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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전적 생명 선교를 위한 말씀운동

        이경훈 장로회신학대학교 2016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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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전적 선교’(Holistic Mission)라는 용어는 1975년 나이로비 WCC 총회에서 모든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온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한다고 천명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이후 에큐메니칼 진영에서는 복음전도와 사회 참여의 균형을 이루는 통전적 선교를 지향하고 수행하여 왔다. 한편, 복음주의 진영에서도 로잔대회의 케이프타운 서약(2010)을 통해 복음전도와 사회 참여의 균형을 이루려고 하는 통전적 선교로의 신학적 전환을 이루어내었다. 세계 선교계의 양대 진영이 복음전도와 사회 참여의 측면에서 서로에게 부족했던 부분들을 보완하여 균형을 이루는 통전적 선교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전적 선교의 개념은 지난 40여 년간 여러 한계점을 보여 왔다. 이제 새로운 신학적 개념의 고안을 통해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새로운 선교의 장으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 되었다. 통전적 선교 개념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신학적 개념이 바로 생명 선교이다. 생명 선교는 곧 공적선교이다. 왜냐하면 인간과 모든 피조물들을 살리는 하나님의 생명 선교는 반드시 세상의 공적영역 속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라인홀드 니버, 마틴 마티와 같은 여러 신학자들이 공적신학을 발전시켜왔다. 선교신학계에서는 생명 선교 신학자인 김영동 교수, 공적선교 신학자인 폴 정이 공적선교신학에 대한 연구를 거듭해왔다. 말씀의 신학자인 바르트에게 선교는 말씀 사건이다. 폴 정은 하나님의 선교는 공적영역과 세계 기독교 시대 속에서 형성해 나가는“하나님의 말씀 사건”(Word-Event) 혹은 하나님의 이야기(Narrative)라고 본다. 바르트와 폴 정의 신학적 배경 속에서 필자는 ‘말씀운동(God's Narrative Movement)’을 제안한다. 말씀운동은 효과적인 생명 선교, 공적선교의 방법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말씀운동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한국 교회 초기선교사와 현재의 말씀운동의 사례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 부교역자의 역할과 리더십 개발

        박종길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 2020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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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초록 및 주제어 본 연구의 목적은 부교역자들의 역할을 이해하고 리더십을 개발함으로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는 부교역자의 자기 이해와 정체성을 세우고 담임목사로서 준비하는 과정을 돕는데 있다. 또한 교회와 담임목사가 함께 사역하는 부교역자를 동역자로 이해하고, 한국교회를 책임지는 담임목사로 준비될 수 있도록 훈련과 방향을 세우는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부교역자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정리하고 부교역자에 대한 성경적, 신학적 이해를 살펴보며 성경에 나와 있는 부교역자의 모델을 찾아 분석하려고 한다. 부교역자의 리더십 개발을 위해서는 어떻게 훈련하고 성장하며 자기 개발과 관계 개발을 통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점검하고 제안하려고 한다. 부교역자는 담임목사와 함께 동역하는 동역자이며 변화의 주체로서 사역하는 리더이다. 또한 부교역자는 교회와 담임목사를 돕고 섬기면서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하나님 나라 선교의 도구다. 교회를 섬기는 담임목사와 부교역자는 합력하여 하나님의 선교를 이루는 중요한 역할과 책임이 있다. 부교역자는 교회와 담임목사의 필요에 의해서 사역을 맡게 되기 때문에 일차적으로는 교회와 담임목사를 섬기는 시간이다. 그러나 부교역자의 시기는 담임목사로 준비되는 시간이기 때문에 부교역자는 자신의 리더십과 은사와 사명을 확인하고 훈련할 필요가 있다. 잘 준비된 부교역자가 좋은 담임목사가 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부교역자는 이 역할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신을 개발하고 훈련할 필요가 있다. 분명 부교역자는 자신의 역할과 은사와 소명을 확실하게 알 필요가 있다. 더불어서 부교역자의 시간이 담임목사로 준비되는 시간임을 기억하고 리더십을 개발하고, 부르심에 합당한 준비를 해야 한다. 교회와 담임목사도 역시 부교역자의 역할이 단지 자신을 보좌하는 역할을 뛰어넘어 한국교회를 섬기는 일꾼을 배출하는 중요한 시기이며 기회임을 확인하고 부교역자를 도와주고 훈련할 필요가 있다. 담임목사와 부교역자는 하나님의 나라와 선교를 이루는 중요한 파트너다. 이를 바탕으로 부교역자에 대한 교회와 담임목사의 이해를 돕고, 부교역자의 역할과 리더십 개발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주제어 : 부교역자, 담임목사, 동역자, 리더, 역할과 이해, 리더십 개발, 은사

      • 제주와 산동을 중심으로 살펴본 한국 교회의 초기 선교사 파송

