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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엘리사벳 A. 존슨의 삼위일체론 연구

        구윤정 한신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2010 국내석사

        RANK : 249663

        본 연구는 우선적으로 존슨의 소피아삼위일체론 연구를 통하여 여성과 모든 사회적 구조적 약자들이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해방적 예배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에서 시작되었으며 일차신학과 이차신학의 영역에서 실천성과 이론을 상호 반추하며 다양하고 세부적인 주제들을 지닌 논의들을 이끌어내고자 하였다. 또한 소피아삼위일체론의 의의를 재조명하고자 하였다. 그리스도교신학의 삼위일체론의 전환의 개막을 이끈 신학자 칼 바르트(K. Barth)의 영향 이래로 20세기 후반동안 입증되어 온 신학 속에 있는 최고의 비밀들 중의 하나인 삼위일체론은 이후 “삼위일체신학의 르네상스(Renaissance)”라 일컬어지며 여성신학에까지 이어진다. 여성신학에서 삼위일체론의 르네상스는 엘리사벳 A. 존슨(Elizabeth A. Johnson)과 캐서린 모리 라쿠나(Catherine Mowry LaCugna)에 의한 저서들을 통해 논의되며 삼위일체의 이론과 실천의 영역이 확보된다. 존슨과 논의에 참여한 여성신학자들에 의하면 삼위일체론의 하나님 언어의 고찰을 통하여 예배 언어의 범위를 확장하며 여성 그리고 모든 교회공동체의 구성원을 포용할 수 있는 하나님 언어를 구하고 실천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에 있어 핵심적이라고 한다. 필자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인 삼위일체론의 논의를 통하여 모든 신앙의 중심에는 살아계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체험이 있다는 것과 여성체험의 시각에서도 스스로 역사 안에 개입해 들어오는 사랑이신 하나님의 신비와 관련한다는 것을 먼저 존슨의 소피아 삼위일체론을 중심으로, 다음으로 라쿠나와 더크의 삼위일체론 논의를 중심으로 대화하고 고찰하여 여성신학에서 삼위일체론의 르네상스의 물결이 이루는 삼위일체론 논의와 이러한 하나님언어의 실천이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예배에서 중요하며 핵심적이라는 인식의 과정을 거쳤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인들은 존슨의 소피아삼위일체론 연구를 통하여 얻은 바로부터 실천하고자 할 때 그리고 하나님 언어의 여성성과 남성성을 논함에 있어 근본적으로 이분법의 논리를 넘어서 모든 약자들을 해방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여성신학에서의 삼위일체론 논의는 이러한 여남 이분법적인 논의를 넘어서 가부장적, 세계자본주의적 사회구조 안에서 신앙적, 성적, 인종적, 정치적, 경제적, 생태 환경적 이유로 억눌림을 당하는 모든 약자의 해방의 문제로 나아간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여성신학에서의 삼위일체론 논의에 관련한 신학의 기준점을 마련하려는데 이 글의 목적이 있다. 주제어: 소피아삼위일체론, 여성신학에서의 삼위일체론의 르네상스, 여성신학, 관계성, 하나님 언어, 여성해방적 예배

      • 민중신학의 관계철학적 연구 :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를 중심으로

        서무경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21 국내석사

        RANK : 249663

        본 논문은 다원화되며 다양한 고통의 문제들이 발생되는 현실을 마주하며 이에 대한 신학적 대답으로 민중신학을 말하고자 한다. 민중신학은 현실 속 고통의 문제에서 그에 대해 신학적 대답을 하며 시작된 학문으로 역사 속 고통의 문제에 대해 선지자적인 역할을 감당해왔기에 가능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다원화된 세상 속에서 고통의 문제들의 원인 또한 더 다양하고도 새롭게 생겨나기에 민중신학에서도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본 논문은 새로운 시각으로 마르틴 부버의 관계론을 제시하려한다. 마르틴 부버는 인간의 실존을 참된 관계 속에서 찾은 학자이다. 그는 사람의 관계에서 다른 존재를 사물로 여기는 ‘그것’의 관점을 통해 고통의 문제가 발생된다고 보았다. 필자는 이 관점을 민중신학과 접목하며 오늘날의 고통의 문제를 바라보고 관계의 세상 속에서 민중신학이 있어야할 사건의 현장은 어디 있는지 밝히며 그 속에서 민중메시아의 역할은 무엇인지 제시하고자 한다. 본 논문의 전개과정은 다음과 같다. 제 1장 서론에서 연구동기와 목적 및 연구방법과 방향에 대해 다룬다. 제 2장은 마르틴 부버의 관계론에 대해 탐구할 것이다. 그가 살아온 생애와 사상을 살펴보고 또한 그가 말한 관계론은 무엇인지 탐구하며 정리할 것이다. 제 3장에서는 앞서 논의된 마르틴 부버의 관계적 관점을 통해 민중신학을 이해할 것이다. 이 장을 통해 새로운 관점인 ‘관계적 관점’을 지닌 민중신학을 모색하며 발견해낼 것이다. 그리고 제 4장을 통해 우리는 관계적 민중신학이 고발해야할 현실 속 고통의 문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민중메시아의 역할은 무엇인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마지막 제 5장은 앞서 논의된 내용들을 정리하고 본 논문의 주장을 명확하게 할 것이며 앞으로 남은 과제들은 무엇인지 이야기할 것이다. 이 논문을 통해 민중신학은 관계의 세상에서 혐오와 단절을 생산해내는 악의 구조를 밝혀내며 관계의 세상의 주체는 이 세상 모든 ‘나’이기에 ‘나’가 민중메시아의 사명을 감당할 때 그 구조에서 해방될 수 있음을 밝힐 것이다.

