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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와 모스크바장로회신학대학교의 교회개척

        한재희 호남신학대학교 대학원 2001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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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이 요약 할 수 있다. (1) 서론부분에서는 다음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오늘날까지 수행해 온 선교에서 교회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선교를 하고 있는가에 대한 대안으로 교회의 진정한 선교를 위해서 선교의 근원을 하나님 자신이라는 점과 선교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점에서 시작했다. 연구방법으로는 삼위일체의 하나님 안에 있는 교회와 하나님의 선교를 찾으려했다. 연구절차로는 러시아교회 특히 모스크바장로교 신학대학교에 의해서 개척된 교회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선교 안에서 러시아 교회개척을 살펴보았다. (2) 교회론의 변화에서 교회의 정의를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찾고자했다.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성령의 전으로서의 교회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물론 이것은 사도 바울이 본 교회이다. 여기서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는 점과 교회는 제도가 아니라 에클레시아인 하나님의 백성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성령의 전안에서 교회의 속성을 갖는다. 교회의 속성은 하나된 교회로서 하나됨과 거룩한 교회로서 거룩성과 보편적인 교회로서 보편성과 그리고 사도적인 교회의 사도성이다. 하나님의 선교는 사도성 안에서 계속되는 보냄을 갖는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부르심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되며 성령의 전이된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로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선교적인 사명을 수행하는 가운데 교회의 존재의 근거를 갖는다. 과거의 선교에 있어서 교회를 위한 선교나 선교열정으로 인위적인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와 다른 제도적 교회가 행한 선교의 한 모습이었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인 에클레시아 역시 하나님의 선교로 부름을 받고 있으며 에클레시아인 교회는 그 부름에 응답해야 한다. 하나님의 선교에 응답하는 교회만이 참된 교회로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교회만이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종말론적 공동체가 된다.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 관계에서는 교회는 곧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부활의 빛 속에서 '이미' 온 하나님의 나라를 선취한 교회가 세상 속에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야 한다. 세상은 하나님이 사랑한 세상으로 교회는 세상 가운데서 그 역사성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어 가야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교회와 세상과 선교, 교회와 이성과 하나님의 나라, 교회와 역사와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교회와 정치와 하나님의 나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3) 러시아 개신교회에서는 먼저 러시아 정교회를 먼저 밝혔다. 왜냐면 러시아는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 속에서 이루어진 백성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인들에게 러시아 정교회는 종교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으므로 러시아 개신교회 역시 그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교회와 러시아에 대해서는 러시아와 정교회, 러시아국가교회, 그리고 동방 정교회의 중심된 선교신학를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러시아 개신교회에 대해서는 먼저 러시아 개신교의 전래와 전파지역 그리고 선교의 대상, 오늘의 개신교의 성장을 이루어낸 지하교회의 고난과 소망 속에서 승리한 러시아 개신교회로 보았다. 이는 초대교회가 로마의 핍박을 딛고 일어난 것처럼 러시아 개신교회가 갖고있는 신앙의 전승 속에서 오늘날까지 러시아교회가 남은 자로서 성장하는데 큰 바탕을 이루었다. (4) 본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하나님의 선교에서 본 러시아 교회개척인데 먼저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개념을 정리했다. 즉,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도구이며, 선교의 근원은 하나님 자신에게 있고 그 선교의 내용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삶을 통한 교회의 참여이다. 교회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하나님의 선교공동체이며 성령은 교회가 하나님의 선교를 이루도록 인도하고 이루시는 분이다. 따라서 인위적이거나 제도적 교회에 의한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에서 배제된다. 이 같은 하나님의 선교의 관점에서 모스크바 장로교신학대학교에 의한 교회개척을 살펴보았다. 특히 교회개척의 의미를 하나님의 선교와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복음과의 관계에 비추어 찾고자 했다. 