        민경운 장로회신학대학교 2015 국내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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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7년 9월 17일에 한국 교회의 제1회 독노회가 조직되었다. 이 때 한국 교회는 제주로 이기풍을 선교사로 파송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1912년 9월 1일에 제1회 총회가 설립되었다. 이 때 한국 교회는 중국으로 선교사를 파송하기로 결의를 하였다. 그런 다음 1913년 제2회 총회에서 박태로, 사병순, 김영훈 세 사람이 선교사로 선정되었고, 이들은 9월 하순경 그 식구들과 함께 그들의 선교지로 떠나게 된다. 이것이 한국 교회의 최초의 공식적인 해외선교의 시작이었다. 제1회 독노회가 설립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한국 목사를 안수할 수 있는 치리회인 노회가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한국 목사가 있어야 명실상부하게 한국 교회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한국 교회는 노회 설립을 기념하여 이기풍을 제주 선교사로 파송하였다. 이것은 한국 교회의 자립 선언이었다. 제주 선교는 노회를 설립하게 된 기쁨의 표시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헌물이었다. 이기풍은 한국 교회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헌물과 같았다. 전(全) 한국 교회가 이기풍 선교사와 이기풍과 함께 떠나는 전도인들 한 두 명의 후원을 감당하게 된다. 제주 선교를 위해서 각 교회들이 헌금한 일은 한국 교회가 충분히 자립하였다는 확증이었다. 한국 교회는 제주 선교를 통해서 진정으로 자립하는 교회가 될 수 있었다. 이 정신은 곧 5년 뒤에 제1회 총회가 중국으로 선교사를 파송하기로 결의하는 데에 동기가 되었다. 중국 산동 선교는 1912년 제1회 총회 설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07년에 제1회 독노회가 조직되고 5년밖에 지나지 않은 때에 한국 교회가 제1회 총회를 설립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한국 교회가 그만큼 진전(進展)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는 제1회 독노회를 설립하고 난 다음 5년 내에 양적으로 질적으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어갔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는 영적으로도 은혜롭게 성장하고 성숙해져갔다. 그 무엇보다도 한국 교회는 이전보다 더욱 자립하는 교회로 성장해갔다. 산동 선교는 한국 교회가 이제는 제1회 독노회 시절보다도 더욱 자립하였다는 선언인 것이다. 1912년 한국 교회는 제1회 총회를 설립하면서 중국으로 선교사를 파송하기로 결의하였다. 산동선교는 총회 창립을 기념하고, 또 축하하는 것이었다. 또한 이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였다. 한국 교회는 중국에 복음으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선교사들로부터 전해 받은 축복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의 영적인 빚을 갚을 때가 되었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중국 산동으로 세 가정을 파송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특별히 산동으로 파송되는 선교사 세 사람은 그 당시 한국 교회 내에서 유능한 인물들이었다. 이들 선교사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한국 교회의 헌물과 같았다. 또 한국 교회는 이들을 통해서 중국과 만방에 한국 교회의 복음의 능력을 선포하였다. 한국 교회는 최초의 해외 선교지 선정할 때에 한국과 중국에서 사역하는 미국 선교사와 중국 노회와 협의하였다. 또 한국 교회는 제5회 총회에서 중국 산동독회와 대등한 관계에서 협의하여 한국 선교사들을 한국 총회에서 중국 노회로 이명하기로 결정하였다. 한국의 해외선교사들은 선교 사역의 처음부터 총회로부터 산동에 분리된 교회를 따로 세우지 말고 중국 교회에 협조하도록 지시를 받았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선교사들을 산동노회로 이명을 시킨 것이다. 이런 이들은 한국 교회가 한국 사람으로도 한국 교회를 이끌고 갈 수 있다고 하는 자립정신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자립정신의 가장 확실한 증거가 한국 교회의 선교사를 후원하기 위한 선교비 모금이다. 특별히 산동 선교비 모금이 단적인 증거이다. 총회 전도국은 제1회 총회에서 전국 교회가 일 년에 한 날을 감사일로 지키고, 그 날에 모아진 헌금은 전부 총회 전도국으로 보내 산동 선교비로 사용하도록 청원하였다. 한국 교회는 감사일을 “해외선교의 날”로 지키도록 하였다. 이 일을 위해서 한국 교회는 선교사 최초의 도선일(渡鮮日)을 감사일로 정하고 산동 선교를 위한 헌금을 하도록 결의하게 되었다. 또 한국 교회는 총회의 결의를 지켜서 마음을 다해서 선교비 마련을 위한 헌금을 하였다. 교회뿐만 아니라, 여러 기관들이 적극적으로 선교를 위해서 헌금하였다. 이 일은 선교가 곧 한국 교회의 자립의 선언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진정한 교회의 자립 선언이라고 하는 것은 교회가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교회 스스로 교회를 운영해 갈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교회가 선교를 실시할 때에야 그 교회는 자립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선교하는 교회가 자립하는 교회요 자치하는 교회이다. 따라서 제주 선교와 산동 선교는 한국 교회 전체의 자립의 선언이다. 초기 선교사 파송은 한국 교회의 자립의 확언이었다. 이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제주와 산동으로 파송된 선교사들은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내면서도 선교를 위해서 헌신하였던 것이다. 