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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전기 對日 銅무역 연구

        민채윤 한일관계사학회 2024 한일관계사연구 Vol.0 No.84

        동은 화폐, 무기, 활자 제작 등 여러 가지 용도가 있는 물품이다. 조선에서는 국내의 동 광산을 확보하고 생산하기 위해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세종실록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동의 생산지를 기록하였다. 또한 동은 국가 소용(所用)의 물품이라며 민간에 유통할 수 없는 금물(禁物)로 지정하고, 경국대전 에 성문화하여 동의 생산과 유통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자 하였다. 조선 건국 이후 동은 일본으로부터의 수입품으로 주목받았다. 1406년(태종 6) 조선에서는 윤명(尹銘)으로 하여금 동 1천 근을 일본으로 보내 보빙(報聘)하게 하였다. 일본에서는 일본국왕사와 각 지방의 세력들이 조선에 동을 토산물(土産物)로 진상(進上)하고, 이에 대한 하사품(下賜品)을 받는 방식으로 무역하고자 하였다. 조선으로 동을 수출한 일본 내 지역은 크게 대마도(對馬島), 일기주(一岐州), 구주(九州), 본주(本州)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구주에서는 비주(肥州) 지역에 거주하는 구주절도사(九州節度使) 세력과 축주(筑州) 지역에 거주하는 소이전(小二殿) 세력이 조선과의 동무역을 주도하였다. 본주는 일본국왕과 산양도(山陽道) 지역에 거주하는 대내전(大內殿) 세력이, 대마도는 대마도주(對馬島主)가 주도하였다. 그 외에 대마도의 수직왜인(受職倭人)과 일기주의 수도서(受圖書)를 받은 경우에도 조선과의 동무역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조・일 관계에서 동은 일종의 물품화폐 역할을 하였고, 동과 함께 면포가 결제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일본에서는 자력 생산할 수 없던 면포를 얻는 일이 우선시 되었고, 동을 무역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조선에서는 이를 막기 위해 동의 무역을 사무역으로 전하는 등의 노력을 보였다. 따라서 조・일 간의 무역에서 동은 조공무역 체제를 근간으로 한 조선전기 대외무역에서 사무역의 허용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The study explores copper trade with Japan in the Early Joseon Dynasty. Copper has varied usage to produce money, arms, printing metal etc. Joseon was very interested in securing copper mine in the country and producing copper. The production location was recorded on Sejongsilrokjirigi (世宗實錄地理志), Sinjeungdonggukyeojiseungnam(新增東國輿地勝覽) etc. Copper was intended to be systematically produced and distributed. Gyeonggukdaejeon(經國大典) designated copper as prohibited item to be managed. Since the founding of Joseon, copper has attracted attention as an import from Japan. 1406(the 6th reign of Taejong) as the trading product with Japan. YoonMyeong(尹銘) was sent to Japan as an envoy with copper in 1,000 Geun(斤). From then, envoy for Japanese King(日本國王使) and powerful regional family presented copper as local product to Joseon and in return, received imperial gift. Thus, trade began. The Japanese areas from where copper were exported to Joseon were largely Tsushima(對馬島), Iki Island(一岐州), Kyushu(九州), Honshu(本州) etc. In Kyushu, Kyushu commander(九州節度使)’s force living in Biju(肥州) and Soijeon(小二殿) force in Chukju(筑州) led copper trade with Joseon. In Honshu, Japanese King and Daenaejeon(大內殿) force in Sangyangdo(山陽道) led it while the governor of Tsushima(對馬島主) led the trade in the island. Besides, Japanese with government positions given from Joseon(受職倭人) in Tsushima and Soodoseo(受圖書) participated in copper trade with Joseon. In the relation between Joseon and Japan, copper played a role as a kind of money and it became a means of payment together with cotton. Japan preferred getting cotton because they could not produce it. Japan wanted to be paid by cotton in the trade for other items than copper. Japan used copper to obtain trade benefit. To prevent this, Joseon gave efforts like changing public trade into private trade. Accordingly, copper has a great meaning in the trade with Japan that copper made private trade be allowed in the foreign trade in the Early Joseon based on system of tribute trade.

