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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북공정 종료 후 중국학계의 고구려 ‘대외관계사’ 연구 동향

        이준성(Lee Jun-Sung) 한국고대학회 2017 先史와 古代 Vol.- No.53

        동북공정이 종료된 2007년 이후 중국 학계에서 제출된 고구려 ‘대외관계사’ 논문은 동북공정 기간 정리된 ‘번속체제’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특징을 지닌다. 대다수의 연구는 고구려와 중국 왕조의 관계가 ‘일국관계’임을 전제로 진행된 것이다. 반면 조공책봉제도의 성격과 관련 하여 그것을 고대 동아시아의 지역질서로 파악하는 연구들도 일부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동아시아 세계의 성립과 발전을 오직 漢化라는 입장으로만 설명하여, 중국 중심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한편, 돌궐이나 유연 등 북방민족과의 관계와 관련된 연구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점 역시 중국 학계의 인식이 여전히 중원왕조 중심의 관계 해명에 치중되어 있음을 방증한다. 이는 동아시아 세계가 중국 중심의 일원적 국제질서가 아닌 복수의 국제질서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점을 시야에 넣지 못한 한계로 생각할 수 있다. The studies on Goguryeo’s ‘History of Foreign Relations’ submitted to the academic circles of China after 2007 when the Northeast Project of China ended show the characteristic that they are all greatly influenced by the ‘Fanshu Theory’ which was established during the Northeast Project period. Most studies were conducted based on the premise that the relations between Goguryeo and Chinese Dynasties were ‘One Country Relations.’ On the other hand, there are studies that see the characteristic of the Tributary Appointment System as the regional order of the ancient East Asia. However, such studies also explained the formation and development the East Asian world only based on the sinicization, failing to move away from the Sinocentric historical view. The fact that there are still not many studies about the relationship with northern races such as Gokturks or Rouran Khaganate also circumstantially evidence that the Chinese academic circles still focus on elucidating the relations centering on the Central Plains Dynasties. This can be attributed to the limit that Chinese academic circles have due to the exclusion of the idea that the East Asian world was under the influence of multiple international order not under the unitary international order centering on China in their vision.

      • KCI등재

        李鴻章의 對外政策 硏究-朝鮮 屬國名分論을 중심으로-

        김재선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2012 동국사학 Vol.53 No.-

        본 논문은 이홍장의 대 조선 정책의 핵심인 조선 속국명분론이 각 시기마다 확연히 상이한 정책으로 전개되고 있는 점에 주목하여 3시기로 나누어 그 전개양상과 의미를 살펴보았다. 1시기는 강화도조약 전 시기로 전통적인 속국명분론을 주장하였고, 2시기는 강화도조약 후부터 임오군란까지로 연미정책을 산두로 해서 속국을 명문화하려고 힘쓴 시기이며, 3시기는 임오군란부터 청일전쟁까지로 강압적으로 종주권을 행사하는 시기이다. 1시기에는 이홍장이 전통적인 속국명분론 정책을 전개하므로 조선은 비록 중국의 속국이나 내정은 자주라고 주장하였다. ‘속국’과 ‘자주’란 두 용어가 하나로 묶어짐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중조중심사상을 바탕으로 해서 일본을 상대하고, 상대가 일본이니 싸울만하고 승산이 있다고 자부했을 것이고, 중일 수호조약을 맺은 이래 일본을 상당히 우호적으로 생각하여 진일보 일본과 같이 외교연합전선을 구축해서 구미와 대항하는 구도를 꿈꾸고 있었다. 2시기에는 이홍장이 『강화도조약』 후에 조선에서 실추된 청의 위상을 복귀하고 싶었는데 별 성과 없이 또 일본에게 琉球종주권을 뺏기고 말았다. 그러므로 그 해결책으로 이홍장은 외세를 끌어들여 남으로 일본 세력을 견제하고, 북으로 러시아의 남하를 막을 수 있는 나라, 조선이 중국의 속방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줄 나라와 조약 체결이 절실했으며 그렇게 해서라도 속국명분론이 입각한 종주권을 계속 주장하고 유지하기를 희망했다. 이에 열강 중에 미국이 가장 공평하고 순하며 선량하다고 여겼고 특히 ‘다른 나라를 침략할 의사가 없다’, 또 ‘분규를 잘 해결 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聯美’하면 조선이 유리할 것이라고 여겨 연미정책을 선두로 해서 미국, 영국, 독일 등 열강과 통상조약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3시기에는 임오군란을 계기로 조선에 종주권 행사를 강화하기에 이르렀다. 청의 종주권주장은 임오군란을 계기로 그 형태가 종전의 방식과 완전히 달라 있었다. 임오군란 이전이 전통적인 속국 명분론에 입각한 외교 문서상에서만 주장하는 것이라면 임오군란을 계기로 청은 종주국으로 무력을 앞세워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실질적인 권력 행사를 실행하는 단계로 전환을 보게 되었다.

