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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 역사교육에서의 역사의식과 역량 논의 : 뤼젠(J?rn R?sen)의 역사이론과 FUER모델을 중심으로

        박미향 부산대학교 2022 국내박사

        RANK : 248735

        이 글은 뤼젠의 역사의식 이론과 그에 기반 한 역사학습론을 살펴보면서, 그것이 독일 역사교육의 역량중심 교육과정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를 고찰하였다. 1970년대 독일의 역사교육은 역사의식에 주목하면서, 원래 역사서술에서 중요했지만 역사학의 성립 이래로 소홀히 여겨졌던 역사의 교육적 기능과 생활세계와의 연관성을 새롭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독일 역사교육은 생활세계에서 과거의 현재적 의미와 영향력을 학문적으로 고찰하는 분야로 거듭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비슷한 시기에 영미권의 역사교육은 역사적 사고력 논의를 발전시켰던 것과는 달리, 독일은 역사의식 논의를 발전시키며 새로운 역사교육의 방향을 제시했던 것이다. 역사학적 훈련 그 자체를 강조했던 영미권의 역사적 사고력 논의와는 달리, 독일의 역사의식 논의는 역사학적 훈련과 방법론 그 자체를 목적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독일의 역사의식 논의는 생활세계로부터 기인하는 현재적 관심, 가치 그리고 방향설정 의도 등이 역사 해석에 필연적으로 관여하는 것을 어떻게 역사교육적으로 다룰 것인 가의 문제를 더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즉 그것은 가치중립적인 객관적 방법론의 문제보다는, 가치지향적인 역사 해석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학습자의 생활연관을 고려한 자신의 역사 해석과 삶에서의 적용이라는 실천적 지식으로서 역사를 다루었다. 이처럼 학문으로서의 역사를 다루면서도 생활연관과 실천을 강조하는 독일 역사교육의 역사의식 연구는 최근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 잡은 역사교육에서의 역량중심 교육과정의 도입과 함께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독일 역사교육의 역량중심 교육과정에서 이론적 토대가 된 것이 바로 외른 뤼젠(Jörn Rüsen)의 역사의식 이론이다. 뤼젠의 역사의식 이론은 1970년대 독일 역사교육이 위기를 겪으면서, 생활세계와의 연관을 강조하며 새롭게 정립된 독일 역사교육의 흐름 속에서 맺어진 결실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흐름을 선도했던 역사교육학자로서 칼 에른스트 야이스만(Karl󰠏Ernst Jeismann)이 언급될 수 있다. 그는 역사의식을 역사교육의 핵심 개념으로 제안했는데, 이것을 통해 당시의 정치적·사회적 갈등의 극복을 위한 역사교육과 정치교육의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그의 역사의식 개념은 역사의 정치적 도구화와 같은 극단적 민족주의를 경험한 독일의 역사적 배경과 연관된다. 그에 따르면, 역사(해석)는 입장에 종속되어 있으므로 부분적이고 상대적이다. 이러한 역사이해를 바탕으로, 그는 역사상과 대비되는 ‘성찰적인’ 역사의식 개념을 발전시켰다. 성찰적인 역사의식을 위해 야이스만은 학습자들이 역사가의 역사 해석을 비판적으로 다루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를 위한 수업실천으로 그는 사실분석, 사실판단, 가치판단의 전략을 제안했다. 뤼젠은 야이스만의 역사의식 개념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면서 한층 더 체계화하였다. 그는 야이스만이 내린 역사의식 정의인 “과거해석, 현재이해, 미래전망의 결합”이라는 기본 전제를 따랐다. 야이스만과 같이 그도 역사의식을 과거, 현재, 미래의 세 시간차원의 결합으로 보았다. 또한 그도 과거에 대한 해석을 현재 이해와 미래 전망과 연관시키는 것으로 역사의식을 이해했다. 하지만 뤼젠은 야이스만이 학습자 의식의 생산적·구성적 특징을 간과하고 여전히 역사학습을 수용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역사학습에 있어서 학습자의 인지적 측면만을 강조하면서, 그들의 생활세계와 연관된 감정적, 미적, 규범적 그리고 관심사적 측면을 간과했던 야이스만의 한계도 지적했다. 야이스만이 제안한 수업전략인 세 작업-사실분석, 사실판단, 가치판단-역시도 고유한 역사적 사고가 아니라고까지 뤼젠은 비판했다. 이러한 야이스만에 대한 비판은 뤼젠이 서사이론을 통해 역사의식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서사이론을 통해 역사의식을 이론화한 뤼젠은 과거경험을 해석하면서 시간 속에서 방향설정-외적 방향설정과 내적 방향설정인 정체성 형성-하는 인간의 역사적 서사행위를 기본적인 문화적 능력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는 역사가뿐만 아니라 학습자도 서사의 주체로 여겼다. 따라서 그에게 역사학습은 학습자들이 역사가들의 역사 해석을 단지 분석하는 활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학습자들에게 그들의 생활세계로부터의 역사적 관심으로부터 자신의 내러티브를 합리적으로 구성하는 능력 혹은 역량을 얻게 하여 시간 속에서의 방향설정을 돕는 과정으로 이해되었다. 역사의식을 개체발생적 의식작용이며 자기전유의 내면화 과정으로 이해했던 뤼젠은 학습자의 개체성과 주체성을 중요시하는 역사교육을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수용적 내지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역사(해석)는 학생들의 방향설정 욕구를 채우지 못하고, 그들의 정체성 확대의 기회를 막는 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뤼젠은 학습자들이 스스로 과거(경험)를 해석하면서 자신의 삶에 방향설정하는 능력인 “내러티브 능력”을 발전시켜주는 그런 역사수업을 지향했다. 그의 역사학습론은 역사의식 활동에 관여하는 경험, 해석, 방향설정의 세 차원들을 다루면서, 그것들의 조화와 균형을 강조했다. 더불어 이 세 차원을 다루는 역사학습의 과정이 방법론에서 더 합리적으로, 해석의 관점에서 더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으로, 학습자의 관점에서 더 주체적으로 성장, 발전해야한다고 했다. 이런 뤼젠의 이론은 독일 역사교육에서의 역량중심 교육과정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뤼젠의 이론에 기대어 ‘역사적 역량’을 구상했던 FUER모델 연구자들은 학습자들이 그들의 인식 욕구, 방향설정 욕구 등에 따른 질문으로 과거를 재구성하면서 그것을 삶에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역사적 사고의 능력을 학습하게 된다고 보았다. 뤼젠의 학문모형은 FUER모델에서 역사적 사고의 과정으로 세분화 되었고, 그 과정에서 생활세계로부터 나온 학습자들의 관심은 역사적인 질문제기로 나타났다. 이러한 역사적 사고 과정의 핵심은 재구성, 즉 서사 작업이었다. 뤼젠이 역사학습의 목표로 내러티브 능력을 강조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이러한 서사 작업은 논증적인 방법론을 포함한 것이었다. 역사학의 방법론은 그 자체가 역사학습의 목적이라기보다는 합리적인 재구성을 위한 수단으로 이해되었다. 뤼젠은 객관적이고 방법론적인 논증을 확장된 서사개념 안에 포함시키는 방법으로 대립관계인 서사와 논증을 종합하려했다. 재구성하는 역사적 서사행위가 자의적이고 독단적인 해석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자의와 독단을 방지하기 위해 뤼젠은 역사적 서사가 경험적·규범적·내러티브적 타당성에 부합해야 함을 강조했다. FUER모델 역시 해체 작업을 통해 이것들을 방지하려 했다. 이처럼 재구성하는 역사적 서사행위로서의 역사의식은 가치지향적일 뿐만 아니라 역동적이다. 그것이 생활세계의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생활세계의 변화로 인한 역사적 관심, 인식 욕구와 방향설정 욕구 등의 변화는 결국 역사의식의 이런 역동성을 추동한다. 현재적 의미의 역사의식이 과거보다는 현재 그리고 미래와의 연관이 더 강한 이유이다. 현재 의식에 따른 역사의식은 정태적이지 않고, 활동적이고 역동적인 것이다. 이런 역사의식의 역동성은 역량중심 교육과정에서 정태적인 역사적 사고가 아닌 지속적이고 활동적인 역사적 사고의 ‘과정’으로 치환되었다. 한국 역사교육은 역사학습에서 경험-해석-방향설정의 균형을 이루어야 하며, 학생들의 생활세계로부터의 역사적 관심과 방향설정 욕구가 적극적으로 다루어지도록 수업을 설계해야 한다. 즉 역사수업은 현재에서 출발하여 과거로 향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또한 학생의 역사적 사고의 수준을 높여가는 학습과정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역사교사와 역사교육연구자는 학문과 생활세계 사이에서 두 영역을 매개하면서 소통을 원활히 하는 전문성이 요구된다. 역사이론은 역사교육의 이런 과정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

