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음성지원유무
        • 학위유형
        • 주제분류
        • 수여기관
          펼치기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 지도교수
          펼치기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정통적 입장에서 본 K. Barth 기독론의 문제점

        이승철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 2004 국내석사

        RANK : 247807

        기독론의 역사를 보면 초기부터 대두되었던 문제들이 현재에도 계속 되어짐을 우리는 볼 수 있다. 특히 기독론의 내용은 더욱 그렇다고 말 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 생각한바와 같이 바르트의 기독론은 진보적인 신학자나 목회자들에게 더 큰 영향력이 나타나고 있음을 우리는 볼 수 있다. 특별히 한국 교회를 이끌어 가는 목회자들을 교육하여 배출하는 신학대학들의 형편을 보면 더욱 이 문제가 크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교회에서 가장 크다는 교단의 신학교나 진보적인 신학교들은 이 바르트의 신학이 정통적인 교리로 익혀지고 있음이 현실이다. 정통적으로 기독론은 인격과 사역에 관하여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바르트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구분하지 않고 계시란 측면에서 양자를 연결시키는 그 특징으로서 그 아버지 하나님을 창조자로, 아들을 하나님의 화해자로, 성령 하나님은 구속자로 각각 이해하며 각 인격은 계시 사건 이전부터 있었음을 말한다. 그리고 바르트의 기독론은 정통적인 기독론과는 달리 계시론, 신론, 인간론 등이 모두가 예수그리스도를 중심하고 있어 이 교리들을 취급 할 때마다 반복됨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삼위일체론에 있어서 칼빈은 초대 교부들의 공의회, 어거스틴 등 정통적 삼위일체론에 근거하여 정통적 용어들을 그대로 존중하여 사용하였다. 이점이 아주 중요한 점이다. 용어를 분명하고 쉬운 것을 씀으로 개념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삼위일체론에 있어서도 중요함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는 삼위 하나님의 인격적 구별과 본질의 하나되심을 일관되게 명확히 정의 내리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삼위일체론의 출발과 근거를 성경과 성령 하나님께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사변과 이성을 배제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불러일으키고 영광 돌리게 한다. 그는 니케아 신조와 아다나시우스의 정통교리에 확고히 근거해서 삼위일체론을 정립했다. 이에 반해 바르트의 그리스도 일원론적 말씀의 신학이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만을 강조하여 마치 성부 하나님이 성자 안에 갇힌 듯한 인상을 준다. 칼빈은 창조주와 구속주라는 이중적인 신인식론을 통해 그리스도 일원론적인 지나친 하나님의 초월성을 극복할 수 있었다. 칼빈은 참으로 성경이 가르치는 생명력 넘치는 삼위일체론을 가르쳐 준다. 바르트의 삼위일체론에 있어서 문제는 그의 독특한 그리스도 중심적 방법론과 용어 사용의 애매함에서부터 발생되었다. 즉 그가 쓰고 있는 '존재 양식' 이라는 용어이다. 그가 인격 대신에 이 용어들을 씀으로 인해 인격의 구별이 약화되고 일원론적 양태론적 '그리스도론적 집중'의 체계로 빠지고 말았다. 그가 말씀을 강조하였지만 신앙을 그리스도로 대치하여 신앙의 본질적 의미를 깨어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의 차이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아버지와 그리스도를 논할 때 성령께서 동시에 역사하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칼빈의 「기독교강요」의 모범을 따라야 하겠다. 우리는 칼빈처럼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성경대로 믿고 예배해야 하겠다. 그리고 바르트의 은총의 신학으로 널리 알려진 기독론의 중심의 화해론은 너무나 정통주의에서 볼 때 혼란스럽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존재와 인간의 존재를 각각 분리해서 다루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연합에서 출발한다. 전통적인 두 본성론에 의하면 신적 실체와 연합이 되나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은 서로 분리되어 이루어 진다. 이에 대해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존재와 역사를 불가분적으로 연결시켜 다룬다.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는 그 안에서 화해하시는 하나님과 화해된 인간이 동시에 현존하시는 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신성론과 인성론을 하나님의 아들의 낮아지심과 사람의 아들의 높아지심으로 밀접하게 연결한다. 그래서 두 본성론은 두 상태론과 불가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면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화해 사건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부분에 있어서 화해론의 시작과 중심과 끝이다고 주장을 한다. 그러나 바르트의 화해론은 예수 그리스도 사건을 시간공간 안에서 일어난 구체적인 화해의 사건으로 보기 보다는 영원이라는 초역사 속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이해함으로서 성경적 역사적 사고라기 보다는 희랍적 초역사적 사고에 지배되고 있다. 배타적 화해론의 근거는 주권적인 언약론으로서 하나님의 은총 승리 사고가 지배하고 있다. 은총일원주의 사고에서는 인간편에서의 신앙적 응답이란 그 독자적인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신앙과 불신앙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은총이 지배함으로써 교회의 복음선포와 신앙의 기능이 도외시된다. 