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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뜩한 것의 복잡성(1):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섬뜩한 것 Das Unheimliche」에 난 균열들

        김유동 ( Kim¸ Yuh-dong ) 한국독일언어문학회 2020 독일언어문학 Vol.0 No.90

        본 논문은 프로이트의 섬뜩한 것 (1919)에 대한, 그 내용 및 서술층위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다. 작업의 바탕에는 프로이트가 섬뜩한 것의 복잡성을 의식하고 있으면서도 섬뜩한 것에 대한 자신의 기본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를 가리고 있다는 의심이 자리잡고 있다. 섬뜩함은 그 원천이 억압을 거친 “오래 전에 친숙한 것”뿐만 아니라 거세위협, 외부세계의 수많은 위험, 죽음 등 애초부터 낯선 것에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섬뜩한 것의 영역에선 안과 밖, 친숙한 것과 낯선 것이 대립하면서도 다양한 형태로 서로 얽혀 있다. 경계현상으로서 섬뜩한 것은 프로이트의 경우처럼 그 핵심이 예부터 친숙한 것에 있다고 보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일단 그것의 낯섦에 주목할 때 보다 잘 파악된다. 프로이트는 섬뜩한 것의 본질을 단순화하고 있으며 범주화 작업을 통해 그것을 재차 단순화하고 있다. 섬뜩한 것 의 서술은 부분적인 개방성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분화와 환원이라는 거의 체계강박적인 이중운동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허구에서 발생하는 섬뜩함에 대한 저자의 서술 또한 일반화하기에 무리가 있다. 섬뜩한 것의 개별성과 상호연관성과 복잡성은 체계적 환원 자체에 저항한다. 그런데 섬뜩한 것 은 섬뜩함을 초래하는 근원들의 상호 모순에 대한 지적, 스스로를 아이러니화하는 질문, 부자연스러운 완결의 제스처, 생략 등을 통해 텍스트 도처에 가려져 있는 균열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은밀한 heimlich’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볼 때 텍스트는 진지하면서도 자기모순적인 것, 더 나아가 유희적인 것이 된다. 관찰의 불충분함을 은폐하면서 드러내는 저자의 글쓰기는 서술의 두 번째 이중운동을 특징짓는다. Diese Arbeit ist ein kritischer Kommentar über Freuds Das Unheimliche (1919). Ihr liegt der Zweifel zugrunde, ob er nicht trotz eines gewissen Bewusstseins die Komplexität des Unheimlichen für seine Theorie des Unheimlichen verschleiert. Die Quelle des Unheimlichen liegt nicht nur im “Altbekannten, Längstvertrauten”, sondern auch in den zahllosen Gefahren der Außenwelt und der grundsätzlichen Unbekanntheit des Todes, die das Ich erschüttern und die Angst vor der Trennung verursachen. Das Unheimliche ist ein Grenzphänomen zwischen Innen und Außen, dem Vertrauten und dem Fremden, und offenbart seine (im)materielle Realität, indem es diese beiden Gegensätze miteinander verflicht. Die komplexen Aspekte des Unheimlichen werden auch dadurch vereinfacht, dass der Autor die unterschiedlichen Fälle, die er als Beispiele des Unheimlichen nennt und erklärt, unter Kategorien klassifiziert. Trotz der teilweisen Offenheit kennzeichnet eine fast zwanghafte Doppelbewegung von Differenzierung und Klassifizierung Freuds Darstellung. Die Darstellung des Unheimlichen in Zusammenhang mit der Fiktion ist ebenfalls kaum zu verallgemeinern. Die Individualität, Wechselbeziehung und Komplexität des Unheimlichen widerstehen der systematischen Reduktion selbst. Jedoch macht Das Unheimliche den Leser durch heimliche Winke(etwa die kurzen Hinweise auf die widersprüchlichen Quellen des unheimlichen Gefühls, die die Grundidee des Textes ironisierenden Fragen, die unnatürlichen Gesten der Abgeschlossenheit und die Auslassung) auf die Risse im Text aufmerksam. Aus diesen lässt sich eine zweite Doppelbewegung der Darstellung herauslesen, in derdie Unzulänglichkeit des Unheimlichen verschleiert und entschleiert wird. So gesehen ist Das Unheimliche spielerisch ernst.

