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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육대학교 신학과 여성 졸업생들의 진로 실태와 의식에 관한 연구

        서영순 삼육대학교 신학대학원 1999 국내석사

        RANK : 247711

        전도부인 양성을 목적으로 개신교에서 초기 여성 신학교육이 시작된 때는 장로교회 1888년,감리교회 1905년이었다. 교회 여성 교역자 출현은 여성 선교사들과 선교사 부인들이 그들의 보조자로 한국 여성을 전도부인으로 임명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들은 낮은 학력과 짧은 성경 지식에도 불구하고 초기 한국교회 교 회생활 전반에 걸쳐 지도자로 일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개신교 여성 교역자는 높은 학력과,훈련된 일꾼으로 소명감에 불타고 있으나 목사 보조자로 주로 일하고 있다. 교회는 제도적으로 그들의 역할을 제한,축소하기 때문에 이들의 능력과 에너지는 사장되고 있다. 삼육대학교 신학과 여성 졸업생 및 재학생은 200여 명에 이른다. 이들은 대부분(90%)본교회 지도자로 일했으며,그들 중 상당수는 목회자 부인이다. 여성 졸업생들은 신학을 전공 한 것에 절대 다수가 긍지를 느끼고,삶의 가치를 발견하게 해 주었다고 했으나,재학 시 여성이었기에 겪어야 하는 고충도 컸다. 재학 시 자신이 원하는 목회 유형에 따라 전문화되고 특성화된 교육을 받기를 원했고,여성 목회자로서의 비전과 준비 방법 등이 제시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신학과 교과목은 여성을 위한 교양 과목이나,여성 목회자를 위한 교과목이 결여되어 있다. 목회자 부인의 재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신학과나 기타 다른 교육기관에 사모학을 개설해야 한다고 하였다. 대부분의 여성 졸업생들은 목회채용이 불공평하고,교회 행정력이 남성에 의해 주도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박형룡과 화란 개혁주의 신학과의 관계 연구 : 박형룡의 신학형성과정과 『교의신학』에 관한 서론적인 한 연구

