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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웨슬레의 구원론과 칼빈의 구원론 비교 연구

        정태식 목원대학교 2001 국내석사

        RANK : 248639

        Calvin's theology and Wesley's theology have lead just faith and theology of the Korean Church till now. While they are leading, the Korean Christianity was separated into many sects and criticized one another. Why was separated the Korean Christianity into many sects? With this question I judge that the port at important issue is the "Salvation", so argued Calvin's salvation and Wesley's salvation and the commonality and the difference of those. Therefore it is the purpose of this theme that confirmed the possibility about original synthesis of these two sided, Harmonization and special distinction of the salvation's gradation a little more in detail. Wesley emphasized more God's authoritative work than human's intended response act. That was proved on the preventing grace very well. According to a gradation of Wesley's salvation, human acts the first trial for salvation what human oneself realized by God's Preventing Grace that was placed reality of ruin and that was being a sinner but half a moment. And then human had a heart which made to delight God, then human realized oneself sin, got a Belief that God have given to him, he is called that was a Justifying Grace, and simultaneously was become a new creature that have Christ's soul. And that time begun to sanctify, continually make a gradual Sanctification, and got the holy witness, and was become a Christian's Perfect, and completed a salvation through a continual development. Wesley's gradation of Salvation said that he was a experiential theologian who affirmed positively practical faith, and a grace's theologian who stressed continuously God's grace in salvation. Calvin unfoled continuously God's authoritative work and grace, namely revelational salvation. Calvin's gradation of salvation begun at Double Predestination, and God called man(woman) that he chose, and made to new birth him, succeed to Christ's life, made to become a new creature, gave a faith to him and made to repent, at last he get a justification through the faith. It is actually Calvin's salvation that the gradation of salvation is more momentary - simultaneous happen - than gradual progress. Calvin's distinguished not new birth, faith, repentance, and Sanctification strictly. As mentioned above, Calvin emphasized too intensely God's Authority, Grace, and the leading work of salvation accordingly as that. By means of Predestination idea Calvin expressed to experience god's grace in repentance and the gradation of salvation is based on that idea. Therefore Calvin's salvation is in the Predestination and is out in the Predestination. We had put each concepts with gradation of the salvation of Wesley and the Calvin in order. Wesley depent on God's grace entirely, not Calvin's limitedly work of grace but God's grace for all of people. According to concept of the righteous owing to faith, Wesley's concept correspond with Calvin's. But great difference happened in God's grace work. Namely Calvin instructed a strict 'dogma of desertion'. According to Calvin it is Predestination that a man will be a eternally living and a man wall be a eternally dead by God's authority. But Calvin's Predestination violated a biblical instruction that God of Love planning to salvation of human and working now the plan. That is to say, one side God loves a man, the other side God loves not another man. But Wesley said that all people are able to get a salvation and God want to be. "Who wants all men to be saved and to come to a knowledge of the truth"(1 Dimothy 2:4) The unique terms of salvation is a faith. This faith is not human's act but God's grace. So all people can get a salvation with this faith by God's grace. Wesley said that the faith is not the result of human's will but God's gift. Calvin's salvation limited God's salvation grace by his Predestination, but Wesley asserted a "everyone redemption theory". It is the key of Wesley's salvation and Calvin's salvation that God's authoritative work harmonized with human's obedience by a preventing grace.

