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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 시가의 시어와 주제의식 연구―감성의 개발을 중심으로
이승하 현대문학이론학회 2006 現代文學理論硏究 Vol.0 No.29
시조와 같은 정형시뿐만 아니라 개화기의 개화가사와 창가에는 인간의 기본적인 정조인 희로애락을 비롯하여, 다양한 감정이 제대로 표출되지 못하였다. 조선조 말의 시조에는 조선조 사대부의 정신과 행동양식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개화가사는 문명개화와 충군위국의 사상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감성의 표출과는 거리가 멀었다. 창가는 7․5조라는 음수율의 한계, 계몽주의로의 경도와 찬송가류의 범람이 문제였다. 시의 가장 기본이 되는 정조인 자기 감정이나 감성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다가 신체시의 시대로 접어들면서부터 다양한 감성을 표현할 수 있어 ‘자유시’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신체시는 아직 형식상의 자유를 추구하지 못한, 과도기적인 양식이었다. 다시 말하거니와, 본 연구자는 조선조 양반사회에서는 도저히 펼쳐 보일 수 없었던 ‘내면의식’이 개화기 시인들의 시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서 자유시까지 이어지는지, 그 양상을 살펴보았다. 시의 형식보다는 내용에 있어서 감정과 감성을 발견해가는 과정을 추적하는 것이 본 논문의 목표였다. 따라서 연구자는 1896년부터 1919년까지 발표된 시를 중심으로 하여 연구를 전개하였다. 이전의 시조나 가사와는 판이하게 다른 개화가사에서 자유시로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외형률을 벗어버리는 형식상의 자유도 물론 추구했지만, 내용에 있어서도 자아를 어떻게 발견하고 시에다 구현했는가를 연구해보았다. 시조에서 자유시의 시대로 이행되기까지 개화가사․창가․신체시 등의 양식이 있었는데, 시어 구사와 주제 설정에 있어 창가보다는 개화사가가 다소간 윗길에 있었고, 그래서 개화가사에서 창가로 나아갔다는 기존의 연구 결과는 오류임을 밝히기도 했다. 신체시는 내용상에 있어서는 자유시에 못지않은 다양성을 보여주었고, 작자들 의식의 개화가 자유시 등장을 위한 초석을 마련해주었다. 널리 알려져 있는 최남선의 신체시보다는 이광수와 최승구, 김여제 등의 신체시에서 희망적인 조짐을 엿볼 수 있었다. 이로써 개화가사와 창가를 거쳐 신체시로 가는 과정에는 시의 형식적 변화도 물론 있었지만, 감성의 발견이 더욱 중요한 구분의 포인트가 된다고 본다. 1920년대의 문예지를 수놓은 시편은 신체시의 ‘감정 드러내기’의 전초적인 작업이 있었기에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신의 내면세계를 펼쳐 보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