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음성지원유무
        • 학위유형
        • 주제분류
        • 수여기관
          펼치기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 지도교수
          펼치기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 진영의 선교신학이 북한선교에 끼친 영향

        이승배 총신대학교 선교대학원 2006 국내석사

        RANK : 247807

        이 논문에서는 한국교회의 복음주의 선교신학과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이 북한선교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았다. 제2장에서는 한국교회의 양진영이라고 할 수 있는 복음주의 진영과 에큐메니칼 진영의 선교신학을 정리하였다. 제1절에서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역사적 배경에서는 초대교회 이후의 에큐메니칼적 움직임과 복음주의 각성운동을 통해 확인하였다. 제2절에서는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을 정리하면서 선교대회를 통해 분석하고, 에큐메니칼 선교의 주요주제를 정리하였다. 제3절에서 복음주의 선교신학에서는 복음주의를 정의하고, 복음주의 진영의 움직임과 로잔세계복음화 운동으로 정리하였다. 이 두 진영 선교신학의 개념은 하나님의 선교와 총체적 선교(Holistic Mission)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제3장에서는 현재진행중인 북한선교방법을 정리하였다. 제1절에서는 북한선교사역의 분류법을 확인하였고, 제2절에서는 북한선교사역의 방법과 특징을 공식적 교회중심사역, 비공식적 교회중심사역, 공식적 선교환경 중심사역, 비공식적 선교환경 중심사역으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제4장에서는 복음주의진영과 에큐메니칼진영의 북한선교 방법을 분석하였다. 제1절에서는 한기총과 KNCC의 북한선교를 비교면서 통일관과 한기총과 KNCC의 북한선교현황을 분석하였고, 제2절에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측과 통합측 기독교대한감리회의 북한선교를 분석하였다. 제5장에서는 분석된 내용들을 종합하여 복음주의진영과 에큐메니칼진영의 북한선교현황과 나아갈 방향을 제안하고 있다.

      • 현대 복음주의의 성경적 설교에 대한 연구 : 성경의 권위를 중심으로

        김수민 감리교신학대학교 대학원 2009 국내석사

        RANK : 247807

        현대 교회는 복음주의를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한다. 기독교 안에 복음주의라는 이름으로 수 많은 영역에서 활동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복음주의라는 이름아래 이루어진 이러한 무분별한 활동은 복음주의의 참된 의미를 퇴색하게 만들었고 더 나아가 복음주의의 기본 진리가 사라진 채 단순히 다른 사람들을 심적으로 안정되게 만들기 위한 하나의 표지 및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무엇보다 복음주의의 가장 기본이요 기초가 되는 성경의 권위에 대하여서는 인정하지도 않고 단순히 기독교인이며 교회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가 복음주의자이며 복음주의를 지향하게 되었다는 판단의 오류를 낳게 되었던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복음주의가 초기에 비해 분명한 색깔과 본질이 흐려지게 된 이유는 체험이 말씀보다 위에 있는 점이라 할 수 있다. 한 예로 성령의 은사 가운데 하나인 방언이 이제는 그리스도인이냐 아니냐 또 높은 수준의 그리스도인인지 낮은 수준의 그리스도인인지에 대한 분명한 하나의 표준과 기준이 되어 버렸고 체험을 통한 놀라운 일들만이 하나님의 일하심이요 역사하심이라는 생각이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진정한 복음주의는 모든 것 위에 성경이 가장 우선되게 한다. 이 안에는 우리의 생각이나 체험 또는 은사 역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은 기독교의 최종적 단계이자 뿌리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21세기에 기독교 안에서 일어나는 논쟁과 대립은 바로 말씀과 체험의 싸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현재 기독교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체험이 잘못되었거나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러한 체험의 사건들이 성경 안에서 정확하게 해석되어지고 분별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체험이 말씀을 넘는 순간 우리의 삶은 기독교 신앙의 근본을 벗어난 삶이 되며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독교 신앙의 중심으로 말씀이 바로 서게 되는 것은 바로 성경적 설교의 회복을 의미한다고 결론 내렸다. 성경적 설교의 회복이란 교회 안에서 설교강단의 권위가 다시 세워지는 것을 말한다. 설교 강단의 회복은 사람의 원함을 채워주는 것에 목적을 두기보다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을 전하는 것에 목적을 두는 것이며 이러한 목적이 성립될 수 있는 것은 그 중심에 하나님을 두려 한다는 것에 있다. 또한 설교 강단의 회복을 위한 방안으로 현대에 많은 설교의 방식들과 유형들이 있지만 그 수많은 방식 가운데서도 성경적 설교만을 주장하는 이유는 성경적 설교만이 성경을 위한, 성경을 통한, 성경으로 시작과 끝을 맺는 설교이기 때문이라는 데에 있다. 성경은 어떤 의미에서 66권 전체가 한 권이지만 또 각각의 한 권마다 그 속에 66권이 다 들어있기도 하다. 즉,‘제대로 된’ 성경적 설교는 성경을 체계적으로 깨닫도록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주제 설교 역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성도의 영의 양식을 살찌우고 믿음의 성숙한 과정으로 자라게 하는 데에는 성경적 설교인 강해설교가 필수 불가결한 것임을 주장 하고 싶다.