      • 불교의 구원론과 웨슬리의 구원론 비교 연구 : 불교의 해탈, 열반과 웨슬리의 그리스도인의 완전, 영화를 중심으로

        박상규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9 국내석사

        RANK : 232446

        본 연구는 웨슬리의 구원론과 불교 구원론의 비교를 바탕으로 웨슬리가 말한 구원에 이르는 길을 명확하게 정립하기 위한 목적으로 씌어졌다. 우리나라는 근·현대의 사회·문화·역사적인 영향으로 기독교의 진리가 올바르게 전파되지 못했으나, 그것이 지금까지 틀림없는 진리인 것처럼 여겨져 왔다. 웨슬리가 말한 오직 믿음으로 인해 구원에 이르는 기독교 신앙은 교리의 생성, 믿음, 사랑, 선행의 모습에서 불교의 구원과 확연히 다른, 본질적 차이를 보이고 있다. 기독교와 불교의 근본적 차이는 교리의 생성에서 시작된다. 기독교 교리는 절대자인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영감을 불어 넣어 기록하게 하신 계시의 교리로 시작되었고, 불교의 교리는 한 인간이었던 석가모니의 무상의 명상을 통해서 이루어진 초감각적 통찰력에서 나왔다. 교리 생성의 근원은 믿음과 구원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독교는 절대자인 하나님께서 인간을 통해 계시하셨기 때문에 ‘절대자에 의한 타력구원’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절대자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의 상태’에 이르게 되고, 믿음의 상태가 ‘선한 행동’을 낳게 된다고 본다. 즉, 믿음을 통해서 구원에 이르게 되며, 믿음이 있는 자는 자연스럽게 선한 행동을 하게 된다. 반면 불교의 구원관은 자신의 노력을 통한 자력구원 사상이 중심이 된다. 초기 불교는 ‘행함을 통한 자력 구원’을 말하고, 후기불교는 ‘보살을 통한 타력 구원’을 말하며 구원의 과정에 변화가 있었지만 이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온전한 타력 구원으로의 변화가 아니었다. 신앙의 대상으로 붓다가 초인화 되어 부상되었듯이 이 보살들도 초인화 되어 구제력을 갖는 것이었는데, 불교에서는 누구라도 성불의 서원을 세워 도에 정진하면 보살이 될 수 있었으므로, 이는 정확하게 보면 인간 스스로의 수행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자력구원 사상이 되는 것이다. 웨슬리가 말하는 믿음은 오직 절대자에 대한 믿음이며 전적으로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로서의 믿음인 반면 불교는 마음속에 있는 불심을 스스로 찾아가는 믿음이며 자기 자신의 수행, 정진에 대한 믿음인 것이다. 기독교와 불교는 사랑, 선행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인다. 웨슬리는 사랑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됨으로 인한 선한 기질이 낳게 되는 모습’이라 하였다. 불교에서는 타인에 대한 공감으로서 사랑을 보여주며, 명확히 하자면 사랑이 아닌 자비의 형태로 사랑을 정의한다. 자비를 베푼다는 것은 열반에 이르기 위한 수행, 정진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여겨졌다. 선행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두 종교 간의 큰 차이가 있다. 불교는 선행을 ‘보시’라고 정하고, 집착심을 없애기 위한 구도의 방법으로 여겼다. 반면 웨슬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본질적인 행동을 선행으로 보았다. 즉, 선행이 중요한 것이 아닌 선행을 하는 육적, 영적 상태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본 연구를 통해서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웨슬리의 구원론의 ‘선행’에 대한 부분이다. 웨슬리가 말한 ‘선행’을 기독교인들이 아닌 신학생과 목회자, 심지어 신학자들도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은 웨슬리의 구원론이 ‘믿음과 선행’을 핵심으로 하는 신인협동설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본 연구의 비교 부분을 통해서 이러한 ‘선행’에 대한 오류들이 초기 기독교의 전파 과정에서 생겨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끝으로 본 연구가 웨슬리 구원론에 대한 오해를 조금이라도 바로 잡을 수 있는 도구가 되길 바란다.