        이상웅 總神大學校 大學院 2004 국내석사

        RANK : 247679

        제1장. 서론 본 논문은 한국 장로교회 신학의 정초자, 정통 칼빈주의의 대변자였던 박형룡 박사(1897-1942)의 신학 형성과정과 교의신학에 나타나는 화란 개혁주의의 영향을 추적하고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와 같은 연구를 진행하게 된 개인적인 동기와 교단적인 상황에 대해서 먼저 진술한 다음, 박형룡 신학 연구의 현황에 대한 개괄적인 제시를 하였고, 지금까지의 연구 현황으로 볼 때에 박형룡 박사의 신학에 미쳐진 화란 개혁주의의 영향을 분석하는 일이 그의 신학을 이해하기 위하여 반드시 요청되는 과제임을 알게 된다. 제2장. 초기 박형룡의 형성과정과 화란 개혁주의의 미미한 영향(1897-1942) 박형룡 박사의 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학 이전의 형성 과정에 대해서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유학 경전을 통해서 배운 述而不作의 자세, 중등, 고등 교육시에 접하게 된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의 신앙적, 신학적 영향은 한평생 박형룡 박사의 신학 작업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박사가 신학을 배우면서 접하게 된 구프린스톤 신학과 남침례교 신학에 대해서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그의 신학 형성 과정 초기 구 프린스톤 재학 시절부터 특히 G. Vos 교수의 영향으로 화란 개혁주의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박사논문에서 H. 바빙크와 V. 헤프의 저서를 인용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의 초기의 저술들에서 검증되어지는 화란 개혁주의의 영향은 지극히 미미하였다는 것을 보게 된다. 제3장. 박형룡의 교의신학 형성 과정에 미친 화란 개혁주의의 영향(L. Berkhof의 『조직신학』 수용) 박형룡 박사는 1942년에 만주 봉천 신학원에서부터 교의신학 강의를 하게 된다. 그는 교의신학 강의를 위한 강의안을 작성하면서 벌코프의 조직신학에 크게 의존하게 된다. 그러나 박박사가 벌코프의 『조직신학』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주의해서 분석해 보면 그는 벌코프의 저서를 『교의신학』의 근간으로 삼되, 흔히 알려진 것처럼 번역 내지는 번안의 수준에서 그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박박사는 오히려 벌코프를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보게된다. 박박사가 벌코프의 신학에 크게 의존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박박사는 주체적인 신학 자세를 드러내어 준다. 특히 박박사는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를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보게된다. 그리고 박박사의 벌코프 신학 수용은 카이퍼와 바빙크의 신학을 본격적으로 접하게 되고 수용하게 했다는 신학적 중요성이 있다. 박박사는 벌코프를 통해서 이 두 사람의 신학 사상을 본격적으로 접하게 되었고, 이 두 사람을 개혁파 신학의 師父로 존경하게 되었다. 그러나 신 칼빈주의 신학을 수용함에 있어서도 박박사는 주체적인 자세를 잃지 않음을 확인하게 된다. 특히 그는 네덜란드 개혁교회내에서도 많은 논란이 되었던 카이퍼의 신학의 문제점에 대해서 예리하게 비평을 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제4장, 박형룡의 『교의신학』증보 과정에 미친 화란 개혁주의의 영향(G. C. Berkouwer의 『교의학연구』 활용) 박형룡 박사는 1955년에 암스테르담에서 G. C. 베르까워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고 『교의학 연구(Studies in Dogmatics)』의 영역본 간행 사실을 알게 된 후에 학생들에게도 읽혔을 뿐 아니라 본인 스스로도 부지런히 읽게된다. 박박사의 『교의신학』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베르까워의 영향이 얼마나 반영되고 있는가를 세밀하게 분석해보면, 우선 박박사는 베르까워의 저술중 총 10권의 저술을 인용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교의학 연구』영역본은 총 14권임). 그리고 베르까워의 저술을 원용하여 장을 새로이 만든 경우는 단 한 경우밖에 없었지만(『교의신학-신론』,제2편,제8장), 많은 節이 새로이 생겨났고, 세목상에 많은 보완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박박사의 베르까워 사용에 있어서 직접적인 인용에 못지 않게 출처를 밝히지 않은 간접적인 인용이 많은 것을 확인하게 된다. 박박사는 베르까워 저술들을 직간접적으로 활용하면서 많은 보완 작업을 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전까지 이와 관련된 분석 작업이 없었으므로, 논자의 분석이 박형룡 신학 연구를 위해서 의미가 있는 독창적 기여라고 論者는 생각한다. 그러나 박박사의 베르까워 사용은 범위가 광범위하고 양이 적지 않기는 하지만 이미 형성된 자신의 교의신학 체계를 위해 자료 보완과 업데이트의 수준에서 그친 것으로 확인된다. 그리고 박박사는 후기 베르까워의 신학 사상에 대해서 『교의신학』속에서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도 분석 결과 드러나게 된다. 제5장. 후기 박형룡의 화란 개혁주의에 대한 비평적 입장 5장에서는 후기 박형룡 박사의 베르까워 신학 비평과 유럽 개혁주의 신학의 직수입의 반대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분석해 보게된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1969년에 『기독신보』에 기고한 “G. C. 뻘카우어의 신학”이라는 기고문을 거의 전문을 인용해 가면서 분석해 보았다. 박박사는 베르까워의 신학 사상에 변화가 있었고, 특히 성경관에 나타나고 있다는 소식을 간접적으로 듣게 되었고, 이에 대해서 비판을 하게 된다. 정통 칼빈주의의 현대적 옹호자로 굳게 믿었던 베르까워에 대한 신뢰심에 금이 가기는 했으나, 여전히 그를 자유주의자로 매도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박박사는 베르까워가 『교의학 연구』시리즈에 속한 여러 좋은 책자들을 통해서 전통적인 교리들을 잘 변호했다는 사실과 이에 도움을 많이 받은 사실을 결코 잊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후기의 베르까워의 성경관 변화에 대해서는 크게 슬퍼 하되 그의 신학 자체가 완전히 자유주의라고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절둑거리는 보수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보게된다. 그리고 박박사가 『신학지남』에 1976년에 마지막으로 기고한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적 전통”은 박형룡 박사가 한평생 동안 수호하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여 온 그의 신학의 핵심이 무엇이었는지를 명확하고 간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박박사가 반 세기가 넘는 긴 기간 동안 배우고 가르치고 수호해온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적 전통은 한국에 온 초기 장로교 선교사들이 전해준 신학으로서 그것을 “청교도 개혁주의 신학”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이것이 박박사의 신학 사상과 신앙의 핵심 골자라고 할 수 있다. 박박사는 이미 신학 수업 이전에 이러한 기본적 골자를 배워서 자신의 것으로 수용했기 때문에 한평생 이러한 청교도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을 신학함과 신앙함의 표준으로 삼았다. 박박사는 구프린스톤 신학이나 남침례교 신학을 배웠으되 청교도 개혁주의의 표준에서 수용했고, 후에 화란 개혁주의의 광범위한 영향을 받았으되 이 표준에 맞추어 수용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였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박박사가 신학 작업을 주체적으로 했다고 표현할 때에 그 기준은 바로 어린 시절부터 받아들인 한국형 청교도 개혁주의 신학 전통이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박박사는 반 세기가 넘는 신학함의 길에서 이 전통에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친 적이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제6장. 결론 앞선 제 논의들의 결론을 요약하게 된다. 본 논문이 목표한 바 박형룡 박사의 신학 형성과정과 주저 『교의신학』에 나타나는 화란 개혁주의의 영향이 지대하였음이 앞선 논의의 결과로 입증되게 되었다. 그러나 본 논문은 박형룡 박사와 벌코프의 신학을 구체적으로 비교하지도 못했고, 또한 벌코프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바빙크 신학의 영향을 얼마나 받았는지에 대한 분석 작업도 수행하지 못하였다는 한계를 가진다. 사실 박형룡 박사의 벌코프를 통한 바빙크의 수용의 정도를 분석하고 밝히는 것은 하나의 거대한 연구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고 사료된다. 또한 박형룡 박사의 신학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에 연구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의 자료들(육필 강의안, 등사본 강의안, 초기 저술들, 그리고 박박사의 장서들)의 수집 보관과 기관이 필요함을 제안하는 것으로 본 논문은 마치게 된다.

