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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본 춘향전』의 성립과 그에 따른 고소설의 위상 변화

        강진모 연세대학교 대학원 2003 국내석사

        RANK : 247791

        본 논문은 <춘향전>이 뛰어난 고소설로 인정받게 된 계기를 찾아 본 것이다. 그러기 위해 1913년 이야기책 <춘향전>이 최남선에 의해 고본 춘향전 이라는 이름으로 활자언어화되는 사건이 곧 <춘향전>이 그 당시 수입된 문학이라는 개념과 만나는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확인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이후 <춘향전>이 고전문학으로 지위를 부여받고, 가치가 수직 상승하는 모습을 살펴봄으로서, 고소설의 영역이 국문학 안에 설치되고, 국문학사가 만들어지는 방식을 알아본다. 근대계몽기에 소설은 제국주의의 먹이가 되어가는 상황에서 시대의 요청에 부응해야 하는 ‘읽을 것’이 되어야한다고 여겨졌다. 이야기책은 근대계몽기의 식자들에 의해 어떠한 효용도 가지지 못하는 해악한 것으로 비판받았다. <춘향전>은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 ‘읽을 것’이 아니라 그저 ‘보는 것’이었고, <춘향전>을 보는 행위 자체가 문제시되었다. 그렇다고 이런 비판들이 이야기책을 읽는 사람들을 방해한 것은 아니다. 이야기책 <춘향전>은 여전히 소리 없이 읽혀지고 향유되었다. 그러나 읽혀지기만 했지, 읽는 사람들에 의해 어떤 심미적 가치부여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오락거리이지 문학작품으로 대접받은 것은 아니었다. 근대계몽기에는 아직 이야기책을 고전문학으로 볼 수 있는 틀이 형성되지 않았다. 이야기책은 번역어로서의 문학이라는 개념이 들어오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 한다. 1910년대 최남선, 이광수 등의 일본유학생들은 문학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고, 국문학의 설정을 논의한다. 이 과정에서 <춘향전>은 문학으로 여겨지고, 보전·보급해야 할 고전의 지위를 획득한다. <춘향전>이 국문학이 되기 위해 활자 언어화되는 과정을 거치는 데, 서구의 문학 개념을 가지고 나온 처음 것이 최남선의 고본 춘향전 이다. 고본 춘향전 은 지금 남아있는 이본 중에서는 향목동본과 가장 거리가 가까운 것으로, 최남선이 향목동 세책방을 언급한 것으로 보아 그 곳의 세책을 활용하여 만들어진 듯 하다. 최남선은 고본 춘향전 을 만드는 데 있어서 기존의 세책에 수정과 삭제를 가하였다. 수정은 <춘향전>을 더욱 국문학답게 만들려는 의도에서였다. 시조가 ‘조선문’으로 되어있어서 고전시가의 시분과를 점령했듯이, 이야기책은 같은 이유로 국문학 안에서 고소설의 위치에 올라선다. 그러나 최남선이 볼 때, <춘향전>에 난무하는 중국의 인명과 지명들은 국문학에 편입시키기에는 불편한 것들이었다. 국문학은 중국의 것이 아닌 것에서 찾아졌다. 최남선은 고본 춘향전 을 <춘향전>에 나오는 중국의 인명과 지명을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때때로 조선의 인명, 지명으로 바꾸었다. 삭제는 음란한 이야기책에서 읽을 만한 소설로 변신하기 위해서였다. 음란한 부분은 이야기책 <춘향전>에서 여러 가지 재미를 주는 다른 장치들과 구분이 되어 있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최남선은 음란한 부분을 보전·보급할 고전문학에 있어야 할 것이 아닌 것으로 여기고 삭제한다. 삭제는 수정보다 철저히 행해져서 음란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모조리 잘려 나갔다. <춘향전>은 음란한 부분을 잘라 버리자, 연애로 읽힐 수 있게 되었고, 연애로 읽히는 것은 이야기책이 소설로 읽힐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연애이야기가 된 <춘향전>은 내용에서도 국문학으로 평가받을 수 있게 되었다. <춘향전>이 국문학에 들어옴과 동시에 국문학은 자신의 영역을 무한대로 확장시킨다. <춘향전>이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과거에 있었던 연애소설로 읽히면서이다. 연애는 생소한 단어였지만, 또 한편으로는 마치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으로 여겨지면서, 과거의 이야기책들과 새로 쓰여 질 소설들을 자연스레 한 울타리 안에 집어넣을 수 있게 하는 도구가 되었다. 고소설의 연애는 억압적인 봉건사회에 대항하여 근대를 지향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진화하는 국문 학사를 만드는 좋은 소재가 되었다. 문학사는 연애사와 길이와 폭을 같이 하고, 연애가 인간관계의 보편적이고도 특징적인 것이라는 해석처럼 문학도 마찬가지의성격을 지닌 것으로 여겨졌다. <춘향전>은 ‘ 고본 춘향전 의 성립’ 이후 이광수의 개작, 김태준의 긍정적 가치 평가를 받으며 더욱 연애소설로 읽히게 되고, 가장 주목을 받는 조선의 고전문학으로 자리매김한다. 중세와 근대는 연애를 통해, 또 민중성이라는 근거를 통해 연속적인 것으로 파악되는 실마리를 갖는다. <춘향전>은 이전의 고전소설이 발전해 온 증거물로, 또 근대소설로 연결지어질 수 있는 맹아들을 간직한 연애소설로 해석되며 고전과 소설이란 이름으로 누릴 수 있는 온갖 영예를 안게 되는 것이다. This dissertation is based on the search of opportunity, which <Chunhyung-jeon> was acknowledged as one of the outstanding Korean classical novel in our age. This dissertation is verifying such opportunity under the hypothesis that the incident in 1913, which Choi Nam Seon published Classic Chunhyang-jeon in printed language, was the first encounter to the concept called 'Literature' at the time. Moreover, it will research on how Korean classical novel was created within the field of Korean literature and how history of Korean literature was formed by looking at <Chunhyang-jeon> being acknowledged as Korean classical novel and it value being upgraded. Novel in Modern Enlightenment Period was considered as 'something to read', which satisfies the historical needs at the time, when Korea was under the influence of repressive imperialism. 