      • 존 웨슬리의 救援論 硏究

        한선현 延世大學校 聯合神學大學院 2002 국내석사

        RANK : 232430

        최근에 존 웨슬리의 구원론에 대한 논의가 국내외 웨슬리학자들 가운데 다시 쟁점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 쟁점은 웨슬리의 구원론이 "동방교회"로부터 영향을 받았는가 아니면 "서방교회"로부터 영향을 받았는가 라는 문제와 그의 구원론이 "점진적인 역사"를 강조하는가 아니면 "순간적인 역사"를 강조하는가 라는 문제, 그리고 "종의 믿음"이 "구원하는 믿음"에 포함되는가 아니면 포함되지 않는가 라는 문제 등이다. 또한 1738년 5월 24일 저녁에 체험한 올더스게잇 사건에 대한 해석에 대해서도 웨슬리 자신은 물론 그의 후예들에 의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본 논문은 이러한 문제들을 중심으로 고찰해 보고자 하였다. 연구방법으로는 역사실증주의적 관점에 입각하여 웨슬리의 1차 자료와 학자들의 2차 자료를 충실하게 고찰하여 역사신학과 조직신학의 두 가지 접근방법으로 전개하였다. 그 결과, 웨슬리의 구원론은 어느 한 전통에 의해 영향 받은 것이 아니라, 초대교부를 비롯하여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그리고 마틴 루터, 알미니우스주의, 신비주의, 경건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통들의 영향 속에서 자신의 구원론을 창의적으로 종합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1738년 5월 24일 저녁, 웨슬리의 올더스게잇 체험 사건에 대한 해석을 살펴보면, 회심 사건으로 보는 표준적 해석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최근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고, 회심이라는 단어를 1725년의 옥스포드 때로 소급하거나, 올더스게잇 체험은 웨슬리 체험 중의 하나 정도로 가볍게 이해하고, 더 나아가서 회심 사건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었다. 설사 회심으로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해석은 각자의 분파적인 입장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었다. 그러나 필자의 주석적 작업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웨슬리의 올더스게잇 체험 사건은 칭의 및 신생(중생)을 체험하는 구원의 사건, 즉 성령에 의한 분명한 수동적 회심 사건이었다. 따라서 올더스게잇 사건 때 그가 확신한 것은 다름 아닌 "구원의 확신"이었다. 그리고 웨슬리는 올더스게잇 사건을 통해서, "거의 그리스도인"에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율법아래 있는 사람의 상태"에서 "은혜아래 있는 사람의 상태"로 나아갔으며 "구원하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後年에 믿음("구원하는 믿음")에 대한 견해를 바꾸어 "구원하는 믿음"을 가진 "온전한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믿음의 정도의 차이가 있어서 "종의 믿음"과 "아들의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후기 견해로 보면 올더스게잇 이전에도 "구원하는 믿음"을 가진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주석적 작업을 통해 그의 올더스게잇 사건을 회심 사건으로 이해할 때, 웨슬리는 올더스게잇 사건 때 "구원하는 믿음"을 비로소 갖고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고, 그 때부터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된 그는 "종의 믿음"과 "아들의 믿음"을 가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올더스게잇 회심 이후에 한 동안 "종의 믿음"과 "아들의 믿음"이 중첩되어 있는 상태를 보였고, 올더스게잇 이후 2년이 지난 후에 "믿음의 충만한 확신"(온전한 성화)을 얻었다고 말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그의 올더스게잇 사건은 칭의와 신생(중생)을 얻고 수동적인 회심을 체험한 사건이며 그 때부터 초기의 성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고 본다. 웨슬리의 구원 이해를 보면, 웨슬리는 현세의 현재적 구원뿐만 아니라 내세의 영원한 구원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구원의 전 범위는 인간이 구원받기 이전에 이미 작용하는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으로부터 시작하여 칭의 및 신생(중생), 성화, 영화의 단계까지 하나님의 구원 역사 전체를 포괄하고 있다. 특히 그의 현재적 구원 이해는 모든 죄(죄책과 죄의 권세)와 두려움으로부터 구원받고, 온전한 성화(그리스도인의 완전)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구원론은 하나님의 은총의 주도권 속에서 인간의 자유의지가 함께 협력하는 "복음적 신인협동설"(Evangelical Synergism)임을 알 수 있다. 즉 半펠라기우스적인 인신협동설(human-Divine cooperation)이 아니라 복음적 신인협동설(Divine-human cooperation)인 것이다. 웨슬리의 구원론의 주요 골격은 어디까지나 종교개혁자의 전통 위에 서 있음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즉 구원의 전 범위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총과 오직 믿음에 의한 구원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올더스게잇에서 오직 믿음으로 구원(칭의와 신생[중생])을 체험했을 뿐만 아니라, 구원의 유일한 조건은 칭의와 성화에 있어서도 오직 믿음뿐임을 강조하고 있음을 본다. 그러면서도 웨슬리는 회개와 회개의 합당한 열매 및 善行을 함께 주장하고 있다. 이점은 웨슬리가 신앙지상주의에 의한 도덕폐기론이나 로마 카톨릭 교회의 善行에 의한 구원교리를 극복하고 변증법적으로 창의적 종합(creative synthesis)을 이루어 자신의 구원론을 전개하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웨슬리의 구원론은 현대 신앙인들에게 "지금 여기에서" 구원의 열매를 맺고, 성결한 삶을 살며, 책임적인 인간이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하는 신학임을 알 수 있다. In recent years, the discussions about Wesley's Soteriology have begun to emerge at the Wesleyan Theological Society. The issues of them are from whether Wesley's Soteriology is influenced by the Eastern Church or Western Church, his Soteriology is gradual or instantaneous work, and the Faith of a Servant is included in saving faith(justifying faith) or not. And also Wesley himself and his heirs have been admitting of various interpretations of Aldersgate event, May 24th evening, 1738. Therefore,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se points, various interpretations of Aldersgate event. this had the methodology of the historical positivism, so as to examine faithfully into Wesley's primary sources and scholarly secondary sources. As the result, we have known that Wesley synthesized creatively his Soteriology which was influenced by the early Fathers, the Eastern Church, Western Church, reformer Ruther, Arminianism, Mysticism, and Pietism(Moravian). And we also have known five main categories: (1) Those who accept the Aldersgate experience as an important watershed or conversion in Wesley's life; (2) Those who deny that Aldersgate was a conversion experience, assigning that experience to some earlier date, while still recognizing Aldersgate's importance as a religious crisis in Wesley's life; (3) Those who deny that Aldersgate had any enduring significance for Wesley's life-emphasizing, instead, some earlier date (usually 1725) as his conversion; (4) Those who stress the gradual nature of Wesley's spiritual development and see Aldersgate as simply one step in a steady process of growth; and (5) Those who believe that Aldersgate is one of many "conversion" in Wesley's life. But we also have known through our exegetic work that Wesley's Aldersgate experience was the event of salvation as that of justification and new birth(regeneration), and that was clearly "conversion." Therefore his assurance in Aldersgate was the assurance of salvation. And through Aldersgate's event, Wesley changed into "altogether a Christian" from "almost a Christian", and came into one who is "under grace" from one who is "under the law," and came to receive "saving faith." But he came to change his views about faith(saving faith) in his later years. And so he said that some of altogether Christians who had "saving faith" also had the Faith of a Servant as well as the Faith of a Adoption. But regarding his Aldersgate's experience as his conversion, just as the experience still was neither the time when he had the full assurance of faith nor the time when he had entire sanctification, so he had both the Faith of a Servant and the Faith of a Adoption for some time after his conversion. Therefore we affirm that Wesley's experience of Aldersgate was his passive conversion, and the first step to go forward his sanctification. Investigating Wesley's views of salvation, we were able to see that they included not only earthly present salvation but also heavenly eternal salvation. Wesley treated the whole range of God's salvation which included God's preventing grace, justification, new birth(regeneration), sanctification, and glorification. Especially, according to his understanding of present salvation, believers are delivered from all sins(the guilt, the power of sin) and fears. and then going on toward the goal of entire sanctification(Christian perfection). Wesley explains man's salvation centering around his doctrine of sanctification. To Wesley, sanctification is something that processes in steps and ascends through each step. So initial sanctification(new birth), gradual sanctification and entire sanctification are dealt by him in the concept of gradual ascension. In particular, the close connection between gradual and instantaneous processes in his concept of ascension is an important aspect in his doctrine of sanctification. And also Wesley's understanding of salvation could be in God's grace. He acknowledged the total depravity of human being and thought the divine favor of God is given to such depraved man freely. But whether to accept His grace or not is a choice of man. Here comes the relationship between man and God for salvation. Therefore Wesley's Soteriology is Evangelical Synergism cooperated with God's grace and man's freewill. But in that the initiative of God's grace precede man's freewill in Wesley's Soteriology, the Soteriology is not Semi-Pelagianism, human-Divine cooperation, but Divine-human cooperation. And the main frame of Wesley's Soteriology is clearly based on Reformers' tradition. Because he emphasized God's grace and the salvation by faith. And also, not only he experienced the salvation(justification and new birth [regeneration]) in Aldersgate, but he emphasized that the only condition of both justification and sanctification was the only faith. In addition, he also emphasized the necessity of the repentance, its fruits, and good works, even if they are only necessary conditionally or only remotely necessary. So he overcame Antinomianism by Solafideism and Roman-Catholic Church which had the doctrine of salvation by good works, so that he could make dialectically the creative synthesis of Soteriology. His Soteriology is the theology which makes current believers bear the fruits of salvation "now and here," live the holy life, become responsible men, also love God and our neighbour, and think much of the community in which we live together.