이런 희생의 결과로 한국 교회는 세계의 여러 나라들 가운데에서 선교의 대국이 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초기 한국 교회의 제주와 산동의 선교사 파송이 한국 교회의 자립의 선언이었다고 하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On Sept. 17, 1907, the Presbytery of the Presbyterian Church in Korea was organized. By the time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 decided to send Rev. Ye Keui Poong as a missionary to Jeju. In 5 years the First General Assembly of the Presbyterian Church in Korea was established on September 1st, 1912. During the First General Assembly Meeting of the Early Korean Church it was decided to send missionaries to China. At that time Rev. Park Tai-ro, Sah Byung-soon, Kim Young-Hoon were selected as missionaries during the 2th General Assembly in 1913. They, together with their families, set sail for the mission field in late September of the same year. This was the just beginning of the first official foreign mission of the Korean Church. The most important purpose of the inauguration of the First Independent Presbytery of the Presbyterian Church of Korea was to constitute the ruling organization, the Presbytery, in order to ordain the Korean People to the ministry. If there weren't Korean ordained pastors among the Korean Church, the Church couldn't be truly called as the Korean Church. Also, in commemorating the inauguration of the National Presbytery the Korean Church sent Rev. Ye Keui Poong as a missionary to Jeju island. The meaning of sending Rev. Ye as a missionary to Jeju was the self-supporting declaration of the Korean Church. The mission to Jeju Island was a sign of joy to the organization of the Presbytery and a "Thank-Offering" to God's grace. Rev. Ye Keui Poong was regarded as a thank-offering which the Korean Church offered to God. All of the Korean Church supported the missionary Rev. Ye and one or two evangelists who accompanied him. That the various churches in Korea collected a thank offering in behalf of the mission to Jeju was the affirmation that all of the Korean Church fully became the self-supporting church. Through the mission to Jeju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 could really stand with their feet. This spirit of the self-supporting church would be the motivation to the First General Assembly of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 which started to send missionaries to China in five years. The mission to Shantung China was launched by the time the auguration of the First General Assembly. In 5 years from the organization of the First Independent Presbytery the Korean Presbyterian local churches would grow very rapidly. That was why the First Assembly could be constituted. After the organization of the first independent presbytery the Korean Church significantly kept on growing quantitatively and qualitatively for the five years. And also the Korean Church grew and matured in spirituality. Above all the Korean Church would be developed to be the self-supporting church more than ever before. The mission to Shantung was the declaration of the Korean Church that it became more self-supporting than the first Presbytery's period. In 1912 at the inaugural meeting of the General Assembly, one of the most important resolutions was to send missionaries to China. The mission to Shantung was the commemoration and celebration of the establishment of the General Assembly. It was also in gratitude to God for the organization of the Assembly. The Korean Church began to have the confidence that we could give influence to China through the Gospel and felt that the time had come to pay back the spiritual debt of gratitude to the Lord for the blessings she had received through the Presbyterian