      • KCI등재

        연구논문 : 이홍장(李鴻章)의 대외정책(對外政策) 연구(硏究)

        김재선 동국사학회 2012 동국사학 Vol.53 No.-

        본 논문은 이홍장의 대 조선 정책의 핵심인 조선 속국명분론이 각 시기ㅏ다 확연히 상이한 정책으로 전개되고 있는 점에 주목하여 3시기로 나누어 그 전개양상과 의미를 살펴보았다. 1시기는 강화도조약 전 시기로 전통적인 속국명분론을 주장하였고, 2시기는 강화도조약 후부터 임오군란까지로 연미정책을 산두로 해서 속국을 명문화하려고 힘쓴 시기이며, 3시기는 임오군란부터 청일전쟁까지로 강압적으로 종주권을 행사하는 시기이다. 1시기에는 이홍장이 전통적인 속국명분론 정책을 전해하므로 조선은 비록 중국의 속국이나 내점은 자주라고 주장하였다. ``속국``과 ``자주``란 두용어가 하나로 묶어짐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 했다. 중조중심사상을 바탕으로 해서 일본을 상대하고, 상대가 일본이니 싸울만하고 승산이 있다고 자부했을 것이고, 중일 수호조약을 맺은 이래 일본을 상당히 우호적으로 생각하여 진일보 일본과 같이 외교 연합전선을 구축해서 구미와 대항하는 구도를 꿈꾸고 있었다. 2시기에는 이홍장이 『강화도조약』 후에 조선에서 실추된 청의 위상을 복귀하고 싶었는데 별 성과 없이 또 일본에게 琉球종주권을 뺏기고 말았다. 그러므로 그 해결책으로 이홍장은 외세를 끌어들여 남으로 일본 세력을 견제하고, 북으로 러시아의 남하를 막을 수 있는 나라, 조선이 중국의 속방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줄 나라와 조약 체결이 절실했으며 그렇게 해서라도 속국명분론이 입각한 종주권을 계속 주장하고 유지하기를 희망했다. 이에 열강 중에 미국이 가장 공평하고 순하며 선량하다고 여겼고 특히 ``다른 나라를 침략할 의사가 없다`` 또 ``분규를 잘 해결 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聯美``하면 조선이 유리할 것이라고 여겨 연미정책을 선두로 해서 미국, 영국, 독일 등 열강과 통상조약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3시기에는 임오군란을 계기로 조선에 종주권 행사를 강화하기에 이르렀다. 청의 종주권주장은 임오군란을 계기로 그 형태가 종전의 방식과 완전히 달라 있었다. 임오군란 이전이 전통적인 속국 명분론에 입각한 외교 문서상에서만 주장하는 것이라면 임오군란을 계기로 청은 종주구으로 무력을 앞세워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실질적인 권력 행사를 실행하는 단계로 전환을 보게 되었다. 本論文以李泓章對朝鮮所展開的屬國名分論政策因各時期有明確地區別, 故分爲三時期. 第一時期爲江華島條約以前時期, 屬于傳統的屬國名分論時期. 第二時期爲江華島條約以后至壬午軍亂時期, 屬于屬國明文化時期. 第三時期爲壬午軍亂至甲午戰爭時期, 屬于用武力强加于屬國, 行使宗主權之權利的時期. 第一時期, 李泓章進行的屬國名分論, 主長朝鮮爲中國屬國, 但不干預其內政. 由于屬國與自主兩個詞彙互相矛盾所以引起不少爭執和懊悔. 以中朝中心思想爲基黜, 來對待日本, 李泓章認爲有价値근日本打, 而且還有勝算. 這段時期因與日本締結江華島條約以來, 對日本相當有有好感, 夢想與日本結伴組織外交聯合戰線來對抗歐美. 第二時期李泓章欲回復江華島條約后, 失落的淸的地位. 可是幷沒有什요成果又將琉球宗主權주失了. 所以李泓章欲引致外勢來牽制朝爲南邊的日本與北邊的俄國, 他需要承認屬國的國家來與朝鮮簽定通好條約. 他認爲美國最公平最善良, 尤其他沒有侵占他國的意思, 又善于解抉糾紛等理由, 實行聯美政策, 終于以美國爲首, 與英德漸次地簽定了友好條約, 雖然沒有他所預料的屬國明文化, 可也有一定的成果. 第三時期, 以壬午軍亂爲契机, 開始强化了淸在朝鮮的宗主權.淸的宗主權以壬午軍亂起其形態與以前的方式大大地改變了. 壬午軍亂以前是以傳統的屬國名分淪爲基黜, 只在文書上講究的話, 壬午軍亂以后可以說淸以宗主做主, 轉換爲用武力干預朝鮮內政, 不止是政治上, 在經濟, 外交, 軍事等所有領域上實行實際的權利.