      • 역사교육에서 상상과 추론 그리고 역사영화 : 영화 <남한산성>의 역사교재화를 중심으로

        박수경 부산대학교 대학원 2023 국내석사

        RANK : 248735

        사료는 단편적이거나 파편적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그대로 재생할 수 없다. 그나마 남아있는 것들은 정치, 제도, 지배층 중심이다. 이러한 제한을 넘어 묻혀있던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드러내고 역사에 숨을 불어넣기 위한 교수·학습이 논의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역사영화를 수업에 활용하는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으나, 문학적 상상력을 기저에 깔고 있는 역사영화를 미시사적 접근법인 추론을 활용하여 수업에 적용한 연구는 흔치 않다. 이 연구는 역사 이해에서 문학적 상상력과 미시사적 접근법인 추론에 대해 살펴보고, 이러한 이론적 접근법에 기반하여 영화 <남한산성>의 역사교재화를 시도하였다. 이를 통해 역사교육에서 사회 제도, 구조, 사건과 관련한 지식을 쌓는 것을 넘어서서 학생들이 상상력과 공감을 통해 과거 사람들이 오늘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계속성을 깨닫고, 역사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확인할 수 있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역사 자료는 역사 사실을 그대로 말해줄 수 없다. 또한 역사는 인간의 활동이기 때문에 역사 이해에서 상상은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연구에서 주목하는 상상은 인지적 성격을 띤 보간, 삽입과 같은 성격이 아니라 문학적 상상력이고, 이와 관련하여 ‘팩션’이라는 개념에 주목했다. 20세기 중반 이후 역사 해석과 인간의 구체적 삶에 초점을 두는 미시사가 대두되었는데, 대표적인 접근법으로 긴즈부르그의 ‘실마리 찾기’와 기어츠의 ‘두껍게 읽기’가 있다. 이는 역사에서 보통 간과되기 쉬웠던 사소하고 일상적인 상징적 행위들을 촘촘히 엮어 개인이 특정한 사회와 맺고 있는 여러 관계를 파악하는 방법으로서 실제적인 차원에서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실현시킨다. 역사영화를 수업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핍진성과 개연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그리고 역사영화의 선정부터 영화의 소재가 된 사건의 정보 제공, 학생들이 영화를 보며 생각할 수 있는 질문 제공 등 교사의 개입이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이론적 배경을 기반으로 역사영화를 수업에 활용하는 것은 보통 사람의 역사를 상상과 추론으로 재구성하여 새로운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게 한다는 의미이다. 이를 통해서 역사 이해를 풍부하게 하고, 역사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이 세계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이론적 접근법을 적용하여 영화 <남한산성>을 수업 교재화하였다. 영화 <남한산성>의 구성과 대립 구도 및 관련 플롯을 살펴보고, 7차시에 걸쳐 사전학습, 영화 시청, 수행평가로 교수·학습안을 구성해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영화 시청 중 제시했던 질문과 글쓰기 수행평가에 대한 학생의 답안을 바탕으로 그 인식 특성을 분석해보았다. 학생은 교사의 수업 의도에 맞추어 영화 속 등장인물의 사소한 눈빛, 행동, 대사 등에서 당시에 실제 있었을 법한 사람들의 지배층, 나라, 전쟁에 대한 인식을 파악하였다. 이 연구는 상상, 추론을 역사영화 수업에 접목하고 학생의 인식 특성을 분석해본 것이다. 영화를 역사 수업에 활용하는 것은 학생들이 영화 제작자의 주관적 의도에 의해 창조된 허구와 사실을 혼동할 수 있다는 한계점 때문에 교사의 치밀한 교수·학습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역사영화를 활용한 수업은 자칫 사실과 허구를 구별하는 식으로 끝나버릴 수 있지만, 당시 실제로 있었을 법한 사람들의 일상적이고 세세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할 여지를 주는 수업은 학생의 역사 이해를 더욱 풍성하게 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 학교 역사지식의 구성 : 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중심으로