      • M. Luther의 십자가 신학 연구

        안창선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04 국내석사

        RANK : 247663

        지금까지 루터의 십자가 신학은 어두웠던 중세 말기의 카톨릭 교회에 대항하여 종교개혁의 시작을 알린 시작이었으며, 개혁신학의 기초를 쌓은 디딤돌의 역할을 했다. 루터의 신학은 중세말기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중세의 봉건적인 사회. 경제 질서가 와해되어가고 로마 교황청의 강력했던 통제력이 상실되어 가던 역사적인 배경을 그 전제로 하고 있다. 중세 말기, 십자군 전쟁은 단지 군사적인 부분에만 변화를 야기한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이슬람을 통해 새로운 사상들이 유입되었고, 군주들은 자신들의 군사력을 확장하는 기회였으며, 평민들에게는 그들이 사는 세상이외의 새로운 세상이 다른 곳에 존재하고 있음을 보는 기회였다. 새로운 사상의 유입은 자연스럽게 기존 질서에 대해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이에 반해 중세 말기의 교회와 수도원은 그 초기의 설립 취지와 초대 교회의 건전한 정신을 상실한 채, 도덕적으로 타락해 있었으며, 실천을 상실한 이론적인 신학만으로 교회를 공허하게 만들어 가고 있었다. 또한 이들의 약화되어 있는 도덕적 기반의 몰락을 부추긴 것은 면죄부 판매를 통하여 이루어졌는데, 면죄부가 일반 대중들에게 그들의 당초 계획에 비해 많은 호응을 보이자, 이를 합리화 시키는 공적을 바탕으로 하는 신학과 교황의 칙서들을 통해 면죄부 판매에 열을 올리게 된다. 이에 대항하여, 물질에만 눈이 어두워 바른 성경적인 시각에서 멀어져 버린 로마 카톨릭 교회를 향하여 거센 각성과 개혁의 목소리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위클리프와 후스는 교회 내부에서 교회의 정화와 개혁을 위하여 목소리를 높였으며, 에라스무스는 교회의 밖에서 교회가 바른 자리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였다. 두 부류가 모두 교회의 개혁을 주장했으나, 그들의 주장이 직접 로마 카톨릭을 변화시키는데 까지 가지는 못했다는 부분에서 공통점이 있으며, 또한 루터의 종교개혁과 그의 신학 형성에 직.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데 그 역사적 의의를 같이 한다. 십자가 신학에 영향을 준 사상적 배경으로는 중세 전반을 지배했던 스콜라주의와 스콜라의 집대성을 이룩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을 들 수 있다. 스콜라주의를 루터는 영광의 신학을 대표하는 사상으로 지목하여 비판하였다. 루터는 오캄에게서 깊은 사상적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하지만, 오캄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 한계를 극복하는데에 초점을 맞춘다. 또한 어거스틴에게서도 루터는 그의 은혜와 죄에 대한 사상에 영향을 받았지만, 전적으로 그를 따르지는 않았다. 내용의 측면에서 보면, 루터의 십자가 신학은 ‘감추어진 하나님’이 계시되심과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이 의롭게 되었음을 말하는 신학이다. 즉 루터의 십자가 신학은 하나님의 은폐적 속성을 ‘십자가의 지혜’로 밝히는 신학이다. 십자가 신학은 인간의 공적에 의지하는 영광의 신학과는 대조되며 십자가 신학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참된 모습과 그의 참된 의지를 인식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십자가 신학은 그 독특한 신인식에서 부터 시작한다. 십자가 신학이란 고난과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을 인식하는 신학이다. 영광의 신학과는 달리 십자가 신학은 하나님의 감추어진 속성을 간파한다. 십자가 신학은 시종일관 하나님의 감추이심에 주목하며 ‘숨어계시는 하나님’과 십자가와의 관계를 밝힌다. 루터의 십자가 신학을 본 논문에서 다룬 내용을 중심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루터의 십자가 신학은 계시의 신학이며 사변적인 신학과는 완전히 구별된다. 이 계시의 핵심은 그리스도이다. 말씀은 언제나 그리스도를 가르킨다. 즉 십자가 신학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인식이다. 그러므로 십자가 신학은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이다. 둘째, 이러한 계시는 간접적이고 감추어져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폐된 모습, 즉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의미한다. 즉 십자가 신학은 ‘감추어진 하나님’, ‘하나님의 뒷 모습’, ‘감추인 계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에 관해 말하는 신학이다. 십자가의 신학은 숨어계신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는 신학이다. 셋째는 이 감추인 계는 인간의 도덕적 행업이나 만든바 된 것들 안에서 인식될 수없고, 오직 십자가의 지혜로만 인식된다. 십자가는 인간의 지헤로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다는 환상을 산산히 조각낸다. 십자가의 지혜는 세상과 인간의 지혜와는 모순되는 하나님의 지혜이다. 이 십자가의 지혜는 은폐된 하나님의 참된 모습과 참된 의지를 밝힌다. 즉 십자가 신학은 오직 십자가의 지혜만을 설교한다. 넷째로 이러한 계시 속에 감추이신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믿음의 문제이다. 이는 이해의 문제가 아니다. ‘숨어계신’ 하나님, 즉 하나님의 은폐성은 믿음의 절대개념이다. 하나님은 그의 은폐적 속성 때문에 직접적으로 인식될 수 없다. 오직 간접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으로만 인식될 뿐이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하나님의 은혜이다. 십자가 신학은 믿음의 신학이다. 다섯째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 영적인 시련 즉 십자가를 지는 삶 가운데 드러난다.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거부하거나 사변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삶의 일부이며 믿음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그가 최초에 찬탈했던 하나님의 자리와 이웃의 자리를 돌려주는 삶을 산다. 그러기에 그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면서 그리스도를 통한 의의 전가를 통해 의인이 된 존재이다. 그는 매일 죄와 싸우는 사람이며, 그러한 죄와의 싸움에서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를 만난다. 시종일관 ‘감추어진 하나님’(Deus absconditus) 즉, 하나님의 은폐성 을 논구하는 신학이 십자가 신학이다. 십자가 신학은 고난과 십자가를 통한 참된 하나님 인식을 통해서, 인간이 자기 확신을 부수고, 하나님만을 홀로 하나님 되게 하는 신학이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선언하는 십자가 신학은 종교적 지성주의와, 도덕적 경건주의를 배격한다. 십자가 신학은 하나님을 가장한 사탄적 권세를 심판하는 칼이다. 그러므로 십자가 신학 앞에서 ‘하나님과 구원, 은혜, 그리스도인의 삶, 그리스도의 교회의 참된 실재가 드러난다. 십자가 신학은 참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주목하는 신학이다. 십자가 신학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감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참된 신학이며, 십자가 신학은 십자가와 고난을 통해 부활과 승리를 선물하는 은헤의 하나님을 말하는 희망의 신학이다. 십자가 신학은 하나님의 부정 아래에 깊이 감추인 하나님의 긍정을 단단히 붙잡는 신학이다. 그러므로 십자가 신학에서 십자가의 길이 부활의 길로, 고난의 길이 승리의 길로 질적인 비약이 가능하게 된다. 진정한 십자가의 길은 그리스도와 같이 죽고,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부활의 새 아침을 안게 된 부활의 길과 연합되는 길이다. 동시에 부활의 길은 십자가의 길과 상관관계 속에서만, 값싼 영광의 길, 승리의 길로 전락되지 않는다. 십자가 신학은 이 같은 역설적, 역동적인 기독교의 진리를 함축한 참된 신학이다. 십자가 신학은 냉혹하고 모순된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오늘 우리에게 “참된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는가?”라는 책임적이고도 실존적인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유일한 신학이다.