      • KCI등재

        『鶴山閑言』에 나타난 辛敦復의 奇異 認識과 談論的 性格

        유형동(Yoo, Hyoung-Dong) 우리문학회 2016 우리文學硏究 Vol.0 No.50

        기이함에 대해 관심을 지니는 것은 인간이 지니는 보편적인 욕망이다. 흔히 비현실이나 초현실과 유사한 개념으로 이해되는 기이는 현실을 중요하게 여기는 유교적 질서에서는 배척되는 것이 예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이한 이야기를 수집한 저서들이 남아 있어 눈길을 끈다. 신돈복이 남긴 『鶴山閑言』도 이러한 저술 가운데 하나이다. 『학산한언』에 수재된 이야기는 유교적 이념을 확인하고 구현하는 이야기와 그와는 별개로 다양한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대별된다. 그런데 이 두 유형의 이야기들에서 모두 비현실성을 담고 있는 이야기들이 나타나고 있어서 주목된다. 신돈복이 기이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담론적 주장을 개진한다. 조선이라는 사회, 유학자로서의 신돈복의 사회적 지위를 고려하면 ‘동일화 담론’은 매우 합리적인 방식이다. 이보다 더욱 주목해야하는 것은 ‘반동일화 담론’의 개진이다. 여기서 신돈복은 앞선시기 성간이나 서거정이 보였던 효용론적 입장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기이↔현실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해체하고 기이 인식과 수용에 있어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신돈복은 기이를 인식하고 수용했다. 비현실적인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빈번하게 일어나면 그것은 더 이상 기이한 것이 아니라 익숙한 일이 된다는 것이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빈번하게 접한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치를 궁구하여 세계의 이치에 다가가고자 한 것이다. 이치를 알게 되면 낯선 것은 자연스럽게 익숙한 것이 되고 기이함은 기이하지 않은 것이 되므로 이야기를 함에 있어서 전혀 거리낄 것이 없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신돈복은 반동일화 담론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부담을 덜기 위해서 때때로 동일화 담론을 통해 기이를 수용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유교적 질서에서 인정하지 않는 현실의 여러 국면을 조망할 수 있었다고 본다. It is a universal desire of humans to have an interest in oddities. However, it is common for oddities that are understood to be somehow unreal or surreal to be excluded from the order of Confucianism, which sees reality as an important basis for all thought. However, there is a collection of books that has caught our attention, which includes odd stories. Haksanhaneon written by Shin, Don-bok, is one of these stories. The story of Haksanhaneon is about seeing and realizing the ideology of Confucianism and describing various other worlds apart from this one. Both genres of story that this fits into include unreality, and this has caught our attention. Shin, Don-bok expresses a discursive point of view while accepting what is odd. Considering the society of Chosun and Shin’s position as a Confucianist, it is reasonable to have a discussion about identification. The counterargument that he presents here is even more important. From this point, Don-bok Shin suggests a new concept in realizing and accepting oddities by breaking up the binary structure between oddity and reality. Here, Shin moves beyond the pragmatic point of view, which was shown by Sung, gan(成侃)/Seo, Geo-jung(徐居正) during the preceding period. Shin, Don-bok realized and accepted the idea of oddity through the concepts of familiar and strange. Even though something is unreal and odd, it will become familiar if it happens frequently. Being familiar does not only mean encountering something frequently but it is also about trying to approach the logic of the world by investigating it. When we understand the logic, strangeness becomes familiarity and oddity becomes non-oddity, meaning that there are no barriers to communication. While forming his counter-discussion about identification, Shin, Don-bok accepted the notion of oddity becoming apparent through identification. Through this, he was able to interpret current situations that are not accepted by the Confucian order.