      • KCI등재

        페루의 동: 현황과 미래의 도전

        호르게 아꼬스따,알베르또 부스따만떼,미구엘 까르도조,허철호,김의준,Acosta, Jorge,Bustamante, Alberto,Cardozo, Miguel,Heo, Chul-Ho,Kim, Eui-Jun 대한자원환경지질학회 2013 자원환경지질 Vol.46 No.6

        페루의 동 광화작용은 주로 반암 동 광상과 밀접하게 관련되며, 팔레오세, 에오세-올리고세, 마이오세 동 광화대로 세분된다. 현재까지 반암 동 광화대로부터 생산된 동은 총 2,800만 톤에 이르며, 또께빨라(Toquepala), 꾸아호네(Cuajone), 쎄로베르데(Cerro Verde) 광상들을 포함하고 있는 팔레오세 광화대로부터 생산된 동은 페루 총 동 생산량의 57%를 차지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페루 중남부(에오세-올리고세)와 북서부(마이오세) 지역으로 탐사활동의 집중은 연간 동 생산량이 20만 톤 이상인 라 그란하(La Granja), 엘 갈레노(El Galeno), 라스 밤바스(Las Bambas), 또로모초(Toromocho), 리오 블랑꼬(Rio Blanco) 등의 발견을 가져왔다. 이들 광상들을 제외하고, 총 13개의 신규 동 광상들이 팔레오세, 에오세-올리고세, 마이오세 동 광화대로부터 발견되었다. 따라서 페루는 2014년부터 이들 광상들로부터 순차적으로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며, 2012년 기준 연간 동 생산량 143만 톤을 2019년에 490만 톤 규모로 증가시킬 계획이다. 또한 이러한 신규광상의 발견으로 인하여, 앞으로 페루 광물자원탐사는 팔레오세의 동 광화대에서 에오세-올리고세와 마이오세 동 광화대로 이동될 것으로 예상된다. The copper mineralization in Peru is intimately associated with porphyry Cu deposits and subdivides into three porphyry Cu belt as Paleocene, Eocene-Oligocene, and Miocene. Up to now, the total copper production from them reach 28 Mt Cu. The total copper production from the Paleocene Cu belt, including Toquepala, Cuajone, and Cerro Verde, accounts for approximately 57% of total copper production from Peru. But focusing mineral exploration on middle southern (Eocene-Oligocene) and northwestern part (Miocene) of Peru results in new discoveries, including La Granja, El Galeno, Las Bambas, Toromocho, and Rio Blanco, which have an estimated annual production more than 200,000 t Cu. In addition to them, thirteen Cu deposits are discovered from the Paleocene, Eocene-Oligocene, and Miocene Cu belts. Thus, Peru is supposed to produce Cu production from 2014 and increases annual production from 143 Mt Cu in 2012 to 490 Mt Cu in 2019. Due to new discoveries, it is expected that mineral exploration activities in Peru are likely to move from Paleocene Cu belt to Eocene-Oligocene and Miocene Cu belts.

      • KCI등재

        20대 소비자에게 벼룩시장 및 중고품의 의미는 무엇인가?

        천혜정(Hyejung Cheon),이지연(Jiyeon Lee) 한국유통학회 2015 流通硏究 Vol.20 No.3

        본 연구에서는 중노년의 장소로 알려진 황학동/동묘 벼룩시장을 20대 소비자가 왜 찾으며 이 시장에서 어떠한 경험을 하는지, 그리고 20대 소비자에게 벼룩시장 및 중고품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황학동/동묘 벼룩시장을 방문, 중고품을 구매하는 20대 소비자 8명과의 개인면접을 실시하였다. 연구결과 20대 소비자는 황학동/동묘 벼룩시장에서 자신이 어렸을 때 가지고 놀거나 사용하던 물건이지만 이제는 현대화된 시장에서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물건들을 통해 과거를 추억하는데, 이들에게 추억 ‘돋는’ 물건은 도스형 컴퓨터, 디스켓, 게임팩, 장난감, 워크맨, 비디오테이프등으로 다양하였다. 그런데 이들이 시장의 물건을 보며 느끼는 기억은 과거에 의존하고 있지만 기억을 통해 상기되는 과거의 것들은 현재의 상태를 지시하고 있었다. 즉 한국사회의 20대로서 자신들이 직면한 불안한 현실보다 위협적이지 않고 편안했던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곳으로 황학동/동묘 벼룩시장을 경험하며 승자독식의 현대사회에서 시골생활의 낭만을 느낄 수 있는 힐링의 장소로 황학동/동묘 벼룩시장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었다. 또한 마구잡이로 쌓여있는 물건들, 갈 때마다 바뀌는 물건들, 허를 찌르는 물건들에 대한 호기심을 이야기하는 등 ‘탐험가’로서의 소비자의 모습을 띠고 있었으며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저렴하게 구매하는 이른바 ‘득템’의 즐거움을 경험한다. 이들은 중고품에 대한 거부감을 전혀가지지 않으며, 오히려 보물찾기, 빈티지 등의 용어를 사용하며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중고품에 매력을 느낀다고 하였다. 현대화된 백화점과 쇼핑몰, 합리화/대형화된 유통점과 편의점 등에 보다 익숙한 20대 소비자들이 오히려 허름하고 낡은 벼룩시장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다. 결국 중고품과 벼룩시장에서의 소비경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고품과 벼룩시장이 가지는 기본적인 경제적 기능 이외 사회문화적 가치까지 재고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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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정조직 통폐합에 대한 정량적 효과분석