missionaries. Therefore the Korean Church had decided to send three families to Shantung China. Especially these three missionaries who were sent to Shantung were very qualified and prominent ministers in the Korean Church at that time. Those three missionaries were likewise the thank offering of the Korean Church to God. And also through these missionaries the Korean Church declared her power of the Gospel to the China and all of the countries. On selecting the first foreign mission field,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 conferred with the American Presbyterian missionaries in Korea and in China, and with the China Presbytery. Also, when the 5th General Assembly of the Korean Church equally conferred with the Shantung Presbytery it was then decided to transfer the membership of the Korean missionaries from the Korean Assembly to Shantung Presbytery. The Korean foreign missionaries were ordered from the Assembly not to set up a separate church in Shantung but to cooperate with the Chinese church from the beginning of the missionary work in China. Thus the Korean Church completely decided to move the membership of the Korean missionaries to the Shantung Presbytery. All of these decisions came out of the self-supporting spirit that we, the Korean People, could govern our Korean Church. The most definite evidence about the self-supporting spirit was that the Korean Church collected the offering to support the missionaries. Especially the collection for the mission to Shantung as direct proof. The Board of Missions in the First General Assembly of the Korean Church overtured that all of the national churches in Korea should keep one day of the year as a thanksgiving day and the whole amount of the offering was to be sent to the Mission Board and to be used for the Shantung mission fund. Each Thanksgiving Day should be observed as "foreign mission day" among the all of the Korean Church.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 decided to keep the arrival day of the first missionary to Korea as the thanksgiving day and collected all the offerings from the churches in Korea. And according to the decision of the General Assembly the Korean Church offered and made the mission funds with all their heart. Several organizations as well as churches were offering for the mission. This collection of the mission fund said that the mission was the self-supporting declaration of the Korean Church. The real self-supporting declaration of the church was not that the church can govern the church by her own income without any help from outside, but that the church start the mission, by the time the church could become the self-supporting church. Therefore a self-supporting church or a self-governing church is a missionary sending church. So the Jeju mission and Shantung mission was the self-supporting declaration of all of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 Missionary sending is the confirmation of self-supporting in the Early Korean Church. Whenever the Korean missionaries to Jeju and Shantung faced so many great hardships in their mission field, they endured all kinds of the sufferings and dedicated themselves for mission because they knew the self-supporting spirit. As a result of those dedications the Korean Church would be the power of the mission all over the countries in the world. Therefore we never forget that missionary sending of the Early Korean Church to Jeju and Shantung was the self-supporting declaration of the Korean Church.