      • 클레르보의 베르나르(Bernard of Clairvaux, 1090〜1153)의 아가서 설교 연구 : 개혁주의적 관점으로

        박주신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13 국내석사

        RANK : 247647

        개신교 전통에서, 특히나 개혁주의 신학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학생에게 있어서 중세의 역사와 전통은 그 연구 가치에 관하여 비교적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기가 십상이다. 흔히 중세는 종교적으로 문화적으로 암흑기였다고 표현되며 종교개혁의 정신과 대조되면서 더욱 그러한 인상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교회사가 윌리엄 R. 캐논은 그의 책 『중세교회사』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영어 사용권 프로테스탄트 교회사가들은 오랫동안 중세 교회사를 등한시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 분야에 관해 저술한 이들도 전반적으로 모노그래프를 집필하는 데 그쳤으니, 즉 특정 인물들과 사건들에 관한 전공논문인 것이 보통이었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로마와 그리스의 문화와 사상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고, 중세 시대를 그들이 흠모한 로마와 그리스로부터 격리된 암흑과 야만의 시대로 보았고, 또한 그 시대의 교회는 당대의 야만성과 부패를 공유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은 바로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이들에게도 동일하게 영향을 미쳤으며, 그로 인해 개신교회의 성도들과 학자들은 거의 반사적으로 중세 교회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견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모든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중세의 시간 역시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역사라 아니할 수 없다. 욥의 인생 가운데서 번창했던 시간, 행복했던 시간만 하나님과 함께 했던 시간이고, 고난 가운데 있었던 시간은 하나님의 섭리(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와는 별개의 시간이라고 말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중세의 역사 역시 철저히 하나님의 역사라고 우리는 이해해야만 한다. 표면적으로 뿐만 아니라 당시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인식과 삶 속에서 중세 사회, 특히 서양의 중세 사회는 명백히 기독교 사회였다. 따라서 중세 교회는 종교 사상과 사회 관습이 일찍이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통일된 체계를 이룩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중세의 역사가 그토록 암흑과도 같았다 할지라도 그 안에 반짝이는 작은 보석과도 같은 존재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수도사들이다. 소위 수도원 운동이라 일컬어지는 일련의 움직임들은 중세 기독교 역사 속에서 교황제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매우 다양하게 이루어 질 수 있겠으나 분명한 것은 수도사들이 살았던 삶과 그들이 추구했던 이상적인 성도의 모습이 매우 사도적이고 초대교회적인 것이었다는 것이다. 수도사들은 교황들과 더불어 십자군 운동을 촉진한 원동력이었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위대한 건설자들이었다. 대학교들에서 교편을 잡았고, 스콜라 학자들 가운데 가장 심오한 인물을 배출했다. 중세의 수사들은 자기 시대의 청교도들이요, 경건주의자들이요, 규칙주의자들이요, 복음주의자들이었다. 오늘날 개혁주의적 신앙의 눈으로 보았을 때 실제적으로 그들이 보여준 모습은 다소 극단적이고 하나님 안에서의 자유와 거리가 먼 삶이었다고 평가절하 할 수도 있겠으나, 어찌 되었든 그들은 철저히 하나님의 제자로, 하나님의 사도로서의 삶을 실천적으로 살아내고자 애썼으며, 대부분의 수사들은 당시의 부패한 권력적 기독교와의 결별을 선언함으로서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보려 부단히 노력했던 것은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종교 개혁 이후부터서야 진정한 하나님이 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중세 시대 동안 역사를 방관하셨을 리가 만무하다. 우리는 중세를 연구할 때에도 동일한 하나님을 보아야 하며 동일한 하나님을 기대해야 함이 마땅하다. 본 논문은 그러한 역사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중세 시대에도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우시고 사용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사모하도록 역사하셨다는 것을 단편적인 예로나마 증명해보고자 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중세의 수도사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아가서 설교자로 잘 알려진 클레르보의 베르나르(Bernard of Clairvaux)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중세 교회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계시를 허락하셨다는 것을 살피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설교자들에게 천 년 전의 설교가였던 베르나르의 설교가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조망해보고 하나님의 말씀에 기반한 개혁적 목회사역의 한 모델을 제시하고자 한다.