        김민수 부산대학교 2012 국내박사

        RANK : 248735

        This article showed the procedure of history textbook writing based on curriculum, the procedure of the acceptance and the reconstitution by teacher, and the procedure of understanding by students. The control of political power and the autonomy of persons who are writers, teachers, and students have been crossed in the process of history textbook’s writing and using. First, the political power has the strongest influence on the development of curriculum. In 2007 curriculum, the political power accepted the opinion of history education strengthening by experts in academic and field. However, in 2009, the request from experts was ignored and the curriculum was controlled by political power. The autonomy of experts was limited under the control of political power in process to develop curriculum. There is the need to reduce the influence of political power for political neutrality of history education. Second, the environments for textbook writing have been changed such as becoming the official approval system, giving standard guideline to write textbook, and the changed view for history textbook. The influence factors in writing textbook have been seen in the changed environments. For that, six history textbooks have been analyzed and writers have been interviewed. The official approval system attempts to control writers. In spite of that, writers have considered their view of curriculum and the history understanding of students when they are writing textbooks. Third, the standards to choose history textbook by teachers have been researched with survey. The classes by six teachers have been analyzed and the aspects of history textbook’s reconstitution have been seen. Teachers have reconstituted history textbook based on the history knowledge, the understanding curriculum, and the understating level of students. However, there were limits to reconstitute history textbook for some teachers who have the lack of history knowledge. History teachers have led their classes with history knowledge as a main controller. The history classes in the field were out of control which is by political power. The aspects of history textbook understanding by students have been observed. 258 students have been surveyed. 125 students have been taught with reading textbook and 133 students have been taught with textbook reconstitution by a teacher. The students have been asked if they are thinking textbook contents as a truth, if they can understand various narratives of textbook, and if they can understand aims of textbook writers. Then, 18 students who can express their opinion well have been surveyed and interviewed as group A and B. Group A, who have been taught with reading textbook, have thought textbook contains a truth and have not recognized textbook is based on writers’ view. However, group B have recognized writers’ view reflects on textbook. Also, group B have opened to various narratives of textbook. 역사 교과서와 교육과정은 역사교육에서 차지하는 역할의 중요성 때문에 일찍이 주요 연구대상이 되었다. 역사교육연구 초창기인 1950년대부터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이어졌다. 연구 성과가 축적되고 연구 분야가 세분화되었지만, 교육과정 개발, 교과서 집필, 교사의 교과서 내용 재구성, 학생의 교과서 이해라는 과정을 일관하는 연구는 없었다. 본고에서는 2007·2009 교육과정의 고등학교 ‘한국사’ 과목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이 편성되고 역사교과서가 집필되고 교사·학생에 의해 재구성과 이해되는 과정을 확인하였다. 또 역사과 교육과정과 역사 교과서 구성에 영향력을 미치는 요소를 확인하였다. 정치권력이 교육내용을 통제하려는 힘과 역사학자, 교과서 집필진, 교사들의 역사 지식 선정과 조직에 있어서의 자율성을 두 축에 놓고 교육과정 개발에서 학생들의 역사 교과서 이해까지를 연구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역사과 교육과정 편성 과정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정치권력이었다. 정치권력은 역사학계와 교육계의 요구를 수렴하여 교육과정을 편성하기도 한다. 2007년에 주변국의 역사왜곡과 국민들의 국사 교육 강화를 요구가 일자 정치권력은 역사학계와 교육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역사교육강화방안을 마련하였다. 역사교육계가 요청한 세계사 교육 정상화, 폐쇄적 국사 인식의 극복, 역사교육의 계열성 확보를 내용으로 하는 2007 역사과 교육과정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2008년 정치권력의 교체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정치권력은 근현대사의 비중 약화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내용에 삽입하는 등 이데올로기 통제의 의도를 드러냈다. 다시 국사 인식으로 후퇴하고, 역사교육의 계열성은 훼손되는 등 2007 역사과 교육과정에 비해 후퇴한 교육과정이 제정되었다. 정치권력은 역사과 교육과정과 교과서 개발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였고, 그나마 있는 제도적 절차마저도 무시하면서 교육내용을 통제하려 하였다. 교육과정 편성의 주도권은 정치권력에게 있었고, 교육과정의 내용을 마련하는 실무를 담당하는 역사교육계의 자율성은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둘째, 교과서 검정제로 ‘한국사’ 교과서가 발간되었다. 검정제는 교과서 집필에 통제와 자율성 부여라는 양면적 기능을 하였다. 검정제도, 역사교과서의 집필기준, 수정권고안을 통해 정치권력은 교과서 내용을 통제하려고 하였고, 이데올로기적 통제로 이해될 수 있는 요구도 포함되어 있었다. 검정제도의 통제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집필진들은 검정제가 허용한 자율적 공간과 교육과정 문서의 대강화로 확보된 집필의 자율성, 역사 교과서관의 변화를 바탕으로 다양한 한국사 교과서를 집필을 시도하였다. 집필진들은 역사학에 대한 전문적 식견,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 역사 인식과 학생들의 역사 학습을 위한 배려를 바탕으로 교과서를 집필할 수 있었다. 교과서 검정발행제가 합리적으로 운영될 수만 있다면 집필진들의 자율성은 더 커질 수 있다. 다양한 역사담론을 담은 역사 교과서의 출간이 역사학습을 위한 기본조건이라고 본다면 집필진들의 자율성이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역사 교사들은 가르치는 내용을 선정하고 재구성하는데 상당한 자율성을 가지고 있었다. 교사들이 역사교과서를 선정할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학생들이 읽는 교재라는 관점이었다. 역사 교사는 교과에 대한 내용 지식, 교육 과정 지식, 자신들의 역사 인식, 역사 교육에 대한 주관을 바탕으로 교과서와 다른 학습 내용을 선정하고 교과서 내용을 재구성해서 역사수업을 전개하였다. 역사교사는 평가 등의 제약이 있어도 교사의 의지나 전문성에 따라 내용선정과 해석에 있어서의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검정 교과서를 접한 학생들이 역사 교과서의 구성과 서술을 이해하는 양상을 확인하였다. 학생들의 역사 교과서 이해에 역사교사의 수업 형태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가정 아래 학생들은 교과서 의존형 수업을 받은 집단과 교과서 재구성한 수업을 받은 집단으로 나누었다. 결과 교과서 의존형 수업을 받은 학생들은 역사 교과서의 서술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또 교과서 서술이 다양한 것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와 반대로 교사가 재구성한 수업을 받은 학생들은 역사 교과서의 서술이 누군가의 관점이 반영된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정도가 상대적으로 강했다. 또 역사 교과서의 서술이 다양한 것에 대해 허용하는 학생수도 상대적으로 많았다. 다양한 서술을 담은 역사 교과서가 학생들에게 공급되고 역사 교과서를 수업을 재구성할 교재로 활용하는 교사가 더 많아질 때 학생들은 역사학의 특성에 맞는 역사 학습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교육과정 개정이라는 국가 단위에서 교육 내용을 결정하는 단계에서는 정치권력의 통제력이 컸고 그 외 역사학계와 교육계는 정치권력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영향력이 행사되었다. 그러나 교과서를 집필하는 단계에서는 교과서 집필진들의 전문성과 의지가 반영된 교과서를 집필할 자율적 공간이 상대적 넓었다. 검정제와 교육과정 대강화가 그 조건이 되었다. 역사 교사는 평가 등 몇 가지 통제 요인이 있지만 교육내용 선정과 조직에 있어서 자율성이 가장 많았다. 이 연구는 정치권력의 교육내용에 대한 통제와 역사교육 주체들의 자율성을 주요 개념으로 교육과정과 역사 교과서, 교사의 수업이 만들어지는 매커니즘을 확인한 것이다. 연구결과는 교육과정 제정에서 정치권력의 통제력이 약화되고, 교과서 집필진들과 교사들의 자율성이 확대될 때 학생들이 역사 담론을 배우는 역사학습에 다가갈 가능성이 많아질 것을 예상하게 한다.