      • 선교적 교회론에 의한 교회 개척 연구

        이호 장로회신학대학교 2016 국내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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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교회들이 교인수와 헌금의 감소를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교회로 하여금 선교와 교회개척에 수동적으로 대처하게 만들며 구제와 봉사를 위축시키고 있다. 이를 극복할 대책이 절실한 실정이다. 본 논문은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를 극복할 대안을 찾고자 한다. 지금 한국교회의 상태를 단지 재정의 투명성이나 목회 철학이나 비전을 진단하고 수정 보완하는 정도로는 해결하기가 무척 어려운 실정이다. 보다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주님이 곧 다시 오심을 믿으며 대비해야 한다.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무엇보다 하나님 통치가 일어나는 현장이 되도록 누구보다도 책임을 지고 수행해야할 대상은 결국은 교회로 귀결되었고 이에 교회의 본질에 관하여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특별히 성경적이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기 위한 주님의 몸 된 교회에 관해 숙고하던 중 선교적 교회론(Missional Church)은 많은 통찰력을 주었기에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성삼위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분명하게 인정하는 바는 교회의 모든 주도권은 하나님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올바른 교회는 신앙의 본질과 그리스도인 됨과 교회의 본질적 역할이 선교라고 하는 것에 대하여 분명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밝힐 수 있어야 한다. 교회의 본분이 교회의 이식이나 확장이 아니라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교회라고 한다면 지금의 어려운 상황은 본질적으로 새로워질 수 있다. 지금 교회 안팎으로 지역마다 교회가 넘쳐나고 목회자 수가 포화되었다고 교회도 구조조정이나 합병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개척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그러한지는 성경을 통해 시대 상황을 분석해 보아야한다. 선교적 교회론을 통하여 전통적인 교회론과 대조되며, 비본질적인 것에 치우친 교회를 대항하며,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대안을 찾고자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역할을 종교적 범주에 제한하지 않고, 지역과 타문화권을 동시에 아우르며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현실적인 실천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태국에서의 동반자 선교에 관한 연구

        최승근 장로회신학대학교 세계선교대학원 2011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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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에 있어서 협력이 강조 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이미 1910년 에딘버러 선교대회에서부터 선교에서만이라도 협력과 연합, 일치를 가지고 사역하자는 선교사들의 열망은 뜨거웠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선교현장에서는 동반자로서 서로를 인정하고 동등한 자세로 선교를 협력하는 일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주께서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 말씀하실 때, 그 당위성과 고귀함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매우 적은 것과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선교에 있어서 동반자 선교를 통한 선교협력은 고귀하고 가치가 있는 일이다. 본 연구에서는 제1장에서 동반자 선교에 대한 연구의 배경과 연구 목적, 연구범위 및 방법에 대해서 밝혔고, 제2장에서는 동반자 선교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서 동반자 선교의 정의와 그 정의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 그리고 필요성을 살펴보았다. 동반자 선교의 근거로는 성경적인 근거, 즉 삼위일체이시며 서로 완전하게 동역하시는 하나님에게서 그 원형을 살펴보았고, 인간과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이 제시하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지체의식과 신구약에 나타난 협력의 예를 알아보았다. 이어서 신학적 근거, 상황적 근거를 차례를 살펴보아 우리시대에 동반자 선교가 여전히 중요하고 시대적인 요청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제2장에서는 동반자 선교의 유형들과 발전단계, 방법론이 어떤 것이 있는가를 고찰하였고, 동반자 선교가 진행될 때 발생되는 긴장 요소들과 어려움들을 함께 살펴보았다. 이러한 동반자 선교에 대한 이론과 방법론, 필수적인 자세 등은 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태국기독교단과 총회태국현지선교사회 사이의 동반자 선교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제3장에서는 태국기독교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를 위해서 태국 기독교의 역사를 정리하였다. 여기서 태국 기독교가 가지는 다양한 특징들을 도출할 수 있었다. 