      • 존 카푸토의 약한 신학과 하나님 나라에 관한 고찰

        이민형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23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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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카푸토의 약한 신학과 하나님 나라에 관한 고찰 18세기 계몽주의 이래 근대성(modernity)의 합리주의에 맞게 또는 대항해서 신정통주의 신학, 신자유주의 신학 등이 등장하였으나 현대인들에게 삶과 종교 간의 괴리는 더 커지고 있는 듯하다. 이에 포스트모던 신학에서는 탈자유주의자들(postliberals)과 해체주의자들(deconstructionists)이 새로운 기획을 하고 있다. 급진적, 포스트모던적, 해체적 신학의 대표자인 존 D. 카푸토(John D. Caputo, 1940-)의 “약한 신학(weak theology)”은, 거대 담론을 불신하고 다양성에 주목하는 포스트모던 사회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으로 본다. 본 논문은 존 D. 카푸토의 본격적인 신학 저서인 『하나님의 약함: 사건의 신학(The Weakness of God: A Theology of the Event)(2006)』과 일부 저작을 중심으로 그의 신학적 접근 방법과 하나님의 약함, 하나님 나라를 고찰한 것이다. 그는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형이상학, 존재론적 신론에 근거한 전통 신학을 강한 신학으로 비판하면서, 하나님 이름을 사건으로 해체함으로써 하나님의 약함을 드러낸다. 이는 급진적 해석학의 일환인 사건의 신학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실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이름이요, 현존이라기보다는 우리를 향한 부름이요 약속의 이름이다. 그는 하나님의 약함에 천착하여 하나님 나라는 실체가 있는 왕국이라기보다는 가난한 자, 국외자 등 사회적 아웃사이더가 주인이 되는 역전과 변위의 신성한 무정부 상태라고 본다.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지만 세상 질서를 흐트러트리고 새롭게 재편하게 하는 비전이라 할 수 있다. 사건의 신학, “약한 신학”은 하나님은 누구/무엇인지, 하나님의 부르심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보고 재해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신을 존재론적 실체가 아닌 부름으로, 존재도 비존재도 아닌 유령으로 보는 카푸토의 기획은 기존의 기독교 전통을 새롭게 분석, 평가하고 전적으로 재구성하여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주제어: 급진적 해석학, 사건의 신학, 해체, 이름, 사건, 강한 신학, 약한 신학, 하나님 나라, 신성한 무정부, 유령 A Study on John D. Caputo’s Weak Theology and the Kingdom of God Lee Min Hyung Graduate School of Theology Hanshin University Since the Enlightenment in the 18th century, neo-orthodox theology and neo-liberal theology have appeared in line with or in opposition to the rationalism of modernity, but the gap between life and religion seems to be widening for modern people. In postmodern theology, postliberals and deconstructionists are making new plans. John D. Caputo’s “weak theology,” a representative of radical, postmodern, and deconstructive theology, is respected to have many implications for the people living in a postmodern society who distrust grand discourses and pay attention to diversity. This thesis is a study on John D. Caputo’s theological approach, the weakness of God and the kingdom of God focused on his full-fledged theological work, The Weakness of God: A Theology of the Event and some works. He criticizes traditional theology based on metaphysics and ontological theology pursuing universal truth as strong theology, and reveals God's weakness by decontruct God's name by the event. This is the theology of events as part of radical hermeneutics. The name of God does not designate a substance, but the name of an event; rather than a presence, it is the name of a call to us and a promise. With the motif of God's weakness he suggests that the kingdom of God is not a substantial kingdom, but a sacred anarchy of reversal and displacement in which social outsiders such as the poor and the marginalized become the hosts. It is impossible, but it can be said to be a vision that disrupts and reorganizes the world order. The theology of events, “weak theology,” opened the way for a newperspective and reinterpretation of who/what God is and what God’s calling is. Caputo's project, which regards God as a calling rather than an ontological entity, as a specter that neither exists nor non-exists, tells us that the existing Christian tradition must be newly analyzed, assessed, and completely reconstructed. Keywords: radical hermeneutics, theology of event, deconstruction, name, event, strong theology, weak theology, kingdom of God, sacred anarchy, specter.