      • KCI등재

        리쾨르 철학에서 타자(l'autre)에서부터 ‘l'étranger’ 문제까지의 지형

        윤성우 대동철학회 2017 大同哲學 Vol.78 No.-

        이 글은 리쾨르 철학에서 타자(l’autre) 개념에서부터 ‘l'étranger’ 개념에 이르는 문제의 생성과 변화, 그 최종적 도착점, 이 전체의 모습을 그려보려는 아주 큰 기획의 첫 걸음으로 준비된 것이다. 적어도 서양 현대 유럽철학, 특히 현상학이나 해석학에서의 은 물론이겠지만, 리쾨르의 사회 및 정치 철학에서 논의되는 ‘타자’ 개념의 문제를 포함하여, ‘타자적인 것’, ‘다른 것’, ‘외국인’, ‘낯선 것’ 등으로 번역되고 이해되는 ‘l'étranger’개념의 문제 지형은 한 편의 논문의 형태로 정리되거나 요약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단숨에 끝날 수는 없는 작업에 무모하게 돌진하기보다는, 길고 지난한 본격적인 탐구에 앞서 이 중요한 문제의 기승전결의 대략적인 그림, 다시 말해 시작점, 성장점, 변곡점 및 종착점에 이르는 표지판 정도를 세우는 예비적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 결국 필자와 같이 리쾨르 철학에서 광의의 타자의 문제를 천착하려는 사람들이 주목하고 고민해야 할 지점들과 그 논거들을 대략이나마 짚어내고 해명하는 것이 현재 작업의 관건일 것이다. 다시 말해, 타자 문제와 ‘l'étranger’ 문제들이 리쾨르 철학에서 언제, 어떻게 등장하며, 또 다르게 어떻게 변형되어 가는지를 제시하는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This thesis is a first step in a very large project that depicts the genesis and change of the problem from that of ‘l'autre’ to that of ‘l'étranger’ in the philosophy of Ricoeur and its final destination. At the very least, in European modern philosophy, especially in phenomenology or hermeneutics, the other, the alien and the strangeness, etc. cannot be summarized in the form of a single paper. Therefore, rather than rushing into a project that can not be completed in a short time, this paper suggests a rough picture of the major conundrum of this important problem,\; in other words, a sign that leads to the starting point, the growth point, the inflection point and the final point. We aim to achieve the preliminary goal in this paper. In the end, I would like to point out and clarify the points and reasons why people who want to pursue the problem of strangers in the philosophy of Ricoeur should be concerned about the present work. In other words, I am arguing about the problem of ‘l'autre’ and the problem of 'l'étranger' emerge in Ricoeur's philosophy and how they are transformed differently.

