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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和의 동양미학적 관점을 통한 전통회화 재료 표현 연구

        차민주(Cha, Min Joo) 한국미술교육학회 2019 美術敎育論叢 Vol.33 No.4

        본 연구는 동양미학에서 바라보는 화(和)의 개념을 중심으로 조화의 의미를 깊이 있게 생각하고 사물의 시각적 이미지에서 나타나는 상(象)보다 사물의 본질적 형신(形神)을 통해 작품을 심미적으로 조화롭게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때 화(和)의 개념은 전통회화의 재료에 대한 이해 단계부터 출발하며 결국 표현에 이르는 과정을 뜻한다. 본 연구에서는 미술교육에서 화(和)의 개념이 표현되는 과정을 살피기 위해 다음과 같은 연구 절차를 밟았다. 우선적으로 전통회화에서 의미하는 화(和)의 개념을 확인하기 위해 전통회화 재료의 이해와 표현기법의 활용을 통한 화(和)의 구현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또한 앞선 연구를 중심으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전통회화 수업을 통해 전통회화 바탕재료마다 가지고 있는 물성의 특징을 이해시키고 전통회화를 그려봄으로써 재료의 사용법을 익혔는지 알아보았다. 본 연구에서는 해당 수업을 진행하면서 전통회화의 재료 사용과 표현에 의해 나타나는 형(形)과 사유성(思惟性)을 통해 전통회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했다. 또한 미술교육에 나타난 목적과 가치를 화(和)의 개념을 통해 알아보고자 하였다. 결과적으로 본 연구는 전통회화의 재료와 표현기법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기초를 다짐으로써 미술 교육에서의 화(和)의 화합과 조화를 체득함을 확인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또한 궁극적으로 미술교육에서 전통회화의 재료와 표현기법의 중요성을 상기시켜 이를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데에 의의가 있다. This paper is a report on studying the oriental aesthetic called Harmony. Also we focused on a harmonious expression not only as a expression of appearance but also as a expression of spirit. Harmony means the whole process of making traditional paintings from the understanding of the materials to the expression of paintings. To identify the process as a manifestation of Harmony, in this study, we studied expression of harmony through traditional materials and techniques. And then we had traditional painting classes for elementary students to understand the character of supports and usage of materials. We wanted to look at the concept of Harmony as a purpose in art education and establishment of identity of traditional paintings through these classes. As a result, this paper is implied the importance of traditional materials and techniques as a way of expression of Harmony in art education. Ultimately, we actively encourage the learning of the traditional materials and techniques in art class.