      • 민중교회에 대한 새로운 이해

        조수정 한신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2009 국내석사

        RANK : 249647

        기독교는 처음 한국에 들어온 이래 가히 놀라만한 속도로 양적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러한 성장 뒷면에 감추어졌던 수많은 폐단들이 속속 들어나면서 오늘날 기독교는 크나큰 위기에 직면했다. 게다가 작년의 아프가니스탄 선교단 피랍사건 이후 더욱 심화된 기독교를 향한 불편한 시각들로 인하여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는 마치 애물단지와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나의 종교가 비종교인 혹은 타종교인에게 그렇게 비추어지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처음 신학을 하겠다고 신학교에 들어갈 때에는 그저 ‘행복하게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뿐 이었다. 입학하기 전 경험한 짧은 직장 생활은 나에게 자본의 논리에 좌지우지되는 내 자신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사회의 구조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게 해주었으며, 이러한 느낌은 물질에 의한 것이 아닌 진정한 만족과 행복을 누리고 싶다는 더욱 강렬한 욕구를 만들어냈다. 당시에는 ‘하나님의 일’이라고 한다면 단순하게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봉사하고 활동하는 것이 전부인 줄로만 알았다. 신학교에 들어와서 처음 만나게 된 민중신학도 생소하고 낯설 뿐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러나 첫 느낌에 ‘민중신학? 저기엔 뭔가 있는 것 같다’ 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한 확신이 지금까지 인연이 되어 민중신학을 계속 공부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덕분에 내가 해야 할, 그리고 하고 싶어 하는 행복한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논문은 그러한 관심을 바탕에 두고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절실히 필요한 교회의 새로운 형태에 대해 민중신학적 관점에서 정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미 한국 사회 속에 ‘교회’는 무수히 많다. 어두운 밤이 되면 붉은 십자가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보편적인 제도권 교회 안에서 진정 민중이 마음 편히 쉬었다 갈 곳은 찾기 어렵다. 안병무도 기득권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제도권 교회의 모습을 지적하였다. "오히려 제도교회의 존속을 위해서, 저들을 경원하고 점점 저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종교라는 담을 높여만 갔고, 더 피안적인 종교로 변모해 갔어요. 그런 결과로 현재까지도 민중이 들어올 수 없는 장애물이 무수히 많아졌어요. 제사지내도 안 되고, 술을 마셔도 안 되고, 담배 피워도 안 된다! 하지 말라는 게 자꾸 많아지니까 점점 못 들어오게 되는 거죠. 민중들이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습, 이를테면 막걸리 정도 먹는 것 까지 못하게 하니까요. 그건 교회에 들어오지 말라는 얘기죠." 민중들은 기존 제도권 교회의 관점에서 보면 변화와 선교의 대상이며, 동정의 대상으로 전락되기 일쑤이다. 그러한 실례들을 직간접적으로 접하고 듣게 되면서 진정 교회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넘지 못하는 교회의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를 깨닫게 되었고 그러한 교회의 모습에 대한 의문과 회의가 들었다. 그 뿐만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는 본래의 예수 정신을 망각한 채 양적 성장주의와 개인주의에 빠져있으며, 선교의 참 목적을 왜곡하여 교세 확장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필자는 급속한 성장의 이면에 많은 문제점을 떠안고 점점 교회의 본래 모습과 멀어져가는 한국 교회의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는 교회가 ‘민중교회’라고 본다. 또한 민중교회는 서구신학의 흐름을 그대로 답습하는 한국 기독교에 대하여 한국적인 바탕을 가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970-80년대에는 위와 같은 이해를 바탕에 두고 새로운 교회의 흐름으로써 민중교회가 등장하였고 다양하게 성장해왔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정체성의 위기를 겪으면서 대안이라고 생각했던 민중교회에서 조차 내부적으로는 기존 교회를 형식을 답습하며, 계층과 분열의 문제가 발생하고 민중이 없는 민중교회가 되거나 혹은 민중교회의 본래의 기능성을 상실하기도 하면서 민중교회 내부적으로 많은 고민과 변화를 추구하는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에 처하자 민중신학과 민중교회는 한국 사회 속에서 더 이상 설자리는 없는 현 시대 상황과 동떨어진 신학인 것처럼 평가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민중교회는 시대가 변화되고 달라진 만큼 그 흐름에 걸맞게 정체성과 사명을 회복하고, 새롭게 변화․갱신될 필요성이 있다. 논문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은 이들이 논문의 주제가 무엇인지 물어오곤 하였다. 민중교회에 대해 논문을 준비한다고 말하자, 어떤 목사님은 ‘민중교회 다 망한 것 아닌가? 요즘도 민중교회가 있나?’ 라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민중신학을 붙들고 있는 학자들과 민중교회를 지켜나가는 현장의 많은 목회자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듯, 민중신학과 민중교회는 지나간 과거의 것이 아닌 앞으로도 변화와 발전이 가능한 미래지향적인 것이다. 그 자리를 지켜나가고 있는 많은 이들이 여전히 민중신학과 민중교회에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논문은 이러한 인식 바탕으로 민중교회의 흐름을 정리하고, 21세기에