      • 중학교 <역사>의 한국사와 세계사 연계 방안

        노봉석 부산대학교 2012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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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세계사 내용을 한국사와 통합해 <역사>과목으로 구성하고, 그 내용 구성의 기본 방향으로 한국사와 세계사의 통합적 접근을 취하였다. 이 글에서는 중학교<역사>의 개설 취지를 실현하기 위해 학교현장의 구체적인 수업 국면에서 한국사와 세계사의 연계 방안을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중학교<역사>개설의 의미를 한국사와 세계사의 연계라는 측면에서 분석하고, 2007년 개정 역사교육과정에 이 문제의식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살펴보았다. 둘째, 중학교<역사>교과서를 검토하여 한국사와 세계사의 서술 특성을 분석하였다. 셋째, 현행 <역사>교과서에서 세계사와 한국사를 연계하는 형식을 짚어보고, 실제 수업 상황에서 한국사와 세계사를 통합한 단원편성의 사례를 제시하였다. The newly organized middle school <History> subject in the revised history curriculum in 2007 integrated Korean history with world history which had been in the social studies textbook. By binding Korean and world history, it has a significant meaning in teaching Korean history which is taught within a world historical context. And it is very important to have Koreans understand world history from the point of view of Koreans. In the past, Korean history described other countries and races excessively from a korean-centered point of view. This caused not only exclusive superiority but also exclusion of diverse units. In the description of world history, it had been Euro-centric and Chinese-centered, which divides center and surroundings, This fact concealed the historical contribution of various units and caused the Western-centered hegemony. This tendency has been expanded and deepened through the history education which had taught Korean and world history separately.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find out the way of teaching interrelation of Korean history and world history on the revised history curriculum in 2007. For this, first, the curriculum and the history textbook are analyzed. The aim of the revised curriculum in 2007 is to understand people’s life in a wide vision and connect between world history and Korean history. The content system prepared grounds to make up the exchange aspect with neighboring countries in Korean history, and it seems that there is a trial of overcoming the Euro-centrism in world history. In the history textbook, the view points of korean history and world history are as follows: In Korean history, The unification of three nations and Korean dynasty’s struggle with the mongols is still concerned with ‘aggression by foreign powers and resistance of race’. On the other hand, various people’s existences and activities in the ethnic group are ignored or regarded as secondary. In the description of world history, views of imperialism were found. Sui and Tang empires and Mongol empire became the standard of civilization, and the importance of imperialism is emphasized through these civilizations’ diffusion. Also, in the part of East Asian culture, the description was excessively focused on China. In the separate condition of Korean history and World history in the history textbook, we can find out various trials of connecting Korean history and world history. East Asia’s background is importantly mentioned in the description of the history about politics and diplomacy. And also there are some units of foreign policy exchange. To interrelate Korean history and world history, complementary documents are placed. However, because of the separation of korean and world history ,the outcome has not been exposed. This study recently tried to connect Korean history and world history in units. The World history unit and Korean history unit are cross-arranged in time order and connect the Korean history with the East Asian history in the part of the East Asia unit in world history. In this way the lesson unit can make the students understand East Asian and Korean history based on the understanding of world history. Most of all, we can set the interrelated theme and easily perform theme-based instruction. It is very difficult to arrange Korean history and world history units chronologically because of the difference in development and organization. But it is recommended that history should be settled by various activities in the classroom.

      • 일제강점기 에비 미치타카(蝦道隆)의 역사교육관과 초등 역사수업

        이은홍 동국대학교 2021 국내석사

        RANK : 248735

        본고에서는 에비 미치타카의 교육 활동과 역사교육관을 분석하여 그의 초등 역사수업을 재구성하였다. 효과적인 분석을 위해 1930년대 전반기 조선 교육계의 동향과 역사과 교육과정 및 역사교과서를 살펴보았다.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는 교육 목표로 내선융화가 등장하였고, 서양의 다양한 교육 사상과 슈프랑거·듀이 등이 제시한 교수 방법이 소개되었다. 더불어 역사과 교육과정에서는 일본 국체의 이해와 국민지조의 양성을 목표로 두었고,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普通學校國史 兒童用』 上·下卷과 『普通學校國史』 卷一·二가 역사교과서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재조 일본인 교사 에비 미치타카의 저술활동과 역사교육관을 살펴보았다. 그는 경성사범학교 훈도로 근무하면서 『朝鮮の敎育硏究』에 역사교육과 관련된 논설문, 수업지도안, 교재해설과 지도상의 유의점 등 37편의 글을 활발히 게재하였고, 『普通學校國史敎授書』 卷一을 집필하였다. 이에 본고에서는 에비 미치타카가 작성한 수업지도안과 교수서를 근거로 와케노 기요마로와 쇼토쿠 태자를 가르치는 역사수업을 재구성하였다. 그 결과 에비 미치타카의 역사수업에서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나타났다. 첫째, 에비 미치타카의 역사교육 목적은 일본의 국체인 천황체제를 유지하고 강화하려는 이데올로기 교육이었다. 이는 1930년대 전반기 역사과 교육과정에서 강조하던 국체의 확립과 국민지조 양성의 목적과 부합한다. 그리고 역사교육의 부수적인 목표로 내선융화의 확산을 내세워 1930년대 후반에 내선일체로 나아가도록 하였다. 또한, 사상 교육을 실시해 민족주의를 강조하였지만 사회주의 사상의 침투는 차단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그의 수업에서도 부각되었다. 와케노 기요마로를 가르치는 수업에서 천황제 이데올로기 강화를 위한 교수 지침이 나타났고, 백제계 귀화인 쿄키를 교수 자료로 삼아 내선융화를 추구하였다. 또한, 쇼토쿠 태자를 가르치는 수업에서도 17조 헌법과 일본 문화를 강조하여 조선 학생들에게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도록 가르쳤다. 둘째, 에비 미치타카의 역사수업에서는 최신 역사 교수 방법들이 본래의 취지와 달리 천황제에 기반을 둔 국가주의적 내용을 전달 및 강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에비 미치타카는 역사수업에 활용이 가능한 ‘➀ 이회와 감정이입’, ‘➁ 생활지도’, ‘➂ 교편물의 활용’, ‘➃ 아동중심주의 학습법’, ‘⑤ 개발주의 설화법’ 등의 당대 최신 교수법을 제시하였다. 천황제 이데올로기 강화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수업지도안과 교수서에서 이와 같은 5가지 방법을 활용하였던 것이다. 특히, 와케노 기요마로와 쇼토쿠 태자를 가르치는 역사수업에서 5가지 교수 방법의 활용 사례가 명확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방법들은 역사수업에서 학생들의 역사적 상상력과 판단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또한, 당대에 독일과 미국 등에서 유행하던 최신 교육학설이 반영된 교수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에비 미치타카는 이러한 교수법들을 천황체제 이데올로기와 일본 중심의 국가주의 역사관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물론, 재조 일본인 교사 에비 미치타카의 수업지도안과 교수서에 나타난 역사수업의 형태를 일제강점기에 모든 역사수업으로 일반화 시킬 수 없다. 또한, 경성사범학교에서 근무했던 에비 미치타카가 국가의 교육정책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역사수업을 설계하지 못하였을 가능성도 크다. 이러한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재조 일본인 교사 에비 미치타카의 역사수업 사례는 일제강점기 역사수업의 목적과 방향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 ‘불편한(difficult) 역사’의 역사교육적 의미와 교수·학습 방안