바르트가 인격으로서 그렇게 강조한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창조에서 구속에 이르는 모든 사건에 침투되어 사고함으로써 창조의 계시, 구체적인 구속의 적용, 종말론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신학적 사고의 원리로서 지배하고 있다. 여기서 화해론은 인간의 죄 대속을 위한 사건이기보다는 영원한 언약을 실현하기 위한 테두리가 되어 버리고 극단한 기독론적 사고는 후기에 이르러 인간의 신앙의 행위까지 배제해 버리는 배타적 화해론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바르트는 형벌 개념과 충족 개념과 죄에 대한 전통적인 속죄론을 거부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대리적 죽음에 대한 바르트의 해석에는 하나님의 의와 은혜의 수행이 지배적이며 전통적 개혁신학이 주장하는 형벌대리적 행위와 죄 대속을 위한 희생의 표상이 퇴색하고 있다. 이러한 바르트 사고의 이면에는 십자가의 사건을 원죄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대속행위로 보기보다는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원래적으로 결정한 은총 언약의 실현으로 보는 은총일원 사상이 깔려 있다. 그가 만인 구원설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듯 보이지만 하나님이 인간 예수를 선택했고 예수 안에 대표된 모든 인간들을 선택했다고 말함으로 유기는 선택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처럼 논리를 전개하여 나가게 되어 일종의 만인 구원설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바르트는 예정의 모든 문제 역시 철저히 기독론적인 관점에서 인식하려고 한다. 결국 바르트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인 공의와 자비의 속성을 균형 있게 보지 않고, 하나님의 자비의 측면만을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적으로 편향하여 인식함으로써 하나님을 오해하고 수많은 사람에게 혼란을 야기 시켰다. 이는 잘못된 신앙과 인간의 교만이 만들어 낸 편견으로써 정통적 신학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며, 이러한 바탕에서 시작된 그의 예정론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칼빈은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을 알기까지는,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값없이 베푸시는 자비의 원천에서 흘러나온 것을, 결코 확신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명백히 하기 위해 우리는 선택의 과정을 회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택의 교리는 모든 면에서 오직 하나님에게서 찾을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공적과 성령의 사역을 높이 인정하게 하며, 오직 주의 자비에 의해서만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음을 우리에게 인식시켜 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지혜를 이해하기보다는 경외하기를 원하며, 경외함으로써 찬탄하시기를 원하신다고 했다. 비록 바르트의 내용이 인간의 이성을 설득하고, 모든 세상 사람으로 하여금 이해가 될 수 있도록 예정교리를 설명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동조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결국 진리가 될 수 없다. 바르트의 신학이 이렇게 흐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당시 난무하던 자유주의 신학과 이성 중심의 신학 사고를 격렬히 비판하며, 자유주의에 맞서 자신을 보수적이라 하였지만 그의 한계는 지나친 변증법적 신학을 가지고 있는 내용으로 17세기를 보고 개혁주의를 판단하는 기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역사적이지 않고 당시의 상황과 자신의 주관적인 신학 방법론으로 신학을 할 때 분명 문제가 대두 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바르지 못한 내용이 진리처럼 많은 영향력을 나타내고 있는 이때에 우리가 바른 개혁주의 신학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신학을 가지고 신학을 하기보다는 개혁주의의 유산들을 먼저 살피고 근래에 가장 바른 역사적 개혁사상을 지켜 온 신학자들을 통해서 17세기(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및 개혁 신학자)의 바른 신학적 입장을 거쳐서 칼빈의 신학과 함께 어거스틴으로 그 다음 교부시대로 돌아가야만 성경적인 바른 개혁주의를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신학적으로 혼잡한 이 시대에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정통신학을 바로 알고 현재의 신학사조의 기류를 잘 파악하여 성경에 계시되어 있는 참된 복음과 다른 예수를 전하는 자의 유혹과 타협에서 우리의 정통 신학을 지키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역사적 개혁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반드시 신앙을 표명해야 하는 것이 성도의 의무임을 알았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신앙고백서를 지켜왔고 드러내려고 노력하였으며,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과 그들의 자녀들의 종교적 교훈을 위한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도로 활용했으며, 성경의 진리 체계를 완벽하고 견고하게 진출함으로써, 오류를 막는 방파제가 되게 함으로 교회의 교제와 협력의 기초가 되게 했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바르게 고백하는 개혁교회의 성도로서 이 진리를 더럽혀지거나 오용되어지지 않도록 수호자들이 되어야 하겠다.