      • 구약성서를 통한 동물과 육식문화에 대한 재고찰

        장성휘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13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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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거 고기를 쉽게 먹을 수 없던 시절에 돼지 한 마리를 잡으면 온 동네가 잔치를 하던 때와 같은 의미일까? 아니면 고기 한 점을 먹기 위해 몇 시간을 걸어가는 불편을 감수하는 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사람들과 같은 의미일까? 우리에게 고기를 먹는 일은 어느새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매일같이 밥상에 올라오는 고기반찬, 때때로 시켜먹는 야식, 외식의 대명사 삼겹살 등. 우리는 자주 고기를 먹는다. 또 대형마트에 가면 먹기 좋게 손질된 고기들을 언제든지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고기는 이미 우리 식생활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한국육류유통수출협회(www.kmta.or.kr)에 의하면 한국인 1인의 연간 육류 소비량은 1995년 27.45kg에서 2010년 38.74kg으로 5년 사이 11.29kg 증가했다. 또 다른 통계에 따르면 미국인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이 이미 100kg을 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매일 같이 고기를 먹고, 그 맛을 즐기지만 우리의 먹거리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희생되고 있는지, 고기가 우리 식탁에 올라오기까지 얼마나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자라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항생제와 호르몬제를 먹어야 하는지 관심하지 않는다. 또 사람들이 먹기 위한 고기를 사육하기 위해 전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곡물들을 낭비하고 있는지, 그 이면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지 관심하지 않는다. 공장식 축산시설에서 발생되는 엄청난 양의 배설물이 대기오염, 토양오염, 수질오염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관심하지 않는다. 이 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크게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먹거리 특히, 육식의 문제가 우리가 직면한 생태계의 문제와 크게 관련 없는 별개의 문제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세계 교회가 생태 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1975년 케냐 나이로비에서는 제 5차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이하 WCC) 총회가 열렸는데, 이 회의에서는 생태계 위기를 인식하고 이를 신학과 교회의 핵심과제로 삼았다. 또 이 위기상황을 성서적인 창조신앙에 근거한 생태학적 신학으로 극복할 것을 촉구했다. 이것은 생태학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을 최초로 공식 표명한 것이었으며 이를 계기로 생태학적 성서해석이 시도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 1983년 케나다 벤쿠버에서 열린 제 6차 WCC총회에서는 자연보전의 문제가 신학적 토론과 실천 과제임을 재확인했고, 1991년 호주 캔버라에서 열린 제 7차 총회에서는 주제를 “성령이여 오시옵소서!”라고 하고 부제를 “창조보전”으로 정해서 이 문제를 계속해서 다루었다. 한국교회도 이런 세계교회의 흐름이 맞춰 1990년 JPIC 세계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하여 “정의, 평화, 창조보전(JPIC, Justice, Peace & Integrity of Creation)”을 신학적 주제로 부각시켰다. 또한 10개의 확언을 정하고 4개의 계약행동을 실천하기로 결의했다. 1995년 6월 4일 동대문교회에서 드려진 ‘환경주일 연합예배’에서는 기독교환경운동연대와 한국기독교교회헙의회(NCCK) 환경위원회가 공동으로 ‘1995년 희년 한국기독교회 환경선언문’을 발표하였다. 교회 밖에서도 생태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지면상 이 논문에서 그 내용을 다 싣지는 못하지만 2007년 노벨평화상의 주인공이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세계에 전파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과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에게로 돌아갔다는 사실은 전 세계적으로 생태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이슈인지를 잘 알 수 있다. 이처럼 생태계 위기 인식과 이에 대한 반응은 교회 안팎으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신학자들은 과거 인간중심적인 생태관이 오늘날 생태 위기에 상당부분 기여한것으로 판단했고 이것을 반성했다. 그리고 다양한 생태신학을 전개해 생태 위기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려고 했다. 클라우스 베스터만, 네오나르도 보프, 테렌스 프랫하임, 노만 하벨, 피처드 바우캄, 한국인으로는 강성열과 같은 사람들은 생태문제를 성서신학의 분야에서 연구한 사람들이다. 생태 문제를 주제로 수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먹거리 문제는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성서신학 분야에서 먹거리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육식 문제에 있어서 그렇다. 이 논문은 최근 생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지만 비단 먹거리 특히, 육식의 문제가 생태문제로 취급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한다. 그리고 먹거리의 문제를 생태문제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고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구약성서를 통해 살펴보려고 한다.