        정연두 부산대학교 대학원 2023 국내석사

        RANK : 248735

        This paper started from the consideration of teaching and learning methods of the traumatic histories committed by state violence or during war. Recently, research on the educational rationales, significance, and direction of traumatic histories has been in full swing in Korea. However, regardless of its rationales or significance, domestic and foreign interest or research on how traumatic histories are conceptualized to students as teaching them and how to deal with the discomfort or difficulties caused by emotional reactions of students in the process is still lacking. This paper focused on the concept of 'difficult knowledge' by Deborah Britzman(1998), a Canadian psychoanalyst, in relation to the education of traumatic histories. The concept of ‘difficult knowledge’ was examined in relation to traumatic histories. ‘Difficult knowledge’ was categorized by factors that make ‘difficult’ in class. The primary factor for feeling ‘difficult’ is emotional shock, but it is also reinforced by cognitive crises, social controversy over the topic, and educational fatigue. In addition, in terms of focusing on the emotions of learners, ‘difficult knowledge’ was examined on the relationship with history education comparing with learners' cognitive development and historical empathy among the existing discourses of history education. It was particularly relevant to the recent study of historical empathy as 'caring'. Next, by examining domestic and international discussions surrounding ‘difficult knowledge’, the necessity of ‘difficult knowledge’ education and its implications for history education were investigated, and teaching and learning methods were sought for each of the four factors of ‘difficult knowledge’. In addition to this, here are three suggestions. First, teachers must acknowledge the vulnerability or uncertainty surrounding the teaching and learning of ‘difficult knowledge’. Second, we need to break free from the compulsion to fully convey the ‘truth’ and instill a set moral lesson. Finally, the ‘difficult knowledge’ should be incorporated into the present. 본고는 국가 폭력에 의하거나 전쟁하에서 저질러진 트라우마 역사의 교수·학습 방안을 모색하였다. 최근 국내에서 본격화하는 트라우마 역사에 관한 연구는 주로 교육적 효용이나 의의 등에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 트라우마 역사가 학생에게 어떻게 개념화되는지, 그 과정에서 생긴 정서적 반응 등에 의해 학생이나 교사가 직면하는 불편함 내지 어려움은 어떠한지에 관한 국내외 관심이나 연구는 아직 미진하다. 이에 본고는 트라우마 역사의 교육과 관련해 정신분석학자인 데보라 브리츠먼의 ‘difficult knowledge’ 에 주목하였다. ‘difficult knowledge’의 개념을 트라우마 역사와의 관계 속에서 살펴보면서 적합한 번역어를 탐색하여 ‘불편한 역사’로 번역하였다. 이어서 ‘불편한 역사’를 둘러싼 국내외 논의를 ①홀로코스트 교육, ②대규모 인권 유린에 대한 기억/기념, ③학교 현장에서의 접근으로 계통화하여 ‘불편한 역사’의 개념을 보다 깊이 살폈다. ‘불편한 역사’의 교수·학습 방안을 모색하기 위하여 우선적으로 역사교실에서 ‘불편함’을 만드는 요인을 ①정서적 충격, ②트라우마가 주는 인지적 위기, ③주제의 사회적 논란성, ④교육적 피로감으로 갈래지어 범주화하였다. 아울러 ‘불편한 역사’가 학습자의 정서에 초점을 맞춘다는 측면에서 기존 역사교육의 담론 중 감정이입적 역사이해, 학습자의 인지발달과 비교하여 역사교육에서의 위치도 살펴보았다. 특히 바튼과 렙스틱의 ‘관심(cares)’으로서의 감정이입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불편한 역사’ 교육의 필요성을 ①시민교육, ②재발 방지, ③기억과 기념 차원에서 살펴보면서 역사교육적 함의를 알아보았다. 마지막으로 앞서 살펴본 ‘불편함’의 요인에 근거한 교수·학습 방안을 모색하여 ①불편함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기, ②수업에서 겪는 인지적 위기를 긍정하기, ③기억 의무로 사회적 논란에 맞서기, ④현재화를 통하여 교육적 피로를 극복하기를 제안하였다.