      • Auf der Suche nach Identität in der multikulturellen Gesellschaft

        Lee Suk-Kyung(이숙경) 한국카프카학회 2007 카프카연구 Vol.0 No.17

        한국에서는 독일어권 국가들의 극영화가 큰 관심을 끌지는 못하지만 예술영화 상영관을 통해 종종 소개되고 있다. 2005년 10월에는 한국독어독문학회 주관으로 "영저먼 시네마 특별전"이 마련되어 평소 접하기 어려웠던 세 편의 독일 영화와 한 편의 오스트리아 영화가 상영되기도 했다. 필자가 본 논문에서 분석 대상으로 삼은 〈미치고 싶을 때 Gegen die Wand〉(2004)는 터키계 독일 감독인 아킨 Fatih Akin의 극영화로 독일어권 국가들을 포함하여 유럽에서는 크게 주목받았던 영화이다. 이 영화는 베를린 영화제(2004) 금곰상, 유럽영화작품상(2005)을 수상했으며 독일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 영화는 독일 내 터키계 이민 2세대에 속하는 주인공 차히트와 시벨의 사랑과 이별을 섬세하면서도 리듬감 있게 영상에 담고 있다. 또한 세계화 시대에 전면에 부각되고 있는 '중심과 주변의 갈등', '전통과 현대의 충돌'을 함부르크와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은밀하게 드러낸다. 독일 사회에 소속감을 갖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한 후 우연히 만나 위장 결혼을 하게 되는 차히트와 시벨의 관계뿐 아니라, 이들이 독일인 의사, 가족 혹은 주변 인물들과 어떻게 만나고 있으며 서로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가 무척 흥미롭다. 우선 함부르크의 한 정신병동에서 독일인 의사 실러는 차히트를 상담하는 과정에서 타자를 교화하고 훈계하려 드는 독일 시민계층의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실러는 환자인 차히트를 호기심의 대상으로 바라볼 뿐 자살을 기도한 그의 상태 에는 별 관심이 없다. 독일을 떠나 아프리카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해보라고 제안하는 실러의 모습에서 낯선 자와의 교류가 독일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차히트가 의사 실러를 정신병자로 진단하고 나가는 장면은 감독이 유럽 중심적 사고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독일인 의사에게 어리석고 위협적인 존재로 비치는 차히트는 함부르크 내 터키타운의 터키 남성들에게는 우스꽝스러운 인물이다. 그는 이슬람의 가치체계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터키 남성들과 달리 규범이나 전통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는 순결과 정조를 중히 여기고 가족의 수호자로 자처하면서 거리낌 없이 사창가를 드나드는 터키 남성들을 비웃는다. 이들은 공격적이고 폭력적이지만, 아내들 앞에서만큼은 점잖은 체한다. 가족의 명예를 위해 시벨을 위협하는 오빠 일마즈도 위선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들을 비웃는 차히트는 이성 지향적인 독일 사회에도 함부르크 내 터키 사회에도 속하지 않는 인물이다. 차히트와 위장 결혼을 해서라도 아버지와 오빠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벨 역시 구속받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희구하는 인물이다. 시벨의 가족들은 전통과 명예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지나치게 종교적이지는 않다. 시벨은 가족 앞에서만큼은 공손하고 터키 전통을 따르고자 한다. 그녀의 가족 그리고 전통과의 양가적 관계는 시벨이 사랑하는 딸을 위해 남자친구에게 머물기로 결정하고 사랑 하는 차히트를 혼자 떠나보내는 결말부분에서도 나타난다. 이 영화는 복합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인물들뿐만 아니라 독일과 터키의 대도 시상을 다층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함부르크가 예상과 달리 자유롭지 못하고 폐쇄적인 문화를 드러내는 반면, 이스탄불은 지극히 도시적이고 글로벌한 문화를 보여주는 유럽화된 도시로 형상화되고 있다. 아킨은 고유한 것과 낯선 것의 양분을 넘어 대도시에서의 혼종적인 문화를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세계/지역화 시대에 나타나는 혼종화 경향을 고려하여 현상을 좀 더 세분화하고 복합적인 연관 하에서 관찰해야 한다는 호미 바바의 명제와도 궤를 같이 한다. 문화는 완성되어 있지 않고 계속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항상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문화처럼 정체성도 변화한다. 세계화 시대에 정체성 문제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피부에 와 닿는 이유는 이 사안이 민족, 고향, 국경을 넘어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도 독일처럼 UN이 정한 이민국가이고, 이주노동자의 수가 42만 명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문화 변동이나 인구 이동의 문제를 아직까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먼 훗날의 일로 치부하고 도외시하기에는 이미 많은 외국인 노동자와 코시 안들이 한국에 살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현실을 간과할 경우 언젠가는 문화 간의 충돌을 피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 KCI등재

        Schwellenüberwindung im Problemfeld „Das Fremde und das Eigene“ - Die Hesse-Rezeption in Korea