      • 현대 기독교의 복음주의적 설교 방향에 대한 고찰

        오만종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8 국내석사

        RANK : 247807

        본 논문은 문헌중심으로 주루 이루어졌으며,복음주의적 설교와 설교자 분석을 중심으로 연구했다.본 논문은 모두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Ⅰ장 서론으로 문제제기와 연구의 목적을 밝힘으로써 논문의 중요성 을 밝혔다. 제II장은 복음주의에 대한 이해로서 복음주의의 정의,복음주의의 의미 와 기능을 포괄적으로 논의하였다.복음주의라는 개념을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하여 보다 더 구체적으로 진술하였지만 주관적인 견해를 바탕으로 서 술하였음을 고백한다. 제III장은 설교에 대한 정의와 목적,설교자의 임무를 다시 생각하며 논의하였다.복음주의에 관한 설교의 방향을 연구하고자 한다. 제Ⅳ장은 복음주의적 설교의 중심에 있었던 청교도들의 신학과 설교관 을 연구하여 통찰력을 얻고자 한다.성경적이며 열정적이었던 청교도의 설교를 분석함으로써 복음주의적 설교의 관점을 도우려고 한다.부흥의 불씨를 붙였던 청교도의 설교관과 모습을 본받고자 하는 것이다. 제Ⅴ장은 복음주의적 설교자들의 설교관과 특징을 연구하고 분석하여 우리 시대에 맞는 복음적 설교를 모색한다.부흥의 물결 속에서 시대를 변화시키고 영향을 주었던 설교자 웨슬리,죠지휫필드,죠나다 에드워즈 등을 통하여서 실제적인 복음주의적 설교의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물론,본 저자의 견해로서의 한 시대의 복음주의적 설교자들임을 밝힌다. 제Ⅵ장은 이러한 고찰을 통하여서 복음주의적 설교의 방향성을 정리하 여 결론을 맺으려 한다.

      • 19세기 복음주의와 Evangelical Alliance

        박주신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 2020 국내석사

        RANK : 247807

        19세기 복음주의와 Evangelical Alliance 1846년도에 시작된 복음주의 연맹(Evangelical Alliance)은 오늘날 WEA가 자신의 근원이라고 천명하고 있는 단체이자 모임(회의)의 명칭이다. 이 모임은 종교개혁 이후 계속해서 분화되기만 했던 개신교의 여러 종파들이 인종이나 국가나 교단을 뛰어넘어 한 자리에 모인 최초의 회의라 할 수 있다. 이 회의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바 신앙의 공통적인 내용을 신조화 하여 정리하였는데, 이 신앙고백은 초대교회 에큐메니컬 회의들에서 정리된 신조들을 충실히 계승할 뿐 아니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내용을 잘 요약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이 9개의 신앙고백은 개신교 신학의 핵심으로서 부족함이 없다. 복음주의 연맹(1846)은 개신교회의 역사에서나, 특별히 복음주의 진영의 역사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순간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역사 신학계에서 뿐만 아니라, 국내 역사 신학계에서는 이상하리만큼 이 회의에 대하여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본 연구는 복음주의 연맹을 소개하면서, 이 연맹이 가진 역사적 가치를 학계와 교계에서 재고할 것을 촉구할 뿐 아니라, 이 연맹의 정신과 성격을 이해함으로서 ‘복음주의’를 바르게 이해하는 단초를 제시하고자 한다. 이에 따라, 본 연구에서는 우선 대단히 방만하게 펼쳐져 있는 ‘복음주의’에 대한 개념을 어원적, 역사적으로 정리한다. 그리고 종교개혁 이후로부터 19세기까지 개신교회가 어떠한 역사를 지나왔는지를 간략히 개관한 후에 복음주의 연맹이 출연하게 되는 과정을 19세기 맥락에서 짚어본다. 1846년 8월에 개최된 복음주의 연맹의 성격과 의의, 그리고 그 회의의 진행 경과를 소개하고 회의에서 결의된 신앙고백문의 내용을 분석함으로서 복음주의 연맹이 추구하고자 했던 신앙적 가치들이 왜 중요한지 드러낸다. 복음주의 연맹을 필두로 19세기 복음주의가 어떠한 활동들을 했으며 그 활동들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를 분석하고, 20세기 들어와 복음주의 연맹이 그 명칭의 변화를 겪는 과정도 소개한다. ‘복음주의’가 참으로 ‘복음’주의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교회가 참으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이 되기 위해서 어떠한 고민이 필요한지 19세기 결성된 복음주의 연맹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논한다.