      • 한국인-그리스도인을 위한 신학(神學)과 유학(儒學)의 대화와 비교연구 : 삼위일체론과 이기론(理氣論) 비교를 중심으로

        이재용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2012 국내석사

        RANK : 247647

        본 연구는 “한국적 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짧은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이 질문은 ‘무엇이 한국적인가?’라는 측면에서 제기되는 정체성(identity)의 영역과 ‘신학은 무엇인가? 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적절성(relevance)의 영역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질문은 주로 1960년대 국내 신학계의 화두였던 ‘토착화 신학’(Indigenous theology) 논쟁에서 제기되던 문제인데, 당시의 토착화 신학은 “한국적 신학이란 무엇인가?”를 물으며 유,불,선 등의 우리 민족적 전통과 기독교 신학과의 대화를 통하여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시도했었다. 1960년대 국내의 토착화 신학 논쟁은 서구적 방법론 답습을 넘어 주체적인 신학방법론을 모색하고 민족고유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긍정적 접근으로 한국적 신학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으나, 과거의 토착화 신학은 복음과 전통 문화 간의 조화에 관심을 둔 나머지 한국의 정치 사회적 현실에 기초를 둔 토착화를 이루어 내지 못해 비역사적 특성을 지녔다는 한계를 갖게 되었다. 또한 지금까지의 토착화 신학은 한국 종교 문화와의 전망을 시도해 왔으나 한국의 전통적 종교 이념, 핵심 사상과는 만나지 못한 채 ‘성(誠)’이니 ‘풍류’니 하는 부분적 개념을 들어 독자적 신학 계발에만 관심해 왔다고 비판을 받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건강하고 바람직한 한국적 신학 형성을 위해서는 첫째 복음의 역동성과 한국 사회의 현장성을 잃지 않으면서, 둘째 동시에 온전한 복음과 우리의 전통문화의 핵심적인 사상을 비교분석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한국적 신학을 구성하기 위해서 오늘날 한국인-그리스도인들이 잊고 지내는 신학적 교리와 우리의 전통적 사상을 재발견하고, 그것을 재해석 및 재구성하여 오늘날 의미와 가치가 있는 해석학적 지평을 여는 것을 그 연구동기로 갖는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토착화 신학의 제2의 과제인 신학과 전통문화의 핵심적인 사상을 비교분석하는 과제를 이루고자 한다. 이에 대하여 본 연구가 탐구하려는 주제는 신학적 전통인 삼위일체론과 민족적 전통인 조선유학의 이기론(理氣論)이다. 본 연구는 두 사상 간의 대화를 통하여 지평융합적 해석학을 통해 서로의 해석학적 전거를 더욱 풍성히 하고자 하는 시도를 계속해야 하며, 이것이 오늘을 사는 한국인-그리스도인의 정체성 확립과 창조적인 재구성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본다. 삼위일체와 이기론(理氣論)은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의 삼위일체론과 태극(太極)과 리(理)와 기(氣)의 이기론(理氣論)은 하나이면서 동시에 각각의 주체임을 상정하기에 매우 유사한 형태론적 구조를 갖는다. 이 삼위일체론과 이기론(理氣論)은 내적으로 상호침투(perichoresis) 또는 불상리(不相離) 불상잡(不相雜)의 본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태극(太極)과 우주적 리(理)는 성부와 상응하는바 궁극적이고 초월적인 성격을 갖는다. 기(氣)는 성령과 유비적 관계를 맺는 바 실제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존재론적이고 사건화하는 기운이며 또한 주로 여성적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도덕적 리(理)와 성인(聖人)는 성자와 비할 수 있는 것으로 그 성격과 과제는 하늘의 뜻을 체득하고 수신(修身)하여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하는 것이다. 즉 삼위일체론의 공식적인 도식을 이기론(理氣論)적인 이해에 비추어 설명하면 마치 “태초에 태극(太極)이신 성부 하나님은 무한히 계셨다. 그리고 이 태극이신 성부 하나님께서는 말씀이자 리(理)인 성자를 낳고(生), 동시에 인간의 궁극적인 지향점인 성인(聖人)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는 삶을 추구하며, 기(氣)이자 사랑인 성령을 내쉰다.(發出)”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유비적 상상력을 통하여 삼위일체론과 이기론(理氣論)을 비교할 경우 매우 유사한 형태론적 유비가 가능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신학과 유학의 학문적 지평융합을 넘어 한국인-그리스도인들에게도 실제적으로도 유의미한 사상적 시도가 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오늘날의 시대가 잃어버리고 있는 궁극적 실재에 대한 관심과 추구에 대하여, 삼위일체론과 이기론(理氣論)은 동서양의 사유구조의 차이를 보여줌과 동시에 두 사상이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궁극적 실재에 대한 주의의 환기와 그 의의의 지평을 확장한다는 공통점이다. 이는 삼위일체론이 하나님에 대한 사변적인 이해가 아닌 구원론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의 내재적이고 경륜적인 신비를 설명하기 위한 방법이었다는 점을 주목해볼 때, 그리고 이기론(理氣論)이 태극(太極)과 리(理)와 기(氣)의 관계 속에서 진정한 인간실현의 도(道)를 찾아내기 위한 절실한 노력이었다는 점을 주목해볼 때, 충분히 그 지평융합적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틸리히가 말한 바와 같이 “(기독교의)믿음이란 궁극적 실재에 대한 관심과 추구”라는 점과, 뚜웨이밍(杜維明)이 “유교란 생존하는 인간이 자기 초월성을 진정한 가능성으로 믿는 하나의 신앙”으로 정의한 것과 같은 맥락에 있는 지적이다. 즉 궁극적 실재에 대한 추구야 말로 삼위일체론과 이기론(理氣論)이 모두 가지고 있는 사상적 핵심이며, 이러한 두 사상의 핵심은 궁극적 실재에 대해 잃어버리고 있는 오늘날의 시대상황 속에 경종을 울리는 전통적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오늘날의 한국인-그리스도인에게 유의미한 한국적 신학의 핵심에는, 삼위일체론과 이기론(理氣論)이 지향하는 바인 궁극적 실재에 대한 추구가 놓여있다. 본 논문의 목적은 신학적 교리와 전통 사상의 비교연구를 통하여 한국인-그리스도인 고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오늘날 교리와 전통의 망각에서 제기되는 문제와 위기의식에 대해 응답하는 한국적 신학을 수립하고 모색하는 것이다.