      • KCI등재

        화과원의 문화관광 콘텐츠 개발과 활용 방안 모색

        이재수 대각사상연구원 2017 大覺思想 Vol.28 No.-

        Baek Yong-seong(白龍城), the Most Venerable Master, was a high priest during the modern times, advocating Seon-Nong Buddhism(禪農佛敎) for the independence of the people and the reform of Buddhism and established Hwagwawon(華果院) at Mt. Baekwoon in Hamyang. He did both labor and training there and used the income to fulfill self-sufficiency and even send money to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Korea in Shanghai for the independence fund. In addition, it was Hwagwawon that he wrote many of his books and developed the Daegakgyo(大覺敎) Movement. This study set out to propose the development and planning of cultural Contents for Hwagwawon to enhance his spirit and value inherent in it. Cultural tourism was thus examined along with measures to promote Hwagwawon's educational and complex uses. These discussions were based on the collaborative project between Daegakhoi(大覺會) and the Academy of Buddhist Studies at Dongguk University to identify, examine, and collect writings and translated works by Baek Yong-seong and sort them out according to an academic system. His writings and materials were interpreted and arranged in Korean and put together in a series called A Collection of the Great Master Baek Yong-Seong, whose publication and computerization are part of the project's achievements. The investigator proposed three prerequisites for the development of Hwagwawon's cultural Contents, and they are total digitalization, establishment of complex information about Baek and his Hwagwawon, and analysis and reprocessing of source materials. The value chain for the development of its Contents covered the creation of an “archive of Hwagwawon's source materials,” the development of “Contents for its restoration,” and the utilization of Contents to experience, teach, and use its values. The utilization plans of its Contents were mainly examined from the perspective of branding Hwagwawon and local culture and in the scope and direction of utilizing the cultural tourism sector. The discussion results show that the cultural Contents of Hwagwawon holds value as a representative brand of the local culture and has the potential of creating derivative Contents through its complex utilization in the future. Hwagwawon will hopefully be designated as a National Historic Site and established as a local brand through more advanced discussions and joint operations. The development and utilization of its cultural Contents are expected fit for its historic value as the cradle of the national independence movement, its religious value as the venue of Seon-Nong Buddhism and reform of Buddhism, and its value as complex cultural space to publish various books and literary works including the Avatamska Sutra. 백용성 대종사는 근대시기의 고승으로 민족독립과 혁신불교를 실현하기 위해 선농불교를 주창하고 함양의 백운산에 화과원을 세웠다. 이를 통해 노동과 수행을 함께하고 자급자족을 넘어서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보냈다. 여기에서 수많은 저술을 남기고 대각교 운동을 펼쳤다. 본 논의는 화과원에 담긴 백용성의 정신과 가치를 드높이기 위하여, 문화콘텐츠 개발과 활용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문화관광과 교육 및 복합적인 활용 방안을 고민하였다. 이러한 논의의 바탕에는 백용성이 남긴 자료와 저술 및 번역서를 발굴, 조사 수집하고, 학술적 체계를 통해 정리한 대각회와 동국대 불교학술원의 협력 사업이 뒷받침되었다. 백용성의 저술과 자료를 우리말로 풀어서 정리하여 총서로 망라한 『백용성 대종사 총서』의 발간과 전산화 사업의 성과가 자리 잡고 있다. 논자는 화과원의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한 선결 조건으로 전적의 디지털화, 백용성과 화과원에 대한 복합적인 정보의 구축, 원천자료의 분석과 재가공을 제안하였다. 다음으로 화과원 콘텐츠의 개발을 위한 가치사슬을 첫째, ‘화과원 원천자료 아카이브’ 구축, 둘째, ‘화과원 복원 콘텐츠’의 개발과 셋째, 화과원의 가치를 체험하고, 교육하며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의 활용으로 정리하였다. 화과원 콘텐츠의 활용방안으로 크게 화과원의 지역문화브랜딩의 관점과 문화관광 분야의 활용의 범위와 방향을 논의하였다. 본 논의를 통해 화과원 문화콘텐츠가 지역문화의 대표적 브랜드로 가치가 있으며, 복합적인 활용을 통한 향후 파생 콘텐츠 창출이 가능하다. 아울러 향후 보다 진전된 논의와 공동의 작업을 통해 화과원이 국가사적지로 지정되어 지역브랜드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또한 화과원에 담긴 민족독립운동의 산실이라는 역사적 가치와 선농불교와 불교혁신의 수행처라는 종교적인 가치, 나아가 화엄경을 비롯한 다양한 저술과 문학의 산실이라는 복합적 문화공간으로서의 가치에 맞는 문화콘텐츠 개발과 활용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 KCI등재