제4장에서는 태국기독교를 구성하는 중심교단이며 현재 총회태국현지선교사회와 50년이 넘게 동역을 해온 태국기독교단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와 동반자 선교의 역사, 현황 등을 살펴봄으로써, 동반자 선교가 실제적으로 어떻게 발전하여 왔고, 현재는 어떠한 사역들과 선교적 과정을 통해서 동역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를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현재 총회태국현지선교사회는 동역교단과 함께, 에큐메니칼 협력사역, 교회개척사역, 교육사역, 신학교 및 신학생 양성 사역, 사회복지사역, 목회자 및 평신도 지도자 육성 사역, 디아스포라 한인사역, 세계선교와 인접국가 선교사역 등 다양한 선교사역을 펼쳐나가며 동역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각 사역의 수요제기와 발전의 단계에서 오랜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현지교단과 밀접한 사역을 해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5장에서는 위에 살펴본 협력교단과의 동반자 선교를 제2장에서 살펴보았던 이론과 방법론에 비추어 평가를 시도하여보았고, 장단점을 분석하여, 현지선교사회와 현지교단 간의 바람직한 동반자 선교를 위한 제안들을 하였다. 우리는 서구교회의 경험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여서 우리의 선교적 실수를 줄이고, 장점들을 활성화하여 세계선교의 주역으로서 이 시대를 섬겨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난 서구선교의 역사 속에 나타났던 다양한 선교적 실수들과 극복해야할 선교의 양태들인 교파주의 선교, 제국주의 선교, 개교회 중심주의 선교, 성장지상주의 선교, 개종주의 선교, 경쟁주의적 선교, 물량주의 선교들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선교가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는 경계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더욱이 바른 선교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동반자 선교는 이 시대에도 우리에게 주어진 매우 값진 선교적 도전이요, 실천의 테마이다. 더욱이 선교사의 구분이 없이 세계가 함께 선교사로 헌신하여야하고, 선교지의 구분이 없이 모든 지역이 선교지가 되어버린 범세계화시대를 맞이하여, 우리의 선교는 필연적으로 서로 동역하는 동반자 선교를 지향하여야 한다. 지난 200년 동안 지구상에 교회가 세워지지 않은 나라는 없다. 그 교회들은 하나님의 교회이기에 가난하고 부한 교회는 있을지 모르지만 진짜교회와 가짜교회는 없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교회로서 지체이며, 한 몸이다. 이제 이전에는 없었던 상황을 우리는 맞이하였다. 우리들의 세계는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세계가 하나가 되고, 정보가 네크워크를 통해서 물같이 흐르고, 인종들이 함께 공존하기 위해서 협력하고, 세계가 다극화되며, 문화들이 융화되고, 지식이 교류하는 시대이며, 생존을 위해서 지구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며, 세계를 하나의 생명으로 이해하는 환경의식이 강화되는 시대인 것이다. 교회관도 선교에 대한 생각도, 서구교회와 2/3세계교회간의 구분과 역할도 변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한 몸인 세계교회는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변하지 않는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사랑을 따라서 급변하는 세계를 함께 섬겨야 한다. 전통적으로 선교지라고 생각되어온 나라들의 교회들이 전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저들은 서구와의 협력을 통해 절감했던 의견들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이제 일방적인 가르침은 그만 되었다고, 이제 일방적인 주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고, 이제 우리 함께 동역하고 친구가 되어달라고 말하는 저들의 외침에 우리는 겸손히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동반자 선교가 이 시대에 필요하고 더욱 활성화 되어야 함을 인식하며 이 연구를 함께 하였다. 현지선교사회와 현지교단간의 선교적 협력의 구체적인 예도 살펴보고 연구하였으며 더 발전적인 모델을 세워보고자 노력하였다. 그 결과로 바람직한 동반자 선교를 위한 10가지 제안을 하였다. 이러한 노력이 태국선교에도 자성과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한다. 더욱이 다른 선교지에서도 더 많은, 더 다양한 동반자 선교의 모델들이 세워지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우리가 살펴보았던 동반자 선교의 방법 및 자세들이 현장에서 잘 적용되기를 희망한다. 동반자 선교는 그동안 경쟁적이며 교회확장, 교파확장의 전략 속에서 급격하게 성장한 한국교회 세계선교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이 동반자 선교가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선교전략이 되도록 우리 모두가 힘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선교전략이 세대와 세대를 이어서 지속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행정적, 전략적 연구가 이어지기를 바란다. 선교는 한세대의 과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동반자 선교의 영역과 분야가 매우 다양한데 이 논문에서는 그중 일부만을 연구하여 제안할 수밖에 없는 한계도 있음을 알고 있다. 더 발전적인 동반자 선교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본 연구에서 다룬 현지선교사회와 현지교단 간의 동반자 선교 외에도 현장 선교사 또는 선교단체들 간의 협력, 한국내 교회 혹은 교단 간의 협력, 한국교회와 선교단체들과의 협력, 현장 선교사와 지역사회의 현지인들 간의 협력, 교단선교부와 선교단체들 간의 협력, 한국선교단체들과 서양선교단체 그리고 현지교단간의 다자간 협력, 민족교회 공동체간의 협력, 세계선교를 위한 다국적 팀으로서의 협력, 세계교회들 간의 협력 등이 연구되기를 바라며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둔다.