      • 루터, 칼빈, 웨슬리의 救援論 比較硏究

        정재희 牧園大學校 神學大學院 2003 국내석사

        RANK : 232429

        하나님께서 인류를 이 땅에 내시고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때부터 그때그때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자들을 보내셔서 구속사를 하나님 자신이 이끌어 오셨다는 것을 루터, 칼빈, 웨슬리의 구원론을 고찰하면서 다시 한번 확인 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루터를 통해 종교개혁의 포문을 여시고, 칼빈 으로 하여금 조직적이고 이론적인 교리서로 뒷받침하게 하시고, 웨슬리로 하여금 좀더 체계적으로 분석 보완하게 하시고 실천적인 적용 등을 통하여 실증케 하여 지금까지 복음주의의 큰 물줄기를 이어오지 않았나 생각 한다. 특히 칼빈의 이중 예정론과 웨슬리의 보편적 구원론 사이에 많은 논란이 있고 이견이 대두대고 있는 것 같지만 좀더 깊이 있게 고찰하면 인간의 편에서 생각해 볼 때 칼빈의 선택에 의한 인간의 노예의지와 웨슬리의 선행하시는 은총에 따른 제한적 자유의지로 구별될 수는 있지만, 하나님 편에서 볼 때 구원의 수단이 되는 믿음이라는 것이 인간의 노력과 능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요 성령의 신비한 사역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구원이라는 것, 칭의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이고 실질적 인간의지의 불개입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이 일치하는 것이다 . 이것에 대하여 칼빈의 이중예정설을 두고 많은 비판을 했던 웨슬리도 '1765년 칼빈주의자로서, '웨슬리를 행위에 의한 칭의론자'라고 비판하는 존 뉴톤 박사에게 보내온 서신에 "나는 지난 27년간 칭의론에서 칼빈과 머리카락 하나의 차이도 없다"고 말하였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겠다. 이제 더 이상 인간의 편에서만 시각을 두고 논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전술한 바와 같이 칼빈도 하나님 말씀인 로마서 8장29~39절에 근거를 가지고 말하고 또한 웨슬리도 하나님 말씀인 로마서 10장9~13절에 근거를 가지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뜻과 섭리를 이해하기 어려우므로 겸손히 두 사람의 주장을 귀에 담고, 칼빈의 예정론에 입각하여 만세전부터 예정하시고 택하여 주신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므로 영광 돌리며, 웨슬리의 보편적 구원론에 입각하여 아직 구원되지 못한 사람에게 더욱 복음 전하며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이르도록 성화의 삶에 목표를 두고 생활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 한다. 21세기의 종교다원주위가 대두되며 맘몬주의가 팽배되어 신앙생활이 더 어려워지는 말세지말(末世之末)의 때를 맞이하여 루터가 말하는 '이신칭의로 거듭난 신자들은 루터의 '만물위에 자유인으로서 하나님을 섬기고 또한 사랑의 종으로서 만인을 섬긴다'라는 정신으로 살고 또한 겸손과 수치의 십자가 뒤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바라보며, 칼빈의 하나님 절대 신앙, 웨슬리의 실천적 전도와 봉사의 모범을 본받아 각 사람의 구원의 완성을 이루어가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일조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성도들이 되기를 기원해본다 .