      • 민중교회 태동에 관한 역사적 연구

        정정근 한신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2004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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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Ⅵ.1. 민중교회에 대한 평가 민중신학에 기초한 민중교회 운동은 민중신학이 그렇듯이 도그마 신학에 매이지 않는다. 민중교회는 하나님의 계속되는 역사와 신앙고백의 구체성에 관심한다. 그래서 민중교회는 헐벗고 굶주리고 소외되고 억압받고 후미진 곳들을 찾아든다. 민중들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존재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한민연 규약 제1장 총칙 제2조(목적)에 복음의 본질성회복과 한국민중해방전통을 계승하고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의 민족, 민주적 변혁운동을 전개함으로써 이 땅의 억압받고 고통당하는 민중이 주인 되는 하나님 나라 건설에 헌신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 이런 목적 실현을 위한 운동과 사업을 전개함에 있어서 복음의 진리성, 민중성 그리고 지역성에 기초한 올바른 대중노선에 입각하여 민족자주의 원칙, 민중주체의 원칙, 자력갱생의 원칙, 기층 민중운동역량의 강화 우선의 원칙을 지켜나갈 것이다. 이런 목적의식으로 나타난 민중교회는 민주의 구체적 현장에 관심하여 실천하였고, 교회갱신과 사회개혁의 문제의식을 확산하고 실천하는데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민중교회운동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역사적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첫째, 평등지향적인 해방공동체의 실현이라는 성서의 초대공동체 전통을 계승하고, 교회 본질을 회복하려는 시도라는 점이 교회사적 의의로 인정되어야 한다. 둘째, 그동안 한국교회에서 소외당한 기층민중들의 신앙의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제도화되고 형식화된 한국교회의 사명을 일깨웠다는 점과 한국교회가 지니는 신학적, 실천적 보수성과 수동성을 극복하고 예수의 나눔과 섬김의 말씀을 육화하고자 했다는 의미에서 그 의의가 인정되어야 한다. 셋째, 성서의 해방전통과 한국역사 속에서 나타난 민중해방 전통을 합류시켜 하나님의 해방을 실현하고, 또한 한국교회의 신앙의 조상들이 흘린 해방적 순교의 전통위에 서 있다는 것은 한국교회의 긍지로 인정되어야 한다. 이제 민중교회에 대한 평가에 귀기울여보자. 김해성은 민중교회운동이 성서적인 또는 신앙적인 바탕보다는 사회과학적이며 사회운동적인 방향으로 편향되었기에 많은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를 반복했다고 술회하며, 이웃사랑 편향으로 부족해진 하나님사랑에 대한 신앙적 열심을 강조하면서, 하나님나라의 주인으로서 우뚝 서기 위해서는 운동적인 관점에서의 의식화만을 통해서는 새로운 사람으로 서지 못한다는 사실을 너무 많이 보았다. 당장은 어깨를 걸고 함께 투쟁하지만 입장차이나 큰 이익 앞에서는 관계를 끊고 돌변하는 모습은 상처로 남아있게 되는데, 무언가 새로운 변화가 요청되는 갈급함이 있다고 그는 안타까움을 나타낸다. 실은 공동체의식의 결여인데 공동체가 성공할 수 있는 두 가지 비결을 사회운동가 장일순은 이렇게 말한다. ......여럿이 모였다면 깃발이 있을 것 아냐, 어떻게 가겠다는? 그 깃발 아래 모였으니 깃발을 중심으로 해야 할 테지만 깃발을 너무 앞세울 때는 함께 가는 사람 가운데 늦게 일어난다거나 일을 게으르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무라기 쉽지. 미워하는 마음이 일기 쉽다는 거야, 그럴 때는 말이지 따듯한 마음을 갖고 어깨동무를 해서 일으켜 세워 같이 가는 마음이 중요해. 다른 하나는 그렇게 하다보면 일이 이루어 질 것 아냐? 크든 작든 공이 생긴단 말야, 그때 그건 내가 잘해서 그렇게 됐다 하지 말고, 같이 가는 사람들 공이다, 이렇게 공을 남에게 넘기라는 거지. 이 두 가지를 지키면 되지 않을까 싶네. 민중교회의 문제는 운동성과 교회성이라는 두 면을 충족 시켜야하는 난제 속에 갈등하여 왔다고 할 수 있다. 계속 강조되고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 신앙공동체로서의 자기 정체성이다. 이에 보완되어져야할 요건은 예배, 성서읽기, 기도, 영성적인 훈련, 기독교교육의 정립으로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의 조화로움이다. 이는 한 가지씩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채워나감의 성숙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믿음이 행함을, 역으로 행함이 믿음을 비난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 우리 반성하면서 조심스럽게 민중교회의 실상에 접근해 보아야 한다. 민중교회의 문턱은 낮고 열려있는데, 또 다른 보이지 않는 벽이나 담은 없는지, 차별이나 따돌림은 없는지, 게토(ghetto)화된 상태로 나름의 잔치에 흥겨워하지나 않은지? 담을 허무는 것도 중요하지만 민중교회운동의 처음의 그 발걸음을 물어야 할 것이다. 민중개념에 있어서 그 지평이 확대 또는 정립되어야 한다. 앞서 얘기한대로 안병무의 성서적 개념이 민중교회운동의 편협함을 막아줄 것이다. 안병무의 성서적 민중개념은 공관서에 나타난 대로 예수와 더불어 있는 무리들로 예수가 관심한 무리들이 곧 민중이다. 이는 너무나 포괄적인 개념으로 비판 받을 만 하지만 오늘의 민중개념이나 성격은 재 규명 되어져야 함이 마땅하다. 이로서 민중교회는 이전의 빈민, 노동자, 소외계층 등의 아웃캐스트(outcast)에 대한 헌신적 관심에서 환경, 인권, 생명, 통일, 지역공동체, 여성, 평화, 문화, 이주노동자문제의 영역으로 확대된다. 따라서 민중개념의 확대에 따른 전환점을 민중교회운동에서 '생명 선교 연대'에로의 탈바꿈으로 시도 한다. 민중교회운동은 한국교회에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간 것만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고, 빛나는 업적으로 작용한다. 여전히 미진함은 있다. 그래도 희망은 우리에게 있다. 여전히 민중 해방사건은 계속 이어지고, 민중해방운동에서 우리의 신을 만나게 될 테니까. 그러나 민중이 주체인 시대는 지나갔고, 시민의 시대가 도래 했다고 말하는 시민운동가의 주장에 따라 이제 민중신학은 활자에 묻힌 지나간 과거의 묵은 신학인가! 아니다. 민중개념의 성서적 개념을 보라! 예수의 관심이 어디 있나. 민중의 큰 이야기와 시민의 작은 이야기는 긴장되고, 결국 우리에게 새 질서를 가져다 줄 것이다. 예수의 삶을 보여 주려는 소박함이 우리에게 미래를 제시한다. 