'Storybook' was severely criticized by the intellectuals of Modern Enlightenment Period for being useless. <Chunhyang-jeon> was among them. It was perceived as 'something to see' rather than 'something to read' and because of that, 'seeing' the <Chunhyang-jeon> was considered offending. However, such criticism didn't prevent people from reading Storybooks. Storybook <Chunhyang-jeon> was silently read and shared by public. But people only read it and never made any appreciation. It was treated only as source of entertainment not as literature. Storybook meets its turning point as 'Literature' in translated term was introduced. People like Choi Nam Sun, Lee Kwang Soo and other intellectuals, who studied literature in Japan, explained what literature was and started discussion on establishment of Korean literature. During this process <Chunhyang-jeon> was acknowledged as literature and gained its status as Korean classical literature, which should be preserved and popularized. <Chunhyang-jeon> was published in printed language in order to be a Korean classical literature and its result was Classic Chunhyang-jeon made by Choi Nam Sun. Choi Nam Sun made great deal of modification and elimination in original rental-storybook while making <Chunhyang-jeon> a Korean classical literature. The reason he modified <Chunhyang-jeon> was to make it more eligible as Korean Literature. As 'Shijo' conquered poetry section of Classic Poetry for being written in 'Chosun language', Storybook took its status as Korean classical novel in Korean literature for same reason. However, from Choi Nam Sun's view, many names and geographical designations in Chinese written in <Chunhyang-jeon> was inadequate for Korean literature. Korean literature was found in something that wasn't Chinese. Choi Nam Sun changed many Chinese names and geographical designations into Korean despite the unnaturalness. Elimination was made in order to transform the piece from lewd Storybook to readable 'novel'. Lewd parts of <Chunhyang-jeon> wasn't separated from other entertaining elements. However to Choi Nam Sun, these lewdness wasn't a part to be preserved and popularized. Elimination process was more strict and severe than modification, that any part that showed slightest of lewdness was cut out from the story itself. After cutting out the lewdness of <Chunhyang-jeon>, it was able to be read as 'love story' and being treated as love story made it transform itself to novel from Storybook. Love story <Chunhyang-jeon> was then acknowledged as literature in contents as well. With <Chunhyang-jeon> converged into its field, Korean literature began to expand its range. Important role of <Chunhyang-jeon> began as people started to read it as old love story. Although 'love' was unfamiliar concept, it was considered as old as that of history of mankind and because of <Chunhyang-jeon>, it was possible to place old Storybooks and newly written novel into same field. Love in old novel was over interpreted as fresh popularism in repressive feudalism society and became good ingredient for making evolving history of Korean literature. The history of literature share its length and width with that of 'love' and as love is interpreted as representative of universal and unique characteristics of human relationship, literature was considered to share same value of love. Love and novel knit each other and created a natural human history. Just like well made suit, <Chunhyang-jeon> plays exactly fitting role in such process and therefore earned its value as ‘classical novel’. After establishment of Classic Chunhyang-jeon , <Chunhyang-jeon> was adapted by Lee Kwang Soo and was well evaluated by Kim Tae Joon and became more of a love story and most noticeable classical novel in Chosun period. Middle and Modern ages found an opportunity to consider themselves as continuous through love and popularism. <Chunhyang-jeon> was the key element, which made all the process possible. And as a reward, it received an honor of being acknowledged as 'classic' and as 'novel'.