        심재섭(Shim, Jae Sub),김지표(Kim, Ji Pyo) 서울행정학회 2015 한국사회와 행정연구 Vol.25 No.4

        2007년도 서울시는 25개 자치구 중 100개 동 주민센터 통합을 추진하면서 계량적으로 약 4,000 억 원 정도의 효과를 볼 것으로 예측하였다. 2009년 말까지 3년 동안 총 94개 동(2007년 초 마포구 4개 동을 포함하여 대외적으로 98개로 발표)을 통폐합하였다. 본 연구는 서울시가 도출한 계량적 효과금액인 3,807억을 비용편익분석이라는 방법론을 통하여 재계산하여 산정하였다. 서울시 산하 대표적 동 통폐합자치구인 마포구와 동대문구를 선정하여 같은 방법론을 적용한 정량적 효과분석과 사례분석(설문분석)을 추가적으로 실시하였다. 비용편익분석 결과, 서울시는 3,305 여 억 원, 마포구는 403 여 억 원, 동대문구는 585 여 억 원의 정량적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도출되었다. 또한, 두 자치구 동 통폐합 주민을 대상으로 설문분석을 한 결과, 주민들은 동 통폐합에 대한 필요성과 만족도가 높을수록 지속적인 동 통폐합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보다 체계적인 동 통폐합 방법론의 개발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In 2007, Seoul expected the effect of about 400 billion won to encourage using Dong Consolidation to abolish a total of 100 Dongs among 25 autonomous regions. For 3 years, a total of 94 Dongs (officially 98 Dongs including Mapo-Gu’s 4 Dongs in early 2007) were consolidated until 2009. This study recalculated the actual sum of 380.7 billion won through the Cost-Benefit Analysis. Moreover, the representative autonomous regions of Mapo-Gu and Dongdaemun-Gu, within Seoul implemented a quantitative benefit analysis and a case study to apply the same methodology. The Cost-Benefit Analysis results were 330.5 billion won from Seoul, 40.3 billion won from Mapo-Gu, and 58.5 billion won from Dongdaemun-Gu quantitatively. This study conducted a survey on residents of the two autonomous regions that experienced Dong Consolidation. The survey results found that residents scored higher for residents’ needs and satisfaction because of the Dong Consolidation, and therefore the Dong Consolidations will continue. In the future, the development of a better systematic Dong Consolidation method will be needed.

      • 동 및 동합금 제련공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의 특성

        엄남일,박선오,김우일,최효현,윤철우,김태희,신선경,전태완,강영렬 한국폐기물자원순환학회(구 한국폐기물학회) 2015 한국폐기물자원순환학회 춘계학술발표논문집 Vol.2015 No.-

