물론의 부상은 다시 한 번 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의 차이를 묻지 않을 수없도록 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은 생기적 유물론, 사변적 실재론, 객체지향존재론, 물이론 등 도처에서 출현하는 신유물론과 어떻게 다른가.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참조점이지만 동시에 거의 금기에가깝게 무시되어 온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을 찾는다. 엥겔스가 자연변증법을 통해개진한 유물론은 과학주의나 물리주의, 자연주의 등의 숱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저 유명한 루카치의 엥겔스의 자연변증법 비판을 필두로 숱한 이들은 엥겔스를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유물론으로부터 분리시키고자 애써왔다. 이를 통해 자연은 생산과 노동이라는 매개를 통해 사회와 상호작용하는, 즉 실천과 노동 혹은 매개라는개념을 통해 주어지는 대상으로서 간주되어 왔다. 나아가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은사고 속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간주되는 변증법을 자연 자체에 투사하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는 마치 모순과 적대라는 사회적 실재에 고유한 변증법을 자연과 세계에 적용하는 부조리한 이론적 과대망상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이 글은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에 대한 이러한 독해를 재고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한다. 특히 이 글에서는 “헤겔의 잘못된 예”에 따름으로써 비롯된 엥겔스의 과오라는루카치의 단언에 주목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헤겔의 잘못된 예, 즉 헤겔의 “자연철학”은 물 자체와 현상 사이의 구별을 극복하고자 한 독특한 시도로서 사변적 유물론의 윤곽을 제안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헤겔의 잘못된 예를 따른 엥겔스의잘못이라는 주장을 전도하여 그것이 엥겔스로 하여금 소박한 유물론을 돌파할 수있는 가능성을 가져다주었음을 주장할 것이다.

      • KCI등재

        후기 엥겔스 문제와 반환원주의적 자연주의의 가능성: 엥겔스의 사회이론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

        임정빈,김명희 한국이론사회학회 2022 사회와 이론 Vol.41 No.-

        This study reexamines Engels’ philosophy of social science, centering around ‘issues on the late Engels’, from the perspective of critical realism. ‘Issues on the late Engels’ refers to debates surrounding questions that there is an epistemological gap between Early Engels’ works and Late Engels’ works and that the later works of Engels vulgarized Marxism. Unlike this, this study focuses on the possibility of anti-reductionist naturalism, which Engels consistently shared with Marx. Anti-reductionist naturalism refers to a perspective that pays attention to an organic relationship between human in the nature and nature while recognizing the emergent property of social stratum. Especially, Engles’ anti-reductionist naturalism applied in The Origin of the Family, Private Property and the State can contribute to the developmental reconstruction of contemporary Marxism and the path of the anti-reductionist unity of sciences. 현대 마르크스주의 논쟁에서 마르크스와 함께 독일 이데올로기 를 쓴 전기 엥겔스는 문제되지 않으나 반(反)뒤링론 , 자연변증법 을 쓴 후기 엥겔스는 마르크스주의를 속류화했다고 비판받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노트에 기반한 엥겔스의 대표작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의 기여를 생각하면 이러한 비판은 지나친 감이 있다. 비록 마르크스주의를 대중화하는 과정에서 일정 부분 마르크스의 저작에 대한 오독의 배경을 제공한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후기 엥겔스의 이론적 성취는 마르크스와 공유한 합리적인 핵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한 해석은 왜 마르크스가 반(反)뒤링론 , 자연변증법 을 읽었음에도 비판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이 연구는 엥겔스와 마르크스가 공유한 합리적인 핵심으로서 반환원주의적 자연주의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반환원주의적 자연주의란 자연 속의 인간이 자연과 상호작용하며 맺는 유기적 관계에 주목하면서도 자연으로 환원되지 않는 사회적 층위의 발현적 속성을 존중하는 관점을 말한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중심주의적이지 않은 존재론에 입각해 반환원주의적 통합과학을 요구하는 현대 과학철학 논의에도 시사점을 줄 수 있다. 이 연구는 엥겔스가 마르크스주의를 속류화했다는 혐의의 표적이 되는 논쟁적 문헌인 반(反)뒤링론 , 자연변증법 과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에 나타난 반환원주의적 자연주의의 현대적 함의를 살펴본다. 이 과정에서 마르크스의 과학철학을 재해석하고 발전시킨 것으로 알려진 비판적 실재론이라는 현대 과학철학의 지원을 받는다.