      • 존 웨슬리의 산상수훈 설교에 나타난 웨슬리 구원론 연구

        박찬흥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9 국내석사

        RANK : 232415

        지금까지 웨슬리의 구원론을 통하여 구원이 무엇인지를 살폈으며, 다음으로 웨슬리의 산상수훈 설교를 통하여 구원에 있어 신앙에 나타나는 성품 즉, ‘내적 기질’이 무엇이며 이제 그 참된 신앙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먼저, 구원은 하나님의 의도하심(뜻하심)에 의한 은혜의 방법으로서 하나님이 이루시는 하나님의 행하심이다. 그 구원의 순서인 은혜의 단계들을 선행(先行)하시는 은혜, 회개시키시는 은혜, 칭의하시는 은혜, 성화시키시는 은혜와 그 이후 완전성화까지를 이 땅에서 성도들이 경험하게 될 ‘구원의 전 과정’으로서 살펴보았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은 믿음의 순종을 원하시며, 순종하는 자에게 구원의 순서들을 허락하심을 알게 되었다. 다음으로, 구원의 과정에서 하나님은 거듭나는 인간의 영혼에 하나님의 성품을 허락하시는데, 영혼의 지(知), 의(意), 정(情)이라는 기능(faculty)에서 하나님을 확실히 앎으로 나타나는 믿음과 겸손과 사랑의 기질로 바뀌게 된다. 이것은 내적 성품인 기질의 변화로 웨슬리는 산상수훈 설교를 통하여 이 거룩한 성품이 ‘팔복’ 안에 있음을 설명한다. 팔복은 ‘마음의 가난’ ‘애통’, ‘온유’, ‘의에 주리고 목마름’, ‘자비(사랑)’, ‘마음의 깨끗함’, ‘평화를 위해 일함’, ‘의를 위하여 박해 받음’이며, 이 성품이 참된 기독교를 이루는데 필요한 성품임을 말한다. 이것은 믿음 전의 회개의 마음에서부터 시작하여, 칭의 후 성화를 이루는 신앙인의 성품과 완전한 성화를 이룬 자의 성품에 까지 계속하여 나타나게 된다. 또한 삶의 모든 일과 상황 속에서도 거룩한 성품에서 나오는 순수한 의도를 지켜야 하며, 이런 순수한 의도의 참된 신앙을 넘어지게 하는 모든 장애물들 속에서도 계속 성장하며 온전히 그 성품들을 지켜 나가야 함을 살펴보았다. 웨슬리의 구원론과 그의 산상수훈 설교는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의도하심과 그에 따르는 성도들의 내적성품과 그에 따르는 외적 행동의 해석이었다. 이것을 우리의 위치에서 살펴보면, 성도들이 갖고 있어야할 참된 신앙의 성품과 그 성품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의 내적, 외적 행동에 대해 가르침이었다. 이러한 웨슬리의 가르침대로 구원받는 믿음을 소유한 성도들이 이 참된 신앙의 성품을 소유한다면 우리의 교회와 성도들은 더 높은 신앙의 단계인 ‘성화’와 ‘그리스도인의 완전’의 신앙까지 이르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웨슬리가 그의 ‘소그룹 모임’에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철저한 신앙의 지킴이다. 이 소모임의 목적은 오직 도래할 진노로부터 피하기를 소원하는 것과 그래서 그들의 죄들로부터 구원받기를 소원하는 것, 즉 구원에 대한 갈망이었다. 이러한 갈망 속에서 우리의 신앙이 자라게 된다면 우리는 분명히 교회와 성도들에게 임하는 영적 부흥을 보게 되리라 소망한다. 이 신앙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의도(意圖)하심’을 찾으며 그 뜻에 순종함으로 이 시대에 진정한 신앙인이 되리라고 판단된다.