여기서 교회개척은 단순한 양적 증가의 의미보다는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복음의 활성화와 러시아 교회의 요청에 의한 상황화이며 한국교회의 지속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모스크바 장로교신학대학교의 교회개척은 '러시아인에 의한 러시아선교'의 과정이며 신학교육의 장으로 신학과 교회의 유기적 상호관계 속에서 열매를 맺어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모스크바 장로회신학대학교에 의한 교회개척은 러시아 개신교회의 활성화에 참여하는 역동적 기능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 교회개척의 방법과 성장에 있어서 러시아 교회의 성장은 양적인 교회성장보다는 러시아교회에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응답하는 유기적인 신앙공동체가 될 때 하나님의 선교 안에서 바른 교회의 바른 성장이라는 것이다. 러시아교회의 특징으로는 신학적 특징으로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 속에서 성례전의 중시와 사랑의 신학 그리고 도덕성과 부활의 신학을 들 수 있다. 예배학적 특징으로 러시아 교회가 지니고 있는 신앙전승 속에는 말씀의 선포뿐만 아니라 찬양과 시 낭송 등 신앙고백적인 적극적인 참여를 들 수 있다. 목회학적 특징은 공동체정신을 바탕으로 친교공동체로서의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러시아 교회의 선교 신학은 과거 핍박의 시기를 지나는 동안 교회들은 기본적으로 에큐메니칼 정신을 공유하고 있다. 개척교회의 분류는 러시아교회의 신앙전승을 토대로 하는 교회들과 모스크바 장로교 신학대학교에 의해서 개척된 교회들로 나눌 수 있다. 개척된 러시아교회들은 비록 한국교회의 협력 속에서 개척되고 있을지라도 러시아 교회가 지니고 있는 신앙의 전승 속에서 러시아적인 장로교회로 태어나야 한다. 러시아 교회는 러시아에서 역사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러시아 교회는 러시아에서 요구되는 개인의 영혼구원과 함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선취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예배 공동체인 교회는 세상과의 관계에서는 선교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 본질이 선교적이며 선교적이어야 한다. 선교적인 교회만이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교회가 된다. 하나님의 선교는 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오늘 러시아교회에서도 요구된다. 러시아 교회개척과 러시아 교회의 성장은 교회의 제도나 교회에 대한 단순한 개종을 넘는다. 이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선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개종하는 교회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이 세상에서 실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함으로서 새로운 변화를 찾을 수있다. 그 동안 양적 성장을 거듭한 한국교회에게 교회 갱신의 필요성과 교회갱신 기회를 갖게 한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질적인 성장을 위한 선교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참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자기를 돌아보고 반성하며 쇄신하는 겸손한 자기 비움을 경험하게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러시아교회와 파트너쉽(partnership)의 선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되고 성령의 전이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된 세계교회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러시아교회의 개척은 하나님의 선교 안에서 개교회 차원의 단순한 한국교회의 이식과 확장이 아니라 러시아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지체로서 의미를 가진다. 러시아교회는 러시아의 정교회의 영향 속에서 그 동안 성장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러시아교회는 러시아 정교회에도 충격을 줄 수 있도록 개인구원과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특히 상대적으로 우월한 도덕성을 계속 전승해야하고 다양한 계층에서 요구되는 삶의 질문에 대해서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응답 해야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삶으로 모두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 가야한다. 이를 위해서 러시아 교회는 특히 정교회의 선교신학 가운데 하나인 사랑의 신학으로 모두를 포용하는 선교를 해야한다. 오늘날 선교의 내용과 활동도 변하고 있다. 이것은 세상과의 관계 속에 있는 교회도 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근본적이고 선교의 큰 틀인 하나님의 선교 안에서 러시아교회가 열린 마음으로 러시아라는 세상과 친교를 이루어 갈 때 러시아 교회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강한 믿음과 소명의식 그리고 리더쉽(leadership)과 책임감을 가진 목회자들과 선교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한국교회는 러시아교회를 통해서 나눔과 친교공동체로서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고 있음을 기억해야한다. 하나된 교회를 위해서 한국교회는 값비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수 있어야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삶을 나누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보여주어야 한다. 다양하고 활발한 선교활동가 곧 값비싼 은혜는 아니다. 교회와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교회는 값싼 은혜 속에 있다. 오늘 한국교회에게 필요한 것은 한국교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값비싼 은혜를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가운데서 구해야한다. 한국교회는 값비싼 은혜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남기고 자기비움으로 경계를 넘어가는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해야 한다. 우리를 변화시키고 화해시키는 하나님의 선교는 한국교회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편애하시는 가난한 사람들과 약한 자들과 억압받는 자들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나누고 치유하는 교회가 되도록 할 것이다.