        장정자 한국헤세학회 2009 헤세연구 Vol.22 No.-

        국제화, 세계화가 논의되고,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현실에서 “낯선 것”과 “자신의 고유함”사이에서 발생하는 대립은 국가 간, 문화 간의 대화를 통한 절충이 가능하다고 보는 이상적 시각과, 반대로 “문명의 충돌”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는 시각이 공존한다. 도대체 국제화의 야누스적 면모를 감당할 만한 중간이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문학의 수용미학이론, 혹은 수용사적 연구는 신일희가 말하는 감당할 만한 중간을 ‘한국, 혹은 동양에서의 헤세수용’에서 제시해줄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작가 헤르만 헤세의 경우를 택한 것은 유럽작가로서, 그것도 정통적인 경건주의 기독교 신학에 뿌리박고 있으면서도, 싯다르타, 동방순례, 유리알 유희 같이 아시아의 종교, 불교와 브라만교를, 고대 중국철학의 지혜를 주제로 다루는, 충돌이나 갈등없이 그야 말로 동,서양을 아우르는 헤세의 개방적인 관용의 세계관 때문이다, 이 논문에서는 우선 한국에서의 헤세수용의 연구결과들을 번역물, 한국 작가들에게 끼친 영향, 연구논문 및 연구서, 헤세수용의 근간이 되는 매(개)체 등 순서로 정리해 보았다. 헤세 수용에서 특징적인 것은 인터넷 강국으로서의 한국의 위상을 보여 주는 연구, 해석과 함께 헤세 팬들의 인터넷 활동을 통한 헤세수용의 확장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헤세 수용은 한편에서는 헤세 대중화와 맞물려 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작곡가, 시인, 미술애호가 정신분석 심리학자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러한 대중성 내지 다양성은 시대정신에 맞게, 문학이 “읽혀질 뿐만 아니라, 보여지고, 청취되고, 무대에 올려지고, 화폭에 담아지며, 노래로 불려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들은 단편적이고, 시대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오해”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학술연구를 하는 학자들에게 “달리보기”을 제시해 줌으로써 “풍요로움”으로, 차봉희의 표현을 빌리면, 수용의 “풍요로운 오해 fruchtbare Missverständnisse” 로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본다.

      • KCI등재

        인간 조건으로서의 번역의 필연성과 번역윤리

        윤성우,이향 대동철학회 2012 大同哲學 Vol.58 No.-

        본 연구의 목적은 번역이라는 행위를 인간학적 차원에서 반성해 보는 데에 있다. 인간 활동으로서의 번역은 왜 존재하며, 왜 인간은 번역을 필요로 하는가? 언어 다양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복수의 인간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서로 다르기에 전(全) 지구적 시대에 타인과 함께 지구 공동체의 운명과 진로에 관계되는 아렌트적 의미에서의 ‘행위’를 할 수 있으려면 번역은 필연적으로 해야만 하는 일, 하나의 ‘과제’가 된다. 번역이라는 것이 그 유용성이나 필요성을 넘어 하나의 과제로서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다시 말해 언어 간의 차이 자체가 번역을 요구한다면, 그 차이의 내용이나 의미를 향유하려는 힘과 추동력을 베르만은 “번역의 욕망”(désir de traduire) 또는 “번역의 충동”(pulsion de traduire)이라는 개념을 통해 성찰한다. 이렇듯 번역이 언어 다양성으로 인해 하나의 필연적 과제로 우리에게 주어졌으며, 동시에 번역 활동에는 이 차이를 향유하려는 심오한 욕망이 내재하고 있다면, 이 차이나는 것들을 향유하되, 모국어와 다른 이국의 언어를 어떻게 대접할 것인가의 문제, 즉 번역윤리의 문제가 제기된다. 우리는 리쾨르와 함께 타언어를 “환대”하는 윤리에 방점을 찍는다. 철학은 오늘날 번역이 가지는 인간학적 특성과 중요성을 인지하고 그것에 관찰자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뿐 아니라, 그것에 대한 보고(報告)와 분석을 넘어, 번역 활동을 지배하는 규제적인 이념과 그것이 이르러야할 온당한 지평에도 관심을 가져할 것이다. Le but de cette étude est de réfléchir sur l'acte traduisant sous l'angle anthropologique. Pourquoi les êtres humains traduisent-ils et comment peut-on expliquer ce désir de traduire? La pluralité des langues humaines pourrait expliquer, quoique partiellement, la raison d'être de la traduction; pour pouvoir participer à 'l'Action' au sens arendtien du terme, qui nous permettrait de réfléchir sur les questions liées au destin de l'humanité, la traduction est un acte nécessaire, voire une tâche qui nous est confiée. Si la pluralité des langues nous oblige ainsi à traduire la langue des autres, et si la traduction nous est, en conséquence, imposée, c'est le désir de traduire, ou la pulsion de traduire qui nous permet de se réjouir de la différence existant entre les langues. D'où se pose la question de savoir comment nous devons traiter une langue qui n'est pas la nôtre. Cette question amène Ricoeur à nous proposer 'l'hospilalité langagière' comme le principe essentiel régissant l'éthique de la traduction. La philosophie d'aujourd'hui ne devrait donc pas négliger cet aspect anthropologique que représente l'activité traduisante, et au lieu de se contenter d'observer et de décrire le phénomène traduisant, elle devrait se pencher encore plus sur l'horizon ultime que souhaite atteindre l'acte traduisant.