      • 존 웨슬리의 구원론 연구

        전민배 협성대학교 일반대학원 2007 국내석사

        RANK : 232399

        웨슬리의 구원론의 핵심에는 성화론이 자리잡고 있다. 웨슬리에게 있어 그리스도인들은 성화의 단계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끊임없는 응답 적 요소가 필요하다. 구원은 하나님에게 달려 있지만 결코 하나님의 독단적인 결정에 의하여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간의 응답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웨슬리의 구원론은 인간의 인격적인 부분을 강조하기도 하며, 인격적인 부분들을 무시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웨슬리에게 있어 인간 존재의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면서 인간의 응답적인 차원과 연결되어 순차적이면서도 점진적이다. 웨슬리 신학에서 독특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신인협력설이다. 인간의 응답적 차원을 열어 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웨슬리의 구원론은 단계가 있다.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부분도 있지만 점진적은 요소들도 있어, 순간적인 성화와 점진적인 성화의 양면을 다루게 된다. 웨슬리가 말하는 가장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는 만인에게 하나님께서 선행적 은총을 부어 주셨다는 사실이다. 선행적 은총은 보편적인 은총이기 때문에 누구나 이 은총 안에 있다. 이 은총 밖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선행적 은총은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먼저 다가 오시는 부분이다. 바로 구원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먼저 다가가는 것이 아님을, 그리고 그분의 은혜임을 강조하는 부분이다. 그분의 사랑 가운데 선행적 은총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들의 원죄는 말끔하게 사라진다. 그분의 사랑을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은총이 없이는 결코 구원이 이루어질 수 없다. 선행적 은총은 하나님의 구속 사업의 출발점이 된다. 이 은총은 구원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웨슬리에게 있어 구원은 선행 은총과 함께 시작하는 것이다. 선행적 은총은 수여된 은총이므로 결코 인간의 노력으로는 얻을 수 없는 은총이다. 인간에게는 선행적 은총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길이 열렸다. 이 은혜를 깨닫는 자는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므로 회개에 이른다. 그러나 인간이 선행적 은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받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인 인간의 책임이다. 왜냐하면 이 선행적 은총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은총을 받아 들일 수도, 거부할 수도 있는 자유의지가 부분적으로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이 은총을 받아들이는 자는 회개의 단계로 들어서지만 이 은총을 받아 들이지 않는 자에게는 구원의 길이 없다. 이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책임이다. 회개의 단계에 들어선 인간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게 된다. 선행적 은총을 받아들이는 자의 모습이다. 회개의 단계를 거치면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의인의 단계로 들어서게 된다. 의인의 단계는 칭의 라고도 불리워진다. 회개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죄 없음"이 선포되어지는 칭의의 순간인 것이다. 물론 법적인 관계이며, 법적인 칭의이다. 이 단계에서 인간은 더 이상 죄의 노예로 살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내적인 죄는 아직도 존재한다. 의인의 과정을 거친 그리스도인에게 다음 단계는 신생 또는 중생 또는 거듭남의 단계로 들어가게 된다. 이 단계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죄의 능력이 제거되며,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영적인 변화이다. 의인이 상대적 또는 관계적인 변화라면, 신생은 실제적인 변화이다. 그래서 신생한 자는 성령의 아홉가지의 열매를 맺는다. 신생한 자의 특징은 믿음, 소망,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되는데 특히 중요한 부분이 사랑이다. 이 단계에서는 그 전처럼 죄가 인간을 지배하지 못하지만 아직 죄의 능력은 살아 있다. 그래서 성화의 단계가 필요하다. 이제 구원의 마지막 단계는 성화이다. 성화는 웨슬리의 구원론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웨슬리의 성화론에서 구별된 자로 살아가는 성결과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가장 핵심이 되는 두 축이다. 특히 웨슬리의 구원론을 이해하고자 할때 사랑을 잘 고찰해야 할 것이다. 웨슬리는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증한다고 말했다. 완전한 성화의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순수하고 완전한 사랑을 마음속에 품어야 한다. 이 사랑 때문에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바로 '완전한 사랑'을 목표로 하고 추구해야 한다. 웨슬리에게 있어 구원론의 핵심인 '완전한 사랑'은 사회적 성화로 이어진다. 그래서 웨슬리의 성육신적, 사회참여적 사랑 행위는 자유와 해방의 차원까지 나아간다. 개인적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으로의 확대를 통해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의미가 강하다. 웨슬리는 18세기의 사회적 불평들을 겪으면서 가난에 대한 개념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웨슬리의 경제 윤리가 나왔다. 웨슬리의 가난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실업자들에게 일거리를 찾아 주는 것이기도 했다. 웨슬리에게 있어 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는 방법은 사랑의 실천이라고 본 것이다. 웨슬리의 구원론은 하나님이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는 지를 단면적으로 보여준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먼저 찾아 오셨고, 그의 모든 것을 다 주셨다. 자기 생명까지도. 인간에게 있어 구원은 하나님의 개입 없이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며, 그의 선행적 은총 없이도 이루어 질 수 없다. 다분히 그의 사랑으로 구원에 참여 하게 된다. 이런 위대한 사랑을 경험한 인간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할까? 그것은 그분이 보여 주셨던 사랑의 모습들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적인 차원에서 실천해야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성육신적 자세를 가지고 사회에 참여해야 하겠다. 사회의 그늘지고, 억눌린 자를 도와 주며, 예수님의 사랑을 진심으로 실천할 때 감리교는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야 말로, 감리교가 일어서고,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겠다.