        화청의 두 유형 : 축원 화청과 불교가사 화청

        장휘주 이화여자대학교 음악연구소 2006 이화음악논집 Vol.10 No.1

        이 글은 '화청'의 두 유형, 즉 축원 화청과 불교가사 화청이 소리의 종류와 기능, 전승 공간, 노랫말, 음악적 특징 등에서 구별되어야 할 소리임을 밝힌 글이다. 1. 축원 화청에는 「상단 축원화청」과 「중단 지장축원화청」 두 종류가 있다. 노랫말은 망자의 극락왕생을 축수 발원하는 내용의 순 한문가사로 되어 있고, 영산재와 각배재의 《회향의식》에서 공식적인 의식절차로 포함돼 있다. 음악은 6/4박자에 경토리 선율로 부르는데, 중간에 변주선율이 나오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6/4박자 넷을 단위로 선율이 반복된다. 축원 화청은 범패승들의 공식적인 학습 레파토리에 포함되며, 엄격한 의식절차의 규제를 받기 때문에 생략하거나 부르는 위치를 유동적으로 옮길 수 없다. 이런 점 때문에, 오늘날 범패승들 '화청'이라고 할 때는 이 축원 화청을 말한다. 2. 불교가사 화청은 「회심곡」, 「백발가」, 「목련경청」 등을 포함해서 그 종류가 수 십 종에 이른다. 노랫말은 알기 쉬운 4·4조의 우리말로 되어 있고, 불교교리나 효(孝), 인상무상 등을 주제로 한다. 특별히 어떤 재(齋)의 어떤 의식절차에서 불러야 한다는 규제에서 자유로우며, 범패승과 일반승려, 불교신도 등 가사체 음악을 낭송할 수 있으면 누구든지 부를 수 있다. 엇모리형 장단 또는 3+2+3+3+2+3/8박으로 부르고, 몇 개의 선율을 반복과 변주를 통해 즉흥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통절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개인에 따라 경토리나 메나리토리, 수심가토리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불교가사 화청은 범패승이 비공식적으로 배우기 때문에, 보유하는 곡목에서 개인편차가 크다. 또한 범패승의 공식 학습 레파토리가 아니고, 가사체 음악을 낭송할 수 있으면 누구든 부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불교가사 화청을 격하하고 부르기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나아가 불교가사 화청도 '화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오늘날의 범패승들은 이 소리들을 「회심곡」, 「백발가」와 같이 곡명으로만 부를 뿐, '화청'이라 부르지 않는다. 3. 오늘날 불교가사 화청 중 「회심곡」과 같은 곡들은 영산재나 예수재의 공식적인 레파토리로 등장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자칫 이해하기 힘들고 지루할 수 있는 재 의식절차에서, 회중과의 친밀도를 높이기 위한 의도로 대중적 인기가 있는 불교가사 화청류의 소리를 삽입함으로서 생긴 현상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불교가사 화청은 원래부터 재 의식 절차에서 불렸던 것이 아니라, 대중적인 인기나 친숙함 때문에 오늘날 재 의식에 수용된 음악으로 볼 수 있다. This paper is a study about two different kinds of Hwacheong. These are Prayer Hwacheong and Buddhist Gasa Hwacheong. They are different in many ways, like on their functions, transmission spaces, the lyrics and musical features. 1. Prayer Hwacheong can be devided into 「Sangdan Chukwon Hwacheong 「상단축원화청」 and 「Jungdan Jijang Chukwon Hwacheong 중단 지장축원 화청」. Lyrics are both written in chinese writing wishing the dead's peace in heaven. These are part of the official ritual 《Hoehyang ritual》 from Yeongsanjae and Kakbaejae. In Musical respect, songs are made of six-quarter time and Kyeongtori. Except for the variation in the middle, four six-quarter tunes are repeated. Prayer Hwacheong is included in the official Bumpae singing monk's repertory, at the same time, because of the rigid rules, they cannot be excluded or changed on their singing schedule. Thus, when the Bumpae singers refer to 'Hwacheong', it means Prayer Hwacheong. 2. Including songs like 「Hoesimgok 회심곡」, 「Baekbalga 백발가」 and 「Mokryunkyungcheong 목련경청」, on the category of Buddhist Gasa Hwacheong, there are several tens of songs. Lyric are written in 4·4 set Korean they sing about the Buddhist doctrine, Hyo孝(respect for the old) and the trivialism of the life. Unlike the Prayer Hwacheong, there are no special restrictions about the song singing situation. Everyone who knows this song could sing Buddhist Gasa Hwacheong without any restrictions, including monk, Bumpae singing monk and Buddhist believer. Songs consist of instance variation based on Eotmori Jangdan. Melody also varies in Kyeongtori or Menaritori. Because Buddhist Gasa Hwacheong is an unofficial repertory for the Bumpae singing monk not every Bumpae singer can sing the same Buddhist Gasa Hwacheong. They are often underestimated by the Bumpae singer because they are easy to sing and not from the official learning repertory. Furthermore, Bumpae singers call them not 'Hwacheong' but their separate names like 「Hoesimgok」 and 「Baekbalga」. 3. On today's Yeongsanjae or Yesujae ritual, one of the Buddhist Gasa Hwacheong like 「Hoesimgok」 are often performed together. It may would be understood as an effort to make ritual less ceremonious. In conclusion, Buddhist Gasa Hwacheong is not a original repertory but accepted to make ritual less ceremoni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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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중거(元重擧)의 한일관계사 인식

        하우봉(河宇鳳) 한일관계사학회 2015 한일관계사연구 Vol.50 No.-

        원중거(1719-1790)는 영?정조대를 살았던 인물로서 관료로서 크게 현달하지도 않았고, 진보적인 개혁사상을 제시한 실학자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연암 박지원을 중심으로 하는 ‘연암학파’의 일원으로서 북학파 실학자들과 활발하게 교류하였으며, 그룹 내에서 존장(尊長)으로 소장파 지식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1763년(영조 39)통신사행에 서기(書記)로 수행하게 되었다. 사행 중 일본인 문사들과 활발하게 교류했으며, 귀국 후 승사록(乘?錄) , 『화국지(和國志)』, 『일동조아(日東藻雅)』라는 3부작의 일본사 행록을 저술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화국지』는 종합적인 ‘일본국지(日本國志)’라는 성격을 띤 저술로서 그 내용이 매우 풍부하며, 후대에 끼친 영향도 컸다. 본고는 『화국지』 를 중심으로 원중거의 한일관계사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본론에서는 우선 원중거의 일본사행과 사행록 저술의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고, 이어 『화국지』의 체재와 내용 , 저술동기와 서술상의 특징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화국지』 의 내용을 중심으로 원중거의 역사인식을 고찰하였다. 구체적으로는 한일관계사와 임진왜란에 대한 내용, 대마도에 대한 문제의식과 대책 등을 살펴보았다. 원중거의 한일관계사 인식의 특성과 의의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원중거의 일본이해의 수준이 높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화국지』는 조선후기 통신사행원의 일본인식의 최고봉으로서 150여 년간에 걸친 일본이해의 축적 결과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둘째, ‘화국지’라는 명칭도 주목할 만하다. 일본을 ‘왜(倭)’가 아니라 ‘화(和)’로 부르면서 ‘화국지(和國志)’로 서명을 정한 것은 조선시대에 유일한 사례이다. 이러한 원중거의 일본에 대한 이해와 역사인식은 홍대용?박지원?이덕무?박제가?유득공?이서구 등 북학파 실학자들의 일본인식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들뿐만 아니라 18세기말 19세기 전반기 실학자들의 일본인식을 보면 원중거의 영향이 적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실학자들에게 해양에 대해서도 지적인 자극을 제공하였다. 그는 일본의 선박기술과 해로 등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서술하는 한편으로 조선의 해금정책(海禁政策)의 폐해 등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화국지』의 마지막에는 조선후기 해양활동을 한 이순신, 제만춘, 안용복에 대한 전기를 붙인 점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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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晦峯 河謙鎭의 「和陶詩」와 東坡 蘇軾의 「和陶詩」 比較硏究