      • 17~19세기 조선왕조의 국가재정정책 연구와 역사 교과서 서술 방안 : 부세제도 개혁 및 총액제적 재정 운영을 중심으로

        김찬구 공주대학교 2019 국내석사

        RANK : 248735

        이 연구는 17∼19세기 조선왕조 국가재정 운영 과정과 관련한 최근의 연구 성과를 다루고, 이를 역사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반영해야 할지에 대한 방안을 교과서 서술을 중심으로 모색한다. 2000년대 이래 역사학계에서는 조선왕조의 국가재정을 ‘봉건적’으로 규정하는 기존의 이해에서 탈피하여, 재정 관련 문헌을 중심으로 비서구 전통사회로서의 조선왕조가 지니는 재정 운영상의 특질을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조선시대상 전반을 새롭게 재구성하려는 움직임이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관련하여, 본고는 17∼19세기 조선왕조의 국가재정정책과 관련한 최근의 연구 성과를 역사교육 현장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를 교과서 서술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했다. ‘Ⅱ. 조선왕조 국가재정정책의 이념과 실재’에서는 17∼19세기의 국가재정정책을 크게 17∼18세기의 부세제도 개혁과 18∼19세기의 총액제적 재정 운영으로 양분하여 다룬다. 국가권력의 영속과 그를 위한 ‘안민(安民)’ 및 ‘민유방본(民有邦本)’ 이념의 달성을 추구한 조선왕조의 국가재정은, 모든 물류가 중앙으로 집중하고 분산되는 국가적 재분배체제(redistribution)를 지향했다. 그러나 교통과 정보통신기술의 미비 등으로 재정 운영은 때로 일종의 우회로로서 그와는 정반대되는 분권적 ‘경비자판(經費自辦)’ 방식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고, 다른 한편 재정의 중앙집권성을 강화하고 국가적 재분배를 중앙정부 차원에서 구현하려는 조치들이 ‘절용(節用)’ 원칙의 강조를 전제로 ‘양입위출(量入爲出)’·‘손상익하(損上益下)’·‘궁부일체(宮府一體)’의 슬로건 아래 꾸준히 경주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17세기 조선왕조 중앙정부는 16세기의 방만한 재정 운영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상기 슬로건에 바탕을 둔 긴축적 재정 운영 및 재정 개혁을 추진해나갔던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이는 토지세인 전세(田稅) 부문에서는 징수 토지를 새롭게 조사하는 프로젝트에 해당되는 도 단위 양전(量田)의 실시와 운영에 있어 최저세율 관행을 공식화하는 영정법(永定法)의 실시로 나타났다. 또한 특산물인 공납(貢納) 부문에서는 현물이 아닌 쌀·면포·동전 등의 형태로 받아들이는 방식을 공식화하는 한편 추가 징수를 방지하기 위해 징수액에 지방재정 운영을 위한 재원을 포함시키는 대동법(大同法)의 추진, 노동력인 군역(軍役) 부문에서는 각 군사기구의 재정 운영에 대한 통제와 그 액수에 대한 삭감을 전제로 복수의 개혁론을 조합하는 균역법(均役法)으로 나타났다. 특히 군역제 개혁 과정에서 선행된 이정법(里定法)은 면리(面里) 단위로 재원을 부과하고 그 징수를 지역민의 자율적 운영에 맡기는 총액제적 재정 운영의 초기 형태로서 향후의 재정 운영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총액제적 재정 운영은 18세기 이후 점차 국가재정 각 부문으로 확대되는 추세를 보이게 된다. 숙종 대 ‘급가매토제(給價買土制)’ 등 왕실재정에 대한 통제 조치, 영조 대 도-군현 단위 토지에 대한 파악 노력인 “여지도서(輿地圖書)” 편찬 및 그와 병행된 전세 부문에 대한 총액제인 전세 비총제(比總制), 정조 대 전국 단위의 호구 수를 정리한 “호구총수”, 그리고 지방재정 및 중간비용의 추가적인 공식화를 명기한 “부역실총(賦役實摠)” 등은 모두 그와 흐름을 같이 하는 것으로서, 국가재정 운영의 중앙집권성을 도의 감영과 군현의 지방관청을 중심으로 강화하는 것이었다. 이는 또한 18〜19세기 지방재정의 운영양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단서로 기능한다. 실제로 종래 19세기 조선왕조의 지방재정은 흔히 수탈적 측면만이 강조되어 ‘삼정문란(三政紊亂)’으로 지칭되어 왔으나, 그 이면에는 18세기 총액제적 재정 운영의 확대 이래 지속된 지방재정의 기능·업무의 증대와 19세기 초반 기근의 재발, 지역사회 현실에 바탕에 둔 주민자치적 관행의 다각화 등이 함께 작용하고 있었다. ‘Ⅲ. 역사 교과서의 관련 서술 분석 및 개선 방안’에서는 이상과 같은 일련의 연구 성과를 실제 역사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지를 역사 교과서 서술 속 내용요소를 중심으로 다룬다. 교과서 서술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교육활동 전반의 목표와 성취기준 등을 제시하는 교육과정, 그리고 교과서 서술을 위해 교육과정의 내용을 보다 구체화한 집필기준에 대한 분석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중고등학교에서 운영 중인 2009·2015 개정 교육과정의 서술을 분석해보면,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의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은 모두 재정을 징수 행위만을 중심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그 이외의 재정 활동에 대한 관심은 교육과정상으로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음이 확인된다. 특히 19세기와 관련하여 일관되게 확인되는, 지방재정 운영을 세도정치와 직접 결부지어 이해하게끔 하는 방식은 당대 조선왕조 국가재정 운영상의 어려움을 구조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저해하는 측면이 있는 것은 물론, 18세기와 19세기를 지나치게 단절적인 것으로 이해할 소지 또한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의 이러한 관점은 교과서의 서술 체제와 구성에도 비슷하게 반영되고 있다. 먼저 내용요소별 양적 분석의 경우, 중학교 ‘역사’는 본고가 검토한 교과서 5종 모두 균역법과 삼정문란 위주로 재정사를 다루고 있으며, 특히 사회경제사 강조를 표방한 고등학교 ‘한국사’의 경우 5종 가운데 2종만이 비총제를 매우 적은 비중으로 다루고 있으며, 그마저도 군현 단위의 징수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질적 분석에 있어서도 이는 마찬가지여서, 교과서의 17∼19세기 재정사 관련 서술은 사실을 제시하는 한편으로 특정한 맥락 중심으로 개별 양상이 지니는 의미를 단일화하고, 재정 부문 간 관계를 배제한 채 부문 개별의 양상에 집중하는 방식의 서술을 구사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그리하여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본고는 구체적인 개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직접 역사 교과서의 17∼19세기 조선왕조 국가재정과 관련한 소단원 내용 일부를 제시해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본고는 우선 재정시스템과 관련한 문제의식과 연구 성과를 본문의 서술에 반영한 다음 일부 내용요소를 대상으로 보다 심화된 사고를 이끌어내는 발문을 본문 하단에 제시하는 방식을 취하고자 했다. 또한 학생들이 조선왕조의 국가재정을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특징인 이원적 재정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리라 판단, 별도의 ‘재정 구조’ 주제를 설정하여 이를 설명하고자 했다. 아울러 삼정문란을 구조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총액제적 재정 운영의 확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삼정문란 앞부분에 ‘총액제’ 주제를 추가하였다. 본고의 시도는 학습자를 ‘실제 독자(actual reader)’로 길러내기 위한 ‘저자적 텍스트(writerly text)’의 구축 방안의 사례라는 점에서, 또 서구 근대의 관점이 아닌 조선사회 자체의 맥락과 관점에서 탐구하는 활동의 구체화라는 점에서, ‘역사적 사실 두텁게 읽기’의 유의미한 사례로서 비단 역사학계의 연구에서만이 아니라 역사교육 현장에 있어서도 일정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역사학·역사교육학 두 학문 영역 간 격차의 해소라는 오래된 문제의식 또한, 본고와 같은 양자의 문제의식이나 연구 성과 간 접점의 모색 등의 시도 등을 통해 일정 수준에서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This study deals with recent research achievements related to the process of national fiscal administration of the Joseon Dynasty in the 17th and 19th centuries, and explores how to reflect this in the field of history and education focusing on writing the textbooks. Since the 2000s, many historical researchers have moved away from the existing understanding that defined the national finance of the Joseon Dynasty as ‘feudal’, and are trying reconstruct the whole system of the Joseon era by confirming the characteristics of the fiscal operation of the Joseon Dynasty as a non-Western traditional society. In this regard, this paper focuses on how to apply the recent research achievements related to the national fiscal policy of the Joseon Dynasty in the 17th and 19th centuries to the field of history education especially to the wring of history text books. Chapter Ⅱ ‘The ideology and reality of the national fiscal policy of the Joseon dynasty’ deals with the fiscal policy of the 17th ~ 19th centuries, largely dividing it into reforms of the Bu-se system of the 17th and 18th centuries and the Chong-aek(total-sum) institution in fiscal management of the 18th and 19th centuries. The national finances of the Joseon Dynasty, which pursued the perpetuation of the state power and the achievement of the ideals of ‘An-min(安民)’ and ‘Min-yu-bang-bon(民有邦本)’ for it, was aiming the national redistribution system in which all logistics were centralized and then dispersed to the regions. However, due to the lack of traffic and information-communication technologies, the fiscal management had to adopt sometimes the decentralized “Gyeongbi Ja’pan(經費自辦)” method, a kind of detour, which was opposite to the original intention. On the other hand, the central government continuously made efforts to implement the measures to realize the fiscal centrality and the redistribution of national finance by central government in accordance with the principle of “Jeolyong(節用)” principle, under the slogans of “Yang’ib Wi’chul(量入爲出)”, “Sonsang Ik’ha(損上益下)” and “Gungbu Ilche(宮府一體)”. After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the 17th century, the central government of the Joseon Dynasty seemed to have pursued a retrenched fiscal management and reform under the above slogans based on the regrets of loose fiscal management in the 16th century. Specifically, it was expressed with the Yeong-jeong act(永定法), which formalized the minimum tax rate practices of Yang-jeon(量田) in the unit of Do(county) corresponding to the project to newly survey the taxation lands in the department of Jeon-se(田稅). Also, in the department of Gong-nap(貢納) to pay with things, the taxation method in the form of special local products was formally changed to that of rice, cotton, coins, etc., And in order to prevent the excessive collection, the Daedongbeop(大同法) was promoted that included the expenses for operation of local budgets to the collected amount. And in the Gun-yeok(軍役) to collect labor forces, the Gyunyeokbeop(均役法) was implemented to combine the multiple reforms on the premise that the fiscal operations were controlled by each military organization and the amount thereof were cut off. Especially in the process of the military service reform, the Yijeongbeop(里定法) was implemented in advance to impose the fiscal sources for each Myeon(面) and Ri(里) and to entrust the tax collection to the autonomous operation of the local people. It was an initial form of Chong-aek institution in fiscal management, suggesting the future fiscal operations. Actually, the Chong-aek(total sum) fiscal system gradually expanded from the 18th century to each part of the national finance. The control of royal finances such as ‘Geup-ga-mae-to(給價買土)’ system during the reign of Sukjong, the compilation of "Yeoji(輿地)" books which was an effort to survey the total lands in Do-Gun-Hyeon(districts) and the alongside complementation of Bi-chong(比總) for field-tax, which was a Chong-aek system for the fields, during the reign of Yeongjo, and the “Hoguchongsu(total number of households),” which surveyed the household numbers in the whole country, and the “Buyeokshilchong(賦役實摠),” which specified the formulation of local budgets and medium costs, during the reign of Jeongjo were all in line with the Chong-aek system. Their purpose was to strengthen the centrality of national fiscal management through the Gamyeong of Do and the local offices of Gun-Hyeon. It also serves as an important clue to understanding the local fiscal administration in the 18th and 19th centuries. In fact, the local finance of the 19th century Joseon Dynasty has often been referred to as 'Three Policies's Disorder(三政紊亂)', emphasizing only the exploitation aspect. But behind it there were the expanding function/operation of local finance since the implementation of Chong-aek fiscal system in 18th century and the diversification of residents' autonomous practices based on local reality such as the recurrence of famine in the early 19th century. Chapter Ⅲ. ‘The analysis of the related descriptions in history textbooks and its improvement method’ mainly deals with how to reflect the series of such research achievements onto the actual history education fields, focusing on the content elements in the description of history textbooks. In order to review the descriptions in the textbooks, it is necessary to analyze in advance the curriculum that presents the overall goals and achievement standards of the educational activities and the writing criteria that further specify the contents of the curriculum to describe the textbooks. When analyzing the descriptions in the 2009/2015 revised textbooks currently used in secondary schools, it turned out that the curriculums and writing standards of middle schools’ 'History' and high schools’ ‘Korean History’ are all focusing on collecting taxes with scarcely referring the other fiscal activities. In particular, the local fiscal management during the 19th century is consistently described in connection with the Se-do politics. This kind of description may not only hinder the structural understanding on the difficulties in fiscal operation of the Joseon government in those days, but also give the misunderstanding that the 18th century and the 19th century were so disconnected. This view in curriculum and writing criteria is similarly reflected in the descriptive system and composition of textbooks. In the quantitative analysis by content elements, all the 5 middle schools’ ‘History' are dealing with the fiscal history mainly focusing on the Gyunyeokbeop and Three Policies's Disorder. In case of high schools’ 'Korean History,' which was told to emphasize the socio-economic aspects of history, only 2 of 5 textbooks are dealing with the Chong-aek system very shortly, just focusing on the collection by Guns and Hyeons. In the qualitative analysis, this was the same. While presenting the fiscal facts in the 17th ~ 19th centuries, the textbooks unify the meanings of individual aspects in a specific context and describe just the situations of individual parts rather than the relation between departments. Based on the above discussion, this paper intends to directly present some contents of a small section on the national finance of the Joseon Dynasty during the 17th ~ 19th century in the history textbook in order to seek concrete improvement measures. For this purpose, this paper first took a way to reflect the problem consciousness related to the fiscal system and the research results into the description of the text, and then present a footnote at the bottom of the text that leads to a deeper thought about some content elements. Furthermore, under the supposition that, in order to clearly explain the national finance of the Joseon Dynasty to students, it was necessary to tell them the dual fiscal system, which is the most important feature, another subject ‘the fiscal structure’ was set up for the description. In addition, in order to explain Three Policies's Disorder from a structural point of view, it seemed necessary to show the spread of Chong-aek fiscal management. This is why the ‘Chong-aek institution’ was added before the Three Policies's Disorder. The attempt of this paper will be noteworthy not only for the historical research but for the field of historical education as a significant case for the ‘seriously reading of historical facts’ in that it is a method of constructing the 'writerly text' to cultivate the learners as the 'actual readers', and that it specifies the activity to explore the Joseon society in its own context and view point rather than in the modern Westerner view point. The chronological gap between the two disciplines-History and Historical Education-can also be solved to some degree through the attempt of this paper to find the contact point between the two disciplines in problem consciousness and the research results.