      • 복음주의 관점에서 교회 사회봉사에 관한 연구 : 칼빈을 중심으로

        김대영 한국성서대학교 대학원 2004 국내석사

        RANK : 247807

        이 논문은 복음주의협의회(NEA) 산하 복음주의자들이 모든 복음적인 교회에 요청하고 있는 사회참여에 관한 연구이다. 과거 복음주의자들은 역사적으로 개신교 정통성으로 교리를 정립 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됐다. 또한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관심사인 사회참여 부분에 대한 오해로 사회참여에 대한 관심을 배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신학계와 교계에 최근 20-30년 전부터 새로운 관심을 가지고 활발히 움직이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90년대 이후 복음주의자들에 의해 부각되어지고 발전해 가고 있다. 과거 복음적인 교리를 정립하는데도 복음주의자들 안에서도 많은 이견이 있었던 것처럼 사회참여에 대해서도 진보적인 복음주의 학자와 보수적인 복음주의 학자 간에 의견이 분분하다. 본 논문은 필수적인 복음주의 학자의 견해를 채택하여 연구하였다. 보수적인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성서적으로 그리고 개신교 정통의 연구 방법을 고수한다. 그러므로 무분별한 사회 참여의 모든 부분을 인정하지 않는다. 교회의 본질과 성서의 본질을 깨뜨리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 참여 중에서도 본 논문은 교회 사회봉사를 다루고 있다. 복음주의 안에는 매우 다양한 성향의 교단과 학자들이 있다. 그 중에서 장로교를 중심으로 연구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칼빈을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칼빈이 남겨 놓은 여러 자료들을 토대로 교회의 사회봉사에 관해 연구 하였다. 여기서 칼빈이 주장하는 성도들의 봉사에 대한 견해를 간략히 살펴보면, 우리는 예수그리스도께 빚진자로써 성도 각자는 도움을 줄 수 있는 모든 상황 속에서 당연히 봉사자로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로교 복음주의자들은 교회의 사회봉사가 형식이나 프로그램상의 봉사의 개념에서 탈피해서 우리의 모습을 철저히 감추며, 헌신과 섬김의 모습으로 주님께서 하신 것처럼 대가나 봉사자를 인정해주는 것을 바라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행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한국장로교 안에서도 보수적인 성향의 교회에서 사회봉사를 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과 장애물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면 '본당 안에서의 봉사가 가능한가? 주일에 봉사는 합당한가?' 하는 의견에 대해 필자의 견해는 본당에서도 가능하나 제한적 허용을 채택하였고 주일에 행해지는 봉사 역시 하나님과 영적 만남으로서의 예배를 우선으로 한 봉사는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 밖에 현재 사회 문제들 가운데 교회가 담당할 수 있는 사회봉사는 어떤 것이 있는가 하는 것을 크게 4부분으로 교육, 장학, 구제, 기타로 구분하여 각각의 대안을 제시하였다. 본 논문은 보수주의가 힘쓰지 않았던 사회 참여 중 교회의 사회봉사 영역을 역사적 보수 복음주의 관점에서 현시대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이다. 이들 토대로 닫혀 있는 보수적인 성향의 장주교회는 사회를 향해 그 문을 열고 세상에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복음의 전도자가 되어야 한다. This thesis deals with social participation in which all evangelical churches can take part. Evangelicalists in the past tried to set up a religious doctrine on the basis of Protestantism. They ruled out social participation by misunderstanding that social participation was the interest of liberal theologians. The theological world and the church system in the present world again began to be interested in social participation from 1970's, and those of Korea also have the same interest in social participation. There has been a disagreement of opinion about social participation between both sides, conservative and progressive evangelicals. Conservative scholars of evangelicalism and their opinions are selected as the criteria that thls thesis wants to focus on social participation. Conservative evangelicals adhere to the Bible and the traditional methods of Protestantism. Therefore, indiscreet social participation has been away from the field of their research because they would like to keep the true nature of church and Bible. This paper is mainly related to the church service as social participation. It then focuses on the Presbyterian Churches among various pulpits and Evangelical scholars. I can't help studying John Calvin, the father of Presbyterianism, who left some crucial doctrine about attainment as the social service. According to Calvin, attainment which is debted to Jesus' ministry and thought should serve the community under any circumstance. Attainment should serve the community unconditionally as the Lord did. It is true that there are difficulties and hindrances within the conservative churches among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 For example, is it possible to give the social service at the main chapel room of the church building? Is it appropriate to practice the social service even on the Lord's day? My opinion about those questions is as follow. First, I propose the limited permission. Second, the social service rendered on the Lord's day is available as long as it depends on worship as the spiritual association. After classifying the social service of which the church can be in charge into four groups such as education, scholarship, relief, and etc. I present an alternative. This article deals with the way to apply the social service of the church among the social participation that the conservatives take a matter lightly to the present age. I wish that the presbyterian church should open the door with new paradigm of evangelical perspectives on the social participation of the church suggested by this study.