        이영숙 경상국립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2013 남명학연구 Vol.39 No.-

        Hoi-bong and Dong-po had an encounter through a poetic format called “Hwado poetry” over a distance of hundreds of years between them. They felt sympathy for the moral integrity, noble character, and reclusive life of Tao Yenming and wrote “Hwado poetry.” Hoi-bong, in particular, was also devoted to Dong-po considerably, which was one of the driving forces behind his creation of Hwado poetry. Overcoming the wide distance of time and meeting through “Hwado poetry,” they had worries and conflicts with their respective periods and realities and reflected their inner agonies in their poems without addition and deduction. “Hwado poetry” was the product of their spiritual agonies and also a type of mental exit to resolve their worries and conflicts in reality. Hoi-bong sympathized with Dong-po through “Hwado poetry,” exhibiting similar or different opinions from him and transcending time and space. His Hwado poetry comparable to that of Dong-po is an important collection of materials to extend the scope of Korean Chinese literature to post-Liberation years and further solidifies the scope of modern Chinese literature. 회봉과 동파는 몇 백년의 간극을 뛰어넘어 ‘和陶詩’라는 하나의 시형식으로 遭遇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도연명이라는 인물의 도덕적 청렴함과 인품의 고결함, 은자로서의 삶에 같은 공감대를 느끼며 ‘화도시’를 짓게 되었고, 특히 회봉은 소동파에게도 상당히 경도되어 있었는데 이도 화도시를 짓는 하나의 動因이 되었다. 시대의 간극을 뛰어넘고 ‘화도시’로 만난 이들은 각자 처한 시대와 현실에 고민하고 갈등하며 그 내면적 고뇌들을 시에 加減 없이 담아내었다. 그러므로 ‘화도시’는 그들의 정신적 고뇌의 산물이면서 한편으로는 현실의 고민과 갈등을 해소해가는 일종의 정신적 해방구이기도 하였다. 회봉은 화도시에서 유학자로의 자세를 견지하고 도덕적 선을 추구하는 시를 지었으며, 亡國의 좌절과 아픔을 화도시에 담아 내었다. 유학자로서 이상적인 모습을 시에 나타내려한 회봉의 화도시에는 溫柔敦厚함이 담겨있다. 그리고 동파는 현실을 추구하는 유자로의 모습과 은일의 삶을 추구하는 은자로서 모습 사이에서 갈등하며 시대의 불우에 대한 좌절을 화도시에 담아내면서도 아주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지식인의 모습을 보였다. 회봉은 동파와 유사하거나 또는 상이한 견해를 보이며 시공을 초월하여 ‘화도시’를 통해 동파와 交感하였다. 동파와 비교가 가능한 회봉의 화도시는 우리 한문학의 범위를 해방후까지 연장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며, 근대한문학의 범주를 공고히 하게 한다.