      • 역사교육에서 혐오 논의와 교수·학습방안

        이현정 부산대학교 2023 국내석사

        RANK : 248735

        최근 전 세계적으로 혐오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도 ‘일간베스트(일베)’의 등장으로 혐오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학교 현장에서는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혐오표현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교육 방안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본고는 혐오와 혐오표현의 개념에 대한 논의 정리를 통해 교육의 대상이 되는 혐오와 혐오표현의 개념을 정리하였다. 이어 교육적 차원에서 전개된 다양한 혐오 논의들을 살펴보았다. 학교급별, 교과별로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었으나 혐오가 오랜 역사를 통해 형성된다는 점에 주목한 연구는 흔치 않았다. 본고의 목적은 혐오를 역사교육에서 논의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역사교육을 통해 혐오표현 사용에 대해 성찰하고자 한다. 따라서 혐오와 관련하여 역사교육적 관점에서 논의된 연구들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교수·학습방안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먼저 설문조사를 통해 학습자가 혐오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학습자가 가지고 있는 혐오 인식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역사교육에서 혐오에 대한 접근 방안을 마련하였다. 접근 방안은 ① 혐오현상의 특징 인식 ② 혐오가 차별, 배제,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③ 혐오의 불합리성을 인식 ④ 혐오에 대해 성찰하기에 초점을 두었다. 수업의 목표는 역사적 사례를 통해 혐오표현을 비롯한 혐오현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이해하고 혐오가 왜 문제가 되는지 스스로 판단하고 성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다양한 혐오가 존재하지만 역사 수업에 많은 방식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인종’을 주제로 총 6회 12차시에 걸쳐 교수·학습 과정안을 구성하고 실행하였다. 이어 수업에서 보이는 학생들의 반응을 분석하여 학생들의 인식 변화를 살펴보았다. 일부 학생들은 자신의 혐오표현 사용을 성찰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인식의 변화가 없는 학생들도 존재했다. 몇 번의 수업으로 모든 학생들의 뿌리 깊은 인식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역사를 통해 혐오의 문제를 살펴봄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고민하고, 민주 사회에서 살아갈 시민으로서의 태도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 경성제국대학 조선사학 전공의 설치와 운영

        윤현정 동국대학교 2017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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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는 기존의 경성제대 연구에서 소외되었던 조선사학 전공의 설치와 운영을 분석함으로써 그 전체 상을 그려보았다. 이를 위해 첫째 경성제대 조선사학 전공 교수들이 식민주의 역사학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학문 권위를 이용하여 이를 제도 내로 편입하였으며, 둘째 식민주의 역사학을 공부한 조선사학 전공자들이 이후 한국과 일본의 역사학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셋째 이러한 작업을 토대로 경성제대 조선사학 전공이 남긴 공(功)과 과(過)를 명확히 하여 한국사를 식민지 시기부터 연속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형성하여 한국사 연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려 하였다. 경성제대 사학과에 설치된 조선사학 전공은 본토의 제국대학처럼 강좌제로 운영되었는데, 구체적으로는 통사 형식의 개설사 강의로 시대 개념을 형성하고 분야사 강의로 세부 내용을 보완하는 식으로 운영하였다. 이러한 교육과정은 현재 대학에 개설된 한국사 전공 교육과정과 차이가 없다. 교수와 강사진은 도쿄제대 출신으로만 구성되었다. 이들은 부임 이전까지 조선 식민지에 관심이 전혀 없었던 타 과 교수들과 달리 임용 전부터 식민지와 관련을 맺고 있었고, 특히 조선총독부가 주도한 역사 편수사업에 활발히 참여하였다. 경성제대라는 학문 권위까지 등에 업은 이들은 조선총독부의 행정사업에 협력하면서 식민주의 역사학을 형성하여 공고히 하였고, 이를 다시 학생들에게 이식하였다. 결국 일제는 본토의 제국대학을 통해 구현한 것처럼 조선 식민지에서도 경성제대를 통해 조선사를 관학 아카데미즘 안으로 편입하였다. 조선사학 전공의 일본인 학생은 조선 식민지에 거주하던 일본인의 자녀(2세대 일본인)와 본토에서 건너온 이들로 구성되었는데, 그 비중은 70퍼센트 정도였다. 나머지 30퍼센트를 차지한 조선인 학생들은 일본인 학생과 엘리트 의식을 기반으로 동질감을 형성하기도 하였지만, ‘식민지인-내지인’이라는 이질감을 더 크게 갖고 있었다. 조선인 학생들이 갖고 있던 조선 민족이라는 정체성은 국사 전공을 선택하지 않는 대신 조선사학 전공으로 쏠린 이유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경성제대는 끝내 본토의 제국대학과 동등한 입장에 서지는 못하였기 때문에, 해방 이전까지 조선인은 물론 일본인 학생조차 경성제대 교수로 임용되지 못한 채 도쿄제대의 분교 역할에 머물렀다. 해방 후 본토로 귀환한 일본인 교수는 도쿄제대라는 학벌과 식민지에서의 풍부한 현장 연구경험을 살려서 일본 역사학계에 연착륙하였다. 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하면서 식민주의 역사학을 일본 역사학계에 이식하였으며, 우익이 발간한 역사교과서 왜곡의 논리적 근거를 제공하는 등 지금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해방은 일본인 학생 중에서도 조선을 ‘고향’으로 생각하던 2세대 일본인들에게 더 큰 충격이었다. 이들은 귀환 후에도 한국과의 끈을 놓지 않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 귀환 후 학문활동을 지속한 일본인 학생은 경성제대에서 배운 문헌고증에 기반한 실증사학에 충실하였고, 그 결과 풍부한 사료를 바탕으로 한 저술을 남겼다. 조선인 학생에게 해방은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었지만, 연이은 분단이라는 민족의 비극 앞에서 이념에 따른 선택을 강요당하였다. 그 결과 남한과 북한에서 각각 근대 역사학의 초석을 다지고 이끌어가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주체사관에 기반한 한국사 체계화 작업으로 역사학이 체제 유지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였고, 남한에서는 문헌고증에 입각한 실증사학에 대한 반성 없이 식민주의 역사학자로 비판받는 연구자들이 역사학계를 주도하면서 현재까지 식민주의 역사학을 극복하지 못하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중학교 역사교육의 조선전기 정치사 학습방안