      • 마틴 루터와 칼 바르트의 교회론 비교연구 : 성서와 교회의 관계를 중심으로

        김덕영 서울기독대학교 2008 국내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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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의 목적은 역사적-조직신학적 비교연구 방법에 입각해 성서와 교회의 관계를 중심으로 마틴 루터와 칼 바르트의 교회론을 비교연구하고, 그 결과가 한국 교회에 대해 지니는 함의를 따져보는 데에 있다. 루터와 바르트는 각각 신학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룩했는데, 이는 전자가 전통에서 복음으로 회귀함으로써 그리고 후자가 이성에서 복음으로 회귀함으로써 가능했다. 전형적인 중세적 가톨릭교도이던 루터는 성서를 매개로 중세성에서 근대성으로 이행할 수 있었다. 종교개혁의 기본원리도 다름 아닌 성서원리이었다. 원래 자유주의 신학의 전통에서 성장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종교 사회주의의 원리에 입각해 목회활동을 하던 바르트는 성서의 연구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게 되었으며, 자유주의 신학을 극복할 수 있었다. 루터의 교회론은 복음과 칭의론적 교회론에 의해 규정할 수 있다. 루터는 복음에서 교회의 근원과 본질을 찾는다. 칭의론은 성서의 해석을 통해서 형성되었는데, 바로 이 칭의론을 통해서 종교개혁적 돌(혁)파가 가능했다. 또한 칭의론은 루터 신학의 토대를 이룬다. 교회는 바로 이러한 칭의론적 과정으로 파악된다. 루터는 복음적 교회론에 입각해 교회를 영적 교회와 육적 교회로 또는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로 구분하며, 교회를 외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다양한 표지를 제시한다. 그리고 루터는 참교회와 거짓교회를 구분하는데, 이에 대한 가장 중요한 기준은 복음, 즉 하나님의 말씀이다. 바르트의 교회론은 복음과 변증법적 교회론 및 기독론적 교회론에 의해 규정할 수 있다. 변증법적 교회론은 그가 목회활동을 청산하고 신학교수로 초빙된 1921년부터 교의학 시대가 열리는 1932년까지의 교회론을, 그리고 기독론적 교회론은 교의학 시대에 구축된 교회론을 가리킨다. 바르트의 변증법적 교회론은 하나님과 인간의 변증법적 관계, 즉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무한한 질적인 차이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신-인간의 관계는 교회의 곤궁과 죄과를 초래한다. 바르트의『교회 교의학』에서는 점차로 변증법이 유비론으로 그리고 변증법적 교회론이 기독론적 교회론으로 바뀐다. 바르트는『교회 교의학』에서 교회의 삼중적 차원을 제시하는바, 교회의 형식적 차원, 인격적 차원, 의도적 차원이 바로 그것이다. 루터와 바르트의 교회론은 사도적-종말론적 교회에서 일치한다. 사도적 교회란 신약의 사도들과 구약의 예언자들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 위에 세워진 교회를 가리킨다. 그리고 종말론적 교회란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 사이에 이 세상에 존재하면서 역사의 종말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기다리는 교회이다. 루터의 종말론과 바르트의 종말론은 모두 기독론과 성서원리에 의해 정초된다. 사도적-종말론적 교회의 근본구조는 초대교회에서 찾을 수 있다. 모든 교회는 초대교회처럼 이 세상에서 단일하고 거룩하며 보편적인 교회를 실현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실천하고 교회의 내적-외적 시련과 투쟁해야 한다. 그러면서 역사의 종국과 더불어 도래하는 하나님의 나라, 그리스도의 통치 그리고 부활과 구원을 기대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성서원리를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교회는 루터가 전통에서 복음으로 회귀하고 바르트가 이성에서 복음으로 회귀한 것과 같이 자본주의에서 복음으로 회귀해야 한다. 탈자본주의화와 복음화만이 한국 교회가 오늘날 처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마틴 루터와 칼 바르트의 교회론이 오늘날 한국의 교회에 주는 함의는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에서 복음으로 ― 이성에서 복음으로 ― 자본주의에서 복음으로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핵심용어: 마틴 루터, 칼 바르트, 교회, 교회론, 패러다임 전환, 성서(원리), 복음, 종교개혁, 로마 가톨릭 교회, 칭의론, 자유주의 신학, 종교적 개인주의, 종교적 사회주의, 하나님 말씀(의 신학), 변증법, 유비론, 기독론, 예언성, 사도성, 종말론, 사도적-종말론적 교회, 초대교회, 한국 교회, 교회의 위기, 자본주의.

