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생태환경의 시선으로 다시 읽는 개발의 역사 - 한국근현대 생태환경사 연구의 확대와 ‘개발’의 재인식

        양지혜 한국생태환경사학회 2024 생태환경과역사 Vol.- No.13

        이 글은 당도한 기후위기라는 ‘현실’과 번영에 대한 한국사회의 오랜 ‘관성’ 사이에서, 최근의 한국생태환경사 연구가 근대 이후 한국의 ‘개발’을 그린 다양한 시선을 조망했다. 이를 통해 번영과 수탈, 성장과 분배라는 이항대립을 넘어, 인간과 비인간, 식민지와 탈식민, 번영과 재난이 뒤얽힌 ‘개발’의 역사를 탐색했다. 이를 위해 역사학・사회학・인류학・과학기술학 등 여러 분과학문의 관련 연구를 종합하고, 개발과 각 정치체제 간의 적대적 공범관계, 개발과 인간-인간 너머의 관계, 개발 이후 삶의 역사를 요약했다. 맺음말에서는 향후의 연구 과제를 제시했다. Between the 'reality' of the climate crisis and the long-standing 'inertia' of Korean society toward prosperity, this article examines the different ways in which recent studies in Korean ecological and environmental history have depicted 'development' in post- modern Korea. This book explores the history of 'development' that goes beyond the binary opposition of prosperity and dispossession, growth and distribution, and intertwines humans and non-humans, colonization and decolonization, prosperity and disaster. To do so, it encompasses relevant research from various disciplines such as history, sociology, anthropology, science and technology, and summarizes the antagonistic complicity between development and political systems, the relationship between development and non-humans, and the history of post-development life. The concluding section suggests future research challenges: exploring the cultural foundations of development, expanding attention to the world beyond the human, and strengthening interdisciplinary and transnational collaborations.

      • KCI등재후보
      • KCI등재후보

        오만과 편견 – 레이첼 카슨의 투쟁과 유산의 재조명

        황희숙 한국생태환경사학회 2022 생태환경과역사 Vol.- No.8

        살충제의 해악에 대한 레이첼 카슨의 주장은 책 이름과 연결되어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침묵의 봄의 내용 자체는 환경 사상을 다룬 연구에서 그 세부가 요약되거나 평가되는 일이 거의 없다는 점은 의아하기까지 하다. 이 글은 침묵의 봄이 출간된 이래 벌어진 상황들을 다루면서, 인간이 자연과의 관계에 대해 갖는 ‘오만’이 환경문제의 배경임을 밝히려 한다. 또한 카슨에 대한 ‘편견’의 뿌리를 분석하고 반박한 후, 카슨의 유산을 새롭게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카슨에 대한 오해와 비판의 일부는, 카슨의 과학-문학 혼종적인 글쓰기 방식과 미혼여성에 대한 당시의 편견에 기인한다. 카슨이 DDT의 전면적인 금지를 주장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카슨은 이해당사자인 화학기업과 응용곤충학자를 비롯한 과학자들의 공격을 받았다. 필자는 카슨에 대한 세 가지 공격 - 비전문성, 비과학적 내러티브의 사용, 말라리아 창궐의 책임자라는 비난에 대해 반박한다. 카슨이 비전문가라는 비판은 카슨의 해양생물학자로서의 경력을 감안하면 잘못된 것이며, 또한 과학계의 남성적 과학상과 과학자 이미지는 낡은 것이다. 내러티브의 사용도 과학에서 배척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살충제에 대해 말라리아모기가 내성을 갖는 문제는 카슨 이전부터 지적되어온 것이며, 카슨은 오히려 ‘생물학적 방제’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침묵의 봄은 최초의 녹색 선언으로 이후 환경 사상과 운동에 그리고 전 세계의 환경정책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필자는 카슨의 유산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환경 인문학적 글쓰기의 모범사례이자 생태 소양(ecological literacy)을 배양할 텍스트로 침묵의 봄을 높이 평가한다. 둘째, 카슨은 단순히 살충제의 위해성을 지적했다기 보다는, ‘인간과 자연과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려는 더 큰 비전을 제안한 생태사상가다. 카슨은 생태중심주의(ecocentrism)를 보이지만 생물평등주의(biospheric egalitarianism)나 ‘동물의 권리’까지 선언하고 있지는 않다. 그것은 카슨이 급진적인 생태사상을 드러내기보다는, 대중의 환경운동을 고취하기 위해 온건하고 실용적인 주장을 펼친 탓으로 보인다. 셋째 카슨은 전문가와 정책결정자에 대한 비판을 통해, ‘시민과학’과 ‘과학 민주화(democratizing science)’를 선도한 사상가로 평가할 수 있다. 카슨의 침묵의 봄은 인간의 무지와 오만에 경종을 울리고, ‘인간과 자연의 새로운 관계 맺기’를 제안한 생태사상서로 재평가되어야 한다. 카슨 사후에 환경산업의 문제, 발암물질과 방사능 측정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로 인해 카슨의 큰 비전이 무색하게 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오만’도 여전하며, 카슨에 대한 ‘편견’도 계속되고 있다. 카슨이 옳았음을 역사가 증명해 주겠지만, 카슨이 주창한 ‘자연과의 화해’는 아직도 우리에겐 시기상조인 듯하다.