        동 제련 산업의 경우 1960년대까지 소비하는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였고, 이후 경제발전과 함께 수요가 대폭 증가하면서 국내에서도 동 제련 생산업체가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이와 함께 자동차, 전기ㆍ전자, 철강, 건설 및 기계 산업에 주요 기초 소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산업 특성상 수입에 의존하는 원자재의 가격이 수익성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제련 시 발생하는 폐기물을 이용한 재활용 기술연구가 필요한 실정이다. 국내 동 제련 산업은 원석인 황동광을 파ㆍ분쇄하여 제품을 생산하는 1차 동 제련 산업과 폐동스크랩, 폐동파이프 등을 원재료로 하여 동 빌레트, 동 괴, 황동봉을 생산하는 2차 동 제련산업으로 나눌 수 있다. 1차 동 제련산업의 경우 국내 유일업체에서만 생산하고 있으며, 자체 플랜트 사업을 통해 재활용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나, 2차 동 및 동합금 제련공정의 경우 현재 연구실적이 많지 않다. 공정 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에 함유되어있는 Cu, Zn, Pb, Fe 등의 유가금속을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상 폐기물의 물리ㆍ화학적 특성 및 환경성평가가 선행 연구되어야 한다. 본 연구에서는 동 및 동합금 제련공정에서 폐기물의 발생량, 생산제품 등 5개 사업장(C사, D사, S사, P사, H사)을 선정하여 광재, 분진, 오니 폐기물의 기본 특성을 확인하였다. 대상 폐기물의 입도특성, 광물학적 특성 및 화학적 조성을 확인하였고, 입도분포에 따라 광물학적 성상의 변화에 대해 확인하였으며, 대상 폐기물의 중금속 용출ㆍ함유량을 확인하였다. 입도특성 결과, C사와 S사 광재의 경우 육안으로 식별 가능하였으며, S,P,H의 광재는 비교적 입도별로 고루 분포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입도의 크기가 1 mm 이상에서는 폐기물 내 금속편의 식별이 가능하여 분리가 간편하지만, 1 mm 이하 금속편의 경우 파ㆍ분쇄 후 스크리닝(Screening)을 통한 분리공정이 필요하다. 또한 0.1 mm 이하에서 11%의 중량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P2시료의 경우 물리적 파ㆍ분쇄를 통해 금속편의 회수가 어렵기 때문에 자력선별, 부유선별 등의 습식제련방법을 활용하여 분리해야한다. 황동 원재료 및 황동 제품을 주로 생산하는 D사, H사, P2사의 경우 대부분이 Zn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90% 이상의 높은 함유량을 보이고 있다. 또한 동 빌레트, 동 버스바 및 동 특수합금을 제조하는 사업장의 경우 Cu, Fe. Zn의 함유량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어 이를 회수하여 재활용 할 경우 유가금속의 확보와 더불어 대부분의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실정에 따라 자체생산에 의한 경제성이 확보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환경성평가를 통해 높은 용출특성 및 함유량을 지닌 Cd, Hg, As 등의 유해물질이 제거된 폐기물은 공업용 충전제, 절연재, 채움재, 세라믹스 원료 등으로 재활용 확대방안에 기여 할 것으로 판단된다. 본 연구의 동 및 동합금 제련공정 발생폐기물의 입도특성, 광물학적 특성 및 화학적 조성, 유해물질 함유 특성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재활용 및 유가금속의 회수를 위한 기초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 KCI등재