그냥 아름답게 사는 모습을 보여 주고자 애쓰는 임의진은 '삶이 곧 경전이다.' 라고 까지 말한다. Ⅵ.2. 21세기 민중신학의 전망과 교회운동 방향 민중신학은 1970 년대 한국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의 선교' 활동에 대한 성서적 신학적 증언이며, 한국의 역사적, 정치적 현실에서 증언공동체로서의 교회의 과제와 방향을 모색한 한국의 신학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선교신학이 한국이라는 장(場)에서 꽃피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물론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온 한국 민중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종교적 구조에서의 경험을 신학화한 것이다. 한편 민중신학은 민중의 역사와 문화를 주체로 인식함으로써 한국의 민중만이 아니라 3/4세계 민중들이 자주적인 역사, 문화, 정치적 각성을 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서구신학의 종속으로부터 벗어나 각기 자기 나라의 전통문화와 삶의 자리에서 신학 하는 새로운 신학 방법론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이런 점에서 민중신학은 해방신학과 달라 서구 신학계로부터도 새로운 신학의 패러다임과 방법론으로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가난한 기독 청년의 죽음이 부른 민중신학은 이론보다 실천을 우위에 두는, 실천-이론의 변증법적 과정으로서의 프락시스(Praxis)로 제1세대를 거쳐 제3세대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제1세대 신학자들이 민중사 건을 주시 내지는 직시하고 그것의 의미를 증언했다면,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과 더불어 제2세대 민중신학이 전개 되는데 그 2세대는 자본주의의 제도적 모순을 성서적 입장에서 재해석함으로서 교회의 나아갈 길을 명시하는 일이었다. 다음으로 사회주의의 몰락과 지구화시대로 특징 지워진 1990년대 이후에 역사적인 지평은 제3세대 민중산학을 태동시킨 배경이 된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민중신학은 민중해방운동의 추동을 힘입어서 예수의 길을 가고자 하는 자들에 의해 그 걸음을 함께 할 것이다. 다양한 문화와 다변화된 욕구와 가치의 다양성 다원화된 이 시대에 시대적인 성실한 응답으로 반신학의 계보에 있는 민중여성신학, 민중종교신학들과 궤를 같이하여, 부분과 전체가, 전체와 부분이, 거대담론과 미시담론이 당면한 시대의 문제에 주목할 것이다. 그 시대 시대마다, 그 시대에 개입된 언어로 분명한 하나님의 답을 제시할 것이다. 예수시대의 그 예수민중언어는 그 시대 민중언어이었듯이 우리시대의 우리민중언어로 기필코 답해야 하는 사명이 있는 것이다. 민중신학은 단순히 신학에 머물지 않고 신학 그 자체까지도 뛰어 넘는다. 그 말은 반신학이나 탈신학도 서슴치 않는다는 말이다. 제1세대 민중신학자 서남동은 탈성서까지도 주장하고 나설 정도이다. 민중신학은 머리(관념)의 길을 걷지 않고 몸(행동)의 길을 걷는다 그러기에 민중신학은 신학을 연구하지 않고 '신학한다'는 것을 그 본래의 과제로 삼는다. 이 '신학한다'는 것은 오늘의 역사적 사회적 인간해방의 투쟁 사건에 연대하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인간 해방의 역사를 발견하는 것이다. 한편 민중신학은 한국적이라기보다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 땅 구석구석의 인간화의 실현을 종말까지 지향한다. 한 마디로 살맛나는 세상을 만드는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앞당겨 경험하는 것이다. 민중신학은 끝이 아니다. 다만 '열린 끝'(open end)일 뿐이다. 민중신학은 민중의 해방에 관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로 끝없이 이어질 '새로운 시작'이다. 이 끝없이 이어지게 되는 민중신학이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문동환은 『신학사상』을 통해 전달한다. 1. 앞으로 민중신학은 '생명'을 관심의 초점으로 삼아야 한다. 산업문화란 우리들의 생명을 해치는 죽음의 문화라는 것이 날로 더 명백해지기 때문이다. 2. 산업 문화에 항거하는 모든 집단들을 가능한 민중으로 보고 긴밀한 연계를 가지도록 해야 한다........ 3. 민중신학은 ... 민중을 해방시키는 일을 최종의 목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이에 대치되는 새로운 생명문화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4. 이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신학 하는 자들은 서재에만 묻혀 있어서는 아니 된다. 해방 운동의 구체적인 일선에 참여해서 몸으로 악과 싸우면서 새 내일을 창출해야 한다........ 5. 여러 가지 특징을 가진 공동체 운동을 실험하면서 그 결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일도 중요하다. 6. 이와 같은 실험과 검토는 국제적인 차원으로도 전개되어야한다. 7. 이와 같은 일에 여성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매우 중요하다........ 8. 민족 통일이라고 하는 화급한 문제에 있어서 두 다른 이념 아래 살아온 동족이 더불어 창조적으로 작업을 하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사는 것을 경시한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면서 더불어 새롭게 사는 길,...... 우리 남과 북이 한 전통을 가진 동족으로 이런 대화를 진지하게 해서 한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을 만든다면 인류 사회에 큰 공헌을 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 종말이 가까웠다는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하면서 저들의 상처를 싸매주고 주린 창자를 채워 주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면서 저들이야말로 하나님나라에 더 가깝다는 것을 밝히면서 하나님나라 운동에 가담하도록 도와야 한다. 21세기는 정보 가상시대, 유전자 생명공학의 시대라고 칭한다. 이러한 민중의 시대적 현실은 다차원적이고, 고차원적이고, 다지평적인 복합 구도 속에 있다. 이런 지구화 과정에서의 교회운동은 본래적 지평으로는 다층적이고도 다양한 욕구에 부응할 수 없다. 여기 지금까지 민중신학이 다루어온 주제들과 새롭게 요구되고 대두된 것에 첨가하여 민중교회운동의 방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가) 민중은 생명이다.