      • 한국 장로교 신학교 및 신학계 기독교대학교의 신학적 정체성과 기독교종교교육 유형에 관한 연구

        홍성수 고신대학교 일반대학원 2020 국내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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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장로교에는 여러 교파들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대한예수교 장로회와 한국기독교 장로회(기장)가 있고, 대한예수교 장로회 내에는 고신, 장신(통합), 총신(합동) 교단이 있다. 이들은 모두 하나의 장로교에서 분열되어 나왔다. 이들 교파들은 각각의 신학교를 설립 운영했고, 장로교 신학계 기독교대학교들을 발전시켜왔다. 고신대학교, 장로회신학대학교, 총신대학교, 한신대학교가 이들 학교들이다. 이에 이들 학교들은 한국 장로교의 첫 신학교였던 평양 장로회 신학교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그리고 어떤 경위로 이들 학교들이 설립 발전되었는지에 관심을 갖게 된다. 본 논문은 이런 의문에서 출발하여 이들 학교의 전체 역사를 추적하면서 그 정체성과 유형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한국 장로교 신학교와 신학계 기독교대학교의 역사를 포괄하게 되므로, 한국 개신교의 시작부터해서 현재에 이르는 방대한 기간을 망라하게 되었다. 이런 까닭에 이들 학교의 시작과 정착 그리고 발전에 이르기까지 정체성과 유형에 의미 있다고 여겨지는 사건들을 선택적으로 기술하였다. 먼저, 이들 학교들의 시원이 되는 평양신학교를 다루었고, 다음으로 이들 학교들과 평양신학교의 관련성을 고려하였다. 또한 이들 네 개의 학교들을 상호대비하면서 그 특성을 분석하였다. 또한 개혁주의 기독교고등교육 관점에서 이들을 평가하고 의의를 정리해 보았다. 본 연구의 주요한 결과들 중 몇 가지를 거론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평양 장로회 신학교는 네 개의 학교들과 연속적인 면에서 혹은 불연속적인 면에서 모델이 되었다. 평양신학교는 보수 칼빈주의를 기조로 출발하여 그러한 정체성을 다음 신학교와 한국 장로교회에 심어 주었다. 그러나 평양신학교의 정체성이 철저한 칼빈주의에 기초하지는 못하였으므로, 1920년대 이후 한국 장로교회에 유입된 진보주의 및 자유주의 신학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였다. 이는 해방 후 장로교 분열의 한 요인이 된다. 그럼에도 평양신학교는 해방 후 보수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장로교 신학교의 모델이 되었고, 유형에 있어서도 그러했다. 둘째로, 한국장로교 분열과 네 개 신학교의 형성과 발전이다. 이들 학교는 하나의 장로교에서 출발하였지만 일치된 정체성을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각각의 정체성을 발전시켰다. 고려신학교는 평양신학교의 정체성을 계승하되 초기부터 박윤선에 의해 정초된 네덜란드계 칼빈주의를 발전시켰고, 합동 측 총회신학교는 박형룡의 영미청교도개혁주의를 토대로 정체성을 발전시키면서도 이후 박윤선 등의 영향에 의해 네덜란드 칼빈주의 역시 가미시켰다. 통합 측 장로회 신학교는 합동과의 분열 이후 박형룡의 신학과 거리를 두면서 나름대로 폭이 넓은 신학을 추구하였다. 이러므로 통전적 신학, 중심에 서는 신학, 그리고 온신학에 이르기까지 정체성의 확장을 나타내었고, 이렇게 해서 처음의 보수 칼빈주의와는 다른 정체성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조선신학교(한국신학대학)는 처음부터 평양신학교와 다른 토착적이면서도 현대신학 사조에 편승하는 신학을 추구하였다. 또한 조선신학교는 하나님의 선교신학을 적용하여 복음의 대사회적인 기능과 예언자적인 기능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런 점은 일면 장신과도 유사하다. 셋째로, 네 개의 신학교는 기독교종합대학교로 발전하였다. 신학교들이 정체성을 각각 다르게 발전시켰던 것처럼, 이들 기독교대학은 서로 다른 유형으로 발전하였다. 2000년대 이후 기독교대학과 비기독교대학을 묶어서 동일 기준에서 평가하는 국가 차원의 평가는 신학계 대학교들이 고유의 특성에서 벗어나서 교육학적으로 정체성과 유형을 나타내게 만들었다. 이런 가운데 이들 대학교는 각각 차이가 나게 학교의 기독교적 특성과 유형을 발전시켰다. 예컨대 고신대학교는 기독교세계관에 기초한 개혁주의 기독교대학교를 추구하였고, 총신대학교는 고신대학교와 유사하면서도 신학의 비중을 상대적으로 크게 하는 가운데 일부 사범계열 학과들과 사회과학계 학과들을 갖춘 신학계 기독교대학교를 발전시켰다. 장로회신학대학교는 신학 및 교회에 관련된 소규모 학과들을 중심으로 복음주의 신학계 기독교대학교로 발전하였다. 한신대학교는 신학교로 출발하였으나 현재는 범위를 확장하여 여러 단과대학들을 거느린 인문사회과학이 강조된 기독교대학교가 되었다. 신학교들은 교파 분열과 연결되었고, 기독교대학교로의 발전은 이미 교파가 분열된 상황에서 성장우선 분위기에 편승하여 이루어진 면이 있다. 그러므로 현 시점에서 정체성과 유형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후속 연구의 필요성을 제언한다. 첫째로, 교회사 영역에서 일부 다루어져 왔던 학교교육 역사와 각 학교의 신학교육과정에 대한 연구에서 폭을 넓혀서 기독교교육학의 관점에서 정체성과 유형을 심도 있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때에 이미 각각의 학교들이 정착 발전되어 왔으므로 이를 감안하여 각각을 공정하게 평가하는 가운데 학교들의 특성을 연구하고 건설적인 방향을 설정해야 하겠다. 둘째로, 한국 장로교의 근간이 되는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와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들 그리고 신학성명 등이 교육신조와 교육과정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교육학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신앙과 학문은 구분되지 않고 통전적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교리문서에 대한 교육학적 접근은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셋째로, 개혁주의 기독교고등교육에 대한 통찰이 적용되어야 한다. 