      • 복음주의선교신학과 에큐메니칼선교신학의 비교연구 : 복음주의 진영의 로잔언약과 WCC선교신학의 비교를 중심으로

        이재원 협성대학교 신학대학원 2003 국내석사

        RANK : 247807

        에큐메니칼 신학에서는 수평적인 복음의 차원을 중시하여 인간화가 선교의 중심 내용이요. 사회에 하나님의 샬롬을 구현함을 선교의 내용으로 하며, 또한 전도는 사회구조를 변혁시키는 행위를 의미한다고 여긴다. 에큐메니칼 신학에서는 사회 복음을 주장하며, 이를 통한 개인 구원과 또한 사회 변화를 강조한다. 사회적 책임, 사회적 관심, 사회적 행동을 가질 것을 말하며, 믿는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 마음을 가지고 정치제도, 경제제도, 사회구조 속에도 뛰어들어 직접 관여하며 이것들을 변화시켜 나갈 것들을 요구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전세계적이고 모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체라 하며, 세계는 변화하나 복음은 불변하고, 크리스챤의 삶이 예수를 닳는 삶, 말씀대로 실천하는 삶이 되어지는 크리스챤 라이프를 강조한다. 신학적 폭이 넓으며, 이에 따라 종교적 다원주의에 빠질 위험도 있으나 다음과 같이 인종, 교파, 국가, 민족을 초월한 교회의 일치, 연합을 강조한다. 케인은 선교를 영혼구원과 사회봉사로 해석한다. 그는 "복음주의는 선교를 전도와 동일시하여 영혼 구원은 잘하지만 다른 활동에 참여하는데 는 느린 반면, 자유주의자들은 사회봉사에서는 잘하지만, 영혼구원에는 관심이 없다. " 고 양자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복음주의자에서는 복음전도와 개인 구원을 강조하며 미래지향적, 타계 지향적 구원을 말하고, 믿음으로 인한 구원을 강조하기에 행함이 약한 일면이 있고 개교회주의적인 경향이 강하다. 또한 성령의 역동성, 능력을 경시하며, 신학의 폭이 좁은 면이 있다. 로잔 언약에서는 복음전도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관심, 책임, 행동까지도 수용하며, 오순절 카리스마 운동에서 강조하는 성령의역동성을 인정하면서 성령이 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임을 또 한 인정한다. 에큐메니칼에서의 연합이 중요성도 인정하며 교파의 장벽을 넘어서야 함도 인식한다. 로잔 언약의 정신들은 한국 교회 현실에서도 동일하게 인식되어야 하는 것들이며 개개 신학교들 간의 교류를 통한 연합과 신학교 교수들의 자질 향상, 그리고 목사 후보생들의 소명의식과 훈련 교육 등을 통한 철저한 복음의 고수는 선행되어야 할 과제들이기도 하다. 로잔 선교 신학이 사회 참여를 주장하고 하나님나라 선포에 있어서 예언자적인 사명을 말한다고 해서 WCC계통의 선교 신학 입장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마닐라 선언문은 밝히고 있다. "우리가 사회참여를 계속하여 다짐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위 기독화된 사회와 혼돈해서는 안 된다. " 마찬가지로 전도에서 능력의 역사, 곧 표적과 기사의 동반을 말하지만 그것이 주된 사역일 수는 없다. 로잔 신학은 하나님 자신이 주된 전도자이심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 없이는 효율적인 전도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전도가 궁극적인 의미에서 악의 정사 잡은 자들과 세력과의 영적 싸움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먼저 개인구원에서 시작하여 사회적 관심, 책임, 행동을 크리스챤 자신의 삶을 통하여 나타내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에는 반드시 개인적 구원, 개인적인 예수님과의 만남이 선행되어야 한다. 선교는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마음, 기독교의 본질이며, 수단이나 방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선교는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인 것이지 교회를 성장, 부흥시키기 위해 선교를 과시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선교는 아니라고 본다.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고 선교의 영역은 온 세상이다. 교회는 선교하시는 하나님의 도구이며 교회의 사역 전체를 선교라 본다. 선교의 목표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인데 이것은 다른 말로 샬롬의 추구와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샬롬은 평화라는 뜻과 함께 온전(Wholeness)하다는 뜻이 있는데, 선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신 그 '온전'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온전 속에는 개인 영혼 구원과 사회의 구원이 포함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개인영혼+구원사회구원)이라고 표시할 수 있다. 이런 선교활동을 수행하는 교회의 기본적인 자세는 '고난의 종'의 모습을 지녀야 한다. 일체의 선교 활동은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내어주시고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했던 주님처럼 우리의 모든 것을 바쳐서 세상을 섬기는 정신으로 수행되지 아니하면 안 된다. 결국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선교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수직적이냐 수평적이냐, 인간화냐 복음화냐를 결코 양자택일할 수가 없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그러나 이것을 보기 좋게 적당히 결합시키거나 섞어 놓아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 어느 것 하나도 확실히 하지 못한다면 둘 다 잃게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신앙고백이 없는 인간화는 휴머니즘적인 활동에 불과한 것이고, 형제와의 화해가없는 복음화는 하나님 앞에서 위선자일 뿐이다.