        한승원<동학제>에 나타난 제의(祭儀)를 통해 실현되는 개벽세상

        우수영 동학학회 2015 동학학보 Vol.0 No.37

        본 논문에서는 혁명의 개념이 아닌 제의(祭儀)의 개념을 적용하여 한승원의 대하장편소설 『동학제』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실제 서사의 진행을 살펴보면, 한승원의 『동학제』는 동학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에 두고 있지만, 작가의 소설미학을 통하여 서사가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학제』의 작품 제목처럼 ‘ ~ 제’라는 용어에 사용된 ‘제’는 명사 뒤에 붙은 접사로서 기능한다. 그러기에 한승원의 작품 『동학제』는 ‘동학’을 하나의 제의로 그리고자 했음을 작품 제목을 통해 간파할 수 있다. 한승원의 『동학제』는 제의를 통해서 염원을 이루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동학제』 서사를 통해 등장하는 인물들의 염원은 크게 억압의 존재를 없애고자 하는 염원과 존재를 유지하고 이어가고자 하는 염원으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피지배 계층의 염원이자 동학도인들의 염원이었다. 반면 후자는 지배 계층이자 양반들의 염원이었다. 그 염원의 풀이와 이음 역시 두 부분으로 크게 구분된다. 이인한의 생모 박씨는 종의 씨를 받아 신씨 가문의 대를 온전하게 이었고, 전장에서 찾아온 이인한의 시신을 가문 선산에 묻음으로써 집나갔던 아들을 다시 신씨가문의 구성원으로 복귀시키고 있다. 이로써 결국 신씨가문의 염원은 동학제(東學祭)라는 제의 과정을 통해 그 염원의 풀이를 이루고 있다. 또 다른 하나의 염원은 평등세상을 향한 적극적 현실 개입을 통해 드러난다. 전투에 참여한 동학군들은 무기와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한울님의 신령한 힘으로 전투에서 승리한다고 믿는 미친 짐승들의 무리처럼 보인다. 그러한 동학군들 모습에서 표출되는 것은 염원이라기보다 오히려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그들의 간절한 믿음이었다. 동학군들은 평등세상을 지향하는 그들의 믿음을 전장에다 풀어 놓고 있는 것이다. 『동학제』 서사는 소안도라는 곳으로 떠나는 인물 평산과 안씨, 우암과 별님이의 모습을 그린다. 온갖 고난과 위기를 겪은 그들이 마지막으로 향하고 있는 새로운 세상, 소안도라는 섬은 그들의 사랑을 억압하는 어떠한 요소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그들에게 그곳은 새로운 평등세상이자 개벽세상인 것이다. 제의는 사람이 태어나고 짝을 맺고 죽음에 이르는 기나긴 여정을 무사히 치른 것에 대한 극진한 위로이다. 그 장(場)의 참여자 또한 현실의 슬픔을 위로받고 또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 힘은 또 다른 가능성이다. 이러한 가능성이 『동학제』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고 있다. 『동학제』의 마지막 장면은 동학도인들이 그리는 새로운 평등세상은 유교, 불교, 동학 모두가 함께 나아가야 도달할 수 있는 개벽세상임을 깨우쳐주고 있다. 결국 『동학제』는 민초들의 염원이나 지배 권력층의 염원이 동학혁명과 더불어 또 그 이후까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제의(祭儀)의 장(場)이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analyze 『Dong-hak-je(東學祭)』, which is Han Seung-won's long epic novel, by applying a concept of ritual, not a concept of revolution. Examining the actual narrative progression, Han Seung-won's 『Dong-hak-je(東學祭)』 is putting background in the historical event called Donghak revolution, but can be known to be developed narration through the author's novel aesthetics. Like the title of a work in 『Dong-hak-je』, ‘Je,’ which was used in a term called ‘ ~ je,’ functions as affix of being attached following a noun. As can be known in examples such as Gi-u-je(祈雨祭, ritual for rain), Ye-sul-je(藝術祭, art festival), Ui-ryeong-je(慰靈祭, memorial service), etc., it is suffix that adds a meaning of ancestral rite or festival. Thus, Han Seung-won's work titled 『Dong-hak-je(東學祭)』 can be known to have aimed to depict 'Dong-hak' as a ritual through the title of a work. That is to say, in Han Seung-won's 『Dong-hak-je』, an action of dedicating sacrifice through a ritual is also the process of making a desire. An aspiration of characters, who appear through the narration of 『Dong-hak-je』, can be divided largely into a desire of aiming to remove the existence of suppression and a desire of aiming to proceed with maintaining the existence. The former was the aspiration of the subjugated class and also the desire of Donghakdoin(s). On the other hand, the latter was the aspiration of the ruling class and Yangban(兩班, aristocrat). These wishes that the characters in the narration of 『Dong-hak-je』 were progressed by having background as the historical event called Donghak revolution. Even the interpretation and the connection in its aspiration are divided largely into two parts. Lee In-han, who is Donghak-jeopju(東學接主) in Daerim, disappears through the last battle in Donghak force(東學軍). Lee In-han, who had left the Shin clan with clarifying that he himself is a child of a slave, is returning to the Shin clan regardless of his intention along with death. Lee In-han aimed to escape from the Shin clan with disclosing Yangban's false, but is going back rather as a member of the family because of having been dead in the battle. Lee In-han's biological mother Mrs. Park bodily carried on a family line of the Shin clan by receiving a seed of a slave, and buried Lee In-han's corpse, which came from the battle, in the family ground, thereby making him return as a member of the Shin clan. According to this, the desire of the Shin clan is being ultimately achieved through the process of a ritual called Dong-hak-je(東學祭). Another interpretation of the aspiration is a combatant situation through positively intervening in reality toward the equal world. The Donghak forces, which participated in the battle against the Japanese army and the government forces, look like a group of crazy animals believing that they gain the battle. What is expressed in such image of Donghak forces was their desperate belief of wishing for being so rather than a desire that they have. It is what the Donghak forces are undoing their belief of pointing to the equal world in the battlefield. 『Dong-hak-je(東學祭)』 depicts the image of Pyeongsan & Mr. Ahn, Uam & Byeolnim who leave for a place dubbed Soando. The new world of heading for the last by them as those who suffered all the hardships and crises, namely, the island called Soando can be a place that isn't existed any obstacle of suppressing their love. As for them, that place is the world of Gaebyeok(開闢世上, the Dawn of Human Civilization) in the equal world. A ritual is cordial consolation on what a person safely went through the long journey of being born, entering into a pair, and reaching death. A participant in the field(場) is also consoled the sadness of reality and is encouraged once again. The power is another potentiality. This possibility is appearing in the last scene of 『Dong...