      • 기독론에 있어서 개혁신학의 독특성에 대한 칼케톤 신조와 어거스틴의 기독론 배경 : 개혁신학이 말하는 ‘인성 밖에도 계시는 신성’(Extra Calvinisticum)

        김창길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 2008 국내석사

        RANK : 247807

        기독론에 있어서 개혁신학의 독특성에 대한 객관적 배경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기독론의 독특성의 배경을 객관적으로 올바르게 제시하는 것은 개혁신학의 일관된 신뢰성을 회복하는 기능을 갖는다.

      • 아담기독론의 기원 : 유대교 전승의 기독론적 재해석을 통한 바울의 아담기독론 형성

        이길하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 2016 국내석사

        RANK : 247807

        본 논문은 바울의 아담기독론이 전승사적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아들 전승과 제사장 전승의 결합인 ‘제사장-왕’ 전승을 기반으로 하는 그리스도 이해임을 밝히는 연구이다. 이 논문의 주된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 전승과 제사장 전승의 원형적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는 창세기 1장과 2장의 두 아담 이야기가 구약성서와 유대교 전통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 전승과 제사장 전승으로 발전해나갔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바울의 아담기독론 안에 담긴 의미와 그것이 오늘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성도들에게 주는 함의를 모색하는 데에 있다. 이 논문은 전체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아담기독론에 관한 연구사와 본 연구의 개관 및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2장은 아담에 관한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창세기 1장과 2장의 두 본문을 살펴보는 가운데 아담 이야기의 핵심요소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각각의 아담 이야기가 어떠한 하나님의 아들 전승과 제사장 전승의 중요 요소들을 담지하고 있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3장은 창세기 1장의 아담 이야기로부터 발전된 하나님의 아들 전승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특별히 다스리고 통치하는 하나님의 아들인 인간 왕의 관한 전승이 예루살렘 멸망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계기로 종말론적 메시아사상으로 해석학적 치환을 이루었다는 점은 하나님의 아들 전승의 전승사적 발전과 이후의 기독론 형성에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4장은 창세기 2장의 아담 이야기로부터 발전된 제사장 전승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제사장 전승은 하나님의 아들 전승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차위(次位)에 있지만, 유대교 안에서 결코 쉽게 간과할 수 있는 중요한 한 흐름을 형성하였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아들 전승과 결합하여 제사장-왕 전승을 형성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살펴보고 있다. 5장은 앞서 살펴본 하나님의 아들 전승과 제사장 전승의 내용을 바탕으로 고린도전서 15장과 로마서 5장에 나타난 아담기독론 본문을 살펴보고 있다. 이를 통해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이 첫 아담과 대조되는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의 새 창조의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고, 이들에게 최초에 아담이 실패했던 사명, 곧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선한 통치를 수행하는 대리적 통치자의 사명이 주어졌음을 밝히고 있다. 마지막 장은 앞선 논의들을 종합하면서 본 연구가 지니는 신학적, 실천적 함의와 추후 연구에 대한 제안을 제시하고 있다. This dissertation is a study demonstrating in the perspective of tradition history, that the Paul’s Adam-Christology is an understanding of Christ based on the ‘priest-king’ tradition, which is a combination of the son of God tradition and the priest tradition. The main purpose of this study is to search the deeper meaning of Adam-Christology texts and what implication it gives to the believers who sincerely take the bible texts as the word of God by verifying how two Adam narratives in Genesis 1 and 2, which connote the primal factors of the son of God tradition and the priest tradition, developed into the actual son of God tradition and the priest tradition. This thesis consists of six chapters. Chapter 1 examines the previous historiography of current subject and presents the purpose and the overview of this study. Chapter 2 delves into two different Adam narratives in Genesis 1 and 2 and explores core factors of the Adam narrative and their correlation with the son of God tradition and the priest tradition. Chapter 3 explores the son of God tradition, developed from the Adam narrative in Genesis 1. The hermeneutical transition that has been made after the historical event of the fall of the Jerusalem, a shift from the tradition about the ruling human king to the eschatological messianism marked an important watershed in terms of the historical-tradition development of the son of God tradition and the formation of the Christology later on. Chapter 4 looks into the priest tradition, derived from the Adam narrative in Genesis 2. In comparison with the son of God tradition, the priest tradition had earned less attention. However, it formed an important stream in Judaism that should not be overlooked, and had been developed into the priest-king tradition combined with the son of God tradition. Chapter 5 researches about the Adam-Christology in 1 Corinthian 15 and Romans 5, based on the issues that have been dealt in the previous chapters. It concludes that the church and the people of God became the member of the new creation community of Jesus Christ, the last Adam who is in contrast with the first Adam, and has been given the mission that the first Adam failed to achieve: to rule over the world as the vice-regent of the God. The last chapter synthesizes all the discussions made above, and proposes theological and practical implications and suggestions for further studies.

      • 한국적 기독론 모색 : 일아(一雅) 변선환을 중심으로

        전종배 감리교신학대학교 대학원 2010 국내석사

        RANK : 247807

        현재 한국의 기독론 현주소를 종교신학의 조명 아래 비춰 정의한다. 그리고 일아(一雅) 변선환 기독론의 흐름과 그의 기독론의 종교신학적 위치를 토대로 예수의 인성, 신성, 독특성을 되짚어보고, 세계적 신학자 폴 니터와 아시아 신학자 알로이시우스 피에리스의 기독론과의 관계성을 살펴본다. 그런 후에 변선환의 기독론이 어떠한 점에서 한국적 기독론 모색의 근간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고, 그것을 토대로 한국적 기독론이 모색되어야 할 방향성을 제시해 본다.