      • 사회복음주의와 한국교회의 반응 : 1920∼30년대를 중심으로

        김정회 서울장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06 국내석사

        RANK : 247807

        1920-30년대 일제하의 한국사회는 총독부의 정책적 전환으로 인한 정치, 사회, 경제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문화정치로 대표되는 이 시기의 총독부의 정책은 새로운 언론 매체가 나올 수 있는 길을 완화시켜 주었고, 새로운 정치사상의 유입을 가능하게 하였다. 사회주의가 한국사회로 들어오는 시기도 이때 였다. 또한 산미증식계획의 여파는 농촌의 현실을 극도로 악화시켰다. 당시 한국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농민들이었다는 사실은 문제의 심각성을 가늠케해준다. 농촌의 문제는 농촌에 근거하고 있던 대부분의 한국교회의 위기이기도 했다. 농촌경제의 궁핍화는 자연스럽게 사회주의 세력의 확장을 가능하게 해주었고, 반 종교 노선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의 확산을 교회가 대응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적인 요청이 있었다. 그러나 1907년 이후에 한국교회의 신앙구조는 비정치화의 신앙구형을 이루고 있었다. 교회의 사회참여를 초월적인 신앙에 대한 외연의 표현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교회는 농촌 현실의 문제와 사회주의의 확산에 따른 문제를 신학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사회복음주의가 한국교회사에 나타났던 것은 사회복음주의가 가지고 있었던 사회구원의 사상이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 속에서 신학적 대응으로써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1920-30년대 한국교회사 안에서 사회복음주의는 YMCA, 감리교의 교리적 선언, 그리고 장로교 목사였던 배민수의 농촌운동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YMCA의 농촌사업을 주도했던 인물은 신흥우였다. 그는 감리교인으로써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왔다. Y의 총무로서 활동했다. 그는 1928년의 예루살렘 국제선교협의회의 준비와 참가과정에서 사회복음주의 신학의 배경을 가지게 되었고 Y의 농촌사업을 주도하였다. Y의 농촌사업이 농촌문제의 현실을 해결하려는 실천적인 활동이었다면 1932년에 그가 중심이 되어 조직한 적극 신앙단은 그의 사회복음주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려했던 운동이었다. 특히 그들이 발표한 신앙선언에서 신사회건설을 위해서 개인의 취득욕을 버리고 사회를 위한 공헌욕을 가져야 한다고 표현함으로써 사회복음주의를 분명하게 드러내어 주고 있었다. 신흥우에게서 드러나는 사회복음주의의 형태는 제도권 교회를 매개로 하는 신앙운동이 아니라 교파를 초월하는 사회구원운동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감리교의 교리적 선언이 가지는 한국교회사적인 의의는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보수적 복음주의 신학에서 사회복음주의 신학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한 개인의 신학적 입장을 벗어나서 한 교단의 합동원리로서 사회복음주의가 받아들여졌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감리교의 교리적 선언은 한국 감리교회의 주류교회들을 신학적으로 바꾸어 놓지는 못했다. 그것은 교리적 선언을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음주의 신학의 실천적인 활동들이 감리교회 안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감리교에 나타난 사회복음주의는 실천적인 모습은 드러나지 않고 신학적인 선언의 형태로만 나타났다. 장로교의 농촌운동은 본래 정인과에 의해서 주도되었다. 하지만 그가 전개한 농촌운동은 실제적이지 못했고,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배민수가 농촌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하면서 농촌운동이 활기를 띄게 되었다.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온 배민수가 농촌운동에 헌신하게 되었던 것은 그가 가지고 있었던 사회복음주의 신학의 영향이었다. 그가 주도한 농촌운동은 정인과의 농촌운동과는 구별되었다. 그의 농촌운동은 실제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것과 함께 복음운동의 성격이 동시에 강조되었다. 그것은 복음으로 개인의 구원이 이루어진 뒤에야 복음의 정신으로 농촌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그의 사상 때문이었다.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라는 그의 신학적 목표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제도권 교회 안에서 이러한 운동을 펼쳐나간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러한 그의 신학적 형태는 사회복음주의의 신학적 이해가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었다. 배민수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사회복음주의의 형태는 한국교회의 복음주의 전통에 바탕을 두고 그 안에서 사회복음주의의 이상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한국교회가 신학적으로 사회복음주의를 대응했던 것은 신흥우의 적극 신앙단의 신앙선언을 문제삼아 이단으로 정죄했고, 배민수의 농촌운동을 비판했던 한국장로교회 내부에서 일어났다. 김인서를 중심으로 한 보수적 복음주의 입장에서 배민수의 농촌운동은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인 복음전도를 포기하는 것으로 이해했고 사회주의와 유사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이해는 배민수의 신학사상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결과였다. 배민수의 농촌운동이 가지고 있었던 복음적인 활동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주류에서 나오는 비판은 농촌운동을 좌절시키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감리교의 경우도 그 실천적인 활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이유도 바로 주류교회의 이해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회복음주의는 1920년대 한국사회와 교회를 주도했던 사상적인 흐름에서 독특한 위치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의 주요한 흐름 중의 하나였던 사회주의와 이의 영향을 받았던 기독교 사회주의, 그리고 한국교회의 복음주의와 관계 속에 놓여있었다. 사회주의와 기독교사회주의에서는 사회복음주의와 복음주의를 동일한 것으로 이해했고, 복음주의의 입장에서는 사회복음주의가 사회주의와 동일한 것으로 이해했다. 한국교회가 처한 상황에서 신학적이 대안으로서 등장했지만 한국교회의 복음주의 전통과 사회복음주의에 대한 신학적 이해의 부족은 그들이 신학사상을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사회복음주의 운동의 실패는 정치적인 이유보다 신학적인 이유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 에큐메니칼 선교신학과 복음주의 선교신학 비교 연구 : 통전적 선교신학을 중심으로