      • KCI등재

        銅戈의 사용 맥락을 통해 본 성격 추정- 중원식동과와 요령식동과·한국식동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

        이후석 영남고고학회 2013 嶺南考古學 Vol.- No.67

        There were a few difference for distribution channel and burial context from Zhongyuan type bronze halberd that certified in Zhongyuan area and native culture of Liaoning area. The Liaoning type bronze halberd and the Korean type bronze halberd were designed based on the motifs of the Zhongyuan type bronze halberd. In this process, the construction, form and function of the bronze halberd made a some difference, But this caused by geographical and political circumstances. In the case of the Zhongyuan type bronze halberd and the Korean type bronze halberd, In first, there are little differences between the concepts of make a using or burying that. But at last, the characteristic of Bronze weapoen changed. This changes turned up with still more various context in the stage that bronze weapon had substituted iron weapon. In other words, the characteristics of the bronze halberds and the bronze spearheads have been slowly changed from the symbol of military force into ritualistic or ideological meanings. 요령지역의 토착문화에서 확인되는 중원식동과는 중원지역의 것과 유통 과정이나 부장 배경을 달리한다. 세형동검문화단계 요령지역의 토착집단은 중원식동과가 지닌 상징성과 함께 실질적인 기능까지 일부 수용하였는데, 이는 결국 요령식동과를 거쳐 한국식동과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요령식동과와 한국식동과는 주척식의 구조, 대칭적인 형태, 단병식에 가깝거나 자루와는 예각으로 착장되는 방식 등을 고려하면 타격력이 강화되어 중원식동과의 걸어 베는 기능보다 내려 찍는 기능이 더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중원지역과는 다른 청동무기 전통하에 자연지리적, 정치사회적 환경에 적응해 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중원식동과가 요령지역을 거쳐 한반도로 파급되는 과정에서 형태와 구조가 일변하여 한국식동과로 변형되고 난 후 사용방식이나 기능에도 약간의 변화가 있었지만, 처음에는 청동무기를 사용하고 부장하는 관념에서 커다란 차이점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나중에는 점차 무력적인 측면보다 의례적인 성격이 강화되었는데, 이는 청동무기가 철제무기로 대체되는 단계부터 더욱 다양해진 양상으로 나타난다. 전국연과 고조선의 무력 충돌 이후 등장하였다고 생각되는 한국식의 동과와 동모는 무기로서 기능하였으며, 동과와 동모가 지닌 군사적인 권위 혹은 무력적인 성격은 사회변화에 따라 점차 의기적인 성격으로 변화되었다고 생각된다. 초기철기시대의 동과와 동모가 지닌 상징성은 기본적으로 무기라는 범주에서 이해해야 한다.

      • KCI등재

        万葉集의 음차자 農(Ⅱ)

        김대성(Kim, Dae-Sung) 한국일본문화학회 2015 日本文化學報 Vol.0 No.64

        I have two broader aims. The first is to explore when Dong(冬) rime was combined with Dong(東) one in DivisionⅠ during Tang era. My second aim is to attempt to reconstruct the sound value of Dong(冬) rime in Ancient Chinese and the one in Northern Regions in Tang era. We find that Dong(冬) rime was assimilated into Dong(東) rime before A.D.683 when Gao Zong, an emperor of Tang dynasty, died, because of his being the first user of the two rimes rhymed in an inscription. It is significant to note that Dong(冬) was [oŋ] in Ancient Chinese, and [?ŋ] in the Northen regional sound of Tang dynasty. The [oŋ] has been reconstructed by Sino-Korean /옹/, Many?gana or Old Japanese phonetic alphabet 宗(/so/) except for 農(/nu/) representing the latter sound, and Sino-Vietnamese and Sino-Tibetan [oŋ] which are the secondary sources. The Northern [?ŋ] is mainly based on 農(/nu/) of which Yamanoueno Okura made use. We find 11 examples in Many?sh? in which Yamanoueno Okura wrote ten times and Yamabeno Akahito, who used 農 at the same time as Okura, had only one example. Okura stayed in Tang at least for two years in the early 8th century when Ancient Chinese was undergoing its great shift in sounds. It implies that he might have known very well the sound changes in the period. The [?ŋ] theory is also grounded in the 農 instances of Nihonsyoki and Fudoki. 農 is mainly represented as /nu/ in α group poems in the former, although a few characters of Mo(模) rime are illustrated for /nu/, and it is also recorded only for /nu/ in the latter with 努 having two different sounds /nu/ and /no/.