      • 본회퍼 기독론의 공공성과 기독론적 공적신학의 가능성

        김강석 계명대학교 대학원 2020 국내박사

        RANK : 247807

        오늘날 대두된 공적신학에서 기독론이 명확하게 드러나는가? 나의 연구는 이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교의학적 입장에서 볼 때, 공적신학의 취약점은 기독론의 모호함이다. 공적신학이 기독교 신학으로서 정체성을 지니고자 한다면 기독론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기독교 신학은 세계관이나 윤리, 혹은 이데올로기를 뛰어넘어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학문세계이기 때문이다. 기독론적 토대의 의미는 단지 이론적 가치를 제공하는 것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실천을 불러오는 힘이 된다. 이것이 공적신학을 조직신학적 관점에서 재조명할 이유이며, 본 연구의 관점이다. 이 연구는 공적신학 속에 기독론의 정체성을 추구하기 위하여, 대표적 공적신학자들의 선행연구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면서, 지난 세기의 위대한 신학자이자 실천가였던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의 시각을 통하여 기독론의 의미와 가치를 증명하고자 한 것이다. 나는 기독론적 근거 위에서 전개되는 공적신학을 “기독론적 공적신학(Christological Public Theology)”이라 명명(命名)하였다. 먼저, 세 명의 공적신학자, 즉 트레이시(David Tracy), 스택하우스(Max M. Stackhause),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를 중심으로 공적신학의 세 주류(主流)를 검토하였다. 이들의 신학적 이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며 본회퍼의 기독론으로 대안적 조명을 하였다. 즉 공적신학의 이론들이 기독론적 정체성을 지닐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서, 본회퍼의 기독론을 주목함으로 기독론이 지니는 책임윤리적 가치의 근거를 더욱 분명히 세우고자 하였다. “기독론적 공적신학”은 공적신학의 중심에 기독론적 입장이 선명할수록, 신학이 추구하는 공공성이 구체적이고 명확한 참여윤리로 나타나게 된다고 주장한다. “기독론적 공적신학”은 기독론에 대한 명확한 교의학적 진술들이 공적신학의 작업들을 더욱 일관되고 강력한 실천윤리로 나타나게 하는 동력이 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공적신학의 책임성과 방향성 설정을 위하여, 그리고 자기 성찰을 위한 유용한 도구가 된다. 또한 본 논문에서는 공적신학의 기독론적 토대가 될 수 있는 5가지의 주제를 조직신학적 관점에서 정리하여 제시하였다: 죄(소외 모티브로서의 원죄), 구원(은총과 참여행동), 존재론(현재하시는 그리스도), 소명론(위임과 책임윤리), 비종교적 해석(말씀의 씨앗)이다. Does a public theology today have its own distinctive Christology? My study begins with this question. From a doctrinal point of view, the weakness of a public theology nowadays is that it tends to have an ambiguous Christology. If a public theology is to be a Christian theology, it can never be separated from a Christology, because a Christian theology is an academic field that pursues what God does in Christ beyond world-views, ethics, or ideologies. It is a good Christology that does not merely provide theoretical values, but a force that brings about a more concrete and clear action toward neighbors in everyday lives. This is the reason to re-examine public theologies from a Christological perspective, especially as it was conceived by Dietrich Bonhoeffer. I critically reviewed leading studies of representative public theologians to pursue the place of Christology in their public theologies. And I proved the meaning and value of Christology through the perspective of Dietrich Bonhoeffer, arguably one of the greatest Christian theologians and practitioners of the last century. A public theology that is established on a solid Christological may be called "Christological Public Theology," which I propose for a larger theological world. I reviewed the three main streams of public theology, with special reference to three public theologians: David Tracy, Max M. Stackhause, and Stanley Hauerwas. I critically analyzed their theological perspectives and tried to give an alternative using Bonhoeffer's Christology. In other words, I focused on Bonhoeffer's Christology to seek a public theology which is not only based on, but proceeds from an integral Christology. In this way, I tried to establish the basis for the ethical value of a public theology from a Christological perspective. "Christological public theology" argues that the clearer Christological position a public theology has, it becomes the more concretely and clearly participating and responsible (ethical) theology. "Christological public theology" also argues that clear doctrinal declarations are the driving force that makes a public theology more consistent and more powerful and more practical. And "Christological public theology" can be a useful tool for establishing accountability and direction and self-reflection regarding the public nature of a theology In addition, I have presented five themes of systematic theological perspective that can serve as the foundation of Christology in public theology: Sin (Original Sin as an Alien Motif), Salvation (Grace and Participatory Behavior), Ontology (Christ of Present), Calling (Mandate and Ethics of Responsibility), and Non-Religious Interpretation (Seeds of the Word).