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생명망으로 인식되어져야한다. 단순히 사회경제적 차원으로 축소되지 않는다. 민중이 생명이라는 명제는 하나님의 피조물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동역자이다. 민중신학은 민중은 생명이라는 명제를 총합적으로 인식한다. 나) 민중의 생명과 삶은 지구화의 상황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전쟁에 의하여 희생되고 잇고 위협 받고 있다. 정보사회의 사아버네틱의 전쟁은 소위 전멸전쟁이라 부른다. 동시에 유전자 공학적 조작에 의한 위협은 생명파괴의 결과를 가져온다. 이것은 생명의 파괴, 생명의 수난, 생명의 주체성을 무시하고 짓밟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민중 생명학'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성서에서 말한 메시야 왕국으로 보장되는 '생명의 정원'이라 할 것이다. 다) 민중신학의 사회 경제적 차원의 이해를 넘어서 지구가 하나의 통합된 시장이라는 지구 경제적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시장이 절대적인 우주로 군림하고 있다. 강요된 지구적 자본 세력을 어떻게 할 것인가. 라) 지구 사회자 시장화 되어가는 역사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민중의 정치적 주체는 무력화 되고 있다. 지구 시장의 권세들은 초국적인 실체로서 모든 국경을 넘나들며 민중의 정치 경제적 보호막을 무너뜨리고 있다. 소수 약소민족이나 국가들은 정치적 주체성을 유린당하고 있다. 이 지구시장에 적극 개입하고 지구시장의 횡포를 막으며 민중이 지구시장의 주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마) 지구 시장은 신자유주의의 사회철학에 의하여 지배되어 신사회 다윈주의 철학을 구사하고 있다. 이 무제한적인 경쟁이 모든 사회, 경제 정치관계와 생태학적 관계를 지배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갈등 관계를 격화하고 폭력화 한다. 민중신학은 지구화 맥락에서 샬롬의 실현과정을 성찰해야 할 것이다. 한국적인 입장에서 한국 민족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위한 사회정의 사회복지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바) 지구 시장은 전자 통신을 통한 정보유통과 고급기술에 기반한 다중커뮤니케이션 매체를 통하여 문화적 지배 또는 문화적 헤게모니를 가지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민중과 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의 붕괴, 생명적이고 인도적인 문화가치의 해체, 생명력 있는 심미적 감성의 혼란과 피폐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민중신학은 민중 문화 운동 속에서, 시장 문화 변혁 운동 속에서 민중이 문화적 주체임을 확인해야 할 것이다. 또한 민중신학은 보다 넓은 차원에서 다중 종교와의 접속이라는 과제도 안고 있다. 마지막으로 민중교회운동에 관심하고 1985년 3월에 쓴 김재준의 자랑스런 교회상을 소개한다 1) 교회는 어떤 세상 정권을 믿는 것이 아니고 삼위일체 사랑의 하느님을 믿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식회사가 아닙니다. 교회는 성령의 기관입니다. 2) 교회는 그 있는 고장인 역사가 그리스도의 역사로 변질하게 하는 책임을 집니다. 세상 권력에 동질화(conform)할 것이 아니고 그것을 변질(transform)시킬 의무가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교인수는 한국 전 인구의 3분의1에 가깝다고 합니다. 그만하면 한국 역사를 그리스도 정신으로 변질시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3) 교회는 전쟁 도발에 항거하여 평화운동을 강력하게 추진 시켜야 하겠습니다. 4) 교회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어떤 특권층의 소수 인간들로 된 기관에 충성하는 것보다도 대다수의 민중의 친구가 되고 그 대변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자신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정치적 독재나 경제적 독과점, 재벌의 불의, 무법 또는 횡포를 견제하여야 합니다. 침묵의 다수만으로는 예언이 안 됩니다. 5) 교회는 정의에 불타는 학생들, 탐욕자에 희생되는 절대다수의 밑바닥 노무자, 실직자들의 친구가 되고 적어도 그들의 울타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웃 사랑이고, 그것이 주리고 목마른 그리스도 자신을 대접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6) 교회는 좌절 없는 희망의 등대여야 합니다. 하느님 안에는 실망이 없습니다. "세상 나라들이 떠들고 임금들이 모반하여 그리스도 왕국에 도전하더라도 하늘의 하느님은 빙그레 웃으신다"고 시편2편에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누가 능히 우리를 그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하고 바울은 승전가를 외쳤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7) 우리는 전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의 지체입니다. 그리스도와 우리 교회와 역사와 자연이 하나 되는 사랑의 대조화에서 우리 인류의 역사는 그 완성의 종말에 삼켜집니다. 묵시록22장에 씌여진 새 하늘과 새 땅은 우리의 불멸의 소망입니다. 이제 좀 더 큰 틀로 새로 맞은 21세기의 민중신학과 그 프락시스인 민중교회운동은 '생명학'이라는 총합적인 틀 속에서 전통적인 신학의 틀을 벗어나서 '민중의 생명'의 틀을 재발견 하는 것이 중요하다. 21세기에 처한 민중현실을 생명이라는 총합적 실재로 파악하고 종합적으로 성찰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는 지구촌 여러 곳에 일고 있는 민중체험에 관심하고 그에 대한 신학적 성찰의 접속과 교류로 예수가 사랑한 민중의 요구를 안고 변화하는 이 시대의 민중해방운동에 큰 몫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민중신학과 (민중)교회운동은 여전히 열린 모습으로 우리에게 희망을 제시한다. 민중신학이 예수사건의 삶을 그 표본으로 다루어 그 삶이 하나님나라를 말하고, 교회가 예수의 삶을 사는 모임으로 그의 삶을 구현한다고 할 때 거기 영원한 우리의 모델이 있고 그 삶에 미치지 못하는 간절한 기도는 계속된다.