      • 고린도敎會의 信仰事件에 나타난 바울倫理 硏究 : 고린도전서 5-15장을 중심으로

        윤태동 延世大學校 聯合神學大學院 2003 국내석사

        RANK : 247631

        기독교 윤리학은 인간 행동의 관습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이성적으로 검토하고 비판하여 크리스챤으로 하여금 깨달아 실천하게 하는 학문이다. 하나님의 말씀 즉 성서에 근거한 성서 윤리(Biblical Ethics)에 대한 최근까지의 연구는 신학으로부터 윤리적 규범의 특성을 이해하려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신학을 우선으로 하는 연구방법은 신학과 윤리가 모두 신앙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함으로 인해 윤리의 근원인 신앙적 바탕을 소홀히 다루는 오류를 범했던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고린도 전서 5-15장의 신앙사건을 중심으로 신학과 윤리와의 관계가 아니라 신앙사건과 윤리적 규범 형성 사이에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신앙의 내용을 체험 과정을 통해 구분하는 것이 ‘신앙의 의식화’와 ‘신앙의 생활화’이다. 그 결과를 통하여 윤리적 규범의 시작이 신앙 사건임을 밝힘으로써 바울윤리의 성격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켜보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고린도 공동체의 사회·문화적인 배경과 윤리적 상황들을 먼저 말씀을 주해하면서 살펴본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 권면 하는 윤리적 규범을 구조론적 분석방법(Delta-Method)으로 분석해 신앙사건과 윤리적 규범과의 관계를 살펴보고 바울의 윤리적 성격을 정리한다. 구체적으로 2장에서는, 바울의 사상적 기초인 구약성서와 유대교적인 관점과 헬레니즘, 그리고 예수의 교훈과 변화체험에 대하여 정리한다. 3장에서는, 고린도 교회의 주변환경과 윤리적 상황들을 살펴보고 말씀을 주해하면서 바울윤리의 성격을 살펴본다. 4장에서는, 고린도 교회의 신앙사건과 윤리적 규범의 관계에 대하여 말씀을 주해하며 구조론적으로 정리한다. 5장에서는, 바울서신을 통해 본 바울윤리의 윤리적 근거를 기독론, 성례론, 성령론, 종말론, 교회론적 근거 순으로 정리한다. 6장에서는, 신앙사건을 통해 본 바울윤리의 성격을 하나님 중심의 윤리, 예수 그리스도 중심(Εν Χριστω)의 윤리, 성령중심(Εν Πνευματι)의 윤리, 종말론적 윤리, 그리고 사랑 공동체의 윤리로 정의한다. 7장에서는 결론으로 신앙사건과 바울윤리 규범의 성격과의 관계를 살펴보고 바울윤리의 성격을 정리하며 마무리한다. 바울 윤리의 성격은 성령 안에서 지혜를 바탕으로 자유에 근거한 ‘화해’와 ‘섬김’의 윤리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지향하는 ‘정의’와 ‘평화’의 윤리이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신앙으로 하나된 ‘공동체’의 윤리이다. 구원과 윤리는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인간의 올바른 윤리적 자세(신앙)가 하나님과의 관계인 구원(칭의)을 가져오고, 바람직한 크리스챤으로서 성화 되는 과정에서 윤리적 명제들(순종, 헌신, 섬김, 종국적으로 사랑)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챤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 가운데(신앙의 의식화), 사랑으로 순종과 인내, 헌신과 섬김의 삶을 실천해야 한다.(신앙의 생활화) 이 연구의 목적은 바울윤리의 성격과 함께 신앙사건이 신앙공동체 즉 고린도교회에 주어진 윤리적 규범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므로 신앙 사건으로부터 윤리적 규범을 도출해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데 그 의의가 있다. Christian Ethics is the study for Christians to realize and practice the customs of human behavior after rationally investigating and criticizing it in light of God's words. Up-to-date research on Biblical Ethics based on God's words (namely, the Bible) has focused on understanding the characteristics of ethical rules in terms of theology. However, this research method prioritizing theology cannot comprehend that both theology and ethics come from faith, and therefore neglect religious fundamentals which are at the root of ethics. Thus, concentrating on the Conversion experience in Chapter 5-15 of the First Epistle of St. Paul to the Corinthians, this study seeks to investigate the relationship between events of faith and formation of ethical norms, not between theology and ethics. Classifying contents of faith through experience is 'consciousness of faith' and 'actualization of faith'. By proving that the events of faith are the beginning of ethical norms through the results, an expansion in comprehension of the characteristics of St. Paul's ethics can be possible. In doing so, the social and cultural backgrounds, and ethical circumstances of the Corinthian community are discussed, annotating the Bible. The ethical norms preached to Corinthian churches by St. Paul are analyzed under the delta method so that the relationship between events of faith and ethical norms can be studied, and the ethical characteristics of St. Paul can be organized. Specifically, Chapter 2 discusses the Old Testament, Jewish perspectives, Hellenism and Jesus' lessons as well as Conversion experience (Chapter 9 in the Acts of the Apostles). Chapter 3 deals with the surrounding environment and ethical circumstances of the Corinthian churches, and investigates their relationship with the Conversion experience by annotating the Bible. Based on the delta method, Chapter 4 creates a relationship between events of faith and the ethical norms of Corinthian churches. Chapter 5 scrutinizes ethical norms reviewed through the letters of St. Paul to the Corinthians in terms of Christianity, ceremony, the Holy Spirit, eschatology, and ecclesiology. Chapter 6 defines the characteristics of St. Paul's ethics as investigated through events of faith as those originating from God, those of Jesus Christ(Εν Χριστω), those of the Holy Spirit(Εν Πνευματι), eschatological ethics and those of the love community.