      • J. 몰트만의 기독론 특징 : 현존하는 그리스도

        강상수 영남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2003 국내석사

        RANK : 247806

        A. 현존하는 그리스도 몰트만의 기독론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은 우리의 신앙으로 발견된 것도 아니요, 우리의 지식으로 알게 된 것도 아니다.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경험한 것은 삼위일체로 현존하는 그분에 의해, 한 인간의 실존과 공동체의 역사와 온 우주를 새 창조하심으로 인식된 것이다. 그리고 이 새 창조의 도상에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 안에서, 또한 그분을 향하여 경험하며, 기대하고, 희망하게 하는 능력으로 우리를 서게 하시고 경주하게 하신다. 이러한 새 생명의 경험을 가지고 몰트만의 기독론을 정리해 보자. 몰트만의 기독론을 살피기 전에, 그의 삶과 신학 사상의 경험을 살펴보았다. 몰트만은 제2차 세계대전과 오늘날 인류의 절망과 생태계의 파괴를 통한 희망이 없음을 경험하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누구 신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생애를 통해 경험함으로써, 전 세계에 그분의 현존을 통한 구원의 희망을 전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몰트만의 신학의 경험과 사상의 경험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삼위일체적 하나님 중심의 개혁전통에 서 있으며, 부활한 그리스도 중심의 종말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독교 윤리의 삶을 제시한다. 또한 에큐메니칼 신학사상을 추구하면서 인류와 전 우주를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화해로 말미암아 정의와 평화의 나라로 하나되게 하고 일치되게 하는 운동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희망의 신학을 화해의 변증법적 방법으로 전개하여,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모순된 관계를 삼위일체적으로 상호 관련되게 설명함으로서, 영원한 나라가 영광 중에 오심을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통해 경험함으로 설명해 주었다. 이렇게 몰트만의 신학사상에 전이해를 가지고, 그의 기독론의 질문과 근거와 방법을 살펴보면,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통해 종말론적 역사 가운데 온 인류와, 온 우주를 구원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었다. 먼저 몰트만의 기독론의 질문을 살펴보면, 기독교 신앙이 메시야 신앙임을 전제하면서 기독론 또한 메시야적 희망에서 출발해야 함을 말한다. 또 기독론에서 구원론의 문제를 질문하면서 초대교회와 근대의 기독론의 대한 문제에 있어서 종말론적 역사와 우주적 구원의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질문 다음에 기독론의 방법에 있어 근거와 함께 '이야기체 기독론', '삼위일체적 기독론', '종말론적 기독론'으로 설명하면서 기독론의 삶의 자리와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해 살펴보았다. 여기서 몰트만의 기독론은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성서를 중심으로, 역사적 단계별로 이야기하면서, 삼위일체적 관점에서 기독론의 근거를 삼고 시작하여, 내용상으로는 종말론적 역사와 우주를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새 창조의 완성의 길에 서게 한다. 이러한 길은 바로 기독론의 삶의 자리이며, 이 자리가 그리스도의 구원이 선포되는 곳이고 이루어지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 모든 기독론의 방법을 변증법적 방법으로 논리 있게 전개한다. 이 모든 방법에서 몰트만의 기독론의 특징을 몇 가지를 찾을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한가지로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표현할 수 있지만,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사회적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활동, 현존하는 그분의 인격적 회상과 경험됨, 그의 고난의 삶에 있어서 희망, 부활을 통한 새 창조의 구원에 이르기까지 살펴보았다. "현존하는 그리스도"는 사회적 삼위일체로 현존한다는 것은 몰트만의 기독론의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은 그의 인격적 회상에서 경험될 때 종말론적 인격, 신학적 인격, 사회적 인격으로 회상됨과 동시에 현재 경험된다. 그리고 사회적 삼위일체로 현존하는 그 분은, 자신의 고난의 삶을 통한 묵시사상적 희망을 보여주는데, 이 고난의 삶에 있어서 희망은 고난의 삶을 교제 가운데 사귐으로 나타났으며, 이 고난은 묵시사상적 희망으로서 새 창조의 시작의 빛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살펴 본 특징은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신 현존하는 그리스도"는 종말론적으로 새 창조의 완성을 그 분을 통해 미리 보여 주셨다. 여기서 나타나는 종말론적으로 현존하는 그분은 복음을 통해 전해지고, 경험되어진다. 그리고 이 세계의 모든 것은 종말론적 역사와 우주로 이해되어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권세의 통치 아래 있으며, 이 통치는 곧 새 창조의 완성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영광 중에 희망하고 경험하는 것이다. 이러한 희망과 경험은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새 창조를 완성하는 길에서 현재화되고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 길은 사도직 안에서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길이며, 말씀의 선포와 성례전, 형제의 친교를 통해 현실적으로 나타난다. 또한 그 분의 약속 가운데 가난한 자들 속에서 현존하심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러한 현존하심은 신앙공동체의 형제들이 사랑의 교제 안에 있음 같이, 이들과 가난한 자들과의 진정한 형제 사랑을 책임 있는 길에 서게 하는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약속에 근거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존하심이 궁극적으로 유지되는 것은 바로 그 분의 파루시아에 있다.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임재는 새 창조를 완성하는 우주적 구원의 길을 유지하고 기대하게 하는 힘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현존이 새 창조의 완성과 하나님의 온전한 나라로 신자들과 그들의 공동체를 초대하여, 부활한 주님을 기억하는 성례전의 잔치 가운데 우주적 구원의 길에 서서 경주하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를 희망하게 한다. 