      • 화청(和請)의 가사유형과 선율의 특성연구

        이종미 남북문화예술학회 2010 남북문화예술연구 Vol.0 No.7

        화청(和請)은 우리말로 된 불교의 포교를 위한 음악이다. 본 연구는 화청의 이론적 배경과 특히 중부지역, 영남지역, 호남지역의 음악특성으로 가사와 선율형에 관한 것에 중점을 두었다. 또한 현장 조사연구에서는 각 지역의 유명 사찰과 화청을 부르는 스님들의 실창과 면담을 마친 후 이에 대한 분석을 한 것이다. 이북화청은 과거에는 불려졌다 하나 그를 계승하던 스님들이 현존하지 않고 현재 자료도 전무한 실정이어서 이번 연구에 포함시키지 못했으나 다음 기회에 꼭 자료를 찾아 연구하도록 하겠다. 본고에서 논의하여 도출된 결론을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화청의 이론적 배경에서 보면 옛 시대의 범패승들은 화청을 염불성으로 단순하고 평이하게 불렀다고 전한다. 그러나 현시대의 화청은 염불처럼 부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일반 대중들이 화청을 지루하게 생각하거나 흥미 없어한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범패승들은 화청의 가사와 창법을 원래의 것으로부터 변화시켜 새로운 화청을 만들어 왔던 것이다. 그 변주방법은 노래의 곡조를 순수한 염불성에서 그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정서와 맞물려 그 지역의 주민들이 즐겨 부르는 민요나 잡가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추측이 가능하다. 이러한 변화 과정은 화청의 가사나 선율구조나 가락이 창자마다 다르게 표현되고 변화되어 각 지역마다의 각기 다른 모습으로 전승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현대의 화청은 종교적인 색깔을 지닌 음악이긴 해도, 그를 듣는 일반인들의 흥미와 욕구를 만족시켜서 포교의 수단을 위한 노래로 그 역할과 기능이 변질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다음 화청의 가사유형과 선율의 특성에 관하여 살펴본 결과 중부지역의 가사는 한 사람이 부르는 동일한 화청이라 해도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른 가사로 대체하거나 즉흥적으로 가사를 지어 부른다. 또한 선율형은 정해져 있지 않은 형태이다. 즉 같은 창자가 부르는 화청이라 해도 장소나 대상에 따라 정해진 선율로 부르지 않고 다양한 선율을 구사한다. 영남지역은 여러 사람이 동일한 화청을 부르더라도 시작 부분의 가사를 서로 다르게 부르거나 비슷한 내용을 부르더라도 곳곳에 첨가되는 가사는 즉흥적으로 지어 부르고 있다. 선율은 여러 명의 창자가 동일 곡을 부를 때 역시 정해진 선율을 부르지 않는다. 호남지역에서도 시작부분의 가사를 서로 다르게 부르거나 비슷하게 부르다가도 곳곳에 첨가되는 등 가사의 즉흥성이 많이 나타나고있다. 또한 호남지역 화청의 선율 역시 앞의 중부나 영남과 같이 ‘비 고정선율’로 부르고 있어 가사의 즉흥성과 선율은 모두 비 고정성임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화청의 가사는 매우 교훈적이며 민요처럼 구전성이 강하고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접근성도 뛰어난 음악이다. 그러므로 포교의 역할을 충족시킬 수도 있고 동시에 누구나 쉽게 부를 수도 있는 노래이기에 보존가치가 높다하겠다.

      • KCI등재

        佛敎 「和歸去來辭」에 관한 考察 - 韓中佛敎文學을 중심으로

        박완식(Park Woun-Sik) 동양한문학회(구 부산한문학회) 2008 동양한문학연구 Vol.27 No.-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대한 「和歸去來辭」의 유행은 단연 소동파에 의해서이다. 그는 도연명을 최고의 시인으로 인식했을 뿐 아니라, 그의 인격에 대해서도 존경의 마음을 보여왔다. 그러나 소동파의 그런 의식은 노년의 유배지에서 비롯되어 도연명의 시 전체를 和韻하는 과정에서 「화귀거래사」가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소동파는 유배인이라는 신분제한으로 자유롭게 귀향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따라서 그는 ‘無何有의 고을’, 즉 寂滅의 세계를 그의 귀착지로 인식한 것이다.<BR>  이처럼 소동파의 귀거래의식은 도연명과는 다른 의식세계를 구축하면서 「화귀거래사」의 다양한 귀향의식을 낳게 된 것이다. 이에 불교인은 자연 불교의 사상에 의한 「화귀거래사」를 남기게 되었다. 이처럼 불교사상에 의한 「화귀거래사」는 한국과 중국의 居士와 승려로 고작 5~6인이 있을 뿐이며, 모두 몇 편이 지나지 않는다.<BR>  그러나 불교 「화귀거래사」의 내에서도 각기 다른 불교관으로 그들의 歸宿意識 또한 같을 수만은 없다. 본고는 이처럼 다양한 불교적 歸去來 의식을 분석, 탐구하였다.   A passing vogue of 〈和歸去來辭〉 answering to 〈歸去來辭〉 made by 陶淵明 was definitely brought by 蘇東坡 in Song(宋)-Dynasty. He didn"t take only 陶淵明 as a best poet, but also gave honor to his innocent personality. However that sense of 蘇東坡 was derived in a place of exile in his old age. But 蘇東坡 as a deportee wasn"t situation to return to his hometown, so he regared an ‘town of 無何有", which is a world of Nirvana as his coming back place.<BR>  In this way, his ‘consciousness of homecoming" differ from that of 陶淵明, produced a diversity of ‘consciousness of homecoming" in the 〈和歸去來辭〉. Besides him, only 5~6 writer as a Buddhist monk leave some poems in Korea and China.<BR>  But, there were lots of the conception of Buddhism in the inside of 〈和歸去來辭〉, their ‘consciousness of homecoming" couldn"t be identical. In this article, I analyzed and made researches these sort of various Buddhist ‘consciousness of homecoming".

