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법적 성원권에 대한 비자발적 상실인 국적 박탈은 국가와 국민 간 그리고 국민과 다른 국민 간 관계를 단절시키고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제한을 초래하는 조치이다. 국적 박탈은 특...
국가의 법적 성원권에 대한 비자발적 상실인 국적 박탈은 국가와 국민 간 그리고 국민과 다른 국민 간 관계를 단절시키고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제한을 초래하는 조치이다. 국적 박탈은 특정 성원을 배제하려는 목적으로 인류의 역사와 함께하여 왔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적 박탈과 제노사이드의 관련성 때문에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던 국적 박탈은 21세기 벽두에 테러라는 전례가 없었던 새로운 위협이 등장하면서 영국, 프랑스, 독일을 중심으로 국가에서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테러 관련자 국민의 국적을 박탈하는 형태로 부활하였다. 지난 20년간 그 시행이 확대되면서 국적 박탈이 가지고 있는 헌법적 문제점이 드러났는데, 본 연구는 이러한 헌법적 쟁점을 검토하고 그 해결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9/11 테러를 기점으로 국적 박탈을 재도입하고 확대해 온 영국, 프랑스, 독일과 달리 미국은 트로 대 덜러스, 슈나이더 대 러스크, 아프로임 대 러스크 판결에서 확립된 수정헌법 제14조의 해석을 통해 국가는 시민권 박탈에 대한 헌법상 권한이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국가의 시민권 박탈 권한을 넓게 인정하고 있는 영국은 테러 관련자 시민에게 시민권 박탈 처분을 내리는 것을 허용하고 있으며, 단독으로 영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는 시민이어도 특정 요건을 충족하면 시민권을 박탈당할 수 있다. 프랑스는 테러 행위를 구성하는 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후천적으로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복수국적자 국민만을 국적 박탈 명령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기 15년 전에 행한 테러로도 국적이 박탈될 수 있다. 독일은 테러 조직의 전투 작전에 가담한 복수국적자 국민의 독일 국적을 박탈할 수 있도록 최근 국적법상 국적의 상실 조항을 개정한 바 있다.
기본권의 주체는 원칙적으로 국민이기에, 국적은 기본권 보호의 전제가 되며, 국적의 박탈은 필연적으로 기본권의 제한을 의미하게 된다. 국적 박탈로 참정권, 거주·이전의 자유, 행복추구권 등 그 보장이 제한되는 개별 기본권이 있으며, 더 나아가 ‘권리를 가질 권리’ 즉, 시민권 그 자체가 제한된다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미국은 국적 박탈로 제한되는 기본권을 조직화된 공동체에 속할 권리, 즉, ‘권리를 가질 권리’로 해석하고, 현재까지 시민권 박탈을 위헌으로 판단하고 있다. 국적 박탈을 시행하고 있는 영국, 프랑스, 독일의 국적 박탈 입법례를 비교법적으로 검토하였을 때, 국적 박탈이 일반적으로 평등 원칙과 비례성 원칙 위반의 문제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해당 세 국가는 공통적으로 국민을 복수국적 여부 또는 국적 취득 유형에 따라 차별적으로 취급하고 있는데, 국가가 이러한 국민을 국적의 수와 국적 취득 방식에 따라 차별하는 것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으므로 국적 박탈은 평등 원칙에 위배된다. 또, 국적 박탈은 국가에 충성하지 않은 시민에 대한 제재와 테러 억제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부적합하고, 불필요한 수단이다. 기본권에 대한 제한의 정도가 덜하면서도 같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인 형사 제재가 있고, 국적 박탈은 테러 억제보다 증진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대한민국은 복수국적 허용에 따른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 국적 박탈 제도인 ‘대한민국 국적의 상실결정’을 도입한 바 있다. 후천적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복수국적자가 국익에 반하는 행위를 하거나 사회질서 유지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를 하는 경우 국적을 박탈당할 수 있다. 이 중 사회질서 유지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는 하위법령에 위임되어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본 연구에서 비교법적 검토로 살펴본 국적 박탈 제도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헌법적 쟁점인 평등 원칙 및 비례성 원칙 위반의 문제는 대한민국 국적의 상실결정에서도 나타난다. 복수국적 여부와 국적 취득의 유형에 따라 국민을 차별하고 있는 것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으며,국가안전보장과 질서유지라는 목적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형사 처벌과 같이 국민의 기본권을 덜 침해하는 수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 국적의 상실결정은 국적상실의 사유와 같은 본질적인 사항을 하위법령에 포괄적으로 위임하고 있고, 또 국적상실의 사유에 사용된 용어가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서 추가로 법률유보의 원칙 관련 문제, 명확성 원칙 위반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현행법상 대한민국 국적의 상실결정의 위헌성은 완전히 해소될 수 없다.국적의 상실결정과 관련된 사항을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직접 규율함으로써 어느 정도 위헌성이 해소될 수는 있겠으나, 평등 원칙과 비례성 원칙 위반의 문제의 해결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비교법적 검토, 그리고 대한민국의 입법례를 연구한 결과, 국적 박탈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평등 원칙과 비례성 원칙 위반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음을 확인하였다. 모든 국민의 국적을 박탈할 수 없도록 규정하거나 영국과 같이 사실상 모든 국민에게 국적 박탈의 가능성을 열어야 평등 원칙이 실현될 수 있겠으나, 전자는 사실상 국적 박탈의 폐지를 의미하고 후자는 무국적자 문제를 생각하였을 때 지양되어야 한다. 또, 형사 제재와 같은 공공의 이익에 해를 끼친 국민에게 적용하는 보편적인 수단이 있는데, 복수국적자 국민에게 굳이 국적 박탈 제재를 추가로 해야 하는 당위성이 없다. 테러 행위를 한 국민의 국적을 박탈한다고 해서 테러에서 다수 국민이 안전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국적 박탈은 폐지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주요어 : 국적, 시민권, 국적 박탈, 국적의 상실결정
학 번 : 2021-29408