이는 평양신학교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부단하게 추구해 온 칼빈주의를 성찰하면서 아울러 세속화로 더욱 심화되는 상황 속에서 그리고 비기독교대학과 기독교대학이 하나로 평가되는 현실 속에서 기독교대학의 정체성과 유형을 새롭게 하는데 기반이 되어 줄 수 있다고 생각된다. There are many denominations within Korean Presbyterian Churches, but they are largely classified into two groups; one is the Presbyterian Church of Korea and the other is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Republic of Korea. Additionally, there are four representative parts which have been divided from one Presbyterian church, such as Kosin(Koryu), Tonghap(Jangshin), Hapdong(Chongshin) and Hanshin(Kijang). These four denominations created theological seminaries which subsequently grew and evolved into Christian theological universities. They are Kosin University (KU), Presbyterian University and Theological Seminary (PUTS), Chongshin University (CU) and Hanshin University (HU). This study raises the question of how these universities relate to the first seminary in Korea, Pyongyang Presbyterian Theological Seminary (PS), explores the historical beginnings and subsequent development of these four universities, and focuses on investigating their respective identities and types. This study includes the comprehensive history of Korean Presbyterian seminaries and theological universities. That is why this researcher highlighted significant events in identity and types. PS, the origin of these seminaries, was examined first, which lead to the explanation of the relationship between PS and the four seminaries. Then, the traits of these four seminaries and universities were analyzed through comparison and contrast. Lastly, this study evaluated and arranged their identity and types according to Christian higher education theories, leading to meaningful discoveries. Firstly, PS was a model for these four seminaries from both continuous aspect and discontinuous aspect. PS began as a conservative and Calvinistic seminary and later planted its identity in four seminaries and Korean Presbyterian churches. However, since it could not fully establish a firm Calvinism, PS failed to cope with the growing liberalism and progressivism in the Korean Presbytery from the 1920’s onwards. This caused and triggered the division of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 into different denominations. Nevertheless, PS has been a model and in its type to these Presbyterian seminaries and theological universities that represent conservative reformed stance that came to exist after the national independence from Japan. Secondly, the study delves into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es’ divisions and the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four separate seminaries. Although they all emerged from one Presbyterian Church, they did not keep a common identity, but each formed their own identity instead. Korea Seminary inherited PS’s Calvinism, and developed under Park Yun Sun’s Dutch Calvinism. Chongshin Seminary developed through Great Britain and the US’s Puritan Calvinism under Park Hyung Ryoung. It was also later influenced by Park Yun Sun’s Dutch Calvinism. Presbyterian Seminary broadened theological traits, keeping some distance from Park Hyung Ryoung’s theology, and developed a wholistic, middle-ground, ‘Ohn’(whole) theology. Chosun seminary (Hankuk Theological College) began from the beginning to pursue theology that accommodates indigenous and modern theological stance. Furthermore, Chosun seminary applied ‘Missio Dei,’ focusing on the prophetic and social functions of the gospel on the basis of this theology, similar to Tonghap’s. Thirdly, these four seminaries have developed into Christian universities. Just as they emerged with different identities, so are the different types in which each formed their own institutions. From 2000 onwards, Christian and non-Christian universities have been evaluated equally at the national level. Christian universities were prompted to form their educational values and curriculum from an educational standpoint, as opposed to its unique tradition. Through such process each university developed its own Christian identity and types. For example, KS consequently sought and developed a Reformed Christian university based on a Christian worldview. CU similarly mirrored KU, but strengthened its ground as a theological university, putting a strong emphasis on the seminary department alongside education department and social science department. PUTS developed a small evangelical theological university with a theology department alongside