        김현진 협성대학교 신학대학원 2015 국내석사

        RANK : 247806

        선교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귀중한 사명이다. 이것을 위해 초대 교회 이전부터 복음의 씨앗이 심겨지고, 자라나며, 현재라는 열매를 맺게 되었다. 나무가 자라고 그 결과 계속해서 열매를 맺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신 대 지상 명령인 복음 전파(선교)를 계속해서 이어 나가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그러나 선교의 역사 과정을 살펴보면 다양한 모습의 선교신학들을 마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선교는 전략적이고 실용적인 방법을 잘 선택하여 준비하여야 한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 등장한 선교신학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복음주의(Evangelical)’ 진영과 다른 하나는 ‘에큐메니칼’(Ecumenical) 진영이다. 이 두 진영은 세계 복음화를 우선하는 신학이라는 것은 동일하지만 그 방법과 전략에 있어서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복음주의 선교신학은 그 무엇보다 복음을 가장 강조한다. 즉 개인 구원 선교전략에 탁월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반면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은 사회참여를 통한 하나님 나라 실현에 그 중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복음주의 선교신학은 개인구원에 대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사회의 변화와 기대에 부흥하지 못하고 있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으며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은 사회구원, 사회참여를 강조하는 반면 영혼의 구원을 소홀히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두 선교신학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 연구하여 보다 적절한 선교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사회와 세상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동시에 두 선교신학의 선교전략에도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하지만 두 선교신학의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다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사업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즉 서로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필자는 두 선교신학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전략으로 ‘통전적 선교신학’을 사용하려고 한다. 두 진영의 구조와 차이점을 비교 연구하여 포스트모던 사회에 적절한 선교 방법을 모색하고 더 나아가, 이것을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 목사님의 복음신학에서 찾고 이를 위해 존 웨슬리 목사님이 어떤 통전적 선교 실천을 하였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이 세상 속에 진정한 하나님 나라 확장이 더욱 가속화 되기를 소원한다.