      • KCI등재

        Europäische Integration und theoretische Überlegungen zu kulturellen Unterschieden

        김경희 한국헤세학회 2011 헤세연구 Vol.26 No.-

        유럽은 오랜 세월 정치사회, 문화적 과정을 살펴볼 때 단일문화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유럽통합이 진행되면서 그 중심에 경제정책이 자리를 잡아감에 따라 문화에 대한 인식은 상대적으로 미약하게 유지되었으나 다양한 유럽 국가들 간에 존재하는 문화적 자산은 유럽연합의 진정한 특성이며, 이 문화적 차원의 인식을 재고하는 것은 유럽의 새로운 창조에 다름 아니다. 통일성과 다양성, 개별성과 개방성이 만드는 긴장과 불협화음은 유럽연합이 지닌 다양성의 공존이라는 패러독스한 문화적 공간구성의 실현 과정에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하며, 다양성이 공존하는 유럽이라는 지역이 지닌 차이와 균열을 중심으로 공간구상을 해보는 것은 현대 공간연구의 주된 테마가 될 수 있다. 이를 상술하면 주어진 공간이 아닌 만들어진 공간, 물리적 공간이 아닌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공간, 생물학적 유전적 민족개념에서 탈피한 사회적으로 구성된 정체성, 자신과 타자 간의 상호의존적이면서 변증법적인 관계, 제3의 공간에 대한 생산적인 관점 등이다. 본 논문에서 주된 대상으로 삼고 있는 이와 연관된 이론적 틀로는 호미 바바, 사무엘 헌팅턴 등이 연구하는 포스트식민주의와 레페브르, 소자 등의 학자들의 연구를 중심으로 한 현대의 공간이론, 철학적 바탕으로 미셀 세르의 기식자 이론, 새넌과 위버의 정보학 모델이론을 들 수 있다. 이들 모두 다양한 학제적 배경에서 나온 이론들이지만 사이공간과 경계, 유동적인 정체성, 혼종공간을 특징짓는 갈등의 모티브를 오히려 미래지향적인 긍정적인 요소로 보는 인문학적 관점으로의 전향을 의미하고 있다. 즉 인위적 조화, 이상적 모델로서의 합치보다는 이질성을 통한 어우러짐, 다름을 통한 마찰이 가져오는 긍정적 반향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는 점이 특징이다. 유럽통합은 경제적, 정치적인 배경 하에 실천성을 강조하나 이와 더불어 타자에 대한 다층적 이해가 동반되어야 하며 이에 대한 이론적인 관점 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유럽의 문화는 유럽 내의 상이한 문화에 대한 상생적 조율뿐 아니라 제3세계 그리고 아시아 지역과의 연관성을 되집어 보고, 문화간 소통의 유사성과 이질성을 도출해 내는 비교문화적 연구가 필요하며, 예를 들면 중국과 한국의 거시적 역사가 아닌 미시적 역사에서 나타난 작은 예들을 통해 간문화적 소통의 실체를 경험할 수도 있다. 전통과 정체성을 이질성 속의 조화라는 모순성 속에서 다시금 조명하고 이를 유럽이라는 지역공동체의 미래상과 연결시켜 볼 때 제 3의 공간에 대한 주목은 더욱더 심화되어, 이 공간은 인간과 문화 ‘사이에’ 개입하여 현실로 체험되거나 인식된다.