other small scale departments related to theology and church ministry. HS began as a seminary but became a Christian university with the addition of liberal arts, science, and social science colleges. These seminaries were all involved in the division of the Korean Presbytery, creating an advantageous opportunity that enabled the growth and development of the Christian universities. Therefore, the following are suggestions for further studies of identity and types in seminary and Christian universities. Firstly, it is necessary to discuss this issue of identity and type with depth from the Christian educational perspective by expanding the study of theological education curriculum of each school and school education history which have been so far limitedly dealt within the church history curriculum. This should be done by researching the characteristics of each school and set the direction constructively while assessing them with fairness, having considered the fact that each school has been established and developed thus far already. Secondly, there is a need for studies on how the Westminster Standard documents, Reformed Confessions and theological proclamations and etc. which have been the cornerstone of the Korean Presbyterianism, have been reflected in the areas of educational belief and curriculum from the educational point of view. Because faith and academics are not separate: they are integrated, it is viewed as significant attempt to have educational approach toward confessional documents. Thirdly, we must apply insight into the study of Reformed Christian higher education. As we are in the midst of a situation in which the society evaluates both non-Christian universities and Christians universities in the same evaluation system and also in the midst of our societal acceleration toward secularism, this researcher believes that such study would provide a firm foundation that renews the identity and type of Christian university through the reflection on Calvinism that we have pursued unwaveringly from the PS until today. KEY WORDS: Presbyterian Theological Seminary, Theological Christian University, Theological Identity, Christian Religious Educational Type(Model), Pyongyang Presbyterian Theological Seminary(PS), Korea Theological Seminary (Kosin University - KU), Chosun Theological Seminary (Hanshin University-HU), Presbyterian Seminary (Presbyterian University and Theological Seminary - PUTS), General Assembly Theological Seminary (Chongshin University - CU), Reformed Christian Higher Education

      • 박물관의 교육적 기능과 박물관을 통한 교육에 관한 연구

        이혜선 장로회신학대학교 2017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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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은 하워드 가드너가 말한 다중지능의 개발이 풍부하게 실현될 수 있는 기관으로 더 없이 좋은 공간이다. 최근 박물관의 동향은 문화적 욕구의 충족과 더불어 다양한 문화 촉매 활동을 제공하기 위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시행 중에 있다. 박물관의 교육적 기능이 강화되고 있는 것은 시대적 요청에 따른 박물관의 기능 변화의 움직임이다. 특별히 박물관에서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박물관 교육은 비정규 교육으로 언제든지 참여할 수 있는 평생교육의 현장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논문은 박물관과 박물관학을 개별적으로 정리하고, 기독교 교육학자 사라 리틀과 박물관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존 듀이, 구성주의 박물관 교육론의 하인과 종교적 상상력의 마리아 해리스의 이론을 연구하였다. 박물관은 다양한 기능으로 역사적이고 의도적으로 꾸민 공간으로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알고 미래를 예견하고자 문화와 역사를 전달하고 교육하고 있다. 이에 연구자는 장로회신학대학교를 박물관의 관점으로 ‘TIME SLIP’의 시간 여행 개념으로 ‘PUTS WALKING TIME SLIP’이란 제목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제시하였다. 이는 사라 리틀의 간접적 의사소통 이론을 접목하여 세상의 필요에 응답하며 공공의 선을 추구하고, 획일적이지 않고 다양한 교육으로 질적인 변화를 중시하는 지속 가능한 교육을 지향한다.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Hans Georg Gadamer)는 본 훼퍼 김나지움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교육은 자기 교육이다」라는 강연 후 출판하였는데 그 내용의 핵심은 제목처럼 박물관은 스스로 제기한 질문에 응답할 수 있는 자기 교육이다. 박물관은 교육의 중요한 공간으로 주목하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지속가능한 교육을 넘어 세대를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는 박물관 교육이다.