      • KCI등재

        조선시대 충재의 생태환경사적 고찰

        김지연 한국생태환경사학회 2024 생태환경과역사 Vol.- No.12

        본 연구는 역사서 중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황충과 충재에 대한 기록을 발생한 년 월, 발생원인, 피해 정황, 대처방안, 피해자원 순으로 데이터베이스화하여 황충 대발생으로 인한 조선시대 충재의 성격과 발생 원인을 분석하여 식식성 곤충과 인간의 생태환경사를 고찰하고자 하였다. 곤충 대발생의 원인은 기후환경의 변화, 생태계의 먹이사슬 관계에서 먹이식물인 농작물 재배의 확장, 천적이 없는 곳으로의 외래 개체군의 도래 등이 포함된다. 데이터베이스화한 조선왕조실록에서 충재 발생과 관련된 기후환경의 변화는 기후 현상에 대한 기록, 먹이식물의 증가는 충재가 가해한 농작물들의 피해 현황, 천적의 감소는 비래해충의 증가, 해외무역 증가 등 충재 발생이 빈번한 지역의 생태적 특성을 통해 파악하고자 하였다. 조선시대 447년 가운데 170년간의 충재 발생 기록에 의하면, 황충은 평균 2.6년의 주기로 대발생하였고, 발생 원인은 재이사상보다는 자연현상에 의해, 대처 방안으로 포제뿐 아니라 포획이 증가한 것을 알 수 있었다. 1.5년 주기로 가장 빈번히 발생하였던 시기는 15세기 초 태종과 17세기 숙종 대였다. 특히 숙종 재위기간 중 20여 년간의 지속적인 황충 발생은 조선시대 가장 큰 기근인 경신대기근, 을병대기근 시기와 겹쳐 심각한 재해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황충 발생에 대한 피해 작물로 벼가 가장 많이 기록되었다. 그 외 조, 수, 기장, 보리, 밀 등의 벼과 밭작물과 콩, 목화 등의 주요 작물의 피해도 기록되어 당시 농작물 재배가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발생지역으로 평안도, 황해도가 가장 많은 이유로 경작지의 확대, 중국에서 날아오는 비래해충으로 인한 피해, 상대적으로 높은 왕실 소유 토지 비율, 중국 과의 주요 무역지 등 다양한 원인을 추정해 보았으나, 황충에 대한 기록만으로 당시 황충의 천적이 감소한 원인을 찾기는 어려웠다. 본 연구 결과, 고려시대 황충은 농업, 산림해충을 통칭했다면, 조선시대의 산림해충은 송충으로 분리하여 인식하였고, 황충은 저작형과 흡즙형 농업해충으로 구분하였다. 곤충 대발생의 원인 중 기후변화와 천적의감소는 조선시대 황충에 대한 기록만으로는 충재와의 관련성을 찾기가 어려웠다. 다만 농경활동 확대는 황충의 먹이식물을 증가시킨 것으로 충재 발생의 원인으로 보인다. 따라서 일반적인 자연재해와는 달리 충재는 농경지 확대 등 인간의 활동과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This study attempts to deduce the main causes of agricultural crop pests or Hwangchoong, the degree of damages to the Joseon people and the governing actions by the Kingdom to countermeasure those damages based on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Choongjae, an outbreak of an agricultural insect pest, usually occurs when the climate meets optimal growing condition of a pest, the host crop proliferates due to increase of cultivations, or the reduced natural enemies present around the habitats, Accordingly, information regarding climate conditions, types and areas of cultivated crops, and occurrence or outbreaks or a pest was retrived from the Annals of Joseon Dynasty. Lastly, causes of reduced natural enemies in certain era were inferred with the concurrent climate or political conditions. On the Annals of Joseon Dynasty, Hwangchoong, an agricultural pest, was documented during 170 year across the total 447 years. Arithmetically, this indicates Hwangchoong occurred during the Joseon Dynasty, at approximately every 2.6 years. the records of Hwangchoong or Choongjae were more frequent the 15th and 17th centuries. In the 15th century, King Taejo, the first king of Joseon, erected the Dynastyof Joseon as an agriculture-orient kingdom. Thereafter, Joseon had promoted co cultivate various crops in expanded arable fields. Hwangchoong included not only pests of rice but also as pests of many other cereal crops such as millet, sorghum, barley and wheat, and even those of and beans and cottons. In 17th century when Joseon was under King Sukjong’s regime, Hwangchoong or Choongjae was documented continuously for more than 20 years, which occurred at the same time with the two major famine periods of Joseon. Concentrated records of Hwangchoong or Choongjae were in two Northwestern provinces, Pyeongan province and Hwnaghae province, which are possibly related to the development of cultivation fields in the areas, insect pests that were migrated from China, pests moved as on imported Chinese commodities or on merchants’ parcels, or higher densities of survey according to the value of properties including some royal families’ in those areas.