      • 동 및 동합금 제련공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의 특성

        엄남일,박선오,김우일,최효현,윤철우,김태희,신선경,전태완,강영렬 한국폐기물자원순환학회 2015 한국폐기물자원순환학회 학술대회 Vol.2015 No.05

        동 제련 산업의 경우 1960년대까지 소비하는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였고, 이후 경제발전과 함께 수요가 대폭증가하면서 국내에서도 동 제련 생산업체가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이와 함께 자동차, 전기・전자, 철강, 건설 및 기계 산업에 주요 기초 소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산업 특성상 수입에 의존하는 원자재의 가격이 수익성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제련 시 발생하는 폐기물을 이용한 재활용 기술연구가 필요한 실정이다. 국내 동 제련 산업은 원석인 황동광을 파・분쇄하여 제품을 생산하는 1차 동 제련 산업과 폐동스크랩, 폐동파이프 등을 원재료로 하여 동 빌레트, 동 괴, 황동봉을 생산하는 2차 동 제련산업으로 나눌 수 있다. 1차 동 제련산업의 경우 국내 유일업체에서만 생산하고 있으며, 자체 플랜트 사업을 통해 재활용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나, 2차 동 및 동합금 제련공정의 경우 현재 연구실적이 많지 않다. 공정 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에 함유되어있는 Cu, Zn, Pb, Fe 등의 유가금속을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상 폐기물의 물리・화학적 특성 및 환경성평가가 선행 연구되어야 한다. 본 연구에서는 동 및 동합금 제련공정에서 폐기물의 발생량, 생산제품 등 5개 사업장(C사, D사, S사, P사, H사)을 선정하여 광재, 분진, 오니 폐기물의 기본 특성을 확인하였다. 대상 폐기물의 입도특성, 광물학적 특성 및 화학적 조성을 확인하였고, 입도분포에 따라 광물학적 성상의 변화에 대해 확인하였으며, 대상 폐기물의 중금속 용출・함유량을 확인하였다. 입도특성 결과, C사와 S사 광재의 경우 육안으로 식별 가능하였으며, S,P,H의 광재는 비교적 입도별로 고루 분포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입도의 크기가 1 mm 이상에서는 폐기물 내 금속편의 식별이 가능하여 분리가 간편하지만, 1 mm 이하 금속편의 경우 파・분쇄 후 스크리닝(Screening)을 통한 분리공정이 필요하다. 또한 0.1 mm 이하에서 11%의 중량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P2시료의 경우 물리적 파・분쇄를 통해 금속편의 회수가 어렵기 때문에 자력선별, 부유선별 등의 습식제련방법을 활용하여 분리해야한다. 황동 원재료 및 황동 제품을 주로 생산하는 D사, H사, P2사의 경우 대부분이 Zn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90% 이상의 높은 함유량을 보이고 있다. 또한 동 빌레트, 동 버스바 및 동 특수합금을 제조하는 사업장의 경우 Cu, Fe. Zn의 함유량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어 이를 회수하여 재활용 할 경우 유가금속의 확보와 더불어 대부분의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실정에 따라 자체생산에 의한 경제성이 확보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환경성평가를 통해 높은 용출특성 및 함유량을 지닌 Cd, Hg, As 등의 유해물질이 제거된 폐기물은 공업용 충전제, 절연재, 채움재, 세라믹스 원료 등으로 재활용 확대방안에 기여 할 것으로 판단된다. 본 연구의 동 및 동합금 제련공정 발생폐기물의 입도특성, 광물학적 특성 및 화학적 조성, 유해물질 함유 특성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재활용 및 유가금속의 회수를 위한 기초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 KCI등재

        고려시대 東女眞ㆍ東眞兵의 강원지역 침입에 대하여

        한성주(Han, Seong-Ju)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1 인문과학연구 Vol.0 No.30