      • 유럽통합과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론적 고찰

        김경희 ( Kim Kyunghee ) 한국헤세학회 2011 헤세연구 Vol. No.

        유럽은 오랜 세월 정치사회, 문화적 과정을 살펴볼 때 단일문화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유럽통합이 진행되면서 그 중심에 경제정책이 자리를 잡아감에 따라 문화에 대한 인식은 상대적으로 미약하게 유지되었으나 다양한 유럽 국가들 간에 존재하는 문화적 자산은 유럽연합의 진정한 특성이며, 이 문화적 차원의 인식을 재고하는 것은 유럽의 새로운 창조에 다름 아니다. 통일성과 다양성, 개별성과 개방성이 만드는 긴장과 불협화음은 유럽연합이 지닌 다양성의 공존이라는 패러독스한 문화적 공간구성의 실현 과정에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하며, 다양성이 공존하는 유럽이라는 지역이 지닌 차이와 균열을 중심으로 공간구상을 해보는 것은 현대 공간연구의 주된 테마가 될 수 있다. 이를 상술하면 주어진 공간이 아닌 만들어진 공간, 물리적 공간이 아닌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공간, 생물학적 유전적 민족개념에서 탈피한 사회적으로 구성된 정체성, 자신과 타자 간의 상호의존적이면서 변증법적인 관계, 제3의 공간에 대한 생산적인 관점 등이다. 본 논문에서 주된 대상으로 삼고 있는 이와 연관된 이론적 틀로는 호미 바바, 사무엘 헌팅턴 등이 연구하는 포스트식민주의와 레페브르, 소자 등의 학자들의 연구를 중심으로 한 현대의 공간이론, 철학적 바탕으로 미셀 세르의 기식자 이론, 새넌과 위버의 정보학 모델이론을 들 수 있다. 이들 모두 다양한 학제적 배경에서 나온 이론들이지만 사이공간과 경계, 유동적인 정체성, 혼종공간을 특징짓는 갈등의 모티브를 오히려 미래지향적인 긍정적인 요소로 보는 인문학적 관점으로의 전향을 의미하고 있다. 즉 인위적 조화, 이상적 모델로서의 합치보다는 이질성을 통한 어우러짐, 다름을 통한 마찰이 가져오는 긍정적 반향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는 점이 특징이다. 유럽통합은 경제적, 정치적인 배경 하에 실천성을 강조하나 이와 더불어 타자에 대한 다층적 이해가 동반되어야 하며 이에 대한 이론적인 관점 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유럽의 문화는 유럽 내의 상이한 문화에 대한 상생적 조율뿐 아니라 제3세계 그리고 아시아 지역과의 연관성을 되집어 보고, 문화간 소통의 유사성과 이질성을 도출해 내는 비교문화적 연구가 필요하며, 예를 들면 중국과 한국의 거시적 역사가 아닌 미시적 역사에서 나타난 작은 예들을 통해 간문화적 소통의 실체를 경험할 수도 있다. 전통과 정체성을 이질성 속의 조화라는 모순성 속에서 다시금 조명하고 이를 유럽이라는 지역공동체의 미래상과 연결시켜 볼 때 제 3의 공간에 대한 주목은 더욱더 심화되어, 이 공간은 인간과 문화 ‘사이에’ 개입하여 현실로 체험되거나 인식된다.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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