      • 초기 미국선교사, 언더우드와 마펫 비교연구

        최영근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2002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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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초기 미국선교사 언더우드와 마펫에 대한 비교연구를 통하여 이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논하고, 그것의 含意를 파악하는 것에 주목적을 두었다. 본 연구의 意義는 한국교회 및 한국기독교 형성과 발전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던 대표적인 선교사 언더우드와 마펫을 비교연구함으로써 미국선교사들이 여러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입장에 따라서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때때로 갈등하기도 했음을 밝힐 수 있었던 것에 있다. 이러한 분열상은 한국교회사 속에 나타나는 분열의 씨앗이나 전조로 이해할 수도 있으나, 오히려 한국교회의 다양성 혹은 다이내믹스(dynamics)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언더우드와 마펫의 통일성과 다양성을 "일치 속의 다양성"으로 규정하고자 했다. 언더우드와 마펫이 지니는 공통점은 해외선교를 강조하는 당시 미국의 시대적인 분위기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천년주의적 임박한 종말의식, 성경에 대한 확신, 시대적 사명감, 그리고 영혼구원과 복음전파에 대한 강조 등이 19세기 미국의 주류 개신교단이 공통적으로 취하고 있었던 미국 복음주의의 특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선교하는 교회"(Church-as-mission)라는 개념이 이 당시 미국 교회의 해외선교 열풍을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영향을 받아 언더우드와 마펫은 신학공부를 하고 해외선교를 준비할 수 있었고, 1882년 개항을 하여 세계에 문을 연 은둔의 나라 한국에 복음선교사로 입국할 수 있었다. 이들은 선교의 자유가 없던 초기에도 복음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지방순회전도를 시작하면서, 세례를 주고, 성경을 배포하고, 직접적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또한 네비우스 선교정책이 한국 선교부에 채택되어 적극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고, 그들의 사역 속에서 이 방식을 견지하였다. 언더우드와 마펫의 자립에 대한 강조, 성경공부반의 운영과 사경회 제도 등은 네비우스 선교정책의 중요한 개념들이었다. 이들은 한국천주교회에 대한 역사적 반성과 당시 불안정한 한국의 정치상황에 대한 이해 속에서 정교분리와 비정치화의 원칙을 철저하게 지켜나갔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미국 교파교회형의 생리적 특징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은 천주교에 대한 공통적인 반감이 있는데, 이는 개신교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선교의 자유를 얻기 위한 의도적인 구별에서 비롯되었으며, 선교지 한국에서 개신교와 천주교의 대결과 갈등으로 인해 이러한 반감이 양측간에 더욱 심화되었다. 그런데 천주교에 대한 반감은 19세기 미국 복음주의의 한 특징으로 이해될 수 있는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언더우드와 마펫의 차이점은 1893년 이후로 본격화되기 시작하는데 그 해는 마펫에 의해 평양지부가 개척되는 시점이었다. 따라서 이들의 갈등구조는 서울과 평양의 지역대립의 특징의 한 면을 띄고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이러한 지역대립은 이후 한국교회의 남북분열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언더우드와 마펫을 가르는 신학적 차이로는 언더우드는 "복음의 넓이"를 강조하고 있는 것에 비해, 마펫은 "복음의 깊이"를 강조하였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언더우드는 복음과 문화, 복음과 교육 혹은 의료를 동량적으로 연결하고 있는 사크라멘트(sacrament)의 신학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마펫은 복음과 문화, 복음과 교육 혹은 의료를 단절적으로 이해하는 다이카타미(dichotomy)적 신학구조를 지니고 있다. 또한 언더우드는 직접적인 복음전도 외에도 교육이나 의료, 혹은 문화가 그 독특한 특징을 잘 발전시킴으로써 기독교의 선교가 되며 이러한 간접선교가 교회가 감당해야 할 중요한 선교라고 강조하는 Missio Dei의 선교신학을 가지고 있는데 비해, 마펫은 복음전도야말로 교회가 감당해야 할 유일한 선교이며, 교육이나 의료, 문화는 복음전도를 위한 예비적인 수단이라고 보는 Missio Ecclesiae의 선교신학을 지니고 있었다. 마펫은 교육이나 의료사업의 발전은 복음전도를 위축시키고 교회가 기관주의(institutionalism)로 전락하게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언더우드는 초교파적인 에큐메니칼 정신을 가지고 한국교회의 연합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마펫은 상대적으로 교파의식이 강했던 면이 있다. 이러한 차이는 "용어문제", "신문문제", "병원설립문제", "대학설립문제"를 통해 반복적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이들간에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논쟁은 구조적 단절을 심화시켜 갈수록 논쟁을 날카롭게 하였다. 그리고 여기에 이들간의 의사소통의 부족이 갈등심화의 또 다른 요인으로 제기되었다. 이러한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통해 이들은 비록 대립과 단절의 모습을 띄었지만, 결과적으로 한국교회사 속에서 상호보완의 역할 혹은 기능을 수행하였으며, 이러한 바탕 위에 한국교회가 다양한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The object of my thesis is to study historically the unity and diversity of early missionaries in Korea. Especially, I chose and focused on two representative American missionaries to examine true scenes of forementioned points in Korean mission field: Both are Horace Grant Underwood and Samuel Austin Moffett, who played decisive roles in the establishment and the development of Presbyterian Church of Korea as well as of Christianity, and who have been commemorated as great fathers of Korean Church till now. Although they had some similarities, however, there were striking differences