이렇게 몰트만의 기독론의 특징을 "현존하는 그리스도"로 이해하고, 현실의 역사에 밀착된 기독론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생동감 있게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고통의 몸부림의 현존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발견하게 되었고, 현존하시는 분의 인격적 회상을 통해 오늘날에도 경험되어지는 "현존하는 그리스도"와 따뜻한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종말론적으로 현존하는 그분을 뵈올 때, 우리의 실존과 대한민국 교회의 앞날에 새로운 희망이 밝아졌으며, 그 희망은 우리를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길"에 서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경주하게 하는 삶의 능력이 되었다. B. 대한민국 교회의 현존하는 그리스도 기독교의 신앙의 중심이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것이며, 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사명이라면, 대한민국 교회가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신앙 공동체가 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인류를 구원하시고 온 우주를 새 창조의 완성의 길에 서게 하시는 "현존하는 그리스도"가 신앙 공동체인 하나님의 교회를 새 창조의 길에 서서 경주하게 하신다. 그 경주의 경험은 창조 이전부터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능력 안에 "현존하는 그리스도"로 계시되었다. 그래서 계시된 "현존하는 그리스도"는 대한민국 교회에 경험되어졌으며, 역사의 현재 가운데, 그리고 그 중심에 우뚝서 현존하신다. 이러한 "사회적 삼위일체로 현존하는 그리스도"가 대한민국 교회에 경험되어져 교회 공동체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세우시고, 우리 민족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통일시켜,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세계를 향해 선교하는 대한민국으로 세워, 온 인류를 주님의 품에 안기게 하는 길은 무엇인가? 몰트만의 기독론에서 그 특징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몰트만의 기독론의 특징 가운데 먼저 "사회적 삼위일체로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대한민국 교회에 제안을 할 수 있다. 하나님의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삼위일체로 현존하심을 경험해야 한다. 그것은 교회의 주체가 삼위일체 되신 그리스도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 말은 교회의 본질이 삼위일체 되신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구원 역사에 있음을 교회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교회는 "삼위일체로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새 창조의 구원 행위를 경험하고 그 길에 서서 경주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 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성을 경험해야 한다. 이것은 부활한 주님을 경험하는 이들은 모두 그 인격성을 회상하는 가운데 현재 경험하게 된다. 대한민국 교회는 부활한 예수를 회상의 경험 가운데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인격성을 종말론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경험하여 구체적인 하나님의 구원 행위에 동참해야 한다. 회상되는 그리스도의 인격이 그의 삶에서 나타났듯이,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인격성이 경험되어지는 구원의 삶의 자리를 찾아 대한민국 교회는 파송되어야 한다. 세 번째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삶과 사귐의 교제를 대한민국 교회는 "현존하는 그리스도" 안에서 경험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의 고난은 부활로 통해 새 창조의 희망을 주는 묵시사상적 경험이었다. 이것은 대한민국 교회가 "현존하는 그리스도"와 고난의 사귐을 통해 이웃의 고난과 자연의 고난을 함께 나누고 사귐으로써 새 창조의 시작의 희망을 종말론적 부활의 신앙으로 제시해 주어야 하고, 그 현실의 삶 가운데 구체적인 희망을 제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네 번째는 "현존하는 그리스도는 새 창조를 완성하는 길"에 경험되어 진다. 이 말은 대한민국 교회가 그 도상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도상의 장소와, 그 도상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의 중요함이 내포되어 있다. '새 창조를 완성하는 길'에서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약속인 사도직과, 가난한 자들과, 그의 파루시아에 근거할 수 있다. 새 창조를 완성하는 길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곳에 임하기를 소망하는 길이며, 또한 이 길은 "현존하는 그리스도"가 경험되어지는 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교회는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직과 현존을 경험하는 성례전, 형제 사랑으로 하나되는 공동체에서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경험해야 한다. 이 경험의 길은 "현존하는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야 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순종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현존의 약속인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의 임재를 기다리며, 이 모든것에서 그리스도의 현존하심을 경험하는 공동체로 거듭나야 하겠다. 그렇게 될 때 "현존하는 그리스도"께서 대한민국과 온 세계와 전 우주를 하나님의 나라로 새 창조하는 완성하심을 경험하게 되고, 대한민국 교회도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우주적 구원의 길에 서 있음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길을 인식한 대한민국 교회는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길에 겸손한 자세로 서서 힘차게 경주하는 소명을 언제나 삼위일체로 현존하는 그 분을 통해 경험해야 한다. 현존하는 그 분을 통한 경험이 있을 때, 대한민국 교회는 그 분의 권세와 능력 안에서 구원의 복음을 삶의 자리에서 선포할 수 있다. 그리고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기다림과 희망 가운데서, 그분의 파루시아로 오는 영광의 날을 소망하며, 하나님의 나라의 현존을 종말론적으로 경험하는 은혜를 받게 된다.