      • KCI등재

        북송대 禦戎論과 華夷論

        朴志焄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2008 역사문화연구 Vol.30 No.-

        북송의 禦邊政策과 그 중점은 시기에 따라 다르게 변화가 있었다. 이는 대체적으로 초기(太祖, 太宗, 眞宗代), 중기(仁宗, 英宗代), 후기(神宗, 哲宗, 徽宗代) 등 삼단계로 나눌 수 있다. 본고에서는 북송대의 禦戎論과 더불어 禦戎論의 근저를 이루는 사상원칙, 즉 華夷論을 규명하였다. 여기에서 어융론이란 邊防論, 邊務論이라고도 하는데 이민족의 침입을 막는 방법, 국경지대를 방비하는 책략에 관한 주장과 논의이다. 특히 禦戎의 戎은 오랑캐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용어상에서도 중국인의 화이론적인 인식이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북송대를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 각 시기마다 민족관계의 중심적인 추이, 어융론의 대표적인 내용 및 화이론의 특징 등을 고찰한 것이다.. 먼저 북송초기 遼에 대한 어융론은 단순방어관념 즉 “來則禦之, 去則勿逐”를 기본으로 하여 1) 邊防 주둔군의 대량증가와 2) 屯田 혹은 方田, 3) 무역회복 등이 논의되었고, 군대훈련과 장수선택, 군비를 정예하게 하는 것, 간첩의 이용, 鄕兵 모집, 군량확보, 邊民 구휼 등이 제시 되었다. 특히 먼저 內政을 공고하게 해야 한다는 安內의 입장과 安民을 강조하고 있다. 요에 대한 관점을 볼 때 차별적인 표현이 주류를 이룬다. 契丹족을 蜂蠆, 豺狼, 犬羊, 蛇豕 등 동물로 묘사하고, ‘비리고 누린내 나는 小蕃’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하지만 德으로 진무해야한다는 원칙은 포기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유목적인 특징을 가진 이민족을 정복해도 중국에게 실익이 없고 단지 중국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으면 된다는 관점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북송중기의 西夏에 대한 어융론도 성채를 쌓고, 군대훈련과 장수선택, 冗兵을 줄이며, 군량확보, 요새의 수비, 民兵 훈련, 戰馬의 보충 등으로 대체적인 요점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이렇게 어융의 기본 원칙이 계속 되풀이 되었다는 것은 북송대 내내 효과적으로 내정이 완비되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華夷論的인 면에서 보면 邊備가 제대로 되어야 四夷가 저절로 복종한다는 전제 하에서 화이가 다르다는 원칙을 강조하였다. 또한 은혜를 베풀고 懷柔에 힘써야 한다는 당위론과 반역하면 어쩔 수 없다는 현실론이 공존하고 있다. 끝으로 북송후기에 가면 요나 서하와 같은 强敵이 아니라 서남지구의 交趾나 靑唐 정권이 변경을 침입하는데 따른 화이론을 볼 수 있는데 이민족의 형세에 따라 힘과 경중을 다르게 하고 있는 면을 볼 수 있다. 특히 蠻性은 很悍하고, 蠻夷는 殘暴하다고 하였으며, 민족에 따라 지형이나 풍속이 다른 점을 파악하고 이에 대해 대비하고자 하였다. 또한 부족별로 서로 흩어질 때 중국의 이익이 되며, 중국을 배신하면 번속국의 지위에서 배제하자고 하였다. 또한 羈縻를 계속 할 수 있으면 은혜와 신의로써 맺고, 위엄을 보여 德으로서 품어야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德化를 미치기보다는 중국에 대한 태도에 따라 대우를 다르게 한다는 의미이다. 이상의 내용에서 볼 때 북송대의 관료들은 국세 부진과 현실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타개하고 군비를 강화해야한다는 원칙론과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송의 국세 부진을 인정하면서도 이민족을 제압해야하고, 제압할 수 있다는 중화 중심적인 자존심이 포기되지 않고 있다. 원칙에 대한 강조는 사실 공론에 불과한데도 중국의 뿌리 깊은 中華意識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민족에 대해서 오직 중국위주의 주관적인 평가를 하고 있으며, 상대방의 국력이나 세력에 따라 어융의 방법을 달리하는 면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어변의 방법이 각 민족의 특성을 파악하고 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요나 서하 등이 중국을 공격할 때 군비를 강화하고 국세를 늘려야한다는데 모아지고 있다. 교지나 청당과 같은 소수민족 정권에 대해서는 관념론적인 중화사상의 원칙이 강조되고 있고, 중국을 받들지 않고 침략하는 데 대해서 더욱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북송대의 화이론은 이민족에 비해 열세라는 현실과 자존심을 유지하고자 하는 당위론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고, 이는 어융론에서도 계속 견지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北宋时代的御边政策及其重点, 根据时期的不同有着不同的变化,大体分为初期(太祖,太宗,真宗代),中期(仁宗, 英宗代),后期(神宗,哲宗,徽宗代)等三阶段。在本稿里阐述了北宋时代的御戎论以及作为御戎论思想原则的华夷论。御戎论也被称为边防论,边务论,是有关防止其他民族侵略的方法、防备过境地带的策略的主张与议论。特别是御戎的戎是指夷狄,它的词义上也内含着中国人对华夷论的认识,所以这两者有着密切的关系。因此, 本論文拟把北宋时代分为初期, 中期, 后期,来考察各个时期民族关系的中心趋势、御戎论代表性内容以及华夷论的特征等。首先,北宋初期对辽国的御戎论是以单纯防御观念,即“来则御之,去则勿逐”为基础,探讨了1)边防驻军的大量增加 2)屯田或方田 3)贸易恢复等,提示出了军队训练和将帅选择、军备精锐化、间谍的利用、募集民兵、囤积粮食、抚恤边疆居民等。特别强调了巩固内政的安内立场和安民政策。在辽国的立场而言,不平等的表现方式形成了主流观点可以说是不公平的, 把契丹族描写成蜂蠆、豺狼、犬羊、蛇猪等动物,还被称为腥膻小蕃。虽然也不抛弃以德镇压的原则, 但仍然展示了就算征服了具有游牧特征的其他民族对中国也无益,只要不危害中国就可以的观点。其次,针对北宋中期的西夏的御戎论而言,修建城堡、选将练兵、节省兵力、广积粮食、控守险要、训练民兵、补充战马等基本原则大体上没有发生大的变化。如此, 御戎的基本塬则的反复实行,就反映了北宋时代一直没有完备有效的内政体系。从华夷论的角度上看的话,只有防备完备,四夷才会自觉地服从,在这种前提下,强调了华夷不同的塬则。另外共存着给与恩惠、致力于软化的正当论和如果叛逆也将无法对应的现实论。最后进入北宋后期, 出现了不同层次的华夷论. 对于不像辽或西夏这样的强敌,而是西南地区交趾或青唐政权的侵入边境,华夷论也根据其他民族的形式而采取或轻或重的防御战略。特别是传言蛮性很悍、蛮夷残暴,根据民族掌握地形和风俗的差异,然后采取相应的对策。当时北宋政府充分理解各个民族互相分散对中国有利,而背叛中国卽将废除藩属国的地位。如果能够继续从属,必须结以恩信、畏威怀德,与其说是德化,不如说是具有根据对中国的态度而给于不同待遇的意义。从以上内容可以看出,北宋时代的官僚对国势不振的现实具有正确地认识。进而提出了强化军备的原则和方法。但是在认识到宋的国势不振的情况,而没有抛弃要制压其他民族的野心, 也没有放弃以中华为中心的自尊心。对于原则的强调实际上只不过是空谈,而仍旧显示出了中国根源深远的中华意识。对于其他民族,仍然保持只有以中国为主的主观评价,但开始出现了根据对方的国力或者势力选择制定御戎方法的新的一面。另外掌握各个民族的特性,根据这些特性开始出现了不同的御戎方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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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82년 통신사 필담창화집 『和韓唱酬集』에 반영된 한일문화교류 연구