      • 삼육대학교 신학과 신학교육 발전에 관한 연구

        김선호 삼육대학교 신학대학원 1995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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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의 목적은 지난 1917년부터 시작된 삼육대학교 신학과의 발전과정을 제1장에서는 문제의 진술, 연구의 내용을 기술하였다. 먼저 제2장에서는 삼육대학교의 신학 교육을 별설기, 독립기, 재건기, 발전기, 그리고 학장기로 분류하여 각 시대별 교육의 흐름을 살펴보았다. 첫번째 병설기(1917년-1930년)는 한국 재림교회가 개척지에서 개척지 합회로 승격되던 해인 1917년에 생긴 최초의 고등교육 과정으로서 이는 당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것이었다. 또한 이 시기의 학교의 모습은 교수나 시설면, 학생의 수준 등이 덜 갖추어진 신학 교육의 초창기라 할 수 있다. 둘째로 독립기(1931년-1942년)년에는 1931년 학교를 서울로 이전함과 아울러 선교사 가운데 고등교육을 감당할 만한 학문적, 목회적 자질을 갖춘 이시화 목사를 책임자로 세움으로써 좀 더 발전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의 여러가지 상황이교육을 안정시키기에는 어려운 시기였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신학 교육은 일제의 강압으로 1942년에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셋째로 재건기(1947년-1950년)는 광복 이후 신학 교육을 재개하면서부터 6.25전쟁이 일어나는 때까지의 기간이다. 이시기에는 교육의 장소를 마련함으로써 장차 한국 재림교회의교육의 기초를 다지는 역사의 중요한 한 획을 긋게 되었다. 다섯번째 발전기(1951년-1969년)는 2년제의 삼육신학원이 4년제로 각종 학교를 거쳐(1954년), 4년제 정식 대학으로 성장하게 된 시기이다. 이 기간 동안에 한국인들이 학교의 행정 책임을 선교사들로부터 건네 받음으로써 교육으 토착화가 이루어진 시기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겠다. 여섯번째 확장기(1981년-1995년)는 교육 여건(교수진, 시설)이 급속하게 개선됨을 통해 교육이 정상 궤도에 오르게 되는 시기였다. 제3장은 삼육대학교 신학 교육의 발전상을 부분별로 살펴보았다. 첫째 교육환경의 세 요소인 교수진, 시설, 그리고 교육제도를 고찰했다 재정적인 어려움과 건설 규제에 관한 까다로운 법으로 인해 쉽지 않은 문제 였지만 꾸준한 노력과 집중적인 투자를 통해 교수진의 학위 취득을 통한 자격을 갖추는 것과 교육을 위해 요구되는 여러가지 시설들의 마련이 이루어진 것을 살펴보았다. 둘째로 교육의 핵심이 교과 과정의분석을 통해 4년제 정식 신학교육이 이루어진 1961년 이래 지난 35년간 세 갈래로 구분디는 교과 과정(교양, 전공, 일반 선택)이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해 왔는지를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는 교육을 받는 학생들의 모습 속에서 삼육의 이념이 어떤 모습으로 구체화되었는가를 전도 및 봉사활동과 병역문제를 통해 조명해 보았다. 이러한 내동들을 살펴볼 때, 지난 78년의 세월 동안에 삼육 신학교육은 교회와 민족의 역사를 공유하는 가운데 삼육 교육으 이념 구현을 위해 매진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이 대학을 위해 헌신한 일꾼들의 수고 위에 기초아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여기까지 삼육의 신학 교육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손길을 잊어 버리는 것 외에는 다가오는 21세기에 대하여 어떤 두려움도 가질 필요가 없는 선지자의 교훈을 실천할 때가 있다면 바로 지금이다.

      • 20세기 신학 사상 연구 : 현대 신학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중심으로

        백승범 목원대학교 대학원 2004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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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교의 신학은 언제나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이라는 성서의 이중적 진리를 균형 있게 표현하여 참 진리를 얻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초월자로 활동하신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이 세상과 분리되어 스스로 자족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의 성서의 기록처럼 하나님은 이 세계 아닌 다른 세계에 계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이 세상의 내재자로 관계하신다. 이것은 자신의 피존 세계에 존재하심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이 우주 안에 존재하시고 활동하시며, 특히 세계사와 그의 피조물로서 자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사에 무한한 사랑과 다른 감정을 가지고 관여하신다. 이러한 성서의 균형은 하나님에 대한 진술뿐만 아니라 기독교 진리의 거의 모든 것에 있어서, 예를 들어 계시와 복음,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에 있어서도 두 본성에 대한 양자 간의 균형에서 나타나고 있다. 성서가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진리를 초월적이며, 동시에 내재적인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각 시대에 신학 사상들도 이 둘, 즉 초월성과 내재성이라는 이중적 진리의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두 가지 모두를 인정하는 창조적 긴장과 균형의 방법을 찾고자 노력해 왔다.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잃을 경우, 이전 시대의 편협한 신학 사상이 보여주는 것처럼, 심각한 신학적인 문제와 갈등을 야기하게 된다. 다시 말해, 초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문화적 상황과의 관련성을 잃어버리고, 반대로 내재성을 지나치게 추구하면 어떤 특정의 문화에 얽매일 뿐 아니라 종교가 갖는 특성마저 상실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20세기를 지나 새로운 천년을 영위하고 있다. 앞으로 펼쳐지는 21세기에 대한 전망은 20세기 신학이 19세기의 신학과의 대결 속에서 형성되고 평가 되었듯이 20세기의 신학을 진단함으로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 논문은 19세기 신학에 대한 반동으로 생성된 20세기 신학의 대표적인 신학자들의 개성 있는 사상들을 객관적으로 연구해 보고 또한 이를 통해서 초월과 내재 사이의 균형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살펴보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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