      • 로잔운동이 한국교회 복음주의 운동에 끼친 영향

        오헌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 2020 국내석사

        RANK : 247806

        본 연구는 1974년 이후 세계복음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 로잔운동이 한국교회 복음주의 운동에 끼친 영향에 대해 고찰하였다. 한국교회는 초기 선교사들로부터 전해진 복음주의 신앙전통 가운데서 형성되었다. 이는 신약 시대로부터 시작해서 초대교회와 종교개혁 시대, 18~19세기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부흥운동과 20세기 중반 이후 미국 복음주의 운동으로 이어지는 기독교 정통신앙을 계승하려는 역사적 복음주의 신앙이다. 초기 선교사들로부터 계승된 한국교회의 복음주의 신앙전통은 1920년대 이후 급변하는 시대적 흐름과 진보신학의 수용으로 여러 가지 도전에 직면하였다. 이는 1950년대 WCC 가입을 둘러싼 신학적 논쟁으로 절정에 달했으며, 교단 분열과 진보와 보수 진영 간의 대립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한국교회 복음주의 신앙전통은 꾸준히 계승되었으며, 이는 1970년대 대중전도운동과 복음주의 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WCC 운동은 2차 대전 이후 세계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목적으로 탄생하였다. 그러나 1950년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로 대표되는 진보신학의 수용으로 WCC는 전통적인 복음전도 중심의 선교에서 벗어나 사회 및 정치참여로 나아간다. 이러한 WCC 운동에 대응하여 빌리 그레이엄을 비롯한 미국 복음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복음전도 중심의 세계복음화를 강조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세계복음주의자들의 연합과 협력을 촉구한다. 그 결과 1974년 로잔운동이 태동하였다. 로잔운동은 세 차례의 세계복음화국제대회를 통하여 복음주의 운동을 전 세계로 확산시켰다. 본 논문을 통해 1970년대 이후 한국교회 복음주의 운동이 초기 선교사들로부터 계승된 복음주의 신앙전통과 더불어 로잔운동으로 대표되는 세계복음주의 운동의 영향 가운데서 전개되었음을 살피고자 한다. 한국교회 복음주의 운동은 1970~1980년대 한국교회 급성장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현재까지 한국교회 가운데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국교회 복음주의 운동은 복음주의 신앙전통의 계승과 동시에 로잔운동으로 대표되는 세계복음주의운동과의 협력 가운데서 지속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그럴 때 한국교회가 이 시대 한국과 전 세계 가운데 영향을 끼치는 하나님 나라의 통로로 기여하게 될 것이다. 본 연구는 1974년 이후 세계복음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 로잔운동이 한국교회 복음주의 운동에 끼친 영향에 대해 고찰하였다. 한국교회는 초기 선교사들로부터 전해진 복음주의 신앙전통 가운데서 형성되었다. 이는 신약 시대로부터 시작해서 초대교회와 종교개혁 시대, 18~19세기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부흥운동과 20세기 중반 이후 미국 복음주의 운동으로 이어지는 기독교 정통신앙을 계승하려는 역사적 복음주의 신앙이다. 초기 선교사들로부터 계승된 한국교회의 복음주의 신앙전통은 1920년대 이후 급변하는 시대적 흐름과 진보신학의 수용으로 여러 가지 도전에 직면하였다. 이는 1950년대 WCC 가입을 둘러싼 신학적 논쟁으로 절정에 달했으며, 교단 분열과 진보와 보수 진영 간의 대립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한국교회 복음주의 신앙전통은 꾸준히 계승되었으며, 이는 1970년대 대중전도운동과 복음주의 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WCC 운동은 2차 대전 이후 세계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목적으로 탄생하였다. 그러나 1950년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로 대표되는 진보신학의 수용으로 WCC는 전통적인 복음전도 중심의 선교에서 벗어나 사회 및 정치참여로 나아간다. 이러한 WCC 운동에 대응하여 빌리 그레이엄을 비롯한 미국 복음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복음전도 중심의 세계복음화를 강조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세계복음주의자들의 연합과 협력을 촉구한다. 그 결과 1974년 로잔운동이 태동하였다. 로잔운동은 세 차례의 세계복음화국제대회를 통하여 복음주의 운동을 전 세계로 확산시켰다. 본 논문을 통해 1970년대 이후 한국교회 복음주의 운동이 초기 선교사들로부터 계승된 복음주의 신앙전통과 더불어 로잔운동으로 대표되는 세계복음주의 운동의 영향 가운데서 전개되었음을 살피고자 한다. 