        한태문(Han, Tai-Moon)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21 한국민족문화 Vol.78 No.-

        이 글은 1682년 통신사 필담창화집인 『和韓唱酬集』의 형성배경과 형식 · 내용상의 특징 및 양국 문화교류의 구체적 양상 등을 살폈다. 첫째,『和韓唱酬集』의 형성배경이다. 임술통신사로 일본에 파견된 조선의 문사들은 뛰어난 문화역량을 바탕으로 필담과 창화를 통해 일본의 문사들과 교류했고, 그 결과 수많은 필담창화집이 산출되었다. 京都의 출판사 丁子屋은 일본 독자층의 요구에 따라 이들 개인 필담창화집을 전국에서 모아 1683년『和韓唱酬集』으로 출간했다. 둘째,『和韓唱酬集』의 형식과 내용상의 특징이다.『和韓唱酬集』은 시문과 필담 및 편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필담창화집을 남긴 인물들을 중심으로 편집되어 수록의 원칙이 불분명하고 일관성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내용상으로는 당시 양국 문사의 교류에 많은 제약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일본인이 본 통신사의 禮式이나 일본 문사 사이의 교류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셋째,『和韓唱酬集』에 반영된 양국 문화교류의 양상이다. 크게 시문창화와 필담으로 나누어지는데, 조선의 문사들은 어린 소년을 비롯해 혈연 · 학연 관계에 있던 문사 및 승려들과 시문으로 교류했다. 또 시문을 증여하고 문집의 서발이나 누각의 현판 글씨를 써주는 등 여러 방면에서 우호적인 교류가 이루어졌다. 하지만「東使紀事」에는 조선에 대한 폄하와 자국 우월주의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등 비판의식도 드러난다. 필담과 편지에서는 소소한 관심사의 교환에서부터 문학 · 의학 · 박물학 등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처럼『和韓唱酬集』은 임술통신사(1682)를 통해 이루어진 양국 문사들의 교류양상을 구체적으로 잘 반영하고 있음은 물론, 17세기 이후 문학을 비롯한 일본 문화계의 전반적인 성장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교류사적 의의도 지닌다. This paper examines the background of formation, the characteristics of the form and content, and the specific aspects of cultural exchange between Joseon and Japan of Hwahanchangsoojip(和韓唱酬集), in the 1682 Tongshinsa"s collection of written conversations and poems. First, it is the background of formation of Hwahanchangsoojip. The Korean literary men sent to Japan as Imsul-Tongshinsa exchanged with Japanese literary men through exchange poems and written conversations based on their excellent cultural capabilities. As a result, a number of collection of written conversations and poems were produced. In response to the demands of Japanese readers, the Kyoto publishing company Jeongjaok collected these personal collection of written conversations and poems collect from all over the country and published a Hwahanchangsoojip in 1683. Second, it is the characteristics of the form and content of the Hwahanchangsoojip. That is composed of poems, written conversations, and letters. However, since it is edited around the characters, the principle of recording is unclear and inconsistent. In terms of content, it shows that there were many restrictions on the exchange of literary men between the two countries at the time, and it is characterized by well reflecting the ceremony of the Tongshinsa and the exchange between Japanese literary men. Third, it is the aspect of cultural exchange between the two countries reflected in the Hwahanchangsoojip. It is largely divided into exchange poems and written conversations. The literary men of Joseon exchanged poetry with literary men and monks who had blood or academic relations, including young boys. In addition, friendly exchanges took place in various fields, such as offering poetry and writing the letters on the signs of the house and pavilion. However, a sense of criticism is also revealed, such as the disregard for Joseon and the dominance of the country. In exchange poems and written conversations. detailed discussions on literature, medicine, and natural history, as well as minor exchanges of interests, took place. As such, the Hwahanchangsoojip reflects the pattern of exchanges between the literary people of both countries through Imsul-Tongshinsa(1682). In addition, the Hwahanchangsoojip has a historical significance for cultural exchange in that it can glimpse the overall growth of the Japanese cultural world including literature since the 17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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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화조화의 개념과 상징 해석에 대한 고찰