        이 논문은 고려시대 여진의 침입 중 강원지역 침입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고려 건국기 지금의 만주지역의 여진인들은 발해와 거란의 투쟁으로 인해 점차 남하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강원지역을 중심으로 한 동해안 일대에서 여진의 침입이 많이 발생한 것으로 되어 있다. 특히 이 지역에서 활동한 여진인들은 東女眞으로 불리었는데, 이들은 육로가 아닌 해로를 이용하여 동해안 일대에 많은 피해를 주었다. 이 ‘東女眞 海賊’들의 활동시기는 11세기로, 1005년(목종5)부터 발생하여 1097년(숙종 2)까지 총 33차례가 확인되었다. 계속된 이들의 침입에 東北界 연해지방의 성보에 사는 군사와 백성들이 편안히 살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에 고려에서는 ‘동여진 해적’을 방어하기 위해 1009년(현종 즉위년)에 戈船 75척을 만들어서 鎭溟口(지금의 북강원도 원산)에 배치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고려의 수군 부대인 鎭溟都部署였다. 그리고 동해안 연안 일대에 城을 축조하기 시작하였는데, 지금의 강원도 일대는 물론이거니와 부산에 이르기까지 축성작업을 하였다. 문종대에는 동해로부터 남해에 이르기까지 연해에 城堡와 農場을 만들어 해적 침공의 요충을 장악하였다는 기록이 이것을 뒷받침하여 준다. 또 고려에서 먼저 육로와 해로로 ‘동여진’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고려의 수군 배치와 축성 등은 ‘동여진 해적’을 방어하기 위한 국가적 대응이라는 측면이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동여진 해적’들은 지금의 강원지역뿐만 慶州, 鬱陵島, 심지어는 일본의 쓰시마[對馬島] 및 규슈[九州] 일대까지 침입하였다. 1019년(현종 10) 일본을 침입하였을 때는 많은 일본인들을 약탈하여 돌아가다가 고려 水軍의 반격을 받았는데, 고려에서는 포로되었던 일본인 남녀 259명을 일본으로 돌려보내 주기도 하였다. ‘동여진 해적’들이 이렇게 일본까지 침입하였던 것은 고려의 수군 배치와 築城이 효과를 거두어 점차 침입이 어려워졌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렇듯 ‘동여진 해적’은 고려의 효과적인 방어정책과 완안부의 여진통합책에 따라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한편 금을 건국하게 된 여진족들은 몽고족이 성장하면서 많은 반란과 폭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 중 浦鮮萬奴가 세운 ‘東眞’이 당시 동북아시아의 정세 변동에 편승하여 고려를 여러 차례 침입하였다. 東眞兵들은 독자적으로 또는 몽고와 연합하기도 하면서 고려에 침입하였고, 몽고에 완전히 복속된 뒤에는 麗蒙戰爭(1231~1270)기간에 고려의 동북지방, 지금의 강원지역 일대를 주로 침입하였다. 이들의 침입은 육로와 해로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몽고군이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여진인들을 이용한 것이었다. 또 이 지역에서의 전투를 치른 경험이 있는 東眞兵을 끌어들여 고려의 동북지방을 공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This paper examined Jurchen’s infiltration into Gangwon in Goryeo dynasty. At foundation of Goryeo Kingdom, Jurchen in Manchuria gradually moved southward when fighting against Balhae and Khitan, and Jurchen often infiltrated into Gangwon at east coast of the Korean Peninsula. In particular, Jurchen who attacked Gangwon was called ‘Eastern Jurchen’ to give great damages to the east coast. The East Jurchen pirate attacked east coast a lot by using not land route but sea route. East Jurchen attacked Gangwon in the 11th century, in other words, as many as 33 times from 1005 (5th year of King Mokjong) to 1097 (2nd year of King Sukjong). People and soldiers at Seongbo, northeastern coastal area of the Korean Peninsula could not live comfortable lives because of East Jurchen’s attack to be fallen into serious situation. In 1009 (1st year of King Hyeonjong), the Goryeo Kingdom built up 75 warships to defend and protect it from East Jurchen pirate to allocate them at Jinmyeonggu (currently, Wonsan at Northern Gangwon-do) that was Jingmyeongdobuseo, the Kingdom’s navy. And, the Kingdom started to build up castle along the East Coast from Gangwon-do to Busan. The Kingdom built up castles and farmland along the East Sea and the South Sea to protect it from pirate that was recorded to evidence the fact. And, the Goryeo Kingdom sometimes attacked East Jurchen by using land route as well as sea route. The Kingdom’s navy and castle were made to protect the Kingdom from East Jurchen pirate at national level. East Jurchen pirate attacked not only Gangwon, Gyeongju and Uleungdo in Korea but also Tsushima and Kyushu in Japan. In 1019 (10th year of King Hyeonjong) when Jurchen pirate attacked Japan, it deprived the Japanese of a lot of properties and was attacked from Goryeo navy that retuned 259 Japanese prisoners of war to Japan. The pirate attacked Japan when it had difficulties at attacking Goryeo Kingdom because of castles and navy. As such, the pirate gradually disappeared owing to the Kingdom’s effective defense policy as well as Wananbu’s integration policy with Jurchen. Jurchen founded a country named Geum, and it suffered from so many riots and rebellion when the Mongol grew up. Dongjin that Poseonmanno built up attacked Goryeo Kingdom many times in accordance with political changes in Northeast Asia. Dong-Jin-byeong attacked Goryeo Kingdom either independently or with coalition of Mongol. After being surrendered to Mongol, Dong-Jin-byeong attacked northeastern region of the Kingdom, currently Gangwon, at the Goryeo-Mongol War. Dong-Jin-byeong attacked by using land route as well as sea route that Jurchen near Mongol military made use of. Mongol invited Dong-Jin-byeong that experienced war at the region to attack northeastern region of the Goryeo King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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