      • 요한계시록의 서사적 기독론에 관한 연구 : 네 명의 기독론적 인물들을 중심으로

        허창윤 장로회신학대학교 2022 국내박사

        RANK : 247806

        본 논문은 계시록에 나타난 네 명의 기독론적 인물인 ‘예수 그리스도(VIhsou/j Cristo,j), 사람의 아들 같은 이(o[moion ui`o.n avnqrw,pou), 어린 양(avrni,on), 충신과 진실(pisto.j kai. avlhqino,j)’을 중심으로 요한계시록의 서사적 기독론(Narrative Christology)을 연구하고, 계시록에 대한 기독론 중심적 해석을 통해 교회에 유익을 주는데 그 목적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vApoka,luyij VIhsou/ Cristou/, 계 1:1)라는 말로 시작되는 계시록은 기독론 중심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는 교회를 위한 신약의 문서이다. 그럼에도 계시록 연구는 기독론 중심적으로 진행되지 못하였으며 교회에 유익을 주고자 하는 본래의 목적에 집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 이유는 계시록이 다루고 있는 종말 심판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편중된 관심사와 더불어 계시록의 독특한 문학적 특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성경 연구에 있어서 역사 비평적 연구가 가져온 수많은 공헌에도 불구하고 계시록은 유독 그 혜택을 많이 받지는 못하였는데, 이는 계시록이 서사성을 지닌 기독교 묵시문학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학비평의 하나로 새롭게 대두된 서사 비평은 계시록의 서사적 특성을 감안한 본문 중심의 연구를 가능하게 하였으며, 복음서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서사적 기독론 연구를 계시록에도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계시록에는 네 명의 기독론적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 인물들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 공통적으로 가리키고 있으면서도 각각 다른 이름으로 구분되어 등장한다. 그 등장의 시점을 살펴보면 계시록의 네 가지 이야기 층과 연관이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첫 번째로 등장하는 인물은 ‘예수 그리스도(VIhsou/j Cristo,j)’로 계시록의 가장 바깥층인 편지의 서언(계 1:1~8)에서 처음 등장한다. 두 번째는 ‘사람의 아들 같은 이(o[moion ui`o.n avnqrw,pou)’로 요한의 첫 환상과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계 1:9~3:22)에서 새롭게 등장한다. 세 번째는 ‘어린 양(avrni,on)’인데, 계시록 4장부터 시작되는 하늘 보좌 환상에서 처음 등장하며, 마지막으로 ‘충신과 진실(pisto.j kai. avlhqino,j)’은 초월적 세계의 종말 전쟁과 그 결과(계 12:1~22:5)를 다루고 있는 또 다른 이야기 층에서 새롭게 등장한다. 이러한 네 인물의 등장은 계시록의 네 이야기 층과 연관이 된다. 첫째는 계시록의 액자형 구조의 가장 외형을 담당하는 교회를 향한 실제적인 편지(계 1:1~8, 22:6-21)이다. 다음으로는 일곱 교회를 향한 메시지를 다루고 있는 예언적 편지(계 1:9~3:22)이다. 세 번째로는 요한의 하늘로의 여행으로 시작되는 본격적인 환상 이야기로 실제적 세계의 종말 심판을 다루고 있으며(계 4:1~11:9), 마지막으로는 초월적 세계의 종말 전쟁과 그 결과를 다루고 있는 전쟁 이야기(계 12:1~22:5)이다. 각각의 이야기 층은 ‘교회가 마주한 실제적 현실, 교회가 마주한 영적 현실, 온 세상 향한 현실적 종말 심판, 천상 세계에서 일어나는 영적 종말 전쟁’이라는 주제들을 중심으로 갈등의 양상을 드러내는데, 이 갈등 해결의 중심에 서사적 기독론이 위치하고 있다. 각 기독론적 인물들이 포함된 이야기 층을 중심으로 한 연구를 통해 우리는 이 인물들이 각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갈등의 해소를 위한 필수적인 존재임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내재저자가 내재독자에게 기독론 중심적인 소망을 전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교회는 계시록에 대한 기독론 중심적 이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확실한 구원의 소망을 발견하며, 그 소망은 오늘을 승리하며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 고대 기독론 논쟁에 관한 연구 : 신약성서 시대에서 칼케돈 회의까지를 중심으로