      • 國文學의 文獻批判的 硏究方法試考 : 山城日記의 本文 轉化 批判 硏究

        김순실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1959 국내석사

        RANK : 247695

        古典的인 轉寫本을 檢討한다는 것, 즉 原文再建을 꾀한다는 것은 비단 國文學에 있어서만이 必要不可缺한 것은 勿論 아니고 科學的인 學問 全般에 걸쳐서 一段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作品을 轉寫한다는 것은 곧 그 轉寫本에 誤謬을 만든다는 말과도 通할 수 있는 것이다. 人間의 行爲에 誤謬가 隨伴한다는 것은 빼놀 수 없는 現實的인 現象이다. 그리고 原作者의 原年記本이라 할지라도 誤謬는 반드시 隨伴되는 것이다. 이 두 現象은 心理學的인 하나의 빼놀 수 없는 事狀이기 때문이다. 한 作品이 곧 그 作者의 思想의 結晶이라고 한다면 그 作品에 誤謬가 있어선 完全한 그 作者의 思想이 反映되었을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東洋과 西洋의 모든 學者들은 自己가 專修하려는 學問의 對象이 되는 作品과 文獻을 우선 正確하며 正當하고 純粹한 텍스트의 位置에 올려놓으려고 努力하는 것이 그의 學問의 基礎工事였을 것이다. 이 第一次的인 學問의 準備가 끝나지 않고 즉 原鑛物과 같은 素材의 文獻을 學問의 對象으로 삼는 다는 것은 곧 作戰計劃없는 戰鬪와 같은 것이요 모래 위에 집 짓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만큼 文獻批判的 措置란 곧 그 學問의 與否를 決定짓는 것이 된다. August Boeckh 는 「批判」과 「解釋」의 原理를 古代學的文獻學의 二大原理로 했고 Gustaue Rudler는 「批評은 文獻과 같이 行하여진다. 그리고 學者의 最初의 配慮는 自己의 主題에 關하는 文獻을 調査하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라 하며 lilliographil의 重要性을 說破하고 「原狀修復」에 關하는 方法論을 말하였다. 또 梁啓超는 그의 著「淸代學術槪論」에서 많은 僞書 및 書中의 錯亂을 容易히 識別하여 精力의 浪費를 防止하였다. 胡樸安은 그의 著 「校讐學」에 있어서 「泊書」와 「治學」의 內容을 說明하고 治書가 文獻 그 自體의 眞實性을 求하는 것이요 治學은 그 文獻에 씨워진 內面的인 意味를 밝히지 않으면 안된다고 論한 다음에 「治學은 반드시 書本으로써 根據를 삼는다. 萬若 書本이 眞이 아니면 닭는學도 반드시 敷淺誤繆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治書는 곧 治學의 基本工夫다 이를 判定하지 않으면 안된다.」 라 했고, 蔣元卿은 그의 著 「校讐學史」에서 「古書의 傳流는 곧 벌써 本來의 面目을 잃는 것이다. 後人은 每日 誤書를 읽어 作者의 本意를 잘못 받아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一字의 是非로써 學者는 □□의 爭辯을 引起한다. 故로 교수의 學은 實로 學者에 반드시 있지 않으면 안될 基本學術이 되어야 한다」라 하였다. Paul maas는 그의 著 「本文批判」에서 가장 可能的으로 가까운 본문의 整定이다.」라고 하였다. 以上의 文獻學者들의 말과 같이 文獻批判 즉 本文批判은 그 學問의 第一步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意味에서 나는 그 方法을 우리 國文學에 援用함으로써 國文學의 正道를 열고자 하는 바이다. 그러나 나의 獨創的인 그 方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선 그 方法을 배우는 面에서 日本의 有名한 文獻學者인 池田龜鑑氏의 「古典の批判的處置に關する硏究」의 一部方法을 援用하기로 하였다. 즉 池田龜鑑氏의 方法으로써 우선 「山城日記의 三異本을 그 對象으로하고 原文을 索出코저 하였으나 具體的인 結論은 얻어지지 못했으나 좀더 時日을 갖는 동안에 그 曙光을 얻을 것 같은 餘有는 把握하였다고 본다. 第一部에선 池田氏의 方法論을 攝取했고 第二部에선 池田氏의 文獻批判 즉 本文批判의 方法으로써 「山城日記」를 整理했고 第三部엔 「山城日記」의 세 異本들 가운데 서로 異文된 곳을 索出하여서 對照하여 놓았다. 이 第三部의 異文對照를 잘 주물으므로써 그 本文의 再建이 가능하리라고 自信 하는 바이다. 이 課題는 時日이 解決할 것으로 믿는다. 비단 「山城日記」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古典的 存在인 모든 轉寫本의 異本이 以上의 方法으로써 一次 整理되지 않고 如前히 流布된다면 우리의 學問은 結局 하나의 空念佛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旣往에도 大堂 崔南善 爲堂 鄭寅普 先生들의 業績이 없는배는 아니나, 좀더 科學的인 이 方面의 硏究가 切實히 要請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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