      • 선교 이양의 신학적 기초 수립을 위한 연구

        남성현 장로회신학대학교 2019 국내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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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초록 한국 선교의 이양은 선교사의 재산권 문제와 현지 교회의 의존성 문제 등으로 인해 최근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선교 이양에 관한 다양한 논의들이 한국 선교학계에서도 진행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제한된 주제만을 다루고 있는 형편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한국 선교의 이양 신학의 필요성을 연구하고자 한다. 한국 선교는 아직까지 이양의 이론과 성공적 사례를 다룬 연구 자료가 미비하기 때문에 서구 선교의 이양 역사, 이론, 그리고 성공적 사례를 비평적으로 분석하여 이를 한국 선교 이양의 신학적 기초로 삼고자 한다. 우선 서구 선교 이양의 역사는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국제 선교사 대회를 통해 나타난 선교의 이양을 다루었다. 주요 국제 선교사 대회에 나타난 이양의 배경과 동기 그리고 방법과 목표를 살펴봄으로써 선교 이양의 특징을 알아본다. 두 번째로 선교 이양의 주요 이론으로써 헨리 벤, 루퍼스 앤더슨, 존 네비우스, 롤란드 알렌의 삼자 원칙을 살펴본다. 헨리 벤과 루퍼스 앤더슨의 삼자 원칙의 점진적 이양은 19세기와 20세기 주요 선교회의 이양의 기준이 되었으며 존 네비우스의 삼자 원칙은 한국 초기 선교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롤란드 알렌의 삼자 원칙은 사도 바울의 선교와 성령 하나님의 선교를 통해 이양 신학의 중요한 기초를 제공해 주었다. 세 번째로 선교 이양의 성공적 사례로 CSI의 이양 모델, 해롤드 풀러의 SIM의 이양 모델, 톰 스테픈의 새부족 선교회의 이양 모델을 살펴보는데 이는 한국 선교의 주요 사역 유형인 에큐메니칼 사역, 현지 선교회 사역, 팀 단위의 교회 개척 사역의 이양과 관계가 있다. 서구 선교 이양의 비판적 연구와 최근 세계 선교의 특징과 한국 선교의 이양의 상황적 요소를 고려하여 본 논문은 선교 이양의 새로운 신학적 이해를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제시한다. 선교 이양의 토대로서 삼위 일체 하나님의 선교, 선교 이양의 실천으로서 성육신적 선교, 선교 이양이 목표로서 통전적 성장의 선교, 그리고 선교 이양의 도구로서 사도적 리더십이다.