        장지성(Jang Ji Seong) 한국미술교육학회 2008 美術敎育論叢 Vol.22 No.2

        전통회화에 있어서 산수화?인물화와 함께 3대 화문인 화조화는 고려시대부터 순수한 감상을 위한 화조화가 그려지기 시작했으며, 양식적인 변천을 거듭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꽃과 새는 사계절이 뚜렷하여 일찍이 자연합일의 사상이 발달한 동아시아에서 자연의 조화로움과 아름다움을 대변하니, 항상 예술과 문학의 주요 소재로 다루어져 왔다. 특히 소재가 지니는 다양한 상징은 화조화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화조화는 하나의 화문(畵門)으로 볼 때 아직까지 정확한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명확하지 않아 광의와 협의의 개념이 혼란스럽게 사용되고 있고, 전통 화조화를 감상하고 비평하는데 있어서 소재가 지니는 상징에 대한 편협한 해석으로 작품전체를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에, 이 연구는 전통화조화의 올바른 감상과 비평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화문으로서의 범위와 상징 해석의 문제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리라 판단하였다. 그래서 첫째, 중국의 화보(畵譜)나 화사서(畵史書)의 화조화라는 용어의 사용례와 한국회화사에서의 화조화라는 용어사용에 대한 세밀한 고찰을 통해 보다 정확한 화조화의 개념과 범위를 제시하였다. 그리고 둘째, 화조 소재가 지니는 상징뿐만 아니라, 화조화 작품이 지니는 상징 해석의 중요성에 대해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실제 작품을 분석하여 작품의 의미를 밝히는데 다양한 상징 요소들이 존재함을 밝혔다. A flower-bird painting, one of three big styles with a landscape painting and a figure painting in traditional paintings, has been drawn since Goryeo era when people drew it for genuine appreciation and has changed its styles to come to current patterns. Flowers and birds have been main subject matters in arts and literature to express the harmony and the beauty of nature in East Asian countries where there are clear four seasons and Oriental thought that emphasizes the unity between human beings and nature. Especially the various symbols of the materials became the motive to develop flower-bird paintings. However, no one defines the exact meaning and range of flower-bird paintings and the concept of it both in a broad sense and a narrow sense creates confusion. Also narrow interpretation on the symbol of materials in appreciating and criticizing traditional flower-bird paintings sometimes works as an obstacle in the overall understanding of art works and distorts understanding and appreciation of traditional flower-bird paintings. Hence, in this research, I intended to suggest more clearer concept of flower-bird paintings by studying usage cases of the term "flower-bird painting" in Chinese picture books and painting history books and in Korean painting history. I also demonstrated that it is needed to examine what symbol flower-bird paintings have rather than what symbol materials in flower-bird paintings have, and found that there are various symbol factors to clarify the meaning of an artwork by analyzing real art works. In other words, I insisted that we need to prescribe the scope of flower-bird painting patterns by defining the concept of flower-bird paintings and read creativity of artist, era and culture in symbols of each art work to appreciate traditional flower-bird paintings properly, not just we find and understand forgotten traditional symbols in flower-bird pain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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