        안치상 한일장신대학교 한일신학대학원 2004 국내석사

        RANK : 247806

        지금까지 신약성서시대의 기독론으로부터 시작하여, 우리가 지금도 의지하고 참고하는 칼케돈 신조의 기독론이 있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짧지만 참고로 칼케돈 회의에서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이의 변경을 시도한 두 흐름 등을 살펴보았다. 기독론을 확립한 기간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겠으나, 대체적으로 삼위일체 논쟁을 정리한 325년 니케아회의에서 시작하여 680년 콘스탄티노플회의로 봐야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이는 그 전부터 있어왔던 전통적인 생각들을 이 시기에 잘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이미 기독론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은 신약성서의 기독론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고백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유대적인 생각도 예수를 메시아로, 속죄자로,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고 있으며, 바울은 이를 더욱 발전시켜 확고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아로, 구속자로, 사랑의 실천자로 알려주고 있다. 요한도 이에 보충하여 예수에 대한 생각들을 더욱 넓혀주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기독론의 핵심인 신성과 인성의 조화이다. 자칫 예수의 하나님 아들 됨과 그리스도, 즉 메시아이심을 밝히는데 주력을 하다가 예수의 완전한 사람됨을 간과하기 쉬운데 이에 대해서도 신약성서는 너무나 충분하게 우리에게 예수의 인성에 대한 증거들을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에서 나아가 예수의 신성과 인성의 절묘한 균형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독론 논쟁이 있을 때마다 승리했던 기독론의 근거를 성서에 의지해서 찾고 있는 것에서도 분명하다. 하지만 늘 그렇듯 예수에 대한 목격자들의 증언의 영향이 세월에 따라 희미해지면서, 신약성서가 기독론에 대한 바른 시각을 충분히 제공해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해석의 오류가 생기게 된다. 이로써 기독론에 혼란을 야기 시키게 되는데, 이는 신약성서 시대를 지나 기독교가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받으면서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문화만큼이나 생각만큼이나 기독론에 대한 해석도 다양해지기 시작한 것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흐름은 크게 세 가지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무시하고 인성만을 강조하는 인성 기독론에 속하는 흐름이 있는데, 에비온주의자들과 군주신론적 기독론자들, 양자설을 주장하는 이들이 여기에 속하며, 이들과는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무시하고 신성만을 강조하는 신성 기독론에 속하는 흐름으로 가현설을 주장하는 이들과 영지주의자들이 있다. 하지만 신약성서에서 내포하고 있는 기독론의 정통, 즉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균형 있게 주장하는 신성-인성 기독론에 속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영 기독론자들과 로고스 기독론자들이다. 이들로 인해서 기독론은 좌우의 치우침을 피해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후에 이러한 기독론에 대한 세 가지 흐름은 논쟁을 통해서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디옥 학파로 재편되게 된다. 쿠르츠(Kurtz)는 이 두 학파에 논쟁 상황에 대해서 매우 적절하게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이들 두 학파는 각각 기독교 교리의 한 면의 진리만을 제시하였는데, 교회는 그 둘을 결합시켜서 완전한 진리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이들 두 학파는 그들의 일면면적 진리를 점점 더 편파적으로 강조하게 되었으며, 차츰 적극적인 오류의 방향으로 범하게 되었는데, 그 하나는 그리스도의 두 성질을 분리시킨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혼동시킨 것이었다. 교회는 이러한 견해를 모두 배격하고 그들의 근저에 있는 진리만을 취하여 선포하였다." 기독론의 확립 과정의 그 주요했던 시기는 325년에서 680년 사이로 이를 그 기간에 소집된 에큐메니칼회의를 중심으로 그 특징을 요약해 보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반신반인적 존재로 해석하게 된 아리우스주의를 정리했던 니케아회의(325)는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하나임을 밝혀 삼위일체를 확립하였으며, 성육신한 로고스의 한 본질을 말한 아폴리나리우스를 정리했던 콘스탄티노플회의에서는 그리스도의 참 인성을, 시릴과 네스토리우스의 논쟁 때문에 소집되었던 에베소회의에서는 품격(person)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통일성을 각각 확립 강조하였다. 또한 451년 칼케돈회의에서는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두 본성이 한 품격에서 통일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으며, 680년 콘스탄티노플회의에서는 553년 회의에서 그리스도가 두 얼굴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그리스도가 두 의지를 소유하고 있으나 그 의지는 서로 충돌하지 않고 인간적인 의지가 신적인 의지에 예속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기독론의 확립 과정의 그 주요했던 시기를 그 핵심 내용만을 가지고 황승룡 교수는 다음과 정리를 하였다. 우선, 정통적인 기독론의 핵심 내용은, ① 양성의 실제성(the reality of the two natures), ② 양성의 완전성(the integrity of the two natures), ③ 양성이 연합된 후에도 각각의 독특성(the distinctness of the two natures after the union), ④ 결합된 후의 위격의 통일성(the Oneness of personality)이다. 그리고 기독론에서 잘못을 범한 경우는, ① 에비온주의(Ebionism) : 신성의 실제성 부인(denied the reality of the divine nature), ② 영지주의(Gnosticism) : 인성의 실제성 부인(denied the reality of the human nature), ③ 아리안주의(Arianism) : 신성의 완전성 부인(denied the integrity of the divine nature), ④ 아폴리나리우스주의(Apollinarianism) : 인성의 완전성 부인(denied the integrity of the human nature), ⑤ 네스토리안주의(Nestorianism) : 결합된 후 성의 차이를 지나치게 강조한 점(overemphasized the distinctness of the nature after their union), ⑥ 유티키안주의(Eutychianism) : 성의 결합을 너무 융합시키므로 인성을 희생시킨 점(so fused the nature in the union as to sacrifice the human nature) 등이다.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