      • 남북한주민의 통일의식 통합을 도모하는 북한선교정책 연구

        김광석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2016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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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초록 본 논문은 남북한주민의 통일의식 통합에 기여하는 북한선교의 정책을 제시한다. 본 논문에서 주장하는 북한선교의 대상은 북한주민이며 지하교회를 통한 북한선교를 주장한다. 북한주민을 북한선교의 대상으로 정한 이유는 복음주의 진영과 진보진영의 서로 다른 북한선교의 대상을 통합하기 위함이다. 북한선교의 대상을 북한주민으로 통합하면 남남갈등을 해소하고 남북한주민의 통합을 도모할 수 있다. 북한선교는 복음전도를 통하여 북한주민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다. 북한선교를 북한정부기관이나 통일 이후 교회재건에만 목적을 두면 북한주민은 외면되고 영혼구원을 위한 복음전도는 어려워진다. 현 분단 상황에서 북한교회재건은 비현실적이며 북한정권과 함께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조선그리스도교연맹만 대상으로 하는 것도 이념적인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북한정권의 부재와 무관하게 계속해서 존재할 북한주민을 북한선교의 대상으로 정하고 북한지하교회를 통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적합하다. 북한선교의 현장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데 북한선교정책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90년대 이전에는 북한주민에 대한 직접적인 선교가 불가능했지만 90년대 이후 북한주민의 의식변화에 따라 탈북민이 증가했다. 그리고 탈북민과 탈북난민, 통일민을 통한 북한주민과의 연결이 가능해 졌다. 2015년 11월 남한에 입국한 통일민은 3만 여명으로 계속해서 증가하며 통일민 1명이 북한주민 40명을 먹여 살린다. 현재 남한에 입국한 통일민을 통하여 북한주민을 지원하면 북한정권을 통한 대북지원보다 훨씬 효과적인 인도적지원이 되며 선교의 방법이 된다. 그러므로 북한선교를 위해 북한에 직접가지 않고 통일민이 북한주민을 직접 선교를 할 수 있도록 남한교회가 선교의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 남한에 입국한 통일민은 북한선교를 위한 선교의 일꾼이며 통일민을 통하여 남북한의 평화통일을 위한 새로운 전략을 세울 수 있다. 그리고 통일민을 통한 북한선교는 이질화된 남북한주민의 통일의식을 통합하는데 기여한다.

      • Critical Dimension Analysis of Si Grating by Spectroscopic Ellipsometry with Rigorous Coupled Wave Analysis

        변준석 경희대학교 대학원 2009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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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 performed spectroscopic ellipsometry (SE) measurements to investigate the possibility of a nondestructive in-situ monitoring tool for determining the critical dimension (CD) of patterned structures. A simple 1D patterned c-Si periodic structure was measured from the zeroth-order diffraction response at a fixed angle of incidence, whose result agreed with the theoretical prediction made by using a rigorous coupled-wave analysis (RCWA) calculation for the reflected light. To investigate the SE's advantage over atomic force microscopy we also prepared a c-Si periodic structure with a Cr hat on the top. We observed that the theoretical result could also explain the measured spectra quantitatively even when the metallic hat structure on the top acted as a strong obstacle to the probing light. 본 연구는 타원 편광분석법을 이용하여 주기적인 구조의 critical dimension (CD) 을 비파괴적으로 분석하며 또한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개발 가능성을 연구하였다. 측면이 곡면으로 구성된 1차원 주기의 Si 구조를 타원 편광분석기를 이용하여 측정하였으며, 그와 유사한 모델에 대한 rigorous coupled-wave analysis (RCWA) 계산을 수행함으로써 그 구조의 기하학적인 모양을 분석하였다. 그리하여 그 분석 결과가 SEM image와 비교하여 일치하는가를 확인하였다. 또한 CD를 측정하는데 주로 이용되는 AFM 과 비교하여 타원 편광분석기가 가지는 이점을 보이기 위해 주기적인 Si 구조 위에 Cr hat 을 올린 시료를 제작하였다. 마찬가지로 타원 편광분석기와 RCWA를 이용한 분석을 수행하여 SEM image와 비교하여 본 결과, Cr hat 에 의해 AFM의 측정이 불가능한 부분도 RCWA 를 이용한 타원 편광분석법으로는 분석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광학적 방법을 이용한 비파괴적인 분석방법의 우수성을 증명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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