      • 웨슬리 구원론에 나타난 에큐메니칼 종합성 연구

        신수철 협성대학교 신학대학원 2013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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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요약 웨슬리는 당시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희망이 없었던 영국 내에서 성공적인 복음주의 운동을 이끌어냈다. 성공적인 복음주의 운동을 가능케 한 밑바탕에는 그의 신학이 큰 작용이 되었으리라 생각되어진다. 그의 신학은 당시 영국의 사회적, 철학적, 교회적 상황과 맞물려 가능한 많은 영혼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구원론 중심의 신학이다. 웨슬리 구원론의 특징은 에큐메니칼적이다. 웨슬리만의 독창적인 교리이기 보다 웨슬리가 경험하였던 여러 가지 전통들을 웨슬리 나름대로 성경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에서 종합화 하여 극단으로 치닫는 교리와 한계들 성서적으로 수정, 보완한 교리이다. 이러한 전통들은 청교도주의, 영국 국교회주의, 모라비안 경건주의, 로마 가톨릭주의, 그리고 동방 정교회였다. 웨슬리는 종교개혁가 루터, 칼빈의 구원론의 요소들을 모두 종합적으로 수용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기기에만 머무르지 아니하고 동방 교부들, 알미니우스주의, 어거스틴, 성공회 로마 천주교회 사상들을 수용한다. 그러나 무차별적인 수용이 아니라 성서에서 말하는 진리를 기준으로 한 종합화하였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포도원에 대하여』 (On the God’s Vineyard)라는 그의 설교에서 루터가 의인화는 강조하지만 그에 반하여 성화를 무시한다고 주장했고, 로마 가톨릭의 신학자들은 성화에 대해서는 강조하지만 의인화에 대해서는 강조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종교개혁이후 지나치게 믿음만을 강조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응답인 도덕적 삶과 사랑의 실천을 경시하는 오늘의 신앙적 현실에서 그리스도인의 완전 사상은 매우 절실하게 요구되는 사상이다. 웨슬리 구원론이 다른 개신교와 비교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만인 구원론을 통한 구원의 보편성과 그리스도인의 완전론을 통한 하나님의 은총 앞에서의 인간의 응답과 반응으로서의 성화의 삶에 대한 것이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의 은총의 선포를 중시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자유 의지를 부여받은 책임적 존재로서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함으로 종교개혁가들 중에 가장 종합적이며 에큐메니칼적인 구원론을 주장한다. 이처럼 웨슬리는 영국국교회에 소속되어 있었으면서도 다른 교리를 수용하는데 있어서는 자유로운 입장을 취하였고 경건과 실천을 중시하는 종교적 관용주의를 가졌던 영국교회 신학자들의 전통을 계승한 신학자였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보편정신 또는 일치정신이 강했다. 그는 교리나 신학적 입장의 차이점에 집착하기 보다는 서로의 공통점을 찾고 기독교인의 일치정신을 고취하였다. 즉 웨슬리는 기독교의 근본교리에 있어서는 엄격한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동시에 비본질적인 사상과 의견의 차이에 대해서는 관용하고 포용하는 자유로운 입장을 취하고 기독교인의 일치와 공동의 정신을 강조하였다.