한국교회 복음주의 운동은 1970~1980년대 한국교회 급성장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현재까지 한국교회 가운데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국교회 복음주의 운동은 복음주의 신앙전통의 계승과 동시에 로잔운동으로 대표되는 세계복음주의운동과의 협력 가운데서 지속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그럴 때 한국교회가 이 시대 한국과 전 세계 가운데 영향을 끼치는 하나님 나라의 통로로 기여하게 될 것이다. This study examined the influence of the Lausanne Movement on the Korean Evangelical Movement, which had a great influence on the World Evangelical Movement since 1974. The Korean church was formed in the evangelical tradition of faith from early missionaries. This is a historical evangelical faith that continues the Christian Orthodox Church, starting from the New Testament era, from the early church and the Reformation, to the revival of the 18th and 19th centuries, and to the American evangelical movement since the mid-20th century. The evangelical faith tradition of the Korean Church, inherited from early missionaries, has been challenged by the rapidly changing times and acceptance of progressive theology since the 1920s. This culminated in a theological debate over WCC membership in the 1950s, leading to division of the church and conflict between progress and conservatives. However, the Korean church's evangelical faith tradition steadily succeeded, which became the basis of the Mass Evangelism and Evangelical Movements of the 1970s. The WCC movement was born after World War II to coincide with the union of the Church. However, with the acceptance of progressive theology represented by “the mission of God”(Missio Dei) in the 1950s, the WCC moves away from traditional evangelism-based mission to social and political participation. In response to this WCC movement, American evangelicals, including Billy Graham, are centered on evangelism-centered world evangelization. And call for unity and cooperation among world evangelicals. As a result, the Lausanne Movement began in 1974. The Lausanne Movement spread the evangelical movement throughout the world through three international evangelization conventions. Through this study, we will see that the Evangelical Movement of the Korean Church has been developed since the 1970s amid the influence of the global evangelical movement, which is represented by the Lausanne Movement, along with the evangelical faith tradition inherited from early missionaries. The Evangelical Movement of the Korean Church was the driving force behind the rapid growth of the Korean Church in the 1970s and 1980s, and it has had a great influence among Korean churches to this day. The Evangelical Movement of the Korean Church should be continued in line with the succession of the evangelical faith tradition and in cooperation with the global evangelical movement represented by the Lausanne Movement. Then, the Korean Church will contribute to the passage of the kingdom of God, which affects Korea and the world at this time.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