      • KCI등재

        근로한계기간 설정을 위한 교력한계노동 인식체계로의 전환 및 연금법 개정의 필요성 - 기술적 실업, 엥겔스의 휴지기, 노동법의 제3기능에 관한 논의를 중심으로 -

        김기원 한국사회법학회 2020 社會法硏究 Vol.0 No.40

        생산량이 증가함에도 근로자의 임금은 감소하는 엥겔스의 휴지기(休止期)는 산업혁명 이후인 1790년대부터 183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1840년대 경 근로자의 협상력이 상승하여 엥겔스의 휴지기는 종결되었다. 기술적 실업의 우려는 기우로 보였다. 그러나 1979년 이후 미국 근로자 임금의 증가속도는 노동 생산성의 증가속도의 1/8에 불과했다. 생산력은 상승했으나 실업자는 증가하고 임금이 저하되었다. 18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노동법과 노동조합의 발전은 생산력의 증대와 근로자의 이익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1980년대경부터 생산력 증가와 근로자 이익간의 연결이 끊어졌다. 노동조합은 약화되고 근로자들이 분열되며 엥겔스의 휴지기가 돌아왔다. 노동법학자인 먼드락은 근로자와 근로자간의 갈등을 기존의 노동법이나 노동조합의 방법론과 구분되는 독립적인 ‘노동법의 제3기능’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술적 실업, 돌아온 엥겔스의 휴지기, 노동법의 제3기능의 문제를 종합하면, 모든 사회구성원이 노동 총력전의 일원처럼 건강하면 모두 일해야 한다는 총력무한계노동 인식체계하에서 근로시간 단축을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발상은 불충분하다. 이제 교대근무집단의 일원처럼 자신의 의무를 다하여 한계노동기간에 도달하면 건강해도 명예롭게 휴식할 수 있다는 ‘교력한계노동 인식체계’를 받아들여야 한다. 교력한계노동 인식체계를 바탕으로 연금법을 개정하여 ‘근로한계기간’을 설정함으로서 노동법의 제3기능을 회복하고 생산성 상승과 근로자간의 이익을 다시 연결시켜 돌아온 엥겔스의 휴지기를 종결시킬 필요성이 있다. Engels' Pause, in which workers' wages decrease despite increased production, continued from the 1790s to the 1830s after the Industrial Revolution. Around the 1840s, workers' bargaining power increased and Engels' Pause ended. Concerns over Technical Unemployment appeared to be groundless. But the pace of increase in wages for U.S. workers since 1979 was only one-eighth of the rate of increase in labor productivity. Productivity rose, but rather increased unemployment and reduced wages. From the 1840s to the 1970s, the development of labor laws and trade unions played a role in linking the increase of productivity to workers' interests. However, the link between increased productivity and workers' profits has been severed since the 1980s. Labor unions weakened, workers split, and Engels' Pause returned. Mundlak, a labor law scholar, argues that conflicts between workers should be viewed as an independent “third function of labor law” that distinguishes them from existing labor laws or trade union methodologies. Combining the problems of technical unemployment, the return of Engels' Pause, and the third function of labor law, the idea of solving the problem around shorter working hours is insufficient under the Unlimited All-One's Labor Paradigm, in which all social members should work if they are as healthy as members of the all-one's labor war. Now, like a member of the shift work group, it should accept the “Limited Rotation Labor Paradigm” that when it reaches the Labor Period Limitation by fulfilling its duties, it can rest with honor even if it is healthy. It is necessary to restore the third function of the labor law by revising the pension law to set the “Labor Period Limitation” based on the Limited Rotation Labor Paradigm, and to end Engels' Pause by reconnecting productivity gains and workers' interests.