        허차진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2014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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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이후 일제의 역사왜곡에 대항하고 한국사의 흐름을 바로잡기 위해 정치사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학교의 역사교육에도 영향을 주었다. 학교급별 계열화를 고려한 제3차 역사 교육과정부터 중학교는 정치사 중심의 통사로 구성한다는 원칙을 드러냈다. 중학교 역사교육은 한국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대전제 아래 중·고등학교의 계열화를 위해 정치사로 구성한 것이다. 그러나 내용구성방식을 달리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급별로 계열화가 드러나지 않으며 내용은 반복된다는 비판을 계속 받아왔다. 본고에서는 정치사의 다양한 개념과 교사들의 인식을 통해 중학교 역사교육의 학습방안을 모색하였다.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과 교과서 내용 분석을 한 결과 중학교 학생들에게 정치사 중심의 통사가 적합하였다. 정치제도를 나열하는 현재 교과서의 서술은 해당 시대의 특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치사를 중심으로 중학교 교육과정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새로운 학습방안이 필요하다. 정치사는 해당 시기를 아우르는 성격으로 인하여 분야사의 정치사와 정치사 중심의 통사를 구분하기 매우 힘들다. 좁은 의미의 정치사는 과거 정치세력이 사회·경제적인 변화를 수용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만든 양식이다. 정치사의 다양한 개념을 통해 공통적인 내용구성요소로 정치세력, 정치운영, 정치사상, 대외관계를 추출하였다. 조선전기에서는 의도를 가진 정치세력 신진사대부와 훈구, 사림이 있고, 정치운영 면을 보면 건국 초에는 왕권이, 국가의 안정기에는 신권이 강화되는 변화가 나타났다. 정치세력은 모두 성리학을 정치사상으로 삼아 사회에 실천하고자 하였다. 대외관계는 성리학적 질서를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교과서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해당 사회의 전반적인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결국 교육과정은 분야사의 정치사를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교육과정을 반영한 교과서는 정치사 중심의 통사로 구성되는 모순이 생겨났다. 정치사는 토대가 되는 사회, 경제, 문화와 따로 떨어질 수 없으므로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고 해당 시대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결국 사회, 경제, 문화 부분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야 한다. 정치사 중심의 통사학습을 중학교 역사교육에 효과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정치활동을 중심으로 역사 변화를 다루는 방식이 적합하다. 본고에서는 중학교에서 효과적인 정치사 중심의 통사교육을 위해 조선전기를 사례로 정치 변화 중심의 교수요목을 구성하였다. 그리고 이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내러티브와 총괄 개념을 활용한 수업방안을 제시하였다. 정치사가 역사의 흐름과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라면, 시작과 전개, 결말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 형태인 내러티브는 정치 변화의 이해와 서술에 가장 적합하다. 역사학습의 목적이 한국사에 대한 이해를 높여준다는 것에서 나아가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사 수업에서는 조선시대 사회의 특성에 중점을 두어 하나의 개념으로 묶어 설명하는 것이 학생들의 이해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이다. 정치적 행동은 행위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라는 점에서 총괄개념으로 묶을 수 있다. 중학교 역사교육을 정치사를 중심으로 구성하는 것이 타당한 것이라면 조선전기 뿐만 아니라 다른 시대를 구성하는 적합한 방식을 찾아내는 노력도 필요하다. Considering systemization of schools, the 3rd school curriculum about history education in middle school explains the whole history focusing on Political History. It helps for the students of the middle school to achieve the goal of history education. Political history in the narrow sense is a well-made system reflecting the changes of the age which guarantee interests of politic powers at that time continually by them. Using various concepts of political history, it is extracted common ground of historical component such as politic powers, political operation, political philosophy, and foreign relations. Through conducting a survey targeting history teachers and analyzing the content of text, it was discovered that the students of the middle school learned more easily by understanding of the whole history focusing on political history. Current text which narrates political systems over eras could not tell the feature of a specific era and not help for the students of the middle school to learn history. In early Joseon, there were three major politic parties like sinjinsadaebu(新進士大夫), Hun-gu (勳舊), and Sarim(士林). From a point of political operation of view, the royal authority held a dominant position at Joseon Dynasty's founding. But the time reaches the period of stability of Joseon Dynasty, the lieges graually gained political power. The political power of Joseon Dynasty adopted Neo-Confucianism as political philosophy. The principles of Neo-Confucianism was applied to foreign relation. It is hard to divide history of a specific field and the whole history focusing on politics because of hallmark of political history that include overall aspects of the society at that period. That makes a conflict in curriculum of history. So it is connected to society, economics and culture organically to understand the stream of history. To apply learning whole history focusing politics successfully, it is the better learning method related historical changes on political activities. In this study, I made up the a syllabus revolving around the political changes to learn the whole history efficiently focusing political history. And I suggest strategies which use the overall concepts and narrative for improving history teaching in middle school. Political history is one of effective ways to show the change and the flow of the history. The narrative is a description which has beginning, developing and ending of the subjects. These two method are equally crucial to teaching history. Because the aims of history education are to promote the understanding of Korean history and to developing the students' critical thinking. In addition, it is the better way to explain one subject binding characteristics of society and politic history of Joseon Dynasty on the lecture of political history. Political activities can be bound to a series of processing to achieve the goal by a performer. If it is proper method to make up syllabus focusing political history in teaching history on the middle school about Joseon Dynasty, it is necessary that we try to find suitable method to other eras in teaching history in the middle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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