      • 신앙성숙을 위한 교육신학연구 : 로더와 화울러의 비교

        홍완식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1996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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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는 가치관과 사상이 다양해지고 신념과 신앙의 차원도 다원화, 다차원화되었다. 따라서 교육신학에서도 이에 타당한 신학적 정립의 요청이 있어왔다. 이러한 다원화 사회의 요청과 도전 앞에서 이제까지의 신정통주의 신학, 곧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이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 반드시 적합한 대처를 할 수 없다는 반성이 서서히 일어났다. 여기에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신학적 관심과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청되었다. 이러한 신학적 관심은 교육신학사를 통해 '회심'을 강조하느냐 아니면 '양육'을 강조하느냐의 대립양상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회심'이나 '양육'이란 용어가 양립될 수 있을 것인가?, '발달'과 '변형'이라는 용어는 무엇인가?, 혹은 회심은 발달의 의미와 상충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러한 문제는 역사 속에서 두 줄기의 흐름을 가지고 흐른다. 즉 1780년 레�壤�Robert Raikes)의 주일학교 운동을 중심으로 발전하여온 기독교교육운동과, 또 다른 줄기는 종교교육운동의 선구자이며 『Christian Nurture』 (1847)의 저자 부쉬넬(H. Bushnell, 1082-1876)과 종교교육협회(The Religious Education Association)의 창설자이며, 이 운동의 가장 위대한 이론가 죠지 코오(George A. Coe)이다. 부쉬넬이 제시한 대안은 기독교 교육의 회심이란 부분에 있어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아동은 이미 기독교라는 전제된 조건에서 '양육'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발달이론을 발견할 수 있다. 코오는 부쉬넬의 이러한 신앙관을 20세기초의 교육심리학과 결합시켰고, 그는 종교교육이 회심을 필요로 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이렇듯 기독교 교육사를 통해서 신앙성숙이 '급격한 변화로서의 회심'에서 가능하다는 입장과 '점진적 발달과정'에서 가능하다는 두 입장의 갈등이 현대의 회심 운동파인 제임스 로더(J. Loder)이르고, 양육운동파로 제임스 화울러(James W. Fowler)의 이론에 이른다. 이 두 사람을 비교 및 평가함으로 두 사람이 오늘의 기독교 교육의 패러다임 형성을 위해 결국 양자 중의 하나의 택일이 아닌 'Transforming Moment'(변형 와 'Developing process'(발달)와의 변증법적 관계에 놓여있음을 증명하고 이를 비교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회심과, 양육이란 두 산맥의 대립을 연결할 수 없을까? 라고 하는 생각의 구체적인 노력으로써 신앙의 본질문제, 과정문제, 성숙화의 문제를 생각해야할 것이다. 즉 신앙이란 과연 무엇이며, 무엇이 성숙한 신앙을 배양해 주며, 또한 신앙은 어떠한 과정을 거처 발달해 가는가? 라는 물음에 응답하려한다. 이러한 연구의 성과로 의해, 신앙의 성숙은 기독교교육의 주된 관심이며, 신앙성숙이 한 순간이 아니라 일평생 일어난다고 할 때, 변형과 발달을 어떻게 연관지을 것인가?, 동시에 신앙성숙을 위한 교회교육의 구체적인 학문적 접근을 전개하며, 그 장으로서 환경과 신앙공동체와의 관계, 즉 바람직한 장으로서의 '신앙 공동체' 형성을 고찰할 것이다. 기독교 교육의 목적이 성숙한 인간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할때 종교적 성숙성을 기독교 신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내부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기독교교육이 추구하는 바람직한 상태가 전술된 인간의 성숙성이라고 할 때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적절한 방법으로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바람직한 장은 신앙 공동체일 수 밖에 없다. 환경이 신앙 발달에 끼치는 영향과 또한 신앙 공동체도 신앙의 단계와 같이 발달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웨스트호프(John H. WesterhoffⅢ)의 신앙공동체 교육이론을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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