      • KCI등재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긴 지적 유산의 전승역사

        임경석(서평자)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마르크스주의 연구) 2008 마르크스주의 연구 Vol.5 No.4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공동 창시자인 마르크스-엥겔스의 지적 유물들에 대한 출판의 역사와 관련한 책이 출판되었다. 정문길 명예교수의 『니벨룽의 보물』이 그것이다. 저자는 『소외론 연구』를 통해 이미 1970년대부터 마르크스주의의 사상 형성 과정을 꾸준히 주목해온 정치학자이다. 이후 그는 수차례에 걸친 고전적 마르크스 주의의 사상사적 형성 과정과 마르크스-엥겔스 전집의 출간 과정에 얽힌 다양한 논문들과 저서를 통해 현재 진행 중인 『마르크스-엥겔스 전집(MEGA²)』의 성립사에 관한 복잡한 문헌학을 개관할 수 있는 소수의 국내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저자는 1883년 마르크스 사후 진행 중인 유고들의 전승과 간행의 장구한 역사를 학자적인 성실함과 전문성으로 차근차근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왜 마르크스-엥겔스 전집의 국제판은 마르크스와 엥겔스라는 두 독자적인 학자의 학문적 입장에 대한 구분 없이 공동 집필되어야 하는지, 더불어 왜 114권(123책)으로 예정된 방대한 MEGA²라는 국제판의 출간 작업이 필요한지에 대한 더 근원적인 물음과 논의에 대한 학문적인 해명이 앞으로 진지하게 연구되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 KCI등재

        루터 종교개혁운동에 나타난 혁명정신에 관한 연구

        박종균 한국기독교사회윤리학회 2017 기독교사회윤리 Vol.39 No.-

        아마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종교론 연구에서 가장 간과되어 온 것들 중 하나 가 그들과 루터와의 연관성일 것이다. 신학 영역에서는 물론 사회과학 영역에서 조차 루터와 좌파적 연관성에 대해선 커다란 주목을 받고 있지 못했던 것이 사실 이다. 그러나 본 연구는 통념과 달리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루터를 주목했다는 것이며, 그 이유에 대해 검토하고자 한다. “독일의 혁명적인 과거는 이론적이었 고, 그것은 종교개혁일 것이다”는 마르크스의 진술의 진의를 파악하는 것이 연구 의 목적이다. 본 연구는 세 단계에 걸쳐 이루어진다. 먼저 루터와 마르크스·엥 겔스의 반­성직자주의(anti-clericalism)의 태도를 이해하고 그것이 갖는 혁명적 의미를 고찰한다. 반­성직자주의는 루터와 같은 주류의 우파 종교개혁 진영뿐 아니라 뮌처와 같은 좌파 종교개혁 진영에서도 핵심 사안으로 다룬 실천이다. 스스로 부패했을 뿐 아니라 부패한 세력과 결탁된 교회와 성직자의 악을 폭로하 고 그에 항거하는 것이 종교개혁의 시발점이자 혁명의 원초적 뿌리였다는 것이 고, 급기야 19세기의 급진적 공화주의자들, 마르크스와 엥겔스 역시 그 선례를 충실히 따랐다 하겠다. 둘째, 엥겔스가 자신의 저술인 󰡔독일농민전쟁󰡕에서 루터 와 루터의 종교개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논의한다. 엥겔스가 루터를 당시 신흥 부르주아지 이데올로기의 든든한 옹호자로 기꺼이 자리매김하는 것은 분명 하나 그럼에도 루터가 뮌처의 혁명적 행위와 특히 1525년 농민전쟁에 심대한 영향을 준 것을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끝으로, 마르크스가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을 독일혁명의 전개 국면에서 첫 단계를 달성한 것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한 점에서 마르크스와 루터의 혁명적 연관성을 논구한다. 본 연구는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을 종파적이거나 정치적 선입견을 전제로 평가해 온 그간의 흐름에 서 탈피함으로써 종교개혁운동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데 기여하길 희망한다. The purpose of the study is grasp the true meaning of Marx’s statement that “the revolutionary past of Germany was theoretical, and it would be the Reformation.” This study is conducted in three stages. First, we understand the anti-clerical attitude of Luther and Marx-Engels, and consider the revolutionary meaning of it. Anti-clericalism is a key issue not only in a mainstream right-wing of Reformation camp as Luther, but also in left-wing of Reformation camps such as Müntzer. It can be said that it was the origin of the Reformation and the original root of the revolution to expose and protest against the evil of the church and the corruption of the clergies. And it can be judged that the radical Republicans of the nineteenth century, Marx and Engels, have faithfully followed the precedent. Second, we discuss how Engels understands Luther’s Reformation in his book The Peasant War in Germany. It is clear that Engels was willing to position Luther as a strong advocate of the emerging bourgeois ideology at the time. Nevertheless, it is noted that Engels acknowledges that Luther had a profound influence on the revolutionary conduct of Müntzer and especially the Peasant War in 1525. Finally, this study discusses the revolutionary connection between Marx and Luther in the sense that Marx positively assessed Luther as a first-level accomplisher in the development phase of the German Revolution.

      • KCI등재
      • KCI등재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