      • 풍수는 친환경적인가 반환경적인가?

        김기덕 한국생태환경사학회 2020 생태환경과역사 Vol.- No.6

        2006년, 문화관광부는 한국을 대표하는 ‘100개의 국가 문화 상징’을 발표했는데, 여기에 ‘풍수’가 포함되었다. 풍수가 선정된 이유는 ‘전통 환경사상, 선조들의 삶을 응축하는 자연생태, 전통최적주거입지론’이며, 최근 중국과 일본 외에 미국과 유럽에서도 이러한 시각은 확산되는 추세다. 이처럼 자연에서 파생된 친환경 풍수는 현대 한국에서 오히려 반자연적이고 반환경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향은 무덤의 조성과 관련하여 특히 두드러진다. 본 논문은 이 문제를 근거로 하여 풍수가 기본적으로 친환경적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 KCI등재후보

        최치원의 ‘생태환경’ 이해

        장일규 한국생태환경사학회 2022 생태환경과역사 Vol.- No.8

        최치원이 살던 당시는 혼란의 시대였다. 이 글은 ‘생태환경’을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으로 상정하였을 때, 최치원이 당시를 ‘생태환경적’으로 어떻게 이해하고자 하였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최치원은 귀국 후 주로 불교 관련 저술에 힘썼다. 최치원의 생태환경 이해는 불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두어야 한다. 귀국 직후 왕명을 받아 사산비명 찬술을 완료하면서, 해 뜨는 곳인 신라에는 아침 해와 봄바람이 변함없이 존재하였고, 누구든지 호생과 교양을 중시하고 지켜나갔으므로, 결국 만물의 생성・성장이 원활히 이루어졌다고 주장하였다. 자연히 최치원의 생태환경 이해는 신라 산수를 바탕으로 삼고, 산수의 아름다움을 이루는 조건으로 아침 해와 봄바람을 강조하면서, 아침 해와 봄바람에 익숙한 신라 사람과 신라의 대지가 만물의 생성과 성장의 근원임을 강조한 것이었다. 다만 그는 신라 대지에 대한 관심을 신라 고유 정서의 부각으로 연관시켰다. 곧 ‘인’, ‘생’, ‘지’를 통해서 ‘도’와 ‘제화’, 그리고 ‘생화’를 부각하였고, 특별히 ‘생령’과 ‘물정’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생령은 백성이나 인민을 가리키고, 물정 역시 중생이 지닌 정서를 말한다. 자연히 ‘풍류’인 ‘접화군생’은 ‘무릇 세상의 주체인 각 생령들이 온전히 자신의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환경을 바꾸자’는 의미를 담은 것이었고, ‘풍류’ 역시 ‘바람 불 듯이 이러저런 당시의 상황’을 실상 그대로 강조한 것이었다. 최치원은 공자, 노자, 부처가 물정을 생각하고 아낀 것을 내세우며 신라 국왕과 신라 국가가 백성을 온전히 보전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최치원에게 ‘생태환경 이해’를 통한 ‘접화군생’의 강조는 당시 사회의 혼란을 수습하려는 또 하나의 사회개혁안이었던 셈이다.