      • 존 웨슬리의 구원론 비판 : 칼빈 신학적 관점에서

        장기호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14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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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감리교단의 평신도 영성훈련 교재인 “구원의 완성을 향한 순례”라는 책(김홍기 저술)을 통해 존 웨슬리의 구원론을 알게 되었다. 한국 개신교는 장로교와 감리교라는 두 개의 큰 줄기로 이어져오고 있으며 장로교는 칼빈 신학을 통해, 감리교는 웨슬리 신학을 통해 발전되어왔다. 나는 이 두 교파의 신학의 차이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기독교 신학에서 핵심이 되고 있는 구원론에 대하여 두 교파가 어떻게 차이가 나며 이 차이를 어떻게 해석해야하며 또 이에 관심을 갖고 있는 교회의 일반 성도 들에게는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 시켜야하는지의 문제가 신학도 에게는 하나의 중요한 과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웨슬리 구원신학은 “선행 은총론”에 토대를 둔 행위구원론이며 칼빈의 구원신학은 예정론으로서 이신칭의 구원론인바 어느 신학이 더 성경적이며 성도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심어줄 수 있는지 고찰하고자한다. 특히 칼빈의 이신칭의론의 관점에서 웨슬리 구원론에 대한 비판과 평가를 하고자 한다. 이 논문 연구를 통해 구원론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확실한 구원관을 확립하고자하며 이는 우리의 목회사역과 교회차원에서 유익할 것으로 사료된다. 상기 감리교단의 영성훈련 교재는 구원을 위한 성화의 행동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 100%와 인간의 노력 100%가 되어야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구원의 출발은 믿음으로 되지만, 구원의 완성은 믿음과 행함으로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믿음이 성숙해지고 완전해지기 위해서 행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다 풍성한 영성, 보다 성숙한 영성, 보다 완성된 영성을 위해서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 요청된다며 김홍기, 「구원의 완성을 향한 순례(존 웨슬리의 구원론)」(서울:기독교대한감리회 출판국,2011), 113-114 행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오직 믿음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구원을 강조하는 칼빈의 구원론과 차이를 드러낸다. 따라서 양구원론에 대한 차이점을 파악함과 동시에 칼빈신학의 관점에서 비판하고 평가하려한다. 칼빈과 웨슬리는 2백년이라는 차이를 가진 시대적 배경이 다른 신학자들이다. 16세기 종교개혁자인 칼빈의 하나님 중심의 구원관과 18세기 영국국교회의 개혁에 노력한 웨슬리의 알미니안적 구원관이 서로 대칭을 이루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는 교회의 역사를 통해 진리로 지켜져 왔다. 어거스틴도 펠라기우스의 주장에 반박하여 이 진리를 주장하였으며 루터도 카톨릭 교회의 교리적 부패에 대항하였고 칼빈과 그 계승자들도 알미니안 주의로부터 이 믿음을 지켜왔다. 김명규,“칼빈과 웨슬리의 구원론에대한 이해,” (신학석사학위 논문, 총신대 신학대학원, 2006), 2 그러면 16세기의 칼빈과 18세기의 웨슬리의 구원관이 오늘의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구원관에 입각하여 복음을 전파하여야할지를 새롭게 점검하는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

      • 존 웨슬리의 救援論 硏究 : 웨슬리 성화론의 영성신학적 해석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중심으로

        정한식 牧園大學校 神學大學院 2004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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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웨슬리의 구원론을 전반적으로 소개하고 재구성하여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어 전개했다. 그래서 구원론의 원인이 되는 인간론을 전제하여 웨슬리의 구원의 순서에 따라 구원론을 서술했다. 본 연구 결과 웨슬리 구원론 중 성화론은 현재 감리교신학에서 통설로 여겨지는 웨슬리 성화론의 영성신학적 해석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리고 웨슬리신학은 부흥신학과의 연계성을 가지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기독교 역사를 통해 보면 하나님께서 부흥을 주셨던 세대는 얼마간 영광스러운 신앙생활을 영위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그 세대가 경제발전 속 에서 육신의 안락을 찾으며 그 은혜로부터 스스로 멀어질 때는 다시 영적 침체의 늪에 빠졌다. 그러다가 다시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요인들로 신자들에게 영적인 갈급함을 주시어 그들이 순종하여 부흥을 간구하면 그들을 회복시키시고 그들과 함께 불신자들도 구원을 받는 역사를 진행하셨다. 마치 인류의 역사는 사사기에서 나타나는 '환란-회개(간구)-구원(부흥)-평화-타락'의 일련의 과정의 연속인 듯하다. 부흥신학은 그러한 성경의 역사관으로 현 세대를 파악하여 하나님이 부흥의 은혜를 주시는 길만이 살 길이란 사실을 인간들로 하여금 알게 하여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해왔다. 필자가 파악하기로 웨슬리의 성화론은 우리가 영성훈련만 제대로 하면 성화가 이루어지고 꾸준히 하면 완전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치는 영성신학이 아니라, 왜 신자인 우리가 믿음의 열매인 성화에서 멀어졌는지를 진단하여 회개와 믿음으로써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기대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부흥신학이다. 아울러 웨슬리의 신학을 종교개혁자인 루터와 칼빈의 신학과 비교하여 그들의 공통점을 찾아본다면 분명 복음주의적 구원론의 공통 뿌리를 발견될 것이라 기대된다. 또한 웨슬리의 구원론을 웨슬리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조지 휫필드(George Whitfleld),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그리고 웨슬리의 영향을 받아 19세기 미국에서 대표적인 부흥사로 활약했던 찰스 피니(Charles Finney) 등의 인물들에게 나타난 부흥신학과 함께 비교연구해본다면, 무능력해 가는 현대 개신교의 부흥에 공헌할만한 신학적 토대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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