between them, so that they struggled severely each other on some issues. Therefore, I attempted to analyze these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by means of comparative study, and to interpret their meanings in Korean Church History. First of all, as far as their similarities are concerned, they had common background of American Evangelism in the 19th century. It was a way of mainstream protestantism in America that stressed emphasis on premillennial sense of the end of the world, the authority of Holy Scripture, salvation of souls, and the propagation of the Gospel. The concept of "Church-as-mission" can represent well that era, when foreign missions attracted American Church and many college or university students committed themselves voluntarily to evangelization of the world. These movements for foreign missions in American Christianity had a great influence on Underwood and Moffett, so that they entered Korea as missionaries immediately after graduating from their own theological seminaries. With this same background, there are four similarities between Underwood and Moffett. Firstly, both began to itinerate, baptize, and preach in the vicinities of inland, though it was unlawful for them to do so because there was no freedom of propagation of religion in those days in Korea. Secondly, they played an important part in adopting and settling of Nevius' Mission Policy(Plan) in Korean mission field and emphasized the principle of self-supporting, the core of Nevius' Plan, in their ministry. Thirdly, both rejected to involve themselves and their mission works in politics, preserving firmly principle of separation between the Faith and Politics. Finally, both criticised Roman Catholic Church and its missions in Korea. From such similarities, we can say that they focused on the propagation of the Gospel in Korea, and understand that these were common characteristics of evangelical missionaries. Concerning differences between them, as I found out, there were one main cause and three theological factors. Formerly, one main cause is the struggle for hegemony in Korean Church between Seoul-centered group and Peyang-centered group. Underwood and Moffett were representative figures of each locality and they struggled each other, standing for positions of their own group. This main cause prepared a setting or condition for other factors. Latterly, three other factors are as follows: firstly, difference between interrelational way of theological thought and dichotomic one, secondly, difference between missio dei and missio ecclesiae, thirdly, difference between ecumenicalism and denominationalism. Firstly, Underwood correlated Gospel with other elements such as culture, education, and medical work, etc., while Moffett separated Gospel from any other element. Secondly, Underwood suggested that indirect missions like educational, or medical work should come together with propagation of the Gospel and we should develop their own functions for the sake of totally Christianization of Korea. Moffett emphasized that the unique missions for church to undertake is the propagation of the Gospel, not any other work. Thirdly, Underwood endeavored to unite different denominational churches into one united church in Korea and tried to do ecumenical works, while Moffett focused on his own denominational work and church ministry. With these different factors, I analyzed four debates between them: the Term Question, the Newspaper Question, the Hospital Question, and the College Question. Each debate conveyed above-mentioned differences in part or wholly. Consequently, I proposed in my thesis that although they focused on propagation of the Gospel itself, Underwood laid weight on the width of the Gospel, namely, "all around Gospel," while Moffett laid on the depth of it, that is, "pure Gospel." We can find they are quite similar as well as different each other. Therefore, we may say rightly that they are rather ex uno plura than e pluribus un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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