      • KCI등재

        李鴻章의 對外政策 硏究

        김재선 동국사학회 2012 동국사학 Vol.53 No.-

        본 논문은 이홍장의 대 조선 정책의 핵심인 조선 속국명분론이 각 시기마다 확연히 상이한 정책으로 전개되고 있는 점에 주목하여 3시기로 나누어 그 전개양상과 의미를 살펴보았다. 1시기는 강화도조약 전 시기로 전통적인 속국명분론을 주장하였고, 2시기는 강화도조약 후부터 임오군란까지로 연미정책을 산두로 해서 속국을 명문화하려고 힘쓴 시기이며, 3시기는 임오군란부터 청일전쟁까지로 강압적으로 종주권을 행사하는 시기이다. 1시기에는 이홍장이 전통적인 속국명분론 정책을 전개하므로 조선은 비록 중국의 속국이나 내정은 자주라고 주장하였다. ‘속국’과 ‘자주’란 두용어가 하나로 묶어짐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중조중심사상을 바탕으로 해서 일본을 상대하고, 상대가 일본이니 싸울만하고 승산이 있다고 자부했을 것이고, 중일 수호조약을 맺은 이래 일본을 상당히 우호적으로 생각하여 진일보 일본과 같이 외교연합전선을 구축해서 구미와 대항하는 구도를 꿈꾸고 있었다. 2시기에는 이홍장이 ?강화도조약? 후에 조선에서 실추된 청의 위상을 복귀하고 싶었는데 별 성과 없이 또 일본에게 琉球종주권을 뺏기고 말았다. 그러므로 그 해결책으로 이홍장은 외세를 끌어들여 남으로 일본 세력을 견제하고, 북으로 러시아의 남하를 막을 수 있는 나라, 조선이 중국의 속방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줄 나라와 조약 체결이 절실했으며 그렇게 해서라도 속국명분론이 입각한 종주권을 계속 주장하고 유지하기를 희망했다. 이에 열강 중에 미국이 가장 공평하고 순하며 선량하다고 여겼고 특히 ‘다른 나라를 침략할 의사가 없다’, 또 ‘분규를 잘 해결 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聯美’하면 조선이 유리할 것이라고 여겨 연미정책을 선두로 해서 미국, 영국, 독일 등 열강과 통상조약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3시기에는 임오군란을 계기로 조선에 종주권 행사를 강화하기에 이르렀다. 청의 종주권주장은 임오군란을 계기로 그 형태가 종전의 방식과 완전히 달라 있었다. 임오군란 이전이 전통적인 속국 명분론에 입각한 외교 문서상에서만 주장하는 것이라면 임오군란을 계기로 청은 종주국으로 무력을 앞세워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실질적인 권력 행사를 실행하는 단계로 전환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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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말 국제법 번역과 ‘藩屬’ 관련 개념의 의미 확장

        이동욱(Dong-uk Lee) 중국근현대사학회 2018 중국근현대사연구 Vol.80 No.-

        From the late 19<SUP>th</SUP> century, intellectuals of Qing Dynasty not only began to recognize European international relations but also embraced the foreign politics and concepts from the Chinese perspective. They understood the European politics in purview of Fanshu(藩屬), a concept to explain the Qing imperial order. This article argues that such recognition emerged from the articulation of European terms such as feudal vassal, protected state, dependent state, and colony into Chinese terms including Shu(屬) and Fan(藩) from international law textbooks concerning the European world order. The translation of European concepts followed by the synchronization with Chinese ones brought about the overlapping of acceptations, which resulted in the complication and transformation of the original Chinese concept of Fanshu. The translation of international law textbooks laid the foundation of the one-to-many and many-to-many hypothetical equivalences, which translated different concepts within the European context into a Chinese idea, or one European theory into different concepts in the Chinese context. As a result, these translations affected the Chinese articulation of “Shangguo(上國)-Shuguo(屬國)” relationship, which included multiple concepts of protectorate, suzerain-vassal and colonial relations. These terms with new meanings, juxtaposed with its traditional ones, played a pivotal role in the development of Chinese political thought and policies regarding the Fanshu or frontier issues, not only in the late Qing China, but also in the contemporary recognition of Chinese world order and Western international order, as much as the recognition of historical relations between China and its neighboring coun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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