      • 한국 근대 생태환경사 연구의 동향과 과제

        고태우 한국생태환경사학회 2016 생태환경과역사 Vol.- No.2

        Ecological and environmental history is an extended version of an environmental history that links with the concept of an 'ecological turn'. This signifies that human is deemed to be one of the chain in the ecosystem that coexists with the ecological environment. In other words, it rejects the human images that rule the nature and concurrently criticizes the capitalism of modern civilization which has faith in economic growth. This is a way to coexistwith the natural environment and mankind. Consequently, study on the ecological and environmental history is significant on the historical academic response and participation in ecological environmental matters. In this regard, this paper reorganizes the preceding research on modern history in Korea. It includes the research on agriculture and forest, issues of marine ecology and fisheries, and the topic on the convergence of ecological environment with the medical history. Subsequently, it introduces the ongoing research such as study on climate matters and disasters, environmental change and pollution by industrialization, and view of nature, ecological thought, and politics of symbiosis as a recent new topic. Finally, it emphasizes the interdisciplinary collaboration such as natural science is necessary as a task of ecological and environmental history. In addition, it raises the theme of 'Korea 's environmental history in the 20th(~ 21st) century’ as a method of contributing the study of modern Korean history. The following can support these themes. First, history of energy in the 20th century, second, the history of environmental change and pollution or disaster, third, mentalité studies of economic growth myths, fourth, ecological thought history, environmental movement, and history of human activity pursuing sustainability. As a result, it is expected that historical studies enable to evoke the survival problem of the earth's ecosystem and provide a small clue to solve this problem.

      • 한국 고대 도시의 오물 처리와 근교 농업 -도시의 생태환경사 연구 시론-

        권순홍 한국생태환경사학회 2020 생태환경과역사 Vol.- No.6

        이 글의 목표는 고대 도시가 주변 지역사회와 맺은 쌍방향적 순환관계를 묘사하는 것이다. 도시는 하나의 완전한 세계로 이해되기 쉽지만, 고대서부터 도시는 존립을 위해 주변 지역사회와 관계를 맺었다. 단적인 예로 도시에서 발생한 오물이 도시 밖 근교 농업에서 비료로 활용되고, 근교에서 생산된 채소와 과일이 도시에서 소비되는 순환 관계를 제시하고자 했다. 신라 왕경과 백제 사비도성 등의 고대 도시에서 발생한 오물은 하천으로 방류되지 않았고, 특정 장소에 모였다가 주기적으로 처리되었다. 지하 배수로와 연결된 석조 유구 혹은 대형 저수지를 통해서, 당과 마찬가지로, 도시 오물의 처리를 담당 관리하는 관청의 존재까지 유추할 수 있었다. 한편, 한국 고대의 삼국과 당시 중국의 재배 작물이 같았다는 문헌 기록을 고대 도시 유적의 화분분석을 통해 방증하였고, 『제민요술』 등에 나오는 시비법 관련 기술을 토대로, 재배 작물이 같았다면, 재배 방법도 같았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바꿔 말해, 한국 고대 사회에서도 오물이 농업에 활용되었을 가능성의 제기였다. 특히, 백제의 고대 도시에서 발견된 일명 변기형 토기의 용도를 시비로 해석함으로써, 그 가능성을 방증하였다.

      • 중국의 매독 역학 및 사회 환경 관련 정책에 대한 연구

        량용쉬안 한국생태환경사학회 2020 생태환경과역사 Vol.- No.6

        On the basis of introduction of syphilis knowledge, taking the establishment of new China as the dividing line, this paper analyzes the possibility that syphilis was brought into China during maritime trade in Ming Dynasty. After investigation and description of syphilis doctors’ family origin in Ming and Qing Dynasties, this paper speculates that syphilis mainly attacked coastal area and economically active areas. After that, this paper introduces preventive and control measures for syphilis as well as regulations issued by China since the establishment of new China in 1949, and reviews the epidemic situation of syphilis.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